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우리나라 언론과 기업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할 문제를 던져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이건희 씨의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삼성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 광고가 각 신문에 일제히 실렸습니다.통상 큰 광고는 신문의 한면을 모조리 차지합니다만 이번 광고는 두 면을 차지했더군요.제가 입수한 신문들을 찾아봤더니 동아일보와 매일경제는 2월 11일 목요일에,경향신문은 2월 8일 월요일에 실렸습니다.아...경향신문에도 삼성광고가 실리는구나...생각했는데 얼마 안 지나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이 삼성을 언급한 칼럼이 경향신문에서 자체검열당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삼성광고는 실리고 삼성을 비판하는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안 실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삼성의 힘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병철 100주년 광고가 실린 것과 김상봉 컬럼이 실리지 못한 일 사이에 제 주목을 끈 기사가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2월 4일 목요일, 삼성의 자본권력화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논문을 소개한 기사입니다.이 논문은 현직 고교의 남자교사인 이종부씨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성공회대에 제출한 것입니다.지도교수는 사회학과 교수 조희연.참여정부 때 이미 삼성은 한국사회 최고의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과 그 과정,그리고 매카니즘을 규명한 것입니다.자신을 적대시하는 세력과 맞서는 게 아니라 행정기구를 비롯한 국가기구 자체를 기업권력의 거점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참여정부 말기에 경향신문에서 실은 민주화 20년 연재물에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아젠다 선점 능력을 다룬 내용이 있죠.그 연구소가 만든 신조어는 바로 행정관료들이 그대로 쓴다...그런 내용이 생각납니다.
씁쓸한 것은 이 기사 말미의 이종부 씨의 당부....자신은 인천 한 고교 사회과 교사이지만 학교가 피해를 보는 것은 원치 않으니 학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했네요.삼성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없어졌지만 이젠 삼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영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되어도 정세판단을 보는 눈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그런 오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틈틈이 자신의 관점과 어울리지 않다고 여기는 책이나 매체를 읽으면서 정보를 취사선택해 보는 게 좋지요.예를 들어 동아일보는 요즘 삼성에 우호적인 기사나 칼럼을 내고 있지만 의외의 소식도 싣고 있습니다. 2월 18일 목요일엔 삼성의 경영방법을 평가한 신간 권경자 박사의 <유학,경영에 답하다>(원앤 원 북스)를 소개하고 있는데 삼성이 초기에는 맹자사상의 덕이나 가족주의를 강조하다가 기업이 커지면서 위계질서와 관리를 강조하는 순자적 요소가 두드러졌다는 겁니다.그 결과 "맹자적 요소의 위축으로 순자사상마저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지나친 경쟁은 회사와 나는 다르다는 인식을 낳고 조직의 소통을 방해하여 권위의식을 낳는다"는 게 권 씨의 주장입니다.
이건희 씨 말고 그의 형에 이맹희 씨가 있습니다.그는 아버지인 이병철 씨와 불화하여 오래전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요.그 사정을 적은 <묻어둔 이야기>(청산 1993)라는 회상록이 있습니다.삼성가의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인데 이젠 구하기가 힘든 책이 되었습니다.저도 몇 년 전 헌책방에서 겨우 찾아냈지요.이맹희 씨의 이름은 들어봤기에 바로 구입했습니다.아무래도 이런 책은 저자의 자기변명이 강한 게 흠이긴 하지만 여타 서적에선 얻을 수 없는 내밀한 내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삼성 애니콜과 에어컨의 광고모델은 피겨선수 김연아입니다.삼성계열사인 이마트 광고모델은 기부천사 문근영이고요.이 두 여성은 호감형 인사의 대표라고 할 만합니다.삼성의 이미지를 높여주는 데 이만한 모델 찾기도 쉽지 않구요.비자금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주는 데도 그만이지요.
이맹희 씨의 회상록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마지막으로 기업을 경영하는,혹은 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당신은 후손들에게 부패와 독성을 전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아니면 원숙한 발효로,겨레와 더불어 나누어 가질 훌륭한 삶의 터전을 만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이 회상록 읽은지도 가물가물하네요.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