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강박 - 행복 과잉 시대에서 잃어버린 진짜 삶을 찾는 법
올리버 버크먼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플레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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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행복은 중도에 있다. 이 소박한 진리를 속세는 숨긴다. 긍정성도 부정성도 행복에 이르는 첩경이 아니다. 다만 오늘날 너무나 지나치게 긍정성을 숭배하는 강박적 이념이 횡행하고 있기에, 부정성은 이를 치유하는 요긴한 해독제일 뿐이다. 나는 '내 사전에 불가능이란 없다'나 '하면 된다'와 같은 낙관주의, 긍정적 사고보다 '항상 최악을 염두하라'나 '메멘토 모리'와 같은 부정적 사고가 행복한 인생의 진짜 도구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물론 지금 여기 현실에 집중하는 데 도움이야 되겠지만 말이다.

대중문화는 현대인들이 행복한 인생에 집착하게 만든다. 행복에 걸린 이해득실이 실타래처럼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행복 산업은 이른바 동기 유발이나 긍정심리학 같은 자기 계발 산업을 뿌리로 한다. 하지만 행복 산업이 발달한 서구 선진국이 가난하고 개발이 더딘 후진국보다 더 행복한 사회인 것은 아니다. 유명한 행복 멘토와 자기계발 프로들은 행복에 이르는 긍정적 사고를 강조했다. 가령 긍정적 시각화와 끌어당기기의 법칙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행복을 언제나 물질적 안정과 미래의 확실성에 연계시켜 왔다. 바꿔 말해서, 불행을 불안정, 불확실함, 실패와 같은 부정적 요소에 연계시켜 왔고, '부정성은 나쁘다, 해롭다'는 통념을 확대 재생산해왔다.

하지만 영국의 논픽션 작가 올리버 버크먼은 이런 통념에 딴지를 건다. 비교나 풍요에서 오는 세속적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실존적 행복에 이르는 다양한 부정적 경로를 강조한다. 가령 스토아철학의 부정적 시각화, 불교의 무자 화두나 마음챙김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행복을 가리키는 대중문화의 나침반이 심각하게 고장난 상태이기에 현대인은 행복하고자 애쓸수록 점점 불행하게 된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역으로 부정적 경로를 취해야 한다. 진정 행복하고자 한다면 불확실성을 즐기고, 불안정을 포용하고, 실패에 익숙해지고, 심지어 늘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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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영화 읽기 - 무성 영화부터 디지털 기술까지
마크 커즌스 지음, 윤용아 옮김 / 북스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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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영화계는 개판이지만 영화 자체는 너무 매력 있는 매체다."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명언이다. 영화판의 갑질과 야만적 관행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니 말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90년대 천재 소리를 듣던 김기덕 감독의 만행을 떠올려 보라. 나는 할리우드 키드의 일원으로, 로렌 바콜의 이 말에 공감이 간다.

영화를 극장의 예술이라고 하지만, '영화다운 영화'를 극장 개봉 영화에 국한시킬 필요는 없다고 본다.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영화를 보라. 내가 그동안 공들여 수집한 DVD 더미가 허탈해진다. 영화팬으로서의 내 첫사랑은 영국 출신의 코미디 배우 찰리 채플린에게서 멈춘다. 나는 X세대인데 성룡과 소피 마르소 이전에 채플린이 먼저였다. 영화 초창기 시절의 대표적인 천재 배우이자 감독인 채플린은 영화를 사랑하는 할리우드 키드들의 영원한 첫사랑일 것이다.

내 '영화 전작주의' 리스트의 시작도 채플린 작품이었다. 1921년 작품 <키드>에서 시작해 <황금광 시대>,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라임 라이트> 등을 섭렵했다. 1920년대 할리우드 코미디 영화는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채플린에 푹 빠져 있던 내가 전혀 주목하지 못했던 또다른 획기적인 영화 흐름들이 있었다. 가령 "스칸디나비아의 자연주의, 프랑스의 인상주의, 독일의 표현주의, 소비에트 연방의 편집, 일본의 정면 촬영 스타일 등"이 그것이다.

역사에서 탄생일은 나름 의미가 있는 법. 영화의 탄생일은 1895년 12월 28일이다. 이 날 세계 영화사에서 인정한 최초의 영화가 파리에서 유료 상영했다. 그중 매우 짧은 다큐멘터리 영화 <열차의 도착>이 시각적 충격으로 관객의 경탄을 자아냈다. 이 최초의 영화를 바로 다음 해에 관람한 아시아인들이 있었다는 사실에 좀 놀랐다. 일본의 오사카, 태국의 방콕, 필리핀의 마닐라 관객들은 이 최초의 영화를 관람할 수 있었다고 한다. 대한제국의 고종도 못 본 영화를 방콕과 마닐라의 평민들이 극장에서 편하게 볼 수 있었다는 게 의외였다. 19세기 말의 태국과 필리핀이 조선보다 훨씬 국제적인 시각과 기술적 안목을 갖추고 있었다는 반증이다. 한편, 특수효과를 사용한 최초의 SF영화는 1902년 <달세계 여행>이다. 역시 영화는 '집단적 꿈의 저장소'란 사실을 실감하게 해주는 고전이다.

영국 북아일랜드의 영화감독, 영화평론가이자 작가인 마크 커즌스는 영화를 삐딱한 시선을 지닌 아웃사이더들의 '국제어'에 비유한다. "영화는 시공간을 뛰어넘으며 몽상가, 소외자, 이상주의자, 절규하는 자, 소심한 자의 국제어다." 그렇다, 영화는 충분히 추하고 불편한 예술이 될 수도 있다.

영화 매체의 문화적 가치를 논할 때 자주 언급되는 사상가 한 명이 떠오른다. 바로 독일의 문예비평가 발터 벤야민이다. 벤야민은 「기술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에서 표현주의 작가 베르펠의 견해를 인용하는데, "영화의 참다운 의미와 가능성은 자연스러운 수단과 탁월한 설득력을 가지고 동화적인 것, 기적적인 것, 초자연적인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그 특유의 능력에 있다."고 했다. 특히 철학적이거나 사회학적 상상력을 구비한 거장 감독은 형식주의, 사실주의, 표현주의, 이상주의 등 영화의 네 가지 상호 배타적인 요소를 한 스크린에 담아낼 수 있다. 가령 앨프리드 히치콕의 영화나 봉준호의 영화를 보면 혁신적인 영화의 요소를 반추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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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글쓰기 : 실전편 - 싸움의 기술 - 박종인의 장르별 필승 글쓰기 특강 기자의 글쓰기
박종인 지음 / 와이즈맵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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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세상의 글쓰기는 두 부류다. 팩트에 기반한 글쓰기와 판타지에 기반한 글쓰기. 영화에 비유하면, 전자는 다큐물, 후자는 SF물이다. 팩트에 기반한 글쓰기의 전범은 기자의 글쓰기다. 기자의 글을 구성하는 기본 요소가 팩트이고, 언론에서 팩트는 가장 신성한 가치다. 한마디로, 저널리즘은 팩트에 기반한 실용적 글쓰기의 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 베테랑 기자 출신의 작가 박종인이 바로 그런 실용적 글쓰기의 꽃, '전쟁 같은 글쓰기'의 핵심과 원칙을 알려준다. "글은 원칙을 알면 누구나 쓸 수 있다. 원칙을 몰라서 못 쓴다." 저자의 오랜 신념이다.

현장에서 30년간 갈고닦은 저자의 글쓰기 원칙은 간단하다. 전작 《기자의 글쓰기: 원칙편》에서 다음 세 가지 철칙을 내세웠다. 첫째, 글은 쉬워야 한다. 둘째, 문장은 짧아야 한다. 셋째, 글은 팩트다. 주장은 팩트, 사실로 포장해야 한다. 좀더 부연하면, 글은 문장으로 주장 또는 팩트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좋은 글은 리듬 있는 문장으로 팩트를 전달한다. 리듬 있는 문장은 입말로 쓴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좋은 글이란 일단 "읽히는 글, 팔리는 글, 목표를 이루는 글"이다.

이번 신작 《기자의 글쓰기: 실전편》은 세상 모든 장르를 꿰뚫는 글쓰기 실전 전략과 예시 사례를 두루 수록했다. 인물에 관한 글, 수필, 기행문, 역사 비평, 칼럼, 인터뷰, 자기소개서까지 총 일곱 장르를 각개격파하는 기술을 전수한다. 여기서 수필을 제외한 모든 예시문과 사진은 저자가 직접 쓰고 찍었다. 수필 장르의 예시문은 김별아 작가의 <삶은 홀수다>와 <비밀> 두 편이다. 그리고 각 장르마다 '전술 요약'과 '실습 과제'가 있다.

장르별 글쓰기 전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인물은 사소한 디테일과 강력한 장면으로, 수필은 복선과 반전으로, 기행문은 영상 같은 장면으로, 역사는 의심하고 검증하는 칼날로, 칼럼은 심장을 찌르는 송곳으로, 자기소개서는 나라는 브랜드로 무장한다.

글쓰기의 보조도구인 AI와 사진을 활용하는 노하우도 알려준다. AI는 글쓰기에 가장 영리한 비서다. 제대로 질문하고 정확하게 요구하면 AI는 초안을 잡고 구조를 짜주고 표현을 정리해 준다. 단, 어설프면 AI는 오발탄을 쏜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했다. 셔터 한 번이 200자 원고지 열 장을 대체한다. 사진은 직관이다. 사진은 때로 글보다 무섭고 더 빠르고 더 설득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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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역 삼국지 - 4050의 시선으로 다시 읽는 삼국지
허우범 지음 / 생능북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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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책과 콩나무 카페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

삼국지 덕후로서 읽지 않을 수 없었다. 4050을 위한 『삼국지』라는 말에 자석처럼 끌렸다. '삼국지의 인물들을 통해 리더십, 인간관계, 처세술, 전략까지 인생의 통찰을 얻는다!'거나 중년이라는 인생의 전환점에 도움이 될 만한 자기계발 테마를 '위기, 성장, 용기, 관계, 지혜' 같은 다섯 가지로 구분하고 있는 점이 매력이다.

삼국지 덕후도 급이 있다. 나는 주로 텍스트를 파고드는 삼류 덕후다. 삼국지는 소설과 정사를 구분해야 하고, 연의의 뻥과 판타지, 교묘한 각색을 해부해 역사적 사실을 추리는 작업을 게을리하면 안 되는데, 나는 여전히 소설에 대한 관심이 정사보다 앞선다. 삼국지와 관련된 드라마와 영화도 그닥 챙겨보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저자인 허우범 선생은 다르다. 삼국지 현장 답사까지 마치고 연구서를 펴낸 일류 덕후라고 할 수 있다.

소설 『삼국지연의』를 펼치면 나오는 법칙이 있다. 바로 열역학 제2법칙이다. 소설의 첫 구절 "천하대세, 분구필합, 합구필분"과 맨 마지막 구절 "천하대세, 합구필분, 분구필합"은, 모두 흥망성쇠의 역사법칙을 강조한다. 사람에게 생로병사가 있고, 사물에게 성주괴공이 있다면, 역사는 일치일란(한 번 다스려지면, 한 번 혼란해진다)의 법칙이 있다.

주역의 논리도 빠질 수 없다. 격변의 시대를 이끄는 세 영웅을 천지인 '삼재'로 파악한 점이 그러하다. 가령 제갈량이 유비를 만나 천하삼분의 계책을 논하면서, 조조는 천시가 따르고, 손권은 지리, 유비는 인화가 있다는 평가를 했다. 즉 조조는 하늘이 내려 준 때를 만났고 손권에게는 장강이라는 천연의 장벽이 있고 유비는 민심을 모으는 힘을 가졌다는 얘기다. 적벽대전에서 조조에 대항하기 위해 촉오 동맹을 맺은 것도 지리를 통해 천시를 막는 주역 논리에 따른 것이다. 이 논리가 깨질 때 촉오는 공멸했다. 오나라가 관우를 죽이고 형주를 차지하는 순간, 오의 멸망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삼국지 인물은 크게 리더, 참모, 장수 세 부류로 나뉘고, 유명할수록 특유의 아이콘이 붙는다. 가령 조조는 '난세의 간웅', 유비는 '어진 군주'의 대명사, 제갈량은 '지혜의 화신'이며, 관우는 '충의의 무신'이다.

리더의 경우, 위의 조조는 냉혹한 현실주의자, 오의 손권은 치밀한 균형 감각의 소유자, 촉의 유비는 넓은 포용력을 지닌 인본주의자다. 나관중의 소설 연의는 촉한 정통론을 고수하고 있어서 유비와 제갈량을 최고의 인물로 높이고, 상대적으로 조조를 악인으로 그리고 있다. 그래서 내가 삼국지를 처음 읽었을 때 두 번 크게 울었는데, 각각 유비와 제갈량이 죽었을 때다.

하지만 사실상 조조야말로 문무를 겸비한 인재에다가 "능력 위주의 인재 등용과 상벌 위주의 법치주의를 시행"한 탁월한 용인술의 대가였다. 혹자는 시대의 영웅으로 회남의 원술, 하북의 원소, 형주의 유포 등을 언급했지만, 조조는 천하의 영웅은 오직 조조와 유비뿐이라는 말을 했다. 관상에 능한 허소는 조조를 '치세에는 능신이요, 난세에는 간웅'이라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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료의 생각 없는 생각 - 양장
료 지음 / 열림원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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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집 《료의 생각 없는 생각》(열림원, 2025)을 보면서, 감수성이 남다른 작가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료'라는 무척 생소한 필명이었는데, 이름만 들었을 땐 만화 '시티헌터'의 사에바 료가 제일 먼저 떠올랐다. 그런데 정작 필명은 일본 만화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동료'의 료에서 따왔다고 한다. 책 내용은 런던살이를 주무대로 펼쳐지는 '아티스트 료'의 감상 에세이다.

감상의 전개는 점묘법 스타일이다. 사유의 전후맥락를 쳐낸, 짤막한 직관적인 감상이나 오랫동안 곱씹은 생각에서 건져낸 덩어리의 형태랄까. 글 중간 중간 직접 그린 그림과 여행 중에 찍은 사진들이 매실액처럼 감각적인 글의 풍미를 살려준다. 그래서 빈티지에 푹 빠진 개성 넘치는 예술가의 라이프스타일 노트를 펼쳐보는 듯한 기분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필자의 이력이나 사적인 생활사가 글속에 분명히 드러나지 않고 있어서 의도적인 '신비 마케팅' 아닌가 싶기도 하다.

료의 글엔 평소 내가 해온 생각과 맞물리는 게 많다. 그러다 료의 왼손 사진을 보니 감정선이 나와 꼭 닮은 것이 아닌가. 이른바 '다정검객무정검'과 같은 타고난 외강내유 스타일이랄까. 특히 "'무언가 주고 싶다.'는 마음과 '무언가 갖고 싶다.'는 마음은 어쩌면 같은 마음일지도 모른다. 헤아려주고 헤아려지는 것은 어쩌면 말이다."란 대목에서 절로 무릎을 쳤다. 그럴 수 밖에 없었다.

미를 중시하는 료의 생활철학에 공감이 간다. 그렇다,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할 수 있다." 아티스트 웨이는 곧 인간다운 삶 그 자체다. 나는 이 사실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진과 선, 참과 바름에 너무 집착했던 관계로, "하루도 빠짐없이 나타나주는 매일의 아름다움과 귀여움, 축하함과 감사함"을 가벼이했던 적이 있다. '문질빈빈'이란 성어를 빌면, 나는 그동안 '문'을 가벼이한 죄를 지은 셈이다.

매일의 삶을 참된 자유와 행복으로 이끄는 근본적인 힘이 바로 예술적인 감수성 아닐까 싶다. 료의 말대로, "모든 걸 알 수는 없어도, 자세히 보고 느끼는 것, 진짜의 마음을 알고 싶어지는 것, 그리고 가능한 저 마음속 끝에 헤아려지길 원하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 그저 시작할 수 있는 용기와 도전하고 실패할 자유가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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