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철학을 담은 그림 - 지친 당신의 마음속에 걸어놓다
채운 지음 / 청림출판 / 2015년 1월
평점 :
품절
철학이야기하면 이상하게 왜 어렵고 고리타분하게 느껴지는지.. 우리의 삶에 대한 깊은 생각을 이끌어내는 철학적인 물음을 답은 책 '철학을 담은 그림'은 그림을 통해 세상의 잣대와 고정관념, 우리들 마음속에 자리잡은 생각들에 대한 따끔한 일침을 놓는 이야기를 통해 닫혀 있던 내 마음을 펼쳐놓고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보게 돌아보게 한다.
저자가 심사숙고해서 고른 그림을 통해 풀어놓는 이야기는 평범한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들이라 읽다보면 위로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처음에 나온 앤드루 와이어스의 그림의 주인공 크리스티나는 실존 인물로 소아마비로 들판을 기어 저 멀리 보이는 집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 우리는 마음 편히 그림을 보기 힘들다. 크리스티나의 뒷모습 속에 피로에 찌든 우리 자신의 얼굴을 보게 된다고.. 맞다. 우리는 넘쳐나는 정보와 더 나은 조건을 쫓아 맹목적으로 달리기 선수와 같은 삶을 살고 있다. 넘어가기 직전까지 피로에 지쳐 있지만 온전히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우리들... 목표물을 향해 나아가는 중간 힘들면 쉬어도 좋다. 그래야 한다. 당연한데 왜 숨을 고르고 몸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노력이 누구에게나 필요함을 새삼 느낀다.
요즘 카페에 가면 흔히 보는 풍경이 분명 연인 같은 사람들, 친구들 등 함께 하고 싶은 사람들이 만났지만 극히 제한적인 대화 몇 마디만을 나눈 뒤에는 너무나 당연스럽게 핸드폰을 뒤적인다. 대화를 하면서도 핸드폰에서 손을 놓지 못하거나 얼굴도 보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는... 그런 모습들을 보면서 저럴 거면 왜 만날까? 싶은 생각이 드는데 나 역시도 한 번씩 이런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에드워드 호퍼의 <객실>의 책읽는 여성과 그녀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끊임없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시선을 확인하는 요즘 우리의 모습과 닮아 있다. 지금 우리는 자신은 물론이고 타인과의 대화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은 결국에는 자신과의 대화를 모르기 때문이다. 자신을 배려하지 않는 것이 '무례'라는 저자의 글에 충격을 받으며 자신의 감정, 행복에 당당해 질 수 있도록 조금 더 이기적이 되어야 한다는 글에 공감하게 된다.
습관은 무섭습니다. 오로지 하나의 방향만을 고집하기 때문입니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 거기에도 관성의 힘이 강하게 작동합니다. 미워하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더욱 미워하게 되고, 사랑하지 말자 하면서도 계속 집착하게 되는 것처럼요. -p105-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습관에 길들여지는 면이 있습니다. 좋은 습관이 있을 수 없느냐의 질문에 그 자체로 영원히, 절대적으로 좋은 건 없다는 저자의 말이 인상 깊다. 좋은 습관은 결국 나쁜 습관에 제어장치가 되지만 그마저도 습관처럼 굳어지면 집착이 된다고... 무섭다. 우리는 아니 나는 어떤 습관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나쁜 습관은 하는 사람들을 흔히 찾게 되는 것은 어쩌면 나 자신이 가진 나쁜 습관을 다른 사람들이 발견할까봐 두려워서인지... 하나의 고정된 습관에 얽매이지 않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생각하게 된다.
섹스 앤 더 시티에서 보여주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인정받고 싶어하는 욕망이 현실인은 강하다. 나의 행복이 다른 사람들의 판단에 의한 것이 더 크게 작용하는 사회.. 마리솔 에스코바르의 그림 이야기에 저자의 조카, 자신의 현재 사는 방식에 대한 이야기를 통해 저자 채운 씨가 어떤 사람인가 잠시 생각해 보며 백수라고 당당히 말하며 삶이 부럽다는 생각이 살짝 들었다.
인생에서 갈림길을 만나면 그저 갈 수 있을 것 같아 보이는 길을 가면 된다고요. 원래 길이란 없었다고, 걸어가니 길이 되었다고요. 혹 선택ㄱ의 기로에 놓였다고 생각한다면 뒤뷔페의 <풍경>을, 그리고 루쉰의 말을 떠올려보세요. 누구나 결국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게 돼 있습니다. 정말 할 수 없다면, 그때 가서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으면 됩니다. 다만 어떤 길을 가든 마음을 다해야 합니다. -p204-
인생은 선택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우리가 가진 마음은 두 가지 선택 중 하나의 방법을 은연중에 포기하고 있다고... 우연처럼 보이는 현실 속에 우리 자신의 숨은 욕망과 행위가 들어있다고... 맞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크지만 많은 사람들은 죽을힘을 아니 자신이 가진 최선을 다하지 않고 시대가, 상황이 맞지 않다고 무언가를 탓하는 경우가 많다. 나 역시도 그러하다. 목표를 가진 일도 그렇지만 사람 관계도 마찬가지다. 세상에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은 욕망이 크기에 나의 감정을 속이는 일은 너무나 흔하다. 가장 허물없이 지내야 할 가족에게조차도... 모든 것을 들어내고 사는 것이 옳은 방법은 아니지만 하얀 거짓말 보다는 조금 아프지만 진실이 필요할 경우가 있다. 현재의 내 모습은 나의 선택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앞으로의 미래는 지금의 내가 모여서 만들어질 것이다. 최선의 선택이 무엇인지... 일상의 반복적인 습관, 행동, 관계들로 인해 지쳐있는 것은 아닌지... 새삼 고민하게 된다.
저자 채운 씨는 이 책을 쫓기듯 삶을 살고 있는 두려움을 가진 K란 인물에게 건네고 싶은 이야기라고 말한다. 여기에 덧붙여 말한 두 가지 중 하나의 이야기에 유달리 마음이 간다. 바로 저자 자신의 남동생의 아내.. 올케와의 관계 아니 저자의 살갑지 못한 성격 때문에 서먹한 관계를 이어오는 올케에게 자신의 이야기의 일부라도 들려주고 싶었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공감하게 된다. 나 역시도 남동생의 올케와 나름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건 순전히 나의 생각일 수 있다. 다른 집 시누이들은 어떤지 몰라도 우리 세자매는 생일, 명절 때도 크게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살라는 주의다. 나름 올캐를 생각하는 배려의 마음이지만 예사롭지 않은 남동생의 성격을 생각할 때 올케의 삶이 어떠했을지.. 우리의 이기적인 무심함이 올케를 가족과 거리를 두게 한 것은 아닌지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림과 함께 풀어낸 이야기라 쉽고 편안하게 느껴지는 책이다. 장자, 법정스님, 니체, 루쉰 등과 저자가 팬이라고 밝힌 조용필, 미생 이야기 등으로 풀어내는 철학이야기... 잠시 쉬면서 나의 모습을, 내 주변을 돌아보게 만드는 유익한 시간이 될 책이기에 지금 먹고사는 문제를 비롯해 삶에 대한 생각으로 머리가 아픈 여동생에게 추천해주고 싶은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