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에 신간으로 나온 <야만의 언론,노무현의 선택>은 서점에서 선 채로 허겁지겁 읽은 책.기자 출신인 두 저자가 참여정부 시절 언론과 노무현의 불화를 재구성한 내용입니다.비단 언론 뿐 아니고 지식인들의 노무현 공격도 꽤 자세히 다루었습니다.특히 신자유주의 운운하며 노무현의 경제정책을 비난하던 이들...최장집과 노무현의 정면 충돌도...그리고 참여정부 말기 노무현의 취재선진화 정책에는 한겨레와 경향까지 조중동에 합세해서 온갖 저주를 퍼붓던 장면을 당시의 기사제목까지 밝히며 재현해 놨는데...읽다가 이를 뿌드득!    그리고... 

  마지막 압권은 박연차 게이트 당시의 언론들의 기사를 다룬 내용.저자들의 분노가 나에게까지 전해지는 듯.역시 조중동과 한겨레 경향이 긴밀한 공조하에 노무현 때려잡기에 열중했던 당시의 그 숱한 칼럼들...역시 그 유명한 '굿바이 누무현'이라는 컬럼을 쓴 기자 아저씨...'논두렁 시계 주우러 가자'는 둥 하던 칼럼을 쓴 성직자 아저씨...그리고 문화일보에 뒤질세라 노무현 대통령은 권양숙 여사 탓만 한다...못난 남편들이 아내 탓 한다는 어느 기자 아줌마의 글도 경향신문에...맞아...그때 이런 칼럼이 있었지...여자를 두들겨 패서 턱뼈를 부숴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바로 그런 때...아...이제 다신 주먹을 휘두르지 않겠다고 결심했는데....왜 이런 생각을...하하하...웃어야지요.작년 3월에서 5월까지의 신문기사를 생각하니 분루가 흐릅디다. 

  이번에 박연차 사건을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다룬 <노무현은 왜.검찰은 왜>가 신간으로 나왔더군요.저자들은 세계일보 기자들.검찰과 언론의 태도까지 자세하게 다뤘답니다.<야만의 언론,노무현의 선택>을 읽을 때는 격정이 부글부글했는데 이 책은 좀 차분하게 읽을 수 있을지...성질 주기고 차카게 살고 싶은데... 

  동무들! 차카게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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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4-26 10: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경향과 한겨레도 그랬다는 것은 정말 힘빠지게 하네요. 한겨레21은 노무현 서거 당시 회한어린 고백과 반성의 얘기를 싣기도 했었어요. 그 대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26 16:45   좋아요 0 | URL
지금도 인터넷에 검색하면 작년 3월에서 5월 서거 직전까지 한겨레,경향에 나온 노무현 때리는 기사,칼럼들을 손쉽게 볼 수 있습니다.

승주나무 2010-04-27 00: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금도 생각하면 살 떨립니다. 경향과 한겨레 사건 수습하느라 바삐 돌아다녔던 기억이...

노이에자이트 2010-04-27 16:15   좋아요 0 | URL
워낙 글들이 세고 비아냥대는 내용이었기 때문에 분노한 사람들이 많았지요.
 

    동서양 역사 모두 거물 정치 지도자를 보좌하는 최측근이 있습니다.20세기에 들어와서는 모택동과 주은래의 관계가 유명한데 미국에서는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대통령 시절(1932~1945)의 보좌관 해리 홉킨스가 유명합니다.권력자의 최측근이었던 만큼 홉킨스에 대한 평은 여러가지입니다.극도의 혐오와 찬사가 어지럽지요.여하튼 미국 역사에서 둘은 최고의 단짝이었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루스벨트와 홉킨스에 대해서는 여러가지 평가가 있습니다.특히 홉킨스는 미국이 소련과의 관계를 개선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루스벨트 행정부 내에는 이른바 친소파가 있었는데 그 대표자가 바로 홉킨스입니다.그렇기 때문에 1945년에 루스벨트가 죽고 이듬해 홉킨스가 세상을 떠난 뒤에 시작하여 1949년 10월 중국대륙을 공산당이 완전장악하자 "이렇게  된 게 다 민주당 정권이 공산당에 유화적인 정책을 썼기 때문"이라는 보수파의 공격이 거세집니다.그 정점이 바로 매카시즘이었고 여기에 야당인 공화당의 공세가 섞여 민주당 내의 친공 용공 세력을 몰아내자는 여론몰이가 거셌습니다. 

  홉킨스는 이렇게 친소노선을 주창했다 하여 한국의 일부 보수파들에게도 비난의 대상이 되지요.햇볕정책을 비난하는 데 앞장선 원광대 교수 이주천의 박사학위 논문이 '루스벨트의 친소노선'임은 매우 상징적입니다.게다가 얼치기로 한국현대사를 귀동냥으로 배운 이들은 반탁운동=민족자주를 들먹이며 루스벨트를 욕하기도 합니다.하지만 좌익에서는 홉킨스가 결국은 친기업적인 인물이라고 폄하하지요. 

  한국의 운명에 홉킨스가 직접 관계한 것은 1943년 11월 카이로 회담에 루스벨트를 수행할 때부터입니다.이때 홉킨스는 카이로 선언 문구에 "한국은 될 수 있는 한 일찍 독립을 하도록..."이라고 썼는데 루스벨트가 "한국은 적당한 시기에..."로 고쳤다고 합니다.이렇게 고친 것은 신탁통치를 염두에 둔 것이지요. 

  얄타회담(1945년 2월)에도 루스벨트를 수행했던 홉킨스는 그 해 4월 루스벨트가 급서하자 후임인 트루만 대통령을 도와 루스벨트의 노선을 완성하려 마지막 불꽃을 태웁니다.6월에 모스크바에 가서 스탈린과 회담하고 미국과 소련의 협조는 계속 될 것이라고 스탈린을 안심시킵니다. 

  한국 현대사에 관한 국내외의 책을 읽으면 로버트 셔우드의 <루스벨트와 홉킨스>가 종종 인용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저자는 극작가 출신으로 루스벨트의 연설문 작성에도 관계한 친 루스벨트계입니다.고전영화의 애호가라면 로버트 테일러가 장교로 나와 비비안 리와 비극적인 사랑을 나누는 영화 '애수'를 기억할 것입니다. 이 영화는 원래 브로드웨이 무대의 연극인데 대본을 로버트 셔우드가 썼습니다.그는 또 2차대전 직후의 미국을 그린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최고의 해'의 극본도 썼습니다. 

  한국현대사 관련 책에 인용된 <루스벨트와 홉킨스>를 보면 900여 페이지가 넘는 곳이 인용된 책도 있습니다.테헤란 회담(카이로 회담 직후의 회담)에 대한 인용도 700페이지가 넘는 곳이 인용되어 있습니다.엄청난 분량이지요.특히 이 정도라면 한반도의 운명이 논의된 2차 대전의 주요 전시회담에 대한 내용이 매우 많을 것입니다.그래서 한국현대사 관련 연구서들이 이 책을 인용하고 있지요. 

  물론 이 책은 1948년에 나왔고 이때는 2차 대전의 전시회담에 관한 주요 외교문서가 아직 공개되기 이전이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추측성 내용도  있을 것입니다.하지만 워낙 많이 인용되는 책이니 그 뒤에 문서가 공개된 이후에 나온 연구서들과 비교해 보는 재미도 있을 것입니다.무엇보다도 저자인 셔우드가 극작가 출신인데다가 역사부문에서 퓰리처상을 네 번이나 탔으니 읽는 재미가 있는 책을 썼을 것입니다.이 책이 학술서적은 아니겠지만 루스벨트와 홉킨스의 개인적인 이력은 물론이며 격동의 역사기록으로도 가치가 있는 책이니 꼼꼼한 번역으로 한국의 독자들에게 선을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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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복수할 용기가 없는자여! 용서할 용기도 없을 것이오!  내가 좋아하는 말입니다.복수할 용기가 없는 자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가장 많이 써먹는 수법이 "다 용서했어!"하고 말하는 것입니다.그러나 사실은 용서할 수가 없는 상태입니다.용서는 상상 이상의 대담함을 요구하는 덕목입니다.우선 그 한을 잊어야 하지만 웬수는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살아 있는데 그걸 다 잊고 용서가 되나요? 속으로는 부글부글 끓고 있는데 남들 앞에서는 대범한 척, "나는 다 잊었어! 다 용서했다구.하하하..." 이러지만...그게 일종의 자기 기만임은 자신이 더 잘 알지요. 

   용기있는 자는 한 번만 죽지만 비겁한 자는 몇 번씩 죽습니다.자신을 죽여야 사는 인생...겉으로는 아무 것도 아닌 척 다 잊은 척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면 그 웬수가 떠오르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자신이 미워지기만 하고...그게 바로 비겁한 자가 맛보아야 할 벌이랍니다. 

  하나의 해결책을 발견합니다.만만한 사람을 찾아 괴롭히는 것이죠.내게 모진 짓을 한 자는 나보다 강하니까 맞설 자신이 없고, 그래서 죄는 없지만 나보다 더 약한 자를  괴롭히면서 마음을 달래는 겁니다. 

  약자를 괴롭힐 필요가 없는 강자가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약자를 괴롭히면서 강자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자에 비하면 인간 자체가 다른 사람입니다. 불쌍한 것 같으면서도 후려갈기고 싶은 자는 자신도 약자이면서 더 약한 자를 괴롭히는 작자들이지요.그런 자일수록 "알고 보면 나도 불쌍한 놈이라구!" 하면서 남의 동정을 구합니다. 

  약하고 비겁한 자 중에 잔인한 놈들이 있습니다.이런 놈들이  궁지에 몰리면 온갖 불쌍한 표정을 다 지으면서 살려달라고 합니다.하지만 그 불쌍한 척하는 표정에 속으면 안 됩니다.눈 딱 감고 잔인무도하게 밟아버려야지요.이런 놈을 놔주면 더 많은 사람이 다칩니다. 

   은혜를 베푼 자에게 악으로 갚는 자는 공포가 무언지를 보여주는 것이 가장 확실한 치료약입니다.이런 자들에겐 더 이상 죄를 짓지 못하게 해주는 것이 사랑이지요. 

   그러니 비겁한 자들이여! 복수할 용기도 없으면서 용서라는 거룩한 단어를 입에 올리지 말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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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4-19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법치국가이기에 대개는 고소나 소송으로 해결을 하지요. 그러나 반드시 승소한다는 보장은 없고요. 가해자가 피고이고 자본이 넘친다면 승산없는 게임이지요. 이외에도 균형이 맞지 않는 상황에서 개인적 차원에서 복수를 한다면 위력을 보여 줄 수 밖에 없는데 그럴 때 여러 무술이나 격투기가 존재 가치가 있는 것 같아요. 자신을 방어하는 목적 이외에도 말이죠. 정신수양이 목적이라면 참선을 하지 뭣하러 땀 흘리며 단련할까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9 17:10   좋아요 0 | URL
가해자에겐 아무 말도 못하면서 엉뚱한 약자에게 화풀이를 하는 사람들을 경계합시다.

혼내주는 방법은 여러가지가 있겠지요.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무술 수련의 목적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역시 최강의 무술은 정신수양보다 더 강한 무언가가 있어야겠지요.
 

   지난 10일에 일어난 폴란드 대통령 카친스키의 유고소식을 다루는 우리나라 외신들은 카틴 숲의 학살 사건을 위주로 폴란드의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폴란드가 당했던 수난을 이야기하며 우리나라의 역사와 비슷하다는 소감을 밝히는 한국인들도 많이 있습니다.메이지 시대의 일본 지식인들은 유럽으로 유학가서 폴란드의 처지를 듣고 우는 사람이 많았다는 일화도 있습니다.카틴 숲에서 폴란드 장교들이 학살당한 1940년 봄은 독일과 소련이 불가침 조약을 맺고 있던 시절이었습니다(1941년 6월 이 조약을 깨고 독일이 소련을 침공하게 되지요).불가침 조약의 결과 1939년 9월 독일군은 폴란드를 침공하게 되고  2차 세계대전이 시작됩니다만 이때까지의 독일 폴란드 소련과의 얽히고 설킨 관계는 정말 어지러울 정도입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폴란드는 독립을 하게 됩니다.100년 이상을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에 분할 당한 상태였던 폴란드로서는 새로운 출발을 하게 된 것이지요.하지만 억눌렸던 민족주의가 폭발하면서 폴란드는 패권주의의 방향으로 폭주하게 됩니다.오랫동안 폴란드는 발트해와 체코슬로바키아 그리고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벨로루시는 자기 영토라고 주장해 왔고 이 곳을 점령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던 것입니다.1차대전이 끝나고 기존의 세력권이 재편되면서 그 공백기간에 폴란드는 팽창의 기회를 잡게 됩니다. 

  1920년 5월 피우스드스키 장군이 지휘하는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로 진격하여 키예프를 점령합니다.폴란드로서는 제정러시아가 무너지고 새로 생긴 소비에트 러시아가 내전과 서방강대국의 간섭전쟁으로 정신이 없을 때 자신들의 영토적인 야심을 달성해 보겠다는 계획을 실천에 옮긴 것이지요.하지만 폴란드군은 우크라이나의 저항에 부딪혀 고전합니다.폴란드는 제정러시아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제국의 지배를 받을 때에도 우크라이나 서부와 벨로루시 서부에서는 어느 정도의 자치를 누리며 지배자로 군림했는데 이때 폴란드 지주들이 특히 우크라이나의 소작인들에게 가혹하게 굴었고 그래서 우크라이나로서는 다시 폴란드의 지배하에 들어가서는 무슨 욕을 볼지 몰라 저항했던 것입니다.그틈을 타서 소비에트 군이 폴란드군을 밀어내기 시작했고 결국 6월에 폴란드군은 키예프에서 물러납니다.이후의 폴란드와 소비에트 러시아 간의 전쟁은 프랑스의 지원을 받은 폴란드에 유리하게 돌아가 폴란드는 리가조약으로 1921년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벨로루시를 얻게 됩니다.물론 그곳 주민들의 의사는 전혀 물어보지 않았습니다.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20년 10월.폴란드는 역사적으로 폴란드 영토라면서 발트해의 전략적 요충지인 리투아니아의 빌뉴스를 점령합니다.이로써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의 오래된 갈등이 또다시 시작된 것이지요. 

  폴란드는  소비에트 러시아와의 전쟁으로 영웅이 된 피우스드스키 장군이 1926년에 지도자가 된 뒤로 철저한 반공국가로 사실상 유사 파시즘 체제를 수립합니다.피우스드스키는 폴란드 민족주의의 전통인 반러시아 정서를 이용하여 반소친독 외교를 펼칩니다.이 노선은 그가 죽은 뒤에도 계속되지요.나치독일의 힘을 빌려 중부유럽의 패권을 잡으려는 폴란드의 야심은 1938년 독일이 체코슬로바키아를 병합하자 절정에 달합니다.전통적으로 체코슬로바키아의 테센 지역을 탐내던 폴란드는 독일의 전리품 잔치에 끼어들어 체코 땅 일부를 탈취합니다.이 당시 폴란드의 약탈행위는 인근 유럽국가들에게 매우 안 좋은 인상을 주었습니다.그래서 "폴란드는 강대국의 지배를 받을 때는 용감하게 저항하지만 조금 여유가 생기면 안 좋은 모습을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게 됩니다. 

  이후 역사는 다 아는 바대로입니다.독일의 힘을 빌려 체코슬로바키아 나눠먹기에 끼여든 바로 이듬해 폴란드는 80만 대군이 별로 힘도 못써보고 독일의 기갑부대에 무너지고 맙니다.소련은 서부 우크라이나와 서부 벨로루시를 점령합니다.폴란드의 지배층은 런던에 망명정부를 꾸리지요.독일이 소련을 침공하자 망명정부는 폴란드군을 연합군의 일원으로 편입합니다.연합국의 수뇌부들도 아직 폴란드군이 필요하다고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소련과 이라크에서 폴란드군을 주둔하게 하지요.하지만 런던망명정부는 전통적인 폴란드 우익이었기 때문에 영토적 야심은 여전해서 소련과의 협조는 매끄럽지 못했습니다.결국 폴란드군은 이라크의 키루크크 모술 지역에 대규모로 주둔하게 됩니다.폴란드군은 연합군 중에서도 소련 미국 중국 영국 다음으로 많은 숫자였고 특히 이탈리아 전선에서 매우 인상적인 전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대독항전 중에 런던 망명정부와는 별도로 폴란드 좌익들이 결성되어 폴란드 내에서 빨치산 활동을 하게 됩니다.이들은 여러 모로 런던망명정부와 갈등하게 되지요.망명정부는 이 시기에도 여전히 중부유럽의 강대국이 되어야 한다는 야심을 버리지 않고 서부 우크라이나,서부 벨로루시,체코 일부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합니다.역시 같은 망명정부 처지였던 체코슬로바키아인들과도 갈등하게 됩니다.  

   런던 망명정부는 독일이 소련과의 전쟁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전쟁이후를 생각하여 폴란드 국내에서 대규모 항전을 계획합니다.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계획했던 국내진공작전같은 것입니다.폴란드 국내의 세력들과 연락한 끝에 1944년 8월부터 독일군에 대한 대대적인 게릴라 공세를 펼치기 시작합니다.그 유명한 바르샤바 봉기입니다.하지만 이 당시 독일군은 아직 여력이 있어서 폴란드로 진격하는 소련군을 막아낸 뒤 봉기군에게 무자비한 진압을 시작합니다.이 당시 독일의 압도적인 무력에 용감히 맞서 싸우던 폴란드인은 많은 찬탄을 받지만 결국 독일군에 항복하고 맙니다. 

  바르샤바 봉기는 소련군의 영향이 폴란드에 미치기 전에 미리 선수를 쳐야겠다는 폴란드 망명정부의 계산이 있었지만 시기상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독일은 아직 그 정도 봉기는 진압할 힘은 있었던 것이지요.게다가 소련은 비스툴라 강 전투에서 고전하다가 겨우 독일군을 물리치는데 이때 소련 수상 스탈린은  영국의 비행기가 바르샤바 봉기군에게 물자를 제공하지 못하게  활주로 이용을 못하게 해버립니다.이 일로 폴란드인들의 대 러시아 감정은 또다시 부글부글 끓어오르게 됩니다. 

  이제 폴란드는 리투아니아,서부 우크라이나,서부 벨로루시,체코의 테센 지역을 다시 무력으로 탈취한다거나 하는 생각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대로 폴란드의 민족주의를 보면 강대국에 저항한다는 명분으로 내세우는 저항적 민족주의가 언제든지 패권주의로 변할 수도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폴란드 사를 전공하는 한양대 교수 임지현이 민족주의에 대해서 그 위험성을 강조하는 것도 어찌보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내 나라의 역사를 깊이 알기 위해서라도 외국의 역사를 알아야 하며 외국의 역사를 깊이 알기 위해서라도 내 나라의 역사를 알아야 합니다.폴란드의 역사를 알기 전에는 저 역시 막연히 약소국 폴란드...하는 식의 고정관념만 갖고 있었습니다.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니 더 중요한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그래서 부족한 지식이나마 여기에 밝혀 공유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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率路 2010-04-15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그저 강대국 사이에 끼여서 사연많은(?)역사를 지닌 나라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은근 드라마틱하네요. 아일랜드의 사례도 그렇고, 식민지배를 받은 나라에서 좌파의 입지란 어떠해야하고 어떠할 수 있는지도 조금 생각이 들고. 하여간 복잡하네요-_-;;;

노이에자이트 2010-04-15 16:31   좋아요 0 | URL
2차대전 때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와 폴란드 국내 좌파 항독단체들 간의 마찰도 읽다 보면 복잡해서 정신이 오락가락할 정도입니다.

쟈니 2010-04-15 13: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겉으로 보여지고, 언론에서 다뤄지는 것과 역사와는 다른점이 많군요.. 저는 이번 폴란드 대통령이 매우 보수적인 성향이라는 것 정도, 친미적 성향 정도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15 16:31   좋아요 0 | URL
폴란드 공산정권 말기의 자유노조운동에도 여러가지 복잡한 사연이 많지요.카친스키도 자유노조 출신입니다.

비로그인 2010-04-16 00: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약자라고 선은 아니네요. 누구든지 숨겨둔 발톱이 있는 것 처럼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6 16:10   좋아요 0 | URL
정확한 지적입니다.국가가 아니고 개인들 간에는 더 뼈저리게 느끼는 사실이죠.사회적 약자가 개인적으로는 아주 악인인 경우가 있습니다.

흑해 2010-04-16 17: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민족주의 자체가 이미 패권주의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봅니다. 흔히 얘기하듯이 내부적으로는 차이를 억압하면서 구성원들을 동질화시키고 외부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죠. 그거 자체가 식민주의의 파생물이라는 주장도 있구요. 어쨌든 사실상 종교나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합니다.

노이에자이트 님에게는 많은 것을 배우고 그 식견에 항상 감탄하게 됩니다만 제가 보기에 임지현은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변형된 형태의 "민족주의"나 "국가주의"라는 상상을 사람들에게 불어넣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스럽습니다.

왜냐하면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도 폴란드 "국가의 역사"를 얘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부정적으로 얘기하는 것뿐이지 결국은 "국가의 역사"가 아니냐는 거죠. 변경사를 얘기해도 그렇고 "동아시아"를 얘기하는 경우도 그렇습니다.

제가 보기에 동아시아론 같은 것들은 확장된 형태의 "국가 개념"이고 변경을 얘기하면서도 여전히 국가라는 상상이 출현한다고 할까요? "국사의 해체"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만 국가권력이 엄연히 작동하고 있다고 본다면 좀 엉뚱하기까지 합니다. 그게 가능하려면 현실에서 작동하는 국가권력을 무너뜨려야 하지 않나요?

국가라는 상상이 작동하지 않는 방식으로 담론을 전개하거나 그게 안 된다면 "국가"라는 개념 자체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져서 거기에 균열을 내는 방식을 취하든가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냥 다소 변형된 형태로 "국가"를 중심에 두고 얘기한다고 할까요.

사회적 약자가 개인적으로 악인이라... 저도 그다지 선인 같지는 않은데... 제가 노이에자이트 님에게 악인으로 평가받지 않기를 희망합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16 17:51   좋아요 0 | URL
임지현에 대해서 좀 더 공부해보겠습니다.변경사에 대해서는 임지현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고 해서 흡수해보려고 합니다.다른 이론가들의 글도 더 읽어야겠지요.

저는 선인입니다.흑해 님도 현재까지는 악인이라는 증거는 없습니다.안심하십시오.
 

   동물을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도 무서워하는 동물이 있기 마련입니다.어린 애들은 강아지와 놀다가도 강아지가 장난 삼아 달려들면 무서워서 울지요.그걸 놀리는 게 재미있다는 듯 강아지는 더 심하게 굽니다.옆에서 지켜보는 어른들은 우스워서 배꼽을 잡지만 어린아이에게는 심각한 무서움입니다. 

   우리가 무서워하는 동물들이라면 우선 맹수를 꼽습니다만 맹수와 마주칠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없습니다.가까운 일본만 해도 지방의 소도시에는 흑곰이 내려오지만 우리나라는 워낙 맹수들 사는 곳을 거덜내 버렸기 때문에 그럴 일이 없지요.그대신 제가 아는 사람들을 보면 왜 저런 동물을 무서워 하나 싶은 경우가 꽤 있습니다. 

  저는 무서워하는 동물...그런 거 없습니다.어려서 제가 돌이 지날 둥 말 둥 할 때 옆집에 사는 마차끄는 말에게 기어간 일이 있어서 어머니가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제가 말다리를 만지면서 놀았다는데 동물도 어린아이는 잘 해치지 않는지 말은 제가 무슨 짓을 하든 내버려 두었다고 합니다.그런 기질이 있어서인지 조금 자란 뒤에도 소나 돼지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으며 어린 시절을 보냈습니다. 

  새를 무서워하는 사람들이 꽤 있더군요.이런 사람들은 공원의 비둘기에게 먹이도 못주는 것을 봤습니다.심지어 요즘 도시에 사는 닭둘기들이 모이는 곳에는 무서워서 가까이 못가는 사람들도 봤습니다.덩치가 큰 남자가 비둘기가 무섭다고 옆에도 못가는 것을 보면 우스꽝스럽기도 합니다.이런 공포는 무술을 배웠다고 해서 없어지는 게 아닌가 봅니다.닭을 무서워하는 남자를 본 적도 있습니다.옆에서 보면 정말 우스운데 본인들은 엄청나게 심각하나 봅니다. 

  저는 견종 중에서 투견이나 군견 종류도 굉장히 귀여워합니다.실제로 이런 개들이 의외로 순합니다.이런 개들일수록 사람들에게 복종하는 성향이 될 수 있게 품종개량을 했기 때문이지요.예를 들어 동양의 대표 투견인 일본의 도사견은 어린애에게 매우 관대합니다.또 싸움훈련을 제대로 시키면 투견시합에서도 상대에게 이겼다고 생각하면 싸움을 중지하는 신사다운 면이 있습니다.미국의 대표적인 투견인 핏불 테리어도 사람에겐 상당히 온순합니다.저는 이 두 견종들과 다정하게 놀아본 적이 있기 때문에 자신있게 말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사람들은 특히 도사견의 덩치가 커서인지 그 우락부락한 모습때문에 대단히 무서워하더군요.

  파충류에 대한 인간의 공포는 고칠 수가 없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그런데 인도의 어느 동네에는 어릴 때부터 코브라와도 친하게 지내기 때문인지 어린애들도 뱀을 그다지 무서워하지 않은 것을 방송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결국 뱀을 비롯한 파충류를 무서워 하는 것도 후천적으로 학습되었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맞는 것 같습니다.저는 뱀도 키워보고 싶습니다.특히 그 버마 구렁이는 색깔도 이쁘던데...저는 산에 가면 도마뱀을 맨손으로 잡는 재주도 있습니다.이게 상당히 귀엽습니다.그런데 어떤 아저씨는 도마뱀이 재빠르게 튀어가자 질겁을 하더군요.무슨 공룡이라도 본 것처럼. 

  공포에 혐오감이 더해지면 잔인한 결과를 가져오기도 합니다.일본에서도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사람과 그를 못마땅히 여기던 사람이 말다툼하는 걸 방송에서 봤습니다.고양이가 무섭고 싫다는 사람들은 고양이에게 먹이주는 사람때문에 고양이가 몰려온다면서 고양이가 몰려오는 장소에 독약을 탄 고기를 뿌려서 몰살을 시킨 사례도 있습니다.글쎄...이쯤 되면 동물이 무서운 게 아니라 사람이 무서워지는 게 아닐까요. 

  돌아가신 할머니는 생전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고양이가 뭐가 무섭다고 그래.동물한테 죽은 사람보다는 사람한테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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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10-04-10 23: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렇게 어릴 적은 아니고, 초등학교 5-6학년때의 일인데, 소를 실제로 처음보고 무서워서 울었던 기억이 있어요. 아마 책에서만 보던 동물이 그렇게나 크다는 사실에 놀랐던 거겠지요.

지금은 .. 저도 새 무서워요. 특히 다리랑 발, 그리고 파삭하고 부러질 것 같은 얇은 뼈, 물고기도 무서워요. 먹기는 잘 먹는데, 살아 있는 물고기, 특히 물 밖에 나와 퍼덕이는 물고기는 소름이 반나절은 안 빠지고, 눈물을 찔끔 흘릴만큼 무서워해요. 이런 것도 학습에 의한 걸까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0 23:25   좋아요 0 | URL
아하...저는 시골서 태어났기 때문에 소나 말은 꽤 친숙했어요.

오...새를 무서워하시는군요.물고기까지...저는 고양이도 귀엽고 새도 귀엽던데요.글쎄요...그건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닌 것 같기도 하구요...알쏭달쏭...

비로그인 2010-04-11 0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둘기를 무서워하는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저 아니겠습니까 아하하하.
좁은 인도를 점령한 비둘기들을 보고 앞서 가시던 할머니 등 뒤에 숨어서 따라갔죠.

노이에자이트 2010-04-11 15:42   좋아요 0 | URL
하하하...할머니도 비둘기를 무서워한다면 어떻게 될까요.

率路 2010-04-1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군대에서 개한테 한번 물리고서는 개 주변엔 일단 안가고 보는...ㅋㅋㅋ
예전엔 아무 개나 가서 보고 쓰다듬고 했었는데, 한번 물리니깐 못믿게 되더라구요-_-;;;;

노이에자이트 2010-04-12 15:36   좋아요 0 | URL
저는 어렸을 때 셰퍼드한테 물렸는데 그래도 셰퍼드를 좋아해요.함스타에게 물린 뒤로도 이뻐하고...제 동생은 함스타에게 물린 뒤로 전혀 안 만지던데...

率路 2010-04-13 00:29   좋아요 0 | URL
와, 정말 좋아하시나봐요. 제가 물려서-_-;;; 군병원 입실하니깐 어릴적 시골서 개한테 물린 경험이 있다던 후임이 찾아와서 그러더군요. '솔로 상병님, 배신감 작살이지 말입니다잉~' 정말 배신감 작살이어서, 저에게 개는 충직한 동물이 아닌 배신의 동물이랍니다-_-;;;;;

노이에자이트 2010-04-13 01:02   좋아요 0 | URL
좋아하는 것도 있지만 무신경하기도 하지요.한 번 물렸다고 다음에도 물린다는 법있느냐 하는 식이지요.

하이드 2010-04-13 0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방명록 잘 확인 안 하신다고 해서 글과 관련없지만, 여기 남겨봅니다.
이전에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관한 책 찾지 않으셨나요?
http://www.aladdin.co.kr/shop/wproduct.aspx?ISBN=8987897532

신간 둘러보다 생각나서 들릅니다. '알렉산더 대왕부터 탈레반까지' 라고 하니, 원하시는 시대 있으실 것 같아서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3 15:50   좋아요 0 | URL
검색해보니 매우 두툼하고 내용이 충실할 것 같군요.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자하(紫霞) 2010-04-13 09: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 싫어하는 1인!
오묘한 깃털색깔에 부리에 비늘있는 다리까지...
윽~벌써 숨이 막혀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4-13 15:50   좋아요 0 | URL
오...무서운 게 아니고 싫은 거군요.

후애(厚愛) 2010-04-14 07: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뱀을 무서워 합니다.
티브에서 뱀을 보여주면 바로 채널을 돌립니다.
뱀을 보고나면 꿈자리가 안 좋아요..
그리고 큰 개를 무서워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04-14 16:36   좋아요 0 | URL
하하하...채널을 돌릴 정도면...정말 무서워하는군요.

큰 개도 순한 게 많아요.한 번 친하게 지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