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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득한 오늘
조정희 지음 / BG북갤러리 / 2014년 9월
평점 :
얼마나 간절한 사랑이기에 하늘도 감동을 했으면 결코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생각되는 현상이 발생했을까? 싶을 정도로 한 남자의 가슴 절절한 사랑이 담백하고 솔직한 모습으로 그려진 조정희 작가의 '아득한 오늘'은 TV에서 젊은 부부의 비극을 보고서 쓴 소설이라고 한다. 현실적으로 사랑하는 배우자를 잃고 남은 한 사람의 모습을 생각한 마음이 느껴지는 따뜻한 이야기다.
방송국 다큐멘터리 연출자인 여훈이 2년 만에 증도의 염전에서 계영을 만나게 되면서 시작한다. 여훈의 카메라가 가까이 와서야 계영은 겨우 그를 알아본다. 헌데 그것도 잠시 계영은 어느새 사라지고 만다. 젊은 시절 여훈이 공들인 다큐멘터리 작품 속 주인공이였던 계영과 선혜... 선혜의 폐암 발생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세상이 부러워할 부부로 살았을 것이다. 허나 선혜의 죽음으로 홀로 남겨진 계영에 대한 생각은 늘 여훈의 마음에 깊이 남아 존재했다.
여훈은 속리산이란 이름을 듣고 별 관심 없던 다큐가 갑자기 끌리게 된다.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은 마음에 간 곳에서 만난 90대의 노부부 낙원과 달래... 예전에 계영과 선혜가 살았던 집을 새집으로 개조해서 살고 있는 노부부... 우연히 그들이 향하는 곳을 따라갔다가 벤치에 앉는 노부부가 말하는 소리를 듣고 여훈은 설마...
방송국 다큐멘터리 PD 여훈을 비롯해 계영과 연관이 있는 다양한 인물들의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계영이란 한 남자의 지고지순한 순애보는 그가 가진 슬픈 가족사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세상에 자신이 기댈 한 명의 존재가 갑자기 사라지자 남겨진 아이는 갈 곳을 잃고 집을 떠나게 된다. 힘들게 살며 원양어선을 타며 위험 속에서 한 여인을 만나 아이를 낳고 살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말없이 떠나 간 남자 형이 꼭 자신을 찾을 거란 희망을 놓지 못하고 산다. 허나 그 바람은 사고와 함께 허망하게 끝나고 남겨진 여자는 남편이 알려준 형을 찾는다. 그녀 역시 목욕바가지를 들고 나갔다가 사고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남겨진 그들의 자식 계영은 큰 아버지 댁에 맡겨지며 정작 큰아버지의 따뜻한 말 한마디, 나이차 있는 형들과 교류도 없이 남편에게 불만만 가득한 큰어머니가 주는 불편한 밥을 먹으며 자란다. 독립한 계영이 스포츠센터에서 일하며 난생처음 마음에 품은 여인 선혜... 나이차가 있기에 힘들게 얻은 결혼 승낙도 그녀의 암 발생과 함께 한시 앞을 모르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계영과 선혜가 속리산 집에 터를 잡고 부부처럼 살아가는 모습은 다른 사람의 눈에는 안타깝고 안쓰러워 보일지 모르겠지만 두 사람은 세상의 어느 부부보다도 행복하다.
계영의 큰아버지 낙원 역시 결코 쉬운 삶은 아니었을 것이다. 낙원, 남편의 무시함에 온몸으로 거부하고 분노를 가지고 사는 달래, 가정이란 온기를 느끼지 못하고 자라는 두 사람의 자식, 계영을 남겨두고 떠나야 했던 엄마... 다른 사람의 고통이 충분히 이해가 되어도 자기 손톱에 박힌 가시가 더 고통스럽게 느껴지는 게 인간이다. 낙원, 달래는 자식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 특히나 배우자, 조카의 고통스런 슬픈 마음을 들여다 볼 여유가 없다.
검은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이란 말은 옛말이 되어진지 오래다. 명예이혼, 황혼이혼이란 단어를 심심치 않게 들게 될 정도로 결혼하면 당연히 두사람이 평생을 같이 해야 한다는 것은 옛말이 되어버렸다. 세상이 변하고 사랑도 인스턴트처럼 쉬워진 요즘 세대에 계영과 선혜가 보여주는 한 없이 깊고 애절한 사랑은 가슴을 울리기에 충분하다.
속리산 깊은 산자락에 자리 잡은 낙원, 달래... 그들의 삶 속에 조용히 자리잡은 계영과 선혜... 오래살면 삶의 지혜, 사람에 대한 배려가 늘어간다는데 지난날 자신이 미처 깨닫지 못한 자신, 배우자의 모습을 이해한다. 나 역시도 결혼을 하고 의리로 살고 있다고 말하지만 내 배우자 역시 나에게 의리로 살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서로의 아픔, 잃어버린 꿈, 생활이기에 감내했던 것들에 새삼 고마움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 책이다. 속리산, 증도 염전을 비롯해 아름다운 자연경관이 머릿속으로 상상이 되는 계영, 선혜의 모습에 따뜻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