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위한 스테이크
에프라임 키숀 지음, 프리드리히 콜사트 그림, 최경은 옮김 / 마음산책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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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신 아내와 세 명의 아이들을 모시고 사는 소시민 중년 남자의 시덥잖고도 꼬질꼬질한 일상의 이야기!  문제는 이 사소한 남자를 당황시키는 사건들이 결코 남의 이야기 같지 않다는 사실이다.  건망증 때문에 바꿔온 우산을 다시 바꾸러 다니다가 일이 꾜여 손에 주렁주렁 우산을 든채 우산도둑으로 몰리는가 하면,  생쥐가 기어들어와 잠을 못이루던 나머지 생고생을 해서 생쥐를 잡았더니, 아내는 ‘살인자’라 소리 지른다. 더 나쁜 것은 이제 쥐가 갉는 소리에 익숙해져서 쥐소리가 안들리니 잠이 오지 않는다.


 우리 인생이 늘 사소한 위기와 온갖 부조리로 가득차 있다고 울부짖으면서도 유쾌한 웃음 한방으로 가뿐히 상황을 반전시키는 풍자소설의 종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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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들지 못하는 뼈 미세기 고학년 도서관 4
선안나 지음, 허태준 그림 / 미세기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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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잠들지 못하는 뼈』는 한국전쟁 발발 직후 수많은 민간인이 한국군과 경찰에 의해 목숨을 잃었지만 아직도 진실이 제대로 규명되지 않은 채 잊혀져 가고 있는 국민보도연맹 사건을 담은 동화이다.  보도연맹은 국가가 ‘국민을 보호하고 지도한다’는 명목으로 전국에서 약 30만 명 정도를 가입시키고 전쟁이 나자 이들 다수를 즉시 학살했지만 그 일은 현재까지도 쉬쉬하며 제대로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보도연맹 소집이라고 해서 집을 나선 70여명의 마을 사람들이 창고에 감금되고 야산에 끌려가 죽임을 당하기까지의 끔찍했던 당시 상황을 남주 가족의 비극을 중심으로 생생히 담아냈다. 청원의 한 시골 마을 지서에도 누가 작성했는지 모르지만 보도연맹 가입 대상자 명단이 있었다. 일제 강점기에 독립운동가로 활약했던 대추나무집 아저씨가 하루 아침에 빨갱이로 낙인 찍혔고 아저씨를 존경하고 따르던 남주의 아버지도 가입 대상자 명단에 있었다. 까막눈인 은자 엄마는 비료를 준다는 말에 도장을 내 주었다. 마을 이장이 마음대로 도장을 찍는 바람에 자신이 가입된 줄 모르는 사람도 있었다.


남주는 무논에서 일하다 바짓가랑이를 걷은 채 면 소재지로 향하던 아버지의 뒷모습을 잊을 수 없다 게다가 아버지에게 보도연맹 소집이라는 말을 전한 것은 남주 자신이었다. 청주에서 영화배우를 보고서 크면 배우가 될 거라하고 했던 여동생은 향주는 미군 비행기 폭격으로 청각을 잃고 결국 스무살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집안의 자랑이었던 중학생 오빠는 전쟁이 끝났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남주는 세상 가장 믿음직한 버팀목이었던 아버지와 오빠 그리고 사랑스런 여동생을 잃었다. 그리고 우리 집형편이 나아지면 오빠처럼 중학교에 진학하고 싶다는 소중한 꿈도 함께 잃었다. 넉넉하진 않았지만 내일이 더 나을 거라는 희망을 안고 소소한 일상들을 열심히 살았냈던 남주 가족의 비극과 슬픔은 지켜보는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일흔의 나이를 넘긴 남주는 보도연맹 유해를 발굴했다는 뉴스를 보고 혹시 오빠의 유해가 있지 않을까 해서 대학교 유해감식센터를 찾아 간다.  유해발굴 사업이 끝나도록 오빠의 유해는 찾을 수 없었고, 진실화해위도 해체를 하게 된다. 하지만, 아직 수십만 피해자가 땅속에 묻혀 있고, 이미 발굴된 유해도 갈 곳이 없어 플라스틱 상자에 담겨 있는 상황이다. ‘양지바른 곳에 유해를 봉안하고 추모공원이라도 만들어 후세를 위한 역사 교육의 장으로 삼도록 해달라’는 유족들의 소박한 꿈조차 지켜지지 않고 있다.

 

필자 또한 한국전쟁 당시 대규모 양민학살 사건이 일어났던 지역에서 나고 자랐으나,  그 사건의 실체에 대해 처음 접한 것는 대학 진학을 위해 타지에 가서 였다.  다른 사람들이 알고 물어오는 우리 고장 이야기를 왜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인 지 의아하고 부끄러웠으나, 그것조차도 계속 되고 있는 우리 역사의 아픈 현실이자 숨겨진 이면임을 깨닫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학교에서 정식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우리가 몸으로 배운 것은 쉬쉬하며 이야기를 꺼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가족을 처참하게 잃은 ‘산 자’들에게 남은 것은 아픔을 위로 받고 보상받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을 꺼내는 것 조차 금기시 당한채 숨죽이며 오랜 세월을 견뎌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픈 과거는 참혹한 시절을 겪었던 어른들에게는 상처 덩어리로, 후세들은 까마득히 잊혀진 역사의 이야기로 남았을 뿐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제목이 보여주듯 기교 부리지 않는 진지성과 진솔함이다.

작가는 어른들조차 짐짓 눈 감고 외면하고 싶었던 역사의 불편한 진실과 삶의 모순들을 가리지 않고 다 드러내 보여준다.  여지껏 동화에서 금기시 되었던 빨갱이, 좌익과 우익의 이념들을 드러내 어린 아이의 눈높이에서 펼쳐 보이며 갑갑함과 억울함, 가슴 먹먹함에 직면하게 한다. 이 작품을 시작으로 현대사를 어린이 청소년 문학으로 풀어내는 데 힘을 쏟을 예정이라는 작가의 의지가 보이는 부분이다.

 ‘재미있는’ 것이 어린이 책의 훌륭한 덕목이긴 하지만 ‘재미’만을 쫓아 진지성을 잃어버린 많은 아동 작품들을 대하다 보니, 이 같은 작품을 만나는 것이 무척이나 반갑다.


 ‘진실의 반대편에 서 있는 것은 거짓이 아니라 망각이다’라는 말을 되새기며, 무엇보다 자기 자신이 잊지 않기를 바라며 하나 하나 또박또박 더듬어 가듯이 종이에 선을 긋고 안료를 그 위에 더했다는 그림 작가 허태준에게서도 진지성이 읽힌다.  책을 보게 될 독자들에게도 한 시대의 아픔과 진실이 그대로 전달되길 바란다는 작가의 말처럼, 공들인 삽화가 시간을 거슬러 역사의 현장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 시작이 무엇이었든 스스로 미쳐가며 ‘잠들지 못한 뼈’로만 남은 한국전쟁, 우리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해 진실을 가르치는 것이 진정으로 어른들의 몫이 아닐까.

6.25가 얼마 남지 않았다.  이번 6.25에는 아이들과 이 책을 함께 읽어 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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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높은 학년 동화 24
최나미 지음, 홍정선 그림 / 한겨레아이들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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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 별세상에 살지 않는 한, 아이들인들 우리가 살면서 느끼는 갖가지 모순과 복잡한 감정선들을 어찌 모르고 살겠는가?  현실이 그러하거늘 동화속 세상이 그런 사실들에 눈감고 시침 뚝 떼고 있다면,  아이들에겐 동화가 환타지보다 더 현실감이 떨어지는 쟝르일 수도 있다.


작가 최나미는 각각의 단편들을 통해 아이들은 몰라도 된다고 슬쩍 눈가려 두었던 이야기들을 신랄하게 드러낸다.  착한 아이가 반드시 피해자일 것이라는 고정관념도 깨고,  어린 아이들에게도 친구관계가 그리 단선적이지 않다는 것을 속속들이 드러내 보여 주며, 명징한 선악구도로 착한 아이에게 해피 앤딩이 돌아온다는 동화의 모범공식도 벗어 던진다.

사실은 자신들도 치사하고, 소심하며, 열등감 투성이면서, 안 그런 척 시침 떼고  아이들에겐 천사처럼 굴어라, 엄한 표정 짓는 어른들 대신 때론, 부모 말을 안 들고, 혹은 친구를 미워할 때도 있는 이 감정들이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래도 나쁜 아이가 아니라 격려해 준다. 

 

착한아이 콤플렉스를 껴안고 전전긍긍했던 어린시절의 나를 떠오르게 하는가 하면 < 천사를 미워해도 되나요?>, 기질적으로 싸움을  싫어하는 아이에게 남자다움의 허울을 강요하는 자수성가 아버지를 통해 가부장적 사회 이데올로기가 여자 아이뿐만 아니라 남자 아이에게 더 큰 상처가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 x - 파일 >

‘ 똑같이 장난치고도 나보다 열배는 더 야단맞는 오빠가 가여워서 아빠한테 물은 적도 있었다. 왜 오빠만 미워하냐고.  아빠는 오빠와 나를 똑같이 사랑하지만 남자들끼리는 그렇게 표현하는 거라고 했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우리 가족이 더없이 화목하게보일지도 모른다. 어렸을 적에도 아빠는 오빠한테만은 엄격했다.’ .......... ‘ 마치 오빠를 둘러싼 단단한 유리막이 있어서 그 어떤 것도 그 막을 통과하지 못하고 튕겨 나오는 것만 같았다. 더군다나 그 속에서 오빠는 생각이란 생각은 다 빼앗기고 텅빈 껍데기가 된 것 같아 보고 있는 내가 다 아슬아슬했다. ’


또, 공정한 경쟁이 어려운 기운 양팔 저울을 놓고도, 저울을 고칠 생각을 하기보다 선심쓰듯 추 몇 개로 균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애초에 공평하지 않다는 것을 알아버린 아이들은 순순히 어른들의 룰에 따라서 경기를 펼칠 마음이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양팔 저울>. 일방적인 가해자도 피해자도 존재하지 않는 현실에서 문제아와 모범생의 그 아슬아슬한 간극을 오가며 다 함께 상처받고 있는 아이들에게 섣부른 거짓말이 통할 리 없잖은가?


아빠의 자동차를 부수고,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을 과감히 벗어 던진 아이들에게 더 감정이입이 되는, 난 여전히 나쁜 어른인가? 아니면  아직까지도 착한아이 콤플렉스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내 안의 어린 아이’ 탓인가?  작가는 우리 어른들도 세상에 대해 다 아는 것이 아니며,  싸우기도 하면서 전전긍긍 살고 있다는 것을 들킬새라 더 어른인 척, 훌륭한 척  하고 있다고 양심선언 해버린다.

  “진작에 좀 그렇게 말해줬음 좋았잖아. 괜히 나만 이상한 앤 줄 알았잖아.. 휴 ~ ” 안도하는 아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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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머리에 햇살 냄새 난 책읽기가 좋아
유은실 지음, 이현주 그림 / 비룡소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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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은실의 단편은 특별하다.  한 편 한 편이 잘 만든 단막극을 보고 난 듯 유쾌하면서도 가슴 찡한 여운으로 남는다. 실제로 아이가 재잘재잘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착각에 빠질만큼, 사람냄새 폴폴나면서도 맛깔스러운 문장이다.   


  4편의 이야기중 첫 번째 이야기는 옆에 있는 사람이 나가 떨어질 때까지  “도”를 외치는 지수의 이야기다.  지수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수많은 “도”를 찾아 내지만 정작 자기 자신과 가족에 대해서는 별 말이 없다.  대체 지수가 왜 그럴까? 의심하고 슬쩍 거리감을 두고 싶어 할 법도 하지만,  현우는  마음을 돌려 짝을 바꿔달라고 하지 않기로 한다.  그저 ‘그렇게 어울려 사는 것’을 배우며 아이들은 자란다.   

『내머리에 햇살 냄새』는 햇살 가득한 날, 반지하방에 사는 예림이네 가족들이 나란히 나와 해바라기 하는 순간을 포착했다.  머리에 나는 햇살 냄새처럼 뽀송한 아름다움과 평화가 그려진다.  시적이면서도 철학적인 느낌이다.


 『기도하는 시간』은 아이스크림을 사오신 전도사님이 기도하는 동안 아이스크림이 녹을까 애타는 선미의 심정을 담았다.  눈치도 없이 오지랖만 넓디 넓은, 그러나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전도사님의 기도는 아빠, 엄마, 할머니 ....... 사돈의 팔촌까지 챙기느라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진다.  급기야 아이스크림 그릇에는 차츰 물이 차오르고 선미의 기도도 점점 간절해 진다.  “ 하나님, 전도사님이 눈앞에 아이스크림이 있다는 걸 기억하게 해주세요. 이렇게 기도 하다간 다 녹아버린다는 걸 잊지 않게 해주세요.”  기도가 끝나자,  아이스크림은 밤톨한한 크기로 줄어들고, 그걸 떠먹던 선미가 와락 눈물을 쏟는다  ‘이렇게 맛있는데 녹은 물뿐이라니.....’  결국, 눈물 콧물 범벅이 된 채로 아이스크림 녹은 물을 냅다 들이키는 선미의 귀엽고도 서러운 마음이 전해져 온다.

 

 『백일떡』은 늦둥이 동생을 본 열 살 소녀 지민이의 이야기다.  십년만에 얻은 늦둥이를 향한 엄마 아빠의 사랑은 유별나다. 그런 동생이 백일 잔치를 앞두고 덜컥 병이 나자 지민이는 자신이 동생을 미워해서 그런 게 아닌가 맘이 불편하다.  백일떡을 나눠 먹어야 아기가 건강해진다는 이야기에 떡을 돌리기 위해 나선 지민이. 사실, 낯가림이 심한 지민이로서는 여간 용기가 필요한 일이 아니다.  세상을 향해 첫 발걸음을 내딛은 지민이의 하루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떡을 전하고 무시무시한 떡괴물1)을 물리치고 귀환하는 여정으로 마무리된다.  지민이 자신조차 왜 눈물이 나는 지 모르지만,  스스로의 힘으로 한 고개를 넘은 지민이의 마음을 알 듯 하다.


  책 속의 네 아이는 각자 나름의 결핍을 지니고 있다.  늦둥이 동생 때문에 소외감을 느끼고 심하게 낯을 가리는 지민이.  다세대 주택 지하 단칸방에서 이모와, 또 그 이모의 삼촌과 가족을 이루고 사는 예림이,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도’란 공통점을 찾아 내지만 정작 사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지수,  어려운 형편에 입원한 아버지, 사업에 실패한 고모네와 알콜 중독 작은 아버지를 둔 선미..  그러나 ‘이런게 모두 우리의 행복’이라 말하는 네 아이를 통해 작가는 조금 다르다는 것에서 결핍을 찾고,  ‘정상’과 ‘비정상’을 나누며 섣부른 선입견을 꽂는 일이야말로 세상의 편견이라 일갈하는 듯 하다. 세상은 조금 다른 가족 구성원,  각기 다른 성격의 사람들이 섞여 사는 곳일뿐  다르다고 꼭 비정상이거나 불행한 것은 아니라고 역설한다. 


  조금씩 다른 고민을 안고 각자의 삶을 살아갈 지수, 지민, 예림이, 선미 네 아이에게 햇살만큼은 공평히 비추었으면 좋겠다.


1)  백일 떡을 돌려야 하는 마음속 부담감을 지민이를 향해 덮쳐오는 ‘떡괴물’로 그려낸 이현주 작가의 그림이 인상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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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아이 독깨비 (책콩 어린이) 22
R. J. 팔라시오 지음, 천미나 옮김 / 책과콩나무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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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선천적 안면기형으로 태어난 아이,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2년 동안이나 헬멧을 쓰고 다닌 아이. 어거스트 풀먼의 이야기다. 그러나 어거스트( 이하 오기)를 알면 알수록 저 소개가 얼마나 상투적인가 느끼게 된다.  사실은 얼굴을 제외하고는 모든게 지극히 ‘평범한’ 오기, 오기의 누나, 친구들의 유머와 슬픔, 우정과 갈등, 사랑이 아름답게 어우러진 성장기다.  오기와 주변 다섯인물(비아, 서머, 잭, 저스틴, 미란다)의 시점에서 교차되는 이야기들이, 모두의 입장에서 공감이 될만큼 사실적이고 입체감 있다.  독특한 상황설정 임에도 결코 엄살피지 않는 담담함이 오히려 실화라는 착각을 불러 읽으 킨다.  ‘울음과 웃음이 맞부딪치는 감정으로 온통 나를 휘감아 버린’ 이 아이들을 소개한다. 

 

먼저, 오기.

생쥐소년. 변종. 괴물. 프레디 크루거( 나이트메어)의 살인마. 이티. 구토유발자. 도마뱀 얼굴. 돌연변이. 이것이 모두 오기의 별명이다. ‘무엇을 상상하더라도 그 이상일 것’이라고 오기는 말한다. 그런 오기가 ‘도살장에 끌려가는 새끼양처럼’ 1) 난생 처음 학교에 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이다. 오기가 처음으로 접한 5학년은 예상대로 그리 녹녹치 않았다.  아이들이 얼마나 악랄무쌍할 수 있는지 이미 놀이터에서 겪을 만큼 겪어 봤다고 생각했었다. 알다마다. 알다마다. 알다마다. 그렇지만 전염병 환자취급의 치즈터치2)와 괴롭힘, 믿었던 친구로부터의 배신, 왕따를 겪으며 오기는 자신의 몸을 숨길 수 있는 구멍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자신을 완전히 삼켜버릴 작고 검은 구멍이....


한편, 오기의 누나, 비아. 한참 사춘기를 거치며, 친구와의 갈등, 새로 입학한 학교에서의 적응만으로도 힘에 겨운데, 자신을 가장 아껴주었던 할머니의 죽음으로 마음속에 크나큰 상실감을 안고 있다.  그런, 비아는 별로 좋지 않은 때조차 늘 ‘좋아’ 라는 대답으로 가족을 안심시킨다. 자신의 최악의 날 최악의 상태, 최악의 두통, 최악의 상처, 최악의 경련 누가 봐도 최악인 고약한 일도 오기가 겪는 일 앞에서는 상대조차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엄마는 비아엄마로서가 아니라 늘 오기의 엄마로 사는 것도 버거워 보인다. 

  그럼에도 비아는 ‘중요한 건 그런 나쁜 날들을 견뎌내야만 한다는 거야’ 라고 스스로를 다독이고 동생의 슬픔도 어루만질 줄 아는 성숙한 아이다.  비아를 지켜주고 견디게 하는 가장 큰 힘은 바로, 할머니가 남겨주신 비밀이다.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비아는 그 비밀에 의지하고, 그 비밀을 담요처럼 몸에 두르고 살았다고 한다. 그 비밀이란, 다름 아닌 할머니가 이 세상 누구보다 비아를 사랑한다는 사실이었다. “ ...오기한테는 이미 지켜주는 천사들이 많잖니. 그러니까 내가 널 지켜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좋겠구나.... 넌 나의 모든 것이란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사랑받고 있다는 느낌, 그 하나만으로도 삶은 충분히 견뎌낼만한 것인가 보다.   



서머.

서머는 오기에게 유일하게 먼저 다가선 친구였다.  급식실에서 모두들 피하는 바람에  덩그라니 혼자 앉아 쏟아지는 시선과 외로움을 견뎌내고 있는 오기에게 무심한 듯 다가온 서머.  ‘ 평범한 얼굴을 지녔다 해도 새로운 아이가 된다는 건 견디기 어려운 일이다 하물며 그런 얼굴이라면? 어거스트는 그냥 아이일 뿐이다. 지금껏 본 중에서 가장 이상하게 생긴 아이, 하지만 그냥 아이. ’  오기를 그냥 아이로 볼 줄 아는 서머, 세상에는 나쁜 아이도 많지만 서머같은 아이들이 있다는 것이 진심으로 고맙다.


비아의 남자친구, 저스틴.

오기를 처음 보고 온 날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고 머릿 속이 생각들로 가득하다.

‘ 이 우주는 오기 풀먼에게 결코 녹녹치 않다. 그런 형을 받아도 좋을 만큼 그 어린아이가 얼마나 대단한 짓을 저지르기라도 했단 말인가? 그 부모가? 아니면 비아가?  .... 우리는 태어날 때 표를 구입한다. 좋은 표를 살지. 나쁜 표를 살지는 모두 운에 맡길 뿐이다. 우리 탄생의 무작위성이 거대한 복권뽑기 기계와도 같으나,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우주는 결국 모든 것을 공평하게 만들어 준다. 우주는 자신의 모든 새를 저버리지 않는다. 우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방법으로 우주의 가장 연약한 창조물을 보살펴 준다. 맹목적으로 크나큰 사랑을 베푸는 너의 부모님. 평범한 사람이 된다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는 누나. 너의 일로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는 걸걸한 목소리의 그 녀석- 잭. ’   저스틴은 부모로부터 이미 많은 상처를 받은 아이지만, 이렇듯 다른 사람의 상처를 느낄 줄 아는 마음과, 사랑을 알아보는 눈을 가진 것만으로도 잘 성장하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책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우리 사회와 비교하여 가장 부러웠던 점이 촘촘히 짜여진 사회관계망 속에서의 ‘사랑’과 ‘관용’ 이었다.  부모의 사랑만으로는 너무 버거운 일들이 합리적이고 안전한 관계망 속에 놓임으로써 상처를 치유해 나갈 수 있는 힘을 얻게 되는 것이다. 오기와 저스틴 그 친구들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오기.

겉모습만으로만 판단하지 않는다면 오기는 볼수록 매력적인 아이다. 특히 그가 산 표에는 넘치는 사랑을 베푸는 가족과 친구라는 쿠폰이 함께 들어 있으니,  언젠가는 튼튼한 날개짓으로 창공을 날아오르리라 믿는다. 여전히 세상은 오기에게 그리 녹녹치 않겠지만, 말이다. 

오기는 말한다. ‘누구나 살면서 적어도 한번은 기립박수를 받아야 한다. 우리는 모두 세상을 극복하니까.’ 라고.  세상을 극복하고 있는 세상의 모든 오기들에게, 그리고 작가에게 기립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시간에 쫒기며, 헐레벌떡 서평을 쓰고 있는 나에게도 박수를 보낸다. 

                                                  


1) 본문인용 - 아빠의 표현을 듣고 어거스트가 인터넷에서서 찾아보니 ‘ 무언가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줄도 모르고 태연히 어딘가로 가는 누군가를 이르는 말. ’이라 설명되어 있다.


 

2) 윔피키드에 나오는 ‘치즈터치’  그 책에서 아이들은 길바닥에 붓은 곰팡이가 핀 오래된 치즈를 만지면 세균에 감염된다며 벌벌 떤다. 학교에서는 오기가 바로 그 곰팡이가 핀 오래된 치즈 취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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