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youtu.be/IJQqjtxvS3U
저번주 금요일엔 달리전에 갔었는데요
평일 관람임에도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내부 인원을 제한 하지 않아서 인지 한 작품 한 작품 관람할때마다 많은 시간이 걸렸어요. 보통 관람전 안내 하시는 시간은 빠르면 40-1시간 반이라고 하셨는데요..
그날 속도대로 보면 1시간은 넘는 시간이 소요 되었었구요..
예매는 온라인 /현장예매 둘다 가능한데 오후엔 사람이 많아 온라인 예매로 하면 입장 하는 시간이 빨라질듯 해요..
물론 저희는 모두 현장 예매를 했구요..
이번 작품은 달리의 작품 220여 점이 전시되었다고 알려졌지만, 그중 100여 점 정도는 돈키호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책에 수록된 삽화들이었다고 해요. 물론 삽화에서도 달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지요 .왜냐하면 참여한 작품 대부분에 묘하게 ‘달리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인데요. 삽화를 제외한 원화는 100여 점 정도로, 그가 보여주고자 한 예술적 세계관을 확실히 드러나는데요...
메이 웨스트 여배우의 입술에 영감을 받아 룸을 따로 만들었어요.
달리가 좋아했다는 여자 배우 <메이 웨스트>
가까이서 봤을 때는 각각 다른 사물들인데
멀리서 보면 배우의 얼굴이 보이게 됩니다.
이 분이 메이 웨스트인데요
이렇게 보니까 닮은 것도 같죠?
전시는 세분화된 10개의 섹션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요. 그의 전 생애를 아우르기 때문에, 작품의 양은 예상보다 많았고 그 범위 또한 다양했어요. 살바도르 달리가 천재적 예술가라는 것은 이미 익히 알려진 사실이지만, 전시의 기획은 관람자들이 그 의견에 더욱 강력하게 동의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는데요.
달리의 작품 220여 점이 전시되었다고 알려졌지만, 그중 100여 점 정도는 돈키호테,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책에 수록된 삽화들이었데요. 물론 삽화에서도 달리의 매력을 느낄 수 있다. 그가 참여한 작품 대부분에 묘하게 ‘달리스러운’ 부분이 있기 때문이었어요. 삽화를 제외한 원화는 100여 점 정도로, 그가 보여주고자 한 예술적 세계관을 확실히 드러나지요.
천재의 탄생 : 1904년 5월 11일
살바도르 달리는 스페인 카탈루냐의 소도시 피게레스에서 태어났다. 달리에게는 그가 태어나기 전 일찍 세상을 떠난 형이 한 명 있었어요. 형의 상실에 크게 상심했던 달리의 부모는 달리를 죽은 형의 환생처럼 여겼고, 이는 어린시절의 달리에게 강한 정신적 상처를 안기게 되죠. 달리가 이 때 얻은 상처는 그가 평생 죄책감과 강박증, 편집증, 정신 분열을 갖게 된 가장 큰 원인이 될 정도로 평생 따라다녔다고 해요.
세상은 나를 우러러볼 것이다. 어쩌면 나는 경멸당하고 오해받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위대한 천재가 될 것이고, 그것만은 확실하다.
The world will admire me. Perhaps I'll be despised and misunderstood, but I'll be a great genius, I'm certain of it.
그는 스페인의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영화 제작자이다.
그래서 달리는 어느 인터뷰에서, 자신이 "이상해져야만 했다"고 언급했다고 해요. 그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인정받기 위해 온갖 일탈을 일삼았는데, 예를 들면 발작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웃기, 개미에 뒤덮인 박쥐를 입에 넣기, 왕관을 쓰고 왕 행세를 하기, 염소똥으로 만든 향수를 뿌리기 같은 것들이었어요.
"사실 나는 일생 동안 '정상성'이라는 것에 익숙해지는 게 몹시 어려웠다. 내가 접하는 인간들, 세상을 가득 메우고 있는 인간들이 보여주는 정상적인 그 무엇이 내게는 혼란스러웠다. 내 생각에는 생길 수도 있는 일들이 절대로 생기지 않는 것도 의문이었다. 나는 인간이 언제나 가장 엄격한 순응주의 법칙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나는 인간 존재가 개인화되지 않는 정도가 너무나 심한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갈라와 달리의 만남
달리는 1929년 카다케스의 (예술가들의 파티)집에서 많은 이들을 초대한 가운데 달리는 운명적인 뮤즈, 갈라(본명은 엘레나 이바노브나 디아코노바)를 만나게 됩니다.그녀는 당시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부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갈라는 달리의 열성적인 구애에 흔들려 연정을 품게 되었다고 합니다. 결국 두 사람은 파리에서 달리의 개인전이 열리던 도중 동반 도주하여 홀연히 잠적했으며, 이후 갈라는 1934년 폴 엘뤼아르와 이혼하고 1월 30일 달리와 결혼하게 됩니다.이때 갈라가 40세, 달리는 30세 였어요.
그 이후 갈라는 평생 달리의 일생의 예술의 지원자이자 뮤즈 역할로서 달리가 84세로 갈라는 89세로 생을 다할때 까지 함께 합니다.
그 이후 갈라는 달리의 작품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는데요. 또한 그녀는 달리의 매니저로서 그의 작품 전시와 일정 조정에 매우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며, 모든 전시 장소 계약과 작품 판매는 모두 그녀의 손을 거쳐 성사되었다고 해요 . 때때로 그녀는 달리의 그림에까지 직접적으로 관여했다고 전해지는 데요. 그만큼 달리는 갈라를 매우 사랑했다는 뜻이었겠죠. 주변인들은 '달리는 갈라가 없다면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그녀가 달리의 온생애에 걸쳐 어렸을때의 부모님에서 형에게서 온 트라우마도 안정감을 찾는데 큰 역할이 되기도 해요. 한때 그는 오직 갈라만을 위해 발레 공연을 기획하고 무대를 제작하기도 했다고 해요.
(나무위키 참조)
<스튜디오에서 그린 자화상 Self-Portrait in the Studio>, c. 1919
ⓒ Salvador Dalí, Fundació Gala-Salvador Dalí, SACK, 2021
살바도르 달리는 '예술이 인생을 지배해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그래서 달리의 예술적 천재성은 캔버스 밖으로도 계속해서 뻗어나갔는데요.
달리는 장르와 매체를 가리지 않고, 상업적인 분야에서도 활발하게 활동했어요. 그는 코코샤넬, 크리스챤 디올 등의 수많은 패션디자이너, 월트 디즈니, 알프레드 히치콕과 같은 영화 감독, 다양한 배우, 가구 디자이너 등 이름을 언급하면 모두 알만한 화려하고 다양한 사람들과 협업함으로써 끊임없이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았어요. 이같은 달리의 끊임없는 도전은 그를 항상 이슈를 만들어내는 전설적 예술가로 자리매김하게 했어요.
이번 전시회에서 대부분의 작품은 설치 작품이나 영상은 사진촬영이 되지 않아서 못 올리는게 아쉽네요.
오랜만에 갤러리 다녀온것이 코로나 시국에 답답함이 예술 감상으로 잠시나마 재미있었어요 ..
기프트 샵에서 판매중인 달리전 굿즈들
#살바도르달리#동대문플라자#달리#갈라#초현실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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