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정원의 로봇
데보라 인스톨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림원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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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봇이 그 이상의 감정을 표현하며 인간과 돈독한 관계를 만들어가는 내용을 보면 찌릿한 감동이 밀려온다. 마치 애완동물이 인간에게 그 이상의 믿음으로 놀라움을 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로봇이 일상이 되는 그런 날이 온다면 인간의 노동을 대신하는 것 이상으로 여길 수 있을까.

이 소설은 인공지능 로봇이 일상화된, 곧 머지않은 세상에서 벌어지는 한 인간과 한 로봇의 이야기이다. 이미 구모델이 되어 사람들이 찾지 않는 휴대폰처럼 로봇 탱은 그런 존재다. 그러나 그 낡음의 어딘가 알 수 없는  특별함이 있다. 그의 말투와 행동은 마치 어린아이의 모습과 닮아있다. 휴머니즘을 강조하는 소설답게 탱의 어리광에 안절부절못하는 벤의 모습은 마치 자식을 대하는 아버지 같아서 따뜻하다. 그들이 세계의 반을 도는 동안 쓸모없어 보였던 한 인간은 성장했고 둘의 관계는 가족처럼 더 깊어진다. 소설의 소재에서 이미 분명한 메시지를 전하고 있긴 하지만 여정 동안 벌어지는 사건들은 자잘한 재미를 더하고 있으며 그렇게 탱이 진화하며 인간과의 관계를 좁혀가는 동안 어느새 나도 탱이 좋아지고 있었다.

최첨단의 안드로이드 로봇이 각광받는 세상에 벤과 에이미는 아직 로봇의 도움 없이 살고 있다. 잘 나가는 아내와 무능력한 남편 사이에 등장한 정체 모를 로봇 탱은 부부 사이를 악화시키는 불씨가 된다. 에이미에겐 낡은 고철 덩어리이자 마당에 버려진 쓰레기 같은 존재였던 반면 벤은 백수인 자신의 처지만큼 탱의 처지가 안타까웠고 아무렇게나 취급할 수 없었다. 에이미는 벤이 자신의 인생보다 그런 쓸모없는 물건에게 한눈을 팔고 있다는 사실에 희망이 보이지 않았고 결국 그를 떠난다.

그렇게 벤의 인생에 아내는 퇴장했다. 그리고 탱의 실린더는 점점 줄어들어 수명이 다 되어가고 있다. 여태껏 무엇 하나 제대로 해 본 적 없던 벤이었지만 탱의 과거와 미래 정도는 책임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집을 나선다. 그의 몸에서 발견된 이니셜의 단서만 가지고 제작자를 찾아 떠난 여정이 순탄할 리가 없지만 만사가 잘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은 그를 계속 전진하게 한다.

탱이 탄생 배경이 서서히 드러나고 벤의 마당에 앉아 있게 되기까지의 과정이 드러나면서 벤은 탱을 향한 애정이 더 커진다. 탱과의 소통이 진화하고 있다는 걸 느낄수록 벤은 탱을 로봇 그 이상을 넘어 하나의 인격체로 대우하게 된 것이다. 탱이 놀랍도록 많은 재주가 있는 로봇이지만 인간의 좋은 면을 더 많이 습득할 수 있었던 것은 그만큼 함께한 벤의 자상함 때문이었다. 가슴팍에 붙인 테이프를 소중히 여기고 선의의 거짓말로 위기를 넘기며 능청을 떠는 모습은 정말 미소를 짓게 했다.

"아니야. 벤은 새고 있지 않아. 벤은 치유하고 있어._368

기계가 점점 인간화되면 오히려 그러한 기계에 인간은 두려움을 느낄 수 있다하지만 탱이 인간의 이기심으로부터 도망친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의 끝도 없는 욕망에 결국 모든 것이 사라져버리진 않을까 하는 걱정도 하게 되었다. 저자도 후기에서 언급하고 있지만 로봇에 관한 명확한 지식이나 기술적 지식은 많지 않다. 탱의 캐릭터는 공감능력이 진화된 로봇이었고 무언가 모자란 벤과의 만남을 통해 서로 모자란 부분을 채워주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많은 챕터가 동화 같은 느낌을 더하며 한편의 애니메이션 같기도 한 이야기는 인간과 기계가 따뜻한 공생의 관계로 발전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인간은 무언가 도전을 하고 해나감으로써 자각하고 깨달음을 얻는다. 벤이 여정 동안 에이미와의 관계를 돌아보며 자신의 문제점을 깨달은 것처럼 말이다. 이야기는 기분좋게 해피엔딩으로 끝맺음을 하고 있지만 난 또 쓸데없는 걱정을 하고 말았다.
벤이 죽은 뒤 탱은 어쩌지 하는.
그러고 보니 얼마전 티비에서 본 광고의 한장면도 떠올랐다. 현대해*광고에 나오는 로봇과 탱의 모습이 비슷한것 같기도 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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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엄마
신현림 지음 / 놀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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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인생 경로를 순서대로 밟아 나가며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었지만 때론 입버릇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가장 힘들다는 말로 나 자신을 위로했다. 아이가 돌이 되기 전 프리랜서를 하며 올빼미 생활을 주로 하던 시절. 예민한 첫째는 부쩍 새벽마다 깨서 우는 일이 잦았기에 고단한 날도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잠든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두려움이 밀려든 적이 있었다. 어느새 엄마가 되어버린 내 모습은 믿기지 않는 현실 같았고 오만가지 걱정은 거친 파도처럼 밀려왔다. 매 순간 시험을 치르는 기분과 씨름하고 육아와 일에 쫓기는 삶에 나는 방향을 잃고 겉돌았다. 그래도 나름의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건 아니었다. 우울증과 스트레스를 이겨내기 위해 소설, 에세이, 육아서 등 닥치는 대로 읽긴 했다. 그런데 그때 난 왜 시 한편 읽어 볼 생각을 하지 않은 걸까. 그때 시를 읽었더라면 내 삶의 온기가 빨리 내려앉지 않았을까.

진정 고아는 아니어도
저마다 고아의 삶을 사는 건 아닌 지
이것이 왜 그런지 물으면서
봄 쪽으로 자꾸만 팔이 길어지고 있다. -p.24

호흡을 가다듬고 쉬어가야 한다는 생각보다는 뒤처지면 안 된다는 두려움과 끝없는 자기계발의 압박에 놓여 있다 보니 잠시의 쉼도 맘 편하 않다. 그러나 책 한 장, 시 한 줄 들여다볼새 없는 일상이라도 마음을 잡아끄는 문장 앞에서는 멈칫할 때가 있다. 그 멈칫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시간을 좀 더 할애한다면 책이 좋아지고 시가 일상이 될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미래에 걱정을 안고 살기보다는 시 한 줄에 호흡을 가다듬고 슬프면 슬픈 대로 헛된 마음도 그냥 그대로 쉬이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 그러다 보면 저자가 말한 대로 자연스레 봄의 기운에 팔을 길게 뻗고 있을는지도 모른다.

이 책은 나와 같은 엄마들의 인생이 보인다. 저자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일상을 찾고 또 놓쳐버린 부분은 시로 위안 삼았다. 어려운 문장을 늘어놓거나 심오한 철학이 뒤섞인 문장 같은 건 없다. 저자는 엄마의 위치와 자식을 키우며 느낀 생각들을 편안하게 써 내려갔고 덕분에 조급함을 조금씩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엄마이기 이전에 딸이기도 한 내 모습에서 엄마의 마음까지 다시 헤아려봄으로써 일상의 무심함에 반성했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시들은 그러한 상황에 절묘하게 어우러져 울컥함이 밀려오기도 했고 자연스럽게 지인들에게 퍼나르기도 했다. 좋은 글을 만나면 왜 그렇게 나눠먹고 싶은지. 다들 처한 상황은 달라도 느끼는 마음은 비슷해서 다들 한마디씩 감상평을 늘어놓기도 했다.

간이 공항처럼 세월도 잠시 쉬어가면
앞으로 나아갈 내일이 더 또렷이 보이고
뒤돌아본 시간들은 더 아름답고 아쉬울지 모른다. -p.126

좋은 시 한편에 부는 미세한 봄바람은 꽁꽁 얼어버린 일상을 녹인다. 어쩜 그리도 문장하나로 사람의 마음을 들었다놨다하는지 시인들의 재주에 시샘이 날 정도다. 제각각의 모습과 처한 상황이 달라서 책한권이 주는 감흥도 다를테지만 별 감흥 없이 덮어버린다면 안타까울것 같다.
쉽게 화내고 돌아서면 후회하고 작은 일에도 감동받아 울고 웃는 평범한 우리는 마음을 씻어주는 문장들 앞에서 쉼표를 발휘할 수 있다.
그리고 너무 완벽에 가까우려 애쓸 필요는 없다. 아이와 발맞춰 호흡하면 된다. 그래서 최소한 아이들에게 엄마라는 이름에 그늘은 두지는 말아야 한다. 우리의 미간 주름을 당겨줄 말 한 좋은 시 한편 읽으면서 생각을 더해보면 분명 내게 마음의 여유가 찾아올 것이다. 시와 가깝게 지내며 나에게 우아함을 더해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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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늙은 여자 - 알래스카 원주민이 들려주는 생존에 대한 이야기
벨마 월리스 지음, 짐 그랜트 그림, 김남주 옮김 / 이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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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엄마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다 보면  이야기의 진실성이 궁금해질 때가 있다. 어쩌면 그것은 지극히 현실주의에 입각한 나의 의심병이 과한 건 아닐까 하며 흘려들은 적이 많았다. 그런데 여기 이 두 늙은 여자의 이야기는 나의 잣대로 본다면 더 믿기 어렵다. 매년 겨울이 돌아오면 보온성이 뛰어난 외투를 걸치고도 수족냉증으로 호들갑을 떠는 내 모습과는 극명해 보여서일까. 여든 살과 일흔다섯의 두 노인이 혹한의 추위를 이겨내는 모습이 경이로워 보일 정도였다.

매서운 칼바람에 온몸이 얼어버릴 것 같은 겨울. 이동하던 유목민들 사이에서 두 늙은 여자가 버려진다. 모닥불 주위로 숨죽이고 있던 부족민들은 혹독한 추위와 기근을 원망하며 두 노인을 외면한다. 애초부터 그들에게 연장자에 대한 존경심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 다만 매서운 알래스카의 추위 속에서 그 잔인함을 드러냈을 뿐이다. 그 누구도 그해 겨울을 이겨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고 암묵적 생존법칙이 공동체에 적용되고 있었다. 늙고 쓸모 없어진 그녀들도 이 믿기지 않는 상황에 멍하니 모닥불만 응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들도 지금까지 주어진 일을 해나가며 열심히 살아왔다. 그러나 점점 몸은 누군가의 팔이나 지팡이에 의지하게 되고 정신은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나약함을 드러내는 일이 일상이 되고 게다가 불평불만도 많아진다. 결국에는 그것이 그녀들 스스로 쓸모없음을 드러낸 꼴이나 다름없었다. 족장에게 무엇보다 시급한 건 입의 수를 줄이는 것이었고 그녀들은 부족의 운명과 함께할 수 없게 된다.

부족민들이 멀어져 갈수록 그녀들은 배신감과 치욕감 그리고 서러운 감정들이 뒤범벅되어 눈물이 솟구친다. 칙디야크와 사, 이 두 늙은 여자의 운명은 이제 시퍼런 대지 위에 내던져진다. 칙디야크가 딸을 향해 원망의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사이 사는 분노를 억누르자 오기가 발동한다.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뭐라도 해서 그들이 틀렸음을 증명하자고 단호하게 말하며 그녀들이 버려진 그 자리를 빨리 벗어나고자 한다.

우리 역시 지난날 열심히 일했고 살 권리가 있다는 것을 그들은 잊어버렸어!
그래서 지금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거야. 친구야.
어차피 죽을 거라면 뭔가 해보고 죽자고. 가만히 앉아서 죽음을 기다릴 게 아니라 말이야. -p.29

 

 

요즘 부쩍 이 늙다는 어감이 가져다주는 서글픔과 노인에 대한 연민이 생겨나는 이때에 두 늙은 여자의 생존기는 그 어떤 자기 계발서보다 강하게 다가왔다. 관절이 얼어붙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순간을 버텨내고 한방의 손놀림에 다람쥐 사냥은 성공한다. 덫을 놓아 토끼를 잡아서 주린 배를 달래는 사이 세월과 함께한 삶의 지혜들로 자신감을 얻는다. 살고자 하는 바람을 대지가 눈치챈 것일까. 밀당의 고수 같은 자연도 그녀들의 의지에 희망을 봄바람을 실어 온다.

칙디야크와 사는 자신들이 힘든 노역이라는 비싼 대가를 지불해야만
대지가 그 대가로 자신들에게 안락을 준다는 자연의 법칙을 알고 있었다. -p.61

어쩌면 그녀들에게 한줄기 희망은 죄책감을 안고 떠난 부족민들이 남겨준 물품들이었을 것이다. 칙디야크의 딸과 손자가 놓고 간 가죽끈과 손도끼는 그들에겐 연민의 정이자 중요한 생존도구였다. 여성들은 사냥을 제외한 실생활에서 기술이 능할 수밖에 없다. 칙디야크와 사는 옛 기억을 떠올려 머물 곳을 찾아내고 그곳에서 각자의 삶의 지식을 총동원하여 열심히 움직인다. 그렇게 구한 식량을 저장하는 문제로 고심할 정도가 되자 한편으로는 자신을 버리고 간 부족들을 경계해야 함을 잊지 않는다. 두 늙은 여자는 자신들이 결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님을 증명하였지만 배신의 그림자는 그들의 생명이 붙어있는 한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그러나 혼자가 아닌 둘이라서 가능했을 땅 위의 시간 속에서 어둠이 내려앉으면 어김없이 자신들을 외면했던 눈빛의 잔상에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긴 세월 동안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웠어. 하지만 노년에 들어서자 우리는 삶에서 우리의 몫을 했다고 생각했지.
그래서 더 이상 전처럼 일하기를 그만두었어. 우리의 몸은 우리의 예상보다 좀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을 정도로 아직 건강한데도 말이야. -p.44

노년 인구가 증가하고 노년의 삶을 다룬 소설들이 많이 있긴 하지만 이처럼 노년의 억척 성장기를 말하고 있는 소설은 많지 않다. 게다가 더 많은 깨달음도 보였다. 요즘처럼 세대 간의 단절이 심화되고 공감력이나 연민이 부족한 때에 노년의 삶을 이해해야 한다. 단지 디지털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답답하다 말하고 사회 일원으로 배제하려고만 한다면 불협화음이 여기저기서 생겨난다. 그래서 그녀들이 생존에 열의를 쏟아부을 때는 영화 [인턴]이  떠올랐다. 노년의 인생에 생기를 불어넣어 주며 젊은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주었던 유쾌한 장면 장면이 떠올랐다. 인생 선배로써 젊은이들 사이에서 잘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훈훈했고 결코 쓸모없는 인간이란 없음을 느끼게 해 주었던 영화였다.
그처럼 노년이 되어서도 늙음을 탓하지 말고 삶에 애정을 쏟는다면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부족의 젊은 남자들이 그녀들을 발견하였을 때 느꼈던 희망과 존경심처럼 말이다.

작가가 서문에서도 밝히고 있듯이 인간의 능력에는 한계가 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해 주었다. 쓸모없는 인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각자에게 내재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찾아가기만 하면 된다. 귀차니즘이 점점 커져가고 새로운 시도에 두려움만 가졌던 나를 질타하게 해준 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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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끝나고 나는 더 좋아졌다
디제이 아오이 지음, 김윤경 옮김 / 놀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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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기가 바뀌고 세대가 변해도 사랑에 어려움을 느끼는 이들은 줄어들지 않는다. 그것은 사랑도 결국 관계를 맺는 일이고 사랑이 끝나기 전까지는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생은 시행착오 속에서 더 나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으며 인간관계나 연애도 마찬가지다.

요즘의 연애 패턴을 보면 시대의 영향력 때문인지 사랑도 유행을 타고 변화하는 것 같다. 변화의 바람은 부정적인 면이 더 눈에 두드러진다. 마치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신상품처럼, 인스턴트 음식에 길들여진 우리들처럼, 손하나 까딱하지 않아도 척척 알아서 해주는 최첨단 기계처럼, 사랑도 그것들과 점점 닮아가는 듯하다. 어느새 사랑이 점점 가벼워지고 진실성은 결여된다. 짧은 만남과 헤어짐 속에 마음의 상처는 커져만 간다. 이 사람이야!라는 확신이 이 사람일까?로 바뀌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불신은 쌓이고 결국 자존감마저 바닥으로 내리꽂히면 다음 사랑을 준비할 수 없다.

그러나 편리한 세상의 일원으로 우리는 원하는 정보를 발 빠르게 얻을 수 있고 멀리 가지 않아도 또 누군가를 꼭 만나지 않아도 조언을 구할 수 있다. 조금의 노력만 들이면 된다. 이 책의 저자도 SNS 상담을 통해 많은 이들의 마음을 위로하며 지지를 얻었고 그의 조언들을 묶어 한 권의 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래서 실질적으로 꽤 와닿는 부분들이 많다. 현실적이고 냉정하지만 차분함 속에 따뜻한 위로가 녹아 있어 내 머릿속에 잘 저장해놓고 싶은 문장이 한가득이다. 곧 머지않아 사랑이 찾아올 내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말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자신의 만족을 위한 것이지만 진심 어린 사랑은 상대를 위한 것이에요. -p.39

사랑의 시작점보다 이별의 종착역에 다다랐을 때 우리는 좀 더 현명해져야 한다. 이 책도 이별의 순간 또는 이별 후에 어떻게 하는 것이 진정 자신을 위하는 일인지 아낌없이 조언하고 있다. 각각의 사연들을 바탕으로 남녀의 가치관의 차이점이나 사랑을 바라보는 시각 그리고 말 한마디에 내재된 의미들을 풀어내보며 마치 연애 공부를 하듯이 읽으면 된다.
전체적인 상담 내용이 대체적으로 여성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긴 하지만 솔직히 여성에게 더 필요한 건 사실이다. 최근 미투나 데이트 폭력이 이슈화되면서 나쁜 남자를 너무 많이 보아서인지 상대를 고르는 감각을 길러야 하겠다. 또한 최소한이라도 가벼운 만남으로 상처받거나  진심을 이용당해서는 안되겠다.

잊어야 하는 건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내 감정이기 때문에
내 감정이 사그라들면 그 사람은 오히려 또렷하게 보이게 돼요. -p.87

서로의 가치관을 맞추는 것이 사랑이 아니라,
가치관의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사랑이에요. -p.165

'이 사람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라는 느낌보다
'이 사람과는 진솔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어'라는 느낌이 드는 사람과 함께 했을 때

오래, 아주 오래갈 수 있습니다. -p.139

사랑이란 소재는 분명 흥미롭다. 연애의 다양성의 범주는 무궁무진한 데 반해 내가 할 수 있는 연애의 수는 한정돼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일지라도 귀가 쫑긋해질 수밖에 없다. 남의 연애에서 잘 보이는 정답이 내 연애에서도 잘 보이려면 많이 보고 겪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먼저 안다면 사랑도 잘 만나고 헤어지고 충분히 아파하고 털어낼 수 있다.

중요한 건 올바른 가치관을 형성해나가는 것이다. 청소년기에 형성된 그릇된 가치관이 제자리를 찾기까지 오랜 시간을 요할 수도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연애와 이성친구에 관해 제대로 된 교육이 이루어져야 한다.
사랑은 우리의 마음을 살찌우고 철들게 한다. 운명이란 단어에 자신을 가둘 것이 아니라 좋은 인연을 만들어가는 게 최선이듯 사랑이 끝나고도 더 좋아질 수 있는 상태에 놓일 수 있는 이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한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제본이 영 맘에 들지 않는다. 내용은 시원한데 제본은 답답하다. 이렇게 펼치기 어려운 책은 별로 보고 싶지 않다. 얼마 전에 구매한 동심 언어 사전의 누드 사철 제본이 개인적으로 참 맘에 들어서인지 이 부분이 더욱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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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둔감하게 살기로 했다 - 초조해하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와타나베 준이치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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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장을 늦추었다간 언제 뒤로 밀려날지 모르는 현대인들에게 둔감함은 얼마나 필요할까. 주위에서는 지나친 예민함에 스트레스를 떠안고 살아가는 이들을 쉽게 만나볼 수 있고 게다가 그러한 사람들과의 인간관계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둔감해져야 괜찮은 삶을 살아갈까.

책의 저자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둔감함이란 신이 주신 최고의 재능이라며 포문을 열고 있다. 여기서 저자가 말하는 둔감함이란 쉽게 말하면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않는 것, 한 귀로 듣고 흘려버리는 능력, 타인의 단점에 지나치게 반응하지 않는 것등으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하루아침에 가지고 태어난 성향을 바꾸기는 쉽지 않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있을 때 긴장해서 배가 아픈 사람, 인터넷 악성 댓글 한 줄에 끙끙 앓는 사람, 상대방의 기분에 늘 휘둘리고 신경 쓰는 사람들처럼 예민함을 타고난 이들이 자신을 컨트롤하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 하지만 시행착오를 통해 더 단단해지며 둔감해지는 감각을 익혀나갈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뻔한 이야기지만 그 뻔한 이야기 속에서 해답을 찾을 수 있다. 그래서 지나치게 예민한 성격 때문에 고민이 많은 이들이라면 일독하길 권한다. 그리고 실천해보기만 하면 된다. 상사에게 심하게 꾸중을 들었다면 그 다음날 아무 일 없는 듯이 행동하는 일이 당장은 어렵겠지만 결혼한 이들이라면 짜놓은 치약 튜브의 모양 때문에 서로 감정 상하는 일은 그만할 수 있다.

예민함이란 단어 속에는 소심, 까탈, 부정적 등의 나쁜 이미지가 공존한다. 그러한 이미지를 떠안고 살아가는 삶이 결코 윤택할 리가 없다. 얼마 전 터진 기업인의 막말 동영상만 보아도 얼마나 예민함으로 똘똘 뭉친 인간들인지 알 수 있지 않은가. 그들 자신의 삶뿐 아니라 타인의 삶까지 고통으로 몰고 가는 예민함은 분명 버려야 한다. 예민함이 지나쳐 화가 쌓이고 분노를 조절할 수 없는 상태가 되거나 소심함이 극에 달해 삶의 그늘 속으로 자신을 가두지는 않는지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한다.

수많은 계발서들은 말한다. 자신을 제어하거나 풀어놓거나 내려놓는 등의 삶을 추구하라고 말이다. 업무, 일상, 연애, 육아, 결혼생활 등 우리가 조금만 예민한 마음을 내려놓으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유익한 삶을 추구할 수 있다. 책 속 다양한 일화를 바탕으로 지금 나는 무엇을 줄이고 어떤 면에 둔감력을 장착할는지 찾아보길 바란다. 나다운 게 무엇이냐고 되물을 것이 아니라 나다운 것은 결국 내가 만들어가는 일임을 늘 잊지 말자.

책 속 태그 중 맘에 들었던 것 ㅎㅎ
#근거없는자신감,근자감 #둔감함에찬사를 #잠자는숲속의어른 #잘난체하는능력 #상처받지않는정신력 #비아냥거림에대한둔감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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