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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 지음 / 열린책들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세상에는 참 많은 이벤트 날들이 있다. 그 중의 하나인 빼빼로 데이... 나의 아들이 좋아하는 과자라 종종 한 번씩 살 때가 있다. 박생강 작가의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란 제목을 보며 설마 과자 빼빼로는 아니겠지? 생각을 했는데 웬걸 맞다. 제목부터 심상치가 않은데.... 뾰족한 물건에 예민한 사람이 있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빼빼로 과자가 가진 엄청난 힘... 생각할수록 묘한 매력이 느껴지는 이야기다.
심리 상담사 민형기는 오늘도 알약들의 환청에 시달린다. 무슨 심리 상담사가 이러나 싶지만 그는 오히려 알약들이 주는 긴장감이 기분 좋다. 그 앞에 스무 살의 독특한 매력을 풍기는 한나리가 상담실 문을 두드리며 고민을 청하러 왔다. 그녀의 고민이 아닌 그녀의 서른아홉 살 먹은 이혼남인 남자친구의 고민 상담이다. 남자친구는 빼빼로 과자에 심한 공포심을 가진 빼빼로포비아다. 그녀는 남들처럼 11월 11일에 빼빼로를 선물하며 보통의 연인들과 같은 모습을 연출하고 싶은 마음이 있는데 남자친구가 가진 빼빼로 공포증으로 인해 생각도 할 수 없다는 고민을 토로한다. 민형기를 상상 속으로 잡아 끈 한나리가 다시 찾아오며 그는 한나리가 가진 남자친구 이야기 속 허점을 짚어낸다. 헌데 한나리의 남자친구이며 그녀가 일하는 카페의 주인인 빼빼로포비아로부터 연락이 오고 그를 만나러 가는데...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에는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함께 들어 있다. 처음에 몰입하게 만든 부분은 사실 가상의 세계다. 빼빼로포비아가 주인인 카페 '스윗스틱'에서 소설가를 꿈꾸는 아르바이트생 김만철이 만들어내는 소설 속 가상의 세상과 글을 쓰는 김만철이 있는 현실 속 세상이 함께 있기에 스토리에 집중하지 않으면 이야기의 재미를 떠나 헷갈리기 쉽다. 솔직히 나중에는 카페 주인, 그의 푸들을 비롯한 이야기에 황당함을 느끼며 살짝 헛웃음이 나는 면이 있지만 그럼에도 묘한 재미와 매력이 느껴지는 책이다.
이 시대의 인간은 어쩌면 빼빼로 피플이네. 인간은 태어나기를 딱딱하고 맛없는 존재로 태어났지. 하지만 거기에 자신의 개성이란 달콤한 초콜릿을 묻히지. 타인을 유혹할 수 있는 존재로 특별해지기 위해. 하지만 그 개성의 비율 역시 언제나 적당한 비율, 손에 개똥 같은 초코가 묻어나 불쾌감을 주지 않는 적정선을 비율로 필요하네. 그게 넘어가면 괴짜라거나 변태 취급을 받기 쉽지. 그렇게 이 시대의 인간은 모두 독특한 개성을 추구하는 양 착각하지만 실은 모두 똑같은 봉지 안에 든, 더 나아가, 똑같은 박스 안에 포장돼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초코 과자 빼빼로와 비슷하다네. -p145-146-
인간의 모습을 빼빼로와 비교하여 풀어놓았다는 것부터 예사롭지 않다. 읽을수록 우리의 모습과 빼빼로의 모습이 닮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며 자꾸만 되짚어 읽어 보게 된다.
소설이란 게 결코 자신의 주변과 관련된 이야기를 쓸 수밖에 없다. 김만철 역시 자신의 주변과 관련된 사람들을 등장시키며 그들을 자신의 이야기에 적극 활용한다. 너무나 흔하게 보는 빼빼로 과자를 둘러싼 이야기는 기존의 생각지도 못한 형식을 빌려 풀어 놓았기에 황당하고, 가볍지만 복잡하고, 집중하지 않으면 재미를 쉽게 발견할 수 없는 묘미를 품고 있다.
친구, 이제 분노할 필요가 있다.
친구, 나는 변태한다.
친구, 나를 따라 변태하길 바란다.
인간입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어쩌면 푸들 아닙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두 발로 걷는 것에만 만족합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습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굴욕적인 사랑에도 만족합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배만 부르다면 과거 따위는 잊습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자신의 힘을 두려워합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혹시 푸들 아닌가요?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정말 인간 맞습니까?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친구, 인간 이후의 인간이 될 생각이 있나요? 예, 아니요로 대답하십시오. -p206, 207-
음모론 보다 더 음모론 같고 상상력의 나래를 활짝 펴치게 만드는 '나는 빼빼로가 두려워' 박생강이란 저자의 이름이 생소하지만 이 책으로 그의 이름은 확실히 각인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