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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승달
모리 에토 지음, 권영주 옮김 / ㈜소미미디어 / 2019년 1월
평점 :
절판
모리 에토의 최근작인 [다시 만나다]를 읽고 고민 없이 선택했다. 물론 제목에 더 끌리기도 했다. 전반적인 내용은 1960년대 일본, 군국주의 교육과정을 지난 뒤 생겨나기 시작한 일본 학원의 역사를 한 교육자 가족의 일대기를 통해 그려내고 있다. 대략 5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는 동안 강산이 변하는 속도보다 더 교육은 몸살을 앓으며 변화를 거듭한다. 교육에 관한 이야기는 할 말이 많아질 수밖에 없을 터, 가족의 일대기가 속도를 내며 흘러가니 두껍던 책은 지루할 틈이 없이 넘어갔다.
학교 조무원실에서 근무하는 남자 오시마 고로는 조무원을 찾아오는 아이들의 공부를 봐주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가르치는 일에 재능을 발견하게 된다. 그런 소문을 듣고 그를 찾아온 여인 지아키는 그에게 한가지 제안을 한다. 그녀는 어린 시절 군국주의 교육의 날것을 보며 공교육을 끔찍이 싫어하며 이상적인 교육관을 지닌 진취적인 여성이다. 그런 공교육의 대안을 학원에서 찾은 그녀는 고로를 찾아가 함께 운영하자고 설득한다.
교육자도 아닌 그가 선뜻 그런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결국 지아키의 밀어붙이는 추진력에 발목을 잡히고 만다. 함께 동업자에서 한 가족이 된 두 사람은 식구가 늘 듯 학원의 규모도 키워 나간다. 그러나 규모가 커지는 만큼 잡음도 커지게 마련이다. 교육부의 학원에 대한 부정적 시선과 압력, 주변 경쟁업체와의 경쟁과 대립 등에 치이면서 그만큼 둘 사이의 의견 충돌도 커져만 간다. 지아키의 고집은 집착이 되어가고 둘 사이는 파국을 맞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 집안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던데는 자녀들의 역할이 컸다.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교육자 집안의 숙명과 사명감 같은 그 무엇이 흩어진 가족을 하나로 이어준 것이다.
모리 에토의 따뜻한 시선이 여기저기 녹아 있어 책장을 덮고도 그 온기가 오래갔다. 미혼모 가정에 들어가 모자람을 사랑으로 꽉 채운 고로가 이야기의 반 이상을 끌고 가지만 후반은 손자가 마무리 지으며 완성도를 높인다. 어려움 앞에서도 서로 의지하고 돕는 전형적인 가족의 모습은 교육의 이상을 더욱 빛나게 한다.
오시마 씨, 전 학교 교육이 태양이라면 학원은 달 같은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태양의 빛을 충분히 흡수할 수 없는 아이들을 어둠 속에서 고요히 비추는 달.
지금은 아직 여릿한 초승달에 불과하지만 반드시 둥글게 차오를 거예요.
P.34
교육을 달과 태양에 비유하며 사교육에 대한 열의를 담아낼 때만 해도 분위기는 좋았다. 그러나 교육이 비즈니스가 되면 초창기 품었던 뜻에 흠집이 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지아키를 마냥 비난할 수도 없다.
게다가 교육에 대한 철학과 현실과의 충돌은 지금도 진행 중인 문제들이고 딸 란의 깨달음처럼 교육은 절대 비즈니스가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동의한다.
“이번 일로 알았어. 아이란 건 고객이면서 고객이 아니야. 등록하고 해지하고를 결정하는 것도, 돈을 내는 것도 애들이 아니라 보호자니까. 학원에 다니는 애들 자신은 언제 어디서나 무력해. 그 점에서 다른 비즈니스하고 절대적으로 다르다는 걸 알고 났더니, 지금까지 해온 것처럼 하기가 무서워졌어.” -p.371
표면적으로 추구하던 교육의 목표는 언제나 그 주위를 겉돌기 마련이다. 이상적인 교육관을 담은 서적이 불티나게 팔려도 현실의 괴리감을 떨쳐버릴 수 없다. 세기를 지나며 교육이 누군가를 통제하는 시대는 지났지만 씁쓸하게도 성공의 도구로 전락한 점은 안타깝다. 사설학원을 비난할 수도 막무가내로 공교육의 질을 탓할 수도 없는 것은 우리 사회에 뿌리 내려진 경쟁 시스템에 교육의 초점을 맞춘 점도 한몫한다. 요즘 한창 뜨는 스카이캐슬 속 입시전쟁이 전혀 허황된 이야기만은 아니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수치로 줄 세우는데 집착하는 사람들을 보며 혀를 차지만 정작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며 확신할 자신도 없다.
빨리 성장해야 했고 누구나 잘 사는 세상을 위해 달려왔지만 교육은 빨리한다고 잘 되는 것이 아님을 일본과 한국을 보며 깨달았을 것이다.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식의 사고가 뿌리내리자 교육의 이기심도 커지고 그 속에 아이들은 여전히 혹사당한다. 방학이 더 두렵다는 아이들 얘기에 어느새 나도 아이를 입시지옥의 문 앞에 세워놓은 기분이라 요새 마음이 영 편치만은 않다.
어느 시대든 교육이 한목소리를 내기는 어렵다. 공교육과 사교육의 대립은 지금도 확실한 대안 없이 흐르고 있다. 공교육에서조차 처지는 아이들을 끌고 가지 못하고 방치하는가 하면 사교육에서도 입학 커트라인을 만들어 학원 수준을 끌어올리는 일에 앞장선다. 교육의 불평등도 점점 벌어지는 소득의 격차만큼 벌어질 수밖에 없다. 책에서도 그러한 문제점을 깨닫고 헤쳐가는 인물이 등장한다. 저소득계층을 위한 무료교육지원 사업이 채울 수 없을 것만 같던 깨진 독에 돌멩이 역할을 해 주는 듯해서 따스했다.
지아키와 고로, 두 사람의 간극은 결국 무수한 시행착오와 시간이 해결해 주었다.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보내버린 시간 속에서 서로가 놓쳐버린 것들도 많다는 점이다. 지아키의 욕심이 과했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다. 아이들을 방치했기 때문에 강하게 자랄 수 있었다고 반문하던 지아키의 변명과 그렇게 사라져 버린 맏딸과 연락을 끊고 사는 엄마라니.. 난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았다.
교육은 초승달처럼 끝내 채워도 채워지지 않을 것이라는 말이 그렇게 와닿을 수가 없다. 보름달처럼 꽉 채울 수 있는 교육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진정 교육이 추구해야 할 진정한 의미에 대해 생각하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교육의 패턴에 아이를 맞출 것이 아니라 아이에게 맞는 교육을 부모가 찾아주어야 한다는 사실 말이다.
교육만큼 자식도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는 점은 지아키의 맏딸을 보며 공감했다. 교육의 혐오와 사교육에 혼신을 쏟는 엄마보다 아빠의 교육철학을 존중한 딸은 결국 공교육에 발을 들인다. 그래도 공교육의 희망을 버리지 말아야 함을 내비칠 때 뭉클함을 느꼈으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모리 에토가 한국의 조정래 같다는 생각을 잠시 가져 보았다.
"이 세상에 문제아는 없다. 문제 가정, 문제 학교, 문제 사회가 있을 뿐이다."라는 문장이 참 인상적이었던 [풀꽃도 꽃이다]와 [초승달]은 스토리의 공통점은 없어도 말하고자 하는 뉘앙스는 비슷해 보였다. 교육의 문제를 다시 상기시켜주며 교육을 본질을 찾아가자는 의미 말이다.
부조리에 저항하는 힘, 쉽사리 통제되지 않기 위한 힘을 주기 위해 있다. -p.512
50년이라는 세월을 촘촘히 담아내지는 못했지만 듬성듬성 뛰어넘는 시간 속에서 모리 에토만의 인간미를 느껴볼 수 있어 좋은 시간이었다. 일본에서는 티브이로 방영될 예정이라고 한다. 대지 속 남녀가 그 두 사람인 것 같은데 어떻게 풀어낼지 벌써 궁금해진다. 책 때문에 더 자주 밤하늘을 올려다볼 것 같다. 초승달부터 달이 차오르는 매일을 들여다보며 내일은 무엇으로 채워갈지 고심하는 삶을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