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 스타일이니 서구형 미인이니 하는 단어가 많이 쓰입니다.도대체 서구란 무엇인가? 폴 발레리는 유럽이란 무엇인가 하는 제목으로 거창한 글을 썼지만 나는 사전적 의미가 무언지 찾아보았습니다.상당수 사람들은 서구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모르니까요.그리고 사전에서 찾아본 결과 서구는 서유럽(western Europe)이 아니었습니다.유럽과 북미를 다 합친 것이 서구요, 영어로는 the West. 대문자 W를 써야 합니다.북미의 캐나다 미국은 서구에 들어가지만 멕시코부터는 포함되지 않지요.
그런데 이 서구라는 단어 자체가 특정지역을 가리키지 않을 때가 있어서 애매합니다.우리는 냉전 시기 때 서방진영이라는 말을 썼습니다.자유진영이라고도 했는데 이는 자본주의 진영을 말했습니다.당연히 일본까지 포함되는 개념입니다.서방 자유 진영의 일원으로써 운운 하는 연설문에도 이런 용법이 나옵니다.당연히 이와 반대되는 개념이 동구공산권 및 소련입니다.소련을 비롯한 동구 공산국가를 그 위성국으로 보는 의미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우리나라 번역어에서 서구는 서유럽이 아닌데 동구는 동유럽이라는 것이죠.
문제는 동구 공산국가가 무너지고, 소련도 해체된 이후입니다.서구에 이들 국가가 포함되느냐 하는 문제지요.예전엔 유럽에서 제일 높은 산은 알프스 산맥에 있는 프랑스의 몽블랑이었습니다(알프스산맥은 스위스에만 있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만).그런데 최근 퀴즈에서는 엘브루즈 산으로 정답이 바뀌었습니다.이 산(5642m)은 러시아와 그루지아 접경인 카프카즈 산맥에 있는데 소련이 무너지고 이쪽 나라들이 독립국이 되면서 유럽이 되었으니 이런 정답이 나온 것입니다.
하지만 카프카즈 국가들이 유럽에 포함되느냐, 서구의 일원이냐 하는 문제는 간단하지가 않습니다.예로부터 이들 나라들은 유럽에 포함되지 않았습니다.특히 러시아는 서구와는 다른 문화권이라는 인식이 러시아에도, 서구에서도 강했습니다.공산권이 무너지고 나서 이 지역도 서구에 포함된다는 인식이 있지만 아직도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이들을 온전한 서구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그래서 어떤 때는 서구에 동구 및 러시아가 빠지기도 하고, 포함되기도 하고, 아직은 혼란스런 상태지요.
한국에서 서구라는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쓰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흔히 서구 스타일이라면 괜히 멋있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것이 한국의 보편적인 정서입니다.당연히 서구형 미인이라는 말은 여성에게 최대의 찬사입니다.동남아 스타일이라고 하면 모욕으로 간주되지요.우리나라의 조금 오래된 영화배우 관련 책들을 보면 서구라는 단어보다는 좀 더 세밀하게 지역을 나눈 흔적이 있습니다.예를 들어 북구미인이라는 단어가 있는데, 이는 그레타 가르보와 잉그리드 버그만(둘 다 스웨덴 사람)을 나타냅니다.북구하면 금발에 장신을 떠올리게 합니다.그런가 하면 남구미인이라는 단어도 있는데 이는 지중해 나라, 햇볕이 많은 나라의 미인들을 가리킵니다.이탈리아의 지나 롤로브리지다, 소피아 로렌, 그리스의 메르나 메르쿠리 등이 이에 속하죠.차라리 이런 식의 구분이 더 정확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서구스타일에 동구 및 러시아까지 포함되는 추세입니다.이는 냉전이 끝나고 우리나라 모델계에 이들 나라 모델이 많이 진출한 것과 관련됩니다.러시아나 우크라이나인이 많고, 요 몇 년 사이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도 많습니다.재밌는 것은 이들을 그냥 러시아, 동구권으로 뭉뚱그린다는 점입니다.소련이 무너지고 우크라이나와 우즈베키스탄은 독립국이 되었지만 아직도 한국에서는 러시아의 아류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특히 우즈베키스탄은 아시아에 있는데도 사람들은 동유럽 우크라이나와 가깝다고 여기죠.우스개 소리로 이들 나라는 김태희가 우유 짜고, 전지현이 장작을 때는 나라로 알려져 있는데 늘씬하고 길쭉한 체형은 무조건 서구형이라고 단정하는 사고방식도 우즈베키스탄을 유럽나라로 오해하는 데 일조하고 있습니다.사실 우즈베키스탄이 어디 있는지 일일이 지도를 찾아보는 이들이 우리나라에 얼마나 있겠습니까.
우즈베키스탄을 우크라이나 옆에 있는 백인나라로 여기는 심리를 보면 우리나라 사람이 서구스타일이라는 단어를 어떤 식으로 쓰는지 드러납니다.세련되고 멋진 인상을 주는 것은 서구스타일이라는 것이죠.그래서 우즈베키스탄 사람은 일종의 명예백인, 명예서구인이 되는 셈입니다.그 사람들이 아시아 인종, 우리나라 국사에 나오는 돌궐의 후예라는 점은 고려대상이 안되죠.
서구형이니 서구스타일이니 하는 단어와 함께 세련된 도시풍의 상징이 된 단어가 뉴요커입니다.이건 섹스&시티라는 드라마가 퍼뜨린 환상이죠.맨해튼 거리,패션의 거리를 떠올리게 하는, 옷도 잘입고 돈도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가리킵니다.불과 20여년 전만 해도 찰슨 브론슨의 액션영화에 나오는 뉴욕은 범죄소굴이었죠.하지만 이제 뉴요커 같다는 말은 최대의 찬사입니다.특히 여자에게는 "서구형 미인이시군요.뉴요커 같아요" 해주면 좋아라 합니다.
서구라는 단어를 한국인이 무슨 뜻으로 쓰는지를 더 자세히 탐구한다면 언어학이나 사회학의 좋은 논문자료가 될 것 같습니다.참고로 나는 세계의 모든 미인들을 인종과 무관하게 다 좋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