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마다 나오는 신간소개란은 신문 읽는 재미 중의 하나입니다.동일한 책인데 소개하는 사람에 따라 강조하는 내용이 다르기도 하구요.모든 책을 다 읽거나 살 수 없으므로 책 소개하는 내용을 읽고 저의 기록장에 요약해 필기하기만 해도 상당한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한가지 궁금한 것이 있습니다.다른 신문은  토요일 책소개란의 지면을 많이 차지하는 책은 페이지 수를 알려주고 나서 책내용을 소개하고 있는데, 한겨레 신문과 경향신문은 간단히 소개하는 책이든 길게 소개하는 책이든, 모두 페이지 수를  알려주지 않습니다.정가는 표기해 놓으면서도.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습니다.혹시 아는 분은 가르쳐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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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9-08-17 19: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페이지 정보는 개인적으로 가장 눈여겨 보는 중요한 정보중 하나인데(죄송합니다. 책을 양으로도 봅니다;) 정말 이상하군요. 꼭필요한 정보라고 생각하지 않나보군요.

노이에자이트 2009-08-18 12:42   좋아요 0 | URL
정가를 본다면 당연히 페이지 수도 보게 되지요.

비로그인 2009-08-17 21: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떤건 가격도 안나와있더라구요. 저도 책 소개란은 즐겨 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8-18 12:43   좋아요 0 | URL
신문마다 서평이 조금씩 달라서 그것을 비교하는 재미도 있어요.

어느멋진날 2009-08-17 23: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갑자기 궁금해지네요. 한겨레 신문 보거든요,, 저는 책 소개란 좀 보긴하는데 대충 넘겼던 것 같아요. 이제 유심히 봐봐야겠네요^ㅡ^

노이에자이트 2009-08-18 12:44   좋아요 0 | URL
아마 곧 페이지 수가 안 나와있음을 알 수 있을 거에요.
 

   작년엔 건국절이다 광복절이다 논란이 끊이지 않은 데다가 보수진영 일부에서 임정을 깎아내리기까지 한 데 대해서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지금까지 일부 보수파 인사들 중에는 김구가 말년에 남북협상에 나섰다는 데 대해서 북한에 휘둘렸다는 지적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임정이나 김구를 그렇게까지 깎아 내리지는 않았거든요.그런데 작년에는 이승만과 김구를 분리하여 전자를 지나치게 높이 평가하고 후자는 폄하하는 흐름이 나타나서 이상하다고 생각했지요. 

  임정법통론의 핵심은 임정의 정통성이 1공화국에 이어지고 그것이 역대 정권에 죽 이어내려온다는 것으로서 보수파 인사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 온 것입니다.원래 임정법통론을 비난하던 이들은 "이승만과 한민당은 김구 및 여운형 세력을 다 제거해 놓고 집권한  사람인데 웬 임정 정통성이 1공화국에 이어진다는 말이냐...임정을 악용하지 말아라"하고 불편해 했습니다.그런데 이명박 정부 들어서 보수계 일각에서 특히 지식인들이 나서서 임정의 권위를 알아서 훼손하니까 이거 뭐하자는 것이냐...하고 이상하게 생각하던 참이었지요.

  올해는 임정수립 90주년 되는 해입니다.평소 공익광고 같은 것도 유심히 보는 편인데 올 4월에 국가보훈처와 광복회 명의로 광고가 하나 떴습니다.대한민국 정부는 임정의 정신을 잇는다...그런 비슷한 내용이었습니다.예의 임정법통론을 다시 수용한 것이지요.작년에 워낙 이승만과 1공화국을 띄웠던 터라 광복회와의 관계도 좀 껄끄러웠는데 결국 현정부가 임정과 김구의 권위를 무시해봤자 별 소득이 없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건국절이니 뭐니 하고 기세 좋게 떠들던 것과 비교해서 어쩐지 용두사미로 끝난 느낌도 듭니다.

  제가 그 광고를 보고 얼핏 생각나는 인물들이 김신 김양 부자입니다.김신은 김구의 아들입니다.김신은 박정희 집권 말기인 유신 때 교통부 장관을 지낸 후 바로 유정회 국회의원이 되었지요.그때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이들은 김구아들이 일본군 장교 출신 대통령 밑에서 장관하고 국회의원 하느냐고 말하는 이들도 있었지만 박정희 시대야 말로 어용이던 아니던 간에 김구와 임정의 독립운동에 관한 책들이 꽤 나오기 시작한 때입니다.게다가" 박정희 정권도 임정법통을 이어받았으니 정통성에 문제가 없다"는  변호론을 하는 학자들도 나왔으니 김신의 처신에 대해서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갈 수도 있지요. 

  하지만 이명박 정부 들어 김신의 아들인 김양이 국가보훈처장에 임명된 것에 대해서는 상당히 매서운 비난이 나왔습니다.임정과 김구를 깎아내리는 정권에서 내준 자리에 있고 싶으냐는 것이었죠.할아버지를  생각해서 당장 물러나오라고 직설적으로 쏘아붙인 이도 있었습니다.하지만 올해 4월 광고를 보면 이제 현 정부도  임정과 김구를 깎아내리지는 않는 게 권력운용에도 낫다고 생각했던 모양입니다.김양도 이제 홀가분하게 그 자리를 유지하겠지요. 

  지난 4일에 개편된 교과서 검정안을 보니 교과부에서도 임정법통론을 명시하고 있습니다.임정과 김구를 이승만의 대척점에 놓을 필요가 없다고 보수층 내부에서도 어느 정도 합의가 된 것 같습니다.하기야 원래 임정법통론이라는 것이 보수층이  갈고 닦아서 수십년동안 활용한 논리였으니까요. 

 그래서 올해는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꾸자느니 하는 목소리는 잠잠합니다.앞으로도 그런 주장을 하는 이는 눈치없는 사람이라는 타박을 맞을 것이구요.작년의 건국절 논쟁은 아무래도 막간극 정도로 끝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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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8-15 1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떠들썩하게 굴더니 '쇼'였던가요...

노이에자이트 2009-08-15 22:43   좋아요 0 | URL
올해는 건국에 대해서 그다지 정색하면서 말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동아일보는 봄에 임정을 재조명하는 기사를 많이 썼지요.학술대회도 열구요.4일의 교과부 개편안을 보니 임정법통론으로 복귀한 것은 확실합니다.

외투 2009-08-16 14: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 연중에 가오리연, 방패연 등이 있지만, 용머리연이 생각납니다.
움직이는 용머리따라 꼬리도 따라 움직이는 창공에 용머리연.
역사적 사실도 올랐다 내렸다 한다는 사실에 놀랍습니다.(순진하죠.)

노이에자이트 2009-08-17 15:28   좋아요 0 | URL
그런 일이 한두가지가 아니지요.

로베스피에르 2009-08-18 21: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교과서는 국가권력의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게 어떤 논쟁이든 국가권력의 이데올로기 안에서 그것이 논의된다. 국가라는 것 자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면서 그러한 논쟁이 제기될 수는 없는 것일까?1794
 

    인권이나 자유가 서구적 가치라면서 독재를 합리화하는 일들이 있습니다.그들을 꼬집는 글 

이안 부르마 ----      권위주의적 통치자들은 서방세계에 대해서 이중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그들은 과거에 제국주의로 부터 해방되기 위해 싸웠고 종종 서양의 민주주의 사상에 고취되기도 했다.......그러면서도 그들은 제국주의자들이 자기 통치를 정당화하려고 이용했던 사상에 영향을 받기도 했다.예를 들어 아시아인들이 독립하여 새로운 길을 가게 되자 이 신생국의 지도자들은 "아시아인들은 아직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제국주의자들의 식민사상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아시아인들은 교육을 더 받아야 한다거나, 더 국민소득이 높아져야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거나, 더 덕망을 쌓아야 한다거나 등 등...한 마디로 한다면 이 독재자들에게 국민들이란 '단지,아직은...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민주주의와 아시아적 가치>   타임 에세이 콜렉션 97년 영한대역판에서  

  에드윈 라이샤워------근대화가 서구에서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사람들은 보통 근대화를 서구화와 동일시하는 잘못을 저질러 왔다.확실히 이 변화가 서양에서 먼저 일어났기 때문에 근대화과정에 서양색채가 가미된 면이 있기는 했다.한지만 근대적 기술과 태도는 어떤 의미에서도 특정지역의 전유물이 되거나 특정지역에 국한될 수 없는 것이다.,,,...확대된 교육과 높은 생산성은 사람들로 하여금 더 많은 자유와 그들 스스로 정치참여를 요구하게 한다.그 결과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향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으로 나타난다.   <동아시아의 근대화와 민주주의>신동아 1987년 9월호에서 

  아시아적 가치가 쟁점이 된 계기는 1994년, 김대중(당시 대선에 패하고 일시 정계은퇴 중)과 이관유(당시 싱가폴 수상)가 벌인 논쟁입니다(이관유가 '포린 어페어즈'3~4월호에서 인터뷰한 내용에 대한 반박으로 김대중이 11~12월호에 글을 기고함).김대중은 "아시아인들도 민주주의를 할 수 있다.민주주의는 서구적인 가치라면서 독재 통치를 합리화하면 안된다"고 했고 이관유는 아시아인들은 민주주의나 인권같은 서양적 가치와는 다른 아시아만의 가치가 있다고 했습니다.이안 부르마는 이관유나 말레이지아의 당시 총리 마하티르를 비판하면서 위의 글을 썼습니다. 

  라이샤워는 하버드 대학에서 "중국학은 존 패어뱅크스,일본학은 라이샤워"로 통했는데 근대화론의 주도자 중 한명이었습니다.근대화론은 냉전 이후 미국의 헤게모니 구축의 기반이 되었지만 같은 근대화론자이면서도 월트 로스토우나 사무엘 헌팅톤은 반공만 하면 독재자도 지지한 반면 라이샤워는 제 3세계의 인권탄압에도 비판목소리를 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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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9-08-13 21: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독재자들에게 국민들이란 '단지,아직은...정도가 아니라 영원히 민주주의를 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다." 독재자의 심리를 꿰뚫고 있네요. 집권연장을 위해 무슨짓이든 하는 독재자들의 말로는 추방되거나 총을 맞거나. 그런거 보면 북조선은 참 불가사의해요.

노이에자이트 2009-08-14 00:19   좋아요 0 | URL
이안 부르마는 역시 일급의 통찰력을 가지고 있지요.
조지 부시 행정부 때 국무장관을 하던 콜린 파월이 북한은 치밀한 협상을 하는 나라라고 인정했더군요.1994년 김일성 사망 때도 곧 북한이 붕괴한다고 한 전문가들이 많았는데 아직도 북한은 건재하지요.

카스피 2009-08-13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시아적 가치는 이미 한물 간 코드아닌가요? 세습 독재를 추구하는 싱가폴의 이광요나 김정일정도만 전가의 보도처럼 쓸 단어지요.

노이에자이트 2009-08-14 00:17   좋아요 0 | URL
단지 권력자들 뿐만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보통사람들도 많이 악용하고 있지요.권위주의적인 인습을 정당화하는 이들은 단지 정치지도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위에서 언급한 이광요의 글을 보시면 문화나 전통으로 합리화되는 일상의 인습이 많음을 알 수 있습니다.

람혼 2009-10-22 0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번에 싱가포르에 공연하러 갔다가 극장관계자 중 20대 초반의 한 분과 싱가포르 정치와 아시아 정세에 관해 잠시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습니다. 제가 리콴유(李光耀) 수상에 대한 이야기를 물어보면서 특히 놀랐던 점은, 싱가포르의 젊은 층은 대체로 리콴유 수상의 '장기집권체제'에 대해 거의 문제점을 느끼지 못한다는 것('그들은 계속해서 잘 해왔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것), 그리고 반대로 오히려 이른바 '구세대'들이 오히려 '리콴유 체제'에 대해 염증과 불만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이른바 '아시아적 가치'는 박정희의 '유신 체제'와 김일성의 '주체 사상' 이후에도 현재까지 계속해서 변주되고 재생산되는 느낌이 여전히 있습니다. 이는 사실 일제시대나 해방공간에서 임화나 안함광 등 카프의 핵심 구성원들이 겪었던 '국제주의-민족주의' 논쟁을 연상시키는 감이 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임화가 안함광보다 더 치열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이에 맞닿아 있는데요, 이식문학론 이후 임화 사상의 기저와 주위에는 항상 저 '아시아적 가치'라는 유령이 배회하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한 글쓰기의 실행도 언젠가 꼭 감행해보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8-14 16:27   좋아요 0 | URL
싱가폴에서 좋은 정보를 얻어오셨군요.역시 여행도 아는 만큼 보이는 법이지요.이광요는 학벌도 좋아서 그런지 그 양반 주장은 상당히 해박한 지식과 나름대로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는 건 사실입니다.맥락을 모르는 사람을 휘어잡는 데가 있지요.

용어는 다르지만 아시아적 가치와 비슷한 논리는 역사에 사례가 많을 것입니다.일제시대 때 특히 중일전쟁에서 일본이 승승장구할 때 무렵 상당수의 조선지식인이 일본의 저력에 찬탄하기 시작하고 특히 태평양 전쟁 발발 이후 '근대의 초극'문제는 상당수 지식인들을 매혹시킨 것 같습니다.역시 서구에 대항하는 논리로서의 아시아 운운하는 담론은 여러가지로 변하면서 계속 증식해 나가고 있지요.

람혼 님의 글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제가 칼 폴라니를 처음 알게 된 것은 부르스 커밍스<한국전쟁의 기원>을 읽을 때입니다.이 책은 우리나라에서 워낙 소모적 이념논쟁을 일으킨 책이라 일제시대의 사회경제를 분석한 제 1장은 사람들이 주목을 안 한 것 같습니다.하지만 우리가 명저를 단순히 지적 사치를 위해서만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바람직한 학문 토착화를 위한다면 폴라니가 <대전환>에서 보여준 식민지 경제에 관한 통찰력을 일제시대 연구에 적용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요? <한국전쟁의 기원>은 이미 국역된지 20년이 넘었지만 커밍스가 폴라니를 언급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지 않더군요. 

  < 한국전쟁의 기원> 제1부 제2장 '일제하의 사회경제적  변동' 중 '2 한국 농민과 시장의 출현'이 폴라니의 농업론을 다룬 내용입니다.아마 제목만 보고도 폴라니 냄새를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이 장에서 커밍스가 언급한 내용 일부와 그가 인용한  책을 소개하겠습니다.물론 국내 번역본이 나와 있는 것에 한합니다. 

  ---최근에 농민정치에 나온 훌륭한 연구들은 세계시장체제가 농업관계에 미친 결과들을 다루고 있다.그러나 이런 분석틀이 어느 정도까지 두 명의 사회이론가인 마르크스와 폴라니의 틀에 입각하고 있는지 인식되지 않고 있다....마르크스가 말하는 본원적  축적은 어떤 자본주의 혁명에 있어서도 꼭 필요한 과정이며 본원적 축적이 일어나기 전에는 성숙한 자본주의란 있을 수 없다.폴라니는 유럽과 그 밖에 식민지 나라에서 농민층이 분해되는 과정을 분석하였다... 

 ---폴라니에 의하면 일반적으로 식민지에서 이러한 과정은 세 단계를 거친다.첫째.농업부분의 상업화 둘째,그로 인한 식량생산의 증가 세째,잉여가 중심부로 이전하는 것....이에 대해 좀더 자세히 알려면 베링톤 무어의 저작을 살펴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무어는 시장의 침투와 상업화에 대한 사회의 대응을 검토하면서 그러한 대응 속에서 계급구조가 어떻게 변하며 어떤 정치구조가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 있다.그리고 세계시장관계가 한국과 같은 미곡생산을 주로하는 지역에 침입했을 때 나타나는 강하고 폭발적인 충격을 검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러면서 커밍스는 토지조사사업,산미증산 계획,한국의 지주가 기업가형 지주로 변하지 못한 원인 등을 살피고 있습니다.여하튼 아예 제1부의 제1장 '일제통치하 한국의 국가와 계급'까지 정독하십시오. 

 커밍스가 인용한 책 중 국내에 번역 또는 해설된 책

1.본원적 축적에 관하여-칼 마르크스<자본>제 1권 7부   모리스 돕 저 이선근 역<자본주의 발전연구>(광민사 1979) 제 5부

2.베링턴 무어 저 진덕규 역<독재와 민주주의의 사회적 기원>(까치 1986)  이 책에 대한 자세한 소개는 한국비교사회연구회 편저<비교사회학 제 2권>(열음사1992) 중 성경륭의 논문을 보라.무어는 전근대적 봉건사회로부터 근대적 산업사회로 이행하는 세 경로,즉 부르주아 혁명,위로부터의 혁명과 파시즘,그리고 공산주의 혁명에서 봉건사회의 중심계급이었던 지주계급과 농민계급이 각각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규명하고 있다. 

3.제프리 페이지<농민혁명>은 아직 번역되지 않았다.다행히 한국비교사회 연구회 편저 앞의 책에 유석춘<페이지의 농민혁명  비교연구>라는 논문이 있다.페이지의 이 저작은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지면서 미국의 외교정책에 대한 반성의 기운이 높을 때 나왔다.수출농업부문의 경제가 농민운동에 미친 영향을 분석하기 위해 쓰여진 책.  커밍스는 이 책을 통해 일제시대 때 소작쟁의와 해방공간의 농민운동을 연구하는 분석틀을 얻었다. 

4.스타벤 하겐 외 편저 김대웅 장영배 역 <농업사회의 구조와 변동>(백산서당 1982)  이 책은 스타벤하겐의 <농업사회와 사회계급> 제1장에서 8장까지를 번역했고,  데오도어 샤닌 편<농민과 농촌사회> 중 몇 몇 논문을 번역했다.예전엔 이런 식으로 해적판 번역이 많았다. 제3세계의 농민을 집중하여 분석했다. 

 위의 책들은 계급분석이 매우 치밀함. 

 커밍스가 소개한 책 외에 좀 덜 학술적인 책으로 헤일부르너<세계를 움직인 경제학자들>의 제 1장 '경제혁명'을 권합니다.이 책은 경제학자들을 소개한 부분만 읽는 이들이 많으나 사실은  제1장이 제일 중요합니다.경제사 지식이 없는 이들도 재밌게 읽을 수 있습니다.시장경제의 이윤이라는 개념이 전근대적인 봉건시대 사람들에게 얼마나 생소한 것이었는지 시장경제 정착이 기존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매우 흥미롭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폴라니와 비교해서 읽어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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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8-11 17: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국전쟁의 기원>은 절반만 번역된 거지요? 번역은 좋은가요? 전에 불평하는 얘기를 들어서요...

노이에자이트 2009-08-11 22:07   좋아요 0 | URL
제 1권은 일제시대부터 1947년까지이고 국내번역되었지요. 그 뒤부터 전쟁경과까지는 번역된다는 말만 있고 아직도 번역되지 않았어요.커밍스는 제1권을 낸지 몇년있다 2권을 썼지요.
저는 청사 것을 읽었는데 그다지 불편한 점은 못 느꼈습니다.

로쟈 2009-08-11 22:14   좋아요 0 | URL
번역이 안되는 이유도 의문이네요. 이젠 넘어섰다는 뜻일까요?

노이에자이트 2009-08-11 22:52   좋아요 0 | URL
박명림 책이 잘 되었다고 하지만 커밍스 것이 완역되어야 비교를 해볼텐데 난감하네요.박명림 책을 읽어보면 커밍스를 의식한 듯한 문장이 나오긴 하죠.
한국전쟁의 기원 2권 중 전쟁발발 무렵만 신동아 1990년 6~7월호에 번역되어 있습니다.그때는 곧 완역될 것 같다고 하더니 20년 째 감감무소식입니다.

로쟈 2009-08-11 23:07   좋아요 0 | URL
네, 그땐 커밍스의 수정주의를 극복했다느니 얘기가 있었죠. 저도 분량이 두배 되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커밍스의 책도 두 권이니 분량으로 극복한 건 아닐테고, 각자가 원서를 읽어보고 비교하란 건가봐요...

노이에자이트 2009-08-11 23:14   좋아요 0 | URL
커밍스를 우리나라에서 소비하는 방식이 문제가 많아요.그저 정통이니 수정이니 이념논쟁으로만 끌고 가니까요.사실은 폴라니나 무어의 이론을 일제시대 농업에 적용하려고 한 시도도 중요한데...참 거시기합니다.

박명림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 주요내용과 인용한 책을 거의 베끼다시피하면서 공부한 생각이 나네요.조선일보가 박명림 책을 마치 조선일보가 추구하는 한국현대사 해석을 옹호하는 것처럼 선전하던 것이 생각납니다.

미국사람 2011-08-19 02: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 읽은지가 꽤 되는데 커밍스가 폴라니 이야기한다는 것은 처음 알았네요. 하긴 그때 폴라니는 이름도 몰랐으니까요.
그리고 한국전쟁의 기원이 청사쪽 번역이 있었군요. 저는 일월서각 것을 읽었는데 번역이 억망이었는데.. 문장이 이상해서 원문을 찿아보면 어김없이 오역입니다.
그리고 커밍스는 한국에 대한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인데(이혼하고 다시 결혼한 사람이 한국인입니다.) 국내의 시각이 문제가 많아서 안타깝읍니다.
또 노선생님에게 한수 배웠읍니다. 그나 저나 이 블로그 읽느라고 며칠 갈 거 같은데 문제네요.

노이에자이트 2011-08-19 16:49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커밍스가 막 번역되었을 때엔 폴라니가 지금처럼 익숙한 이름이 아니었죠.하지만 그 무렵도 그의 책 <인간의 경제>는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커밍스가 전남대에서 주는 김대중 학술상을 받아서 그렇지 않아도 전라도 좌빨과 한통속이라는 욕을 하는 이들이 있죠.사실 한국전쟁의 기원은 첫 장에 역사학이나 사회과학 분야의 고전들이 많이 인용되어 있어서 익숙치 않은 이들이 읽기 힘들죠.

제 글이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요즘 폴라니에 대해서 한마디 안하면 뭔가 유식한 사람 취급을 못받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습니다.워낙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니까요.그래서 대충 나올 만한 이야기는 다 나왔다고 봐야겠지요.대부분 그의 시장론에 대해 초점을 두더군요.또 우연인지 <대전환>이 나온 해(1944년)에 폴라니와는 전혀 상반된 시각을 지닌 하이에크가 <노예로 가는 길>을 냈기 때문에 두 사람을  비교하기도 하구요.저는 하이에크 것을 먼저 접했습니다.헌책방에서 구한 삼성미술문고 번역본인데 70년대 것이라 국한문 혼용의 세로줄이지요.하지만 폴라니에 대해서는 거의 동시에 소개글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국내에서 폴라니를 소개한 학자들은 경제학자가 아니고 경제인류학자였지요.<대전환>을 처음 번역한 박현수도 경제인류학 전공이었습니다. 

  저는 그의 시장 경제 비판론보다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그는 시장의 횡포를 방지할 수 있는 이론과 체제를 구하려고 노력했지요.그의 집안 사람들 모두가 그랬습니다.특히 그는 먼 옛날까지 거슬러 올라가서 온갖 고대문명을 탐구했지요.그리스 로마 문명은 물론 아랍이나 소아시아까지 샅샅이 연구하여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나 성서고고학에 나오는 민족까지 정통하게 되었습니다.하지만 이 모든 문명이 노예제에 기반해 있었습니다.모두가 자유롭게 살고 교역하는 체제는 없을까 초조해졌겠지요. 

  그는 사하라 이남의 흑인 문명까지 연구영역을 확장했습니다,고대흑인 왕국 중에는 찬란한 문화를 누린 곳도 있었지요.하지만 그들 역시 전쟁을 통해 약탈한 노예들을 부려 쌓은 문명임에는 변함이 없었습니다.게다가 근세 이후 유럽이 침략해 오면서 노예사냥의 대상이 되기까지 하지요.여기서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못된 백인 노예상인과 불쌍한 흑인노예라는 고정관념이 상당부분 불완전한 지식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당시 노예상인 중에는 흑인들도 있었고 또 흑인부족끼리의 전쟁에 무기를 얻기 위해 백인과 야합하여 타 부족을 공격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아랍인들이 아프리카 흑인들을 노예로 부렸다는 사실을 꽤 오래 전에 알게 되었습니다.수단 남쪽의 흑인인 누비아 인이 이집트에서 노예로 많이 종사했지요.아랍의 노예사냥꾼들은 그 훨씬 아래인 동남 아프리카에까지 가서 흑인들을 잡아갔습니다.그래서 흑인이 흑인을 잡아 백인에게 팔아치운 이야기에도 그다지 놀라지 않았습니다.원래 처음 알게 될 때 놀라지 두 번 세 번이면 그러려니 하게 되지요. 

  저는 원래 호기심이 왕성합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 쓴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라 문화나 지형,생태 특히 종족이나 민족 분쟁,국경 분쟁 등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내전에 외세가 끼어든 사실에 대해서도 비교적 많은 사례를 알고 있습니다.비단 아프리카 노예사냥 뿐 아니라 북미에서도 영국과 프랑스 그리고 미국 독립운동 세력 간의 이합집산에서 인디언 내전이 얽히고 설켜 얼마나 복잡했는가도 대충은 알고 있지요.여기도 아프리카 처럼 인디언 부족들이 싸울 때 상대측을 무찌르기 위해서 백인들을 끌어들인 사례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상 사회를 그리면서 그 모범사례를 찾으려고 했던 폴라니에게는 이 모든 사실에 절망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근대 유럽이 발명한 시장경제를 치유할 수 있는 모델을 구하기 위해 이런 저런 사례를 엄청나게 수집하여 연구했는데 결국 그런 모델은 없었단 말인가....하는 탄식도 하지 않았을까요? 

 사실 그의 집안 사람 그 누구도 이상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성공하지는 못했습니다.폴라니의 친구인 피터 드러커는 "폴라니 가문은 지적으로 빼어나고 또 대단히 활동적인 사람들이었지만 결국은 시대에 좌절해 버린 것이 아닌가 ..." 하고 조심스럽게 결론을 내렸지요.저 역시 노예사냥이나 인디언의 내전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었고 이 분야는 자세히 알면 알수록 굉장히 불편해진 경험을 하기도 했습니다.사람이란 '착하고 억압받는 이들과 강자의 횡포를 휘두르는 못된 놈'이라는 구도가 맘에 편하지요.하지만 노예사냥이란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다.우리가 저 못사는 나라의 오지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을 소박하고 자연친화적인 삶이라고 떠받드는 태도도 어찌 보면 우리가 맘대로 상상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인간의 역사를 보면 온갖 구질구질한 사실들이 득실거립니다.그런 사실도 외면하지 말아야 하고 또 어두운 면을 알면서도 비관주의자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만 그게 어렵습니다.그래도 폴라니는 어려움에 처한 헝가리 피난민을 위해서 자신의 수입의 상당부분을 내놓기도 했습니다.그냥 자기 세계에만 빠져 있는 사나이가 아니었지요.같은 헝가리 출신인 조지 소로스가 비록 투기자본으로 번 돈일 망정 기부대열에 참여하는 것도 폴라니의 저작은 물론 그의 삶을 긍정적으로 공감하면서 바라본 결과라고 생각합니다.물론 폴라니는 결국 시장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 것으로 봐도 되겠지요.최근 한국에서 부는 폴라니 열풍을 저승에서 바라보는 폴라니는 무슨 생각을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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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9-08-09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폴라니는 결국 시장경제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을 내놓지는 못한 것으로 봐도 되겠지요."란 내용을 조금 더 자세히 쓰시면 좋은 논쟁거리가 될 수 있을 텐데요.^^

노이에자이트 2009-08-09 16:55   좋아요 0 | URL
그런 건 다른 분들이 하실 거에요.저는 일제시대를 폴라니의 시장탄생론으로 분석해 볼까 생각 중이에요.사실 이 작업은 30년 전에 외국인이 해놓은 게 있어요.

비로그인 2009-08-09 17: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뜨끔해지게 만드는 글 입니다.
폴라니가 만약 냉소에 빠졌다면 헝가리인들을 돕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9-08-09 22:18   좋아요 0 | URL
폴라니 가문의 자세한 이야기는 피터 드러커<방관자의 모험>을 보세요.개정판은 <드러커 자서전>입니다.

불한당 2009-08-09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드러커의 자서전에 나오는 폴라니 집안 이야기는 세부적인 사실이 거의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악명이 높습니다. 폴라니 연구 역사가 keneth mcrobbie 는 113개 fact 중 19개 빼고 모두 틀렸다고 입증한 적이 있죠. 드러커는 폴라니와 전혀 입장이 달랐던 사람이고요. 그의 회상기는 개략적인 인상을 제외하고는 의존하지 않는 게 좋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8-09 22:44   좋아요 0 | URL
드러커도 그 책에서 자신은 폴라니와 학문적 견해가 달랐고 보수적이라고 밝혀 놓았지요.다른 해설서들이 요즘은 나와 있으니 비교해 읽으면 될 거라고 봅니다.

쟈니 2009-08-10 18: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드러커와 폴라니라. 왜 저는 이 두사람이 시대를 달리한다는 생각을 했던걸까요. 폴라니는 어떤 대안을 이야기했다기 보다는 어떤 방향성을 제시한 것이라고 역자가 말하더군요(홍기빈씨의 거대한 전환 강의를 들었어요. ^^)

노이에자이트 2009-08-11 14:18   좋아요 0 | URL
거대한 전환 서문에 매키버가 '폴라니와 드러커가 친구로서 그 책을 쓰는데 서로 자극을 주었다'고 썼어요.물론 두 사람의 나이차는 많지만 유교문화권인 일본과 중국만 해도 나이 차이 웬만큼 안 나면 친구로 지내요.우리나라는 요즘은 아예 한두살 차이 나도 위아래 따지더군요.

비로그인 2009-08-11 16: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랍인들이 아프리카 흑인을 노예삼은 이야기는 아라비안나이트에도 나오는 이야기죠.아프리카 흑인 노예 역사가 단순히 백인에게 초점을 조준함으로써 한국 역사서에도 대부분 백인들의 노예착취만 언급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폴라니나 소로스가 시장경제 대안은 제시하지 못했지만 기부행위는 한국의 부자들에게, 특히 시장자유경쟁을 운명으로 받아들이라고 권고하면서 공존의 의미는 상실한 사람들에게 뭔가 던져주는 메시지라고 봅니다.

파란여우님 서재에서 가끔 뵈었는데 노자님 서재에는 처음 아는체를 합니다.
혹시, 근대 방면의 책을 쓰시는 분이십니까? 자료수집이 굉장하십니다.

노이에자이트 2009-08-11 22:56   좋아요 0 | URL
아무래도 남북전쟁을 통해서 노예제도를 배우니까 그럴 겁니다.북아프리카의 아랍인들이 흑인들에 대해 은근히 우월감을 갖고 있지요.

소로스는 같은 나라 사람이라서 그런지 폴라니의 영향을 꽤 받은 것 같은 글이나 발언을 하는 것 같지요?

책을 쓰는 건 아니구요.독서하는 틈틈이 독서록을 공책에 쓰고 있는 정도지요.책 외에 신문을 정독하여 관심기사나 논설 등을 기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