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간 차이가 가장 잘 드러나는 취향은 역시 국내 가요. 가을, 특히 10월 말에서 11월이 되면 스산한 분위기에 어울리는 가을 노래를 하나 둘씩 흥얼거리게 되는데...며칠 전 안경점에 들렀더니 60줄에 접어든 남자손님, 50을 갓넘은 안경점 사장, 20대 후반의 여자 안경사가 있었습니다.그러다 60대 남성과 50대 사장님이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60남: 내 조카딸이 있는데...아...얘가 배호와 차중락을 혼동하더라고...낙엽따라 가버린 사랑이 원래 엘비스 노래인데 번안곡이잖아요.차중락이 부른...그런데 배호의 마지막 잎새가 엘비스 노래라는 거야...하긴 걔 나이 또래가 그걸 구별할 나이는 아니지...아마 배호와 차중락 목소리도 구별 못할 거요.어디서 두 사람이 요절했다는 말은 들은 모양이여~
사장:조카 분이 몇 살이나 됩니까?
60남:가만...걔가 이제 40넘었나? 왜...거...중고등학교 때 사복 입고 다니던 애들 있잖아요? 그 또래들이지...40대 초반일 거야...그 또래들이 이용의 잊혀진 계절은 알더라고...걔가 국민학교 때 그 노래가 나왔을 거야...아니 중학교 때던가...여하튼 전두환 초창기였어요.
사장:아하...그러겠네요. 낙엽따라 가버린 사랑과 마지막 잎새를 구별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마지막일 거에요.40대 중반만 해도 잘 모를 겁니다.배호나 차중락이 노래를 잘 불렀지요.
60남:아...그렇죠.사실 나도 이제 60을 훌쩍 넘겼는데, 이용이 처음 나왔을 때 무슨 기생 오래비 같은 게 나왔나...왜 저런 애를 요즘 여자애들이 좋아하나...했는데 그때 그 요즘 여자애들이 이젠 50줄이 되어가고 있으니...우리 조카애도 요즘 애들 노래는 따라 못부르겠다고 합디다.그러니 나는 말할 것도 없지...하긴 우리 조카애도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좀 늙었더라고...여자라서 더 그런 것 같아...아무래도 여자애들은 스스로도 같은 또래 남자들보다 나이를 더 의식하는 것 같애...
사장:아무래도 그럴 거에요.남자들은 40대 초반에 늙었다는 생각은 안 하죠.
60남:아이고...그 나이는 청춘이지...(안경사에게) 근데 요즘 젊은 사람들은 가을에 무슨 노래를 좋아허요? 뭐 설마 나훈아의 낙엽이 가는 길을 좋아하진 않을 거고...
안경사:저는 성시경의 거리에서가 좋아요.왁스의 여정도 좋고요...
60남:나는 통 모르겠네...사장님은 그 노래 알아요?
사장:나도 잘 모르겠는데요...성시경이 누구여...(나를 보며) 손님은 아십니까?
나:예.알죠. 노래를 잘 부릅니다. 안경사 선생님과 제가 취향이 같네요.그런데 요즘 인기있는 광주 출신 가수가 한 명 있는데 가을에 들으면 괜찮은 노래도 부르고...
사장과 60남:거 누구요?
나: 수지라고...제 고향 후배예요.얼굴도 이쁘고 노래도 잘해요.드라마에도 나왔어요.
사장:수지? 나는 최수지밖에 모르겠는데...수지가 또 있나요...
나:아유...마흔 살 넘은 수지 말고, 스무살 안 된 미쓰 에이 수지라고 있어요.
60남:미쓰 에이? 다방 레지 이름 같네...(안경사, 고개 숙이고 웃음 참느라 용을 쓰는 모습)그나 저나 젊은 양반은 (나를 보면서) 배호의 마지막 잎새라는 노래를 알랑가 모르겠네잉~
나:(감정 잡고) 그 시절 푸르던 잎...오늘은 낙엽지고...이렇게 하는 노래죠?
60남:아따...맞소...근디 배호 노래를 좋아할 나이는 아닌 것 같고...
안경사:미쓰 에이 아실 연세도 아니신데...삼촌 팬이시네요.
나:요즘 광주 출신 가수들 이쁜 사람 많아요.구하라도 있고...
사장:구하라? 교회 다니는 사람인가? 구하라 주실 것이요...
60남:일본 사람 이름 같기도 하고...일본에 무슨 무슨 하라...그런 이름이 많더라고...(안경사, 웃겨 죽을 것 같은 표정)
나:요즘 걸그룹 중에서도 구하라하고 수지는 이쁘기로 첫손가락에 꼽혀요.
60남:아...그러요? 그러면 우리 애들한테 인터넷 찾아보라고 해야 쓰것네잉...얼마나 이쁜가 한 번 확인해야 쓰것구마잉~그나저나 이쁜 건 사실이오?
나:그럼요.인형이 따로 없어요.
***차중락은 1968년, 배호는 1971년 작고했으며, 둘 다 서른을 채 살지 못했음.
*** 이 날 안경점에서 오고간 대화에 살을 붙여 단편소설을 써볼까 생각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