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의 자본론 - 얼마를 벌어야 행복해질까
다치바나 아키라 지음, 박재현 옮김 / 시목(始木)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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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우리는 얼마를 벌어야 행복감을 느끼게 될까. 이 질문에 대해 정확한 기준점을 제시할 수 있는 이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 대부분은 많이 벌면 좋은 거 아닌가 하는 대답을 내놓을는지도 모르겠다. 나조차도 더 많이 벌기 위해 더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돈은 자본주의 국가에서 강력한 파워와 파괴력을 지닌다. 당연히 돈이 없으면 기본적인 일상을 보장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안정적인 삶을 위해서는 경제공부가 수반되어야 한다. 돈이면 다 된다는 생각은 위험하지만 돈에 노예가 되는 삶은 피해야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남편은 경제관념이 둔한 내게 독서도 좋지만 현실감각을 익힐 수 있는 책도 좀 읽었으면 좋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주로 문학책을 읽다 보니 현실감각이 둔해지는 거 같다는 말로 한방 먹인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난 또 한 권의 경제 서적을 펼쳐들었다. 최근 일본의 경제 서적이 한국에서 제법 출간되고 있는데 이 책의 저자도 일본인이다. 일본의 경제사정은 우리보다 십 년 정도 앞서 있고 그들의 경험과 노하우 등은 충분히 벤치마킹하기 좋기에 저자의 논리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저자는 먼저 행복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생각은 접고 시작한다. 다시 말하자면 돈은 행복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것이고 그 기반 위에 자아실현이나 유대감 등의 심리적 만족감이 충족된다는 논리이다. 단순한 논리 같지만 그러한 사실을 깊게 생각해 본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또한 지금 어느 위치에 있는지, 어떠한 상황에 처해 있는지에 따라 받아들여지는 정도의 차이도 분명 있을 것이다. 나도 일의 지속 가능성과 노후를 위한 생각이 주가 되다 보니 모든 내용이 공감되는 건 아니었다. 다만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인지를 들여다보며 좀 더 객관적인 경제관념을 잡아보고자 했다.

삼포세대를 넘어 N포세대라는 용어만 보아도 젊은 층이 삶을 대하는 태도는 부정적이다. 나조차도 가끔 일에 치일 때면 나의 삶 자체가 빚진 인생 같을 때가 있다. 자본도 없고 인맥도 없고 능력조차 없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미래가 암울한 건 당연하겠다. 그러나 노력조차 하지 않고 삶을 내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행복의 본질을 파악하여 좀 더 현실적인 삶의 토대를 구축하려 노력하는 것, 그것을 분석해 보아야 한다.

 

 

 

 

저자는 행복을 위해서는 세 가지 인프라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금융자산, 인적자본, 사회자본이라는 기틀 위에 자유, 자아실현, 공동체가 수반된다고 보았다. 어느 정도의 금융자산은 돈에 대한 심리적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느끼게 해준다. 그리고 나의 인적자본이 잘 발현된다면 그에 따른 자아실현의 기쁨도 만끽할 수 있다. 더불어 적절한 유대관계는 삶의 만족도를 높여준다. 행복의 무슨 공식과도 같은 느낌이지만 세 가지 인프라 중 어느 하나가 부족하거나 과할 경우 어떤 유형의 삶에 가까운지 진단한 점은 조금 흥미로웠다. 역시 현실 충실형이나 솔로 충실형을 지나 가난 만족형이나 빈곤형을 보니 우울감이 밀려온다. 세 가지를 모두 충족할 수 있는 삶이 마냥 이상향으로 느껴지지만 나는 지금 어떤 유형에 가까운지 고심해 보았다.

 

 

물론 저자가 논하고 있는 말들이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다. 반박의 여지도 분명 있지만 평균적 관점에서 본다면 수긍할만하다. 돈의 액수와 행복감에 한계선을 둔 점이나 돈은 특히 가까운 사이일수록 분쟁을 야기한다는 점, 그리고 지나친 관료주의가 기업을 망친다는 말 등은 충분히 수긍할만하다. 자본이 없다면 능력 발휘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사실은 당연하지만 저자는 좀 더 구체적인 예를 들어 어떻게 하면 절망적인 미래를 피할 수 있을지 팁을 전하고 있다.

이 책에서도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에 관해 짧게 언급하고 있어 유심히 보게 되었다. 이전에 보았던 책에서도 서양인보다 짧은 유전자를 지닌 동양인은 개인주의가 강한 서양인보다 공동체 생활에 더 유리한 반면 스트레스나 우울감을 느끼는 경우가 더 많다는 내용이었는데 저자는 한가지 사실을 덧붙여 놓았다. 동양인은 유전자가 짧아 모든 반응에 민감하지만 자신에게 맞는 적합한 환경을 찾아가는 능력이 더 우수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낙천적인 삶을 설계할 수 있다는 점이 새로웠다. 아무리 방법론을 제시하더라고 긍정적 기운을 배제하고는 행복을 논할 순 없겠다.

자칫 행복의 가치를 돈과 연관 짓는 일이 속물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마냥 철학적 개념으로 포장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노 머니, 노 프리덤(No Money, No Freedom)은 왜 이리 와닿는지~^^
아무튼 우리는 돈과 인생의 적절한 타협점을 잘 찾아야 하고 최적의 인간관계를 유지하며 행복감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 책이 당장 행복에 대한 해답을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저자가 말하는 세 가지 자본운용을 내 삶에 어떻게 응용해야 할는지 고심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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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하는 여자들
리비 페이지 지음, 박성혜 옮김 / 구픽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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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도 한 이 소설의 제목이 문득 떠오른 것은 이 소설이 상실의 시대를 극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실의 대상이 그 무엇이든 추억이 사라진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더구나 그것이 누군가의 삶이자 지역 전체의 특별한 공간이었다면 말이다.

 

그것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까지도
우리는 우리가 잃어버리고 있는 것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어요.-책속에서


이곳 브릭스턴의 리도(야외풀장)는 곧 사라질 위기에 처한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재개발 과정의 수순을 밟고 있다. 낡은 것들은 돈이 되는 사업으로 바뀌어가기 마련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조용히 그런 변화에 이끌려간다. 어쩌면 무심한 이들이 더 많을지도 모른다. 어제 지나쳤던 상점의 간판이 오늘 바뀌어도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하고 무심코 지나는 것처럼.

#로즈메리
여든여섯 살의 로즈메리는 아침이면 리도에 간다. 그녀에게 수영은 일상이자 추억을 회상하고 현재를 이어주는 징검다리와도 같다. 적어도 물 위와는 달리 물속에서만큼은 주름도 잊고 소녀가 된다. 그렇게 살아온 세월 동안 그녀에게 리도는 그녀 자신이었다.
그런 리도가 흙으로 덮인 다는 사실은 그녀의 삶을 뺏기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그녀는 동네 도서관에서 전단지를 손수 만드는 강단을 보인다. 전단지는 지역신문사의 호기심을 촉발하며 그녀를 지역신문 일면에 장식하게 한다. 기자인 케이트는 로즈메리와의 인터뷰를 위해 리도를 찾았지만 로즈메리는 그녀에게 뜻밖의 제안을 한다. 리도에서 수영을 하면 인터뷰에 응하겠다니. 그러나 로즈메리의 엉뚱한 제안은 한 여자를 변화시키고 그녀 자신도 구한다.

시도도 해보지 않고 물러나는 이들이 많다. 혹은 번거롭고 귀찮으며 안될 거라는 생각으로 포기한다. 하지만 로즈메리는 여든여섯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시도한다. 더불어 아직 세상이 인간적 도리를 지켜 주길 간절히 바랐다. 사람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추억을 공유한다. 그녀 앞에 나타난 케이트와는 기자 이상의 감정을 공유하며 우정을 쌓아간다. 로즈메리는 케이트가 너무 늦지 않기를, 그리고 잃어가고 있는 것들을 놓쳐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케이트
기자라는 직업에 어울리지 않게 케이트는 공황발작을 겪고 있다. 불안한 성장기를 지나 정착한 런던은 그녀를 위압감으로 짓누른다. 시시때때로 찾아오는 발작에 그녀 자신도 통제 단계를 넘어선듯하다. 하지만 로즈메리의 제안은 마치 마법과 같았다. 차가운 물이 그녀의 정신을 깨우고 서먹해진 언니와의 추억 속으로 데리고 간다. 그렇게 시작된 일상을 언니와 로즈메리와 공유하기 시작하자 점점 그녀의 삶에 생기가 돌게 된다. 어떻게든 리도를 살려야 한다는 의견에 많은 이들의 동참을 끌어내며 케이트는 진심을 다해 로즈메리를 돕기 시작한다. 로즈메리와의 우정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기 시작하자 그녀에게도 로즈메리처럼 강단이 솟아난다.

소설은 리도를 되찾기 위한 것이 주목적이었지만 팔십 넘은 노인과 이십 대의 여인도 충분히 친구가 될 수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미 거리에서 "실례합니다." , "미안합니다."라는 형식적인 인사말을 주고받으며 스친 적 있던 두 여인은 이제 함께 수영하고 함께 걷고 함께 싸워나가는 사이가 된 것이다.

잃어가는 것을 되찾아가는 과정은 눈물겨운 노력이 뒤따른다. 무엇보다 너도 나도 한마음이 되어 심적 호소를 끌어내야 한다. 시위와 무력충돌도 충분히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소설은 그런 감정 스트레스가 별로 없다. 현실을 잊고 한결같이 편안함을 느끼며 행복감을 만끽하면 된다. 로즈메리가 자신을 그리워하듯 쏟아내는 추억들 속에서 행복을 느끼며 진정한 인간관계란 무엇인지 배워가면 된다. 늘 무언가를 잃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분명 치유를 주는 이야기였다.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 애착심을 가지면 내가 오래도록 추억할 수 있는 공간이 자연스럽게 생겨날 것임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읽은 따뜻한 이야기에 수영장 귀퉁이에 앉아 발이라도 담그고 싶어진다. 아마도 어쩌면 바쁘다고 미뤄온 수영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차가운 물에 맑아지는 정신을 느껴보고 싶어진다.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힐 야외수영장이라면 더 좋겠다. 책의 띠지 귀퉁이에서 영화화 예정작이라고 쓰인 문구가 더욱 반가웠다. 2019년에 만날 로즈메리가 벌써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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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자국 소설의 첫 만남 10
김애란 지음, 정수지 그림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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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비에서 <소설의 첫 만남> 시리즈로 출간된 칼자국은 그 시리즈의 열 번째 책이다. 책과 멀어진 아이들을 위해 독서활동을 돕기 위한 방향으로 기획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요즘 6학년 아들이 휴대폰과 너무 친해져서 걱정이 앞서던 차 얇은 두께의 손바닥만 한 사이즈의 책이 눈에 들어왔다. 이 정도라면 부담 없이 권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칼자국은 [비행운], [바깥은 여름]의 김애란 작가의 작품이다. 비행운을 읽고 난 그 묵직한 느낌과 바깥은 여름을 읽고 난 뒤의 서늘함이 남아 있어서일까 책표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아들놈이 이해할 수준의 내용은 아닌듯싶었다. 성인이 된 딸의 시선으로 조목조목 되짚어 본 엄마의 인생이 딸도 아닌 아들이 공감하기에는 무리인듯싶어 내가 먼저 펼쳐들었다.

화자는 어머니의 부고를 듣고 장례식을 준비하는 동안 그녀를 추억한다. 반반한 외모를 가진 어머니가 남편을 고르는데는 재주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국숫집에서 그녀의 평생을 바친다. 재래시장의 떠돌이 칼 장수가 선보인 칼에 한눈에 반한 어머니는 연애편지를 끼고 오듯 싸매고 온다. 그리고 칼과 동지가 되어 인생을 살아낸다. 어쩌면 어머니의 억척스러움은 무능한 아버지가 만들어 낸 것일는지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칼끝에는 평생 누군가를 거둬 먹인 사람의 무심함이 서려 있다. -p.7

 

 

어머니의 칼자국은 딸을 살찌우고 자라나게 했다. 반질반질 윤이 나던 칼은 국숫집을 번성하게 해 주었다. 반면 아버지에게 칼은 고작 화풀이용이다. 소처럼 일한 어머니와는 반대로 순간을 살던 아버지. 첩 하나씩 거느리고 다니던 모양새가 당연하던 시골 분위기에 혼자 속앓이 했던 수많은 조강지처들의 슬픈 인생사가 떠올라 순간 화가 치민다. 어머니는 소주 한 잔에 울분을 씻어내고 딸은 안도한다. 그런 어머니는 무능한 아버지보다 능력자였고 실속 없는 아버지보다 강단 있고 고집스러웠다.
그런 어머니가 세상의 변화에 주눅이 드는 건 어쩌면 당연하겠다. 그러나 대형마트 칼 코너 앞에서만큼은 당당하게 칼을 고른다. 칼에 베여 성한 곳 하나 없던 어머니의 손이 그 사실을 증명하듯.

육개장 냄새로 진동하며 북적대는 장례식장, 입덧으로 괴로운 딸은 좀처럼 아무것도 쑤셔 넣을 수가 없다. 아버지의 옷가지를 챙기러 들른 맛나당의 모습은 어머니가 마지막까지 억척스럽게 살다간 흔적이 역력하다. 순간 밀려드는 허기에 어머니의 칼로 사과를 깎아 어머니의 삶을 베어문다. 그녀의 몸속 깊숙히 어머니가 놓고 간 그 자리를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딸도 그렇게 살아 낼 것이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 무작정 뛰쳐나왔던 시절, 오직 나 하나만을 생각하면서 달렸던 때를 반성하게 된다.
그리고 끊어넘친 국수의 모습에 애잔함과 서글픔도 밀려왔다. 화자처럼 어묵을 먹는 엄마의 모습에 낯섦을 느끼는 듯 요즘 종종 그런 순간을 경험한다. 아직은 엄마의 부재가 먼 이야기 같지만 소설을 덮고서 엄마를 제대로 기억하고 싶어졌다. 씩씩하게만 보였던 엄마였지만 이제는 두렵다는 말씀도 서슴치 않게 하시는 모습에 가슴한켠이 아린다. 청소에 집착하는 삶을 조금만 내려놓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지만 지금부터라도 엄마가 자신의 인생을 즐길 수 있게 응원해 드려야겠다.

그나저나 아들도 읽긴 했다.
느낀 점: 일단 책이 짧아서 좋았고,

엄마가 딸을 위해서 자기를 희생하여 먹여 살리려고 일을 하다가 돌아가신 부분이 감동적이었다.
음~~ 나름 최선을 다해 쓴 한줄평에 칭찬 듬뿍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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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리 오거스트의 열다섯 번째 삶
클레어 노스 지음, 김선형 옮김 / 미래인(미래M&B,미래엠앤비)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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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장소, 같은 시간에 무려 열다섯 번이나 다시 태어나는 이가 있다. 해리 오거스트! 이 남자는 출산 과정도 순탄치 않았고 생모의 죽음과 생부의 외면으로 양부모 밑에서 길러진다.
이미 죽었다 다시 사는 삶을 그린 소설은 흔하다. 그러나 해리는 특이하게도 이전의 모든 기억이 축적되는 능력을 지녔다. 두 번째 삶은 너무 일찍 존재감을 드러내는 바람에 정신병원에 감금되고 자살로 마감한다. 세 번째 삶부터는 이전 삶의 기억을 떠안고 더 빠르고 더 유리하게 미래를 조종할 수 있다. 예전에 보았던 영화 [엣지 오브 투모로우]가 잠시 스치기도 했는데 타임 루프 안에 갇힌 톰 크루즈의 모습이 떠올랐다. 반면 이 소설에서 해리는 타임 루프 안에 갇히긴 했으나 휠씬 더 치밀하고 복잡하게 끌고 나간다. 600페이지가 넘는 책을 이 무더위에 읽고 있자니 농후해진 머릿속에서 텍스트가 겉돌았다. 지금 읽고 있는 삶이 해리의 몇 번째 삶인지 정신 차리지 않으면 어느새 뒤죽박죽이 되고 만다.
공상과학 소설다운 작가의 문체는 논리적이고 흥미롭지만 다소 중압감을 느낄 수도 있다. 그러나 해리가 무려 죽었다 다시 태어남을 지속적으로 반복할 수밖에 없었던데는 그가 그의 삶을 사랑한 만큼 인류를 사랑했음을 느낄 수 있다.

소설은 해리가 태어난 1919년부터 역사적 과정 속에서 벌어졌는 사건과 사회현상들이 함께 하고 있다. 이전 삶에서의 사전 지식을 현재에 반영함으로써 인류의 발전 속도를 앞당겼다는 가설이 더욱 그럴듯한 것도 문명이 빠른 진보 덕이다. 그러한 논리에 저절로 당위성이 부여되자 작가의 치밀한 구성력이 놀라웠다.
산업혁명 이후로 급속하게 발전하던 인류는 부질없는 파괴 욕망으로 두 차례 큰 전쟁을 치르긴 하였지만 더 획기적인 변화를 거듭했다. 오히려 지금은 세상의 발전 속도에 인간이 따라가지 못하는듯한 모습도 보인다. 십 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지금은 전혀 통용되지 않는 것도 또 급격하게 벌어지는 세대차도 이런 현상과 맞물린다.

해리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궁극적 이유를 찾기 위해 종교, 물리학, 의학을 파헤쳐 보지만 그 해답을 얻지 못한다. 그러한 능력이 신에게 선택받은 것인지 자인이 신인지 헷갈릴 정도다. 그러나 열한 번째 죽음을 앞두고 세상의 종말을 고하는 소녀의 메시지를 전달받게 되고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깨닫게 된다.

크로노스 클럽은 그런 능력을 가진 자들의 비밀조직이다. 클럽은 이미 그렇게 해서 미래의 지식을 상당히 확보하고 있었다. 해리는 교수로 있던 삶에서 빈센트라는 인물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망각하는 이들과는 달리 기억술사라는 특출난 능력을 지녔지만 빈센트는 그러한 능력을 이용해 신의 영역에 도전할 뜻을 품게 된다. 방대한 양의 지식을 가졌지만 추구하는 방향이 달랐던 두 사람은 그 이후 서로를 쫓고 쫓는다. 빈센트는 그의 출생을 막기 위해 고문하여 죽인 것도 모자라 그가 다시 태어나고 죽기를 반복하는 내내 그를 추적한다. 그 와중에 이미 빈센트는 클럽을 와해시키고 발전을 당기는데 이바지하고 있다. 해리가 빈센트를 저지하여 클럽을 지켜내고 자신의 삶을 다시 찾게 되는 과정이 쉴 틈 없이 전개되지만 과연 누가 옳고 그른 일을 행하는 것인지 헷갈렸다. 해리 그가 과연 인류를 구할 열쇠일까.

타임 루프 안에서 특정한 일의 순서를 변경할 경우 그 시간대가 혼란에 빠지거나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빠지기도 한다. 그러나 해리의 삶은 늘 변하지만 자신에게 불리한 경우는 많지 않다. 연쇄살인범을 미리 죽여서 피해자들의 삶을 연장시킨다거나 미래를 이용해 자금을 마련하고 신분을 세탁하며 옮겨 다니는 일이 능숙해진다. 단지 사랑하는 여인을 빈센트에게 빼앗겨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을 느끼기도 하지만 대체적으로 그의 삶은 그가 원하는 대로 조종할 수 있었다.
그래서일까. 해리가 인류의 종말을 저지하기 위해 삶의 패턴을 재구성하는 동안 논리성이나 드라마틱한 전개는 다소 떨어진다. 좀 더 기계적인 느낌이 강했던 건 그의 실수 없는 삶 때문일 것이다. 그의 고통에도 별다른 느낌이 없었던 것처럼.

들어봄직한 소재를 흥미롭게 구성하여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확실해서 좋았다. 과학의 발전과 인간의 행복은 비례하지 않으며 인류의 이기심은 결국 세상의 종말이라는 끔찍한 결과로 이어짐을 일깨운다. 급히 먹는 밥이 체하는 법이고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임을 일깨운다. 특히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 혼돈의 상태에서 많은 이들이 위태로운 삶을 겪게 된다.

우습지만 책을 덮고 나니 미래를 예언한 노스트라다무스나 인류의 발전에 공헌한 유능한 CEO를 떠올리면서 그들이 기억술사가 아닐까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그리고 하나 더 사람에게 망각의 능력은 꼭 필요하다. 저렇게 모든 걸 다 기억하는 해리가 참 힘들 것 같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것도 죄악이고 외로울 것 같다. 나에게 저런 능력을 준다고 한다면 나의 대답은 NO다. 만물은 끊임없이 변할것이고 선형적인 인간은 단 한번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데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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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를 떠나보내며 -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
알베르토 망겔 지음, 이종인 옮김 / 더난출판사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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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자연스럽게 나의 책장도 빈 공간이 사라지고 있다.그렇다고 책장을 더 늘리고픈 마음은 없었는데 책들이 숨을 쉬지 못하고 빽빽이 붙어 있는 것 같아 좀 덜어내야 하나 하다가도 막상 책을 덜어내려고 하니 움직여지지 않는다.

저자 망겔은 무려 3만 5천여 권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으며 그의 서재는 누구나 탐낼 만큼 목가적인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개와 함께 헛간에 붙어 있는 탑에서 책을 볼 수 있는 자유로움에 상상만으로도 내 영혼이 달달해짐을 느낀다. 그러나 삶은 뜻하지 않게 흐른다. 그는 서재를 정리하고 아르헨티나로 가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은 망겔이 책을 싸고 푸는 과정에서 느꼈던 책에 대한 회고록 같다. 어린 시절을 소환하여 들려주는 책에 대한 기억들과 사춘기 시절 그의 서재를 채워 간 책들, 그리고 그가 여러 나라를 옮겨 다니면서 사모은 책들에 대한 추억에 책들을 떠나보내는 아쉬움이 한가득 묻어난다.
이 책의 부제인 '상자에 갇힌 책들에게 바치는 비가'라는 의미가 전혀 과한 문장이 아님을 되새기게 된다.
이쯤에서 문득 먼 훗날 나의 서재를 정리하게 되는 날이 오면 나는 어떤 추억들을 떠올리게 될까.

저자에게 있어 독서는 모든 즐거움의 원천이었고 행위에 있어 합리성을 부여한다 말할 정도로 애서가이다. "나의 개인 도서관은 나의 등딱지다."라는 문장은 그의 책 사랑을 충분히 대변한다. 그래서 칠십평생 그의 영혼을 울리고 웃게 만든 책들을 정리하며 독자에게 들려준 이야기들은 책을 사랑하는 이들이라면 하나라도 놓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책에 관한 이야기를 쓴 책들은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책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게 큰 이점이다. 게다가 아직 만나보지 못한 책에 대한 정보는 더욱 반갑다. 물론 그의 언어는 그동안의 방대한 지식이 축적된 결과물로 다소 어렵게 느껴지는 문장도 있지만 인생의 멘토가 들려주는 책 이야기를 차근차근 듣는 마음으로 읽어내려갔다.

서재를 들여다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 망겔은 책장에는 다양한 언어로 된 책이 언어별로 정리되어 있고 특정한 주제의 책들은 별도의 공간을 가지고 있지만 의외로 베스트셀러에 오른 작품들이 거의 없다고 한다. 그리고 책은 주로 소장하는 편이고 책을 빌려주기 보다 사주는 편이라고 한다. 책에서 읽은 흔적을 발견하는 일은 또 다른  즐거움으로 함께 한 책과의 추억을 소중히 함을 느낄수 있다.
밑줄을 그은 흔적, 포스트잇이 끼워져 있거나 가끔 영수증과 말린 잎들이 발견될 때면 추억이 생각나서 충분히 나도 공감하는 점이다.
그런 서재를 정리해야 하는 시점이었다면 수많은 감정들이 오갔을 것 같다. 일부러 콘텐츠를 쥐어짜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생각들이 꼬리를 물며 나올 수밖에 없는 이유도 그의 방대한 독서량에 있겠다.

"우리는 질문하기 위하여 독서를 한다"라는 카프카의 말은 충분히 공감하고도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 낸 질문들로 우리는 이해의 범위를 넘어서며 성장해간다. 그리고 현재 나의 감정들을 소설 속 인물과 결부시키는 과정은 내면을 성장시킨다. 저자도 프랑스를 떠나오면서 느꼈던 우울감은 복수와 분노, 절망과 상실이라는 복합적 감정을 떠올리게 했고 사라진 책들을 떠올리며 돈키호테의 사기당한 노인을 백번 이해한다. 더불어 물건을 잘 잃어버리던 그의 할머니는 이런 말을 남긴다.

"물건을 잃어버리는 건 그리 나쁜 일이 아니야.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즐기는 게 아니라, 현재 기억할 수 있는 것을 즐기게 되니까. 우리는 상실에 익숙해져야 해." - p.108

그는 좀 더 나아가 우리가 사용하는 말과 단어들이 문장으로 재현되는 과정을 이해시킨다. 그리고 재현의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제기되는 꿈과 현실과의 관계를 논하다 보면 결국 창작이라는 난관에 부딪히게 된다. 이야기는 반복되고 재구성되며 그때마다 달라진다. 그것은 번역이라는 작업과정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이런 과정들이 여러 권의 책을 떠올려보면 충분히 납득이 간다.
말뿐 아니라 글쓰기도 경계해야 함을 말한다. 그 예로 파라오는 글쓰기에 대한 기술은 자칫 지혜의 전달이 아니라 지혜에 대한 허세로 가득 찰 수도 있음을 경고한다. 이 부분은 수많은 독자들이 한 번씩 곱씹고 지나쳐야 할 부분이다.
혹시 내가 많은 양의 독서를 근거로 허세를 부리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그러나 읽지 않는 국가는 쇠락한다는 말처럼 독서는 효과적인 저항의 존재임을 알아야겠다.

우리의 책들은 다른 사람들의 체험과 지식을 헤쳐 나가는 길 안내가 되어 줄 수 있고, 불변의 과거에서 얻은 교훈,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직관을 주기 때문이다. - p.218~219

비록 서재를 정리해야 하였지만 그는 국립도서관의 관장이 되어 그 아쉬움을 달랜다. 줄 곳 살아온 공간에서 다시 새롭게 시작하는 마음으로 도서관이 해야 할 의무에 충실하고자 한다. 지금의 모습이 그가 청소년 시절 보르헤스를 만남으로써 가능했다고 한다면 그는 엄청난 행운아다.

"영혼의 진료실"
어쩌면 이게 도서관의 궁극적 목표일 것이다. - p.224

문득 예전에 들은 라디오 사연이 생각이 났다. 남편이 보낸 사연으로 아내가 읽지도 않는 책을 사모은 다는 것이었다.
왜 읽지도 않는 책을 사 모으냐는 물음에 아내는 그냥 책이 집에 있으면 멋있고 언젠가는 읽게 되지 않을까?라는 얘기였다. 그런 아내가 불만인 남편보다는 아내의 솔직한 모습이 사랑스러웠다. 어찌 되었든 소유의 욕구가 책인것은 간접적 경험의 구매라고 본다면 다행스러운것이 아닐까. 지금쯤 사연 속 아내는 책장에 진열된 책을 꺼내보고 있을까.

나도 언젠가 내가 이 서재를 정리해야 될 때가 오면 감상문 한편 정도는 남겨놓고 떠나고 싶다. 망겔처럼 심오한 철학을 논할 자신은 없지만 담담하게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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