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과 개방성을 무기로 애플은 게임의 룰 자체를 바꾸었다는 평가를 내리는 이들이 많습니다.그런데 창의성과 개방성의 가장 큰 장애물은 경직된 조직문화입니다. 한국에서는 이 경직된 조직문화의 밑바탕에 권위주의와 위계질서가 있습니다.
삼성은 2008년, 이건희 회장의 지시로 사원들이 캐주얼 차림을 하라고 권했습니다.자율성과 창의성을 북돋겠다는 취지입니다.하지만 이런 외형적 변화가 알맹이 있는 변화로 이어졌을까요?아무리 자유로운 옷차림을 허용했다해도 기존의 관행이 그대로 남아있다면 직원들이 진정으로 변하지 않습니다.오히려 회장님의 지시니까 따라야지 하는 생각으로 캐주얼 차림을 했다면 아무 소용이 없지요.
상명하복만 있고 하의상달은 없는 조직문화에서 무슨 창의성을 바라겠습니까.삼성만 탓할 것이 아닙니다.젊은 패기로 가득 차야 할 대학생들마저도 과거의 인습과 관행을 버리지 못해 선배가 후배를 구타하여 사망자가 생기고, 또 단합대회에서 억지로 술을 먹여 1년에 꼭 몇 명씩 죽어야 한 해가 갑니다.
자율복을 입어 창조성이 생긴다면 5공 때 사복입고 중고교 다니던 이들은 모두 창조성의 화신이 되어야 합니다.하지만 이들 역시 위계질서와 구타가 판치는 질서에 의미있는 반항을 하지 못했습니다.선배와 직장상사를 하나님의 동기동창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에서 무슨 창의성이 생겨나겠습니까?
개방성과 창조성은 실패를 용인하는 문화를 허용합니다.하지만 경직된 위계질서 하에서 실패는 바로 징벌로 이어집니다.물론 예외는 있습니다.윗사람의 실수는 무한정 허용되지요.오히려 아랫사람들은 그 실수를 미화하거나 자기가 뒤집어쓰는 헌신적인 충성심을 보여야 합니다.실수에도 철저히 이중기준이 적용됩니다.
경직된 조직문화, 윗사람을 신으로 모시는 위계질서에서는 결코 노블리스 오블리쥬도 생기지 못합니다.쥐꼬리만한 권력이라도 일단 쥐면 아랫사람에게 전제군주 같이 구는데 무슨 노블리스 오블리쥬입니까.권력을 절약하는 마음이 없는 곳에서 노블리스 오블리쥬를 실천하는 사람을 찾는다는 것은 우물에서 숭늉 찾기죠.
우리는 왜 스티브 잡스 같은 경영자가 없는가? 남 탓하기는 쉽습니다.그러나 나는 창의성과 개방성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는가? 과연 나는 아랫사람의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가? 내가 지닌 이 조그만 귄력을 전제군주 같이 휘두르지는 않았는가? 나 역시 이 더러운 한국 특유의 권위주의와 위계질서를 지탱하는 톱니바퀴의 하나가 아닌가?
오늘도 나는 봅니다.해맑은 남녀고교생들이 등교길에 선배에게 조폭처럼 고개 숙여 인사하는 광경을...누가 저렇게 만들었나...저들은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경직된 위계질서는 창의성의 적인데...
**** 이 글은 이건희 씨를 비난하려고 쓴 것이 아닙니다.그런 비난은 다른 사람들이 많이 했습니다.독해력이 조금만 있다면 이 글의 취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