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꽃들의 조용한 맹세
미야모토 테루 지음, 송태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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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고를 때 제목만 보고 선택할 때가 있다. 어차피 책의 저자도 생소했기에 재미보다는 작가의 세계관에 초점을 맞추는 편이다. 책을 덮고 떠오른 이미지는 고즈넉한 숲속을 산책하다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 느낌이랄까. 자카란다 나무가 흐드러지게 핀 거리와 저택의 정원에서 뿜어져 나오는 허브향기에 살짝 취해 이야기의 반은 밋밋하게 흐르며 단서는 독자를 끌고 나가지만 조급함이 없다. 그러나 결정적 한방은 독자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야기는 자연이 비치는 정직함만큼 착한 사람들이 이끌어가는 해피엔딩이라서 만약에라는 가정이나 더 이상의 의문을 달지 않는 게 산뜻하다.

일본을 떠나 아메리칸드림에 성공한 기쿠에는 삶의 마지막을 고국에서 맞게 된다. 그녀의 막대한 유산을 조카인 겐야에게 남긴 채 말이다. 이쯤에서 그녀가 부유했지만 외로운 삶을 견디지 못해 자살한 것이 아닐까 했다. 소설은 겐야가 고모의 과거를 찾아 감춰진 진실을 찾아가는 이야기이다. 갑자기 자신에게 떨어진 어마어마한 유산보다는 유언장에서 밝혀진 새로운 사실에 혼란스러움을 느낀다. 어렸을 때 병으로 죽은 줄 알았던 고모의 딸이 사실은 실종되었고 고모는 그 딸을 찾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집안 곳곳에서 발견되는 단서들은 여러 가지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과 뒤섞이고 겐야는 멜리사를 찾아보기로 한다. 그것은 마치 고모의 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감이랄까. 정원 곳곳은 고모가 만든 세상이고 그녀의 흔적이다. 풀들과 꽃들이 품어내는 기운들은 레일라의 생사와 안전을 소망하는 바램의 목소리 같기만 하다. 어린 시절 할머니가 들려준 비밀의식에 장단을 맞추어 마음을 풀들에게 전해본다.

수목의 가지와 잎이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겐야의 청각에 닿는 것은 좀 더 부드러운, 속삭이는 목소리인 듯한, 마음을 가진 생물의 말이었다.
조금 전부터 겐야 안에서 조용히 계속되던 공포는 사라졌다.
겐야는 중정을 걸어가 꽃들을 바라보며,
"예쁘구나. 정말 예뻐."
하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 P.62

고모의 집 곳곳에서 나오는 단서들 중 비밀 박스에서 발견된 편지에 서서히 윤곽은 잡혀가고 레일라의 생사에 대한 수수께끼가 풀려나가는 사이 겐야는 고모가 만들고 싶어 한 잔디정원을 완성할 결심을 한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되는 여러 가지 사실들 또한 삶의 일부 여야만 하는 사실이 안타깝다. 미국에서 발생하는 실종아동의 통계수치 및 사망자 수, 인종차별, 가정폭력, 아동 성범죄 등 다소 무겁고 가슴 아픈 내용들이 흘러가지만 간절한 용기 위에 살아남은 소중한 이들의 인생에 안도감을 느끼게 된다.

과거 속 진실의 분량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신 수목과 꽃이 많은 거리와 다양한 식물들이 내뿜는 기운을 느끼며 기쿠에 고모가 만든 수프의 맛을 음미하였다. 그래서 이 소설은 천천히 수저를 뜰 수밖에 없는 그런 소설이었다. 겐야는 진실과 마주했고 감사함을 느낀다. 뜻대로 풀리지 않던 그의 삶도 그 과정에서 주변인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들에 조금씩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그가 전작들에서 보여주었던 서정성에는 덜 미친다는 옮긴이의 평이 있으나 미야모토 테루라는 작가의 세계관을 조금은 알 것 같다. 요즘의 나의 마음과도 일맥상통하는 느낌이다. 자연과 함께 하는 삶, 주위를 돌아보면 자연에서 얻는 깨달음이 정말 많음을 많은 이들이 알아갔으면 하는 그런 마음 말이다.

기쿠에 고모가 아주 어렸을 때는 '풀꽃들에게는 마음이 있다'라는 할머니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깔보는 듯이 대했다고 하지만,
그것이 진실이라고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사건과 조우했다.
아마 그것은 레일라에 대한 이언의 수상쩍은 행위에 괴로워하는 기쿠에 고모에게 내려앉은 불가사의한 마음이었을 것이다. -p.396

겐야는 발소리를 죽여 오솔길을 걸어가며 계속 풀꽃들에게 감사의 말을 속삭였다.
사람에게도 이 정도의 마음을 담아 고맙다는 말을 해본 적이 없다고 생각했다. -p.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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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 만화 한국사 9 : 조선 시대 3 용선생 만화 한국사 9
정윤희 외 지음, 김지연 외 그림, 이우일, 송찬섭 감수 / 사회평론 / 201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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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큰아이가 5학년이 되고 나서 선택한 역사 책이 용선생의 시끌벅적 한국사였어요. 지인분의 강력 추천으로 말이죠.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자기 아이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공부 스타일을 정하는 게 제일 중요할 텐데요.
지인의 아이는 혼자서도 여러 번 책을 볼 정도로 흥미를 붙인 스타일이었던 반면에 우리 아이는 진도나 이해도가 더딘 편이었죠.
용선생의 수업이 아무리 재미있다 해도 글 밥 많은 책은 여전히 스스로 보기 지루해해서 제가 읽어주는 쪽을 택했죠.
그러다 보니 처음 맘먹었던 의지는 자꾸 흐트러지기 시작했고 워킹맘인 저도 지쳐갔어요.
그렇게 지내다가 생각한 쪽이 역사만화였어요.
평소 why 시리즈는 정말 잘 보았기에 역사만화는 how so 시리즈를 선택해서 지난겨울방학 때 보았어요.
그런데 재미는 뒷전이고 슬슬 의무감에 펼쳐들더라고요. 만화책이라 당연히 혼자서도 잘 보겠지라는 생각이 또 틀렸음을 알았답니다.
그래서 다시 찾게 된 책이 용선생 만화입니다.
이미 시끌벅적이 있어 중복되는 건 아닐까 하는 했었는데 결코 아니더군요.~^^

이번에 제가 선택한 시대는 9권 조선시대 이랍니다.
아이가 작년에 수원화성을 견학하고 그 기억을 오래가지고 있던 터라 흥미를 끌어낼 수 있을듯했거든요.
먼저 제가 읽고 나서 아이가 읽었습니다. 
다행히 시끌벅적을 읽은 터라 캐릭터의 익숙함과 만화라는 장점 때문에 혼자서도 거뜬히 보네요.

 

 

수업시간에 수업만 하던 아이들이 이번 만화 편에서는 마법의 융단을 대신한 연표를 타고 그 시대 속으로 들어갑니다.
그렇게 떠난 시간여행 속에서 역사 속 인물들과 함께 활약을 펼치니 더욱 역사가 가깝게 다가오는 듯했어요.
용선생의 수업 분량을 만화로 구성하려면 사건 위주의 스토리로 구성하여야 할 텐데요.
역시나 차례를 들여다보니 핵심적 사건이나 인물 위주로 구성이 짜여 있네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이렇게 큰 사건과 인물만 기억해두어도 중학교 과정을 소화하기 훨씬 수월하겠어요.

 

 

 

 

집필진의 추천사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제가 제일 만족한 부분은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춘 그림 스타일과 편집 그리고 충실하게 갖춰진 자료들이었어요.
만화는 자칫하면 페이지가 어지러울 수도 있고 또 불필요하게 주석이 많으면 더더욱 정신이 없죠.
하지만 용선생은 전체적으로 정리정돈이 잘 되어있는 느낌을 받았어요.
특히 고증된 그림과 세밀화는 만화와 잘 어우러지는듯했고

깊이감을 더한 정보 박스는 꼭 필요한 정보만 알려주어 깔끔해 보였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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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용선생은 현재 6학년 교과서와도 잘 연계되어 있어요.
그래서 아이가 학교에서 배운 내용을 체크해가며 짚고 넘어가면 더욱 학습에도 도움이 되겠죠.
교과서 핵심 보기로 교과서와 연계하여 복습할 수 있고 부족한 이야기는 용선생의 역사교실로 채워갈 수 있어요.
용선생과 교과서가 연계되어 있는 부분을 딱 보아도 알 수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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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전체적인 이야기 구성을 살펴볼게요.

역시나 아이들은 이야기 속에서 각자의 개성에 맞게 활약을 펼칩니다.
그러한 재미는 기억력에 더욱 도움이 되죠.
영조의 탕평책에 관한 부분에서는 허영심이 탕평채를 만들어 올리면서 정책의 의미를 되살리고요.
이인좌의 난을 진압하는데도 공헌하네요.
사도세자의 죽음에 아이들이 함께 슬퍼하면서 공감대를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붕당정치나 세도정치에도 아이들이 함께 발로 뛰어다니니 어려운 정치도 이해하기가 수월하네요.
또 수재는 규장각에서 일할 기회를 얻어 열심히 일을 돕습니다.
대전통편을 편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노고가 있었는지 그림을 보니 더 와닿습니다. 
김만덕의 이야기와 조선시대의 농민의 삶을 직접 들여다보며 공감을 하니 
경제에 관한 부분도 글로만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가 큰 것 같았어요.

 아이들의 캐릭터는 성격에 맞게 이야기에 잘 어우러져서 만화책답게 재미있는 장면도 꽤 많답니다.
김만덕 편에서는 나선애가 고집불통 황부자를 굴복시키는 장면도 웃음을 자아내고요.
요즘 고등 래퍼에 빠져있는 아들은 영심이가 랩을 하는 장면에서 빵 터지네요. ㅋㅋ
아이에게 용선생 만화책이 훨씬 재미있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이유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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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선생을 보고 나니 아이가 보았던 하우 쏘 책은 어떤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살펴보게 되더라고요.
용선생 9권에 관한 내용이 하우 쏘에서는 26권과 27권에 걸쳐 있었어요.
용선생에 비해 하우 쏘가 훨씬 권수가 많다 보니 하우 쏘가 더 내용이 많고 구체적이긴 합니다.
하우 쏘는 역시나 분량이 많아 역사 만화를 처음 접하는 우리 아이에겐 조금 버거운 부분이 있었어요.
우리 아이처럼 뒷부분으로 갈수록 지루해 하는 아이들도 분명 있을 거란 생각도 들고요.
하지만 용선생은 교과서에 축약되어 있는 내용들이 좀 더 상세히 잘 기술되어 있어

분량 면에서는 적당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우선 만화책이다 보니 시각적인 부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만화책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니까요. 아이들의 흥미를 끌지 못하는 그림은 의미가 없겠지요.
하우 쏘 시리즈는 그림이나 색채감이 좀 단조롭고 입체감이 덜합니다.
벌써 한두 컷 만 들여다보아도 용선생으로 시선이 옮겨가네요.

그리고 폰트나 풍선 말, 주석의 사용도 용선생이 훨씬 가독성이 좋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굵은 글씨체로 표기해 두어 강조를 하고요.
어려운 용어는 하단에 주석이 달려 있긴 하지만 용선생처럼 박스 설명이 부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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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등장인물이 역사 속 인물들로 한정돼 있다 보니 용선생과는 당연히 스토리에 재미가 덜하네요.
아이들이 함께 한다는 큰 장점을 하우 쏘가 따라가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또한 역사적 사실과 에피소드를 적절히 혼합해 놓은 것도 아이들 눈높이에 잘 맞춘 전략이란 생각입니다.
탕평책 이야기에서 탕평채가 곁들여진 것처럼 말이죠.
또한 이야기를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용선생에 더 좋은 점수를 주고 싶었어요.
사도세자의 불운한 성장기를 이해하고 그가 뒤주에서 죽어가는 장면은 용선생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오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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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하우 쏘에서는 사도세자 편이나 당파싸움 등 서술이 더 많고 또한 용선생에서 언급되지 않은 사건들도 있어요.
특히 수원화성에 관한 부분은 별로 언급돼있지 않네요. 아이가 바로 알아차리더라고요.~^^
그에 비하면 용선생은 그림과 실사 컷이 전면으로 들어가서 아이들이 이해하기 훨씬 좋습니다.
오히려 용선생 시끌벅적 한국사보다 더 좋은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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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단락이 끝나는 부분은 보충 페이지가 있지요.
용선생은 역사교실이고요. 하우 쏘는 공부방으로 구성이 되어 있어요.
두 페이지 또는 세 페이지에 걸쳐 좀 더 구체적이고 흥미 있는 내용들을 실려있어요.
아무래도 분량이 많은 하우 쏘가 깊이 있는 내용이 있고 조선시대 역사가 정리가 잘 되어 있는 느낌입니다.
마지막 탕평정치에 관해 구체적으로 서술이 되어 있는 부분은 용선생에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고 있어 만족이에요.
반면 용선생은 아이들이 흥미를 가지고 읽어볼 수 있는 내용들로 구성을 하였기 때문에
글 밥이 많다고 쉬이 지나쳐버리지 않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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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권의 책을 비교해 보니 장단점이 구체적으로 들어옵니다.
역사적 사건이나 내용이 많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내 아이의 특성을 잘 파악하여 

어떤 책을 첫 책으로 선택할지 도움이 될 거예요.
저희 아이의 경우 용선생을 먼저 보는 게 순서가 맞았네요.^^
무엇보다 용선생은 최신작이고 다른 책에서 부족한 부분들을 보완하고 있기 때문에
그 어떤 만화 역사 책보다 장점이 많은 책입니다. 아무튼 전 아이가 쉽게 놓지 않아서 더더욱 만족이네요.

 

 

 

그리고 용선생의 시끌벅적을 먼저 만나기에 앞서 만화 한국사를 먼저 보는 편이 훨씬 도움이 될 것 같고요.
그래서 큰아이도 1권부터 다시 시작해야겠어요. 그리고 시끌벅적을 다시 들여다보면 혼자서도 잘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올해는 한국사 공부에 매진해 볼 생각입니다. 조금 늦더라도 재미있게 공부하게끔 도와주고 싶네요.
한 권이 끝나고 퀴즈도 풀어보았어요. 아이와 함께 하니 저도 덩달아 다시 머릿속에 쏙쏙 넣게 되네요.
아직 한국사 연표나 세계사 연표를 이해할 단계는 되지 않지만 조금씩 참고할 날이 오겠지요.

부모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좋은 책을 접할 기회를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에게도 어떠냐고 물으니 용선생 만화가 보기 괜찮다고 하네요.~^^
우리 역사를 찾아가는 길을 헤매지 않게 도와주고 싶다면 
용선생 만화 한국사로 처음 문을 열어보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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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 있는 서점
개브리얼 제빈 지음, 엄일녀 옮김 / 문학동네 / 2017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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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서점, 아일랜드, 앨리스. 이 단어들이 좋았다. 그래서  그냥 읽고 싶었다. 그렇듯 책을 선택할 때 특별난 고집은 없다. 간혹 실패까진 아니더라도 실망스러운 이야기도 있지만 난 이야기의 힘을 믿는다. 책을 볼수록 고집도 줄어드는 것 같다. 내겐 그랬다.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물으면 요즘은 좀 뜸을 들이게 된다. 책도 분위기를 타고 그때의 기분의 흐름에 장단을 맞춘다. 그러다 보니 폭이 넓어지고 삶의 유연함도 생겨난 것 같다.

하지만 이 섬에 있는 서점의 주인 A.J. 피크리는 문학뿐 아니라 인생이 꽤나 까탈스럽다. 물론 누구나 처음부터 그렇진 않다. 인생에서 시련과 고통은 내면의 변화를 가져오기 마련이다. 이 책도 그런 주인공의 상처가 치유되는 길은 결국 사람뿐임을 전한다. 게다가 서점이라는 공간은 애독자들에게 더욱 끌어 모은다.

마냥 책이 좋아 재미를 느꼈던 시절, 그 행복했던 시절은 아내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끝이 났다. 그 빈자리 곳곳에 삶에 대한 원망이 가득하다. 그 까탈스러움이 으찌나 유별스러운지 그의 문학적 취향이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런 취향이라면 서점은 곧 문을 닫을 것 같다. 신간 리스트 목록을 들고 찾아온 출판사 직원 어밀리아와의 언쟁에도 눈살이 찌푸려진다. 고집불통 영감 같은 무례함을 쏘아붙이고 홀로 남겨진 시간, 그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취하고 잊는 것뿐이다.
그러나 다음 날 훗날을 대비해 보관해오던 희귀본 책이 사라진다. 경찰의 수사도 진전이 없자 책 따윈 잊어버리고 일상을 찾으려 한다. 그러나 누군가 서점에 두고 간 아기로 인해 그의 인생이 다시 한번 전환점을 맞는다.

한 여인이 아기를 맡겼다. 그녀는 서점에서 아기가 잘 성장하길 원한다는 유서를 남기고 낭떠러지에서 세상을 향한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었다. 문학을 사랑하는 피크리는 그 부탁을 지나칠 수가 없다. 그래서 아버지가 되기로 결심한다. 그쯤 되어서야 각 단락 앞부분에 짧은 글들이 이해가 되었다. 각 단편의 제목 아래 덧붙여진 말들은 단편을 유독 좋아한 A.J.F가 딸 마야에게 전하는 말이었다. 훗날 작가가 꿈인 마야에게 피크리는 훌륭한 선생님이자 삶의 멘토였음을 증명하였다고나 할까. 나는 너무 혼자만의 독서를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반성도 되고 피크리를 닮고 싶다는 소망도 생겨났다.

피크리와 어밀리아의 씁쓸한 첫 만남 속에서 논쟁이 되었던 한 권의 책은 그들을 다시이어준다. 책이 피크리의 영혼을 다시 깨워주었다.
때로는 적절한 시기가 되기 전까진 책이 우리를 찾아오지 않는 법이죠.-p.119
서로 영혼의 조각을 끼워 맞추며 사랑을 키우는 동안 책방에도 다시 활기가 돌아온다. 주변 이웃들의 삶 속에도 서점이 자리 잡고 있다. 아내의 사고와 책도난 사건으로 만나 책으로 더 가까워지게 된 경관, 처형과 작가인 남편 그리고 서점이란 공간을 선물로 받은 마야는 책을 통해 각자 인생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간다. 그들의 시간은 섬주위를 잔잔히 돌며 아픔도 슬픔도 희석시켜가는 듯하다.

서점은 올바른 종류의 사람들을 끌어당겨. 에이제이나 어밀리아 같은 좋은 사람들.
그리고 난 책 얘기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책 얘기를 하는 게 좋아.
종이도 좋아해. 종이에 감촉, 뒷주머니에 든 책의 느낌도 좋고, 새 책에서 나는 냄새도 좋아해. -p.308

내가 책을 읽는 이유는 그냥 끊임없이 새롭게 만들어지는 이야기가 좋아서이다. 피크리의 방대한 독서량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아는 책 제목이나 작가를 지나칠 때는 반가운 마음도 들었다. 그러나 나에게 베스트였던 책도둑이 퇴짜 맞는 걸 보며 그 노인분께 영화를 권하고 싶어진다.ㅎ

사람에 의해 만들어진 지적 가치를 온전히 혼자서만 끌어안기엔 수용공간이 부족하다. 결국 독서라는 외로운 행위는 사람과의 소통으로 풀어 나가야 한다.  거기에 덧붙여 내가 가진 지적 에너지를 수용하고 이해해줄 수 있는 영혼의 반쪽을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말이다.

피크리의 단편 사랑에 괜찮은 단편들을 찾아보고 싶어진다. 우리의 인생도 단편과 단편의 만남이 아닐까.
작가의 말처럼 인간은 섬이 아니다. 하지만 가끔 내가 섬 같다고 느껴질 때면 내 안에 머물 서점은 어떤 곳으로 비추어질까.
극장에 카페테리아까지 갖춘 아늑한 동네 서점이 인생의 로망인데... ㅎ이 책이 앞으로 내 인생의 끄트머리에서 색다른 영감을 불어넣어 주었으면 좋겠다. 좀 더 사람들이 책과의 연을 이어나갔으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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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 셀 - 몸과 마음을 치유하는 칼라파스 그림 명상
황명희.김수영 지음 / 청년정신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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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에게 무엇보다 필요한 건 자신만의 치유법을 하나쯤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그런 바람을 타고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을 하고 또는 그림동화를 보며 힐링하는 시간을 갖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 책은 다소 생소한 단어인 칼라파스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칼라파스란 생명의 최소 미립자로 지각의 입자라고 하는데 이는 우리 몸의 세포 하나하나를 떠올린다면 이해하기가 수월할듯했다.

칼라파스는 우주가 생성될 때부터 존재한 생명 에너지로 소승불교에서 사용하는 중요한 개념이기도 하다. - p.8

다시 보니 기 치료나 명상치료가 떠오르고 거기에 미술이 더해진 듯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을 보며 심리상태를 분석해본 적이 있는데 그런 의미와 비슷하게 다가왔다. 우리의 모든 에너지장이 미립자에서 시작한다고 여긴다면 한층 내면을 다스리기가 수월할 것이다.
시도해보기에 앞서 칼라파스 그림을 그리기 위한 준비과정을 보았는데 언뜻 보면 이게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으로 이어진다. 생소하고 낯설어 보이는 이 치유 방법에 고개가 갸우뚱해지고 칼라파스 그림의 치유 효과도 반신반의하지만 마음을 열고 다양한 예시를 넘기다 보니 해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이 셀~이라는 단어가 긍정적 부름 같고 주문 같기도 하다.

쭉 넘기면서 다양한 예시를 보며 그들 각자의 생각과 감정을 찾아보려고 했었고 그러다 보니 치유 효과에 대해 긍정적 느낌이 전해졌다. 책에 실린 예시를 보고 기죽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그림에 소질이 있든 없든 자유롭게 메시지 그림을 그리다 보면 내가 생각지도 못한 그림들이 나올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그린 결과물이 어떠할지 궁금해졌다.

 

 

 

심호흡을 하고 부정적 생각을 내보낸 후 메시지 그림을 그려 나갔다. 처음엔 낙서인 듯하다가도 어느새 그럭저럭 다채로운 느낌이 되었다. 이는 충분히 나의 감정을 쏟아낸 결과물 같았다. 못 그린다고 주눅들 필요 없고 비교할 필요도 없는 이 한 장의 그림과 내가 마주한 느낌이랄까. 점선면이 나의 내면을 대신하듯 이리저리 그어지고 채워지는 동안 생각이 좀 정리되는 느낌을 받았다.

자신의 감정은 결국 내 몫이다. 이 그림 치유는 결국 진정 나를 알아가는 과정의 하나인 것 같다.
짝사랑하는 이도, 사업이 잘 안돼서 힘든 이도, 몸이 약한 이도, 시험이 걱정인 이도, 그림을 그린 후 변화를 느낀다. 긍정의 에너지를.
뭐든 맘먹기 달렸다는 말을 되뇌며 마음을 가다듬어보자. 언제 어디서든 그릴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내면을 청소하고 편안한 기운을 느껴보는 건 어떨까.
뒷장에 준비된 하이 셀~~ 준비 그림을 가지고 식구들과 함께 해 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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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터 포스터 하우 투 드로잉 Nature 월터 포스터 하우 투 드로잉
월터 포스터 크리에이티브 팀 지음, 오윤성 옮김 / 미디어샘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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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로잉은 연필 하나만으로 얼마든지 훌륭한 작품이 탄생하기에 참 매력적이다. 
예전부터 간단한 스케치나 풍경화를 끄적거리는 걸 좋아했었지만 뭘 더 그려내기보다는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그러다 작년부터 하우 투 시리즈를 눈여겨보았었는데 드로잉 교재로 적합해 보였다. 한 권쯤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었는데 때마침 내추럴 시리즈에 눈이 번쩍했다. 당연히 자연화를 선호하는 내게 안성맞춤의 교재였고 들추어보니 평소 그리고 싶어 하던 소재들로 구성이 되어 있어 반가웠다.

요즘은 무언가 배우고자 마음만 먹으면 찾아볼 수 있는 콘텐츠가 넘쳐나지만 책은 언제든지 찾아볼 수 있어 곁에 두기 좋다. 게다가 그림의 기초가 조금 잡혀 있는 이들에게 늘 부족한 것이 테크닉과 완성도이다. 또한 자주 그려보지 못한다면 형태의 감각이 떨어져 그림을 그리다 막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무언가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연필을 잡으면 낙서만 하다 망치는 일도 잦고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오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만 커져간다. 그래서 따라 그려보고 잘 흉내 내보며 나만의 테크닉을 익혀가는 것이 중요한데 드로잉은 교재만으로도 어느 정도 실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점이 있다. 




하우 투 드로잉북은 이미 많은 이들에게 잘 알려진 교재로 초보자도 쉽게 접근해 볼 수 있다. 앞장에서는 연필에 대한 이해를 돕고자 각종 도구와 준비물, 연필의 특성과 선 쓰는 법 그리고 질감을 표현하는 다양한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이 부분은 그림을 그리기 위한 기초 단계이기에 지나치지 말고 꼭 따라 그려보길 권한다. 연필 한 자루가 주는 다양한 맛을 경험해보고 또한 다양한 연필심을 갖추어놓고 골고루 써보면 더욱 다채로운 그림을 그려볼 수 있다. 특히 여러 가지 질감을 표현하는 방법은 내가 절실히 원하던 부분이었기에 부분부분을 그려보고 익혀보았다. 생각보다 잘 안되는 부분은 여러 장 그리다 보면 감이 올 것 같았다.




초반 연습은 자유로운 선을 구사할 수 자연물로 시작했다. 나무, 돌등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 멋스러운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소재가 편했다. 같은 소재라도 연필의 강약으로 그림이 입체적으로 살아나기도 하기 때문에 많이 그려보는 게 관건이다. 
책에서는 형태를 잡아나가면서 단계별 과정을 꼼꼼하게 설명하고 있어 참고하면서 표현해보면 될 것이다. 나무껍질을 표현하는 방법이나 구름을 묘사하는 방법 등이 자세히 나와있어 도움이 되었다. 

정물, 식물, 동물 드로잉의 기초를 살펴본 후 본격적으로 그리고픈 소재를 선택해서 옮겨보았다. 단계 과정도 무척 세세하게 설명이 되어 있어 꼼꼼히 체크해가며 그리면 되겠다. 식물보다 동물이 많이 어렵고 테크닉을 요하기에 제일 어렵게 느껴졌는데 자연스러운 질감이 잘 드러나기 위해서는 연습이 제일 중요하겠다. 책 속 다양한 예시를 통해 연습을 해본 후 풍경화를 완성해보고 싶다.
그림에 관심이 있는 이라면 도전해 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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