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정권이던 전두환 노태우 시절 가장 특이했던 점 하나는 중고등학생들이 머리를 기르고 사복을 입고 등하교를 했다는 사실입니다.리영희 씨는 교복을 원하는 심리는 획일화를 좋아하고 자유로운 창의성을 싫어하는 심리라고 70년대에 지적한 바 있습니다만, 역설적이게도 군사정권 때 교복이 없어져 버렸거든요.오히려 문민정부가 들어서서 교복이 부활하고 이젠 일부 학생들이 두발 자유화 교복자유화운동을 하고 있습니다.이 학생들의 부모들은 거의 대부분 사복 입고 학교 다닌 사람들인데요.
이런 세상사를 보면서 역사는 단선적으로 진행하지는 않는다는 말을 떠올려 봅니다만 역시 가장 큰 의문점 하나. 왜 교복이 다시 등장했지? 하는 것입니다.저의 외삼촌은 이제 60대 중반이 되셨는데 젊었을 때부터 "도대체 뭣 때문에 애들 머리를 기르게 하고 교복을 없애 버렸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많이 했지요.외삼촌의 불만은 이 세대들의 거의 대부분이 지녔던 공통점이었을 겁니다.교복을 없애니 애들 통제가 안 되고, 청소년 범죄가 늘어난다는 당시의 염려...게다가 처음 자유화가 실시되었던 1983년은 아직 통금해제가 된 지 얼마 안 되었던 시기이니 그런 염려가 더 했습니다.그래서 나중에 교복이 부활하게 되자 많은 기성세대가 안심했습니다만...
우스개 소리로 40이 되면 모두 아저씨 아줌마 사고방식을 지니게 된다고 합니다.지금의 30대 중반에서 40대 후반 초입은 사복 입고 학교 다니며 청소년기를 보낸 사람들입니다.리영희 씨의 말대로라면 교복을 입지 않고 자유롭게 머리 기르고 사복 입고 다닌 사람들은 생각도 더 트이고 열린 사고방식을 가져야만 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은 모양입니다.
광주 광역시는 작년 지방선거 결과로 전교조가 지지하는 교육감이 당선되었는데 이 분이 내년부터 두발 자유화를 실시한다고 합니다.물론 교복자유화까진 안 한다고 합니다.얼마 전 교복 자유화 세대인 40대 초반의 아줌마 한 분과 이 문제를 놓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학생들의 두발 자유화를 반대한다는 겁니다.나는 " 두발 자유화는 물론이고 교복도 안 입고 다니던 분께서 그런 생각을 하시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습니다."하고 말했지요.그랬더니 "요즘 애들은 우리 때와 다르니 여하튼 안 됩니다" 하는 것이었습니다.아...그런가...
어찌 보면 군사정권 치하라고 해도 두발 자유화, 교복 자유화는 획기적인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역시 세월이 흘러 그 당시의 학생들도 기성세대가 되니 그 전 자신들을 염려하는 어른들과 똑같이 된 것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그 아주머니는 "우리 또래 대부분이 나와 똑같은 생각을 할 겁니다." 하고 말했습니다.음...그렇구나... 그러면서 생각난 것 두 가지.
지방소식에서 교육감이 내년에 두발 자유화를 추진하겠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여자 중학생과 이야기를 나눠 보았는데 그녀의 부모님 나이를 알아보니 바로 교복 자유화세대. 그런데 그 학생은 부모님 세대가 교복도 안 입고 학교를 다녔다는 사실을 처음 안 듯 그런 시절이 있었느냐고 신기해 했습니다.당연히 와...좋았겠다 하는 반응.
또 한 가지. 큰 건물을 청소하는 60대 아주머니와의 대화. 딸 둘이 40대로 자유화 세대라고 했습니다. "맞아요.그때 얘들이 교복을 안 입고 학교 다녔죠.나는 당연히 나라에서 왜 저런 쓸 데 없는 짓을 시키나 하고 생각했어요." 하는 아주머니.그 분의 결론은 "이제 지들도 나이가 먹고 애들 키우고 하니까...뭐? 에이...다 똑같아요.걔들도... 그 나이 되니까 다 우리와 똑같아지고 다 그런 거지 뭐..." 이였습니다.
그런데 정말 왜 교복이 다시 등장했을까요.당시 가장 많이 제기된 것이 사복을 입혀놓으니 애들이 말을 안 듣는다는 교사들의 불만이었습니다.그러면 그 시기에 실제로 청소년 범죄가 늘었던가? 그리고 교복을 다시 입히니 청소년 범죄가 줄었던가? 요즘 청소년 범죄가 점점 잔인해진다고 해서 청소년 범죄자도 잔인한 범행을 한 경우는 성인과 동일한 형량을 적용해야 한다는 여론도 있던데, 결국 교복을 입혀도 범죄예방에는 아무 효과가 없다는 것인지? 그런데 왜 교복이 필요한가?
교복만 입었던 세대. 교복을 입다가 중간에 사복을 입은 세대.모조리 사복만 입은 세대.사복 입다 중간에 교복을 입은 세대...이들이 두발 자유화에 대해 하는 생각은 차이가 있을까요.아니면 그냥 자식을 중고등학교에 보내고 있는 사람은 모두 두발 자유화에 반대일까요?
가장 재밌는 것은 내년의 두발 자유화 추진에 대한 이 지역 교사들의 반응. 거의 부정적이라고 하는데...사실은 현직 교사의 상당수가 이른바 교복 자율화 세대.결국은 바담풍 바람풍 논리인가 봅니다. 모든 합리적 의견제시를 물타기 해버리는 만능무기. 나는 바담 풍해도 너희들은 바람 풍이어야 한다! 그리고 가장 생각하기 싫은 상상 한 가지 더. 앞으로 체벌을 받지 않은 세대도 중년이 되면 자기 자식세대에겐 체벌이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을까. 교복 자유화 세대가 어른이 되어 자식들에겐 교복을 입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이건 어쩐지 섬뜩한 기분이 드는군요. 안 그러기를 바랍니다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