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가을 헤세 4계 시리즈
헤르만 헤세 지음, 두행숙 옮김 / 마인드큐브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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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내내 따뜻한 대기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바람의 감촉과 하루하루 그 색을 달리하고 있는 나무들의 변화에 가을이 깊어가고 있음을 실감하고 있다. 올해는 윤달이 끼어있어서 그런지 더욱 떨어지는 나뭇잎의 수가 이른듯하지만 다채로운 빛깔을 드러내며 사라지고 있는 모습에 감성적으로 변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렇듯 감성이 되살아나는 계절, 가을! 그 어떤 시집보다 가을의 모습과 냄새를 가득 담고 있는 책이 있으니 바로 헤르만 헤세의 계절 시리즈 중 가을 편이다. 헤세의 봄을 읽으면서 자연을 더 가까이하게 되었고 아쉽게 건너뛴 여름의 열정까지 더해 가을 편을 읽게 되니 한 문장 한 문장이 가슴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자연을 향한 감수성이 열리게 된다면 강추할만한 책이다.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 워낙 유명한데 반해 그가 시인이자 화가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이들도 많을 것이다. 이 책은 헤세가 남긴 무수한 작품들 중 계절 시리즈에 맞게 묶어서 편찬한 것으로 헤세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자연을 바라보는 경이로움 그리고 우리네 삶의 철학이 가득 담겨있다. 가을이 들어서는 초입에서 느낀 감정과 절정을 지나 가을이 사라져가는 아쉬움까지 찬찬히 따라가다 보면 그의 표현력에 감탄과 질투도 생겨난다. 어쩌면 자연에 대한 느낌을 잘 그려낼 수 있는지 연이어 시선을 잡아끄는 문장들에 연애편지라도 한통 써야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으니 말이다.

유년시절에는 다들 그렇듯 자연은 시선을 잡아끌지 못한다. 우리에게 자연이 보이기 시작할 때는 어느덧 늙음과 함께 하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다. 내가 자주 지나는 길목에서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나무들과 이름 모를 풀들은 이제는 아무 나가 아니다. 나의 시선이 머무르는 곳곳은 그 시선과 함께 무언가가 가슴속으로 전해진다. 그것들로 인해 인생의 의미과 쓸데없는 욕심이 헛됨을 깨닫게 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여름과 가을 사이의 날들]편에서는 헤세가 어린 시절부터 자연을 바라보는 시선이 남달랐음이 보인다. 온갖 색채에서 일어나는 반응에 호기심이 일고 저물어가는 꽃잎 하나에도 시선을 놓지 않았던 자유로운 영혼인 그가 엄격한 교육제도에 거부반응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음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을 것이다.

지금 가을은 너무나 아름답다. 줄지어선 가로수 어느 하나 같은 모습과 색깔이 아니다. 어쩜 그렇게도 조화로운지 온통 풍경화이다. 자연스러운 붉은 계열 그러데이션은 떨어지는 잎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 떨어진채 옹기종기 제 아무렇게 놓여있는 모습도 마치 그림같다.

"지상의 아름다움은 누가 듣든 상관없이, 그 만의 나직하고 그리운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p.111

이처럼 아름다운 자연현상의 수수께끼를 생각하면 그 외 다른 고민에 대한 오만함도 내려놓게 된다는 말로 인간은 자연에 비할 바가 아님을 상기시킨다. 그 의미를 되짚어보니 지치고 고통받던 인간들이 결국 찾고 위로받는 곳이 자연뿐임을 느낄 수 있다. 

매년 짧게 지나가버리는 가을이어서 그 아쉬움은 늘 더해가지만 지금은 따뜻한 가을 냄새에 흠뻑 마음을 뺏겨 볼 때다. 나뭇잎을 좀 비워낸 나뭇가지들 사이로 비치는 파란빛이 그 모습을 더 드러나서일까 더 아름답고 조화롭다.
[나무들]편에서는 특히 나무를 향한 헤세의 사랑이 느껴진다. 첫 구절에서부터 나무를 설교자라고 칭하며 나무를 통해 헤세가 얻은 깨달음이 쉼 없이 쏟아진다.

"나무들의 속삭임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운 사람은 더 이상 나무가 되려고 갈망하지 않는다. 그는 자신이 지금 처한 대로 있지 다른 존재가 되려 하지 않는다. 바로 그것이 고향이다. 그것이 행복인 것이다." - p.120 『방랑』 중에서 1918

 

 

가을이, 온화한 가을이 그를 새로운 화려함으로 장식한다. p.122

 

 

헤세의 계절 시리즈를 읽다 보니 헤세의 감성을 닮아가고 있는듯하다. 그는 표현의 욕구가 강한 사람인 것 같다. 여름에 태어난 헤세는 그 어떤 계절보다 여름을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초반에는 여름이 가는 것을 아쉬워하는 마음이 곳곳에 보인다. 놓쳐버린 여름 시리즈가 더욱 소장 욕구를 부추기는구나. 게다가 늦가을 추워지는 겨울을 준비하는 모습에서 이제는 바깥보다 방과 친해져야 함을 이야기하면서 잊고 지냈던 방안의 모습을 그려낸 부분도 있다.

도시 생활을 접고 당장이라도 그곳으로 달려가고 싶은 마음, 이 책을 읽은 이들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요즘은 심심찮게 꽃들을 향해 폰을 들이밀고 있는 중년 남성들이 자주 눈에 띄었다. 예쁜 각도를 찾아 이리저리 폰을 기울이고 있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러한 감성에 계절을 생생하게 담아내고 있는 헤세의 글과 그림을 보며 추억과 인생에 대한 시간을 가지다 보면 어느새 속도를 늦춰가고 있는 진정한 내 모습이 보일 것이다. 헤세와 함께 깊어가는 가을에 인생의 깊이를 더해보길 바란다.

"우리가 나이 든 것을 아쉬워하면서, 우리의 젊은 시절에 대한 온갖 향수를 우리의 그리운 추억과 섞어 가질 것이다."
- p.46 『비행사』 중에서 1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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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밀레니엄 (문학동네) 1
스티그 라르손 지음, 임호경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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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또 뭐지? 하며 시선을 잡아끈 건 표지였다. 4권이 합체해야 한 단어가 보이는 독창적인 디자인에 홀로그램까지 덧입혀 입체감과 세련미를 더했으니 장르를 떠나 소장 욕구부터 분출하였다. 하지만 스릴러와 추리물에 그다지 매력을 못 느끼는 편독가이기에 나에게 이 책은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한 생소한 시리즈였다.
그러나 그러한 편독을 깨고 읽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 건 평소 원작 영화를 즐겨본다는 이유가 작용하였다. 그만큼 작품성과 흥행성을 보증 받은 내용이라는 의미로 해석되며 다소 자극적이고 적응하기 힘든 소재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발동하는 건 당연했다.

책의 저자는 스웨덴인이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잘 몰랐던 스웨덴의 이면을 보여주기 때문에 다소 생소할 수 있다. 스웨덴 작가라면 프레드릭 베크만이 친근하고  최근에는 라이프 스타일에 관한 라곰과 그들의 교육 등에 관련된 책만 보았기에 이 책의 소재와 배경은 또 다른 낯설음이었다.

애초 10권으로 기획된 밀레니엄 시리즈는 3권까지가 그의 작품이다. 2005년 스웨덴에서 출간하여 9천만 부 이상이 팔린 인기작이었지만 작가는 그 인기를 누려보지도 못하고 2004년에 심장마비로 사망하게 된다. 그러니 이 책은 사후에 출간된 책이란 소리다. 그렇게 중단되었던 시리즈는 여러 진통 끝에 드디어 네 번째 시리즈가 출간되었다. 물론 스티그 라르손이 아닌 다른 작가가 이어받았다. 그래서 전 시리즈의 인기를 덧입고 이번 출간과 더불어 전권이 새 옷으로 갈아입고 독자를 유혹하고 있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밀레니엄 시리즈에 빠져보기 위해 1권을 만났다.



 

 

먼저 저자의 짧은 약력을 읽어보니 그의 인생과 미카엘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닮아있다. 언론인이자 작가이며 사회고발지를 창간하여 사회정의를 위해 신념을 다한다는 점이 주인공 미카엘에게로 그대로 옮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책의 시작은 미카엘이 위기를 맞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언론인으로 기업 비리를 고발하다 유죄를 선고받으며 명예가 땅에 떨어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그러나 그 틈새를 노리고 또 다른 거대 기업의 오너인 방에르 회장이 그에게 접근을 시도한다. 이유인즉 방에르 일가에서 발생한 의문의 실종사건을 재수사해 줄 것을 의뢰받음과 동시에 떨어진 위신을 회복할 카드까지 제시하며 그를 유혹한다. 유혹의 손길이 워낙에 거세었기에 밀레니엄 잡지사의 동업자이자 섹스 파트너인 에리카의 적극 반대에도 불구하고 방에르 일가의 소굴로 들어간다.

애초부터 들쑤셔봐도 더는 나올 것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건은 미카엘의 촉수가 자동으로 반응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본격적으로 기자 특유의 호기심이 발동하게 되고 또 다른 사건의 이면이 찬찬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추리소설이 그렇듯 이때부터는 책의 두께감 따위는 신경 쓸 겨를이 없다. 실종이냐, 살해냐를 두고 기자와 독자들은 쉼 없이 머리를 굴려야 한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단서들에서 느껴지는 공포감과 섬뜩함까지 함께 떠안은 채 말이다.

물론 그 혼자 그 모든 걸 파헤치지 않는다. 그와 함께 할 파트너는 리스베트란 인물로 등장부터 심상찮다. 어린 시절 따라다니던 불운의 그림자는 그녀를 삐딱하게 만들었다. 결국 사회가 그녀에게 내린 평가는 냉정했고 누군가의 도움에 의지해야 되는 후견제도 안에서 행동에 제약을 받는다. 이 사실을 통해 독자는 스웨덴의 후견제도에 관한 문제점을 또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해킹 능력과 사진캡처 능력은 그녀를 여전사로 만들며 독자들에게 신비감과 쾌감을 안겨준다. 그녀에 관한 묘사 장면을 상상 속에 담아놓고 영화 포스터를 본 순간 루니 마라가 대단한 배우임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튼 그녀의 활약상이 무척 돋보이며 마지막에서 결정적인 한방도 날리게 된다.

하지만 적당한 로맨스도 빠지지 않는다. 등을 돌린듯했던 세상 속에서 믿음과 신뢰를 얻음으로써 미카엘에 대해 감정의 변화가 생긴 리스베트는 에리카에게 야릇한 질투심도 느낀다. 그러나 에리카와 미카엘의 이해불가한 관계나 뜬금없는 섹스신은 아직 내게는 낯선 풍경이었다.

사건을 파헤치면서 드러나는 기업가의 경영 다툼과 비리, 추잡함, 그리고 책의 전반적인 분위기를 압도하고 있는 여성 혐오는 가히 충격적이다. 확실히 여성이 피해자로 등장하는 소설은 여전히 불편하다. 예전에 보았던 미드에서도 창녀들만 골라 잔인하게 살해하던 연쇄 살인마 이야기를 본적 있다. 그러고 보니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 같다. 그때에 느꼈던 그 불편하고 무서운 감정을 이 소설에서 다시 접하자니 몸서리쳐졌고 잔인한 묘사에서는 자꾸 걸려 넘어졌다. 

그래도 치밀하게 짜인 구성을 바탕으로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이 스릴 넘치며 예상치 못한 결말에 당혹스러울 수도 있을 것이다. 범인의 윤곽이 드러날수록 우리는 인간의 이중성 아래 깔려있는 잔혹함은 대체 그 끝이 어디인지 심각해지게 된다. 그래서 미카엘(남성)과 리스베트(여성)가 이 사건에 대한 논쟁을 벌이게 되는 장면에서는 미카엘보다 리스베트의 의견에 더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건의 시발점은 나치즘이었다. 과거 역사 속 스웨덴은 나치 독일에 협력한 부역 국가였다. 하지만 복지국가라는 타이틀 뒤에서 네오 나치가 계속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소식을 얼마 전에 접하고서는 정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마치 패션처럼 나치즘 따위가 유행같이 돌고 있는 일이 왜 일어나는 것일까. 지금은 남녀평등국가로 알려져 있지만 예전의 스웨덴 사회는 여성에게 엄격한 나라였다. 산업화가 되면서 여권이 신장하기는 하였으나 그 과정에서 벌어졌던 여성인권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내고 싶은 작가의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역시 결과에 대한 기다림을 못 견뎌 두께와 무게감 따위는 불평거리조차 될 수 없었다. 그것이 추리소설의 매력 아니겠는가. 나치에서 시작하여 여성 증오범죄로 오랜 시간 동안 숨겨져왔던 방에르 일가의 비밀이 파헤쳐 지기까지 쉴 틈 없이 달려나가보길 바란다. 유럽 쪽 지명이나 이름이 낯설다면 인물의 관계도를 그려보는 것도 추천한다. 앞쪽에 지도를 함께 들여다보는 것도 머릿속에 이미지를 그려보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밀레니엄 1권을 통해 내가 받은 느낌이라면 기승전결은 확실하나 권선징악은 애매모호한 느낌이다. 그래서 그렇게 통쾌감은 덜 하다. 그렇지만 내게 추리소설은 자극적인 매운맛이다. 그래서 맵지만 그 자극적인 맛에 곧 2권을 펼쳐들 것 같다. 2권에서는 미카엘과 리스베트의 본격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고 한다. 그녀가 더 궁금해서 만나보고 싶어졌다.

 

 "기억해둬, 내가 미친년이라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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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회사 히어로즈
기타가와 에미, 추지나 / 놀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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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고 나니 유사한 메시지를 주고 있는 책 한 권이 떠올랐다. 마커스 주삭의 [메신저]에서 주인공에게 주어졌던 미션과 히어로즈의 주인공 의 회사 업무에는 어딘가 비슷한 맥락이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일은 부메랑이 되어 결국 나를 일으켜 세우고 나아가 세상은 결코 혼자가 아님을 전하는 메시지 말이다.


어엿한 직장인이었지만 지금은 편의점으로 출근도장을 찍고 있는 이 사연 많은 주인공은 버스에서 치한으로 몰려 모든 걸 잃고 버스에 대한 트라우마와 악몽까지 떠안았다. 하지만 사회를 향한 분노와 억울함으로 자신을 놓아버리지는 않았다. 편의점에서도 지각을 밥 먹듯이 하는 알바생을 배려해주기도 하고 손님의 실수로 떨어진 삼각김밥을 새 상품으로 바꾸어주는 따스함이 남아있다.

그런 주인공 슈지에게는 병상 중인 할아버지가 계시다. 그리고 병상에서 할아버지가 무심코 던졌던 한마디는 늘 그의 머릿속을 헤집고 다닌다.
'아무런 재미도 없는 인생이었어.'
정말 할아버지의 인생이 그러했는지 아닌지 의구심은 한가득이지만 그 무기력한 한마디는 현재의 그의 상황과 엇비슷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지각쟁이 알바 동생에게 새로운 알바자리를 제안받게 된다. '당신도 히어로가 될 수 있다!'라는 문구는 다단계 회사를 연상시키는 듯 수상하기 그지없었지만 다쿠의 적극 공세에 밀려 덜컥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자의반 타의 반으로 사무실을 찾은 첫날, 그의 인생에 다시 빛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소설은 주인공 슈지가 주식회사 히어로즈에서 알바를 시작하고 그리고 정식사원으로 거듭나기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곳에서 자신의 히어로즈였던 만화가와 유명인기 여배우에게 무언가 도움이 되는 일등을 한다. 인간이 인격적으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시대의 소모품으로 전락해서는 안되듯이 대중의 인기를 먹고사는 유명인의 고충을 내세워 인간애를 부각한다. 대중에게 히어로인 그들도 결국 자신만의 히어로가 필요함을 역설하며 누구에게나 인생의 히어로가 하나쯤은 필요함을 이야기하며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지 고심해보게 한다.

그래서 늘 근본이 성실했던 슈지는 히어로즈 프로젝트를 통해 변화를 겪는다. 중요한 건 그들을 돕는 일이 결국 자신이 겪고 있던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한몫한 것이다. 치한으로 몰려 대중들에게 떠밀려 넘어지고도 일어날 힘을 잃어버린 슈지는 오히려 위로의 말도 건네받는다.

인간은 휩쓸리는 동물이죠. 생각하기를 포기하고 의견이 많은 쪽으로 흘러가요. 그러는 편이 편하니까요.
......
인간은 생각하기를 포기한 순간, 인간이 아니게 됩니다. -p.140

타인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놓는 일은 어쩌면 스스로의 벽을 하나하나 깨버릴 수 있는 행위인 것 같다. 자신만의 이야기나 문제를 움켜쥐고 있는 이들은 누군가에게 이야기를 털어놓음으로써 서서히 그 끈을 풀어헤친다. 결국은 타인과의 소통에서 그 해답을 찾는다라는 점이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더욱 다양한 인물들의 사연을 통해 이 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점을 인간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그래서 후반부로 갈수록 무게감이 드는 소설이기도 하다.

그렇게 스스로 일어선 슈지의 시선에 할아버지의 인생도 다시 보이기 시작한다. 할아버지를 찾아가 다시 물었을 때 할아버지는 미소를 띠며 이야기한다. '그래도 행복한 인생이었다'라고, 아마도 마지막을 사랑하는 손자와 함께 할 수 있었기에 더없이 행복하지 않았을까.
아무튼 재미있는 글을 쓰고 싶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작가가 만들어 놓은 상상의 세계에서 재미있게 놀았다. 쉴 새 없이 따뜻하게 전개되는 이야기를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웠다. 이러한 회사가 곁에 있다면 참 좋겠다는 희망도 가져보면서 말이다. 또한 나는 나의 아이들에게 히어로로 남고 싶다는 소망도 함께 말이다.

미쳐 몰랐는데 오늘 우연히 상영 예정작을 뒤적이다 저자의 첫 소설 [잠깐만 회사 좀 관두고 올게]의 예고편을 보게 되었다. 책은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예고편을 보니 무너져가는 현대인들에게 희망을 주는 이야기 같다. 신기하게도 10월은 일본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어서 원작들의 인기도 한동안 쭉 이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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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삽질 중 - 열일하는 미생들을 위한 독한 언니의 직장 생활 꿀팁
야마구치 마유 지음, 홍성민 옮김 / 리더스북 / 201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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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첫 발은 누구에게나 두렵고 치열한 곳이다. 어렵게 취업이란 관문을 통과하지만 그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일매일이 난관의 연속이다. 여기에 직업의 귀천 따위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어느 정도 안정기에 접어들 때까지 처음 다짐했던 마음가짐이 엉망이 되기도 한다.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들은 생각지도 못한 상황들에 부딪히고 깨지고 상처받는다. 그러는 와중에 누구는 부서지고 사라지지만 어떤 이는 더 단단해지고 성장해나간다. 그렇다면 매 순간 닥쳐오는 상황을 잘 견뎌낼 수 있는 힘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우리는 힘든 상황이 오면 누군가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하지만 현명하게 처신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는 이들을 만나는 일도 쉽지 않다. 그래서인가 지금껏 내가 지인들에게 연륜이랍시고 던졌던 조언들이 과연 옳았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이 책은 <7번 읽기 공부법> 저자의 신작으로 힘들고 지치지만 내일도 출근해야 하는 이 시대의 미생들을 위한 직장 생활 꿀팁을 소개하고 있다.
오늘은 또 어떤 업무가 나를 시험에 들게 할 것인지, 그리고 또 어떤 부류의 인간들과 부딪히게 될는지, 출근과 동시에 싸워야 하는 머릿속 생각들을 컨트롤하기는 쉽지 않다. 하루 중에도 기분이 수십 번은 널뛰기를 하는 게 인간인데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이 하루아침에 되겠는가.

 

 

 

이 책의 저자는 엘리트 출신이다. 시험 만점에 도쿄대 출신으로 변호사이다. 하지만 출중해 보이는 능력자임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회사생활도 끊임없는 자기와의 싸움이었다. 눈물을 쏟고 버텨왔던 시간 속에서 실수들은 실력이 되고 내 능력 밖이라고 여겼던 일들과 부딪히며 한 단계씩 올라가는 법을 터득했다. 원래 자기 계발서들이 들려주는 목소리는 비슷하다. 그러나 다른 책과의 차별점이라면 독서광이었던 저자의 책륜이 보태어졌다는 점인데 평소 책과 친한 독자라면 그녀가 소개하고 있는 책까지 찾아 읽어보면서 내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인생은 B와 D 사이의 C


인생은 탄생(Birth)과 죽음(Death) 사이의 선택(Choice)으로 이루어진다는 말처럼, 누구도 선택을 피할 수 없다. -p.118

인생의 출발점에서 미로 안에 갇힌것 같은 상태가 되면 앞으로 나아갈지 되돌아가야 할지 헤매게 된다. 폐쇄공포증 같은 두려움이 엄습하면 더욱 오도 가도 못하는 상태가 된다. 하지만 우리는 이리 가고 저리 가며 결국 미로를 빠져나온다. 적절한 타이밍도 찾아야 하고  침착함을 발휘하기도 해야 한다. 또한 다양한 선택지의 문 앞에서 지혜로움을 발휘해야 한다. 그래서 사회 초년생들은 누군가의 경험담에 목마르다. 정답은 없지만 유사한 상황에 대처하기 위한 연습이 필요하기에 인생 선배이든 직장 상사이든 가치 있는 경험담이 절실하다. 그 덕에 생겨나는 감정이입은 나를 성장시키고 확장하게 한다. 그리고 나의 문제점을 바라보는 관점도 넓어진다.

여러 가지 밑줄 그어진 문장들은 누구나 고개를 끄덕일 내용들이다. 인생의 조연으로 시작해 주인공이 되기까지 요구되는 조언들은 긍정의 기운이 넘치는 것들이다. 오히려 식상하고 뻔한 이야기 속에 답이 있듯이 직장생활시 필요한 기본적인 마음가짐과 업무태도들은 사회 초년생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요구되는 것들이다. 인생의 자양분도 결국은 나의 자생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좀 더 뿌리 깊고 단단해지기 위해서는 책을 가까이해야 한다. 그래서 책을 통해 사회가 두려운 초년생들은 그 두려움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난관 앞에서 좀 더 유연해지며 그 난관을 극복하였을 때 자존감이 상승하는 것이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나도 대부분의 사회 초년생들과 다를 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지금 이러한 책을 펼쳐들 수 있는 사회 초년생들이 부럽기도 하다. 젊다는 것은 그만큼 나갈 에너지가 충만하다는 증거다. 어떠한 현재에 놓여있든지는 중요하지 않다. 누구든 오늘보다 내일의 나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배워야 함을 느끼면서 나도 얼마 전 사회에 첫발을 내디딘 조카에게 이 책을 쥐여주어야겠다.

"지금 무엇을  얻고 잃는가가 중요하지 않다.

그 희생과 맞바꿀 수 있는 것을 지금부터 내 힘으로 얻어야 한다." -p.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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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 빼앗긴 세계문화유산 약탈 문화재의 세계사 2
김경임 지음 / 홍익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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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2권에서는 빼앗긴 후 아직 제자리를 찾아오지 못한 문화유산에 대한 이야기를 내놓고 있다. 문화재 반환 문제는 국제사회의 기본 도덕률로 자리 잡았다고는 하나 여전히 강대국이나 대영박물관들의 변명에 그 어떠한 해답도 못 내놓고 있는데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의 변명도 일리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그 가치를 잘 모르고 박물관에 모셔놓지 않았다면 유물들의 존재 유무를 장담할 수 있었을까? 게다가 강대국들의 문화재 복원기술과 문화재 보호를 위한 그들의 노력은 지나칠 수 없는 부분이다.

비록 자국의 유산이 아니지만 대부분의 박물관들은 인류가 남긴 위대한 문화유산을 자국의 문화유산인 것처럼 귀하게 여긴다. 전시 약탈은 인류가 저질러온 악행 중의 하나였다. 닥치는 대로 쓸어모은 데는 그것들의 상징성을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희귀해 보이거나 뛰어나 보이는 예술품들은 무조건 약탈 대상이었다. 그러나 그들이 문화재를 바라보는 이중적인 시각에 대해서 옳고 그름을 논하기보다 인류가 남긴 가치에 더 무게를 실어야 하겠다. 하지만 약소국들의 경제력이나 문화재 보호 능력이 회복되었다면 자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아무래도 돌아온 유산보다는 빼앗긴 채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유산이 더 많을 것이다. 2권에서는 약탈당한 문화재를 성격에 따라 분류해 놓았는데 재왕들의 탐욕에 짓밟힌 문화재와 1권에서도 언급되었던 제국주의 시대 때 희생된 유산과 전리품으로 흩어진 유산들에 대해 살펴보고 마지막으로 빼앗긴 우리 문화재 중 몽유도원도에 관해 함께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함무라비 법전>은 전시 약탈물로는 최초였다. 세계에서 가장 일찍 약탈당한 문화재이면서 가장 먼 길을 돌아 프랑스에 도착하였다. 심지어 엘람 왕국의 왕에게 약탈당한 뒤 법전의 일부가 지워지고 왕의 업적이 쓰이게 되었는데 그만큼 약탈물들은 국가의 권위와 위상을 드높이는데 중요하게 작용했음을 볼 수 있다. 하지만 프랑스는 예상대로 문화재를 반환하고 있지 않다.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자신들이 구출해서 보호하고 있다는 주장을 싸그리 무시할 수는 없는데다 루브르 박물관의 얼굴로 대표되고 있는 만큼 쉽게 내어줄 리가 없을듯하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미의 여신 비너스 중 <크니도스 비너스>는 비너스의 원조라 할 수 있다. 처음 그리스의 작은 섬 코스의 주민들은 제작을 의뢰할 당시 옷을 입은 것과 나체의 모습 두 가지를 요청하였다고 한다. 결국 주민들은 옷을 입은 여신을 선택하였고 나체의 비너스는 크니도스 주민들이 가져가서 전시해놓았는데 오히려 나체의 비너스의 인기가 치솟았다고 한다. 그 후 여러 복제품들이 탄생하는 과정에서 크니도스의 비너스의 원본은 소실되고 그 이후 <밀로의 비너스>가 그 자리를 대신하였다.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 부서지고 잘려나가긴 하였지만 불분명한 출처로 인해 학술적 가치보다도 미적가치가 더 인기를 얻은 경우라고 한다.

 

 

 

제국주의에 희생된 유산 중 <네페르티티 왕비 흉상>이 있다. 아마 워낙에 유명해서 이 사진을 한 번쯤은 보았을 것이다. 세계 제일의 미녀라고 칭송될 만큼 그 미적 가치가 높은 작품인데 네페르티티라는 이름 자체가 '미인의 출현'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어떠한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공주였을 것이라는 추측과 함께 그녀가 왕권까지 누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래서 독일 발굴팀은 이 흉상을 반출하기까지 과정도 필사적이었다고 한다. 무려 10년의 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한쪽 눈알이 원래 없는 채로 제작되었다는 흥미로운 사실에 나도 그 이유가 궁금하였다.
이집트에서는 이 흉상 외에도 돌려받지 못한 유산이 많다. 강대국들의 문화재 보호라는 명목을 언제까지 고수할 수 있을는지 의문이다. 막대한 경제적 이익을 누리고 싶어 하는 욕구는 당연하겠지만 우선적으로 문화재의 진정한 가치를 따져야 하지 않을까 한다.

 

 

걸작 예술품들이 전리품으로 흩어진 작품들 중 <하나님의 어린 양>은 유물이 옮겨 다닌 과정들 또한 복잡하지만 흩어지고 모아지는 과정에서 결국 한 작품의 존재 유무를 알 수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 겐트 지방의 성 바봉성당의 제단화로 유명한 이 작품은 매각, 도난, 약탈, 복제 등의 아픔의 역사를 지닌 작품이다. 벨기에는 우여곡절 끝에 12점 모두를 재결합시키는데 성공하지만 그중 두 개를 또 도난당한다. 그 후 세례 오한의 그림은 반환되었지만 정의로운 심판관의 행방은 묘연해졌고 갖가지 추측만이 난무할 뿐이다. 그래서 지금은 정의로운 심판관의 복제품이 전시되어 있다고 한다.

흥미로웠던 작품 중 히틀러가 가장 집착했던 작품으로 <화가의 아틀리에>라는 작품이 있다. 히틀러가 화가 지망생이라는 사실이 이러한 사실을 뒷받침해 주는데 그는 아리아 민족의 특질을 반영하는 예술품에 특히 집착하였다고 한다. 심지어는 약탈물들을 모아 총통 박물관을 건립하는 것이 최종 목표로 유럽의 문화중심지를 꿈꾸었다고 한다. 협박과 강압으로 빼앗은 문화재가 수도 없이 많았지만 결코 탈취할 수 없었던 그림이 화가의 아틀리에였다. 히틀러의 현대예술에 대한 탄압과 몰수 중에 샤갈, 피카소, 마티스, 반 고흐 같은 현대 거장의 작품들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하는데 그 작품들이 소각되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외 다수의 유산에 얽힌 사연 외에 우리의 문화유산 <몽유도원도>에 관한 역사는 지나칠수 없을것이다.  몽유도원도의 탄생 과정과 그 유산에 깃든 중요한 가치를 먼저 알고 나면 지금 우리에게 없다는 사실에 분노가 인다. 어떻게 일본으로 흘러들어가게 되었는지도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고 여러 일본인들의 손을 거치며 일본 문화재로 등극하기까지 대한민국은 어떠한 대비도 할 수 없었음이 안타까웠다. 여전히 그림의 반환 가능성을 놓고 두나라가 줄다리기를 하고 있지만 일본이 순순히 내어줄리는 없을 듯하다. 그만큼 몽유도원도는 막대한 가치를 지닌 유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가 그렇듯이 그 자리를 복제품이 대신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단념해서는 안될 것이다.

 역사와 문화유산에 관한 책만을 접하다 문화유산에 얽힌 역사 이야기를 읽으면서 무척 흥미로운 시간을 가졌다. 책표지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융성한 국가의 뒷모습에는 전시 약탈의 흔적이 생생함을 다시 한번 알게 되었다. 예전에 로마시대 콜로세움에 관한 다큐를 보면서 그 웅장함을 뒤로하고 약탈의 흔적만 남아있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지울 수 없었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몇 달 전 읽은 일본 여류작가의 여정기를 담은 책에서 루브르 박물관을 둘러보던 중 그녀가 내놓은 견해가 생각이 났다. 런던 박물관은 멋집니다. 큰 목소리로 말할 순 없지만 잘도 세계 각국에서 큰 도둑질을 했구나 싶습니다. - [도쿄에서 파리까지 삼등여행기 중]

여행을 자주 떠나기 힘든 현대인들에게 대영박물관에서 각 나라의 유산을 모두 구경할 수 있다는점도 매력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유산은 유산이 원래 있던 그 자리에서 빛을 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인류가 조금은 욕심을 덜어내고 문화재의 진정한 의미에 좀 더 치중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역사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이 두 권의 책을 통해 세계문화유산들의 역사를 다시 한번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문화재 약탈을 금지하는 이유는 사유재산, 또는 종교적, 예술적 성격의 재산이기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민족의 유산이며, 또한 인류의 공동 유산이므로 약탈되어서는 안 되며, 약탈되면 반환시켜야 하는 것이다. 오랜 역사와 관행을 지난 전시 약탈의 합법성은 약탈 문화재 반환의 원칙에 자리를 내어 주게 되었다.-p.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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