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미안 열린책들 세계문학 227
헤르만 헤세 지음, 김인순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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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아무리 흘러도 명작으로 꼽히는 고전은 시대를 초월하여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 스테디셀러란 이름에 걸맞게 여전히 많은 독자들이 찾는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의 경우도 그러하다. 어린이용으로 나온 책을 비롯하여 내가 데미안을 읽은 것만 해도 세 번 이상은 되는 거 같다. 읽을 때의 느낌은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학창시절에 그냥 고전이라 읽었을 때와는 달리 지금 읽은 데미안 그 느낌부터 조금 다르다.

 

호기를 부려 보고 싶은 때가 있다. 여자들보다는 남자들이 더 괜한 객기를 부리는 경우가 많다. 집안에 흐르는 따뜻하고 안정된 분위기가 좋지만 어둡고 낯선 금지된 세상에 대한 동경이 마음속에 자리 잡은 어린 소년  에밀 싱클레어는 ... 고작 열 살 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 또래 남자아이들에게는 힘을 가진 아이에 대한 두려움 마음과 동경이 함께 자리 잡고 있다.  에밀 싱클레어 역시 어른들의 눈에 볼 때는 별거 없는 괜한 영웅놀이와 시기심에 자신이 하지도 않은 도둑질에 대한 이야기를 떠벌인다. 자신의 입을 통한 나온 거짓 이야기에 스스로 도취되어 있던 기분도 잠시 어른 흉내를 내며 아이들에게 물건을 갈취하는 소년 프란츠 크로머의 덫에 빠지고 만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지만 이미 늦어버린 일... 크로머가 요구하는 돈을 주어야 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 자신을 후회해 보았자 소용이 없다. 그의 말에 복종하며 깊은 절망감에 빠져 있던 그 때 라틴어 학교에서 막스 데미안이 전학 온다. 데미안은 평범한 학생들과는 완전히 다른 눈빛을 가진 소년이다. 데미안이 들려주는 카인 이야기는 싱클레어의 마음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데미안의 도움으로 크로머로부터의 시달림에서 벗어난다. 데미안이 여행을 떠난 사이 싱클레어는 전학을 가게 된다. 온전히 혼자만이 버텨내야 하는 기숙학교의 생활은 외로움이 컸던 만큼 데미안에 대한 그리움은 커져만 간다. 술과 친해지면서 점차 방탕한 생활 속으로 빠져드는 데미안 어느 화창한 봄날 소년 같은 느낌을 주는 늘씬한 소녀를 보게 되고 소녀에게 '베아트리체'란 이름을 붙인다. 베아트리체를 숭배하는 삶이 싱클레어의 생활 깊숙이 파고들어 그녀를 그리기에 이른다. 헌데 막상 베아트리체를 그렸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이 그린 그림 속 인물은 데미안이다. 데미아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가는데.. 

 

'새는 알을 깨고 나오려 힘겹게 싸운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세계를 깨트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p128-

 

책 속에 있는 문장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문장이다. 데미안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는 알을 깨는 작업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지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는 생활을 할 수밖에 없다. 누구보다 처절하게 방황하고 고독하며 힘든 성장통을 겪는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만났기에 얼마나 다행인지... 살면서 데미안과 같은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이다.

 

싱클레어는 대학에 진학하면서 데미안과 재회하게 된다. 자신에게 있어 운명의 여인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이 막스 데미안의 엄마 에바부인과도 만난다.  

 

전쟁 중 야전 병원에서 데미안과 싱클레어는 다시 만나고 대화를 나눈다. '네 안에 귀를 기울여 봐. 네가 네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될 거야.'란 말을 해준 데미안을 떠올린다. 싱클레어는 데미안을 마음 깊숙이 간직한 채 자신만의 길을 간다.

 

인생을 살면서 편하고 좋은 길만 나타나지 않는다. 어려운 길이 나타나면 피하고 비껴가고 싶은 마음이 먼저 든다. 허나 그 길을 넘어설 수 있는 용기 또한 필요하다. 주위의 도움이 필요하면 기꺼이 손을 내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싱클레어가 크로머의 요구에 맞서 아버지에게 자신의 잘못을 말했다면 오랜 시간 자신을 괴롭히는 힘든 상황은 없었을 것이다.

 

싱클레어는 항상 카인과 아벨처럼 선과 악, 빛과 어둠으로 세상을 바라보려는 경향이 짙다. 살다보니 세상에는 명확하게 구분지어 지는 일도 있지만 명확하지 않은 일들도 참 많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인가에 나를 맞추고 규정짓기 보다는 자신의 자아를 찾아 신념을 갖고 행동하면 된다는 생각이 든다.

 

데미안을 통해 자신을 돌아보는 성찰의 시간을 갖는 기회가 되었다. 몇 년 후에 다시 읽으면 그 때는 또 어떤 느낌으로 다가올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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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라는 생물
마스다 미리 지음, 권남희 옮김 / 이봄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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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들만이 가지고 있는 일상의 모습들이 공감이 팍팍 오는 마스다 마리의 '여자라는 생물'... 짧은 글과 만화가 담겨 있어 읽는데 시간이 걸리는 것이 아니라 읽고 난 후 자꾸만 내 삶, 여자로서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책을 펼치면 처음에 나오는 글과 그림이다. 저자가 너무나 시크하게 말하고 있어 맞아 하면서 웃음 짓게 했던 장면으로... 참 이상하다. 왜 남자들의 우정은 값어치 있게 취급하면서 여자들의 우정은 너무나 가볍게 여기는지... 여자에게도 우정이 있지만 우정의 값어치를 여자 스스로 너무 낮게 보는 것은 아닌지... 나의 우정 깊이를 돌아보게 된다.

 

모든 것은 선택이다. 자식이 어떤 것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같은 상황에 놓여 있어도 모두가 똑같은 대처를 하지 않는다. 저자가 막 서른을 넘겼을 때 만나 이야기를 나눈 두 명의 여성이야기는 그래서 더 공감이 된다.

 

"자식이 없는 인생도 괜찮지 않나 싶어요."   -p27-

"인생에서 아무것도 후회하는 것 없는데, 그래도 있죠. 자식만큼은 낳았더라면 좋았을 걸 싶더라고."   -p28-

 

나 역시도 결혼을 하고 자식을 낳고 기르고 있지만 때로는 허덕이는 사교육비와 자식이 결혼을 한다면 발생할 추가비용을 생각할 때 우리 부부만 살았다면 좀 더 여유 있고 좋아하는 여행도 마음껏 하면서 생활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자식이 무척 사랑스럽고 예쁘지만 말을 듣지 않을 때는 다시 뱃속으로 넣고 싶은 때가 있기에...  서로 다른 상황에 놓이지 않았기에 다른 쪽 삶을 부러워할 수 있고 후회도 될 수 있다. 그럼에도 자식이 없는 내 모습, 우리 가족을 떠올리면 그림이 맞지 않고 허전하다. 힘들고 짜증나는 순간도 맞지만 그만큼 살면서 많은 기쁨을 주는 것도 자식이기에 자식 낳는 것이 좋다.

 

나이가 목에 나타나는 사람도 있고, 손등인 사람도 있다. 눈가, 팔자 주름, 피부의 탄력 등등, 체크포인트는 많고 많다. 나는 눈가 주름이 아직 두드러지지 않는 탓인지 친구의 누가 주름에 시선이 가서 '늙기 시작했구나' 생각할 때가 있지만, 그녀들은 그녀들 나름대로 내 관자놀이 언저리의 기미를 보고 "아아" 하고 한숨을 쉴지도 모른다.   -p127-

 

여자라면 이 이야기에 누구나 공감이 되고 맞아 맞아 박수를 칠지도 모른다. 오래간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결혼 초기에는 신랑자랑이 가장 많았다. 아이들을 키우고 있는 지금은 아이 성적과 관련된 이야기가 주를 이루지만 어느 순간부터 서로의 눈에 나이들어 보여 성형이야기도 할 때가 있다. 여자라는 생물이 참 오묘한데 학창시절 별로 예쁘지 않은 친구가 한 순간 너무 예뻐지면 칭찬도 하지만 시기어린 질투 섞인 말도 한다. 요즘이야 성형을 해도 당당할 수 있는 시대지만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성형을 대놓고 들어내지 않았다. 얼마 전에 만난 친구들끼리 성형계라고 하자는 말을 할 정도로 나이든 자신의 모습을 바꾸고 싶어 하는 마음...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더 젊고 땡땡하게 나이 들고 싶은 여자의 마음은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변화지 않을 것이다. 

 

 

여자들 스스로 가슴 사이즈에 예민한 것은 시대가 가져 온 현상도 있지만 옷을 입으면 여자란 티가 나고 예쁘다. 스스로 만족한 만화를 보면서 나도 저런 행동 종종 했었는데 생각이 나서 빵 터지며 웃었다.

 

편하게 읽을 수 있는 글과 만화를 보며 맞장구를 치며 공감하면서 읽었다. 내가 여자로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것은 아니지만 여자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여자라는 생물로 살아갈 내가 좋다. 벌써 한 해가 다 저물어 가고 있고 곧 또 한 살을 먹는다는 것이 조금 마음이 아프지만 저자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말한 "몇 살이 되어도 여자이고 싶다."는 글처럼 나 역시도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여자로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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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58
도쿠나가 케이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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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생활 소녀와 생활밀착형 스파이의 은밀한 업무일지'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다. 이중생활하면 대체적으로 이상야릇한 방향을 떠올리기 쉬운데 그것도 소녀가... 여기에 먹고살기 위해서 무슨 일이든 다 할 거 같은 생활밀착형 스파이라니... 제목에서 풍기는 느낌과 달리 표지에 담겨진 소녀의 그림은 너무나 앙증맞고 귀엽다.

 

인생을 살아가는데 꿈은 커다란 원동력이 된다. 지금은 비록 전화상담원으로 일하고 있지만 순정만화 작가를 목표로 열심히 꿈을 키우며 살고 있는 스물다섯 살의 여자 구에다 아야카와 마흔여섯 노총각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아리송한 기무라 이치로는 이른 아침 편의점 앞에서 운명처럼 만나게 된다.

 

아야카는 정식으로 데뷔하기 전까지는 누구에게든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기 싫다. 헌데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중년의 남자와 부딪히면서 자신이 성심성의껏 정성을 기울인 원고가 쏟아졌다. 생전부지의 남성이 자신이 그린 원고를 보았다는 것은 곧 자신의 치부를 들어낸 것이나 마찬가지다. 다행이라면 두 번 다시 이 남자를 만날 일이 없을 거란 위안인데 하필이면  이 사람이 당뇨 합병증으로 갑작스럽게 입원한 센터장 후임으로 온  것이다. 이젠 그가 조금 입이 무거운 사람이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

 

새로 온 노총각 센터장에 대해 누구보다 궁금증을 갖고 있는 인물로 인해 아야카는 본의 아니게 그를 미행하게 되고...

 

중간쯤 읽다보면 나머지 이야기는 충분히 짐작이 간다. 만화 같은 요소들이 숨어 있는 책이란 느낌이 들지만 그럼에도 평범한 사람들이 꿈을 키우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콜센터를 중심으로 소소한 일상이 담겨 있어 미소를 띠며 읽게 된다. 특히나 우리들은 사람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외형만 보고서 너무나 쉽게 그 사람을 판단해 버리는 오류를 쉽게 한다. 아야카 역시 지금은 친한 동료의 처음 모습에 선입견을 가지고 바라보았고 우리들 역시 이런 실수는 너무나 자주 쉽게 하는 편이다. 아무래도 첫인상에서 풍기는 이미지를 무시할 수 없지만 그것이 다가 아닌데...

 

자신이 꿈꾸는 목표가 있기에 오늘이 고단해도 이겨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아야카는 자신이 꿈꾸는 작가로서 무엇이 부족한지 객관적인 평가를 미처 받지 못하고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다. 현실 속 우리들 역시 무엇인가 변화를 꾀하며 도전을 하지만 진짜 자신에게 부족한 면이 무엇인지 객관적으로 보는데는 어려움이 있다. 같은 선상에서 출발했지만 어느 순간 동료는 자신보다 훨씬 더 앞으로 나아가 있고 여전히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는 자신을 보면 실망스럽기도 하고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다. 허나 자신을 진정 행복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안다면 자신이 가진 문제점을 제대로 바라보는 시간이 필요하고 아야카 역시 이런 노력을 시도했기에 다음에는 그녀 역시 순정만화 작가로 당당히 설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스토리가 끝나고 보너스란 이름으로 따로 마련되어 있는 이야기가 있다. '내가 사랑한 스파이'... 스파이 센터장 이치로를 보며 떠오른 이야기란 것이 느껴지는 제목이다. 생각보다 분량이 좀 있고 앞의 이야기가 다른 새로운 이야기를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재미가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권의 책으로 두 권을 읽은 느낌이랄까...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화려하게 데뷔한 저자의 다음 작품은 더 쫄깃하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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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 일러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미메시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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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 저자에 대해서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카뮈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년 만에 빛을 본 그의 유작 '최초의 인간'... 진화론에 입각한 최초의 인간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기에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게 된다. 카뮈가 말하고 있는 최초의 인간의 인간은 책의 뒷부분에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그 어떤 것도 물러 받을 것이 하나도 없는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야기는 여행자들을 태운 포장마차가 돌투성이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가면서 시작한다. 비까지 내리니 얼마 안 남은 갈 길이 자꾸만 멀게 만 느껴진다. 트렁크들 속에 있는 어린 사내아이와 엄마... 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아버지의 마음은 애가 탄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고 아내는 곧 출산할 듯 보인다. 남편은 급하게 의사를 찾아 아내에게 돌아왔지만 아내는 무사히 둘째를 낳았다.

 

한 남자가 알제리에 살고 있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다. 그는 주인공 자크 코르므로... 40년 전 기적 같은 날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그다. 생후 일 년만에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던 그는 묘비에 적힌 아버지의 짧은 인생을 충격으로 다가온다. 현재 자신보다 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다. 오랜 지인이자 친구를 만나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친구의 격려를 받으며 가족, 자신의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자크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만난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되는 아버지의 정의로움을 알게 된다. 아무리 전쟁 중이고, 적이라고 해도 할 행동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 이 일은 자크의 아버지의 가슴에 커다란 내적 고통으로 자리 잡는다. 자크의 엄마 뤼시를 만나 남편, 아버지로서 나름의 생활에 안정을 찾을 때쯤 징집되고 죽음을 맞는다. 자크와 엄마가 전사 통지와 함께 아버지가 가족에게 보낸 애틋한 마음을 담은 엽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밖에서는 낙하산 부대가 투입되며 어지러운 알제리의 현실에 자크는 엄마에게 함께 떠날 것을 권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크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상처를 갖고 있는 집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크는 작은 거짓말도 엄하게 혼내는 할머니에게 육체적인 체벌을 받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엄마, 반벙어리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보며 머리가 좋다며 예뻐하는 삼촌, 결혼을 하지 않고 철도회사에 다니는 삼촌, 엄한 할머니, 형...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가장 급하기에 어른들은 한시도 일을 쉬지 않는다. 집안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보유한 할머니는 절대군주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친구랑 놀았지만 숙제를 했다는 거짓말을 한 자크에게 회초리로 때리고, 심부름 시켰다가 주머니에서 빠진 2프랑을 보며 다음날 축구 경기를 생각하며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단번에 알아채고, 할머니와 영화관에서 무성 영화를 보며 자막을 읽어준 일, 형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 일 등등 아껴 살면 그럭저럭 생활이 되었기에 할머니의 매서운 살림살이가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TV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있는 6.25사변 이후 우리네 가정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집안에서 행해지는 체벌을 당연하게 여겼기에 학교 선생님이 주는 체벌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크를 특히나 예뻐하시는 선생님도 다른 아이와 차별을 두지 않고 보리사탕이란 이름으로 체벌을 가한다. 요즘 같으면 난리가 나겠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선생님의 도움으로 상급학교에 가게 된 자크... 가정 형편상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란 할머니를 설득한 선생님 덕분에 자크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자크 역시 또래 소년처럼 소녀를 만나 첫 키스를 경험하고 방학동안 할머니로 인해 거짓말을 하고 직장에 취직했지만 월급 받는 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실을 털어 놓는다.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자크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가 힘들지만 그 나름대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다른 것보다 아랍인, 아랍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데 자크의 탄생에 도움을 준 알제리 여성, 돌투성이 마차를 몰았던 사람도 아랍인, 자크가 친구들과 상점 주인을 놀리다가 상점주인이 고용한 아랍계 사람들로 인해 두 번 다시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한 사건 등등 아랍계 사람들의 모습이 거칠고 무섭게 그려진다고 보다 그들 역시도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인다.

 

 최초의 인간은 알베르 카뮈가 당시 가장 크게 느끼는 관심사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 결코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흑백의 일러스트 역시 무게감이나 표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면이 느껴진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상을 거머쥔 흑백 일러스트의 거장 호세 무뇨스의 작품이지만 평소에 파스텔 톤의 순정만화 같은 느낌의 일러스트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거장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카뮈의 유작 '최초의 인간'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컸던 작품이다. 아직도 고전이 주는 진정한 재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앞으로 더 많은 거장의 고전을 읽으며 이해의 폭을 넓힐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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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
페테르 우스펜스키 지음, 공경희 옮김 / 연금술사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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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되는 일이 생길 때 시간을 되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다. 아마 많은 사람들이 시간여행을 한번쯤 꿈꾸어 보았을 것이다. 나 역시도 마찬가지로 황당하지만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다시 살아보고 시간대가 있다. 내 인생 전체를 바꿀 수 있는 과거의 시간여행이 가능하다면 난 조금 더 열심히 공부하여 지금과 다른 전문 직종에서 일하는 커리어우먼으로 살고 싶은 욕망이 있기에 학창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은 말도 안 되는 꿈을 꾼 적도 있다. 지금과 다른 모습으로 살 수 있기에 현재 내가 가진 기억을 가지고 떠나는 시간여행... 러시아의 신비주의 작가 페테르 우스펜스키의 우화 소설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이 내가 생각하던 시간여행을 다루고 있어 흥미롭게 다가 온 책이다.

 

1902년 4월 모스크바 쿠르스크 역에서 남녀가 이별을 하고 있다. 너무나 눈부시게 화창한 날씨와는 대조적인 두 사람을 둘러싼 분위기는 우울하다. 남자는 오소킨으로 친구의 여동생 지나이더를 사랑하지만 그녀와 이별을 고하고 있다. 그녀 역시도 오소킨을 너무나 사랑하지만 무한정 그를 기다리지 않는다며 단 2개월의 시간만을 통보한다. 그녀와 헤어지고 두 달이 흐르자 오소킨은 애타게 그녀의 편지를 기다리지만 아무 연락이 없다. 오히려 그녀의 소식을 알려고 나간 길에 친구이자 사랑하는 지나이더의 오빠를 만나 생각지도 못한 소식을 듣게 된다. 그녀가 곧 결혼식을 올린다는 것이다.

 

깊은 실의에 빠진 오소킨은 평소 알고 지내던 마법사를 찾아가 자신의 모습을 비관하며 신세한탄을 한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지금과는 다르게 살 수 있다고 자신하는 오소킨... 허나 마법사는 아무리 현재의 기억을 가지고 과거로 돌아가더라도 변화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모든 것은 바뀌지 않고 똑같은 인생이 반복될 뿐이라며 그에게 말한다.

 

순간 이동을 한 오소킨 허나 그는 과거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만 그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져 간다. 조금 차이가 있지만 여전히 예전과 같은 결과만을 만들어내는 실수를 반복하며 또 다시 마법사를 그 모습 그대로 찾아간다.

 

인생이란 게 결국에는 본인의 의지가 가장 중요하다. 미래를 바꾸려면 현재 내가 가진 모습에 변화를 주어야 한다. 허나 사람들이 가진 품성, 기질은 쉽게 변화지 않는다. 같은 실수를 할 것을 너무나 뻔히 알면서도 교장선생님을 화나게 만들어 학교에서 쫓겨나고, 자신에게 친절한 친척의 호의를 눈 먼 욕망으로 인해 망가뜨리고, 그나마 가진 돈은 놀음으로 잃어버리고, 사랑하는 여인을 잃고 싶지 않다면 그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할 방법을 모색하기 보다는 편하고 쉬운 방법으로 자신의 처량한 모습을 마법사에게 한탄하며 시간을 돌리고 싶어 하는 오소킨의 모습에서 어쩌면 우리의 아니 나의 모습을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학창시절로 돌아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지만 막상 학창시절로 돌아가면 대입을 두고 극심하게 받았던 스트레스를 잘 이겨내고 공부에 매진할지 나 자신조차 장담할 수 없다. 인생이란 것은 과거를 바꿀 수 없기에 현재의 변화를 통해 미래를 바꾸어야 한다. 늘 알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까먹거나 외면하는 진실이 결국 정답이다.

 

이반 오소킨의 인생 여행은 나 역시도 인상 깊게 보았던 앤디 맥도웰의 영화 '사랑의 블랙홀'에 영감을 주었다고 한다. 지금은 기억조차 희미해진 영화 스토리를 떠올리며 다시 이 영화를 찾아서 보고 싶어진다. 지난 시간을 떠올려 행복한 기억도 있지만 잊고 싶은 시간도 많을 것이다. 너무나 고통스런 인생을 잊어버리고자 어둠의 지배자와 거래를 한 루디 레볼빈이라는 남자도 또 다시 힘들고 고통스런 삶이 반복될 거란 생각을 못 했을 것이다. 같은 사람은 같은 실수를 하며 어처구니없게도 또다시 고통스럽고 비극적인 인생을 반복하고 말았다는 옮긴이의 글에 담겨진 이야기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지금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방법은 단 하나 현재를 충실하게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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