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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
헤르만 헤세 지음, 안인희 엮음.옮김 / 김영사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위대한 문인들은 대부분 책을 너무나 사랑한다. 대문호들 중에서도 현재를 살고 있는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열렬한 사랑을 받고 있는 작가 헤르만 헤세... 그에게 노벨문학상을 안겨준 유리알 유희는 물론이고 데미안, 지와 사랑, 수레바퀴 아래서, 싯다르타 등을 비롯한 소설, 시집, 독서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책들이 나와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시대가 변해도 독자들의 가슴에 감동을 전해주는 헤르만 헤세의 신작이 도서출판 김영사에서 새로 나왔다.
'우리가 사랑한 헤.세. 헤세가 사랑한 책.들.'은 헤세가 책들을 읽고 쓴 3천여 편의 엄청난 서평 중에서 73편만을 골라 담아낸 책이다. 솔직히 많이 놀랐다. 헤르만 헤세의 책을 몇 권 읽은 것으로 내가 이 위대한 작가를 안다고 말할 수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헤세의 몇 작품을 읽고서 그에 대한 느낌을 가지고 있다가 동서양을 넘나드는 다양한 책 읽기와 그에 대한 생각을 보면서 새삼 얼핏 알려진 헤르만 헤세의 단편적인 이야기만을 저자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책을 통해 헤세의 폭넓은 독서와 깊은 생각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은 시대를 향한 목소리를 내야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헤세는 1차 세계 대전 당시 스위스에 있었기에 직접적으로 접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정치적 모습을 보여준다. 친구의 유언을 따르지 않았기에 우리가 만날 수 있는 프란츠 카프카의 책들, 저자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익명으로 내었지만 결국 본인이 쓴 것이 알려지면서 젊은 작가에게 주는 폰타네 상을 반납하는 일을 겪는다. 환상적인 여행소설의 대명사인 로빈슨 크루소와 걸리버 여행기.. 허나 걸리버 여행기는 처음에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의 이름이 익명으로 나오면서 사람들의 손을 타서 삭제와 첨가되는 방식으로 본래 가진 원작의 형식과 구성이 사라지고 만다. 전 세계 사람들이 어릴 적에 한 번 이상은 다 읽었을 걸리버 여행기의 처음 이야기는 무엇일지... 저자 조너선 스위프트의 삶을 간략하게 소개하며 예리하고 감성적이며 천재적인, 그러면서 삶에는 허약한 남자, 한 사상가의 고백이 바로 '걸리버 여행기'라고 헤세는 밝히고 있다. 낯선 작가인 피오나 매클리우드의 '바람과 파도'는 켈트신화와 전설을 안고 사는 게일민족의 삶을 이야기한 책으로 현재 영국 문화의 풍성한 정보의 기반이 된다. 개인적으로 너무나 사랑하는 판타지 소설 J. R. R. 톨킨의 '반지의 제왕'과 가난한 싱글맘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부유한 작가가 된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 시리즈에서도 켈트 전설을 만날 수 있다. 이외에도 다양한 작품들에 대한 이야기는 헤세가 얼마나 많은 책을 읽고 책에 깊이 빠져들었는지 글을 통해 만날 수 있다.
'유럽의 몰락' 전체가 '오직' 내적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 오직 한 세대의 영혼 안에서만, 그냥 낡아빠진 상징들의 의미 전환으로만, 영적인 가치의 뒤집어짐으로만 이루어진다는 것도 가능한 일이다. 유럽 문화 최초의 빛나는 발현인 고대도 네로나 스파르타쿠스나 게르만족 때문에 몰락한 것이 아니라 저 아시아에서 오는 생각의 씨앗, 이미 오래전부터 있었던 단순하고 낡고 소박한 생각이 예수의 가르침이라는 형태<기독교>를 취하면서 그로 인해 몰락했던 것이다. -p092-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 씨네 형제들'은 학창시절에 읽은 기억이 있다. 19세기 후반의 러시아의 작은 도시를 무대로 20여 년 만에 돌아온 아들들을 통해 인간의 마음속에 감추어진 욕망, 사랑, 삶과 죽음, 종교 등을 흥미롭게 읽은 기억이 있는데 헤세는 위대한 고전이라고 불리는 작품을 쓴 도스토옙스키를 작가가 아닌 비밀스럽고 병든, 신적인 능력을 지녔기에 도스토옙스키를 예언가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한다.
이것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책 중 하나이다. 그림 동화처럼 천진하고 자명하며, 중국에서 볼 수 있는 기묘한 종류의 삽화들과 청동상들처럼 환상적이다. -p331-
유감스럽게도 나는 중국에는 가보지 못했다. 다만 인도변방과 말레이 군도의 중국 도시들에서 경이로운 시간을 경험했고, 궤도를 벗어난 자연민족들과 문명화된 유럽의 약탈자들 사이에서 중국인들이 조용하고 아름답게, 부지런하고 명랑하게, 취향을 지니고 세련되게 살아가던 모습을 절대로 잊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얼굴에서 보았던 천진하고 밝게 빛나는 능숙함, 그곳 길거리와 사원에서 수백 번이나 부딪친 고요한 명랑함과 근면한 만족감이 이 섬세한 환상문학에서도 미소를 짓고 있다. 이 작품은 균형을 잡혀 있으면서도 어지러운 풍성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수많은 새와 용, 꽃, 인간, 나무와 구름 등이 끈질긴 자수로 나란히 수놓은 오래된 중국 비탄 양탄자 같다. 우리는 그들이 어떻게 한데 어울려서 고요하고 즐거운 세상을 만들어내는지 알 수가 없다. 우리 서양인들은 그 아름다움을 알아보기는 하지만 설명하거나 흉내 낼 수는 없다. 정말로 섬세하고 우아하기 그지없다! -p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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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혀 비싸지 않은 아름다운 책은 인쇄 상태가 좋고, 중국 목판화 스물세 점을 싣고 있다. 그림은 그토록 강렬하고 훌륭하고 특성에 맞게 텍스트와 조화를 이룬 유럽의 동화책은 없다. -p358-
헤세는 동양의 몇몇 나라를 돌아보고 열정적으로 그에 담은 책을 낼 정도로 그는 동양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 이유는 다양한 동양 작품들을 만나면서 비롯되었다는 생각이 든다. 공자, 노자의 책은 물론이고 '중국의 민속동화', 포송령의 '중국의 유령 이야기, 사랑 이야기'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동화책이라고 언급했을 정도다. 솔직히 헤세의 글을 접하기 전에는 중국의 동화책을 읽은 기억이 있는지 생각해 본 적도 없다. 중국인이 가진 민족성, 소박함, 유령에 대한 믿음 등등 도덕적이고 권위적인 깊숙이 파고든 모습, 가족이 기반이 되어 있으면서도 정치에 지배당한 중국인들의 삶이 동화 속에 잘 묘사되어 있다는 느낌을 준다. 우리나라나 서양의 동화책은 꽤 읽었는데 동양문화권의 동화책은 익숙하지 않은지 생각도 해 본적이 없기에 헤세가 너무나 극찬한 중국의 민속동화와 포송령의 동화책을 한 번 직접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사실 학창시절에 펄 벅의 대지를 시작으로 중국을 다룬 문학작품을 만났지만 이제는 2012년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모옌 작가를 비롯해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접하는 것이 쉬워졌다. 모옌과 같은 작가들뿐만 아니라 아직은 낯선 포송령과 같은 작가들의 동화책에 궁금증을 안겨준다. 이외에도 인도, 이집트의 종교 등에 대한 이야기는 동양의 나라들과 사람들, 그들의 문화, 생활양식 등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는지 느낄 수 있다.
나도 그렇지만 많은 사람들은 책을 읽는 것보다 간단하지만 책에 대한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을 적절히 혼합한 서평쓰기에 어려움을 겪는다. 그런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에 대한 다양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고 나도 서너 권 읽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글쓰기는 어렵다. 평소에 글쓰기에 대해 어려움을 겪는 일반적인 사람에게 대문호의 글쓰기는 폭넓은 책 읽기의 재미를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하다. 책을 읽다보면 역시나 대문호는 다르구나 싶은 글기에 새삼 감탄하게 되고 쉽지 않겠지만 따라쟁이처럼 앞으로의 서평은 요런 식으로 쓰면 조금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뛰어난 문필가로서의 헤세를 만나 책에 대한 깊은 통찰을 들여다 볼 수 있어 즐거운 시간이었으며 내가 알고 있던 작품들도 있지만 생소하고 낯선 작가의 작품도 만났기에 기억해 두었다가 찾아 볼 생각이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은 한 번 읽었다고 덮어지는 게 아니다. 이 책 역시 헤세가 소개한 책을 읽고 나서 다시 찾아서 보게 될 거 같다. 헤르만 헤세가 느낀 것과 같은 느낌을 받지는 못하겠지만 책을 읽으며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을 알게 되는 기쁨을 누려 볼 생각이다. 위대한 대문호 헤세가 사랑한 책들과 함께 한 즐거운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