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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인간 - 일러스트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호세 무뇨스 그림 / 미메시스 / 2014년 10월
평점 :
절판
20세기 프랑스 문학을 대표하는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인 알베르 카뮈... 저자에 대해서야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카뮈가 세상을 떠난 지 30여년 만에 빛을 본 그의 유작 '최초의 인간'... 진화론에 입각한 최초의 인간이 아닐 거란 생각이 들기에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해 보게 된다. 카뮈가 말하고 있는 최초의 인간의 인간은 책의 뒷부분에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과 그 어떤 것도 물러 받을 것이 하나도 없는 너무나 가난한 사람들 모두를 가리키는 말이라고...
이야기는 여행자들을 태운 포장마차가 돌투성이의 길을 아슬아슬하게 달려가면서 시작한다. 비까지 내리니 얼마 안 남은 갈 길이 자꾸만 멀게 만 느껴진다. 트렁크들 속에 있는 어린 사내아이와 엄마... 이들을 바라보는 젊은 아버지의 마음은 애가 탄다. 겨우 목적지에 도착하고 아내는 곧 출산할 듯 보인다. 남편은 급하게 의사를 찾아 아내에게 돌아왔지만 아내는 무사히 둘째를 낳았다.
한 남자가 알제리에 살고 있는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아버지의 무덤을 찾는다. 그는 주인공 자크 코르므로... 40년 전 기적 같은 날에 태어난 남자아이가 그다. 생후 일 년만에 전쟁터에서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한 특별한 감정이 없던 그는 묘비에 적힌 아버지의 짧은 인생을 충격으로 다가온다. 현재 자신보다 더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한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다. 오랜 지인이자 친구를 만나 자신이 아버지에 대해 알고 싶다는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친구의 격려를 받으며 가족, 자신의 지난 시간을 회상한다.
자크는 오랜 시간이 흐르고 다시 만난 어머니를 통해 듣게 되는 아버지의 정의로움을 알게 된다. 아무리 전쟁 중이고, 적이라고 해도 할 행동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행동이 있다. 이 일은 자크의 아버지의 가슴에 커다란 내적 고통으로 자리 잡는다. 자크의 엄마 뤼시를 만나 남편, 아버지로서 나름의 생활에 안정을 찾을 때쯤 징집되고 죽음을 맞는다. 자크와 엄마가 전사 통지와 함께 아버지가 가족에게 보낸 애틋한 마음을 담은 엽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도 밖에서는 낙하산 부대가 투입되며 어지러운 알제리의 현실에 자크는 엄마에게 함께 떠날 것을 권하지만 엄마는 단호하게 거절한다.
자크의 어린 시절은 전쟁의 상처를 갖고 있는 집안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다. 자크는 작은 거짓말도 엄하게 혼내는 할머니에게 육체적인 체벌을 받는다.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장애를 가진 엄마, 반벙어리로 장애를 가지고 있지만 자신을 보며 머리가 좋다며 예뻐하는 삼촌, 결혼을 하지 않고 철도회사에 다니는 삼촌, 엄한 할머니, 형...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가장 급하기에 어른들은 한시도 일을 쉬지 않는다. 집안을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보유한 할머니는 절대군주나 다름없다. 그래서인지 할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많다. 친구랑 놀았지만 숙제를 했다는 거짓말을 한 자크에게 회초리로 때리고, 심부름 시켰다가 주머니에서 빠진 2프랑을 보며 다음날 축구 경기를 생각하며 잃어버렸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단번에 알아채고, 할머니와 영화관에서 무성 영화를 보며 자막을 읽어준 일, 형에게 바이올린을 가르친 일 등등 아껴 살면 그럭저럭 생활이 되었기에 할머니의 매서운 살림살이가 당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TV 드라마에서 본 기억이 있는 6.25사변 이후 우리네 가정 모습과 그리 다르지 않다는 느낌을 준다.
집안에서 행해지는 체벌을 당연하게 여겼기에 학교 선생님이 주는 체벌 역시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크를 특히나 예뻐하시는 선생님도 다른 아이와 차별을 두지 않고 보리사탕이란 이름으로 체벌을 가한다. 요즘 같으면 난리가 나겠지만 시대가 시대인 만큼... 선생님의 도움으로 상급학교에 가게 된 자크... 가정 형편상 직장에 취직하기를 바란 할머니를 설득한 선생님 덕분에 자크는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된다.
자크 역시 또래 소년처럼 소녀를 만나 첫 키스를 경험하고 방학동안 할머니로 인해 거짓말을 하고 직장에 취직했지만 월급 받는 날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사실을 털어 놓는다.
급변하는 시대 상황 속에서 자크를 둘러싼 가족들의 이야기가 힘들지만 그 나름대로 따뜻하게 다가온다. 다른 것보다 아랍인, 아랍계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종종 등장하는데 자크의 탄생에 도움을 준 알제리 여성, 돌투성이 마차를 몰았던 사람도 아랍인, 자크가 친구들과 상점 주인을 놀리다가 상점주인이 고용한 아랍계 사람들로 인해 두 번 다시 같은 행동을 하지 못한 사건 등등 아랍계 사람들의 모습이 거칠고 무섭게 그려진다고 보다 그들 역시도 살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인다.
최초의 인간은 알베르 카뮈가 당시 가장 크게 느끼는 관심사가 무엇인지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 결코 쉽게 읽히는 작품이 아니다. 흑백의 일러스트 역시 무게감이나 표현에서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면이 느껴진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상을 거머쥔 흑백 일러스트의 거장 호세 무뇨스의 작품이지만 평소에 파스텔 톤의 순정만화 같은 느낌의 일러스트를 좋아하던 나로서는 거장의 작품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을 느낀다.
카뮈의 유작 '최초의 인간'을 읽을 수 있었다는 것이 무엇보다 컸던 작품이다. 아직도 고전이 주는 진정한 재미를 온전히 이해하는 면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앞으로 더 많은 거장의 고전을 읽으며 이해의 폭을 넓힐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