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언어 - 나무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귀도 미나 디 소스피로 지음 / 설렘(SEOLREM)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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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의 탄생, 그리고 성장하고 진화하는 이 모든 과정을 그 누가 설명할 수 있을까. 인류는 생명의 기원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연구해오고 있지만 풀 한 포기, 작은 벌레 하나에 깃든 생명의 경이로움은 늘 놀랍고 의문투성이다. 나무의 언어라는 제목을 보면서 문득 몇 년 전 둘째 아이의 참관수업에서 본 실험 내용이 떠올랐다. 요지는 긍정의 말을 해 주어야 한다는 게 주제였지만 내겐 식물에게 나타난 반응이 더 놀라웠다. 똑같은 조건의 두 화분을 놓고 좋은 말과 나쁜 말을 들려주었을 때 나쁜 말을 들은 화분이 시들어 버린 실험 말이다. 그 결과에 식물이 귀가 있나? 식물도 감정을 느끼는 걸까?라며 멈칫했던 마음은 식물을 대하는 태도의 변화로 옮아갔었다.

인류와 함께 한 나무는 긴 생명력과 그 거대함 때문에 신적 존재가 되거나 수많은 이야기의 소재를 낳기도 했다. 또한 인간을 지켜주는 수호신이 되어 수많은 설화가 전해져오고 있고 나무에 깃든 영혼은 상상력을 덧입고 신비스러운 이야기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비록 오래전부터 거친 인간들의 손에 무참히 짓밟히고 사라져갔지만 인간에게 있어 나무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기에 그만큼 또 소중히 여긴다. 그래서 저자는 나무를 이야기하고 싶었나 보다. 무려 12년이라는 긴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힘겹게 버티고 있는 이 지구를 위해 우리가 함께 자연과 인간의 균형에 대해 통찰하고 고심해야 한다.

바쁜 청춘이 지나고 자연을 벗 삼은 일상이 좋아지게 되자 내게 생긴 새로운 습관이 나무 관찰이다. 걸으면서 바라보는 나무는 우리네 개개인의 삶 같다. 하나도 똑같은 형태가 없다. 도심 속나무는 제 한 몸 희생하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칙칙한 색감과 갈라지고 벗겨진 나뭇결, 타들어가는듯한 나뭇잎을 보고 있자면 미안해서 쓰다듬게 된다. 그러나 숲속 나무들은 맘껏 청량함과 자태를 뽐내고 있다. 땅속 습기를 잘 빨아들여 기둥이 반지르르하고 나뭇잎은 빛난다. 덕분에 피톤치드가 온몸 가득 몸을 씻어내주면 일상의 스트레스도 희석되는 듯하다. 그만큼 나무는, 숲은 인간에게 힐링이 되는 장소이다.

책의 화자도 숲속 좋은 경관에 자리 잡은 주목이다. 이 책은 그렇게 철저히 나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그것이 나를 잡아끈 이유이기도 한데 그만큼 어떻게 씌었을지 궁금했다. 설화나 역사적 사건, 그리고 철학적 사고들이 덧입혀져 있지만 그것은 다시 되돌아보니 인간사에 대한 비판과 닮아 있다. 태어나고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되고 적당히 타협하고 지배하고 군림하다 잃어가면서 얻게 되는 깨달음과 삶의 이치 등은 결국 인간사의 기승전결 같은 구조를 보여준다. 삶은 계속되지만 영원한 건 없다는 중요한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삶을 분석하다니, 그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삶이란 사는 것이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결국 삶에서 우리는 오늘을 찾고자 하고 내일을 잃지 않으려는 것이 도리일 것이다. -p.236

생명의 탄생은 여성과 가깝다. 대자연을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문구가 자연스러운 것도 이런 이유일 것이다. 그래서 주목도 여성으로 표현되고 있다. 그녀가 태어났을 때 바라본 세상은 새롭지만 두려움도 교차한다. 엄마의 곁에서 다른 생명체를 알아가고 배워간다. 하지만 엄마가 떠나고 혼자가 된 그녀는 숲속의 여왕으로써 생존을 위한 방법을 터득해 나간다. 그것은 때로는 남을 속이기도 하고 누군가는 내 편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도 해야 하는 고달픈 일이다. 엄마처럼 삶의 순응한 채 어떠한 노력도 없이 죽어가지 않기 위해 그녀는 스스로 강인함을 깨우쳐 간 것이다.


그러나 대지에 몸을 맡기고 있는 나무에게 있어 활동 영역이 자유로운 인간은 제일 큰 적이다. 그녀의 눈에 비친 인간은 파괴적이고 사악하며 이기적이다. 그들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덤벼든다. 종교도 사랑도 결국 욕망을 채우기 위한 싸움으로 전락하고 그들의 싸움에 종말은 보이지 않는다. 결국 인간들이 휘두른 도끼에 쓰러져 버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끝난 줄로만 알았던 삶은 긴 시간이 지난 뒤 다시 살아난다.  뿌리의 생명력으로 밑동에서 다시 싹을 틔워내며 성장하고 또다시 역동의 세월 속을 지난다. 세상은 변화했고 그녀 앞을 지나쳐가는 인간들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이다. 파괴를 일삼던 인간들이 그녀 주위에서 휴식과 즐거움을 누린다. 그리고 오래된 주목에게 최상의 케어를 제공하고 있다. 그녀는 결국 인간을 용서한다. 그렇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은 인류가 분별력을 찾았다는 명백한 징후로 보였다.-p 231

이 책은 친절하게도 각 장에 대한 저자의 부연 설명이 뒷장에 할애되어 있다. 각 장에서 드러나고자 했던 작가의 의도를 들여다보면 자연의 경이로움과 그 속에서 삶의 이치를 배워 갈 수 있다. 그 경이로운 자연이 자꾸만 균형을 잃어가는 요즘이 안타깝다
.
태양이 유독 뜨거운 지금, 분명 정상적인 여름은 아닌듯하다. 인간뿐 아니라 나무마저도 힘들어 보여서 그 그늘 밑에서 자리를 잡기가 살짝 미안할 정도다. 자연도 그리고 우리네 삶도 적절한 균형을 찾아가길 희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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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2 : 정종·태종 - 피와 눈물로 세운 나라의 기틀 조선왕조실록 2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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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에 이어 2권에서는 정종과 태종에 대해 다루고 있다.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건국했지만 방원이 일으킨 1차 왕자의 난으로 판세가 뒤집히자 태조는 엄청난 충격을 받는다. 방원이 형제를 죽이고도 왕좌로 직진하지 않은 데는 태조를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다. 형제들 중 권력에 욕심이 있는 이는 존재하고 누구보다 아비 옆에서 보고 배운 대로 방원의 권력욕은 대단했다. 비록 난은 일으켰지만 아비에게 인정받고 싶었던 아들의 모습이 곳곳에 드러나고 있어 애처로운 마음도 들었다. 태조를 의식한 왕좌의 양보는 정종에게는 득이 될 것이 없었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 그 누구도 권력의 희생양이 되는 걸 원치 않았기에 자식들도 출궁시키고 본인도 왕좌를 양보하는 고종명의 길을 택한다. 그래서 역사에서 정종에 대한 평가가 많이 절하되었음을 되새긴다.

정종을 '기생한 임금'이라고 호칭한 하륜의 한마디에 방원 측의 모든 평가가 압축되어 있다.
정종은 방원에게 '얹혀산 임금'이란 뜻이다. - p.119

2차 왕자의 난을 거쳐 왕이 된 역적이자 패륜아인 방원을 이성계는 용서할 수가 없었다. 정작 태종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모두 천명이라는 말로 일축하지만 정치라는 게 어디 뜻대로 되는 것인가. 핏줄은 잘라내고 내쳤지만 정작 부인과 처가의 기세에 골머리를 않는다. 특히 원경왕후의 투기가 심해 후궁의 법도까지 들먹이며 이해시키려 하지만 사이는 점점 틀어진다. 여기서 황제가 둘 수 있는 후궁의 수가 120명이라니 놀라울 따름이다. 결국 투기가 부른 불씨는 외척 숙청이라는 참극을 부르는데 한 무제 때 시행된 복비법(입 밖에 내지 않고 마음속으로 남을 비방하는 것을 처벌하는 법)이라는 죄목을 갖다붙이며 시작된 민무구 형제의 압박은 어처구니가 없었다. 혁명의 동지가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죄인으로 전락하는 경우가 흔한 일이긴 하지만 태종은 외척 경계론을 강하게 밀고 나가며 왕권을 강화한다.

태종은 노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자 본격적으로 노비 개혁을 추진한다. 한 사람이 무려 노비 천명을 거느릴 수 있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억울한 양민과 농민들이 많았으며 그만큼 농민의 삶 또한 피폐했음을 알 수 있다.
노비를 물건 다루듯 하다 보니 소송은 끊이지 않았고 호적이나 상속의 불합리한 조건 등으로 정리가 시급했다. 신분제도를 개혁하는 일은 사대부의 반발로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태종은 사람을 신분으로 구별하는 것에 동의하지 않았다. 즉 노비나 사대부나 동등한 인간으로 보았다는 사실에 인간다운 면모가 느껴졌다. "하늘이 백성을 낼 때는 본래 천인이 없었다." -p.251
실로 태종의 업적 중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었던 것이 종부법의 시행이다. 노비의 수가 대폭 감소되었다는 사실만 보아도 안정된 사회로 접어들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태종도 이성계와 마찬가지로 자식 문제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세자의 끊임없는 일탈에 결국 두 손들게 된다. 엇나가는 자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이 왕이라고 다르겠는가. [맹자]에서도 직접 자식을 가르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올바른 답을 말하고 있다.

가르치는 사람은 반드시 바른길을 가르친다. 바른길을 가르치는데 행하지 않으면 화가 나게 되고 화가 나는 것이 뒤따르면 거꾸로 해치게 된다. 아버지께서 나에게 바른길을 가르쳐 주지만 아버지의 행위도 바른길에서 나오지 않았다고 하면 이는 부자가 서로 해치는 것이니 나쁜 것이다. 이런 까닭에 옛날에는 서로 자식을 바꿔서 가르쳤다. -p. 312

결국 세자의 일탈로 천명을 이어받게 된 건 충녕이다. 세자를 책봉하지 못한 미련을 접고 적극적으로 세종을 뒷받침한다. 군권만큼은 내놓지 않으며 악역을 자처하였지만 조선시대 훌륭한 왕으로 일 순위를 자리매김하게 된 세종의 길은 태종이 열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태종은 핏줄들에겐 악역을 자처하고 백성들에겐 오래 기억에 남을 왕으로 남았다는 시선이 새롭고 흥미로웠다.
3권에서 펼쳐질 세종의 업적과 문종, 단종편이 벌써 궁금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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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 1 : 태조 - 혁명의 대업을 이루다 조선왕조실록 1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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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늠할 수 없는 시간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지금의 내 모습만큼 그 시대를 살다간 이들이 낯설다. 삶과 삶을 이어오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것임에도 너무나 치열하고 때로는 잔악함에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내가 숨 쉬고 있는 이 땅 위의 역사는 반드시 알아야 하는 것임에도 반복되는 인간들의 어리석음을 보고 싶지 않아서였다. 그러나 쌓인 연륜만큼 철도 드는지 애국심도 생겨나고 내가 나고 사라질 이 땅 위의 역사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역사 교과서로 한바탕 시끄러웠던 그때쯤 부터였던 것 같다. 그러나 부끄럽게도 입시용 기억을 겨우 끄집어내어 하나하나 짜 맞추어봐도 빈틈이 너무 많았다.

본격적으로 조선시대에 흥미를 가져볼 생각에 왕의 무덤을 찾아다니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흥미가 덜했다. 그때 모 예능 프로에서 조선왕조실록의 위대함에 대해 소개하는 장면을 본 후 실록을 읽어보아야겠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조선왕조실록은 이미 어린이용부터 만화 시리즈까지 다양하게 출간되어있다. 그래서 책을 선별함에 있어 고민이 되던 차 이번에 새로 출간되기 시작한 이덕일 저자의 책이 눈에 띄었다. 무려 10년간의 구상과 자료조사를 기반으로 5년간의 집필 끝에 10권의 책으로 나온다니 깊이감이 있을 것 같았다.

책에 들어가기에 앞서 조선왕조실록을 읽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읽다 보니 뭉클한 마음도 들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고 좀 더 새로운 시각과 폭넓은 관점으로 역사를 짚어보면 더 나은 미래도 고민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에 출간된 1,2권을 먼저 읽어보게 되었는데 역대 왕들의 파란만장한 삶만큼이나 깊이감 있고 탄탄하다. 지루하면 어쩌나 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미리 드라마 좀 챙겨 봐둘 걸 하는 아쉬움이 든 걸 보면 실록의 기록들이 세세해서 생동감이 느껴졌다.

조선시대 왕조의 뼈대만 대충 알고 있던 내게 조선왕조실록은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그 시대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었다. 이성계의 토지개혁에 담긴 숨은 의도를 시작으로 흔들리던 고려왕조를 세세히 전하고 있는데 고려를 위한 공민왕의 깊은 고민에도 불구하고 세력 다툼의 희생양이 된 건 같아 씁쓸했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한국사에서 짝꿍이라고 해도 무리가 없듯이 둘의 만남은 역사적으로도 큰 의미가 있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이성계가 가진 친병과 정도전이 가진 병법의 만남이고, 이성계가 가진 군사력과 정도전이 가진 역성혁명 사상의 결합이었다. -p.139

조선 건국의 의의를 돌아보기 전에 위화도 회군이 남긴 역사적 의의를 다시 보게 되어 뜻깊은 시간이었다. 늘 위아래의 침략과 간섭에 시달렸던 고려에게 명나라도 만만찮았은 상대였다. 우왕은 계속되는 영토분쟁으로 나라의 사기를 끌어올리기 위해 요동정벌을 계획하지만 이성계의 반대로 실패하고 그 이면에는 토지개혁 상소문이 깔려있었음을 시사하니 어느 시대나 정치적 눈속임이 존재함이 드러났다. 그 이후 조선을 뒤덮은 극도의 사대주의 때문에 더더욱 요동정벌의 실패가 아쉬울 수밖에 없었다.

실록의 내용과 사진 자료로 이해를 돕고 있는데 책장을 넘기다 주원장의 초상화를 보고 빵 터지고 말았다. 중국 역사상 가장 추남인 황제로 유명하다니. 18세기 초상화로 온라인 검색 시 찾기 어려우니 궁금하면 책을 보시길. 그러나 중국 역사상 자수성가한 황제였단 사실에 더 의의가 있고 조선을 항상 경계하고 두려워한 점도 살펴볼 수 있다.

시대를 막론하고 권력과 정치는 부패하고 타락한다. 정치 공작의 희생자들은 수도 없고 그렇게 잡은 권력이라 해도 또 뒤집힌다. 천륜도 인륜도 없는 정치판이 역겨워서 제아무리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인 이성계라고 해도 그 성과를 온전히 높이 살 수가 없었다. 하나의 왕조가 사라지고 새로운 왕조가 탄생하는 과정에서의 피 터지는 싸움은 당연함이겠지만 그렇게 얻은 왕조를 7년밖에 누려보지 못한 태조 이성계의 삶을 들여다보니 그 또한 안타깝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뿌린 대로 거둔 그의 운명이었겠지만.
이성계와 방원. 이 둘은 그 아비의 그 아들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나 할까.

무엇보다 실록을 통해 풍부한 내용을 접할 수 있어 새로웠다. 빈틈이 매워져가고 있는 이 느낌이 좋아서 쭉 읽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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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소화 - 삼시 세끼, 무병장수 식사법
류은경 지음 / 다산라이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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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한 달째다. 알 수 없는 벌레에 물린 뒤 상처가 곪고 커진 지가.
이상했다.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동전크기만 해진 상처는 도통 나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상처를 본 이들의 하나같은 반응은 면역력 저하라고 했다. 드디어 나도 여기저기 몸에 이상 증상이 나타난다는 공포의 사십대로 진입한 건가 하며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낫지 않는 상처가 걱정스러웠는지 남편은 식단을 바꿔보자고 제안했고 상처가 시작된 날 무렵부터 우리 집 식탁에는 과일과 야채가 더 많이 올려졌다. 다행히 시기도 좋았다. 다양한 과일과 야채를 저렴한 가격에 많이 챙겨 먹을 수 있는 계절이지 아니한가.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풍성한 여름이 좋아진다.
어쨌든 그렇게 우리 집 식탁이 조금씩 변하던 차 내 눈을 사로잡은 카피가 있었으니 바로 식전 과일이라는 문구였다.
어라, 과일을 식전에 먹으라니. 당연히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책장을 넘기며 새로 얻은 사실보다 더 놀란건 우리 집의 식습관이었다. 여태껏 딸아이의 칼슘 섭취를 위해 우유급식을 신청해왔고 친정엄마의 골다공증을 위해 우유는 떨어지지 않게끔 했다. 아이들은 부쩍 체격이 커 갈수록 고기를 찾는 횟수가 늘고 치킨과 피자도 자주 졸랐다. 그리고 늘 저녁식사가 끝난 뒤 한두 시간쯤 지나 과일을 먹는다.
책을 읽지 않았다면 나는 쭉 이런 시스템을 고수했었을는지도 모른다. 주변에서 누가 일러주거나 TV에서 박사들이 나와서 이야기를 해도 흘려듣기가 일쑤였고 귀찮다는 이유로 넘어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일찍 몸의 변화를 느꼈을 텐데. 그런 나의 무신경에 정말 반성했다.

저자는 신약개발에 몰두하다가 약보다는 체질 개선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우리가 올바른 식사법만 갖추어도 약에 의지하는 삶과 멀어질 수 있음을 인지했다. 특히 그녀가 몸소 실천해서 몸의 변화를 느끼기도 하였지만 다양한 사례들은 신뢰도를 높이고 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과일과 야채 섭취를 하면 우리 몸이  어떤 변화를 겪는지 소개하고 있다. 특히 오전에 과일을 섭취하고 식전에 과일 하나를 먹는 습관만 잘 들여도 건강한 삶의 기초를 다지는 길임을 강조한다. 제아무리 좋은 식품이라도 언제 어떻게 얼마나를 두고 고민이 많아지기 마련인데 저자가 늘 고민해오던 분야라서 그런지 확신이 있어 보여 믿음이 갔다.

그녀는 약에 대한 맹신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로 시작한다. 약의 부작용과 약이 또 다른 약을 부를 수도 있음을 숙지한다면 약보다 식습관 개선이 먼저임을 느낄 것이다. 더구나 우유의 진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는 내용보다 더 충격적이다. 우유가 골다공증과 골감소증의 원인이 된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와 더불어 육류 섭취의 이면인 동물 사육에 관한 부분도 언급하고 있는데 항생제를 투여하고 성장호르몬을 지속적으로 맞은 비정상적인 가축들을 섭취하고 있다는 점과 동물 학대에 가까운 인간들의 만행에 육류 섭취를 줄여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쇠고기에 들어있는 단백질이 실제로는 50%도 안된다는 정보와 더불어 채소와 과일, 해조류와 통곡물을 통해서도 충분히 단백질을 섭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는 주목할만하다.

실험실에서 사과나 배추, 토마토 하나라도 똑같이 만들어 낼 수 있는가? 현대 과학으로는 아직 불가능한 영역이다. - p.91

우리 몸은 효소가 활성화되어 있는 음식을 필요로 한다. 자연친화적인 신체에 자연에서 얻은 재료들이 발휘하는 능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다. 그러므로 가공식품의 섭취는 줄이는 것이 좋고 최대한 야생에 가깝게 섭취하는 것이 면역력을 높일 수 있다. 이런 식습관은 체중을 조절하는데도 도움이 되고 노후의 삶을 더 건강하게 지속시켜 줄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신체 주기를 살펴서 식단을 계획하고 소화를 돕는 식습관을 체크하여 좋은 습관을 길러가야 한다. 과일을 왜 식전에 먹어야 하는지, 왜 물에 밥을 말아먹으면 안 좋은지, 오전 바나나 섭취는 왜 피하는 게 좋은지, 장기간 과일 섭취를 하면 왜 체중 감량이라는 즐거움을 맞이하게 되는지 등의 상식을 통해 올바른 식습관을 기를 수 있다.

가공식품의 단점은 미디어를 통해 수도 없이 들어왔고 제철 과일과 야채 섭취가 좋다는 것도 익히 알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의 무의식 속에 자리 잡힌 안일함을 깨우는 일이다. 건강의 적신호를 느끼기 전에 실천하는 것이 제일 좋지 않겠는가.
건강을 챙기는 길은 멀리 있지 않다. 병원도, 비싼 영양제도, 운동도 아닌 제철 과일과 야채만으로 충분함을 알게 되었다.
꾸준한 실천만이 답이다.

오전 과일 3개를 먹으면 300개 넘는 영양소를 섭취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P.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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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게으름뱅이의 모험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추지나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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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고로 게으름뱅이 하면 혀부터 차게 된다. 게으른 놈이 어느 곳에 지 한 몸 거두겠는가. 그러나 여기 거룩한 게으름뱅이가 있다. 게다가 게으름뱅이가 모험도 한다. 게으르면 아무것도 안 해야 되는 게 맞을진데 모험을 해서 거룩하다는 건지 너무나 게을러서 거룩하다는 건지 어쨌든 게으른 그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내겐 낯선 작가이지만 일본에서는 이미 인지도가 있는 작가로 마니아층이 있나 보다. 일본 애니메이션이 떠오른 표지와 캐릭터들이 일본의 고유문화와 연결되어 독특한 괴이함을 자아낸다. 특히 교토 책 대상을 받았다는 문구가 눈을 사로잡았는데 배경이 교토다. 교토 홍보용으로 괜찮았나 보다. 뭐 일본 땅 한번 밟아본 적 없는 나로서는 교토가 어떤지 알 도리는 없지만 작가가 교토의 지리적 특징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에서는 교토 여행지 책자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교토는 여행 중 순서나 방향을 잘 짜놓지 않으면 같은 곳을 빙빙 도는 수가 있다는 점말이다. 우습게도 이야기에서도 심한 길치 아가씨가 등장하는데 도통 갈피를 못 잡고 헤매는 모습에 동병상련이 느껴지기도 했다.

게으른 주인공답게 느지막이 등장한 고와다는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재밌고, 지루함마저도 충만하다고 말하는 청년이다. 나름 주 중은 성실히 보내는 듯도 하다. 그러나 주말만은 기숙사에서만 늘어지게 보내고 싶어 한다. 그 정도의 바램을 원하는 이는 흔하지 않나? 단지 문제라면 '장래에 아내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너무 심각하게 오래 고민하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그에게 충고하고 제안한다. 토요일도 충실히 보내야 보람 있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그런 그에게 서서히 모험의 징후가 시작된 건 폼포코 가면과의 만남 뒤부터다. 폼포코 가면은 너구리 가면과 망토를 뒤집어쓰고 정의를 위해 활약하는 귀인인데 다시 보니 그런 희생의 즐거움에 취해 너무 모험이 과한 자가 아닌가 한다. 그래서일까 체력도 딸리고 슬슬 후계자 고민을 하던 차 그는 고와다를 점찍는다. 수많은 성실한 이들을 재껴두고 왜 고와다일까, 하니 훌륭한 모험가 눈에 비친 고와다는 삶을 포기한 자로 보였나 보다. 즉 인생 구제라고 나 할까. 매사가 게으르고 지루해 보이는 그에게 모험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주고 싶어 한 것이다. 그러나 태생이 게으른 그에게 모험이라니. 먹혀들 리가 없다.
그래서 뒤로 갈수록 그들의 밀당이 우습기만 하다.
"저는 게으름을 피우기 위해 서면 뭐든 합니다."
"당신 또 그런 소리를! 좀 더 모험하라고!"
"그런 건 싫어요." -p.179

여전히 폼포코 가면은 본연의 주어진 임무에 바쁘다. 그러나 어딜 가나 그런 귀인을 달가워하지 않는 무리가 존재하듯이 그를 잡기 위해 혈안이 돼있는 이들도 있다. 국숫집에서 한바탕 소동을 시작으로 줄기차게 쫓는 자들이 따라붙고 탐정 사무소 여직원인 다마가와는 폼포코와 함께 있던 고와다까지 미행을 한다. 물론 타고난 길치라 미행은 실패하고 그와 동행하기도 하지만 말이다.
그리고 폼포코 가면을 잡으려는 이들은 하나같이 친절하게도 배후를 밝힌다. 캐도 캐도 계속 나오는 배후들. 왜 귀인을 못 잡아 안달인 걸까.

여기서 나는 고와다보다는 탐정 직원인 다마가와에게 더  마음이 움직였는데 서툴러도 어쩌면 제일 성실한듯하고 맡은 일에 충실하다. 엉뚱해 보이지만 결정적 단서도 제공하는 등 이야기의 중심을 잡고 있다. 그렇게 교토를 돌고 도는 사이 어쩌다 보니 고와다도 소소한 모험의 연속이다. 소설은 일본의 축제 요이야마와 하치베묘진이라는 신을 등장시켜 기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러한 느낌이 배가 되는데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을 보는 듯 흥미롭다.

처음엔 소설이 참 게으르게 느껴졌었다. 그래서 별로 재미를 느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두 번 훑어나가면서 장면 장면이 머릿속에 들어오고 웃음이 배어 나오기 시작했다. 게으른 고와다는 모험 인듯 아닌 모험을 통해 폼포코 가면으로 오해를 받게 되어 붙잡히게 되는데 결국 배후의 우두머리인 하치베묘진을 만난다. 이 신이 얼마나 게으르고 더러운지 고와다의 입에서 절로 게으름뱅이라는 단어가 나올 정도다. 오십 년이나 한 곳에서만 머무르고 쓰레기 버리는 것도 귀찮아 쌓아두며 지루한 건 싫지만 귀찮은 건 더 싫은 신!이라니. 그러고선 귀찮아하는 신은 더 귀찮아하는 고와다에게 청소를 시키려 한다.
여기선 고와다와 하치베묘진의 밀땅이 더 우습다.
"좋아, 알았어. 거기에 작은 서랍이 있지? 돈이 조금 들어 있어.
오래된 돈이지만, 알지? 그런 편이 가게에서 비싸게 팔리기도 한다며? 전부 줄 테니 일해다오."
"싫습니다."
"인간은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지 않나? 우리랑 다르게."
"저는 인간이기에 앞서 게으름뱅이입니다." p.368

무심코 읽다가 나도 모르게 빵 터졌는데 이 장면에선 유독 일본 애니로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문득 아, 그래서 거룩한 게으름뱅이라고 한 건가 하는 의문도 풀리는듯했다. 신보다 더 확고한 게으름뱅이라니.ㅋ
그렇게 폼포코 가면의 후계자 따윈 전혀 생각지 않고 있던 고와다가 과연 하치베묘진까지 만나며 생각을 바꾸게 될는지. 그리고 과연 그에게 휴일의 빈둥거림이 계속 이어지게 될는지 소설을 통해 만나보길 바란다.

뭐니 뭐니 해도 그의 거룩한 게으름을 대변하는 문장은
"지루함의 바닥까지 느껴야 진정한 휴가지." -p.134라는 말이 아닐까.
그러나 "아아, 나는 이제 의미 있는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p.135에서는 조금 걱정스럽긴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겪어본 바로는 주말을 지나치게 굴러다녀서 더 피곤한 월요일을 맞이한 적도 있었다는 사실인데 적당한 게으름뱅이라면 삶의 적절한 균형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래도 여전히 직장인과 학생들은 일요일저녁이면 두려워한다. 내일이 월요일이란 사실을.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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