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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홍의 황금시대 - 긴 사랑의 여정을 떠나다
추이칭 지음, 정영선 외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너무나 짧은 인생을 살다간 천재작가 샤오홍... 그녀의 인생을 다룬 탕웨이 주연의 영화로 만들어져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었고 곧 개봉을 앞두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다. 탕웨이 주연의 영화란 이름 때문에 알게 된 샤오홍이지만 격변하는 중국의 30년대에 살면서 누구보다 사랑과 글 쓰는 일에 열정적인 한 여인의 처절한 인생과 만나게 된 '샤오홍의 황금시대'... 당시의 규범을 거스르고 오로지 글로서 자신을 대변하며 자유를 갈망한 여인의 모습이 바로 황금시대가 아닐까 싶다.
한 자녀를 지향하고 있는 중국에서는 아직도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다고 한다. 지금도 이런데 30년대의 중국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남아를 선호했다. 그래서인지 샤오홍의 친어머니는 샤오홍의 탄생이 반갑지 않았다. 정도 제대로 주지 않았고 무심으로 그녀를 대한다. 아버지라도 그녀에게 따뜻한 부정을 느끼게 했다면 모르겠지만 아버지 역시 뿌리 깊은 가부장적 생각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 부모님에게는 전혀 사랑을 기대할 수 없는 처지였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들어 온 새엄마 역시 부당한 대우를 한 적은 없지만 사랑 또한 주지 않는다. 어린 샤오홍이 유일하게 사랑을 느낀 사람은 할아버지다.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할아버지와 살면서 그의 곁에서 눈 뜨는 세상이 어린 샤오홍은 마냥 행복하다.
당시 여성들과는 달리 자유연애를 지향하는 샤오홍은 아버지가 점지해 놓은 혼처 자리가 거절하며 가정이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진다. 당연히 반대에 부딪히고 집안에 갇히게 된다. 그녀의 강한 의지와 딱한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고모와 이모의 도움으로 과감히 탈출을 감행한다. 허나 세상은 그녀가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홀몸도 아닌 상태로 아버지가 정해 준 남자와 우연히 마주친다. 이 남자가 싫어 아니 결혼이란 굴레에서 도망쳤는데 장난처럼 그의 도움을 받고 그와 사랑에 빠져 동거를 시작한다. 경제적인 궁핍 앞에 대범해 질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남자 역시 가족의 후원이 떨어지고 자신의 교사 월급으로는 생활이 빠듯하다. 결국 남자 역시 그녀의 인생에서 조용히 자취를 감춘다.
그녀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 중 한 명인 샤오쥔을 만난다. 엄청난 돈의 무게에 여관방 아니 창고에 있어야하는 임산부를 그는 자신만의 기지로 그녀를 구해낸다. 사랑의 유효기간이 있다는 말도 있지만 이들 부부의 관계는 그 모습과는 조금 다르다. 점차 명성을 쌓아가는 아내와 달리 여전히 제자리걸음만을 반복하는 샤오쥔은 점점 더 폭군으로 변해간다. 그에 대한 사랑만을 간직하고 그의 곁에 있기에는 그녀 역시 점차 지쳐간다. 샤오쥔과 다시 만난 샤오홍은 지인들이 모인 자리에서 확실히 자신을 생각을 말하며 그와의 깊은 인연의 고리를 끊어버린다. 오랜 시간 깊은 사랑과 열정을 가진 그와 힘든 시간을 함께 했지만 샤오홍의 글에는 그 어디에도 샤외쥔에 대한 이야기는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자신들의 인생이 창작 작업에 들어나는 것이 보통인데 샤오홍은 어째서 그와의 사연을 단 한 번도 담지 않았는지... 솔직히 그녀가 아니기에 모른다.
누구보다 순수한 마음으로 샤오홍을 사랑한 두안무.. 허나 그는 태생이 허약한 남자라 아픈 샤오홍 곁이 버겁다. 그래서인지 그는 샤오홍이 생과 사를 넘나드는 마지막 44일을 놓치고 만다. 샤오홍의 마지막 시간을 함께 한 사람은 샤오홍을 향한 깊은 동경을 보이는 뤄빈지다. 그 역시 두안무와 같은 연하지만 죽음의 문턱에 서 있는 그녀 곁에서 그녀의 마음에 위로와 힘든 시간을 함께 한다. 허나 정작 샤오홍이 가장 가족의 정을 느끼고 포근하게 여기는 대상은 루쉰이다. 그에게 문학적인 가르침은 물론이고 기댈 수 있는 든든한 남자의 넓은 가슴과 푸근함, 정신적인 깊은 우정까지 함께 나눈 루쉰이야말로 샤오홍이게는 영원의 안식처를 제공해준 단 한 사람이다.
샤오홍은 시대가 원하는 삶을 살기 보다는 자신의 의지대로 인생을 살고 싶은 열정적인 여성이었고 중국 현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다. 마치 한 편의 영화를 보는 듯 생동감 있게 다가오는 '샤오홍의 황금시대'... 그녀의 파란만장한 인생은 우리나라의 격변기를 살았던 뛰어난 여성들의 모습과 겹쳐져 더 진한 감동으로 다가온다.
너무나 뜨거운 열정을 가지고 누구보다 처절하고 고독하며 쓸쓸한 인생을 살다갔지만 그녀가 남긴 주옥같은 작품들은 지금도 최고의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아직 샤오홍의 글을 읽은 적이 없다. 다소 현란한 듯 보이지만 날카로움이 살아 있다는 두안무의 평처럼 나 역시 그녀의 책을 읽으면 어떤 느낌을 받을지 궁금하다. 서른한 살이란 너무나 이른 나이에 떠났지만 100권의 작품을 남긴 샤오홍... 그녀의 작품을 조만간 만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