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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소도시 여행
박탄호 지음 / 플래닝북스 / 201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여행객이 북적대는 곳보다 조용히 돌아다니며 유심히 즐기는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 소도시 여행이라는 타이틀에 발목이 잡혔다. 때묻지 않은 소박함이 있는 곳, 그래서 더욱 여행의 묘미를 기대하고 떠날 수 있기에 책에 대한 기대감이 훨씬 강하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 그리 바빴는지 여태 가까운 나라 일본조차 나서질 못했는데 이 책은 쉴 새 없이 마음을 들었다 놓으며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저자는 교환학생을 시작으로 취업 후 스트레스를 여행으로 풀다 결국 책까지 내고 만다.ㅎ 그러한 열정이 여행에 목말라 있는 독자들에게는 단비 같은 희망을 주는 법. 벌써 몇 장 넘기지도 알았는데 혼자 배낭 메고 그 거리를 쏘다니고 싶어졌다. 주로 일본의 서쪽지방을 돌며 잘 알려지지 않은 소도시를 소개하고 있는데 추코쿠 동부와 서부, 규슈 북부와 남부, 시코쿠 지방이다.
진정함이 느껴지는 맛 집들 중 맷돌에 간 원두로 내린 커피에 설탕 대신 넣은 팥! 팥이라니 정말 그 맛이 궁금해졌다. 발길 닿는 곳에서 만난 정갈한 음식들은 마냥 일본스럽다. '우동이란 음식에는 인간의 지적 욕망을 마모시키는 요소가 들어있는 것 같다.'라고 말한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식감 좋은 우동국물 한 사발 들이켜고 싶어진다. 굳이 저자가 칭찬하지 않아도 여행지에서 먹는 음식은 뭐든지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이건 어디까지나 미식가가 아닌 내 의견이지만 말이다.
마을 곳곳의 역사가 그 지역 건축물에 진하게 베여있다. 그 속에 저자가 꼼꼼히 공을 들인 문장들이 더해져 일본이 지나온 세월도 머릿속에 그려진다. 비록 우리와는 아픈 관계 일지라도 지금 일본의 도시경관은 그 아픔마저도 잠시 내려놓게 된다. 하지만 분명 충돌하는 지점도 있기 마련인데 시모노세키가 그런 곳이다. 그 땅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우리 민족의 아픔과 상반되게 침략전쟁을 상품화한 것을 보면서 저자가 느낀 분노에 공감할 수밖에 없다.
여행지 곳곳을 다니며 지친 발걸음을 내려놓고 있는데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말 한마디에 기운을 싣는다. 그러면서 얻은 숨은 명당자리는 다른 여행객들이 느껴보지 못하는 색다른 기쁨이 된다. 그러는 사이 두 시간이면 둘러볼 작은 마을도 반나절을 소모해 써버리기도 한다. 그 자리에서 세월을 잘 견뎌낸 집들을 보며 시간을 음미하고 그곳의 정취를 맘껏 누리는 즐거움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이 아니겠는가.
마을의 모습은 일본 영화나 애니메이션에서 본 듯한 풍경이다. 벼랑 위의 포뇨가 살던 집이 덩그러니 자리 잡고 있는 모습과 센과 치히로에서 나왔던 도고 온천을 둘러보며 애니메이션을 떠올려 본다. 그리고 유명한 문학가들의 발자취를 훑어보는 재미도 나름의 즐거움일 것 같다.
게다가 고토히라궁으로 오르는 785개의 계단을 저자는 땀을 뻘뻘 흘리며 걷는다. 그 모양새가 마치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 황야의 마녀가 힘들게 계단을 오르던 장면이 떠올리기도 했다.
고양이 마을 오노미치는 집사니까 당연히 둘러보고 싶은 마을이었고 우동이 유명한 다카마쓰는 우동보다 절경에 맘을 빼앗긴 곳이다. 일본 하면 온천을 빼놓을 수 없듯이 일본 제1의 온천도시 벳부는 그야말로 온천의 천국이다. 영하의 정점을 찍고 있는 이 겨울 지옥 온천 순례라니! 그 뜨거운 물속으로 들어가 피곤함을 달랠 수 있으면 참 좋겠다.
일본의 베니스 야나가와에서 동남아시아의 풍경을 느껴보며 나룻배 여행도 뜻깊은 추억이 되겠다. 뱃사공이 경상도 사투리 '쑤구리(엎드려)'를 알 정도면 한국관광객이 많이 다녀가 나보다.
저자가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서 느낀 점은 참 소도시라도 정갈하고 깨끗하다는 인상이다. 마치 사진촬영을 위해 청소라도 한판 한 것 같은 경관에 일본이들의 성향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각 소도시의 특색을 버리지 않고 관광상품으로 잘 살린 점도 본받을 점이다. 요즘 이런 소도시 여행이 트렌드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듯한데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초보 여행객들이라도 소도시 소개가 끝난 후 여행안내 페이지를 보며 도전해 보길. 나도 저자가 옮겨 다닌 발걸음의 흔적을 따라다니며 여행지에서 엽서 한 장 띄워 볼 날을 계획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