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는 우리나라 언론과 기업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할 문제를 던져주는 일이 일어났습니다.이건희 씨의 아버지인 호암 이병철(삼성 창업주)의 탄생 100주년 광고가 각 신문에 일제히 실렸습니다.통상 큰 광고는 신문의 한면을 모조리 차지합니다만 이번 광고는 두 면을 차지했더군요.제가 입수한 신문들을 찾아봤더니 동아일보와 매일경제는 2월 11일 목요일에,경향신문은 2월 8일 월요일에 실렸습니다.아...경향신문에도 삼성광고가 실리는구나...생각했는데 얼마 안 지나 김상봉(전남대 철학과 교수)이 삼성을 언급한 칼럼이 경향신문에서 자체검열당했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삼성광고는 실리고 삼성을 비판하는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안 실리는구나 하고 생각하니 삼성의 힘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 

   이병철 100주년 광고가 실린 것과 김상봉 컬럼이 실리지 못한 일 사이에 제 주목을 끈 기사가 경향신문에 실렸습니다.2월 4일 목요일, 삼성의 자본권력화과정을 사회학적으로 접근한 논문을 소개한 기사입니다.이 논문은 현직 고교의 남자교사인 이종부씨가 박사학위 논문으로 성공회대에 제출한 것입니다.지도교수는 사회학과 교수 조희연.참여정부 때 이미 삼성은 한국사회 최고의 권력으로 자리 잡았다는 사실과 그 과정,그리고  매카니즘을 규명한 것입니다.자신을 적대시하는 세력과 맞서는 게 아니라 행정기구를 비롯한 국가기구 자체를 기업권력의 거점으로 만들었다는 내용입니다.참여정부 말기에 경향신문에서 실은 민주화 20년 연재물에도 삼성경제연구소의 아젠다 선점 능력을 다룬 내용이 있죠.그 연구소가 만든 신조어는 바로 행정관료들이 그대로 쓴다...그런 내용이 생각납니다.

   씁쓸한 것은 이 기사 말미의 이종부 씨의 당부....자신은 인천 한 고교 사회과 교사이지만 학교가 피해를 보는 것은 원치 않으니 학교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고 기자에게 당부했네요.삼성의 무서움을 실감할 수 있습니다.중앙정보부와 안기부는 없어졌지만 이젠 삼성이 그 역할을 대신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진영논리에 지나치게 매몰되어도 정세판단을 보는 눈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그런 오류를 저지르지 않기 위해서는 틈틈이 자신의 관점과 어울리지 않다고 여기는 책이나 매체를 읽으면서 정보를 취사선택해 보는 게 좋지요.예를 들어 동아일보는 요즘 삼성에 우호적인 기사나 칼럼을 내고 있지만 의외의 소식도 싣고 있습니다. 2월 18일 목요일엔 삼성의 경영방법을 평가한 신간 권경자 박사의 <유학,경영에 답하다>(원앤 원 북스)를 소개하고 있는데 삼성이 초기에는 맹자사상의 덕이나 가족주의를 강조하다가 기업이 커지면서 위계질서와 관리를 강조하는 순자적 요소가 두드러졌다는 겁니다.그 결과 "맹자적 요소의 위축으로 순자사상마저도 제대로 발휘되지 못하고 있다.지나친 경쟁은 회사와 나는 다르다는 인식을 낳고 조직의 소통을 방해하여 권위의식을 낳는다"는 게 권 씨의 주장입니다. 

     이건희 씨 말고 그의 형에 이맹희 씨가 있습니다.그는 아버지인 이병철 씨와 불화하여 오래전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났지요.그 사정을 적은 <묻어둔 이야기>(청산 1993)라는 회상록이 있습니다.삼성가의 복잡한 이야기가 나오는 책인데 이젠 구하기가 힘든 책이 되었습니다.저도  몇 년 전 헌책방에서 겨우 찾아냈지요.이맹희 씨의 이름은 들어봤기에 바로 구입했습니다.아무래도 이런 책은 저자의 자기변명이 강한 게 흠이긴 하지만 여타 서적에선 얻을 수 없는 내밀한 내용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요. 

  삼성 애니콜과 에어컨의 광고모델은 피겨선수 김연아입니다.삼성계열사인 이마트 광고모델은 기부천사 문근영이고요.이 두 여성은 호감형 인사의 대표라고 할 만합니다.삼성의 이미지를 높여주는 데 이만한 모델 찾기도 쉽지 않구요.비자금의  어두운 그늘을 걷어주는 데도 그만이지요. 

  이맹희 씨의 회상록 마지막은 이렇게 끝납니다.-----마지막으로 기업을 경영하는,혹은 기업에서 일하는 분들에게 묻고 싶다.당신은 후손들에게 부패와 독성을 전한 사람이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아니면 원숙한 발효로,겨레와 더불어 나누어 가질 훌륭한 삶의 터전을 만든 사람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가? 

   이 회상록 읽은지도 가물가물하네요.기억을 더듬으며 다시 읽어봐야겠습니다.


댓글(4)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외투 2010-02-20 16: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회장에게 형이 있었군요(둘 째라,,).이 글을 읽고서 제가 순진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나의 순진성은 둘 중에 하나일 가능성이 큽니다.즉 맹종하거나 독해지거나,,(자본의 생존 본능)

노이에자이트 2010-02-20 20:48   좋아요 0 | URL
이건희 씨는 3형제의 막내입니다.맹희 씨 바로 밑에 창희 씨가 차남입니다.그리고 또 다섯 자매가 있습니다.

나무처럼 2010-02-2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종부 씨 논문 꼭 구해서 읽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정말로 한번 구해봐야겠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2-21 15:51   좋아요 0 | URL
곧 책으로 나온다고 합니다.그리고 경향신문취재팀 <민주화 20년의 열망과 좌절>(후마니타스 2007) 2부에 삼성에 휘둘리는 지식인과 관료들에 대한 취재가 나오지요.
 

   연예인들이 행사에서 사회를 보거나 이름난 강사들이 초청을 받을 때 제일 피곤하고 짜증나는 떄는  역시 아무 반응이 없는 청중들을 대할 때죠.재밌는 이야기를 해도 멀뚱멀뚱...박수도 안 치고...너 얼마나 잘하나 보자는 듯이 팔짱을 끼고 째려보고 있다거나... 

   대체로 여자보다 남자가,젊은이들보다는 중년이상의 청중이 대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그중 최악의 청중(물론 남자들) 세 부류는...3위 사장님들.요즘은 꼬부랑 글씨를 좋아해서인지 CEO라고들 하죠.2위는 대학교수들.마치 학생을 대하듯 에헴! 하면서 너 얼마나 잘 진행하는지 보자는 태도라네요.1위는 고위 공무원들.특히 강사들에게 과천 종합청사는 강사들의 무덤으로 소문난 곳입니다.거기에 사무관 이상의 고위직은 대책이 안 설 정도로 무표정의 극치.도무지 웃지를 않는다죠.이런 남자들을 모아 방송국 방청객으로 채우면 어떻게 될까요. 

   표정을 연구하는 의사(이 분은 한국남자)가 한국사람들 표정을 연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남자들은 40이 넘어 장년기에 접어들면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만큼 특이한 표정이 나온답니다.바로 입 양쪽 꼬리가 밑으로 심하게 처진다는 거죠.표정이 없고 감수성이 무딘 것이 이런 표정으로 굳어진 거랍니다. 

   그런데 한국의 여성들도 나이든 남자같은 표정을 지을 때가 있으니 그때는 바로, 며느리나 올케에게 한마디 쏘아붙이기 직전. 

    세상의 인간관계를 사랑과 우정보다 서열에 따른 질서 위주로 보는 사람들이 만든 비극!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무해한모리군 2010-02-16 17: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슬픈이야기네요 ㅠ.ㅠ

노이에자이트 2010-02-16 20:58   좋아요 0 | URL
차카게 살자는 이야기지요.

외투 2010-02-16 20: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혹시 그런 표정이 사회생활에 지쳐서 그럴까요? 40대이후 한국인의 남녀 모습이라면 사회심리적면에서 연구해 볼만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16 20:58   좋아요 0 | URL
그런 연구를 바탕에 둔 글을 읽고 쓴 감상입니다.

프레이야 2010-02-16 20: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꼬리가 올라가는, 명랑한 마음을 먼저 가져야겠어요.
저도 한번 거울을 쳐다봐야겠어요. 무심히 있을때 말에요.^^

노이에자이트 2010-02-16 20:59   좋아요 0 | URL
그래야겠지요.

마녀고양이 2010-02-17 16: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 사람은 안 그런가요? 일본도 우리 못지않게 서열 사회에 스트레스 받는 직장 사회인데.. 갑자기 궁금해집니다.. 일본 영화보면 중년 남자들의 입꼬리 모양이... ㅡㅡ;;;

노이에자이트 2010-02-18 17:08   좋아요 0 | URL
글쎄요.거기까진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일본에 대해 많이 아시면 마녀 고양이님이 좋은 이야기를 써보심이 어떨른지요...

쟈니 2010-02-18 2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입꼬리가 내려간 사람들은 아마도, 웃으면 안된다고 생각하나 봅니다. 웃으면 지는거다.. 뭐 그런거? ^^ 웃음은 감정의 표현인데, 나이든 사람들은 워낙 감정 표현을 절제하도록 커왔고, 그것이 권위라 생각해서 그럴거 같아요. 공무원, 대학교수.. 다들 권위가 생명이라 여기는 사람들이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2-19 16:19   좋아요 0 | URL
예.맞는 말입니다.그런 이들은 그대신 이마근육이 발달하여 인상쓰는 건 잘한다네요.
 

     이 삶이 끝나고 다음 세상에 우리 꼭 사랑해요 꼭 사랑해요 우리 

     이 노래 마지막 가사입니다.요즘 연습하고 있는 노래인데 감정잡기가 꽤 어렵군요.노래 자체도 어렵구요.제대로 부르게 될지....열심히 하고는 있지만... 

     가수는 소녀시대 티파니 누나구요.드라마는 '자명고'.시청률은 안 좋았는데 노래는 좋아요.저번에 피겨선수 김연아 누나가 소녀시대 태연의 '들리나요'를 멋드러지게 부르길래 나도 한번 해보자고 연습했는데 태연 누나 노래는 영 어렵더군요.그런데 티파니 누나 노래도 되게 어렵네요.마지막 저 가사를 실감나게 불러야 하는데...


댓글(8)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해이] 2010-02-12 0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삶이 끝나고 다음 세상에 우리 꼭 사랑해요... 아름답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2-12 15:24   좋아요 0 | URL
가사도 좋지요.

머큐리 2010-02-12 08: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전에 성공하시기 바랍니다. 이왕이면 음악도 좀 올려주셨으면...ㅎㅎ

노이에자이트 2010-02-12 15:24   좋아요 0 | URL
열심히 하겠습니다.

비로그인 2010-02-12 20: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소찬휘의 tears에 도전해보세요.
짜니난(잔인한)~ 여자라~♬

노이에자이트 2010-02-12 22:34   좋아요 0 | URL
오우...그건 억센 아줌마들이 시끄럽게 떠드는 노래...저는 당분간 조용한 노래나 연습하려구요.

후애(厚愛) 2010-02-13 07: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 올 한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겠군요.
기대하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14 21:45   좋아요 0 | URL
으하하하...
 

   추사 김정희는 본처에게서 아들을 두지 못하고 소실에게서 아들을 얻습니다.그가 상우인데 그때는 서자가 아버지를 아버지로 부르지 못하는 시절이었지요.결국 서자가 아닌 아들이 필요한 추사는 양자를 얻게 됩니다.상우를 사랑하면서도 양자를 얻어야만 하는 심정은 작가의 상상력을 자극하지요.그래서 한승원은 작품 <추사>에서 이 대목을 꽤 길게 쓰고 있습니다. 

   모든 소설은 일종의 자서전이요,자기 고백이라 한다면 한승원 역시 예외는 아닙니다.추사가 아무리 역사상 유명하다고 해도 자식이 있었던 남자라면 평범한  아버지가 했던 고민은 했겠지요.당시 서자 출신 중 유명한  유득공이나 박제가와 상우를 비교하면서 만감이 교차했을 것입니다.역사상에는 유명한 아버지 밑에서 빛을 못본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지요.그래서 큰 나무 그늘에는 큰 나무가 자랄 수 없다는 말도 있습니다.한승원이 추사와 동일시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요. 

  한승원은 소실을 두지 않았으니 그런 것 가지고 공통점을 찾을 수는 없지요.그런데 그의 두 자식인  동림(아들)과 강(딸)이 소설가입니다.한강은 소설가일 뿐 아니라 다재다능하여 라디오에 나와 노래도 부르는 등 유명인사입니다.소설가로서도 비교적 잘나가는 편이구요.하지만 동림은 여동생에 비해서는 그다지  잘나가지 못하고 있습니다.<추사>를 쓰면서 한승원은 동림과 상우를 겹쳐 생각했고 그래서 그 이야기에 상당한 분량을 할애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상우는 서자였지만 추사를 깍듯이 모셨다고 합니다.거의 같은 시대의 인물인 프랑스의 뒤마 부자를 보면 또다른 생각을 하게 됩니다.<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을 통해 대중역사소설의 신기원을 개척한 알렉상드르 뒤마 역시 재주있는 서자를 두었지요.<춘희>의 작가가 바로 그입니다.사람들은 두 사람을 구별하게 위해 아버지 쪽을 뒤마 페르,아들은 뒤마 피스라고 부르지요.뒤마 페르는 소설이 많이 팔려 상당히 부유하게 살았고 호화로운 생활을 했습니다.당시의 프랑스는 우리나라와 달리 서얼차별법이 없었기에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못부르는 일도 없었고 두 사람 사이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말년의 뒤마를 끝까지 지킨 서자 뒤마 페르였습니다. 

  그런데 서자가 워낙 유명한 소설가인지라 후세사람들은 뒤마의 본처소생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오로지 자식이라면 <춘희>의 작가만 기억하게 되었지요.서화담과 황진이에 대해서는 일화가 있지만 서화담의 본처가 누군지 모르는 것도 황진이가 워낙 유명한 사람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들은 유명하지 않은 사람을 기억하지 않습니다.한승원 역시 동림도 강처럼 잘나가는 작가가 되기를 바라겠지요.어버지가 작품 속에서 추사와 상우에 대한 이야기를 길게 쓴 것을 보고 동림은 무슨 생각을 했는지도 궁금해집니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순오기 2010-02-11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랬군요~ 한강과 한동림이라....
개인적으로 한승원 소설 읽기는 쉽지 않아서 추사는 안 읽었는데, 이 페이퍼 보니까 보고 싶어졌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2-11 17:39   좋아요 0 | URL
장편 말고도 중단편도 많으니 그걸로 시작해 보세요.고향이 장흥 회진 앞바다라서 바닷가 배경의 작품이 많아요.

무해한모리군 2010-02-12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모든 글이 일정부분 자서전 인듯 합니다.
노이에자이트님 즐거운 설날 보내세요.

노이에자이트 2010-02-12 17:21   좋아요 0 | URL
그리고 자기가 잘 모르는 내용은 안 쓰는 게 낫지요.

휘모리 님도 화목한 설을 보내십시오.

무해한모리군 2010-02-16 08:58   좋아요 0 | URL
오! 늘 명심해야할듯 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2-16 16:52   좋아요 0 | URL
그렇죠!

소나무집 2010-03-14 0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승원의 아들 동림은 대학 1년 후배랍니다. 학교 다닐 적 이름은 국인이었는데 개명을 했나 봐요. 그는 학창 시절에도 글을 잘 썼고(그때 이미 어딘가로 등단했음) 항상 두드러져서 나중에 아버지와 견주는 소설가가 될 거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결과는 아버지 그늘이 너무 컸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3-14 15:07   좋아요 0 | URL
아.그렇군요.한강은 이번에 신간을 내면서 각 신문에서 인터뷰하느라 바쁘더군요.
 

   성에 대한 묘사를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는 미묘합니다.예전에 일어났던 논란들을 보면 "뭐 이런 걸 가지고 이렇게까지 규제를 해야 했나..."하는 생각이 들지만 당시에는 대단히 심각했던 모양이지요.너무 옛날까지 갈 것 없이 해방 이후 우리나라에서 일어났던 일만 해도 지금 시각으로 보면 실소를 금치 못할 정도로 우스꽝스러운 사건이 많았습니다.엄숙한 도덕군자 같은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그 당시 글을 읽어보면 참...말이 안 나오지요. 

   휴전협정 직후에 정비석의 <자유부인>을 비난한 서울대 교수 황산덕은 지금 생각해 보면 여러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사실 자유부인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싱겁기 그지 없는 내용인데 단지 교수가 나온다고 해서 교수인 황산덕이 발끈한 거지요.게다가 이런 소설이 우리나라에 유행하는 것은 큰 문제라며 "중공군의 몇 사단에 맞먹는 해악이다"고 비분강개했지요.황산덕은 그냥 자기 전공분야만 벗어나면 아무 것도 모르는 그런 교수가 아니었습니다.풍부한 독서와 사색으로 문장력도 좋은 편이지요.종교에 대한 연구도 깊어서 특히 불교사상에도 일가견이 있었습니다.그런 사람도 성문제에 대한 편협함과 예술에 대한 인식부족으로 지금 생각하면 웃음거리 밖에 안 되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소설보다 대중연예 쪽에선 더 엄격한 도덕의 잣대를 들이댔습니다.60년대 초 이금희라는 글래머 가수가 '키다리 미스터 김'이라는 노래를 불렀는데 엉덩이를 살랑살랑 흔들었다고 욕을 많이 먹었습니다.음란하다는 거지요.67년에 윤복희가 미니 스커트를 선보이자 난리가 났습니다.세상 말세다 어쩌구 저쩌구...그러다가 1970년이 되면서 김추자가 딱붙는 판탈롱 바지를 입고 허리를 흔들면서 춤을 추니 또 수군수군...요즘 젊은 것들은 하여간 안 돼...어쩌구 저쩌구... 

    70년대 말까지만 해도 남자가 여자에게 "섹시하네요."라는 말을 했다간 큰일났습니다.성질 고약한 여자한테 이런 말을 했다간 바로 육두문자를 듣게 되었지요.섹시하다는 말은 80년대 중반이 넘어서야 연예계에서 쓰이기 시작해서 90년대가 넘어야 칭찬이 되었습니다.아마  김완선의 등장이 그 계기였을 것입니다.민혜경이 과도기였지요.김완선이 한참 인기였을 때인 90년 경 어떤 지인(당시 50대 초반)은 김완선더러 "저렇게 눈이 확 뒤집어져 가지고...남자들을 홀리게 한다... 역시 여자가수는 패티 김이 제일이여"하고 말했습니다.이제 김완선을 좋아했던 남자들도 40줄...김완선도 40이 넘었지요. 

    영화에서 여자의 젖꼭지를 드러낸 장면이 허용된 때는 1992~1993년입니다.80년대까지만 해도 등과 엉덩이는 보여도 젖꼭지는 안 되었지요.'보카치오 93'이란 영화에서 시원하게 드러낸 젖꼭지를  본 남자 관객들은  "오...드디어..."하는 반응이었습니다.제가 갔던 동시상영관에서는 뒤에 앉은 남자관객 두명이 "와...몇 년 있으면 다 보여주겄구만...우리나라도 인자 많이 발전했네...역시 선진조국이여!"하고 말했던 기억이 납니다.1996년 오수비(제 2대 애마)의 복귀작인 '립스틱 짙게 바르고'에는 드디어 전라로 남녀가 성행위하는 장면을 라스트 신으로 3분 이상 보여줘서 큰 화제를 모았습니다.그리고 1998년 '해피엔드'에선 첫장면부터 전라로 전도연과 주진모가 벌이는 적나라한 성행위 장면으로 젊은 여자관객들이 "어머...어떡해!"하고 당황해 하니 짖궂은 남자관객들이 "아따! 뭣이 어쩐다고 그러요"하고 대꾸하여 극장전체가 웃음바다가 된 기억도 나는군요. 

   최근 2~3년 사이에는 20살 내외의 여성가수들의 노래가 성상품화네 아니네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습니다.게다가 남자 연예인들까지 몸자랑에 가세하니 큰일이라고 정색하는 사람들까지 생겼습니다.그 중에는 다소 난해한 용어까지 구사하면서 자신들의 현학취향을 과시하고 개탄과 비분강개를 적당히 섞어주는 글을 매체에 올리는 사람들도 있지요.이런 이들이 꼭 자기는 편협한 엄숙주의나 도덕주의자는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수십년전 정기간행물을 보면 재미있습니다..당시 굉장히 정색하면서 대중예술의 음란함을 근엄함게 질타하던 이들의 글은 지금 보면 웃음 밖에  안 나옵니다.물론 당시에 글 쓰던 본인들이야 굉장히 심각했겠지요.하지만 심각하면 심각할수록 지금 그런 글을 볼 때 더 웃길 뿐입니다.특히 자기들 지식 자랑을 할 심산인지 어려운 용어를 이리저리 어지럽게 구사한 글을 보면 "재수없구만..."하는 느낌도 들지요. 

   어느 시대에나 심각하게 정색하면서 엄숙주의를 설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지금도 그렇습니다.그런 사람들은 수십년 전 도덕군자같은 소리로 대중예술을 질타하던 이들의 글이 지금은 무슨 평가를 받는지 생각해 보고 글을 써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가 가장 현대적이고 세련되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지금 시대도 몇십년이 지나면 먼옛날 구식의 시대가 되고 맙니다.2010년인 지금은 과거와는 다르다...성상품화가 너무 심하다고 정색하면서 쓴 글도 먼훗날 우리 인생의 후배들이 보기에는 "그땐 이런 일 가지고 이렇게 심각했군.웃기지도 않네"하는 웃음거리 밖에 안 될 것입니다.


댓글(6)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뷰리풀말미잘 2010-02-07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황산덕 비슷한 케이스로 류영모가 생각나네요. 성에 대한 집착과 근본없는 공포가 평생 그를 못박아 둔 것 같아요. 그게 아니면 그는 좀 더 자유로울 수 있었는데 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10-02-07 22:32   좋아요 0 | URL
류영모 목사를 말씀하시는지요? 다석을 이르는 건 아닌 것 같구요.

뷰리풀말미잘 2010-02-07 23:32   좋아요 0 | URL
아, 다석 얘기였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한 해탈인인것 같은데 섹스문제에 관한한 중세적 마인드를 벗어나지 못한 인상을 받아요. 류영모 목사로 생각하신 것도 무리는 아니죠. 그가 '집착'이나 '공포'같은 단어가 어울리는 양반은 아니니까요. 그건 너무 심한 평가절하였나요? ㅎㅎ

노이에자이트 2010-02-07 23:33   좋아요 0 | URL
아...그래요...다석의 중세적 사고방식이라...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는군요.

비로그인 2010-02-07 23: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솔직하지 못한거죠. 걸 그룹 좋아하는 남자들 손가락질 하면서 정작 자신은 남성 아이돌 보고 헐떡 거리는 것 마냥.

노이에자이트 2010-02-07 23:38   좋아요 0 | URL
좋으면 좋다고 말하면 좋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