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속 요정과 동굴거인 고래책빵 그림동화 5
김희진 지음 / 고래책빵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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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그림동화를 펼치니 한창 동화를 선별해서 읽어주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요즘은 글 밥 많은 책을 보고 있어서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줄긴 했지만 괜찮은 그림동화는 일부러 찾아 읽힌다.

이번에 들인 숲속 요정과 동굴 거인은 딸아이에게 읽히고 싶었다.

요정이라는 콘셉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림이 부드럽고 포근한 느낌을 주어서 끌렸다.

책은 그림동화와 컬러링북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컬러링북은 영문 버전으로 되어 있다.

글로벌 시대에 한글판과 영문판으로 만나볼 수 있어 더 일석이조이며 나만의 그림동화를 만들어 볼 수 있어 뜻깊을 것 같았다.

 

 

 

이야기는 숲속 요정이 살고 있는 평화로운 숲속에 어느 날 사냥꾼이 나타난다.

동물들은 그런 사냥꾼을 피해 모두 몸을 숨겼지만 아기사슴은 그만 사냥개들에게 쫓기게 된다.

아기사슴은 필사적으로 도망치다 절벽 아래 동굴로 숨어들게 되는데

소문에 의하면 그곳은 무시무시한 괴물이 살고 있다고 하는 곳이다.

도망치던 아기사슴이 걱정된 숲속 요정은 두려움을 무릅쓰고 아기사슴을 찾아 나선다.

과연 숲속 요정은 아기사슴을 데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괴물이 숨어산다는 동굴에 갇힌 숲속 요정과 아기사슴은 두려움에 떨지만 괴물의 정체를 확인한 순간 위험한 존재가 아님을 느끼게 된다. 숲속에서 밝은 기운을 전하는 요정이었기에 동굴 거인의 선한 눈빛을 읽은 것이다.

생긴 모습으로 오해를 받았던 동굴 거인은 바깥출입을 자제하고 숨어지내며 외롭게 살고 있었던 것이다.

거친 외모와는 달리 너무나 착하고 순한 동굴 거인은 다친 사슴을 돕고 다시 세상에 나오게 된다.

 

 

 

딸아이도 숲속 요정의 동물 사랑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고 그런 친구를 돕는 모습을 닮고 싶다고 한다.

그림이 따뜻해서인지 씻지 않은 동굴 거인의 모습도 귀엽단다. 물론 목욕 후의 모습은 더 순수해 보인다고.

그러면서 한마디 덧붙이길, 진작에 좀 씻고 다녔다면 친구들이 도망 다니지 않았을 텐데.라는 말에 빵 터졌다.~~^^

역시 사람이든 동물이든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을 하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며 숲속 요정과 동굴 거인의 우정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굴 거인과 같이 있던 박쥐 친구도 동굴 속을 나와 부엉이와 밤 하늘을 날아다니며 행복해하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보면 좋을 것이다.

그림을 좋아하는 딸아이는 그림이 예쁘다며 드로잉북에 있는 그림도 열심히 색칠해 보았다.

한 페이지를 다 채우고 나서 뿌듯해하는 모습이 기특했다.

긴 영어 문장을 띄엄띄엄 읽어내려가며 해석하느라 진땀을 빼지만 영어 독해에 도움이 돼서 좋았다.

누구에게나 다양한 면이 존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나 쉽게 한가지 잣대만으로 평가하고 결론짓는다.

타인의 다른 점을 인정할 줄 아는 마음과 상처받은 이들을 보듬어 줄 수 있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서로서로 노력해야 한다는 점을 배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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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름다운 이웃 - 박완서 짧은 소설
박완서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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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덮은 뒤 책장 앞에서 박완서 님의 책을 뒤적였다. 좀 더 작가님의 글을 읽고 싶었기에. 단편에 녹여 낸 1970년대의 일상이 그리 촌스럽지 않고 재밌다. 화장품 화보지에 실렸던 콩트들 속에 이집 저집 속 사정이 듬뿍 담겨 있을까. 48편에 깃든 시대의 흔적에 사소한 내 일상마저도 아끼게 된다.

 

흑백 같던 삶이 조금씩 칼라를 입던 시절. 그 시대의 가치관과 변해가는 모습은 많은 이야기들의 소재가 되었을 것이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억압받고 차별받던 여성의 모습과 남녀관계, 자본주의가 무르익어감에 따라 변질되어가는 인간애,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단절되는 이웃과의 관계 및 세대 간의 갈등 등을 엿보는 재미가 있다.

 

[마른 꽃잎의 추억 1,2,3,4]편에서는 한 여성의 추억 찾기에 빠져보았다. 내조와 희생으로 삶이 공허해질 때쯤. 그녀는 그녀를 추종하며 바쳐졌던 꽃다발들의 주인공들을 찾아 나선다. 그러나 낭만을 향한 일말의 기대감은 추억 속에서 이미 마침표를 찍었다는 사실만 깨닫고 만다.

나는 왜 낭만을 찾는답시고 간직하고 있는 낭만이나마 하나하나 조각 내려 드는 것일까? 이 낭만이 귀한 시대에. - p.71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 1,2,3]은 삼대에 걸친 차별과 억압 속 여성의 삶을 말하고 있다. 청상과부 시어머니로 인해 인생이 꼬인 분희와 그녀의 며느리이자 외딸의 엄마인 경숙 그리고 그녀의 딸 후남. 세 여성은 여성의 제한적 삶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삼대를 지나오면서도 여성의 삶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갇히고 만다. 절망적인 사실은 후남의 발목을 할머니와 엄마가 잡았단 것이다. 남자는 되고 여자는 안되는 게 당연시되던 시절. 여자의 적은 여자임이 확연히 드러나던 시절. 그 시대 후남이들의 눈물겨운 사연들이 궁금해진다.

 

그러고 보니 내게도 초등학교 때 짝꿍이었던 후남이가 있었다. 그 친구에게 남동생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사실은 내가 알던 후남이는 순정만화 캐릭터를 기똥차게 잘 그리던 아이였다는 것이다. 후남이는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잘 살고 있을까?

눈 아래 거대한 도시, 그 갈피 갈피에 여자 길들이기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가 공룡처럼 징그럽게 도사리고 있음 까지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 p.100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듯한 이야기도 있었다. 절에 가는 일이 유일한 낙인 어머니를 둔 딸은 함께 어머니가 다니시는 절로 동행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딸은 심한 불쾌감을 느낀다. 부처님을 모신 곳에서 세속의 욕망이 들끊는 장면에 분노를 느낀 것이다. 어쩌면 그리도 내가 가지고 있던 생각과 흡사한지. 그러나 그런 생각에 어머니는 일침을 가한다.

"넌 잠깐 동안에 별의별 걸 다 봤구나. 나는 십 년을 넘어 다녔어도 부처님 한 분 우러르기도 벅찼는데" -p.189

[어머니]를 읽으며 평소 종교에 대한 막연한 불신을 조금 걷어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그동안 추한 것만 골라 보고 그걸 미워하고 헐뜯는 시간으로 삼았던 것이다. 어찌 부끄럽지 않으랴. -p.189

 

여전히 시댁은 어렵고 남아선호 사상으로 셋째까지 보는 집도 있으며 그런 분위기에서 자라 엄마의 허락이 아니면 꼼짝 못 하는 마마보이도 있다. 상대를 거절하기 위한 방편으로 궁합을 핑계 삼은 일은 실제로 들은 적이 있기에 헛웃음도 났다. 그때보다 세대차는 더 벌어져서 외래어보다 신조어가 더 무섭고 도미노같이 솟은 아파트들 사이에서 층간 소음은 더 커져만 간다. 이웃 간의 정은커녕 인간과의 신뢰조차 믿을 수 없는 사회를 보며 세상이 측은해진다.

 

게다가 [꿈은 사라지고]편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가정부를 둔 워킹맘 선영은 남편의 감기약을 사러 약국에 들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가정부가 아이들에게 수면제를 먹인단 사실을 알게 된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몹쓸 가정부로 인해 절망과 좌절을 느낀 이야기에 분통이 터지고 소름이 돋았다.


 

 

 

연휴 기간 잠깐 짬을 내어 아파트 뒷산에 올랐다. 산 중턱에서 바라본 도심 풍경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땅 위를 아파트가 허옇게 덮고 있는 모습을 보니 갑갑함이 밀려온다. 아파트의 모양새처럼 사람 사는 모습도 비슷하겠지만 시대가 변해도 사회가 떠안고 있는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작가의 글 쓰는 이유가 무엇이었든 간에 하나하나 탄생한 이야기들이 소중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삶의 가치를 재고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시대를 섬세하고도 측은하게 바라본 작가의 눈길은 나를 더 철들게 해주었다. 이렇듯 일상에 쉼을 던져주는 글들이야말로 지금 우리들에게 필요한 휴식이다. 마지막 [나의 아름다운 이웃] 을 읽으며 나는 내 이웃에게 어떤 모습일까 생각해 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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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랑콜리 해피엔딩
강화길 외 지음 / 작가정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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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즐겨 듣는 라디오 코너가 있다. 청취자가 보낸 짧은 사연을 들려주는 코너인데 온몸에 착착 감겨서 좋아한다. 언제부터 이렇게 다른 사람 사는 모습에 위안을 얻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그들의 사소한 다툼도, 서운한 감정도, 고마운 마음도 다 내 것만 같아서 위안이 된다. 그래서 요즘은 단편을 자주 찾아보게 된다. 라디오 사연만큼 감기지 않거나 그 의미를 분석해야 하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긴 여운을 즐기다 보면 삶의 지혜도 진하게 온다.

 

그나저나 책장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박완서 작가의 책이 제법 꽂혀 있다. 언제 사서 읽은 걸까. 색이 제법 바랜 만큼 기억도 가물가물하고 내용도 모르겠다. 확실한 건 그 당시 심적 스트레스에 도움이 되었기에 저 책장 비좁은 곳에서 자리하고 있단 것뿐이다.

 

이 책은 한국작가 29인의 박완서 작가 콩트 오마주이다.

이제서야 국문학을 조금씩 읽고 있어 이 29의 작가 중 절반 이상은 낯선 작가지만 다양한 소재만큼 개성 있는 글들을 만나볼 수 있어 의미 있었다. 예전에 작품 이야기를 나누다 멜랑콜리에 숨은 뜻을 두고 의견이 분분해서 그 뜻을 찾아본 적이 있다. 멜랑콜리속에 기분이 야릇하다, 야하다는 속뜻이 있는 줄 알고 있었는데 사전적 의미는 전혀 그런 의미가 아니었던 것이다.

melancholy : (장기적이고 흔히 이유를 알 수 없는 ) 우울감, 구슬픔 통상적으로 딱 이렇다 할 이유 없이 괜시리 기분이 울적하고 뭔가 애매한 기분이나 느낌이 들 때 '멜랑꼴리하다'라고 표현.

 

책의 제목은 두 편의 제목에서 각각 따온 것이다. 백민석 작가의 [냉장고 멜랑콜리] - 잘못 배달된 냉장고 때문에 멜랑콜리하던 남자는 매일이 서럽다. 그렇게 힘겹게 싸워내고 한 달 후 새 냉장고와 행복하던 시간도 잠시, 다시 헬스용 자전거 때문에 멜랑콜리해지고 만다 -와 백수린 작가의 [언제나 해피엔딩] -현재의 초라함과 미래의 불안감에 생각이 꼬인 여자는 타인과 마주한 자리에서 불안한 미래보다 지금의 온기를 생각하기로 마음을 고쳐먹는다. -

 

마치 원래 하나의 제목인 것처럼 이야기는 누군가의 삶의 일부인 듯하지만 누군가의 삶 전체를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짧은 이야기들이지만 인간 세상 사 수만 가지의 모습만큼 온갖 기분을 다 맛보았나고 나 할까. 외면하고픈 기억에 밀려드는 후회, 잃어버린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산다는 것의 두려움, 복잡한 일상에서 오는 혼란스러움에 내가 머물다 사라진다. 부부, 연인들의 삶에서 전해지는 솔직함이나 인간의 이중적 면모를 잘 잡아내는 등 훈훈함을 전한다.

 

그 많은 이야기들 중 가장 리얼리티를 꼽으라면 이기호 작가의 [다시 봄]이 아닐까. 비싼 레고 장난감을 술김에 사들고 온 아버지는 그 다음날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환불을 해야 한다. 아들과 함께 마트로 향하는 길이 참으로 처량하고 서글프다. 축 처진 어깨의 무게는 어린 아들이나 아버지나 매한가지일 터. 장난감 회사를 향해 분풀이라도 해야 그들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조남주 작가의 [어떤 전형]도 대학 입시의 웃픈 현실을 보여준다. 종교 전형이라니.~~ 딸아이의 입시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조건이라도 필사적일 수밖에 없는 부모의 마음도 알겠지만 대한민국 입시 전형의 삐뚤어진 실태에 헛웃음이 난다.

 

윤이형 작가의 [여성의 신비]는 우정이라 믿고 있지만 우정도 한낱 겉모습에 불과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SNS로 인해 아마 한 번쯤은 다들 경험이 있을 법한 이야기. 우리가 얼마나 쓸데없는 곳에 감정을 소비하고 있는지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끝이 없이 서로의 현재를 비교하고 다른 점을 찾아내려 한다. 너의 행복을 나의 불행으로, 너무도 쉽게 치환해 버린다. -p.171

 

최수철 작가의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죽음]은 깨닫는 바가 많았다. 그가 정말 게을러서 죽어버린 것일까. 허허 웃다가가 이내 침묵하게 만드는 강한 울림이 있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섣부른 판단으로 누군가를 낙인찍고 있는 건 아닌지 반성하며 이제부터라도 큰 아이가 느려터졌다는 말은 그만해야겠다.

평모를 세상에서 가장 게으른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사실은 견해차가 크다는 사실이다.-p.296

 

그 외 미스터리한 분위기에 오싹하기도 하고 상황의 반전으로 웃음을 주는 이야기들도 있다. 내게 있어 이야기는 현재다. 모호한 이야기에 숨어든 의미에 길을 헤매더라도 이야기는 내가 누구인지를 찾아주고 관계의 어려움에 해답을 제시하며 불안한 미래에 디딤돌이 된다. 그래서 읽는 것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멜랑콜리한 날들마저도 즐길 수 있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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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어떻게 삶의 무기가 되는가 - 불확실한 삶을 돌파하는 50가지 생각 도구
야마구치 슈 지음, 김윤경 옮김 / 다산초당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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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라는 의문이 어떻게?로 전환되기도 전에 사고의 끈을 놓아버린다면 세상은 어떻게 될까? 충분한 경험과 연륜만으로 인생의 깨달음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너 자신을 알라'는 명제를 그렇게 들어왔으면서도 자신이 쓰고 있는 가면을 모르는 이도 있으며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알면서도 스스로 생각하기를 멈춘 이들도 많다. 사회와 조직이 이끄는 대로 밀려가고 타인의 생각에 맞춰가는 삶은 결코 내 삶이 아니다.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사느냐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무게중심을 옮겨야 하며 비록 너와 나, 나와 사회의 간극 속에서 갈팡질팡할지라도, 그래서 아하! 하는 순간보다 아차! 하는 경험이 많더라도 생각하기를 멈추어선 안된다.

 

요즘 사람들은 철학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나처럼 학창시절 교과서에 등장하는 사상가들의 이름에 얄팍한 지식만을 얹어 놓은 이들이 많을 것이다.

경험을 통한 깨달음에 앞서 철학은 그런 사고의 밑거름이 된다. 선진국에서는 철학 수업의 비중이 높다는데 우린 딱히 그런 것 같지도 않고 어른이 되어서도 깊은 사고를 할 여력이 없이 살고 있으니 거름이 한참 부족하다.

물론 내게 있어 이러한 사실을 깨닫는데도 더뎠다.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고민하면서 함께 사는 일을 고민하게 되자 어느새 철학적 사고의 필요성을 깨달았다. 그러나 여전히 철학이란 어려운 단어와 개념들의 잔치 같아 선뜻 책 한 권 펼치기 쉽지 않았다. 그래도 좀 더 깊은 사고가 필요했다. 내 주위를 이해하고 포용하기 위해서, 또 나 자신을 대변할 충분한 지식을 장착하고 싶어서 철학 공부는 해야 했다.

 

 

철학을 배우지 않고 사회적 지위만 얻으면 문명을 위협하는 존재,

한 마디로 '위험한 존재'가 된다고 지적하고 있다.-p.6

 

철학은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으면 우리는 독단과 오만에 빠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이 책은 여러 철학서들과는 조금 다른 관점으로 재해석하고 있다. 철학을 사상이나 시간의 순서로 분류한 것이 아닌 현실에 초점을 맞추었다. 사람, 조직, 사회, 사고 이 네 가지 관점을 기준으로 생각을 세분화하여 우리에게 필요한 철학적 사고가 무언인지 살펴보고 있는데 세분화된 목차만 들여다보아도 평소 궁금해하던 질문들이 보인다. 철학 책에서도 고개를 끄덕일 내용들을 발견하면 그 또한 즐겁다.

 

이 사람은 왜 이래?/ 이 회사 좀 이상한데?/ 나라꼴이 왜 이래?/ 어떻게 이럴 수 있지?

시대의 흐름 속에서 나타나는 인간의 행동 특성은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질문을 부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만족스러운 변화를 얻기까지 적잖이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저자는 잦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비판적 사고를 통해 정확한 통찰력을 키워야 하며 그 해결책이 철학교육이라고 강조한다.

 

시대를 대표하는 철학자들의 사상을 베이스로 하여 뽑아 놓은 50가지의 물음을 들여다보니 우리는 왜 늘 고민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지 보인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정체된 채 누군가에게 지배당하거나 착취당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무지해 보이는 정치인이나 지각없는 사업가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들이 참 한심해 보일 때 그들에게 필요한 건 철학적 사고임을 절실히 느낄 때가 있다. 또한 한가지 생각만으로 꽉 막혀 전혀 타협조차 안 하려 드는 이들을 만날 때도 마찬가지다. 철학은 이처럼 인간이란 존재를 고민하는 것부터 시작하였다. 그리고 더 나은 삶을 위해 인간의 특성을 분석하고 유형화하는 등 지속적으로 연구해오고 있다. 사람은 논리만으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사실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을 진정한 의미에서 바꾸고 싶다면 설득보다는 이해, 이해보다는 공감이 필요하다. -p.70지나치게 논리만을 앞세우다 사람의 마음을 얻지 못하는 이들이 있다. 게다가 인생은 도덕적 가치관이 들어맞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음에도 눈을 떠야 한다.

또한 인간의 특성이나 개인의 양심을 다룬 부분도 실험 과정을 예로 들며 설득력을 키운다. 인간은 유혹에 약하고 자신을 정당화하는데 익숙한 존재다. 각자의 자유의지에 따라 움직이는 듯 보이지만 권위 아래 책임을 전가하면 복종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예로 유대인 대학살 당시 학살에 가담한 이들을 보며 인간이 얼마나 자각 없이 악행에 가담할 수도 있는 존재임을 여실히 알 수 있다.

 

조직에서 리더의 자질에 관한 문제는 끊임없이 논의되 오고 있다.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이 시대의 변화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해석되어 왔는지 살펴보며 지금 시대 필요한 리더 상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는 시간도 가져 볼 수 있다.

자유 민주주의 국가는 다수의 원칙을 우선하다. 그래서 늘 소수의 의견은 배제되거나 무시되는 경향이 있어왔는데 현명한 의사결정에 있어 '악마의 대변인'이 중요 성함을 강조한다. 이는 많은 오너들이 고심해 보아야 할 문제다.

 

요즘 나오는 심리 책들과는 조금 다른 철학적 사고도 보인다.

서먹한 상대, 소통이 안 되는 타자가 왜 중요한 것일까? 레비나스는 이에 대해 간단히 답했다. "타자는 깨달음의 계기다." -p.162

나와 맞지 않는 이들과는 굳이 일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가도 가치관과 시점의 전환을 위해서라도 마주하기 힘든 이들과 부딪히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게 철학적 사고라면 그게 맞는 것일까.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좀 더 고민해보아야 할 것 같다.

 

사회에서는 소외라는 개념과 차별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수 있어 좋았다. 사회는 급변하고 그 사회에서 소외되는 이들은 점점 늘어만 간다. 이는 우울증과 무기력을 불러오고 결국 개개인의 능력이 발휘되지 못한다면 사회는 제로 상태로 멈을 수밖에 없다. 사회시스템을 변경하기 전에 이념과 가치관의 변화가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점의 동의하는 바다.

 

재빨리 도망칠 줄 아는 사람이 승리한다는 개념도 재미있다. 이는 우리가 위험한 판단에 놓였을 때 상황에 이끌리지 말고 빨리 벗어나기 위한 결단력이 필요함을 강조한 내용이다. 세상은 절대로 공정하지 않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이러한 사실을 빨리 인지하고 싸워나가는 것뿐이다.

"일단 이 배에 탄 이상 마지막까지 애써 봐야지!"라며 벼르고 있을 때 "나는 이 배와 함께 가라앉을 생각이 없습니다. 먼저 실례하겠습니다."라고 당당히 말하고 나서 도망치려면 얼마만큼의 용기가 필요할지 상상해 보자.-p.243

모든 것이 거의 평준화될 때 인간은 최소의 불평등에 상처받는다. -p.248

 

그래도 철학이 지루하다면 사고에 관한 부분만 보아도 좋겠다. 이상에 치우쳐 현실을 망각하거나 우상(착각, 독단, 거짓말, 편견)에 빠져 올바를 판단을 그르치는 경우를 왜 조심해야 하는지 읽어본다면 평소 내 모습이 어떠한지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철학이 과연 내 삶을 지켜줄까?

우리는 무수한 사고의 딜레마에 빠지기도 하고 정답 없는 문제지 앞에 쩔쩔매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끊임없이 실수를 반복하며 인간다운 삶에 물음을 던지고 있다. 철학은 특정한 사상을 기반으로 한다기보다는 그 시대와 함께 인간의 특성을 연구해온 학문이고 그 시대를 반영한다. 그 당시는 획기적일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너무나 당연하게 들리는 말들이라도 일상과 연관 지으며 되새겨야 한다.

분명한 사실은 풍부한 사고는 우리의 모서리를 다듬어 줄 것이다. 왜냐하면 안다는 것과 이해한다는 것은 결국 바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자신의 힘으로 진리에 다다르는 길을 철학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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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 - 부엌에서 마주한 사랑과 이별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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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선뜻 부엌을 보자고 한다면 민낯이 드러나는 기분이 들것만 같다. 왜냐하면 그만큼 자신 없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리에 별 취미가 없다. 전혀 재주가 없는 건 아니지만 귀찮은 일 중 하나다. 만드는 열정도, 먹는 즐거움도 그다지 없다. 배만 안고프면 된다는 생각에 여태껏 식에 비중을 크게 두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시부모님과 합친 후 부엌에서 보낼 수밖에 없는 시간들은 더 큰 스트레스를 낳았었다.

 

하지만 내게도 싫든 좋든 부엌에 관한 추억은 쌓였다. 누군가를 위해 요리를 했던 일들이 단순히 배고픔을 해소하기 위한 것들이 아니었음을 되짚어 보니 내 삶도 그곳에서부터 영글기 시작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집 저집 음식 냄새를 타고 퍼져나가는 사연들은 다양하지만 그들이 부엌이라는 공간에서 느끼는 마음들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오래도록 부엌을 쓰고 닦는 동안 많은 이들과의 연을 채워간 이도 있을 것이고 이제 막 새롭게 시작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충실하지 못한 삶을 부엌에서 위안 받거나 새로운 시도로 마음을 다잡아보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저자의 부억취재기가 담겨있다. 저자는 취재를 하는 동안 이곳에서 사람사는 냄새를 진하게 느낀다. 그래서인지 나는 소개된 열아홉 집의 모습을 보며 부엌을 홀대했던 순간이 미안해지기 시작했다.

 

 

 

 

식도락 문화가 발달함에 따라 요리를 즐기는 이들도 많아지고 또 결혼 후 함께 부엌에서 시간을 보내는 부부도 흔하다. 함께 장을 보고 장단 맞춰 식사 준비가 끝나면 즐겁게 식사를 한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나누는 대화는 더 정겹게 흘러간다. 그래서 가족이 한자리에서 같이 밥을 먹는다는 건 긍정적 기운을 불러온다. 그래서 우리집도 되도록이면 저녁식사는 온 가족이 함께 하려한다.

부엌은 그렇게 함께 하며 서로의 식성과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이다. 그러나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지 못한다면 어떤 일들을 겪게 될까.

마주는 앉았지만 각자의 음식에만 몰두한다면 식사시간이 즐거울 리 없다. 아내의 채식 식단 앞에서 "뭐야, 당신, 잘난 척 그만해." -p.13라고 내뱉는 남편이라면 굳이 밥상 앞이 아니더라도 문제가 터졌을 것이다. 취향을 존중받지 못하는 사이라면 한쪽이 감당해야 할 상처는 더 커져간다. 그 순간이 아니었다면 그녀가 깨닫는데 더 오래 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공들인 공간은 그만큼 가치가 깃든다는 말이 부엌과 그리 잘 어우러질수가 없다. 그래서인지 부엌과 그리 친하진 않아도 다른 집의 부엌을 들여다보니 정겨움이 느껴진다.

각자의 취향을 반영한 듯 조리도구 및 주방용품이 빼곡한 집도 있는 반면에 초라해 보이는 집도 있다. 욕심나는 주방기구를 설치한 것으로 세상 다 가진 것처럼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고 인테리어에 제법 공을 들인 집도 있다. 그러나 노숙자 생활을 방불케하는 노부부의 부엌을 보면서 앞날보단 당장의 위생과 건강이 염려되기도 했다.

 

 

 

부엌이란 공간과 삶을 엮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는데 이혼 후 미각을 잃은 여자가 부엌에서 다시 자신의 모습을 찾는 모습을 보니 예전에 친구가 해준 충고가 떠올랐다. 내가 나 스스로를 제대로 대접하는 일은 제대로 된 식사에 있다며 밥 잘 챙겨 먹으라는 조언을 남긴 친구의 말과 그녀가 정의한 요리는 '입지 확인'이다라는 말이 닮아 있는 듯 하다.

 

다시 한번 혼자만의 생활로 돌아와 땅에 발을 붙이고 현실이 살아가요. 앞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생활에서 최저한의 부분은 지키고 싶어요. 힘차게 살고 있는지 아닌지, 요리는 제게 그 입지를 확인하는 일이에요. -p.92

 

시집살이의 부엌일은 고달팠으나 마당 텃밭에서 길러낸 제철 채소들로 부침개를 부쳐 나눠먹던 일(여름이면 식탁이 각종 채소로 풍성했다), 힘든 육아 시절 남이 해 준 밥은 다 맛있구나를 경험한 일(내가 먹은 감자볶음 중 최고였다), 유일하게 기억하는 아빠의 요리 갈치구이(비주얼은 엉망이었는데 맛은 끝장이었다), 명절 때마다 그 좁은 부엌에서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내오던 요술쟁이 같던 엄마(그렇게 차려놓고도 차린 게 없단 소리는 빼놓지 않았다), 싸운 뒤 분위기가 서먹할 때 나는 떡볶이로 남편은 라면으로(역시 먹는 게 남는 건가), 작년 겨울에 담은 김장김치가 성공한 일(마음가짐을 달리 먹었다. 즐기기로)들이 막 떠올랐다.

최근에는 "방학이라 삼시 세끼 챙기다 하루가 다 가. 내 공간이라곤 부엌 식탁뿐인 것 같아."라며 신세한탄하던 친한 언니의 투정도 떠오른다.

 

난 이 책을 계기로 부엌에 대한 느낌이 많이 바뀌었다. 능숙하지는 않지만 부엌에서 써 내려갈 레시피가 나의 인생 레시피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조금 더 애정을 쏟고 싶어진다. 요리는 생활의 질을 높이고 맛있는 음식은 입안뿐 아니라 삶을 풍요롭게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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