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사된다 안된다 말도 많았던 북-미 양자 고위접촉이 12월 8일로 확정되었습니다.발표장소가 어제 서울이었죠.지난달 만해도 성사는 되더라도 제3국에서 한다는 소문도 있었는데 평양으로 정해졌군요.그대신 북한에선 거물급인 강석주 외무성 제1부상이 스티븐 보즈워스 미국 대북정책 특별대표의 상대역으로 나서기로 했습니다.지난달 뉴욕에서 있었던 리근 북한 외무성 미국국장과 성 김 미국 대북특사 간 북-미 접촉에서 미국은 보즈워스 방북 때 강석주를 만나게 해달라고 했고 결국 북한이 이를 수용한 것입니다.
지난 부시행정부 때 대북특사였던 크리스토퍼 힐의 북한측 파트너는 강석주보다는 한단계 아래였던 김계관이었습니다.그런 면에서 보면 보즈워스는 외교관으로는 운이 좋다고 해야겠습니다.강석주는 김정일 위원장의 최측근일 뿐 아니라 1994년 제네바 북-미 협정 때 북측 대표로 참여한 바 있어서 세계 외교가에서는 화제의 인물입니다.외교사에서 냉전 시대 공산권 외교의 총아가 소련의 안드레이 그로미코,중국의 주은래라고 한다면 냉전종식 이후엔 그 자리에 강석주가 들어가 있다고 봐도 되겠지요.
청와대에 의하면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이번 방한에서 이명박 대통령의 구상인 '그랜드 바겐'에 대해 원칙적인 공감을 한다고 말했지만 외교적 레토릭 이상의 의미는 없는 것 같습니다.사실 올해 4월 북한의 장거리 인공위성 발사와 5월 북한의 제2차 핵실험 직후인 6월의 이명박 대통령 방북 때만하더라도 곧 북한은 고립되고 전세계가 북한을 경제제재로 타격을 줄 수 있을 거라 믿었던 이들이 있었지요.하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제창한 5자회담에 대해선 '북한 고립을 추진해서는 현실적으로 일이 안 될 것'이라는 중국과 러시아의 반대로 흐지부지되었고,그 이후 그랜드 바겐에 대해서는 중국,러시아는 물론 일본과 미국에서도 시큰둥한 반응만 얻고 말았습니다.
그랜드 바겐에 대해 미국의 한국통인 커트 켐벨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가 9월 말 '모르겠다,처음 듣는 말이다'는 말을 해서 뭔가 한미공조가 삐걱댄다는 느낌을 주었지요.한중일 정상회담이 열리던 북경에서도 그랜드 바겐에 대해 중국과 일본 언론들은 거의 언급을 안 했습니다.물론 한국정부는 한미공조는 아무 이상 없다고 했지만...결국은 북한과 미국은 고위급 협상으로 돌파구를 열어보자는 선에서 합의를 했습니다.
물론 이번의 평양 접촉은 큰 기대를 갖기에는 난관이 많은 것도 사실입니다,북한은 실질적인 북미양자 협상을 꿈꾸지만 미국은 여전히 6자회담 틀내에서의 북핵해결이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지요.문제는 이러다가 남한이 소외되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겁니다.다행히 올해의 국면을 보면 1994년의 제네바 협정 당시에 비해서는 한국이 그래도 조금 나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당시는 김영삼 정부가 어찌나 북-미 협상을 대놓고 반대했던지 클린턴 당시 대통령이 굉장히 곤혹스러워 했다지요. 이명박 정부도 1994년에 대해 학습효과가 있었을 것이구요.
올해 초 전 국무장관인 콜린 파월 장군은 북한을 "매우 끈질기고 유능한 협상상대"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이미 1994년 7월 김일성 사망 이후에도 북한은 뚝심을 발휘하여 그 해 10월 제네바 협정을 이뤄냈지요.당시 북한이 곧 붕괴될 거라고 이런 저런 말이 많았습니다만 지금도 북한은 버텨나가도 있습니다.그렇듯 경제상태도 안 좋고 군사장비도 낡은 조그마한 나라가 어떻게 무시무시한 외교무대에서 성과를 거두는지 불가사의할 따름입니다.
올해 북한 관련 기사를 보면 조중동 간에 미묘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가장 강경한 신문이 동아일보였습니다.마치 군사정권 때 반공궐기 대회같은 느끼을 주는 사설이나 논설도 있었고 핵실험 직후인 6월에는 일본의 우익단체인 납치자 모임회에서 낸 광고에 신문 한 면 전체를 다 할애해주기도 했습니다.조선일보도 그렇게까지는 안 했는데...중앙일보가 냉정했지요.특히 김영희 대기자는 6월의 한미 정상회담의 핵우산 제공 성명도 실질적인 알맹이가 없다고 했고,그랜드 바겐 역시 6자회담 당사국 그 어떤 나라에서도 지지를 얻지 못했다고 냉정하게 지적한 바 있습니다.같은 신문의 문창극이 동아일보와 비슷하게 열변을 토하는 논설을 쓴 것과는 대조적이지요.
자! 여러분...전세계 외교전문가들의 눈이 쏠린 올해 12월 8일의 평양을 우리 모두 주목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