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할머니가 혼자 운영하는 헌책방을 오랜만에 갔습니다.가는 길에 귀여운 강아지와 5분 놀았습니다.5개월 되었다고 주인이 말해주네요.덩치는 꽤 큰 수컷 진도견인데 호랑이 무늬가 있는 잿빛입니다.예전엔 이 품종은 진짜 진도견이 아니라고 없애버렸지요.역시 나이가 어린지라 애기 같은 짓을 하는군요.주인 말로는 남에게 별로 붙임성 있게 대하지 않는 강아지라는데 아무래도 내 미모를 보고 반가워하는 것 같습니다.동물들도 외모지상주의를 상당히 신봉하니까요.
헌책방은 큰 탁상식 서가에 가로 막힌 쪽의 붙박이 서가는 출입하기가 어려워 2년 전에 봤던 책이 그대로 꽂혀 있습니다.당연히 손님들은 그 구석에까지 비집고 가서 책을 구경하려고 하지 않죠." 할머니. 여기 이 서가를 저쪽으로 치워야 이 쪽 책을 편히 구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고 이야기했으나 공간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답변.
한때 자주 다녔기 때문에 이 집의 책들은 어디에 뭐가 꽂혀 있는지조차 다 아는 정도죠.한꺼번에 여러 권 사기는 그렇고 우선 7권을 샀습니다.사놓고 보니 일제시대 때부터 5공까지를 두루 포괄하고 있군요.고물상에서 사는 정도의 값만 내고 샀습니다.앞으로도 와서 몇 권 더 사야겠습니다. 산 책들을 소개하면...
일제시대 다룬 소설. 임영춘 <갯들>(현암사1981)---이 책은 전북 김제의 일본인 농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조정래 <아리랑>에도 이 지역이 나옵니다.경제사에서도 중요시하고 있는 지역이라 소설로 어떻게 형상화했는지 궁금해서 골랐습니다.소설가 김원일, 평론가 구중서의 추천사가 있군요.
한국전쟁 직후의 소위 양공주를 다룬 안정효 <갈쌈>(책세상 1986)---이 소설은 나중에 <은마는 다시 오지 않는다>로 제목이 바뀌어 나왔고 영화로도 나왔습니다.그 무렵 안정효의 <하얀 전쟁> <헐리우드 키드의 생애>등이 계속 영화화되었지요.안정효가 어릴 때 동네에서 알고 지낸 어느 집안의 이야기를 소설화한 것입니다.유엔군에 강간당한 어느 젊은 과부가 전후에 양공주로 나선다는 슬프고 쓸쓸한 이야기...
서동훈 <미친 놈들>(대가 1982)---정치소설입니다.자유당 때의 정치인 사업가들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수법을 그렸습니다.당시 시대상을 소설가는 어떻게 그렸는지 궁금합니다.김동리 씨가 추천사를 썼군요.세로줄입니다.이때부터 우리나라에서는 세로줄이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하죠.
오시림 <신의와 배신> (1984 동아서관)---방대한 전 5권의 <다큐멘타리 임시정부사>의 저자가 닉슨, 카터, 레이건 시대의 한반도 정책과 박정희 전두환 정부의 대응을 그렸습니다.부제는 '한반도를 군사적 시각에서 본 리포트'. 저자는 전형적인 보수논객답게 레이건의 확고한 안보정책으로 전두환시대의 한미관계는 안정을 찾게 되었다고 보고 있습니다.시대가 시대인지라 북괴라는 명칭을 쓰고 있는 것이 눈에 뜨입니다.특히 닉슨 시대 아시아 외교에 대한 글은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와 비교해 봐야겠습니다.박정희 시대 때의 코리아 게이트에 관한 글도 이미 사둔 <프레이저 보고서>나 시사잡지의 박동선 관련 넌픽션과 비교해 보려고 합니다.
그외 일본인이 쓴 731부대 관련 추리소설, 소설가 이병주의 칼럼집 등을 샀습니다. 이번엔 재밌는 책을 싸게 구했고 가는 길에 귀여운 강아지도 알게 되어 기분이 좋았습니다.이 책들은 휴지로 깨끗이 닦아 모셔두었습니다.아마 다음달부터 읽게 될 것 같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