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시작해보려 합니다 - 만화로 쉽고 재미있게 배우는 초보자를 위한 DSLR 사용법
고이시 유카 지음, 전지혜 옮김, 스즈키 도모코 감수 / 더숲 / 2018년 11월
평점 :
절판


 

 

이보다 더 쉬울 순 없다.

·· 초보자를 위한 DSLR 사용법 ··

 

 

 

스마트폰의 편리함도 무시할 수 없지만 정말 좋은 풍경 앞에서는 DSLR 카메라가 아쉬울 때가 있다. 이 책은 카메라를 전혀 모르는 이들이나, DSLR을 전혀 다루지 못하는 건 아니지만 책을 보고 따라 해 보려 해도 혼자서 용어와 기술을 터득하기가 쉽지 않은 이들, 그리고 혼자서 해보다가 그 열의가 식어 제자리걸음인 이들이 보기에 정말 좋은 책이다.

나는 직업상 카메라를 전혀 놓을 수는 없었던 탓에 전문지식보다는 감으로만 대충 알고 있는 정도였는데 [카메라, 시작해보려 합니다]라는 책을 본 순간 개념을 바로잡고 싶단 생각에 읽어보게 되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는 확실히 학습만화가 도움이 되기 때문에 아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컸다.

이 책의 장점이라면 만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누구나 재미있게 펼쳐볼 수 있다는 점이다. 몇 장만 넘겨보아도 초보자들이 보기에 전혀 문제가 없음을 알 수 있다. 스토리는 주인공이 처음 카메라를 구입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누구나 카메라 앞에서 우왕좌왕하고 헤매게 되는데 그러한 상황을 이야기로 재미있게 풀어내고 있다. 그러면서 카메라의 주요 명칭과 주요 기능을 자연스럽게 익히고 일상생활 속에서 사진을 더욱 감각적으로 찍을 수 있는 팁을 배워가는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과 더불어 사진은 일상이 되었다. 게다가 SNS은 그러한 일상에 더욱 불을 붙여서 사진 관련 콘텐츠들은 넘쳐난다. 예전보다 사진을 잘 찍는 이들도 제법 눈에 띄지만 그 속에서 내 사진이  더 주목받고 싶다면 스마트폰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기능은 점점 업그레이드 되어가고 제아무리 스마트폰이 편리하기는 하지만 DSLR 카메라가 주는 사진의 묘미는 아직 따라잡기는 어렵다. 그렇다고 전문가 냄새가 폴폴 나는 멋진 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고가의 카메라를 구입한다고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저자도 초반에 카메라 구입부터 실패한 경험담을 얘기하며 내게 맞는 카메라가 무엇인지 기본적 지식 정도는 숙지해야 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초반부터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면 두려움이 앞설 수밖에 없다. 암호 같은 카메라의 기능들을 풀어보지도 못하고 방치한다면 그게 무슨 돈 낭비란 말인가.

그렇게 DSLR 카메라를 장만해놓고 허구한 날 AUTO 상태만 놓고서는 감각적인 사진을 얻을 수 없다. 이 책 한 권이면 AUTO 상태를 벗어나 원하는 모드에서 다양한 결과물을 얻는 재미를 느낄 수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대로만 설정해 놓고 찍어보아도 충분히 다른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설정 방법을 쉽게 그림으로 설명하고 결과물 사진도 첨부되어 있어 밋밋한 사진과 변화된 사진을 보면서 금방 이해할 수 있다.

조리개와 셔터속도를 익히고 빛과 색감에 대한 간단한 법칙만 익히고 나면 같은 장소나 피사체라도 여러 모드에서 천차만별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여러 장 찍다 보면 조금씩 자신만의 감을 찾게 된다. 기본적인 기능도 중요하지만 사진에 있어 중요한 건 구도다. 배경의 주요 시점을 어느 곳에 둘 것인지, 피사체에서 가장 돋보이게 할 곳은 어디인지, 배경을 흐리게 하거나 빛을 어떻게 활용하는 게 좋은지, 동물이나 음식 사진을 돋보이게 찍는 방법은 무언인지, 인물사진을 찍을 때 피해야 하는 구도는 무엇인지 등을 배워보며 사진의 기술을 업그레이드할 수 있을 것이다.

나도 사진 찍는 일을 무척 즐기는 편이지만 DSLR 카메라는 들고 다니기가 번거로워 주로 스마트폰을 쓰고 있다. 폰의 사진 기능을 잘 활용하면 감각적이고 차별화된 결과물을 얻을 수 있어 만족하고 있기는 하지만 책을 보고 나니 DSLR 카메라를 꺼내들고 싶어진다. 찬찬히 개념을 잡아가며 읽다 야경 사진 찍는 법이 눈에 들어왔다. 밤에는 사진을 잘 안 찍는 편인데 이렇게 멋진 작품 사진을 얻을 수 있다니 당장 시도해보고 싶었다.

사진 감각은 많이 찍어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항상 사각 프레임을 머릿속에 넣고 다녀야 한다. 사물을 바라보고 풍경을 바라보면서 찰나를 포착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그러면 어떤 시간대에 좋은 사진을 얻을 수 있는지, 어느 위치에서 찍어야 색다른 느낌이 나는지 알 수 있게 된다. 마지막에 주인공이 길을 가다가 눈앞에서 멋진 순간을 포착한다. 그 찰나를 놓치고 싶지 않은데 카메라가 손에 없어 아쉬워하는 순간은 나도  자주 겪는 일이라 참 공감했다. 사진을 좋아하는데 자신감을 키우고 싶은 이라면 이 책으로 시작해보길 바란다. 나도 내일은 오랜만에 카메라를 들고 숲으로 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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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음 Touch
양세은(Zipcy) 지음 / arte(아르테)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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닿음
Touch

 

...

그와 그녀의 이야기

 

 

 

! 예쁘다.
서로의 눈빛이 오로지 서로에게만 향해 있는 순간들.
사랑은 그렇게 그들 주위의 공기마저도 애틋하게 만드는 마력이 있나 보다.

그림은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치유하는 효과가 있다.
물론 잘 그린 그림들은 그 솜씨에 감탄하기도 하지만 작가만의 독특한 분위기가 없다면
여느 잘 그린 그림들 속에 묻혀 잊히기 십상이다.
하지만 그림에도 스토리를 담아 생명을 불어 넣으면 한 장의 그림이라도 오래도록 기억에 남게 된다.

그라폴리오 작가이자 인스타에서도 인기 작가로 알려진 그녀의 그림을 만난 순간들이 그러했다.
그림이지만 살아있는 눈빛 때문일까.
책장을 처음 열자마자 놀란(?) 마음은 어느새 조금씩 설레임으로 녹아내렸고 나는 발그레진 두 볼을 꾹꾹 눌렀다.
내게도 이런 순간들이 있었던가를 떠올리는 일이 더딤을 느낀다.
분명 그와 그녀의 일상과 같지는 않더라도 한두 장면은 분명 그렇게 알콩달콩한 순간이 존재했을 텐데...

손끝이 스치기만 해도 짜릿했던 순간.
처음 손을 잡았던 순간 정신이 우주로 달아나버린 순간.
그렇게 깍지 낀 손과 손에서 전해지던 열기로 땀이 맺혀도 빼지 못하던 순간.
스치던 향기가 내 머릿속에 저장되던 순간.
숨결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리던 나의 또렷한 귀.
차가운 내 손위를 댑혀 주던 나보다 더 큰 너의 손.
그렇게 찬찬히 그림을 보며 더듬어 보았다. 그제서야 하나하나 떠오르는 기억들.

시간은 흐르고 서로의 익숙함이 가득한 일상이지만
닿음이란 주제의 그림이 가득한 책장을 넘기며
지하 끄트머리에서 잠자고 있던 말랑말랑만 감정들이 되살아 나서 혼자서 빙그레 웃었다.
그래. 그렇게 나도 몰래 찾아오던 설레임이 있었지.~~

 

 

 

인체의 움직임에 숨죽여본 적이 참 오랜만이다.
로맨스 소설 못지않은 연인들의 일상에 오두방정 떠는 심장을 주체 못 하며 감성에 푹 젖어보았다.
수줍어서일까. 책장은 그냥 그렇게 조심스레 넘기게 된다.
작가의 디테일하고 섬세한 표현력에 감탄하다가도 마치 나의 살갗에 손길이 닿은 것 마냥 찌릿한 느낌이 전해온다.

그림과 함께 실린 짧은 문장들에 사랑의 온기가 더 전해지는듯하다.
서로의 심장소리가 전해 들을 수 있는 순간이라서일까. 뭐니 뭐니 해도 포옹 장면이 제일 마음에 든다.

연인들의 다양한 일상을 보며 남녀가 하루를 지내는 동안 저렇게 많은 포즈들이 나올 수 있구나를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사랑의 유통기한이 끝났다고 해서 닿음과 거리가 멀어져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에 요즘의 무심한 나를 반성해보기도 했다.

연인 사이라면 얼마나 자주 서로가 닿아 있는지 들여다볼 시간도 가질 수 있겠다.
작가가 오래도록 고심한 흔적을 곳곳에서 느껴보며

가슴속 하트들이 요동치던 그때를 떠올리며 감정에 온도를 올려보는 건 어떨까.

그림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뒷장 작가의 작업 스케치를 참고하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요즘 그림 그리는 재미에 빠진 초등 딸에게 그림 몇 장을 슬쩍 보여주니 쑥스러워하지만 작업과정은 흥미를 보였다.
특히 채색 과정은 신기하다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그렇게 잠깐 방문한 작가의 인스타에서 딸은 여러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줍게 넘기고 있던 그림을 몇 컷 담아 '이 겨울을 달달하게~'라는 짧은 문장을 담아 가까운 이들에게 보냈다.
이제 핑크빛 로맨스는 더 이상 올 일이 없지만 그래도 연애가 하고 싶다고 하소연하던 친구들에게

염장을 지른 건 아닐까 하다가도
분명 그들도 그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달달해지는 가슴한켠에 손을 올리고 있을는지도.^^
그래도 쬐끔은 미안하다. 친구들아.ㅎㅎ

두툼한 양장본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어 선물용으로도 참 좋을 것 같다.
이 겨울, 예쁜 사랑을 선물하는 뜻깊은 순간도 가져보는 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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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다 - 이생진 산문집
이생진 지음 / 작가정신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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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시는 잘 모른다. 아는 시인도, 아는 시도 거의 없다. 하지만 최근 우연찮게 참석했던 시 낭송 모임 덕에 시가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 그렇다고 모든 시가 좋은 건 아니다. 그냥 노래를 듣듯 마음에 드는 시를 골라 읽는다. 그중에서도 자연이나 풍경 그리고 작은 일상을 끄적이고 있는 시가 와닿는다. 그리고 시를 보면 늘 놀란다. 어쩜 이런 표현을 떠올릴 수가 있단 말인가 하고.

요즘 부쩍 글을 쓰면서 모자람을 많이 느끼고 있다. 무언가 고갈된듯한 느낌이랄까. 별로 재능도 없는데 글이랍시고 긁적이다 보니 한계에 다다른 느낌도 오고... 그래서 나름의 방안이 국내 작가의 산문집이나 에세이를 찾아보기로 한 것이다. 신선한 스토리나 짜임새 있는 소설도 좋지만 심리적으로 여유를 가지고 보기엔 이만한 장르도 없을 것 같았다.

아는 시인이 별로 없으니 당연히 이생진 작가도 내겐 낯설다. 바다와 섬을 좋아해 '섬 시인', '바다 시인'이라고 불린다는 작가의 이력에서 끌림이 왔고 우선 시보다는 산문을 통해 작가의 생각을 먼저 전해 듣고 싶었다.
시작부터 역시나 작가의 자연 사랑을 엿볼 수 있어 동지를 만난 듯 반가웠다. 꽃과 나무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면 나이가 든 거라는 말을 온몸으로 실감해서인지 요즘은 자연을 보며 인생을 이해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그가 콕 집어 자연 찬양을 늘어놓은 문장들이 반가워진다.

자연은 정직의 대명사다 산이 거짓말하는 것 봤느냐.
바다가 나쁜 짓을 함께 하자고 유혹하는 것을 봤느냐. 구름이 남의 집 담을 넘 자고 하더냐.

자연은 너의 친구요 스승이요 신이 보낸 사자다. 자연을 이해하고 사랑하는 버릇은 책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온다.
산에 가거든 나무를 이해하려 하고 섬에 가거든 바람을 이해하려 하라.
그 출발이 여행이다. 여행은 너를 따라다니며 가르쳐주는 평생의 스승이요 동반자다.
- 섬에 가거든 바람을 이해하라, 중에서

 

 

 

여태껏 섬을 찾아 떠나 본 적이 거의 없다. 섬 하면 등대와 외로움과 낭만이라는 단어가 떠오르지만  여태 가본 섬이라고는 열 손가락도 되지 않는다. 그러니 섬이 주는 낭만도, 고독이 주는 즐거움도 아직 잘 모른다. 그나마 우도는 큰아버지가 거주하셔서 어린 시절부터 자주 드나들었기에 익숙한 느낌만 있는 곳이고 사람이 많이 드나드는 관광지는 등 떠밀려 다니기 바빴기에 추억이 별로 없다. 걷는 것 하나만은 자신 있는데 작가가 소개하고 있는 섬들만이라도 가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도 없다.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섬을 찾지만 그곳에서 느끼는 고독은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섬이 주는 각각의 매력과 아름다운 풍경은 우리를 압도하기도 한다. 자연의 아름다움 넋을 잃다가도 한없이 약해지기도 하며 때론 누군가가 미치도록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 순간 시인이라면 시상이 떠오를 것이고 사진작가는 사각 프레임 안에서 멋진 구도를 만들어 낼 것이며 화가는 현실을 더욱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담아낼 것이다. 그만큼 자연은 누구나 예술가로 변신시키는 힘을 지니고 있다.

작가는 시인이라면 섬이 주는 고독함을 즐길 줄 알아야 하고, 모든 소리에 귀가 열려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심지어 죽은 자의 소리를 듣고 산 자의 귀에 담아 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시인이 되는 것이라는 말로 시인의 역량을 강조한다. 이십 년 전 자신이 펴낸 산문집을 다시 꺼내보며 행복함을 느낀다는 시인 이생진.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며 글 쓰는 즐거움에 행복하다는 그는 다시 태어나도 시와 살겠다고 한다.
그의 글은 산문인 듯 시인 듯 애매하지만 내겐 그런 느낌이 좋았다. 산문 속에 시의 은율을 발견하기도 하고 멋진 구절 앞에서 몇 번씩 곱씹어 넘겨본다. 곳곳에 그가 직접 그린 일러스트는 또 다른 시로 다가왔다.

 

정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만 오가는 것이 아니라
식물과 곤충, 바람과 구름, 별과 어둠 사이에서도 오갑니다. - p.210

 

 

자연을 노래하는 시만큼 아름다운 문장은 없을 것이다. 해변이 주는 리듬에서 시의 선율을 읽을 수 있으며 해가 뜨고 지는 아름다운 리듬에 삶의 지혜를 배운다. 섬은 그리움과 존재의 이유에 대한 고민조차 자유로워질 수 있는 곳이며 섬에서 느끼는 자유로움은 큰 도시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감정들이다. 아무도 섬에 오라고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끌리듯 섬을 찾는 이들에게 시를 권한다면 그의 시집을 권하고 싶다.

시를 쓰면 소소한 일상에서 깨닫는 바가 많아진다. 사물 하나도 허투루 보게 되지 않으며 모든 것들과 소통하고 정을 나누게 된다. 작가도 시가 있었기에 삶의 맛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마무리 지으며 시와 함께 하는 삶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강조한다.
자연은 복잡하지 않다. 단풍을 이해하고, 파도의 리듬을 느끼고, 겨울바다의 외로움의 깊이를 느끼기 시작한다면 시는 한층 더 가까이 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몸소 느끼는 자만이 삶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즘 나는 산이 좋아 산을 찾는다. 책에 소개된 [낙엽]이란 시가 참 좋았다. 그래서 그의 시집 『산에 오는 이유』를 장만하련다.

 

한 장의 지폐보다
한 장의 낙엽이
아까울 때가 있다
그때가 좋은 때다
그때가 때 묻지 않은 때다
낙엽은 울고 싶어 하는 것을
울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기억하고 싶어 하는 것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이다
낙엽은 편지에 쓰고 싶은 것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낙엽을 간직하는 사람은
사랑을 간직하는 사람
새로운 낙엽을 집을 줄 아는 사람은
기억을 새롭게 갖고 싶은 사람이다

- 산에 오는 이유, 낙엽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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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 고양이는 줄무늬
무레 요코 지음, 스기타 히로미 그림, 김현화 옮김 / 양파(도서출판)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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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사가 된지 만 삼 년을 넘어간다. 나도 동물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동물애호가다. 이전에 코커 스파니엘 세 마리와 동거를 했었고 지금은 고양이 두 마리와 함께 지내고 있다. 굳이 점수를 매기자면 요코처럼 개보다는 고양이에게 점수를 더 주고 싶다. 산책이 필요 없고 개인주의적이며 청결하다. 자는 시간이 많다는 점도 상당한 이점이다. 털이 좀 심하게 빠지는 것만 제외하면 키우기에 완벽하다고나 할까.

최근 냥이를 키우는 가정이 늘었다고 한다. 택배아저씨도 배달을 다니다 보면 냥이 키우는 집이 예전보다 늘었다며 이야기하신다. 고양이는 그 어떤 애완동물보다 새끼 때의 모습이 예쁜 동물이다. 그 모습에 반해 덜컥 데려오지만 집사가 되고 나서는 우왕좌왕하게 된다. 당최 냥이의 울음소리와 몸짓만으로는 상황 파악이 쉽지 않다. 동물도 사람과 마찬가지로 성향이 천차만별이기에 의도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 나도 이제는 어느 정도 아이들과 교감이 된다고 여기고 있지만 어떨 땐 심각하게 알다가도 모르겠으니 말이다.

무레 요코는 [카모메 식당]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일상을 잔잔한 웃음으로 채우는 묘미와 낯선 이들이 만들어가는 우정에 정감을 느꼈던 기억 때문인지 그녀가 쓴 냥이 에세이라면 믿고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도 키우는 냥이가 있다. 하지만 글을 이어가는 주인공은 아니다. 표지에서 보았다시피 뚱뚱한 몸매와 단춧구멍만 한 눈을 가진 줄무늬 길양이, 시마짱이 그 주인공이다.

산책길에 그녀를 따라붙은 건 어쩌면 시마짱의 직감이 통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을 해본다. 그렇게 이어진 시마짱과의 인연은 그가 떠나던 날까지 지속된다. 시마짱은 뻔뻔해 보이지만 붙임성도 있고 의리(?)도 있어뵌다. 자신의 요구 사항을 확실히 피력하고 원하는 것을 얻어낸다. 단춧구멍만 한 눈에서 느껴지는 빈대 정신이 사랑스러울 정도다. 얻어먹는 주제에 더 달라고 울어대며 양껏 배를 채우고 사라진다. 처음과는 달리 거리를 점점 좁혀 그녀의 현관을 거쳐 집안을 돌아다니는 대담함도 보인다. 물론 그녀가 키우는 냥이와의 충돌은 알아서 피하는 현명한 계산도 한다.

비록 고약한 냄새를 풍기고 요코네 카펫에 토를 하는 등 잔잔한 사고도 일으키지만 그녀는 시마짱을 진심으로 아낀다. 험난한 길 위의 인생을 혹독하게 견뎌내며 하루하루 버텨내지만 저자의 보살핌 덕에 행복했을 것이다. 나에게도 찾아오는 길냥이들이 있지만 시마짱 같은 녀석은 없었다. 그래서인지 나도 시마짱의 패기가 참 마음에 든다. 시마짱이 요코 같은 좋은 인간을 만나고 떠났다는 사실이 얼마나 다행스러운지 모르겠다.

지진이 잦은 일본의 경우 인간뿐 아니라 동물이 받는 트라우마도 인간 못지않음에 안쓰러움이 밀려왔다. 평소와 달리 짖어대는 개들, 바닥의 흔들림에 놀라서 소파에서만 산다는 치와와, 배탈이 나거나 식욕이 주는 고양이, 그들만의 안전한 장소로 숨어버리는 모습을 보며 인간과 똑같이 돌봐주어야 할 존재임을 알았다. 그런 와중에 지진 후 시마짱이 요코와 이웃집의 안전까지 걱정하고 챙기는 모습에 뭉클했다. 설령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하더라도 말이다.

그녀가 동물들과 함께 하는 일상 속에 불청객 모기와의 사투는 친숙하지만 베란다로 날아오는 새들의 모습은 낯선 풍경이다. 진정 요코의 동물 사랑이 전해져서 행복해지는 에세이다. 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마시오라는 푯말 따위 붙어 있지 않고 눈을 피하지 않고도 냥이들의 밥을 챙겨 줄 수 있는 세상이었으면 좋겠다.

 

 

시마짱의 이야기를 읽다 보니 나를 찾아오는 길냥이들이 스쳐갔다. 찾아오는 아이들 중에 시마짱처럼 밥을 달라고 강하게 우는 애들도 있지만 문 앞에 조용히 앉아 있는 녀석도 있다. 입에서 점액질이 흐르는 아이뿐 아니라 얼굴이 부은 것인지 지나치게 커 보이는 친구도 있다. 몇 달 전에 나타났다 이제서야 모습을 다시 드러내는 친구도 있으며 살그머니 와서 부어논 사료만 냉큼 먹고 사라지는 녀석도 있다. 하지만 길냥이들은 자기들만의 룰을 지켜가며 영역을 넘나들지는 않는다. 철저히 혼자 와서 먹고는 홀연히 사라진다.

우리가 서로를 온전히 이해하기는 어렵다. 그건 동물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인간보다 지능이 떨어진다고 해도 감성까지 무시하면 안 된다. 집사를 향한 애정과 무한의 사랑은 그들과 함께 한 자들만이 알 수 있는 영역이다. 현재 집사이거나 동물애호가라면 추천하고픈 책이다. 요코의 따스함으로 이루어내는 동물과의 교감이 참 따뜻해서 함께 잘 살고 싶다는 소망이 커진다.

이번 달부터 등산을 다니고 있다. 신기한 건 산 정상마다 냥이들이 집단으로 서식한다는 점이다. 사람들이 꺼내놓은 도시락을 야금야금 받아먹는 것도 우습지만 이놈들의 입이 고급화돼서 고기가 아니면 쳐다보지도 않는다.
그래서 이제는 등산가방에 냥이 캔 두어 개를 넣어가지고 올라간다. 잠깐 스칠 인연이지만 잘해주고 싶다.
"그래, 이놈들아 이제부터 고구마 말고 참치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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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너오다 - 다큐 피디 김현우의 출장 산문집
김현우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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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를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심신을 달래주었던 유일한 책이 여행 산문집이었다. 모든 화살이 나한테 몰려오고 있는 듯한 느낌에 숨쉬기조차 힘들 때 여행 에세이는 미래를 꿈꿀 수 있게 해 주었다. 언젠가는 그들이 지나온 자리에서 나도 그곳의 채취와 풍경을 느껴볼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말이다.

참 오랜만에 읽은 여행 산문집이다. 다큐 PD라는 직업보다 리베카 솔닛의 [멀고도 가까운]을 읽은 기억 때문에 작가와의 거리감은 좁힐 수 있었다. [멀고도 가까운]도 여행 중에 읽은 책이다. 그 뒤로 다시 한 번 더 읽어야지 했던 책이기도 한데 [건너오다]를 읽으면서 더 곱씹으며 보아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나는 길치에 방향치에 인생치다. 그래서 늘 한발 늦게 시작하고 한치 늦게 깨닫는다. 그렇다고 뭐 딱히 크게 손해 본 건 없는 듯하지만 후회되는 순간도 더러 있다.(원래 잘 후회하지는 않는다.) 대학생활은 내게 있어 너무나 급작스럽게 변한 환경이었다. 거주지가 바뀐 것부터 두려움이었으니 세상으로 나갈 용기도 없었다. 부모님도 그런 나를 챙겨 줄 형편이 안되었었고 정말 덩그러니 혼자 남겨진 것이었다. 그때 텅텅 빈 영혼을 글로라도 채웠었더라면 삼십 대가 더 달라지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건 그가 베케트의 무덤 앞에서 많이 울었다던 장면을 보며 들었던 감정이다. 나는 왜 그때 아무것도 붙잡고 있지 않았던 것일까.

저자는 직업상의 일이었지만 여행지에서 느꼈던 모든 순간을 생각으로 채워 넣는다. 낯선 풍경뿐 아니라 일상의 순간, 그리고 만났던 사람들은 그가 늘 품었던 생각들을 줄줄이 엮어 낼 수 있게 해 준다. 여행지의 경험과 자신의 지식을 자랑삼아 늘어놓기만 했다면 결코 특별할 것 없는 산문집이었을 것이다. 경험이 주는 특별함을 정신이 온전히 받아들일 때 여행은 더욱 특별해진다.

동경하던 작가의 흔적을 발견하고 상상하던 그곳을 직접 눈으로 보는 일, 여행지에서 만나는 새로운 인연들과 낯선 경험들. 이 모든 것들은 떠나는 자들만이 얻을 수 있는 수확이다. 게다가 극한의 체험들은 죽음의 순간을 떠올리게도 하고 경계에선 우리네 삶을 돌아보게 한다. 저자의 말처럼 경계를 넓히는 일은 피곤함과 두려움이 동반된다. 그러나 내면은 더 꽉 차게 된다. 항공사의 실수로 수하물이 늦어진 며칠을 그냥 그렇게 보내며 얻은 깨달음이나 밤하늘의 별처럼 변하지 않고 늘 그 자리에 있는 것들 때문에 변화하는 것의 두려움 따위는 떨쳐버릴 수 있다는 것들처럼. 그리고 힘겨운 촬영 뒤 제대로 된 식사를 즐길 때의 행복감 같은 것들 말이다.

유독 기억에 남았던 일화 중 일본 오키야마의 침팬지의 쓸쓸한 멍 때리기가 떠올랐다. 수놈끼리의 경쟁에서 패배한 놈은 가끔 먼 곳을 바라본다. 그들 사이에 위로라는 개념은 없다. 그런 그들에게 연구원들은 he와 she를 붙여서 부른다. 저자는 그 모습을 보며 그들과 인간이 같을 수도 없고 같아서도 안된다고 반기를 든다. 제아무리 인간 사회가 승자만을 기억하는 사회로 전락한다지만 아직은 패자를 향한 너그러운 시선과 응원의 시선이 남아 있어야 함을 말한다. 먼 곳을 바라보는 침팬지와 이십 대의 내가 동일하게 느껴져서일까. 왠지 울컥하고 뭉클했다.

태국 치앙마이의 눈먼 아이 이야기에서는 저자가 내린 교육의 정의가 참 와닿았다. 교육이란 그렇게 서로 다른 개인의 언어들이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과정일 것이다.-p.158라는 말에서 보고도 보지 못하는 것들이란 소제목을 자꾸만 곱씹어 보았다. 함께 느낄 수 없더라도 계속 공감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하다. 그 결과가 냉소적이 되거나 겸손해지든지 간에 고개를 돌려버리는 일은 피해야 하겠다.

여전히 미혼에다 여행을 즐기는 절친이 부러운 적도 있었지만 그렇게 건너오고 나니 내가 보인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읽고 존 버거의 작품을 모두 찾아 읽는데도 어쩌면 내 생각과 문장은 당분간 제자리걸음이겠지만 심적으로 허우적대지는 않을 여유는 생겼다. 그래서 내면의 안정기에 접어든 지금이 좋다. 인생은 사십부터라는 말이 이렇게 와닿을 줄이야. 크흐~~

타인에게 자랑할만한 낯설고 특별한 경험들은 없지만 매일을 새롭게 살아갈 마음만은 단단해지고 있다. 삶은 단정 짓거나 확신하기에 변수가 너무나 많다. 싫고 좋음, 옳고 그름, 예쁘고 못생김, 잘 살고 못 살고, 행복과 불행, 빛과 어둠, 착하고 못된... 양분된 속성 속에도 다양한 감정과 의미들이 공존한다. 그래서 온전히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쓸 필요도 없다. 그냥 이해하지 못하는 나를 이해하면 내려놓게 되기도 하니까.

 

 

 

요즘은 주말마다 숲으로 간다. 사람들의 흔적이 새겨진 길 위를 걷는 기분이 참 좋다. 수많은 이들의 발걸음으로 단단해진 길 위에서 인생을 배운다. 비록 다독의 길은 조금씩 멀어지고 있지만 자연의 변화 속에서 움직이는 순간들이 참 좋다. 책 속 문장들이 편안해서 떠오르는 순간도 많아진다. 캠핑 불빛이 하나 둘 사라지면 더욱 두드러지는 별들, 가쁜 숨에 미세먼지 가득한 공기마저도 절실한 기억, 마주 오는 이들과 나누는 짧은 농담에 멀어져 가는 웃음소리, 장작이 타던 소리가 주는 안정감...
그렇게 사진첩을 들여다보며 생각도 심어본다. 풍경을 담던 그 순간의 느낌까지 고스란히 전해져서일까. 나의 건너 온 자리들이 나를 더 단단히 이어 주는 듯하다. 고도를 기다리듯 나는 주말을 기다려야겠다.

 

 

★★★

 

 

 

나는 이제 나의 '자리'가 궁금하지 않다. '되고 싶은' 어떤 자리라고 할 만한 것도 없다.

그런 자리라는 것이, 그것을 향해 달려가는 '목표'가 아니라

순간순간 나를 인정하며 지내는 시간들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결과'임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전에 내가 원하는 모습이 될 수 있는 비법 같은 건 없다는 걸 먼저 알게 되었다.

그걸 알고 나면 나와 화해할 수 있다. -p.20

 

 

 

약속은 하나의 세계를 긍정하는 최종적인 매듭이다. 약속을 지킨다는 건 그 약속을 바라며 살아온 세상의 완성이고,

그건 꽤나 뿌듯한 경험일 것이다. 하지만 때론 약속은 너무 성급했고, 그 약속을 다짐했던 세상은 너무 자주 깨지곤 했으며, 그러고 나면 경계 너머의 새로운 세상에서 과거의 약속만큼 부질없는 것도 없었다.

경계에서 어쩔 수 없는 서운함을 느낀 건 그렇게 약속이 깨어질 때의 서운함과 다르지 않았다. -p.65

 

 

 

변하지 않고 같은 자리에 있는 무언가는 위로를 준다. 생각해 보면 우리를 아프게 하는 것들은 대부분 변화다.
있던 것이 사라지고, 없던 것이 새로 생길 때마다, 우리는 아쉬워한다.
'길들여진 상태'가 편안한 만큼 의지와 달리 거기서 벗어나야만 아는 상황은 서운하고 때론 아프다. -p.136

 

 

 

경계를 건너지 못하게 하는 것은 경계가 아니라 경계 앞에 선 나의 마음이다.
그것은 욕심이고, 욕심에의 다른 이름인 미련 혹은 집착이고, 두려움이다.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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