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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의 기둥 1 ㅣ 블랙펜 클럽 BLACK PEN CLUB 15
켄 폴릿 지음, 한기찬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9월
평점 :
대단하다는 평을 익히 듣고 있었지만 기회가 안 되어 읽지 못했던 켄 폴릿 작가의 '대지의 기둥'... 이웃 분을 통해 이 책을 선물 받고서 아끼고 아껴 읽어야지 뒤로 미루고 있다가 이제서야 읽게 되었는데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웅장함과 스케일에 압도 되어버린 책이다.
요즘 핫한 케이블 프로그램 중에 '꽃보다 할배'가 있다. 출연자들이 현재 가 있는 곳이 스페인이다. 스페인하면 자연스럽게 축구, 가우디, 온화한 기후, 혜택 받은 나라란 생각이 절로 든다. 여기에 가우디 성당은 물론이고 소피아 대성당이 나와 저절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나 역시도 작년 봄에 스페인 여행을 다녀왔기에 자연스럽게 그 때의 보고 느낀 감정들이 속속들이 되살아나며 인간이 만든 것이 정말 맞을까 싶을 정도로 짜릿한 감동을 받은 기억이 있다. '대지의 기둥'은 바로 이런 대성당 건설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건을 풀어가는 이야기다.
스토리의 첫 시작부터 강렬하다. 한 남자를 교수형에 처해지는 모습을 보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교수대에 오른 죄수는 한 소녀에게 시선을 보내며 슬픔과 상실감을 담고 있는 애절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소녀는 한 눈에 보아도 마녀라는 이미지가 확 들 정도로 강인한 인상을 가졌다. 형이 집행되고 죄수는 죽음을 맞는다. 소녀는 죽은 죄수에게 사형을 언도한 사제와 기사에게 저주를 퍼붓고는 감쪽같이 사라진다.
시간이 흘러 석공 톰은 자신만큼 건강한 키에 일도 제법 잘 하는 열네 살의 아들 앨프레드와 딸 마사, 그리고 든든한 아내 애그니스와 함께 떠돌며 고된 일을 하지만 나름 행복하다. 아내가 임신을 한 와중에 현재 일하던 저택에서 주인 집 아들에 의해서 갑자기 쫓겨나게 된다. 겨울을 나기 위해 돼지를 키운 톰의 가족... 허나 낯선 남자의 공격으로 돼지를 도둑맞게 되면서 이들의 시련은 시작된다. 바람이 매운 엄청 추운 날 톰의 아내는 아이를 낳다가 그만 죽고 만다. 남겨진 자신과 자식들의 처지를 생각할 때 갓 태어난 아이를 키울 수 없다는 생각에 톰은 갓난아이를 아내 곁에 두고 돌아선다. 후회가 밀려와 갓난아이를 찾으러 갔지만 지나던 수도사에 의해 갓난아기는 목숨을 건지게 되고 수도원에서 키워지게 된다. 갓난아기를 만나러 가던 도중에 예전에 마주친 신비한 느낌을 주는 여인 엘렌과 그녀의 아들 잭을 만나 함께 지내게 된다.
석공 톰과 함께 또 다른 주인공 필립은 이십대 초반의 젊은 수도원장이다. 그는 어린 시절 동생과 함께 수도원에서 키워진다. 남성으로서의 욕망으로 인해 힘든 시간도 있었지만 하나님에게 자신을 맡기며 최선을 다하여 성직자로서의 길을 걷고 있는 지금... 킹스브리지 수도원의 주교가 죽음을 맞는다. 새로운 주교 자리를 놓고 암암리에 벌어지고 있는 자리다툼에 부주교 웨일런은 필립과 자신을 둘러싼 타협이 벌인다. 필립은 완전히 수긍하지는 못하지만 좋은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웨일런의 제의를 받아들이고 수도원장이 된다.
굶는 시간이 길어지고 떠돌이 생활이 힘들어질 때 톰과 엘렌을 서로를 대하는 마음이 깊어지지만 그들의 아들들은 서로 대립한다. 엘렌의 아들 잭은 모두를 위해 순간적이지만 커다란 계획을 실행에 옮긴다. 이것이 가져 올 엄청난 결과를 어리기에 미처 깨닫지 못했을 행동... 이 행동이 앞으로 지어질 킹스브리지 대성당과 깊은 연관이 있다.
착한 인물들이 많이 나오지만 악한 인물이 빠질 수 없다. 특히나 여러 인물과 깊은 관련이 있는 윌리엄은 아버지의 저택에서 톰을 쫓아낸 인물로 지위 높은 백작의 딸 엘리에너를 마음에 둔 상태다. 허나 그녀는 이기적이고 자신 밖에 모르는 윌리엄과 결혼 할 생각이 없다. 그녀를 향한 욕망으로 인해 국왕에 대신 배신과 관련된 증거를 들이대며 윌리엄은 무자비한 폭력을 휘두르는데...
1권은 시작부분이라 모든 인물들의 관계와 예상치 않은 사건이 일어나는 킹스브리지 수도원이 중심에 있다. 부부의 인연을 맺은 톰과 엘렌이 어쩔 수 없이 이별하는 이야기가 그려진다. 그들은 다시 만날 수 있을지... 만난다면 그들의 자식들은 어떤 모습으로 변해갈지... 궁금증을 자아낸다.
중세를 다루고 있는 책은 이미 많이 보았다.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들어 마녀라고 몰아세우고 사형까지 서슴지 않았던 시대, 사람 목숨이 개, 돼지 목숨과 별반 다르지 않게 취급되는 것이 다반사에 수도원에서 생활하는 성직자들의 마음속에 내재된 이기적인 욕망을 다룬 이야기는 몇 번 보았지만 '대지의 기둥'만큼 흥미진진한 이야기는 흔치 않다. 이상적인 부부상이라고까지 말은 못하겠지만 톰과 그의 죽은 전처가 보인 부부애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아내가 죽고 톰은 새로운 연인 엘렌과 부부생활을 이어가지만 자식들로 인해 쉽지가 않다. 성적인 면에서 엘렌에게 톰은 많이 끌린다. 중세시대가 가진 남자 아이들에 대한 생각의 차이는 두 사람의 이별이 어쩌면 정해져 있는지도 모르겠다.
읽을수록 빠져드는 책이다. 킹스브리지 수도원을 중심으로 다시 모여드는 사람들... 필립이 자신의 뜻대로 수도원을 무리 없이 이끌어 나갈지 아님 새로운 세력의 등장으로 인해 힘든 고난의 시간을 맞을지... 악인 윌리엄에 의해 목숨까지도 위험에 놓인 백작 딸 엘리에너와 그녀의 남동생은 어떻게 될지... 여기에 톰의 아이지만 수도원에서 키워지게 된 갓난 아들까지... 결코 만만치 않은 두께를 자랑하는 책이지만 완전히 빠져들게 하는 흡입력과 재미는 보장되어 있기에 빨리 2권을 읽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