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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톨로지 (반양장) - 창조는 편집이다
김정운 지음 / 21세기북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우리시대의 유쾌한 인문학으로 많은 인기를 가진 김정운 교수 아니 원장의 '에디톨로지'... 부제목으로 창조는 편집이란 글이 쓰여 있다. 에디톨로지를 다른 말로 바꾸면 '편집학'이다. 우리가 보고 듣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이 새로이 구성되고, 해체되고, 재구성되어 만들어진다.
세상에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기 위해서는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어느 정도 인지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김정운님은 오랜 시간 창조는 편집이란 말을 강조해 왔다. 그의 이런 주장은 아무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한다. 허나 스티브 잡스의 죽음을 본 미국 작가 말콤 클래드웰이 스티브 잡스에 대한 평가를 편집학으로 정리한 파급효과가 가진 엄청난 차이를 표현해 낸 영어권 국가의 사람이 아니라서 그런 거라는 글이 인상적이다.
3가지로 나누어진 파트마다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져 있다.
지식과 문화의 에디톨로지... 마우스의 발명과 하이퍼텍스트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관점과 장소의 에디톨로지... 원근법을 중심으로 공간 편집과 이간 의식의 상관관계를 다루고 있다.
마음과 심리학의 에디톨로지... 심리학에 대한 이해도에 따라 재미가 조금 차이를 보이겠지만 지적 호기심만 있다면 충분히 즐겁고 유쾌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라고 한다. 특별히 더 끌리는 부분은 있지만 김정운 교수의 해박한 이야기에 너무나 재밌고 즐겁게 읽었으며 배울 점도 많았다.
처음부터 시선을 확 잡아끄는 사진이 등장한다. 이건 뭐지? 싶은 매력적인 여인의 사진이 본격적으로 에디톨로지가 무엇인지 알아가는 부분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 곳에 집중된 시선을 타깃으로 둔 아이팟 광고 사진이 놀라우면서도 광고효과는 확실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든다.
노홍철의 음주 사건으로 무한도전 하차를 결정했다는 이야기를 뉴스를 통해 들었다. 어느 프로그램이든 10년을 방송하다 보면 크고 작은 일들이 일어난다. 무한도전 역시 6개월 정도 파업으로 방송이 중단된 적도 있었고, 리쌍의 멤버 길의 하차도 있었지만 여전히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장수 예능프로그램이다. 이 프로의 장수를 보면 6명의 적절한 팀윅도 좋았지만 무엇보다 PD의 만들어내는 연출력이다. 편집과 효과를 극대화 시킬 수 있는 자막 처리가 가장 빛나는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고 간단히 유재석과 박명수의 별거 아닌 잡담 같은 출산과 관련된 이야기를 통해 자막이 가진 힘을 느끼게 된다.
영화는 편집의 예술이다. '몽타주 montage 기법' 때문이다. 서로 다른 맥락의 화면을 이어붙이는 방법을 뜻하는 몽타주 기법은 미술에서 나타난 '콜라주 collage 기법'의 연장선에 있다. 인상파 이후의 피카소, 브라크 등은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대신 신문지나 광고 포스터, 엽서 등을 오려붙이는 방법으로 회화의 새로운 표현 가능성을 실험했다. 이어 몽타주 기법이 나타났다. -p117
몽타주 기법에 의해서 영화에서 연기는 충분히 커버가 가능해진다. 몽타주 기법을 이용해서 풀어놓는 배우 시걸에 대한 평가는 날카롭다 못해 그의 영화를 두세 편 본 기억이 있는 나로서는 동조하는 헛웃음이 살짝 났다.
원근법의 발견은 객관성의 발견이 아니다. '주체'의 발견이다. 인식하는 주체, 즉 '주관성'의 발견이라는 뜻이다. -p155-
그림에 대한 관심이 있고 미술관에도 될 수 있으면 시간을 내어 좋은 작품들을 보려는 노력을 종종하지만 여전히 어렵게 느껴진다. 그림에 대한 이해도가 떨어지기에 그냥 보기에 좋은 그림이 아직까지는 좋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의 원근법으로 보면 나타나는 오류들이 있다. 변증법적 모순이 숨어 있는 그림으로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원리에 버금가는 혁명적 인식론이라고 밝히고 있다.
아이폰 하면 애플이고 애플하면 스티브 잡스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스티브 잡스의 놀라움은 그가 시대를 앞서는 정확한 눈을 가졌다는 것이다. 마우스의 발명은 그야말로 획기적인 일이다. 이를 알아보고 헐값에 특허권을 넘겨받으며 마우스를 대처하는 새로운 개념 터치가 가능한 아이팟을 만들어 낸다. 갤럭시를 비롯하여 스마트폰 모두가 터치를 사용하지만 이 터치에도 차이가 있다.
스티브 잡스란 인물 자체만 놓고 볼 때도 그는 살짝 꼬여있고 거만하지만 그럼에도 매력적이고 재밌는 사람이란 생각이 든다. 특히나 스티브 잡스와 빌 게이츠의 연설을 놓고 비교하는 부분에서 빌 게이츠가 이 정도 평가를 받을 만큼 우아하지만 재미없고 지루한 연설을 쏟아낸다. 내가 들어도 같은 느낌일지... 개인적으로 스티브 잡스보다 빌 게이츠에게 호감이 있는 나로서는 영어를 잘 못하기에 그들의 원문 연설문을 읽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다.
군데군데 재밌고 시선을 잡아끄는 부분들이 많다.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를 비교한 앞에서 적은 이야기, 독일의 제복이 일본을 넘어 우리의 옛 교복에 고스란히 담겨져 있으며 김정운 교수 역시 다른 옷을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사람의 눈에는 같은 옷으로 보였다는 글에 웃음이 났다. 모차르트의 천재성과 비교되는 바흐, 헨델, 베토벤에 대한 이야기, 서독과 동독의 통일에는 외국어를 제대로 하지 못했던 기자로 촉발된 일, 우리나라의 한동안 충격에 빠트린 메네르바의 학력을 넘어선 시대를 보는 날카로운 편집 능력, 인간으로는 치사한 인물이지만 위대한 편집자란 평가를 내린 프로이트, 책은 될 수 있으면 끝까지 읽어야 한다는 생각을 머리 깊이 새기고 사는 나에게 책을 끝까지 읽을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 등이다. 마지막에 인간은 한 번쯤 아주 격하게 외로워질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김정운 교수님 같은 사람이라면 몰라도 평범한 가장, 주부가 이런 외로움을 가진다고 하면 몇 사람의 배우자, 가족이 허락을 할지 의문이 살짝 든다.
지금도 우리는 무수히 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살고 있다. 이런 홍수의 정보를 제대로 인식하고 편집하는 능력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끼게 된다. 분명 무척이나 재밌고 단숨에 읽어 내려갈 정도로 흡입력도 좋지만 결코 가볍게 읽을 수 없는 책이다. 시간이 조금 후에 이 책을 다시 본다면 지금과 같은 느낌일지.. 편집학의 개념을 배우고 있는 뜻 깊은 시간이었고 인문학이 주는 재미를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즐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