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의 지구사 - 생명은 어떻게 살아남고 적응하고 진화했는가 오파비니아 25
마이클 J. 벤턴 지음, 김미선 옮김 / 뿌리와이파리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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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멸종은 요즘 참 매력적인 주제입니다. 상업적으로 어필하기 참 어려운 지질학-거시생물학 분야에서 가장 사람들의 눈길을 잡아끌기 때문입니다. 모르긴 몰라도, 이 한 단어가 품은 잠재력만으로 먹고 사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겁니다. "제 6의 대멸종" "인류세의 종말" 같은 캐치프레이즈는 수많은 미디어를 통해 홍보되고 있습니다. 종말의 위협이 시각적으로 다가왔다는 사실에 절망하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셀 수 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이 단어가 지나치게 남발되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적어도 인류의 이 모든 행위의 결과가 많은 생물종을 망각으로 몰아넣고 인류사회를 혼돈으로 몰아넣을 것이라는 점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보나, 사실 대멸종이라는 단어는 그 이상의 존재입니다. 우리가 대멸종이라는 말을 고생물학자들이 말하는 대멸종과 거의 같은 의미로 사용할 때가 온다면, 그 때는 살아 있는 것을 세는 게 죽은 것을 세는 일보다 훨씬 쉬울 테니까요.

그런 의미에서 마이클 J. 벤턴만큼 이 주제에 관하여 논하기 적합한 사람은 이 시대에 없을 것입니다. 그는 거의 평생을 바쳐 지질시대에 따른 화석 기록의 변화를 추적한 과학자이며, <대멸종(오파비니아, 2007)>과 전공서적 <고생물학개론(박학사, 2014)> 외 다수의 책을 저술하는 등 출판서적 분야에서도 뼈가 굵은 거장입니다. 실제로 이 책에 실린 대멸종에 관한 연구 내용 중 다수는 벤턴 본인이 직접 출판한 것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말 그대로 현직자가 쓴 대멸종 안내서인 셈입니다.

대멸종 -Mass Extinction-이라는 표현 자체가 고생물학에서 출발했듯, 처음 이 단어가 탄생했을 때는 우리 시대의 위협 따위는 염두에 두지 않았습니다. 전 세계의 화석 기록을 그러모아 통계표 위에 나타내는 과정에서 가장 눈에 띄이는 다섯 번의 급감을 중요시하기 위해 탄생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5개의 대멸종 외에도 생명체 입장으로는 별반 다를 것 없이 파괴적인 멸종 사건도 여러 번 존재했습니다. 그 중에는 눈덩이 지구처럼 너무 오래되었고 기록이 희미하여 정확히 무엇이 얼마나 사라졌는지 말할 수 없는 사건도 존재하며, 팔레오세-에오세 극열기처럼 분명 멸종사건에 준하는 변화가 일어났으나 생물다양성에 끼친 타격은 상대적으로 적은 사건도 존재합니다. 어느 쪽이든 멸종 사건을 이해하는 데는 Big 5 못잖게 중요하지만 흔히 간과되고는 합니다.

벤턴은 이 책에서 지구 동식물의 역사를 따라 에디아카라기 이전부터 오늘날까지 일어난 커다란 멸종 사건들을 빅 5부터 주목할 만한 멸종사건들까지 놓치지 않고 빼곡하게 다룹니다. 그는 경악스러우리만치 드넓은 본인의 배경지식과 연구 경력을 십분 활용하여 그 모든 사건들을 꼼꼼히 기술하며, 각 사건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추론한 지질학자들의 방법론과 전후 생명체가 타격을 입고 다시 회복하는 과정을 철저히 화석 기록에 입각하여 해석합니다.

상당한 원로과학자다 보니 내용이 시대에 뒤처져 있지는 않을까 했지만 되려 정반대입니다. 지금도 활발하게 연구활동을 이어가고 계시는 덕택인지 타니스 화석지와 같은 상당히 최근의 발견들까지 전부 실려 있으며, 그 정보력이 에디아카라기부터 현대까지 전 방위로 확장되어 있는 까닭에 벤턴이 괜히 거장이 아니구나 느낄 수 있습니다. 농담이 아니고, 지구화학부터 퇴적학과 식물학까지 실에 꿴 구슬묶음마냥 자유자재로 다루는 실력이 코즈믹호러급입니다. 한 명의 학자가 가능한 저술이라고 믿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현대에 와서, 그는 철저히 지구과학자다운 자세를 유지하면서도 인류의 미래에 진지한 우려를 던집니다. 들끓는 인류세 담론(거의 지질학자가 아닌 사람들에 의해 주도되는)에 벤턴은 본인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한 발짝 뒤로 물러서 있으나, "단어에 집중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격변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확실히 쐐기를 박습니다. 캐치프레이즈에 매몰되기 전에, 우리가 현재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메세지라고 생각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그 결론에 동의하고요.

오파비니아 시리즈가 늘 그렇듯 보석 같은 책을 또 하나 한국의 서가에 가져왔다고 총평합니다. 개인적으로 읽은 벤턴의 저술 중에서는 이 책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며, 최신 고생물학을 이해하는 교과서로도 손색이 없습니다. 유소년이나 저연령 청소년에게는 그렇게 친절하지는 않습니다만... 적어도 서가에는 하나 꽃아 두는 것을 추천합니다. 과학에 관심을 가질수록, 이 분야에 더욱 깊게 파고들수록 배울 점이 잔뜩 있는 책이라고 생각하니까요.

덧, 의외로? 멸종사건 전체를 전부 다루지는 않았습니다. Sinsk Event 같은 꽤 굵직한 멸종사건도 서술이 거의 생략되었는데, 책에서 보이는 지식력으로 볼 때 의도치 않게 빠뜨렸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습니다. 선택과 집중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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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 생물 탐험 - 진짜로 지구에 살았던 고생물 신나는 새싹 197
명관도 지음, 백두성 감수 / 씨드북(주) / 202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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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엽충, 양막류, 새(조익류), 코끼리.

이 책의 소재들입니다.

'고생물'은 실제로 매우 폭넓은 주제입니다.

역사 이전에 사라진 생명들과 오늘날의 생물을 낳은 조상들의 서사는 긴 시간에 걸쳐 지금의 생명과 자연을 그려냈습니다.

그 미지를 탐구해 생명의 대서사시를 그려내고자 하는 욕망이야말로 고생물학에 대한 호기심의 원천이 아닐까요.

그러나 우리는 대서사시를 이루는 톱니바퀴들에 대해서 놀랍도록 무지하고 또 무관심합니다.

대부분의 서적은 거대하고 포악한 소위 '카리스마 넘치는 것들'의 신상명세에 집중할 뿐,

사라진 톱니바퀴들과 각자의 역사에 대해서는 도통 눈길을 주지 않습니다.

이 책은 네 부류의 동물들이 지구 역사에 걸쳐 진화해 온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함께 대지와 바다를 공유한 다른 생물들도 소개하고,

오늘날 동물을 토대로 엿볼 수 있는 진화의 증거도 이야기합니다.

삼엽충류, 양막류, 조익류, 장비류.

누구 하나 인기 있는 종류가 아닌 데다 국내에서 이 동물들의 진화 역사를 자세히 다룬 책은 여지껏 없었습니다.

기껏해야 덕후들의 입을 통해 몇 종의 이름이 언급될 뿐이죠.

그러나 <Go! 생물 탐험>은 각 생물 부류에 대한 깊은 애정을 토대로 이 과업을 성공적으로 해냈습니다.

하나하나 읊을 수는 없으니 자세한 소개는 불가하지만 대상 연령의 한계로 인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지 못했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다양한 정보가 풍성하게 담겨 있으며,

지나치게 최근에 갱신된 분야가 아닌 한 제작 시점의 최신 가설을 반영하고자 노력한 흔적이 진하게 엿보입니다.

그동안 어디에서도 볼 수 없던 새로운 고생물/진화 도서라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직접 그린 삽화 역시 작가의 생물에 대한 관심(소위 '덕력')이 진하게 엿보이니,

복원도 하나하나를 그릴 때 어떤 고민과 참고자료가 뒷받침되었을지 생각해 보는 것도 즐거울 것입니다.

물론 완벽한 책은 없듯이, 아쉬운 점이 존재합니다.

개인적인 소감은 이런 것들.

- 라틴어 표기법을 대부분 준수했으나, 일부 표기법과 무관한 학명 표기가 존재합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 같은 표준어는 어쩔 도리가 없다 해도, 만티코'세'라스라든가 '신더하네스' 같은 것들은 이야기가 다르죠.

국내 출판물 가운데 최초로 '둥클레오스테우스'나 '콕소니아' 같은 파격적 표기를 시작한 책임을 감안하면 특히나 아쉽습니다.

- 실제 크기라고 쓰인 삽화 가운데 명백히 책에 쓰인 실제 크기와 차이가 나 보이는 것들이 존재합니다.

보통 표기보다 더 큰데, 출판 과정에서 가시성을 위해 키운 것인지 삽화 제작과정에서 오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이런 경우 아예 '실제 크기' 표기를 빼는 편이 안전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3장의 대멸종 부분, 알끈에 대한 소개는 좋은데 그래서 이것이 조류가 대멸종에서 살아남은 원인과 무슨 연관이 있나요?

결국 왜 살아남았는지는 설명도 없이 넘어갔네요.

-이것은 약간 사족이나, 공룡~조익류 진화를 소개하면서 시조새나 앙키오르니스 등의 쥐라기 종들을 전부 건너뛴 것은 역시 아쉽습니다.

특히나 시조새는 그 복잡한 정체성을 고려하더라도 약간은 비중이 있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

이 정도입니다.

더 많은 동물 이야기가 담긴 후속작이 나오길 바라며 리뷰를 마무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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