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잠에게
박새한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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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끄 3기의 4번째 책이 도착했어요. : ) 이번 책은 박새한 작가님의 <오늘의 잠에게>예요. 위트있는 줄거리와 정형화된 그림이 눈에 띄어요. 뭉끄 활동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책이고, 표지-면지-속표지-내지의 흐름이 인상 깊었던 책 중 하나예요.

<오늘의 잠에게> 줄거리 
모두를 재우고 다니는 잠은 문득 '나는 왜 잠이 없지?'하며 궁금해해요. 잠은 잠에 들기 위해 이곳저곳을 돌아다닙니다. 민들레에 몸을 뉘어보기도 하고 왕의 침대에 누워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잠은 오지 않아요. 잠은 눈물이 날 것만 같죠. 과연 잠은 잠에 들 수 있을까요?

1. 그림체
이 그림책은 줄거리도 독특하지만 그림이 정말 매력적이에요. 동그라미와 네모로 이루어져 있어요. 작가님은 모양자를 사용해 그림을 그리신대요. 잉크로 라인을 그리고 마카로 색을 칠한다고 합니다. 선명하면서도 부드러운 색감이 책의 판타지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보면서 수채화는 아닌 것 같은데 이 도구가 뭘까... 했는데요. 정답은 바로 마카였어요!ㅎㅎ 

2. 한국과 프랑스
박새한 작가님은 한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후, 지금은 프랑스에서 지내고 계신다고 해요. 그래서 그림책에서 한국의 서울, 프랑스의 알자르 지방의 풍경이 번갈아 나온답니다.ㅎㅎ 실제로 이 책은 한국과 프랑스 출판사 두 곳에서 동시에 출간되었다고 해요. 그림을 보며 이곳은 어디일지 생각해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아요.

3. 꿈
잠 캐릭터가 등장하는 부분에는 전부 흰색 테두리가 있어요. 주변의 둥근 모양들이 그 부분을 생각 말풍선 모양처럼 꾸미기도 하죠. 마치 영화 스크린 같아요. 저는 이 부분을 '꿈의 경계'라고 보았어요. 실제로 주인공이 잠에 들면서 이 경계가 사라지고 잠 캐릭터도 사라지거든요. 고양이 기차가 꿈을 몰아온 후, 경계가 흐려지며 오직 암흑만이 남아요. 꿈은 우리가 얕은 잠을 잘 때, 즉 렘 수면일 때 주로 나타난다고 해요. 깊은 잠을 잘 때는 꿈을 꾸지 않는 것이죠. 그러므로 잠 캐릭터가 나오는 부분은 주인공이 잠에 드는 과정 중 한 부분이었다는 것이에요. 이후 나오는 암흑은 주인공이 진짜 잠에 들었음을 의미하죠.

4. 수미상관
내지의 앞장과 뒷장 구조가 같은 걸 보며 책이 짜임새 있게 만들어졌다 생각했어요. 눈을 뜨고 있던 주인공이 눈을 감고 있고, 흰 홀씨던 민들레가 노란 꽃을 피우고, 별이 내리던 하늘에 달이 뜨죠. 이 달도 <오늘의 잠에게> 중간에 나와요. 바로 잠의 감은 눈이랍니다.ㅎㅎ 민들레와 고양이, 그리고 달까지! 작은 복선까지 마지막 장에서 전부 회수해요.

5. 잘자
'잘 자'라는 말이 따뜻한 인사인지 알고 계신가요? 이 말은 많은 고민과 힘듦을 내려놓고 잠을 자는 시간만큼은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고는 해요. 잠은 정말 중요하거든요. 잠의 질이 하루의 질을 결정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만약 불면증을 가진 친구가 있다면, 또는 잠 드는 데에 어려움을 겪는 친구가 있다면 이 책을 선물해주세요. 잠에 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다 빙하 위에 누워 쉬어가는 잠의 모습은 공감을 자아내면서도 위안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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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 박화성과 박서련의 소설, 잇다 6
박화성.박서련 지음 / 작가정신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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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단 13기의 첫 책은 <정세에 합당한 연애>였어요. 책을 읽기 전, 제목을 보고 '정세'란 무엇일까? 하고 생각해봤어요. '주류와 권력이 만들어내는 것'이라 정의내려봤죠. 사회의 주류가 되는 사람들은 권력을 가진 채, 정세를 만들어내니까요.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를 읽으며 아주 중요한 것을 알았어요. 바로 우리나라의 정세에는 '가부장적인 가치판단'이 실려 있다는 것이에요. 결혼을 꼭 해야만 해, 계급이 다른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 여성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 여성과 여성의 사랑은 이루어질 수 없어... 100년의 간극이 있는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내용이 공감이 가고 이해가 갔어요. 안타까우면서도 '그 정세란 것이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토록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나' 하는 답답함도 생겼습니다. 시리즈 소개 작가정신의 '소설, 잇다' 시리즈는 대표 근대 여성 작가들의 주요 작품을 오늘날 사랑 받는 현대 작가들의 작품과 나란히 읽는 시리즈예요. '소설, 잇다'의 여섯번째 주인공은 박화성 작가님과 박서련 작가님이셨어요. 박화성 작가님의 소설 <하수도 공사>, 그리고 <하수도 공사>에 영향을 받은 박서련 작가님의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 이 두 소설을 나란히 읽으며 근대화 현대가 겹쳐지는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하수도공사> "용희! 나는 용희를 정말 사랑하고. 그러나 나는 우리의 사랑이 현재 우리 정세게 합당하지 못하기 때문에 항상 스스로 억제하는 때가 많소." / 하수도 공사를 두고 임금체불이 생기며 노동자들은 들고 일어나기 시작해요. 주인공 동권도 그들 중 한 명이었죠. 그가 사랑하는 여인, 용화는 귀족 집안의 영애예요. 동권과 용화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동권은 용희에게 '우리 사랑은 정세게 합당하지 못하다'라고 말해요. 우리 사랑이 왜 합당하지 않느냐 묻는 용희에게 '(신분 차이로) 결혼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 이 답에서 독자들은 두 가지 '정세'를 발견할 수 있어요. '노동자와 영애의 사랑은 이루질 수 없어', '결혼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였어'. 이 두가지는 여느 소설에서도 잘 나타나는 부분이기에 특수성이 두드러지지 않는데요. 하나 더 더해지며 이 소설의 방향이 확실히 드러나요. 영애 역인 용희는 그 정세에 빗겨 있다는 것이에요. "결혼만 하면 좋은가? 사랑만 하면 그만이지"라고 말하죠. 이 둘의 관계에서 정세를 따지자면 용희가 아니라 동권이라는 것이에요. 동희는 남성, 용희는 여성이었기 때문이죠. 동희가 용희를 정말 동지,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 자체로 보았다면 그 정세들을 이겨내고서 '사랑'만 했대도, 행복하지 않았을까요. <정세에합당한우리연애> "동권이 정말로 용희를 동지라고 여겼다면, 동등한 입장에서 사고하고 행동하는 존재라고 느꼈다면 어째서 용희의 의견을 존중하지 않았을까?" / 주인공 림과 진은 연인 관계예요. 이 둘은 독서 동아리를 하고 있고, 그 동아리에서 <하수도 공사>를 읽습니다. 진은 학교에서 처음으로 여성 총학생회장 자리에 오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림은 동아리 사람들에게 우리의 관계를 말하자고 제안합니다. 림은 토론을 하며 진의 눈을 바라보며 말해요. '우리는 정세에 합당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요. / <하수도 공사>는 계급의 정세가 주가 된다면,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는 성별의 정세가 주가 되는 소설이에요. '여성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를 수 없어'와 같은 것들 말이죠. 여기에 더해 하나의 정세가 더해집니다. 바로 '성정체성'이죠. 진과 림은 레즈비언입니다. 여성 총학생회장이 된 적이 없다는 것과 유력 후보자가 레즈비언임이 나타나면 가지게 될 더한 소수성. 진이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일지 림도 잘 알아요. 그렇지만 진에게 말합니다. 정세에 합하지 않는 연애는 없다고요. 중요한 건 '연애란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라는 거예요. 그 테두리에 있는 다른 말들은 모두 부술 수 있는 것들이에요. 정세는 가치 판단으로 이루어진 것들이​니까요. 절대적인 게 아니니까요. 저는 오늘날 다시 쓰인 <정세에 합당한 우리 연애>가 박화성 작가님의 <하수도 공사>를 완성한다고 생각해요. 동권과 용희의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에 수긍하던 독자도, 진과 림을 보며 알게 될 거예요. 동권이 말한 '정세에 합당한 연애'란 어쩌면 부서질 허상일지도 모른다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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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섬에 가 보자!
김민우 지음 / 문학동네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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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을 딛고 시작에 발을 디뎌봐! : <우리, 섬에 가 보자!> (문학동네, 김민우) 9월, 뭉끄 3기가 받은 그림책은 <우리, 섬에 가 보자!>예요. 이번에는 작가님 친필 사인이 면지에 그려져 있었어요. 책을 열자마자 나온 사인에 정말 설렜어요 : ) 둘의 모습이 너무 귀여웠답니다.ㅎㅎ 뭉끄들에게 친필 사인을 그려주신 김민우 작가님, 감사합니다.💌 <우리, 섬에 가 보자!>에는 강아지 '귤'과 고양이 '가지'의 모험기가 적혀 있는데요. 우정, 모험, 용기, 응원이 보이는 그림책이었어요. 노을 지는 바닷가에 앉아 서로를 바라보는 모습이 오래 기억에 남았어요. 눈 앞에서 보라빛 노을이 펼쳐지는 데도 서로를 보고 있는 둘의 모습을 보며 서로가 서로에게 얼마나 소중한 존재일지 생각했답니다.ㅎㅎ #줄거리 도시에 사는 강아지 '귤'과 고양이 '가지'가 섬으로 떠나는 이야기예요. 가지는 사진 속 섬을 보고 한 눈에 반해버렸어요. 가지는 섬에 간 자신을 상상해보고자 하지만 한 번도 가지 못한 곳이라 그것도 쉽지가 않아요. 가지는 마음이 아플 것만 같아요. / 귤을 그걸 알고 가족들 몰래 섬으로 가보자고 제안하죠. 둘은 다리를 건너 지하철을 타고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해요. 처음으로 가는 섬. 두렵기도 했지만 씩씩하게 섬으로 향해요. 그곳은 설렘으로 가득한 곳이었죠. 둘은 함께 뛰어놀고 바다에 풍덩 빠져보기도 하다 노을을 바라보기도 해요. 둘만이 알 짧은 여행, 처음에 발을 디딘 여행. 이제 가지는 생각을 아무리 많이 해도 아플 것 같지는 않대요. #처음 #열망 섬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결국 아프고 마는 가지. 이 장면을 보며 열망이란 무엇일까 생각했어요. 나를 설레게 하는 것, 그리고 동시에 큰 시험에 들게도 하는 것. 가지는 집 고양이기 때문에 밖에 나가본 적이 없었어요. 그렇기에 바깥 세상은 가지에게 미지의 공간이었죠. 바깥 세상에 있는 섬을 열망하지만, 발을 디디기에는 너무나 두렵고 알 수 없는 공간이었던 것이에요. 이곳에 가자고 귤이 손 내밀어 줬을 때 가지는 얼마나 기뻤을까요? / 사실, 귤도 이 나들이는 처음이었어요. 산책만 할 뿐 이곳저곳을 자유로이 돌아다니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친구를 위해 용기를 낸 것이에요. 아마 귤도 처음이었기에 걱정이 많았을 거예요. 처음은 늘 어렵고 두렵기 마련이죠. 하지만 두 눈 딱 감고 한 번 시도해보면! 내가 원했던 것을 마주할 수 있어요. 용기를 내 손을 내민 귤, 용기를 내 그 손을 잡은 가지. 우리 모두의 처음을 향한 김민우 작가님의 응원이 느껴졌어요. #이어지는 표지 <우리, 섬에 가자!>의 표지는 앞 표지와 뒤 표지가 이어져 있어요. 표지를 펼쳐보면 두 주인공 뿐만 아니라 주인공의 가족들이 나온답니다.ㅎㅎ 시간은 다르지만 가족들과 두 주인공 모두 섬으로 떠났기 때문이에요. #특징 : 귀여운 그림체 그림체가 너무 귀여워요... 진짜 제 취향이었어요. 그림책의 모든 컷을 엽서로 만들어서 편지를 보내고 싶을 정도로요..!! 수채화 + 볼펜으로 그려진 것 같은데요. 깔끔하면서도 세심하게 표현되어 있어요. #특징 : 만화가 가미된 그림체 이 책은 정말 신기해요. 그래픽노블 보다도 만화책 느낌이 나요. 그런데 그게 이질감 없이 잘 녹았어요. 두 주인공의 입을 통해 나오는 대사들로 생동감이 더해지고, 진짜 강아지와 고양이가 하는 말을 엿듣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답니다. #9월 #시도 여름이 마무리 되고, 이제는 가을을 맞이할 때가 되었어요. <우리, 섬에 가 보자!>는 뭉끄들의 가을을 응원하는 책 같아요. 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면 귤과 가지처럼 한 번 발을 디뎌보라고요. 저는 오늘, 새로운 시작을 했어요. 곧 인스타에 올릴 건데요. 그림책 활동가 수업을 받기로 했답니다. 제가 꾸고 있는 꿈을 위해서 그림책에 대해 더 깊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이 수업... 굉장히 재미있고 유익해요. 제가 그림책을 보며 긴가민가 했던 것들을 명칭으로 설명해주시는데 아! 이거구나!! 하면서 수업을 들었어요.ㅎㅎ 이 책 덕분에 뭉끄가 새로운 시작에 발을 디뎠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작가님, 그리고 문학동네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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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초단편 그림소설 1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고정순 그림, 홍한별 옮김 / 아름드리미디어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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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사의한 V양 사건>
: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V양의 이름은

여기, V양이 있어요. 사람들은 그녀를 알지만 알지 못하죠. 분명 존재하지만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와 부재를 알아차리지 못해요. 그녀는 생각해요. '의자를 쳐서 바닥에 쓰러뜨려야겠다'라고요. 그럼 쿵 소리가 날 테고, 그녀가 살아있다는 것을 적어도 아래층 사람은 알게 될테니까요. 하지만 그녀의 존재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어요. 심하게 앓던 두 달의 시간 동안 말이죠. 그녀가 존재감을 찾은 것은 죽은 후, (어쩌면 죽기 직전?)의 일이었어요.

결혼 하지 않은 그녀는 누군가에게 '00씨의 아내'라고 불리지 않고 삶을 살아가야 했어요. 그녀에게는 '이름'이 있었지만 그 누구도 그녀를 이름으로 불러주지 않았죠. 그 옛날, 여성이 결혼한 이유는 '존재감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결혼이 유일했기 때문이라고 해요. 요즘은 직업으로 그 존재감을 찾고는 하지만, 당시에는 여성이 직업을 가지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으니까요.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은> 여전히 사회가 마주하지 않으려 하는 단면을 보여주는 작품이었어요. 존재감이 사라져가는 인물들. 작품을 저자의 의도에 맞추어 좁게 해석하면 페미니즘이 생각나고, 현대의 무관심한 시대에 비추어보면 세상에 발을 뻗지 못하고 사라져가는 사람들이 생각나요. 우리의 곁에는 'V양'이 또 얼마나 많을까요?

버지니아 울프의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이 고정순 작가님의 그림과 함께 되살아났아요. 고정순 작가님의 그림은 혼란스럽고 외로워요. V양이 느꼈을 감정처럼요. 버지니아 울프의 소설은 V양을 3자의 입장에서 보며 다른 사람들이 그녀를 얼마나 홀대했는지, 그녀에게 얼마나 곁을 내어주지 않았는지 강조한다면 작가님의 그림을 통해서는 그녀가 느꼈을 외로움을 보여줘요.

그림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그녀가 의자를 쓰러뜨렸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어요. 그럼에도 그녀를 알아차린 사람은 없었겠죠. 덩그러니 놓인 흰 옷이 쓸쓸하게 죽음을 맞이한 그녀의 모습 같아서 마음이 내려앉았어요. 그 죽음은 불가사의하죠. 미스터리해요. 그녀가 어떻게 죽었는지, 죽기 직전 무슨 말을 했는지, 무엇을 입었는지 아무도 알지 못해요. 그녀 혼자서 맞이한 죽음이었기 때문이에요. 그녀가 죽던 순간, 그녀의 곁에는 하녀 한 명 뿐이었어요. 그 하녀 역시 곧 존재감이 잊혀질, 또는 잊혀진 사람이죠.

불가사의한 V양 사건이라는 제목에서 독특한 게 보이지 않나요? 이 문장은 중의적인 표현을 지닌 문장이에요. '불가사의 한 V양'에 대한 사건, V양에 대한 '불가사의 한 사건". 사람들은 V양에 대해 잘 알지 못했어요. 그들에게 V양은 불가사의한 존재일 수빆에요. 저는 이 불가사의한 사건이라는 말이 사라진 것이 불가사의하기도 하지만, 그녀가 사라질 때까지 사람들이 몰랐다는 것도 불가사의하죠. 그녀의 죽음이 영원한 의문으로 남았다는 것도 마찬가지예요.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도 서평의 제목을 중의적으로 지어봤는데 어떤가요? 이번 서평의 제목인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V양의 이름은'에서는 두 가지 의미를 넣었어요.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V양', 그리고 '당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이름은'. 저도 스쳐갔을지 모르는 그녀의 이름, 그리고 그녀의 존재를 생각했어요.

이름은 정체성과도 같은 것이에요. 나의 생을 생각하며 누군가 고이 지어준 이름. 평생 동안 불리며 '내'가 될 이름. 그 이름을 V양은 사는 내내 불리지 못한 것이에요. 그녀의 쓸쓸함과 외로움을 집중해서 볼 수 있어서 좋았어요. 무엇보다 <나의 괴짜친구에게>처럼 외로움을 그려내신 고정순 작가님의 그림이 몰입을 도왔어요. 한 번 쯤 읽어보면 좋을 작품이에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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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고정순 지음 / 길벗어린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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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마음, 그것의 이름은 편지
: 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
(길벗어린이, 고정순)

0. 책, 편지
❝친한 친구에게 글을 쓰고 또 답장을 받는 일은 달이 기울고 다시 차오르길 기다리는 것처럼 기쁘고 설레는 일이네요. 우리 앞으로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만은 게을리 하지 말아요.
- 봄밤의 알전구 * 달, 11p

<시치미 뗴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고정순 작가와 정진호 작가가  일 년 동안 주고 받은 삶에 대한 생각들을 모은 편지 형식의 에세이 예요. 고정순 작가님의 세 번째 에세이이자, 2022년에 나와 현재까지도 사랑 받는 길벗어린이의 스테디셀러입니다.
<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는 고 작가님이 정 작가님께 보낸 편지를, <꿈의 근육>은 정 작가님이 고 작가님께 보낸 편지를 묶은 에세이이에요. <옥춘당>에서도 느꼈지만 작가님의 글에는 따뜻한 유머가 있고 그 누구도 따라하지 못할 진심이 있어요 그림책과 글, 그림에 대한 뭉클함과 꺼지지 않을 사랑도 있죠.

책을 읽으며 이 책은 정말 오래 읽힐 에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스쳐 지나가는 그저그런 에세이가 아니라 마음에 남을 에세이. '편지'라는 형식 때문이이었을까요. 그래서, 글들에 상대를 향한 마음이 깃들어 있었던 걸까요.
적어도 이 글은 누군가에게 보여지기 위해, 평가 받기 위해 쓰여진 글을 아니란 것이 분명했어요. 그저 서로를 안부를 묻고 나의 삶에 대해 진솔하게 이야기하고 있었죠.  애틋함이 곳곳에 묻어 있었고 그리움도 느껴졌어요.  정진호 작가님을 향한, 작가님의 삶을 향한 추억들 말이에요.

1. 삶과 그림책
❝헌책방을 나와 병원에 들어서는데, 시원한 커피 한 잔이 너무 그리웠어요. 스스로를 지킬 최소한의 힘조차 없는 주제에 왜 나는 그림을 그리며 살까, 생각했었죠. 늘 500원이 비싸 사먹지 못했던 아이스커피, 이제는 이가 시려 500원을 아끼게 되었어요.
- 쌉쌀한 공범 * 커피, 58p

놓지 못하는 마음이란 무엇일까요. 생각하기만 해도 눈물이 나고. 나를 아프게도 했지만 나를 웃게 하는 일이 많았던, 나를 나로 만들고 살아가게 하는.  그게 작가님께는 그림책인 것 같아요.
삶에 대한 에세이라고 했죠. 작가님의 삶에서는 그림책을 빼놓을 수 없기에 이 책에는 그림책 관련 에피소드가 많아요.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해도 수백번을 노력하고 부딪혀 결국 붙잡은 꿈. 고단함이 느껴지면서도 그 작은 불꽃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작가님이 대단해보였어요.

2. 특징: 자잘한 이야기
❝계속 노트를 사고 가까운 찻집을 찾고, 쓰고 싶었던 문장 대신 엉뚱한 문장을 나열하다 보면 언젠가 모든 노트가 하나의 이야기가 될날이 올지도 몰라요. 그래도 나름 기특한 친구죠? 편지 한 통 보내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고 있으니 말이에요.
- 보이지 않는 근육 * 노동, 131p

<시치미 떼듯 생을 사랑하는 당신에게>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에요. 글 중간중간에 끼어든 자잘한 이야기! 이 부분들은 에세이의 무게감을 덜어주고, 독자들에게 '수신인'으로서의 몰입을 유도해요. 이 에세이가 편지처럼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죠.
편지 쓰는 일이 일상이 되면 이렇게 자잘한 이야기도 스스럼 없이 보낼 수 있겠구나 생각했어요.ㅎㅎ 편지 쓰기를 떠올리면 으레 근사한 말들이 떠오르잖아요. 그런 게 아니어도 충분히 편지를 쓸 수 있다는 게 얼마나 낭만적이에요. 편지를 자주 주고 받던 80년대에는 이랬을까 싶기도 하고... 재미있는 부분이었어요.

3. 특징: 보내는 이의 수식어, 추신
나는 오늘도 녹슨 피아노를 만들지 않겠다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언제든 버려질 수 있다는 걸 가정하면서 그림책을 만들어요, 멀고 쓸쓸한 길에서 친구가. 추신. 내가 사랑하는 그림책에 '네 곁에 있어도 괜찮겠니?' 라는 문장이 나와요. 나도 가끔 물어요. 내가 그림책 세상에 있어도 괜찮을까?
- 녹슨 피아노 * 그림책, 186p

책의 또다른 묘미는 '보내는 이에 적힌 수식어'와 '추신'이에요. 수식어와 추신이 장마다 달라서 읽는 재미가 있어요. 수식어는 해당 장의 분위기를 함축하고, 추신에서는 내용을 환기 시킵니다. 장이 마무리 될 때 즈음이면 '이번에는 어떤 추신이 있을까?' 기대하며 책을 읽게 돼요.ㅎㅎ
이 부분도 정말 영리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어요. 편지형식의 에세이라는 특징으로 어느 정도 짜임새가 정해져 있는 모양새잖아요. 변형을 줄 수 있는 부분들에 포인트를 주며 독자들의 기대를 높입니다. 이건 책을 끝까지 읽을 수 있는 원동력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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