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광주 5,18 국립묘지에서 님을 위한 행진곡은 제창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국가 보훈처에서는 그동안 이 노래를 대신하는 노래를 공모한다느니 하다가 그만두고 아예 노래 자체를 못부르게 했군요.이에 항의해서 5,18단체와 시민단체들은 정운찬 총리와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 등이 참석하는 기념식에 불참하고 따로 옛 망월동 묘역에서 행사를 했습니다. 

  백범 할아버지.그런데 지금 국가보훈처장이 누군지 아십니까.바로 할아버지의 손자인 김양씨입니다.정말 착잡합니다.할말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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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0-05-18 22: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구 할아버지 손자가 뭔 힘이 있겠습니까? 조상의 독립운동으로 못배우고 가난한 독립 유공자 후손중 그나마 생색내기 위해서 준 자린데요.너무 타박하지 마세요 ㅡ.ㅜ

노이에자이트 2010-05-25 17:49   좋아요 0 | URL
잘못 알고 계십니다.김구 후손들은 고위직에 꽤 진출했습니다.김구 아들인 김신도 장관과 주중대사(당시 자유중국)를 했습니다.김신의 아들 중 김양 외에 김진은 국민의 정부 때 주택공사 사장을 하다가 뇌물사건 때문에 실형을 살았습니다.딸인 김휘의 남편은 빙그레 회장이구요.가난하게 사는 대부분의 독립운동가 후손들과는 다릅니다.그러니 백범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번 임을 위한 행진곡 사건은 한나라당 내에서조차 난감하게 생각하는 사건입니다.5,18유족들은 국가 유공자이고 이런 기념식에서 일어난 불미스런 일은 당연히 국가보훈처가 책임을 지는 것입니다.

blanca 2010-05-19 1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자님! 그런데 왜 임의 행진곡을 부르지 못하게 한 건가요? 참, 그리고 노자님 말씀처럼 문동에서 오웬책 따라지 인생이라고 나왔더라구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9 19:13   좋아요 0 | URL
이 노래 대신 다른 노래를 기념식에서 부른다고 작년부터 공모했는데 반발이 심해서 그건 취소되었어요.임을 위한 행진곡이 투쟁지향적이라는 명분으로 그런 결정을 했던 모양입니다.그러더니 이번엔 아예 국가보훈처가 5,18기념식에서 이 노래를 못부르게 했더군요.이런 처사에 대해 한나라당 원내대표인 김무성의원도 납득하기 힘들다는 반응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북에서 내려와 남에서 살기힘든 사람들을 한때 38따라지라고 했어요.

비로그인 2010-05-23 01: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중근의 가족들도 비극...그 자체더군요.
노이에님은 어쩜 이렇게 모르는 게 없으신건지?

노이에자이트 2010-05-25 17:50   좋아요 0 | URL
백범일지에 보면 백범이 귀국하면서 안중근의 아들 안준생을 사형해달라고 장개석에게 부탁하는 장면이 나오지요.안중근이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데 대해 일본총독에게 사과하며 친일행위를 했다는 이유입니다.안중근과 김구 집안의 인연도 여러가지 사연이 많지요.

저는 모르는 것 빼놓고는 다 압니다.
 

   우리는 배움이라고 하면 학교를 떠올립니다.하지만 학교에서 가르치고 배우는 것만이 교육은 아닙니다.그렇다면 지금과 같은 학교교육이 없었던 시절엔 교육이 없었습니까.지금도 세계 여러나라에는 학교문턱에도 못가본 이들이 많습니다.그렇다면 그들은 배우지 않은 것일까요. 

   배움이라면 학교밖에 떠올리지 못하는 사람들은 스승이라고 하면 교사나 교수만을 떠올립니다.그렇지만 스승이 꼭 그 직업을 가진 사람이아야만 합니까.스승이란 내게 깨달음을 준 사람입니다.내가 본받을 만한 거울이 되는 사람입니다.그런 사람이라면 그가 무슨 직업을 가지든 무관한 것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학교가 아닌 곳에서 배우는 것이 더 많습니다.진짜 공부는 학교를 나온 다음부터 시작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학교에서 오래 배운 것보다 더 깊은 깨달음을 사회생활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상급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이 사회를 경험하면서 배우는 것도 공부입니다.그렇다면 우리의 스승은 많습니다.사회생활하면서,나이를 들어가면서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준 사람이 누군가 있게 마련입니다.그리고 스승은 나보다 나이가 많아야 한다는 것도 이상합니다.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도 얼마든지 나보다 더 훌륭하고 본받을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이 스승입니다.그런 면에서 나이를 중시하는 우리나라 존비어체계는 문제가 있습니다.어린 사람에게 반말하면서 그 사람을 스승으로 여기기는 힘드니까요. 

   우리 주변에는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도 어느 정도 하고 있는 사람이 "내가 살면서 내게 도움되는 사람이란 눈씻고 봐도 없었어."하고 푸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그러나 그런 사람은 남에게 도움받은 것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입니다.쉽게 말해서  배은망덕한 사람이지요.이런 이들일수록 남에게 도움받을 생각만 합니다.그리고 이런 사람이 남을 도우려고 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생활하면서 상처를 받은 사람이 많습니다.특히 우리나라처럼 체벌과 구타가 허용되는 곳에서는 학교나 교사라면 지긋지긋하다고 하는 이들이 꽤 많습니다.하지만 우리의 배움이 결코 학교라는 테두리에서만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면, 교사나 교수가 아니라도 살면서 내 스승이 된 사람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그 사람이 바로 스승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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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에게 해를 끼치는 사람과의 관계 안에서도 우린 배울것이 있습디다.

음메 기죽어~
훈장이 몇개여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6 17:03   좋아요 0 | URL
해를 끼친 놈들은 쥐어 패줘야 하구요...그런데 훈장이 뭔가요? 서재의 달인 저거 말씀하시는지?

비로그인 2010-05-16 23:01   좋아요 0 | URL
네~~서재의 달인...그 머시기요.

쥐어 패주면 되는거예요?ㅋㅋ

노이에자이트 2010-05-17 16:24   좋아요 0 | URL
네에...쥐어 패주면서 배울 수 있는 건 주먹쓰는 법이죠.살다 보면 필요하기도 한 기술입니다.물론 조용히 살고 싶지만요.
 

   최근 쓰는 일보다 읽는 일에 더 치중하려고 합니다.작년과 올해 5월 초까지만 해도 하루 평균 공책에 6페이지를 썼습니다.그런데  여기서 지식욕이 지나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절제해야겠습니다.읽는 것에 너무 게을러지고 쓰는 것에만 신경을 쓰게 되니까요. 

  읽는 것은 실제 계량화할 수가 없습니다.그에 비해 쓰는 것은 흔적이 남으니 뭔가 이루었다는 느낌을 주게 되지요.하지만 그대신 읽는 분량은 현저히 줄어들게 됩니다.못읽고 버리는 신문지가 많아지기 시작합니다.좋은 글도 그냥 묶어서 내버립니다. 

  신문의 제일 끝의 사설,논설,칼럼 등을 정독하기 시작했습니다.특히 보수신문의 사외필진들의 글을 주목하고 있습니다.이런 글에는 '외부기고는 신문사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한 고지문에 해당하는 것도 있습니다.이런 글에 의외로 날카로운 글이 있습니다.최근 천안함 사태에 대해서 제가 요즘 읽어본 동아일보 내부필진들의 글은 사설을 포함해서 굉장히 강경합니다.북에 대한 규탄은 물론 김정일의 방중을 받아준 중국에 대해서도 조금만 더 과장한다면 "무찌르자.중공 오랑캐!"라는 구호가 튀어나올 것 같은 글도 많습니다.하지만 외부필진들 중에서는 훨씬 더 신중한 자세를 주문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인터뷰 기사나 지방소식 등도 이젠 읽는 재미를 느껴야겠습니다.한동안 소홀히 했던 제 전문분야 동북아 근현대사에 관한 책들도 다시 들춰보고 있습니다.읽는 게 더 좋기도 하거니와 쓰는 게 너무 힘들기도 합니다.필기해 놓은 공책은 점점 쌓이고 이걸 내용별로 색인으로 정리하는 것도 점점 미루었더니... 

  무엇이든 중용이 중요하다는 것을 절감하고 있습니다.독서도 필기도 다 마찬가지입니다.혹시 누군가에게 "나는 이렇게 필기를 많이 했다구"하고 보여주기 위해서 미친듯이 필기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공부도 내가 즐거워야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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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16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쓰는 것보다 남의 리뷰를 보는 걸 좋아합니다.
다 자기 즐겁고 좋아하는대로 하면서 사는거죠 뭐~^^

노이에자이트 2010-05-16 16:52   좋아요 0 | URL
동감입니다.

BRINY 2010-05-17 11: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띠잉~ 자극받고 갑니다. 전 좀 써야합니다. 하루에 분량 정해놓고 쓰기.

노이에자이트 2010-05-17 16:06   좋아요 0 | URL
뭐든지 일단 시작하시면 됩니다.생각은 그만하고 실행을 해야지요.

비로그인 2010-05-18 0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맞아요. 읽지 않으면 이야기 거리도 없어져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8 16:47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지식을 얻습니다.지식을 얻는 통로는 크게 두 가지입니다.하나는 직접 경험을 통해서이고 또 하나는  책을 통해서입니다.사람이 경험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아무래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책을 통한 간접지식을 얻는 것이 중요합니다.하지만 직업을 얻고 나서는 아무래도 직업 속에 매몰되는 경향이 있습니다.흔히 하는 말로 직업적 사고로 머리가 굳어지는 것이지요.직업에 종사한 지 오래될수록 이런 경향은 심해집니다.그래서 학문적인 지식이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적어지게 됩니다.이런 때 자신의 견문을 넓히는 대안은 다른 분야의 직업을 가진 사람,특히 나와 다른 인생을 산 사람의 경험담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식을 쌓는다고 지혜가 바로 생기지는 않습니다.그것은 직업적 지식이든 학문적 지식이든 마찬가지입니다.지식에서 지혜로 넘어가는 과정은 좀더 성숙한 자세를 요구합니다.바로 낯설고 다른,새로운 것에 대해 수용할 수 있는 자세입니다.독서에서도 늘 자신의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성향과 같은 책만 읽게 되면 편협하게 됩니다.늘 자기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만 접하게 되어도 마찬가지 매너리즘과 독선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과 다른 정치적 성향을 지닌 저자의 책을 읽는 데에도 어느 정도 용기와 함께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자기와 다른 분야를 경험한 사람을 직접 접하는 데에는 더 말할 나위가 없지요.나와 다른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의 경험을 흡수하기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듣는 자세입니다.남과 대화할 때 내 할말만 하면 상대의 지혜를 들어볼 여지가 없게 됩니다.남의 말을 안 듣고 자기 하고 싶은 말만 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이런 자세는 타인을 멀게 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손해입니다.내가 모르는 세상을 알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차단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나이를 먹으면 경험을 얻는 것에 비례해 사고도 굳어지고 편협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그래서 나이를 많이 먹어도 지혜는 없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이런 식으로 나이를 먹는 사람들을 우리는 "나이값은 못한다.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합니다.어른스럽지 못하고 유치하다고 해서 그런 사람들이 어린이나 청소년처럼 순수한 마음이 있느냐 그것도 아닙니다.오래 살았기 때문에 세속적인 약삭빠름은 있지요.간단히 말해서 때는 묻었지만 남들에게 지혜를 가르쳐 줄 수 있는 깊이가 없는 인간입니다.이런 인간들의 특징은 독선이 심하며 남의 말을 듣지 않고 진부한 훈계를 늘어놓기를 좋아한다는 점입니다. 

  대학물을 먹은 사람들은 대학에서 얻은 경험만이 대단한 것으로 착각하기 쉽습니다.하지만 일찍 사회생활을 한 사람들에게서 얻을 수 있는 것도 많습니다.상급학교를 진학하지 못하고 일찍 직업전선에 뛰어든 사람들은 대학에서 학생들이 강의실에서 지식을 쌓는 동안에 사회생활하면서 지식을 쌓은 것입니다.물론 그런 지식이 무슨 지식이냐 하고 깎아내린다면 할 말은 없습니다. 

  우리나라에만 있는 관행인데 대학물 먹은 사람들 상당수가 처음 보는 사람에게 학번을 묻는 게 있습니다.이 버릇만 고쳐도 대학을 나오지 않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내가 모르는 세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알 수 있게 됩니다.그런데 학번을 물어봄으로써 "저는 대학을 안 나왔는데요..."하는 답변이 상대방으로부터 나오기 시작하면 그 모임의 분위기는 어색해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가까운 일본이나 중국 같은 나라에서도 이런 기괴한 관행은 없다고 합니다.하기야 신문기자들이 기사로 운동선수를 소개할 때 고졸신인이니 뭐니 하는 단어를 아무 거리낌없이 쓰는 나라이니 더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좀 더 열린 마음으로 다른 세상과 소통하면 편협한 지식이 넓어지고 지식은 지혜로 꽃피울 것입니다.나이 차이가 나면 우선 형님동생을 따져야 하고 학력과 경제력이 차이가 나도 함께 어울리지 못하니 우리나라 사람들의 친구범위가 한정되는 것은 당연한 것 같습니다.어른들은 그런 식의 편가르기를 어린이에게도 강요합니다.이래서는 새롭고 다른 세상을 접할 수가 없지요.결국 새로운 것을 배움으로써 지혜를 쌓을 수 있는 길이 좁아지니 안타깝기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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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그레이효과 2010-05-13 18: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공감의 추천 눌렀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14 17:09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다.

L.SHIN 2010-05-13 23: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구절절 맞는 말, 마치 내가 말하는 것 같습니다.(웃음)

노이에자이트 2010-05-14 17:09   좋아요 0 | URL
아하...그런가요?

군자란 2010-05-14 09: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꼭 저한테 타이르는 말인것 같네요.지식만 있지 지혜가 없는 생활, 문제의식만 있지, 열매가 없는 삶.

노이에자이트 2010-05-14 17:10   좋아요 0 | URL
그렇게 인정하는 것 자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흑해 2010-05-14 15: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좋은 말씀입니다. 그런데 지식이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생산된다고 봤을 때 지식이라는 것 자체에 이미 편협함이 포함되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지식 자체가 사회 속에서 '진리의 형식'을 띠고 생산되고 유통되기 때문에 편견이나 편협함과 분리되기 어렵지 않을까요?

노이에자이트 님의 말씀에 동의하긴 하지만 저는 지식의 한계를 잊지 않는 것, 그 지식의 지배효과를 판단할 수 있는 것이 지혜가 아닌가 싶습니다. 때로는 지식으로부터 배우지 않는 것이 "지혜"가 아닐까요.

아래에 원어를 사용하는 추세를 비판하셨는데```, 글쎄 어느 쪽 손을 들어줘야 할지? 가령 Witch의 번역어는 '마녀(魔女)'라고 쓰이고 있지만 이것은 간호사나 초등학교 교사들 중에 여성이 많다고 그 직업에 女를 붙이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그렇다고 제가 마녀라고 안 쓰는 건 아닙니다.

말도 안 되는 번역어나 수긍할 수 없는 번역어가 많지 않다면 노이에자이트 님에게 흔쾌히 동의할텐데 안타까운 일입니다. 의미를 전달할 적절한 번역어가 없다면 음차를 하거나 어색하더라도 직역을 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14 17:11   좋아요 0 | URL
저는 특히 윗글에서 학력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사회생활을 일찍하면서 배운 경험도 인정하는 게 필요하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지식의 한계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데에 공감합니다.
 

   짐승은 순우리말이고 동물은 한자어라는 차이 외에 이 두 단어가 풍기는 느낌이 또 다릅니다."저는 동물을 좋아해요"와 "저는  짐승을 좋아해요"의 차이가 뭘까요.전자에 비해 후자는 왠지 나이먹은 사람들의 용법같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실제로 시골사람들은 "짐승을 이뻐라 한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그래서 요즘은 잘 안 쓰는 표현을 예로 들어서 짐승이란 단어가 들어가는 단어를 알리고자 합니다.

  저는 40년 전의 아주 오래된 번역서들을 읽는 묘한 취미가 있습니다.60년대나 70년대 초만 해도 지금보다 우리말의 순수함,토속성이 비교적 살아 있던 시대였고 이 당시 번역어들을 보면 우리말을 살리려는 노력이 지금보다 더 많은 느낌을 받습니다.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단어들입니다.포유류라는 한자어를  우리말로 젖빨이 짐승이라 했습니다.정확한 표현이지요.실제로 포유류가 무슨 뜻인지 한자를 하나 하나 지적하면서 설명할 수 있는 이는 드뭅니다.그런데 젖빨이 동물이라 하면 아주 정확히 뜻을 감지할 수 있지요. 

  그러면 조류는? 날짐승. 네발달린 동물은? 길짐승입니다.우리가 한자어로 야생동물이라고 뭉뚱그립니다만 이것도 사는 장소에 따라 산짐승,들짐승으로 구별합니다.단순히 짐승=동물이라고 아는 것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 수 있지요.그 중에서도 최고의 절정은 양서류의 순우리말입니다.양서류의 원래 뜻은 물과 육지 양쪽에서 살 수 있다는 뜻에서 양서류인데 이 단어의 순우리말이 물뭍짐승입니다.뭍이 육지의 순우리말이지요.이렇게 되니 동물들의 사는 모습까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저는 언어 민족주의에 반대하지만 이렇게 글의 의미 자체를 명확히 알 수 있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예스런 표현이 실용성에서 도움이 될 수도 있음을 소개하는 것입니다.

  어제 시골에 갔다 왔습니다.뒷산에 가니 예전에 비해 까투리(암꿩)가 많이 보입니다.이 친구들은 사람이 가까이 가면 풀섶에서 소리를 내며 하늘로 날아 오릅니다.아쉽게도 장끼(수꿩)를 보지는 못했습니다.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깃털을 가진 새 중의 하나인데 그 좋은 구경을 못했군요.한가지 재밌는 것은 꿩의 새끼를 꺼병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얼마전 고인이 된 길창덕 씨의 만화주인공 꺼벙이가 꺼병이와 관계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마을에 닿자 마자 입구의 동물농장에서 전에는 못들어본 소리가 납니다.아하...칠면조로군.그리고 바로 확인했습니다.저 집은 올해는 칠면조를 기르는 모양이로군...예전엔 거위 소리만 요란했지요.거위들은 낯선 사람을 보면 소리를 크게 질러서 주인이 밖을 내다보게 되지요.이제 그 농장은 칠면조 소리 때문에 거위 소리가 묻히게 생겼습니다. 

  저는 동물이나 새의 발자국만 보면 그  주인공을 알아맞히는 기술을 익히고 싶습니다.산속에서 식용식물과 독초를 구분하는 능력도 갖추고 싶구요.지금도 제 능력은 보통 도시사람보다는 훨씬 낫습니다만 이런 솜씨로는 아직까지 야생에 파묻혀 살았다는 그리즐리 아담스엔 훨씬 못미치지요.나이가 들면 산 모양만 보고 어떤 어떤 동물이 살고 어떤 식물이 있는지 단번에 맞힐 수 있는 달인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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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5-09 17: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칠면조의 길고 쭈글쭈글한 목은 굉장히 징그럽죠. 거위는 상당히 호전적이고요.
가끔 다큐 보면 배설물이나 발자국 크기 같은 것으로 추리하는 걸 보면 재밌어요. 같은 지식을 갖고 누구는 밀렵을 하고 누구는 보호를 하는 걸 보면 선과 악의 대결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9 18:01   좋아요 1 | URL
하하하...칠면조가 좀 요상하게 생기긴 했죠.거위는 낯선 사람 따라 다니면서 짖어대고...
제가 동물 발자국만 보고 알아맞히는 능력을 공부하려고 해요.어떤 사람은 개짖는 소리만 듣고 품종을 알아맞히더군요.밀렵꾼들에게 고용된 이들은 어느 골짜기를 먼 데서 바라보고 저기 멧돼지가 있다고 알아맞힌답니다.

쟈니 2010-05-09 2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물짐승.. 언젠가 친구랑, 바닷속 생물에 대해 '물고기'라고 말하는게 적당하지 않다는 이야기를 했어요. 왜 모두 '고기'라고 묶는지.. 이제 물짐승이란 말을 써야겠군요.

노이에자이트 2010-05-09 21:40   좋아요 0 | URL
물짐승이라...허허...또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군요.그런데 저는 물에서 사는 포유류라는 뜻으로 알았습니다.

blanca 2010-05-10 13: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뭍불짐승^^;; 의외로 그런 표현들이 많이 죽었더라구요. 너나들이 이런 것도. 순우리말에 저도 관심이 많은데 활용을 잘 안하게 되더라구요. 저는 꽃이름 보고 다 대번에 맞추고 싶다는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욕망만 가지고 있을뿐 실천은 없지요. 칠면조 소리는 어떨까. 궁금해지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5-10 16:10   좋아요 0 | URL
뭍불짐승? 오타겠지요? 우리말 표현력을 높이기 위해선 아무래도 좀 오래된 한국단편을 읽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그렇다고 사람들이 안 쓰는 단어를 굳이 과시하듯 쓰는 것도 비호감이지요.여하튼 언어란 사람과 대화하는 도구니까요.

칠면조를 안 보신 분이 의외로 많나봐요.이상하게 생겼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은데...소리가 좀 희한하지요.

2010-05-10 13: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5-10 16: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흑해 2010-05-10 14: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저는 그런 말들을 살리는 데 반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장려하고 싶습니다. 다만 하나의 말을 살리면서 굳이 다른 말을 "삭제"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는가를 문제 삼고 싶습니다. 표준어 정책이나 방송국에서 강조하는 "바른 말 고운 말" 같은 것들도 문제가 많다고 봅니다.

그 "바른 말 고운 말"에 해당되지 않는 것들은 사라지는 게 마땅한 걸까요? 실용성의 차원을 강조하셨지만 중국의 소수민족으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는 한자보다 더 어렵고 불편하다고 간주되는 문자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님이 더 자세히 아시겠지요.

그런 것들이 과연 사라져야 하는 걸까요? 전 세계에 존재했던 약 6800 개 언어 중에 절반 정도가 이미 사라졌거나 사라지고 있는 중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표준적인 것을 좋아하는 근대 사회의 찬란한 업적이지요. 그런 언어들(말이나 문자) 중에는 우리가 보기에 불편하거나 실용적이지 않은 것들이 많습니다.

언어라는 것은 그 나름의 고유한 역사와 문화가 담겨져 있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이 없어진다는 것은 하나의 세계가 없어지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없어지는 게 마땅하다는 생각이 팽배해지고 있는 요즘의 세상이지만 그 생각 자체가 이미 폭력적인 것이죠. "영어 광풍(狂風)"의 논리가 바로 그것입니다.

저는 흑해(黑海)를 "검은 바다"라고 쓰지 말자고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표현들을 모두 살리자는 견해를 취하고 있는 겁니다. 오히려 실용적인 태도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불편함을 감수하면서 살아갈 것을 강조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의 세태를 보면 이런 주장들이 먹혀들지 않을 거라는 건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실용성과 편리함을 추구하는 언어 태도가 수많은 언어들을 삭제시키고 있는 추세를 어떻게 막겠습니까? "잉글랜드 말"의 헤게모니나 표준어 중심의 헤게모니를 무너뜨리지 않는 한 불가능하겠죠.

순우리말의 "純"도 한자어입니다. 그리고 순수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른바 "순우리말"이란 것도 어떤 "순수한 것"이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이데올로기의 일종이라고 생각합니다.

고유한 우리말(표준어만이 아니라 방언들까지)을 살리는 데 저는 찬성합니다. 하지만 되묻고 싶습니다. "순수한 말"이라는 게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까요? 고유하다는 것과 순수하다는 것은 서로 다른 표현입니다. 고유한 것은 존재하지만 순수한 것은 없습니다.

"순"우리말이라는 표현은 "순수한 것이 존재한다"는 사고방식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말을 쓰는 분들이 일일이 따져가며 그 말을 쓰지는 않겠지요. 그러나 따지고 들어가면 그런 식으로 사람들이 생각하게 만들려고 만든 말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5-10 16:08   좋아요 0 | URL
저는 시골촌로들이 쓰는 일본어 흔적이 남은 단어들을 일제잔재니 뭐니 하면서 못쓰게 하는 것에 반대합니다.예를 들어 다라이를 굳이 양동이로 바꿔말해야 한다던가 그런 것입니다.
저는 실용성 외에 어휘력을 늘리기 위해서라도 한자어나 영어를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어 보라는 권유를 많이 하는 편입니다.사실 일본인들이 서양의 근대과학 철학 용어를 원어 그대로 썼다면 얼마나 불편했겠습니까.외국의 문물을 수용할 때 거기에 맞는 번역어 하나를 선택하는 고심의 과정에서 문화도 발달하고 그런 것입니다.요즘은 번역어를 고안할 생각을 안 하고 원어를 그냥 쓰는 추세더군요.그게 사실 사고의 빈곤함을 드러내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