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때 이사를 많이 다녔는데 주로 지방소도시와 농촌지역에서 살았습니다.우연히도 집근처에 냇가나 강이 있었지요.저 어렸을 때야 학원이니 과외니 하는 것도 유행하지 않았고 해서 시간이 많이 남았지요.냇가에서 물고기도 잡고 들판에서 곤충도 잡고 그랬습니다.여름엔 물놀이도 하고 철교에서 다이빙하는 내기도 했지요.
영월에서 살 때는 부근에 동강과 청령포가 있어서 놀러간 적도 있습니다.집 바로 앞에 한국에서 제일 큰 엄청난 크기의 은행나무가 있었지요.거기서 은행 따다가 피부가 벌겋게 부은 적도 있었습니다.그 은행나무 바로 밑으로 내려가면 동강이 있었지요.특이한 것은 강을 건네주는 나룻배가 노젓는 방식이 아니었습니다.와이어가 강 양쪽에 설치되어 있고 사공은 배안에서 그 줄을 손으로 잡아당기며 손님들을 날라 주었지요.사공은 중년의 아저씨로 기억하는데 앞팔 근육이 엄청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늘 팔과 어깨를 쓰니까 그랬겠지요.
여름밤 동강에서 멱감던 일이 생각납니다.얼마전 멱감는다는 말을 했더니 대학생이 못알아 먹더군요.사투리라고 아는 사람도 있을줄 압니다만 사전에도 올라있는 순우리말입니다.밤에 멱을 감으면 옆에서 가끔 가다가 물고기가 튀어오르면서 퐁당하고 빠지는 소리가 납니다.광주광역시만 해도 대도시인지라 어릴 적부터 도시에서 자란 사람들은 산골맛을 모르지요.그런 이들에겐 이렇게 이야기해줍니다."어렸을 때 나룻배로 동강을 건너는데 그곳 강에는 물고기가 어찌나 큰놈들이 사는지 지나는 배밑바닥을 들이받아서 쿵쿵소리가 난다"고.그러면 듣는 사람중에 꼭 속아넘어가는 이들이 있습니다."와! 그렇게 큰 물고기가 있어요?"
영월 동강 저건너편 동네에서 벌을 제일 잘 잡는다는 남자애와 제가 시합이 붙은 일이 있습니다.저는 박수치듯 두 손을 마주쳐서 벌을 잡는 재주로 우리 동네에서 알아주던 사나이였지요.그래서 운동화로 벌을 제일 잘 잡는다는 그 아이와 맞대결을 하기로 했습니다.그 동네와 우리 동네 아이들이 거의 다 모여서 이 세기의 대결전을 지켜봤습니다.운동화를 한 손에 쥐고 벌을 잡아 신발 속에 넣은 채 몇바퀴 돌린 뒤 바닥에 쳐서 벌을 잡는데 바로 손을 마주쳐서 잡는 제 스피드를 따라 잡을 수가 없지요.당연히 일방적인 게임이 되었고 얼마 안 가서 그 친구는 패배를 자인했습니다.벌침을 두려워하지 않고 맨손으로 잡는 어린이의 전설은 지금도 영월에 남아 있다던가... 나를 좋아했던 여자애들이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 애들은 지금 애기 엄마가 되어 있으려나...
얼마전 지방방송을 보니 이 곳 전남 섬진강변에 줄을 당기면서 가는 나룻배가 있더군요.요즘 참 드문데...그 줄 나룻배 옆에선 아줌마들이 다슬기를 잡고 있었습니다.강 위로는 백로가 날고 있었구요.또 그 옆에는 그물을 던지는 늙은 아저씨가...마치 동양화에나 나올 듯한 광경.
1박 2일에 영월이 나오더군요.제가 어렸을 때만 해도 청령포는 영월 사람들이나 놀러가는 한적한 곳이었는데 이젠 관광객들도 많이 오고 편의시설이 많이 들어차 있더군요.<라디오 스타>가 나올 때 내가 살던 동네가 화면에 나오나...하고 유심히 봤는데 세월이 너무 흘러 알아볼 수가 없더라구요.예전엔 정말 한적했지요.은행나무와 동강 사이에 있는 넓은 초가집이 이발관이었습니다.마당에 등받이 없는 나무 의자에 앉아 흰 천만 목에 감고 그 집 아저씨가 수동식 바리깡으로 머리를 깎아주고 돈을 받았지요.그 아저씨가 정식 이발사였는지 아니었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습니다.머리는 안 감고 그냥 집에 가서 감았구요.그 집은 지금도 있나 모르겠습니다.얼마전 영월에 가본 사람 말에 의하면 그 은행나무는 그대로 있다더군요.그 은행나무가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보다 더 커요.
맨손으로 벌을 잡던 제 솜씨는 그 뒤 어떻게 되었느냐면...어느 날, 벌을 손뼉쳐서 딱 잡았다 생각했는데 따끔! 벌침에 쏘인 것이죠.아! 내가 벌침에 쏘이다니...상대를 쓰러뜨리기만 하고 한번도 안 맞아본 복서가 케이오 패한 뒤 상대의 주먹을 무서워하게 되듯이 그 뒤로 벌을 맨손으로는 잡지못하게 되었습니다.어느날 동네 애들이 "저쪽 동네에서 벌잡기 시합하자고 한 놈이 도전한다더라,"고 전해왔는데 저는 그 도전을 받아줄 수가 없었습니다.제 전성기가 서서히 저물어가고 있었지요.그리고 겨울이 오고...저는 영월을 떠나 다시 전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보는 줄나룻배...화면에서 보니 어린 시절이 생각나 두서없이 적어봤습니다.다른 고장에서 겪었던 재미있던 일도 있지만 이런 이야기는 이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