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만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 - Walkslow's Reply
윤선민 지음, 김홍 그림 / 북스코프(아카넷)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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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백이 많은 책은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매일 같은 일상이 반복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럼에도 어제와 오늘은 분명 다르다. 똑같은 매일 속에서 서서히 지쳐가고 힘들어질 때 그 속에서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당신만 바라보며 천천히 걷는다'는 웍슬로닷컴(walkslow.com)을 찾은 사람들의 고민과 답변, 웍슬로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누군가의 비밀 일기를 들여다보는 것처럼 조심스럽게 읽게 된 책이다.

 

 

그리 싹싹한 딸이 되지 못해서인지 엄마랑 아직까지 한 번도 함께 영화를 본 기억이 없다. 예전에 대학로 공연을 한 번 같이 본 적이 있는데 별로 신통치 않은 반응을 보이시면서 안 좋아하셔서 다음부터 엄마와 함께 둘이서 문화생활을 즐긴다는 것 자체를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헌데 이 글을 보면서 엄마와 함께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이 생긴다. 엄마가 더 늙기 전에 좋은 추억을 더 많이 만들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착하고 좋은 딸은 못 되지만 갈수록 주름살이 늘어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안타깝기에 조만간 영화관으로 엄마와 함께 나들이 갈 생각이다. 책에서는 아버지와 영화를 본 딸의 이야기가 나와 이 모습을 상상 가슴이 따뜻해진다.

 

 

돈이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을 너무나 쉽게 쓰고 듣는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애쓴다. 돈이 많으면 행복 또한 저절로 따라 온다는 생각을 쉽지만 행복이란 것이 돈과는 별개다. 행복하려고 돈을 번다는 이야기가 왜 이리 아프고 쓰라리게 느껴지는 것은 분명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없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버는 것은 의미가 없다. 돈 만을 벌기 위해 애쓰는 시간을 조금 줄이고 내가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들여다보며 조금 천천히 주위를 둘러보아도 괜찮다. 무엇이든 결과로 말하는 것이지만 인생이란 것은 결과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인생은 결국 끊임없는 과정의 연속이며 현재를 즐기지 않으면 나중에 나이 들어 후회할지도 모른다는 말이 내가 한 번씩 뱉어낸 말이기에 살짝 웃음이 났다.

 

 

인생은 선택의 결과다. 내가 현재 어떤 선택을 했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이 달라진다. 알면서도 쉽게 고치기 힘든 게 사람의 습관이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즐거움을 포기하지 못해 귀중한 시간을 그냥 버리는 경우가 있다. 그럼에도 현재의 즐거움은 접어둔 채 미래를 위한 시간만을 보내는 것 역시 현명한 선택은 아니다. 현재 내가 누릴 수 있는 즐거움과 미래에 누려야 할 즐거움을 구분할 줄 아는 법이 진짜 어렵다는 말에 저절로 공감이 간다.  

 

나의 소원 중 하나가 멋지게 나이 드는 것이다. 노세 노세 젊어서 놀자는 말이 있지만 멋진 인생이란 결국 나이를 먹어가면서 보이는 면이 많다. 돈이 많고, 명예, 권력이 있고 없고의 문제가 아니다. 진짜 멋진 인생은 주위를 돌아보고, 나와 다른 사람들의 모습에 마음 아파하고 기꺼이 그들과 함께하려는 마음이 있는 삶을 살았느냐에 따라 멋진 나이 듦이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요즘 들어 자주하게 된다. 현재의 시간, 현재의 모습에 감사하고 배려와 나눔을 실천하는 마음을 가지고 멋지게 늙고 싶다. 

 

총 열개의 키워드를 통해 풀어낸 짧은 글속에 담겨진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공감을 일으키지 않은 것들이 없다. 수시로 내가 생각하고, 느끼던 것들이지만 사는 것에 바빠 제대로 들여다 볼 시간을 미처 갖지 못한 이야기라 더욱 깊은 인상을 남긴다.

 

나이가 많다고

어른이 아니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일관성의 문제다


말과 행동이, 저번의 말과 이번의 행동이,

그리고 이전의 삶과 이후의 삶이 일관성을 보이기 시작할 때,

그때 비로소 어른스럽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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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사 - 우리 역사 속 특급비밀37
박지은 지음 / 앨피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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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숨은 이야기를 안다는 것은 쏠쏠한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은 물론이고 기존의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우리 역사가 가진 특급 비밀 37가지를 알려주는 '한국 유사' 안에는 총 37편 이야기를 시대별 구성을 보면 삼국시대 21편, 고려 6편, 조선 11편으로 되어 있다. 조선이 가장 많을 줄 알았는데 삼국시대가 조선의 거의 두 배에 해당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호기심을 자극한다.


제목을 '한국 유사'라고 지은 이유를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역사를 몇몇 정사 속에 박제된 역사로서가 아니라 이 땅에서 시제로 일어난 일들로 보여 주고 싶어서이다. 그처럼 거창하지 않고 소소하게 재미난 일들이 모여 역사가 되었다.


장희빈, 장녹수 하면 악녀로, 어우동 하면 신분을 넘어 성을 추구한 대담한 여성으로, 최고의 권력을 손에 쥐고 천하를 호령한 기황후, 미실, 선화공주 등등 우리나라의 빼놓을 수 없는 여인들이 있다. 특히나 한국사의 10대 미인으로 꼽히는 여인들의 하나같이 빼어난 미모를 가진 여인들이지만 단연코 최고의 미모를 가진 여인으로는 조금 생소한 관나부인이다. 관나부인으로 인해 서해 바다가 동해보다 조금 짠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왕의 눈에 들었다고 평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할 수 없는 게 우리네 궁궐이다. 왕비로 인해 생명에 위험을 느낀 관나부인이 선택한 방법이 어쩔 수 없었다지만 그로인해 바다에 빠져 죽게 된다.


드라마를 좋아하지 않지만 유일하게 챙겨서 보는 드라마가 한 편 있다. '미생'이다. 직장인의 애환을 너무나 잘 나타난 드라마에 빠져 다시보기를 통해 처음부터 볼 정도다. 내 옆지기의 무거운 어깨의 버거움을 이해하게 만든 드라마지만 한국 유사를 읽으며 유달리 미생 속 한 장면이 떠오른다. 괴짜 아니 이런 선배가 있다면 회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후배에게 일 시키는 것은 물론이고 공을 가로채는 것에 한석율이 분개하며 대응하려는 생각을 장그래, 안영이, 장백기에게 말하는데 장그래가 우선 기다려야 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힘이 없을 때는 기다리는 것이 우선되는 것이 당연하다. 아버지, 삼촌의 복수를 위해 해서는 안 되는 전쟁을 시작하고 패하는 백제의 아신왕... 다른 사람의 눈에는 시작하면 안 되는 상황인데도 본인만이 그것을 모른다니... 8전 8패의 불굴의 패배왕이란 그의 타이틀이 주는 안타깝다. 더불어 바둑 때문에 국력을 한 없이 약화시킨 개로왕은 아신왕과 달리 한심한 왕으로 느껴진다.

 

충렬왕, 충선왕, 충혜왕에 걸친 이야기는 원나라의 간섭과 정비, 같은 여인을 품 안에 품는 것으로 현실 도피를 했던 두 왕은 물론이고 좋은 쪽이 아닌 나쁜 쪽으로만 머리가 발달한 충혜왕의 30살의 죽음은 누구도 애통해 하지 않는다. 지금도 그렇지만 여전히 자신의 팔자가 어떨지 궁금한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인지 새해가 되면 운수점을 보는 사람들이 있다. 조선의 9대 임금 성종은 평소에 호기심이 많아 자신과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의 삶이 궁금해진다. 자신과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은 빼어난 미모의 여인으로 그녀의 인생 스토리는 자신과 너무나 닮아 있으며 스무 살도 되지 않았지만 많은 남자들을 거느리며 신분과 성별은 달라도 여전히 비슷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 어느 TV 프로그램인지 몰라도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이 나온 이야기를 본 기억이 있다. 인구가 늘어나서인지 같은 사주를 가진 사람들도 꽤 되는 걸로 알고 있다. 허나 그들의 삶은 다 달랐던 걸로 기억한다. 같은 날, 시에 태어났다고 같은 운명을 갖는다는 것이 진짜 맞을지... 성종이 죽으며 그녀는 어떻게 되었을지 나 역시도 궁금해진다.


매일을 크고 작은 일들이 모여 만들어지는 것이 역사다. 역사하면 거창하고 큰 이슈와 변화를 가진 사건들만을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이 익숙하지만 우리가 모르는 역사의 숨은 소소한 이야기들이 가진 재미를 새삼 느끼게 된다. 

역사하면 무직하게 다가오는 면이 많지만 이 책은 쉽고 재밌게 역사를 느끼게 해준다. 앞으로 더 많은 역사 속 숨은 이야기들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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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 일제 강점기에서 한국전쟁까지, 아무도 말하지 않았던 그날의 이야기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 1
임기상 지음 / 인문서원 / 201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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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라는 것이 아무리 승자에 의해서 쓰이는 것이라지만 이토록 많은 역사가 왜곡되어 후세들에게 알려진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이다. 올바른 역사를 재정립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는 많은 분들이 계시지만 여전히 우리 역사학계는 친일파와 그들의 후손들에 의해 여전히 많은 부분 영향을 받고 있다. 하루아침에 변화가 일어날 거란 생각은 하지 않지만 우리의 왜곡되고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을 계속하고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숨어 있는 한국 현대사'의 저자는 기자로 활동하고 있는 분이다. 많이 숨겨졌거나 왜곡된 우리나라의 현대사를 올바르게 인식할 수 있도록 노력을 기울였다는 생각이 든다. 책에는 내가 알고 있는 역사적 사실은 거의 없다. 알고 있었다고 해도 책에 쓰인 것과는 다른 방향으로 알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이렇게나 다르다니... 내가 몰랐던 역사적 인물들의 굴곡지고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와 같은 삶을 알게 되어 뜻 깊은 시간이다.  역사란 것이 이 정도로 왜곡되어 알려져도 좋은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될 수 있으면 잊고 싶고 말하기 싫은 일제강점기.. 나 역시도 일제강점기 이야기는 될 수 있으면 들여다보고 싶지 않다. 우리나라의 이렇게나 아프고 치욕스런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지만 될 수 있으면 이야기를 하지 않고 외면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러나 외면한다고 역사에서 지우고 싶다고 있었던 일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더 똑똑히 제대로 아는 것이 중요하며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왜곡된 역사가 아닌 사실적이고 확고한 역사인식을 심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매국노 이완용의 비서인 이인직이 혈의 누의 작가라니...학교에서는 최초의 신소설을 쓴 인물로만 알려준다. 나라를 팔아먹고 얻는 대가에 더 궁금했던 그들... 이인직의 '혈의 누'를 자주 독립, 신교육 사상을 담은 신소설이라고 교육시킨 바탕에는 조선편수회 출신의 친일사학자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여자의 몸으로 독립운동에 앞장선 남자현 의사... 손가락 두 마디를 자른 이야기에서는 솔직히 그녀의 강한 의지와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일본인이야 말할 것도 없지만 미대사관 직원인 그레고리 핸더슨과 그의 부인은 우리나라의 많은 보물을 수집하고 빼돌린 그야말로 도둑이다. 이승만, 박정희 정권과 밀접한 관계를 맺은 그는 외교관이란 신분을 이용해 우리나라의 문화재들을 빼돌리고 자신들의 이름을 내건 전시회를 열어 이를 기회로 도둑질해 간 문화재를 팔려는 시도를 했다. 우리나라의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착각할 정도로 하버드 대학에 많은 문화재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나 안타까우며 우리 정부가 좀 더 노력을 기울여 문화재를 찾아오려는 노력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김구 선생님의 죽음과 관련해 이승만 대통령이 관련되어 있다는 이야기는 알고 있다. 이승만이 주도하고 군부가 행동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가장 유력하다. 백범 김구 선생님의 죽음을 주도한 인물 중 한 명이 친일파 경찰인 전봉덕이며 독일에 우리 문학을 소개한 전혜린 작가의 아버지다. 나 역시도 전혜린 씨의 책을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다. 그녀의 짧은 죽음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죽으면서도 절대로 아버지의 친일 행동에 대한 죄의식, 반성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 놀랍다. 백범 김구 선생님을 죽인 안두희는 친일 경찰의 보호 아래 짧은 형기를 마치고 나왔지만 그를 응징하려는 사람들에 의해 네 번째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 죽는다. 그의 죽음에 앞서 김구 선생님의 살해와 관련된 진실을 밝혀내지 못하고 땅에 묻힌 것이 무엇보다 안타깝다. 김구 선생님의 죽음과 관련해 우리나라의 문화재를 밀반출해간 도둑인 그레고리 핸더슨의 이야기가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인적으로 조선시대 임금 중 가장 싫어하는 임금으로 인조와 선조가 있다. 듣고 싶은 말만 듣고 안이하게 대처한 것보다 한양, 백성을 버리고 살겠다고 떠난 무능한 임금이다. 선조보다 못한 인물이 이승만 대통령이지만 아직도 나이 많으신 어르신들의 기억에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향수가 있음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국회, 미국조차도 모르게 혼자서 살겠다고 도망친 이승만 대통령... 대통령이 떠나자 국회의원들 역시 백성들에게 한 마디 말도 없이 서둘러 짊을 꾸리고 떠난다. 무엇보다 국민을 상대로 거짓방송을 하고 끝까지 자신의 잘못을 국민에게 사과할 생각을 하지 않은 행동은 비난을 넘어서 더 심한 욕을 들어도 싸다는 생각이 든다.

 

인천에 가면 있는 맥아더 장군의 동상이 이제는 별로 반갑지 않다. 그 역시 미국에 이익이 되는 행동만을 한다. 미국의 이익과 맞아 떨어지는 일본을 선택하지 않고 우리나라를 선택했다면 일본이 반으로 나누는 일이 생겼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  시대와 상항이 다르지만 맥아더와 반대로 우리나라.. 조선을 사랑하는 일본의 문화재 약탈을 막은 어니스트 베델, 헐버트의 노력이 새삼 감사하게 다가온다. 이외에도 숨겨진 우리의 현대사 이야기는 가슴 아픈 역사라 아프고 슬프게 다가온다. 모르는 게 약이 아니고 아는 게 힘이란 생각이 든다. 친일파가 주도하는 역사가 아직도 많지만 올바른 역사를 배우고 알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잘못된 역사를 바로 잡으려는 노력 역시 게을리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새삼 든다. 책을 통해 우리 역사 속에서 드라마틱한 에피소드와 파란만장한 인물들의 인생을 알게 된다. 숨은 역사속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우리의 현대사를 생각해 보며 현재 우리의 모습, 앞으로의 방향을 생각해본다. 깊이 있는 역사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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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겹으로 만나다 - 왜 쓰는가
한국작가회의 40주년 기념 행사준비위원회 엮음 / 삼인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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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이 메말라 가는지 예전처럼 시가 가슴속으로 온전히 다가오지 않는다. 사춘기 시절에는 한창 열심히 시집을 읽었고 시를 베껴 쓰는 일에도 나름 열심이었는지 왜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가슴마저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닌지 한 번씩 돌아보게 된다. 그래서인지 시집이 나오면 우선 관심이 간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정호승 시인이나 문정희 시인 등..관심이 가는 분들의 시는 물론이고 소설, 평론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세 겹으로 만나다; 왜 쓰는가' 제목이 주는 느낌이 지금 계절과 참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든다.

 

세 겹으로 만나다; 왜 쓰는가에는 무려 60명이나 되는 우리시대 대표 시인의 작품이 담겨져 있다. 여기에 비평가가 "왜 쓰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소설가 분들의 답변을 담고 있다. 시야 눈으로 읽으며 가슴으로 음매하며 나의 감정을 공유할 수 있지만 왜 쓰는가에 대한 이야기는 솔직히 쉽게 느껴지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그럼에도 읽을수록 글이 감칠맛이 느껴지는 글이 있고 마냥 어려운 글도 있지만 그 속에서 글을 쓰는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는 것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수선화에게

         

울지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고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러퍼진다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1998년 열림원에 실린 정호승 시인님의 시다.   -p59-

 

이 시 예전부터 많이 좋아해서 일기장에서 써 놓고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썼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 때는 진짜 외로움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면서도 외로움이란 단어가 주는 감정에 내 마음을 대신하며 읽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다보니 외로움이란 단어가 주는 가슴 절절히 저며 오는 감정에 쉽게 읽지 못하는 시가 되어 버렸다.

 

어느 장르를 막론하고 예술을 하는 사람들의 고통은 크다고 알고 있다. 특히나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고통은 아이를 낳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그 만큼의 고통을 수반하고 나온 글들을 우리는 만나고 있다. 글을 쓴다는 것, 글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 그 글을 쓰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는 그래서 더 진하게 다가오는 것이리라.

 

내가 아는 분들도 계시지만 생소하게 다가오는 이름들도 보인다. 그만큼 시와 얼마나 떨어져 있었는지 새삼 느끼게 된다. 앞으로 더 자주 시와 함께하는 시간을 만들려는 노력을 할 생각이다. 좋은 글과 함께 한 의미 있는 시간이 된 '세 겹으로 만나다; 왜 쓰는가'... 다양한 문인들을 만날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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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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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참 많은 이벤트 날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인 빼빼로 데이... 나의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라 종종 한 번씩 살 때가 있다. 박생강 작가의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란 제목을 보며 설마 과자 빼빼로는 아니겠지? 생각을 했는데 웬걸 맞다.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은데.... 뾰족한 물건에 예민한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빼빼로 과자가 가진 엄청난 힘... 생각할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심리 상담사 민형기는 오늘도 알약들의 환청에 시달린다. 무슨 심리 상담사가 이러나 싶지만 그는 오히려 알약들이 주는 긴장감이 기분 좋다. 그 앞에 스무 살의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한나리가 상담실 문을 두드리며 고민을 청하러 왔다. 그녀의 고민이 아닌 그녀의 서른아홉 살 먹은 이혼남인 남자친구의 고민 상담이다. 남자친구는 빼빼로 과자에 심한 공포심을 가진 빼빼로포비아다. 그녀는 남들처럼 11월 11일에 빼빼로를 선물하며 보통의 연인들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남자친구가 가진 빼빼로 공포증으로 인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고민을 토로한다. 민형기를 상상 속으로 잡아 끈 한나리가 다시 찾아오며 그는 한나리가 가진 남자친구 이야기 속 허점을 짚어낸다. 헌데 한나리의 남자친구이며 그녀가 일하는 카페의 주인인 빼빼로포비아로부터 연락이 오고 그를 만나러 가는데...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에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함께 들어 있다. 처음에 몰입하게 만든 부분은 사실 가상의 세계다. 빼빼로포비아가 주인인 카페 '스윗스틱'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아르바이트생 김만철이 만들어내는 소설 속 가상의 세상과 글을 쓰는 김만철이 있는 현실 속 세상이 함께 있기에 스토리에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재미를 떠나 헷갈리기 쉽다. 솔직히 나중에는 카페 주인, 그의 푸들을 비롯한 이야기에 황당함을 느끼며 살짝 헛웃음이 나는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묘한 재미와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을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p145-146-

 

인간의 모습을 빼빼로와 비교하여 풀어놓았다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읽을수록 우리의 모습과 빼빼로의 모습이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자꾸만 되짚어 읽어 보게 된다.

 

소설이란 게 결코 자신의 주변과 관련된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 김만철 역시 자신의 주변과 관련된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그들을 자신의 이야기에 적극 활용한다. 너무나 흔하게 보는 빼빼로 과자를 둘러싼 이야기는 기존의 생각지도 못한 형식을 빌려 풀어 놓았기에 황당하고, 가볍지만 복잡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재미를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묘미를 품고 있다.

 

친구, 이제 분노할 필요가 있다.

친구, 나는 변태한다.

친구, 나를 따라 변태하길 바란다.

 

인간입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어쩌면 푸들 아닙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두 발로 걷는 것에만 만족합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굴욕적인 사랑에도 만족합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배만 부르다면 과거 따위는 잊습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자신의 힘을 두려워합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혹시 푸들 아닌가요?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정말 인간 맞습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친구, 인간 이후의 인간이 될 생각이 있나요?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p206, 207-

 

음모론 보다 더 음모론 같고 상상력의 나래를 활짝 펴치게 만드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이란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지만 이 책으로 그의 이름은 확실히 각인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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