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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세트] 침묵의 거리에서 (전2권) ㅣ 침묵의 거리에서
오쿠다 히데오 / 민음사 / 2014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항상 불안하고 가슴 떨리는 이야기는 학교폭력, 집단 따돌림이다. 내 자식만은 아무 일 없이 교우들과 사이좋게 잘 지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마음은 다 똑같다. 내가 낳았기에 내 자식만큼은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다. 아니 내 자식만큼은 누구에게도 해를 주거나 해코지를 가하거나 당하지 않을 거란 믿음... 과연 나는 내 자식의 얼마나 알고 있는지... 책장을 덮는 마음이 무거웠던 '침묵의 거리에서'는 오쿠다 히로오의 신작소설이다.
이지마 선생님은 자신의 아들이 귀가하지 않았다는 전화를 받은지 몇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전화 속 학생이 피를 흘린 채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운동부실 옆 오래된 커다란 은행나무 밑에서 발견된 소년의 이름은 나구라 유이치... 중학교 2학년이라 믿어지지 않을 만큼 갈색곱슬머리에 심약해 보이는 소년이다. 나구라의 죽음은 학교는 물론이고 남의 집 숟가락이 몇 개 일 정도로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낸 사람들이기에 삽시간에 소문이 확 퍼진다.
경찰이 출동하고 사건을 조사하던 중 니구라의 핸드폰 내역을 통해 죽음이 자살이 아닌 미필적 고의에 의해 발생한 사건이란 심증이 생긴다. 가해자로 지목된 네 명의 학생은 불안하고 그들의 부모 역시 자기 자식만큼은 착한아이라고 믿었기에 충격이 크고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열네 살인 두 명의 학생은 구속되어 조사를 받고 열세 살인 두 명은 따로 조사가 시작된다. 경찰의 조사가 진행될수록 그들의 핸드폰 내역은 삭제되었고 하나같이 증언이 똑같다는 것에 더욱 의심만 증폭될 뿐이다. 이런 와중에 젊은 검사, 새내기 기자는 사건의 진실을 찾아 탐문하기 시작하고 가해 학생의 부모님은 자식들이 혹시라도 범죄자로 몰릴까봐 전전긍긍하게 된다.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의 사회에서도 알게 모르게 왕따가 존재한다고 들었다. 어른들은 자신이 보고 싶으면 보고 안 보고 싶으면 보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지만 학생들은 다르다. 집과 학교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그들에게 학교 친구들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부잣집 도련님 나구라가 선배나 또래 친구들에게 당하는 모습이 보기 싫어 도와주는 마음이 있던 친구들도 분위기에 휩쓸려 혼자만의 독단적인 행동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럼에도 다른 친구들이 괴롭힐 때 한마디 거들었다면... 아님 선생님이나 나구라의 엄마를 찾아가 귀띔이라도 해 주었다면 죽음을 면했을까? 어렵다.
중학생은 잔인하다.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잔인한 시기라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잔인함은 혼자 서는 과정에서 터지는 고름 같은 것이다. 다들 더는 어른들에게 울면서 매달릴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자기들끼리 생존 게임을 시작한다. -p70-
"교사로서 해선 안 될 발언일지도 모르지만, 중학생의 집단 괴롭힘은 솔직히 막을 방도가 없다는 생각이 들어."
"그래, 그럴지도 몰라. 재미로 저지르는 면이 있잖아."
"중학교 3년은 인생에서 가장 힘든 서바이벌 기간 같아." -p307-
옆지기도 그렇고 제부도 같은 말을 한 적이 있다. 자신이 느끼기에 중학교 시절이 가장 견디기 힘들었다고... 중년의 두 사람도 이런 이야기를 할 정도인데 자식이라고 하나둘 밖에 낳지 않아 오냐오냐 키운 자식들이 대부분인 요즘은 귀하게 키운 만큼 제어하기 힘든 경우가 더 많다. 그 나이 또래의 생각과 행동은 어디로 튈지 모르기에 더 무서운지도 모르겠다.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마음은 평생이 지옥이라고 한다. 어렵게 얻은 귀한 자식이기에 더 좋은 것만 해주고 예뻐하며 키운 나구라의 엄마는 자식의 죽음으로 인해 세상이 지옥이다. 자식의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알고 싶은데...
가해자의 부모는 자신의 자식은 착하다는 믿고 싶은 마음에 자식을 위해 온전히 다 들어내지 않고 침묵한다. 자신의 아들이 설사 나구라의 죽음과 관련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도 부모의 아니 엄마의 입장에서는 자식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게 되고 보호하고 싶어질 것이다. 마음으로 가책을 느끼더라도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클 것이다. 책을 읽는 독자의 입장에서 선 나로서는 그들의 행동에 대한 책망을 할 수 있을까? 나 자신도 자식을 키우기에 쉽게 말하지 못하겠다.
스토리 속에서 나구라는 분명 선배나 또래 친구들에게 계속해서 집단 괴롭힘을 당해 왔다. 장난이라고 할 수 없는 잔인한 방법을 사용하는 그들에게 나구라는 제대로 된 대항도 없다. 피해자 나구라는 물론이고 가해 학생들에 대한 이야기는 제대로 된 진실을 보여주는 듯 하면서도 불투명 막 속에 가려져 있다. 나구라의 입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한 번쯤 들려주었다면 속이 시원했을 텐데...
나구라의 죽음을 둘러싼 마지막에 드러나는 진실은 충격이 아닌 안타까움이다. 뱉은 말은 담을 수 없다. 순간적인 욕심에 설마 하는 마음에 뻔히 위험스런 상황을 만드는 무모함... 지금도 집단따돌림, 괴롭힘으로 자살을 선택하는 학생들이 있다. 세계 최고라는 청소년 자살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는 우리나라... 일본 소설이지만 우리나라 청소년들의 모습과 흡사하다는 느낌을 받았기에 읽는 내내 자식을 키우는 부모의 입장이라 빠져서 읽었다. 더불어 자식이 처한 상황에는 아내에게 전적으로 일임하고 자신은 바쁘다는 핑계를 대는 남편의 모습은 우리나라의 많은 아버지들의 모습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해서 씁쓸한 생각이 든다.
누구나 실수는 한다. 헌데 그 실수가 돌이킬 수 없는 것이라면... 살면서 후회 할 일을 적게 만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나이를 먹어갈수록 새삼 느끼며 살고 있다. 학창시절의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보물과 같다. 학창시절이 인생의 전부인 시간도 지나간다. 허나 그 시절에 받은 상처로 인해 평생을 지옥같이 사는 사람도 있다. 내 자식, 내 부모, 내 가족이 가장 중요하고 소중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보듬을 수 있는 사회 분위기 조성과 교육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경쟁위주의 교육부터 수정이 있어야하는데... 쉽지 않기에... 우리 현실이 아이들의 감정을 표출하지 못하고 분노가 쌓여 있어 다른 방식으로 해소시키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오래간만에 읽은 오쿠다 히데오의 책...역시나 화제의 중심에 서 있을 만한 신작을 가지고 돌아왔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