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 미래의 고전 1
이금이 지음, 이누리 그림 / 푸른책들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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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등 6학년 동재의 첫 사랑 이야기.  부모의 이혼과 아빠의 재혼으로 새    엄마와 여동생 은재와 함께 새 가족을 꾸리게 된 동재. 심란하고 혼란한 동   재에게 첫 사랑 연아의 등장은 한줄기 햇살과 같은 것이었다. 

  동재가 짝사랑하던 연아와 동생 은재가 서로 아는 사이였던 것을 계기로     서로 반목하던 남매간에 서서히 화해와 소통의 문이 열리고, 첫사랑의 가슴    떨림은 새 식구와의 갈등조차 희석시키는 마력을 발휘한다.

서툴지만, 풋풋한 첫 사랑의 경험을 통해 동재는 엄마 아빠의 이혼을 어렴풋이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고, 흑백영화 같은 앞집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사랑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을 던져보게 된다.  

 

“ 그 사랑이 널 성장시켜 준다면 그 사랑이 어떻게 끝나든 해피 앤딩” 이라는 동재 아빠의 말처럼, 사랑의 기억을 통해 동재는 성장하고, 동재의 가슴에 남은 아름다운 추억은 또 다른 사랑을 시작할 훌륭한 토양이 되어 주리라.

작가 특유의 세심한 심리묘사와 재기발랄한 문체는 다양한 연령층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도록 하는 매력을 지니고 있으며, 특히 낯선 두 가정의 결합에 따른 가족갈등과 사춘기 소년의 방황을 어렵고 무거운 주제로 풀기보다는 시종일관 따뜻한 시선을 통해 희망을 발견케 한다.

물론,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을 수 있다.  이렇듯 쉽사리 가족 갈등이 해소되고, 모두에게 행복한 결말찾기란, 동화 속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힘든 상황을 견디게 하는 힘이 사랑임은 또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사랑이든, 이성 혹은 가족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든!  지독한 아픔에 고민하던 소년이 사랑을 배우며 성장할 수 있다면, 분명 그 아픔을 이겨내고 한 뼘 더 자란 자신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동재가 비록 첫 사랑 연아에게 안녕!을 고하지만, 그것을 통해 성장했다면, 해피앤딩이라 불러도 좋으리라. 동재와 연아, 민규와 은재는 그렇게 또 다른 사랑을 경험하며, 쑥 쑥 자라날 것이다. 사랑의 법칙-사랑이 유지되려면 끊임없이 페달을 굴리는 노력을 해야 됨-을 몸으로 터득해 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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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추리 아이들 사계절 아동문고 74
김정희 지음, 홍정선 그림 / 사계절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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뚝아, 이 책 한번 읽어 볼래?

몇 년전이었나 보다.  우리 가족들이 어딘가로 가던 길에 경찰 아저씨들이 막고 있어서, 되돌아 왔던 적이 있었지?  그 때 네가 “ 경찰 아저씨들이 왜 우리를 못 가게 해요?” 라고 물었던 걸 기억하니?  그 곳이 바로 대추리를 지나는 길목이었고,  이 책은  그 때의 대추리 에 관한 이야기란다. 너와 같은 또래의 평범한 소년 한솔이가 살던 대추리 마을은 몇 년전까지만해도 평화롭던 농촌 마을이었지.  미군부지 확장으로 마을 주민들이 모두 떠나야 했기 전까지는 말이야. 그 때부터  대추리 사람들의 고향을 지키기 위한 처절한 싸움이 시작되었단다.  그들에게  그 땅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의 할아버지때부터 갯벌을 막아 일구어낸 삶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땅이었다는 구나.

함께 고향을 지키자고 약속했던 친구 은우네가 정부보상금을 받고 밤에 몰래 도망치듯 이사 간 후 한솔이는 더욱  외롭고 힘들어 해. 예전에 뚝이도 친구 오준이랑 영찬이가 이사갔을 때 많이 속상해하고 보고 싶어 했잖아.  하물며, 한솔이는 친구들 모두와 뿔뿔이 헤어져야 했고,  게다가 자신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빼앗겨야 했으니, 그 심정이 어떠했을까? 




한 쪽에서는 삶의 터전을 지키겠다고 몸부림치고 또, 한쪽에서는 미군이 빨리 들어와야 장사가 잘된다고,  빨리 떠나라고 시위를 하고, 함께 어울려 이웃으로 살던 사람들이 서로 등을 돌리게 되는 상황들을 네가 어떻게 받아들일까?  누구의 입장에서 옳은 지 그른지를 판단하는 눈이 바로 역사관인데, 이런 책들이 네가 바른 역사관을 갖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해. 지금 이 순간의 역사에 대해서, 또 우리가 사는 고장에 대해서 이야기해주는 책이기 때문이지. 요즘 우리 고장 평택이 대추리, 쌍용자동차등으로 부쩍 자주 뉴스에 등장하다 보니, 뚝이도 자연스레 지역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 같더구나. 이런 일이 있을 때마다 네가 물어오는 질문 ‘누가 착한 편인지, 누가 나쁜 편인지’는 결국 네 스스로 판단해 가야 할 몫이고, 이런 책들이 네가 해답을 찾아가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단다.  언젠가 네가 했던  질문 - 새만금 때문에 왜 지율스님이 단식을 했는지-도 결국은 같은 문제라는 생각이 드는 구나.  모든 역사와 지역문제는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래서,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하면서도, 조금 염려스러운 것은 네가 이 책을 재미없다고 느끼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인물설정의 현실감이 다소 약하고, 너무 당위적인 이야기 전개가 재미를 반감시키는 요소이긴 하지만, 아마도 작가가 우리에게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너무 많았던 게 아닌가 귀 기울여 보자꾸나.  작가는 누군가는 그 역사의 현장을 기억해 주기를 바랬던 것 같아. 역사의 현장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 이 세상은 조금씩 더 나은 세상을 향해서 나아갈 수 있으니까.  대추분교가 무너질 때 한솔이가 무섭고 두려웠지만 결코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지 않고, 똑똑히 기억해  두겠다고 한 것처럼.... 한솔이 마음 속에 나무 할아버지가 살아있는 한, 솔부엉이들이 마지막 숲을 지키고 있는 한, 언젠가는 한솔이가 다시 마음의 고향을 다시 찾을 수 있는 날이 올 꺼라고 믿어. 그 때 우리 뚝이도 한솔이에게 힘이 되어주는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뚝아, 여름방학이 다 가기 전에 꼭 읽고 함께 이야기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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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이 있던 마을 - 신정판
권정생 지음, 홍성담 그림 / 분도출판사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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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집이 있던 마을에.....




과거형 시제의 제목에서 현재에는 과거와 다른 무슨 일이 일어났음을, 그것도 한 개인이 아니라 마을 전체에 생긴 일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또한, 민중운동의 걸개그림에서나 보았음직한 느낌의 표지 그림을 통해 민중의 이야기, 그것도 가난한 아이들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임을 어렵잖게 짐작해 볼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그림을 그린 저자 홍성담은 광주 민주화 운동 선전요원으로 활동했으며, 1989년 평양축전에 ‘민족 해방 운동사’를 슬라이드로 제작하여 보냈다는 이유로 구속되는 등 각종 사회 활동에 활발히 참여하는 예술인이다.

이야기는 경상도 산골 국민학교를 배경으로 시작된다. 함께 놀다 토라지고 다투고 그러다가 다시 어울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더없이 정겨운 이 곳은 영화 『웰컴투 동막골』의 동막골이 연상되는 순박하고 평화로운 탑마을이다.  갑자기 들이닥친 6.25전쟁으로 인해 유종과 유준이네, 금동이네, 종갑이네는 함께 고단한 피난길을 나선다.  전쟁을 한번도 겪어보지 않은 아이들은 난생 처음 가는 피난길이 마치 소풍이라도 되는 양 콧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친구들과 재잘재잘 떠들어 대며 신나게 피난 행렬을 따라 나선다.  그러나 머지않아 고달프고 배고픈 피난길이 이어지면서 아이들은 점차 전쟁의 참상을 온 몸으로 실감해 나가기 시작한다.  밀려오는 수많은 탱크와 비행기가 온 나라를 잿더미로 만들고,  쓰러진 시체와 지뢰밭 속에 살기 위해 짐승처럼 아귀다툼하는 사람들..... 살기 위해서 총을 쏘고 대포를 쏴서 사람을 죽이는 것이 바로 전쟁임을 깨닫게 된다.  또, 그 총탄을 피해 살기 위해 달아나면서 남의 것을 빼앗아 가지는 것이 바로 전쟁이라는 것도 생생히 체득해 나간다.    

전쟁의 피해는 초가삼간 집집마다 갖가지 상처를 남겼다.

피난길에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가까스로 할아버지와 어린 손자만 돌아온 종갑이네. 혼자 남은 할배가 불쌍한 종갑이는 할아버지께 과자를 갖다 드릴려고 미군 트럭을 쫓아 다니다가 트럭에 깔려서 죽고 만다.  

“ 네놈들이 네놈들이 우리 종갑이를 죽였구나. 할마씨는 쏘련놈의 탱크에 쫒겨가다가 죽었고, 애비는 왜놈들이 끌고 갔고,,” 피에 얼룩진 종갑이의 시체를 보듬고 절규하던 할아버지는 허허벌판뿐인 세상을 혼자 걸어 종갑이를 땅에 묻은 후 대추나무 가지에 목을 매었다.

그런가 하면 피난 길에 약혼자를 만나 강변에서 혼례식을 올린 금아는 혼례 닷새 만에 새신랑이 모병으로 끌려 가는 것을 지켜봐야 했고 , 삼대독자 여덟살 성봉이는 지뢰를 밟아 갈기 갈기 찢겨 형체도 없이 사라지고 만다.

 

 피난에서 돌아오니 평화로운 고향마을은 간데 없고 폭격의 잔해 속에서 또다른 처형이 시작되었다. 피난을 못가고 남아 있던 사람들이 반역죄로 처형을 당하게 된 것이다. 한쪽 다리를 저는 짝발이 아저씨, 집배원이었던 박씨 아저씨등 모두가 순박하고 착한 사람들이다. 몇 트럭이나 되는 사람들은 굴비 두름처럼 줄줄이 묶여서 총살을 당했다.  총살당한 사람 속엔 화순이네 아버지도 있었다. 공교롭게도 그 화순이네 큰아버지는 공산당들에게 맞아 죽었다. 형제가 하나는 인민군에게 죽고, 하나는 국군에게 총살당한 것이다.  그들은 소련군이 좋다고 끌어 들이지 않았다. 미군이 좋다고 끌어 들이지도 않았다. 다만 기나긴 세월 고달프게 이 땅 위에 살아온 한국의 백성들이다.

어느 쪽이고 이긴 쪽이 없는 전쟁. 양쪽 다 손해만 본 전쟁은 휴전으로 끝이 났으나 남은 사람들에게 지워진 무거운 짐과 가혹한 운명은 끝나지 않았다. 복식이 아버지는 인민군을 따라 북으로 가버렸고 집이 이북인 고재식 아저씨는 반공포로로 석방되어 남한에 남았다.   

공산주의가 싫어서 남한에 남은 거냐고 묻는  아이들의 질문에 고재식 아저씨는 답한다.

“ 자본주의건 공산주의건 사람은 제 나름대로 좋은 생각을 할 수 있고 그것을 생활화할 수 있는 자유를 누려야 해... 주의보다 사람을 더 소중히 여기는 거지.. 무슨 무슨 주의 안에 사람을 가두지 않고 사람을 그 주의 위로 올려놓는 거지. 쉽게 말해서 자본주의보다 공산주의보다 사람이 첫째라는 거야...  ”  

권정생 선생님이 우리 아이들에게 간절하게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아니었을까?  어린 독자들을 위한 선생님의 다음 메세지는  복식이의 편지와 유서이다.

“자기 목숨이 귀중하면 남도 귀중할 텐데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무기를 만드는 공장까지 세워 놓고 마구 폭탄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 현기증이 난다. 유준아 나는 사람 죽이는 짓은 못할 거야 차라리 내가 죽었으면 죽었지 내가 살기 위해 남을 절대 못 죽일 것이다 ...... ”

“우리는 해방되어야 한다. 보이지 않는 올가미를 우리 손으로 벗겨야 한다. 네 눈앞을 가려 버린 덮개를 떼어 버려라. 그래서 눈을 떠라 해방은 누가 시켜 주는 것이 아니다.  네 손으로, 내 몸으로 해방을 해야 한다. 사람은 해방하지 않고 자유하지 않고는 아무런 가치 없는 썩은 고기와 같다. 아름답고 정다운 우리들의 고향집, 영원히 영원히 지켜 나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 해방되어라 사슬을 끊고 자유를 찾아라 덩실덩실 춤추며 살 수 있는 우리 마을을 만들기 위해 해방을 ....   ”

 

“ 보이지 않은 올가미를 벗기고 덩실덩실 춤추며 살 수 있는 우리 마을을 만들라 했지”

친구를 잃고 홀로 남은 유준이 친구의 마지막 말을 마음에 새기듯, 이 책을 읽은 어린 독자들의 마음에도 작은 울림이 생겨나리라. 평화를 해치는 전쟁과 기근, 분쟁으로부터 자유로워 지기 위해서, 모두가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위해서 삶을 변화시키는 힘을 얻을 것이다. 이 책을 내 아이에게 기꺼이 권하게 하는 것은 이렇듯 빛나는 작가 정신에 대한 감동이다.

 

 이 작품이 가지는 또 다른 매력은, 눈으로 보는 듯 귀로 듣는 듯 생생하고 참혹한 전쟁 이야기 속에서도 슬며시 웃음 짓게 하는 동심과 유머이다.  지독한 슬픔에서도 우리를 다시 일어서게 하는 것이 바로 이런 따뜻함과 삶을 바라보는 여유라는 것을 역설 하듯이 『 초가집이 있던 마을 』 은 독자를 울리기도 또 웃기기도 한다. 

한편, 구수한 사투리를 통해 산과 들, 그리고 민중의 삶이 더 가깝게 살아나는 것 또한 이작품이 가지는 재미와 가치이다.

 

책장을 덮고 나서도 귓가에 아이들의 목소리가 떠나지 않는다.

“ 순아 우리 꽃 따가주 손톱 디릴까? ”

“ 내사 송아지보다 삐아리가 더 불쌍타 뭐.”

“ 할매요, 삐아리 다 크그덩 나도 꼭 한 마리 주세이?”

복식아, 금동아, 종갑아, 유종아, 문식아, 화순아, 학분아....

가만히 아이들의 슬프고도 슬픈 이름을 불러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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쿡스투어 - 세상에서 제일 발칙한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엽기발랄 세계음식기행
앤서니 보뎅 지음, 장성주 옮김 / 컬처그라퍼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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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부르는  쿡‘스 투어 
 

맛있는 음식과 여행,  누구에게나 로망이 아니던가! 

 ‘세상에서 제일 발칙한 요리사 앤서니 보뎅의 엽기발랄 세계 음식 기행’  이 책의 부제는  내용을 깔끔히 정리해 내면서도 흥미를 유발하는 기능까지 톡톡히 해낸다.  삐뚤 빼뚤한 글씨만으로 채워진 표지 디자인도 뚜껑만 열면 뭔가 재미있는 일이 펼쳐질 것만 같은 느낌을 준다.

이 책에 대한 첫 인상은 상대방이 듣던 말던 시종일관 자기식대로 떠들며  따라다니는 남자와 비슷하다. 처음에는 ‘그 참 말 많네’ 싶다가 엉뚱하고 웃기기까지 한  이야기에 점점 빠져들어 결국에는 귀를 쫑긋 세우게 되는.

 세계 음식에 대한 보뎅의 문체는 오감을 자극한다.  맛을 전하는 풍부한 미각, 그 나라 곳곳의 냄새를 빨아 들인 듯 한 후각, 날씨마저 몸으로 느끼게 하는 촉각, 쉴새 없이 자극하는 청각,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텔레비전 중개처럼 생생히 전하는 시각이 그것이다.  깔끔하고 맛깔나는 번역에도 박수를 보낸다

“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요리가 마법이 되는 순간을 찾고 싶었다. 포르투갈 농가에서 살아 있는 돼지의 멱을 따고 사막에서 양 통구이를 맨손으로 뜯어 먹고, 어릴적 굴을 처음 맛본 양식장에서 잃어버린 추억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러시아 마피아의 나이트클럽에서 보드카를 마시고 분노한 캄보디아 민병대에서 말보로 담배 몇 갑을 던지고 도망가 보고 싶었다. ”  완벽한 한 끼를 찾아 모험을 떠나게 된 저자의 포부이다. 

 

스스로를 기꺼이 음모에 뛰어든 영웅, 혹은 악당이라 자처하는 보뎅의 쿡‘ 스 투어는 포르투칼에서의 돼지 도축 현장을 시작으로 눈발을 헤치고 찾아간 러시아의 순록고기, 보드카 마라톤, 스페인, 베트남등 세계 곳곳을 누비며 유쾌하고 도발적인 미식의 향연을 펼친다.

 

그러나 이 책은 단지 어느 나라의 어떤 음식만을 소개하는 책이 아니다. 보뎅이 온갖 엽기행각을 벌이며 찾고자 하는 완벽한 한 끼라는 것이 물론 세상에서 제일 손이 많이 가는 요리나 제일 비싼 요리는 아니다. 살아가면서 진정 의미 있는 한 끼를 꼽을 때면 음식에 얽힌 뒷이야기나 추억이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는 것을 요리사인 저자는 너무도 잘 안다. 

따라서 그의 이야기에는 그 나라 음식에만 녹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역사와 날씨, 정서가 베어있다. 

 

베트남에서 미친 듯이 경탄하고, 천국을 외치고 게걸스럽게 먹어대던 그가 베트남 전쟁의 후유증으로 팔다리를 잃은 사람들, 화상으로 온 몸이 용광로에서 녹아버린 듯한 현지인들을 만났을 때  무참히 무너져 내린다. 그리고 스스로에게 묻는다.

 ‘ 부끄럽다. 내가 감히 어떻게 이 도시에, 이 나라에 올 생각을 했을까. 베트남 풍미니, 씹는 맛이니, 요리니... 그 따위 하찮고 하찮은 것 때문에? 이 남자는 눈앞에서 가족이 증발되었을 게 분명한데. 그 자신도 살이 녹아내려서 마담 튀소 박물관에 전시될 법한 몰골로 변해 버렸는데. 난 도대체 여기 뭐 하러 온 걸까. 같잖은 책 한번 써보겠다고? 요리책을? 내용도 쓰잘머리도 없는 하찮은 텔레비전 쇼를 찍으러?’ 

생각없이 떠들기만 하던 사람에게서 진심을 보아 버린 느낌이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솔찍하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자기 스스로를 ‘ 수석 주방장 즉 조리복을 입고 거들먹거리면서 남의 노고를 자기 몫으로 돌리는 사람’ 이라고 신랄하게 묘사할 수 있는 사람이다. 완벽한 한 끼를 찾아 떠난 자신의 모험에 대해서 대놓고 무모하고 무식하고 수치스럽기까지 하다고 자처하고 나서니, 거기다 뭐라 토를 달기도 그렇다. 상대방은 쿨하게 나오는데 나만 그렇지 않은 것 같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를 달자면, 도대체가 어찌나 자기식대로인지 어느 나라 어느 요리도 정확하게 감이 오지 않는 다는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의도했던 안했던 내 발로 직접 찾아가서 내 눈으로 보고, 맛을 음미하고, 보뎅과는 다른 내 방식대로 평가를 해보고 싶어진다. 포르투갈의 ‘ 호종이스 에 파파스 드 사하불류’ 와 프랑스의 ‘굴요리’, 베트남의 ‘퍼’, '밋‘ ’반 통 똠‘, ’짜 고이 주어‘ ....... 오감을 자극하는 온갖 음식들을 향해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어진다. 보뎅처럼 책을 쓸 의무도, 카메라에 찍힐 의무도 없으니, 오로지 자유로운 나만의 쿡’ 스 투어를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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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한 나의 도시
정이현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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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랑말랑하지만 한켠으로는 현실을 돌아볼 수 밖에 없는 주목할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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