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 나의 아름다운 고양이 델마
김은상 지음 / 멘토프레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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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듯한 삶에서 무언가를 계속 잃어간다면 나란 존재의 이유에 대해 끊임없이 부정하고 싶을 것 같다. 그러나 그런 존재의 이유를 일깨워주는 존재가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특별해진다. 허구의 세계지만 존재에 담긴 무한한 애정은 그 슬픔을 충분히 덮고도 남는다.

 

눈을 마주하고 체온을 나누며 곁을 내어주는 사이가 되면 제아무리 짧은 시간이라도 그때가, 그 순간이 깊게 남는 법이다. 나도 두 마리 냥이와 삼 년 남짓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데다 작년에 3개월 정도를 함께하다 떠나버린 앵무새가 있었기에 그 애틋함을 잘 안다. 3개월의 짧은 시간이었지만 델마가 '나'의 삶에 문장으로 남은 것처럼 말이다.

 

실제 작가의 삶 속을 살다 떠난 델마였기에 자전적 소설인 줄 알았다. 소설의 '나'도 작가처럼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지만 고양이와 영역을 공유하는 사이가 된다. 그런 사이가 되기까지 '나'의 드러난 삶이 너무나 외롭고 쓸쓸해 보인다. 그래서 자신의 영역을 찾아다니는 길고양이에게 마음이 쓰였을지도.

 

'아'와 '어'는 엄연히 다르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는 '아'가 '어'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어린 시절은 그런 상상 따위 지니기가 쉽지 않았고 사랑의 끝자락에서 위태로운 시절을 지난다. 부모님은 '아'와 '어'처럼 각자의 인생을 살았고 '나'는 '아'도 '어'도 아닌 주체성을 잃은 존재로 성장한다. 외롭고 나약한 존재였던 그에게 델마는 그의 존재의 이유를 느끼게 해준 존재다. 서서히 천천히 자신과 영역을 공유하는 고양이 델마에게서 그는 과거를 보았고 현재를 위안 삼는다. 델마가 짧게나마 자신의 영역에서 산 삶이 나비 같던 경화와 떠나버린 엄마의 모습 이자 '나'의 모습만 같아 쓸쓸하다.

 

 

 

 

양이가 누군가의 무릎에 앉는다는 건 자신의 생명을 맡긴다는 뜻과 같아.


 

서툴러서 서로의 영역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사이들과 이미 나비처럼 날아가 버린 이들이 간절히 원한 건 존재의 이유를 찾는 것이었다. 고양이의 습성이 역설적으로 인간의 삶에 대비되고 있어서 고양이를 기르고 있는 이들이라면 문장 곳곳에서 진한 애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일하는 도중 뜬금없이 고양이가 무릎 위로 내려온다거나 안아달라며 가슴 쪽으로 몸을 붙일 때면 나도 그들의 무한한 사랑에 가슴이 뜨거워질 때가 있다. 비록 모호한 해석이 만들어내는 세상이지만 내가 고양이가 되어갈 수도 있음을 나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양이에게 있어 나는 주인이 아니라 집사 자리가 더 좋다. 가끔 자신의 영역을 내어주지 않아 섭섭할 때도 있지만 그래서 더 애틋한 사이가 되는 것 같다.

 

작가는 말미에 내가 만난 모든 고양이는 나의 첫사랑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 말을 곱씹다 보니 작년 일이 떠올랐다. 친구들과 놀던 큰 아이가 뛰쳐들어와 다 죽어가는 아기 고양이가 있다고 했다. 부랴부랴 뛰쳐나가보니 눈도 뜨지 못하고 늘어져 있는 새끼 고양이가 있었고 무작정 데리고 병원으로 향했다. 가쁜 숨을 겨우 내쉬고 있던 녀석이 진찰을 하려고 청진기를 갖다 대자 가르릉 가르릉 소리를 어찌나 크게 내던지.... 의사선생님은 숨쉬기도 힘든 녀석이 가르릉 소리를 이렇게 크게 내는 걸 보니 분명 기분이 좋은가 보다 했다. 하지만 녀석은 이미 파보에 감염된 상태였고 결국 입원한지 몇 시간 만에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말았다. 눈도 뜨지 못하던 녀석의 가르릉 소리가 가슴 깊이 남에서였을까. 상자 겉면에서 느껴지는 녀석의 온기에 뜨거운 눈물이 계속 차올랐던 기억이 있다. 첫사랑의 감정까지는 아니더라도 벅찬 그때를 잊을 수가 없다.

 

며칠 전부터 밥을 챙겨주던 길냥이 두 마리가 있다. 노랑이 녀석은 여전히 밥 달라고 울다 밥만 먹고 가버리는 반면 웅웅 소리를 내는 검은 녀석은 드디어 경계심을 늦추고 사무실 안으로 발을 들였다. 내심 주저앉으면 곤란한데 하면서도 마음을 내어주는 게 고마울 지경이다. 무심히 걷다 겨울을 이겨내고 하나 둘 모습을 드러내는 고양이들을 보면 그렇게 안도감을 느낄 수가 없다. 우리네 삶도 그런 안도감을 자주 마주할 수 있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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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보노, 오늘 하루는 어땠어?
이가라시 미키오 지음, 고주영 옮김 / 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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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어땠어?

이건 내가 저녁 식사시간에 아이들에게 제일 먼저 건네는 인사다.

아이들의 하루 일과를 들으며 서로의 일과를 공유하고 공감하는 시간은 보노보노의 말처럼 마치 풍경을 보는 것과 같다.

두 녀석의 하루에 미세한 성장이 보이고 오늘이라는 시간이 사소함과 특별함 그 어디에 있더라도 고맙게 여겨진다.

그냥 그 자리에 있어서 고마운 것들처럼 말이다.

 

보노보노를 처음 만난 건 김신회 작가의 보노보노 에세이다.

래서 보노보노가 어떤 친구인지 감으로만 알고 있었을 뿐 만화를 제대로 본건 첨이다.

책은 보노보노 시리즈 중 엄선한 18편이 실려있다.

그래서일까, 별생각 없이 펼쳐들었다가 특별해지고,

그냥 실실 웃다가 혼자 박장대소하게 되고(큰 녀석은 영어 숙제로 낑낑대고 있는데 자꾸 실실 웃어서 미안했다),

보노보노만 보다가 친구들까지 다 좋아지게 되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매력적인 만화다.

복잡한 생각을 잠시 내려놓자 산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도 되새겨 보고

보노보노와 친구들이 살고 있는 숲속을 보니 숲속 길을 산책하고 바닷가를 거닐며 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진다.

 

 

보노보노와 친구들의 일상은 정말 사소하고 소소한 물음에서 시작한다.

꿈이 왜 이상해? 혼자 있으면 왜 우울해 보일까? 감기는 어떻게 나을까?

살찌는 게 왜 싫을까? 요리하면 왜 더 맛있을까? 취미는 뭘까? 등 숲속 안에서 그들은 많은 궁금증과 고민을 해결해 나간다.

어떻게 보면 허투루 보내는 날이 없다.

덕분에 바쁘게 후다닥 흘려보내는 나날들을 잠시 스톱시키고 지난 시간에 의미를 더해보기도 했다.

뭐든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찰떡같은 교훈 아래 긍정적 기운이 곳곳에 스며있다.

그래서 친구들과 옥신각신하는 장면들이 더 즐겁고 사랑스럽게 보인다.

어쩌면 심각하게 여기는 일들이 그리 심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여유도 생겨난다.

 

 

 

보노보노는 태평해 보이지만 걷기를 좋아하고 생각하기를 즐긴다.

보노보노처럼 조금 태평하고 싶단 생각을 하다 천하태평인 큰놈 때문에 웃고 말았다.

걷기가 좋은 이유는 걷는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며 시작한 단순한 논리에서

친구들이 좋아하는 것은 무엇인지 찾아다니기도 한다.

또 재밌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에서 시작해 시시한 이야기로 옮아가더니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는 건 풍경을 보면서 걷는 것과 비슷하다는 결론에 이른다.

뭐 이런 이야기에 논리란 없다. 친구들은 서로의 의견을 덧붙이며 괜찮은 결론을 이끌어낸다.

그 결론들이 제법 그럴싸해서 여기저기 남발하고 싶어질 정도다.

 

포로리는 삼촌이 무서워 삼촌네 가는 걸 무척 스트레스받아한다. 그래서 가기도 전에 내내 걱정하고 우울해한다.

그때 너부리가 모레일을 오늘 생각해서 뭐하냐며 툭 내뱉는 말에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며

오늘의 기분마저도 망치고 있었던 일들이 떠올라 피식 웃고 말았다.

때론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마냥 즐길 수는 없겠지만 조금만 걱정을 내려놓으면 어느새 지난 일이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기며 살아야겠다.

 

 

 

어른이 되면 될수록 자는 게 즐거워진다는 게 정말일까?라는 보노보노의 질문에 맞아!라고 대답했다.

평소 별의별 꿈을 많이 꾸는 편이라 꿈속이 즐거운 일인이기에.

그래서 꿈이란 건 이상해라고 고민하는 친구들의 모습이 귀여운 아이들 같다.

꿈과 현실의 차이점을 예로 들며 몸소 보여주는 모습에 빵빵 터졌다.

그러다 너부리는 또 명언을 남긴다.

꿈이 너무 시시하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이 안되기에 꿈이 이상한 것이라는 결론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살찌는 게 왜 싫을까에 대한 이유를 고민하며 직접 살을 찌운 보노보노와 너부리의 모습도 너무 웃겼다.

좋은 점도 있을까 싶어 몸소 실천해보지만 살찐 녀석이라는 말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녀 싫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른다.

얘들아, 나도 살찐 내가 불편하고 싫어 늘 다이어트를 결심한단다.ㅎ

 

 

 

보노보노와 친구들을 만나고 좀 더 맑아진 기분이다.

너부리가 심심하면 어딘가를 향해 걸으라고 건넨 말이 마지막에 와서 꽂힌다.

그래서 요즘 내가 심심할 틈이 없나 보다.ㅎ

사는 게 팍팍하고 지친다면 보노보노와 쉬어가길.

아마 한두 문장에 조금은 다른 결심이 설 수도 있다. 분명 그것은 더 나은 순간을 만들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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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 제국의 몰락 - 엘리트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집대성한 엘리트 신화의 탄생과 종말
미하엘 하르트만 지음, 이덕임 옮김 / 북라이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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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회 현상에 전문적 지식이나 통찰력은 없다. 그렇지만 우리 사회와 세계정세의 흐름 정도는 기사를 통해 인지하고 있다. 대중들의 눈과 귀는 늘 열려 있어야 하고 사회 질서를 바로잡는데 기여를 해야 한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각종 이슈들 중 대중을 분노케 하고 허탈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사회 기득권층 소위 엘리트라고 일컫는 자들의 각종 비리와 갑질뿐 아니라 법망을 피해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불합리에 많은 이들이 분노를 넘어 허탈해한다. 그들에겐 돈이 전부인 것일까. 대중을 무시하며 그들만의 세상을 고집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이 책의 저자 미하엘 하르트만은 독일 사회학자로 엘리트 연구 권위자로 알려져 있다. 주로 개인의 출신 성분이 능력이나 노력보다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된다고 주장해오고 있으며 신자유주의의 혜택을 누리고 있는 엘리트들을 경계하고 제재가 필요함을 말하고 있다.

 

이미 자유주의 국가에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계층의 간극은 심한 격차를 드러내고 있으며 상류 지식인들과 대중과의 소통의 부재도 심각하다. 이 책에서 다뤄지고 있는 엘리트 계층의 형성 배경과 성장과정 그리고 그들만의 세상에서 벌어지는 규칙에 대해 통계와 수치를 드러내지 않아도 수리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사실들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편가르기는 점점 세분화되고 있다. 그래서 엘리트라는 사전적 의미도 변하고 있다. 굳이 사전을 뒤지지 않아도 엘리트라고 하면 지성을 겸비하여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쯤으로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요즘 사회에서 엘리트 집단의 정의가 변질되어 부정적 이미지를 낳고 있다. 가진 자들은 그들만의 혜택을 누리며 자본주의 사회 상위를 차지하고 나라에 막대한 영향력을 과시한다. 그들이 만든 신자유주의 안에서 말이다.

 

부가 부를 낳는 세상, 출발점에서 기인하는 소득과 부의 양극화는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그들은 오만함으로 자신들의 세계를 고립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그들이 저지르는 각종 비리에 대중들의 시선은 이미 싸늘하다.

초기 엘리트들의 성장과정과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모되어 가는지 독일, 영국, 미국, 프랑스 4개국의 데이터를 보면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나마 독일이 흐름이 늦은 듯 하나 결국은 비슷한 흐름을 타고 있다. 즉 가진 자들이 상위계층을 포진하며 자유주의를 쥐락펴락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게다가 엘리트들이 사회를 바라보고 있는 시각도 문제다. 이미 그들은 출신성분으로 선을 긋고 부와 권력을 세습한다. 심지어 사회 격차는 필연적이며 그들은 대중의 생활 따윈 관심조차 없다. 심지어 가난의 이유가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라는 태도도 서슴지 않는다. 결국 그들의 폐쇄성이 사회의 불평등에 따른 혐오를 조장할 수 있고 정치적으로도 부정적인 영향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런 연유에서 기인한 대중의 분노는 엘리트들의 독주를 막는 유일한 길이다. 소수의 엘리트들에게 몰린 정책의 방향이 서서히 대중을 향해 돌아서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시대를 향한 불평등에 분노의 힘이 작용하고 있으며 더 이상 대중은 무지하지도 무능하지도 않음을 드러낸다. 자유주의에서 누려야 할 권리를 되찾아 한목소리로 흐름을 바꾸려 애쓰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흐름에 정치 엘리트들이 나서면 더 나은 개혁이 가능할까. 저자는 미래 정치의 네 가지 모델을 제시하며 가능성을 보여주려 한다. 과연 그가 제시하는 정치가 엘리트 제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까. 부패권력의 민낯이 드러나고 빈부의 양극화가 나아질 수 있을까.

 

개인의 출신 성분이 능력이나 노력보다 성공에 절대적 영향을 미쳐서는 안된다는 착한 명제가 드라마나 영화에서만 통할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적인 흐름으로 이어진다면 참 살만할 것 같다. 내 아이들이 제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진정한 사회의 엘리트로 거듭날 수 있는 세상 말이다.

 

그러나 인간이 돈 앞에서 어디까지 타락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건들이 연일 터지고 있다. 역겨운 분노가 치밀고 선의의 피해자가 묻혀가는 모습도 너무나 안타깝다. 그들만의 제국이 과연 무너질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사회 정의를 위해서라도 정화가 반드시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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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너는 노땡큐 - 세상에 대들 용기 없는 사람이 뒤돌아 날리는 메롱
이윤용 지음 / 수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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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멀라이프라는 건 물건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다. 살아가면서 필요한 물건들이 늘어나듯 주위 인간관계의 폭도 자연스럽게 확장된다. 불필요한 물건들이 늘어나면 그만큼 어수선하고 피곤해지듯 인간관계도 마찬가지다. 게다가 그런 관계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우리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에 시달리게 된다.

 

실컷 두들겨맞고 반창고를 붙여도 쉬이 낫지 않는 게 감정인데 관계에 있어 기준이란 늘 모호하고 예측 불가능한 인생은 늘 시행착오를 동반한다. 하지만 감정도 미니멀리즘이 필요하다. 불필요한 관계는 불필요한 상황들을 불러오고 불필요한 감정으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이미 그러한 경험이 있는 이들이라면 이제는 대청소를 할 때다. 버릴 것과 보관할 것을 잘 정리해야 한다.

 

이 책은 라디오 작가의 다양한 경험담에 근거하여 감정과 상황 정리하는 노하우를 공개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읽다 보니 대부분이 나의 경험담인듯하고 가까운 이들의 사연 같다. 읽다 보면 그때 저렇게 할 걸 하는 순간부터 나도 바보같이 저랬었지라는 순간뿐 아니라 나도 다른 이에게 저렇게 행동한 적은 없었나를 돌아보게 된다.

 

살아보지도, 겪어보지도 않은 일에 유연하게 대처하기란 어렵다. 그렇다고 뜨거운 물에 일부로 손을 넣어서 데여볼 필요까진 없겠지만 사람과의 관계에서 내가 덜 상처받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특히 타인을 유독 신경 쓰거나 배려가 많은 타입이 대인관계를 힘들어한다. 당시의 껄끄러움을 피하고자 참는 일이 일상이 되면 결국 남는 건 마음의 상처다.

 

 

 

 

[위로, 그 쉬운 말 한마디]편을 읽다 보니 얼마 전에 나도 이런 감정을 느낀 적이 있었다. 남편이 저녁 운동을 나갔다 들어오면서 커피 한 잔을 건넸다. 별생각 없이 입으로 가져가다 커피 뚜껑에 쓰인 문장에 울컥하고 만 것이다. 그날따라 몸이 천근만근이었는데 '오늘 하루도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위로는 천 원짜리 테이크아웃의 가치를 몇 배의 감동으로 전해주고 있었다.

 

자나 깨나 사람 조심에 꺼진 관계도 다시 살펴야 하지만 이제는 다치기 전에 미리 끌줄도 알아야 하고 관계에 있어 무던함도 배워야 한다. 누군가 나를 시험하려 들 때 내 주관대로 답을 내놓아야 다시 시험대에 오르지 않을 수 있다. 정말 땡큐 하지 않은 인간과 상황을 과감히 쓰레기통에 버림으로써 마음을 정리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읽다가 [구남친은 친구가 될 수 있을까]편에서 '미친놈 4종 세트'(자니? / 잘 지내지? / 그냥 갑자기 생각나서 / 보고 싶다)를 보며 혼자 낄낄거리고 있으니 그런 내 모습을 보며 초등 딸내미가 슬그머니 끼어들었다. 같이 빵 터지다 이런 놈은 절대 상종하지 말 것을 일러두기도 했다.

 

결국 삶을 유연하게 사는 방법은 감정 소모에 지나치게 애쓰지 않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에 무게감을 덜어내고 타인을 향한 시선에도 편견을 버려야 하며 다른 이의 기준에 나를 줄 세우지 말고 나를 더 신뢰하고 믿어야 한다. 타고난 나의 기질을 계속 탓하는 것보다 그냥 다독이고, 당장의 손해를 훗날의 이득으로 생각하며, 순간의 난관을 낙담으로 극복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대이다.

 

남의 떡이 커 봤자 살찌기만 더 하겠는가. 그러므로 떡의 크기를 비교할 것이 아니라 떡의 맛이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맛의 기준도 주관적이라 결국 내 주관의 기준점을 잘 세워야 한다. 나무도 가치기를 해 주어야 더 잘 자라듯 관계도 적당한 가지치기가 필요하다. 노년에 이르러 정작 내 주변에 남게 될 인간관계에 더 마음을 써야 하지 않을까.

 

[나이 탓일까] 편에서 나이 들었다며 탓하는 순간을 돌아보면 들기 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바가 없으니 원래 그런 사람임을 인정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나이들면서 는 것이라면 욕뿐이라는 농담에 공감했는데 거기에 하나 더 추가하자면 철판도 두꺼워지는 것 같다. 이왕 두꺼워지는 거 정말 '너나 잘 하세요'라는 소리를 목구멍에 걸어두지 않고 과감히 내뱉은 뒤 심장 벌렁거리지 않을 수 있는 강단이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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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버스토리
리처드 파워스 지음, 김지원 옮김 / 은행나무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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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든 나무가 어디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니? - p.167

 

 

난 길을 걸을 때 주로 시선을 나무에 둔다. 집을 나서면 제일 먼저 마주하는 전나무, 아파트 진입로의 단풍나무, 자주 가던 카페 앞의 벚나무, 건물 높이만큼 기다란 메타세콰이어. 그리고 우리 집 베란다 해피트리와 컬러 벤저민 등.

이처럼 사계절을 지나는 나무들의 변화를 지켜본 이라면 나무가 주는 위안의 고마움을 잘 알 것이다.

 

최근 나무와 숲이 그리워 산이나 식물원을 자주 찾고 나무에 관련된 책도 즐긴다. 예전에 읽은 [나무의 언어]와 [숨은 골짜기의 단풍나무 한 그루]도 정말 재미있게 보았었지만 이 책은 내가 읽은 책 중에 단연코 최고라고 말할 수 있겠다. 많은 이야기 중 자연이 주가 되는 소재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깨닫는 바가 많다. 늘 주위에 있어서 무신경했던 나무와 풀들이 그들만의 언어로 소통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면 공기 한 줌의 소중함까지도 떠올리게 된다. 더불어 지금처럼 신선해야 할 공기가 미세먼지로 가득 찬 것에 미안한 마음도 가져야 한다.

 

나무들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닿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에는 너무 낮은 주파수로 말을 한다. - p.597

 

‘오버스토리’의 사전적 의미는 숲 상층부의 전체적인 생김새를 뜻하는 단어이다. 작가는 거대한 삼나무를 보며 영감을 떠올렸으며 '아무도 숲과 나무를 보지 않는 시대'에 경종을 울리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이전에 본 책들도 모두 그런 메시지를 담고 있긴 하나 인간이 직접적으로 숲을 살리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은 아니었기에 이 책은 현실적으로 더 와닿았다. 그러면서도 책에서 어떤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을 가져보았으나 많은 이들이 이 책을 보며 자연의 소중함을 깨달아 가는 것만이 희망이 아닐까 한다.

 

이야기는 뿌리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뿌리라는 타이틀 속에 등장하는 아홉 남녀의 이야기를 읽을 때만 해도 이야기의 유기성을 연관 짓지 못했다. 그러나 나이테가 늘어나듯 그들의 이야기는 거대해지고 치밀해진다. 가족의 역사를 품은 수백 장의 나무 사진을 지닌 남자와 태어남과 동시에 자신의 나무를 가졌던 남자, 그리고 운명의 나무 반지를 지니게 된 여자도 있다. 나무들의 삶에 자신의 생을 바친 여인도 있으며 나무의 삶과 자신의 삶을 바꾼 여자도 있다. 또한 애초에 나무 따윈 관심 없던 남녀와 인간 외에 모든 생명을 사랑한 남자도 있다. 그리고 나무로 인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거나 삶의 방향이 바뀐 이들도 있다. 이처럼 각자의 삶 속에 나름의 이유로 존재하는 나무였으나 그들은 하나둘 이어지며 또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간다. 게다가 1200년 된 왕유의 시가 누군가에겐 절망으로 또 다른 누군가에겐 위안이 되는 이중적인 순간도 이해가 된다.

 

나무의 가치를 알던 시절, 그들은 밤나무가 내어준 밤의 향기에도 취해 청혼도 하고 나무를 기점으로 가족을 이룬다. 호엘가에 밤나무가 두꺼워지는 동안 가족의 삶은 필름처럼 돌아간다. 산자와 죽은 자에게 똑같이 관대한 그늘을 내어주던 밤나무. 그들은 밤나무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그 작업은 대를 이어 진행되고 엄청난 양의 사진이 남는다. 비록 프레임안은 밤나무만 덩그러니 차지하고 있지만 그곳에는 호엘가의 세월이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한 대가 지나고 또 다른 대가 이어지는 동안 그들을 기억하게 해 준 밤나무. 더 이상의 농장은 없지만 세월의 변화를 느끼고 있자니 울컥함이 밀려온다. 잘 익은 군밤 하나 입에 넣으며 위안을 얻고 싶어졌다.

 

나무에 관한 전설은 미신이 되고 곧 믿음이 되어 운명과 함께하기도 한다. 중국 이민자의 딸 미미는 아버지가 소중히 여긴 나무 반지와 두루마리를 물려받는다. 그녀의 아버지 삶에 운명과도 같았던 뽕나무와 그녀의 손가락에 운명처럼 끼워진 반지. 그런 과거를 지닌 그녀에게 어느 날 시청 앞 광장이 휑해진 모습에 분노를 느끼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더글러스를 만난다.

 

교도소 실험에 참가했다가 도중에 나와 자원입대하여 전쟁터로 간 더글러스는 비행기 폭격으로 가까스로 나무에 걸려 목숨을 건지게 된다. 그의 생명을 구한 나무가 마구잡이로 벌목되는 현장을 목격하고는 분노한다. 세상을 눈을 피해 조용히 벌목이 진행되고 있는 모습에 가증스러움을 느낀다. 국유림의 목적은 싸게 잘라내는 거예요. 그걸 산 사람을 위해서. - p.127

세상의 잘못된 계산 앞에 할 수 있는 거라곤 심는 것뿐이다. 심고 또 심고 그리고 주문을 건다. 끝까지 살아남으라고. 그리고 시청 앞 광장에서 만난 미미와 뜻을 같이 하기로 한다.

 

엉망인 삶을 살다 감전사후 다시 살아난 올리비아는 그 뒤 숲의 소리를 듣게 된다. 그렇게 소리를 따라 도착한 곳에서 호엘가의 닉을 만나게 되고 파수꾼과 메이든헤어라는 별칭으로 평화 시위대에 합류하게 된다. 그러다 미마스를 지키기 위해 나무 위에서 시위를 이어가지만 공권력과 거대 자본가들 앞에서 무너지고 만다. 그들의 분노가 좋은 시너지를 만들었으나 결국 충돌로 희생과 좌절만 남게 된다.

 

오래된 나무들은 우리의 부모이고, 어쩌면 우리의 부모의 부모일 것이다.

자연의 비밀을 배우려 한다면 더 많은 인류애를 키워야 할 것이다. ······ p.15

 

작가의 생각과 신념을 가장 많이 드러내고 있는 인물이라면 패티가 아닐까 한다. 어린 시절 청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났지만 그녀는 인간의 소리보다 나무 세상을 이해하는 촉이 더 발달한다.

확실한 사실이라는 것은 없다.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겸손함과 관찰뿐이다. - p.167

자연을 이해하는 데 있어 정확한 데이터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그녀는 끊임없는 관찰의 결과로 나무들이 사회적 생물이라는 데 확신감을 갖지만 그녀의 의견은 학계로부터 비난과 무시를 당한다. 그러나 과거의 일들이 미래에 더 명확해지듯 시간이 지나 서서히 그녀의 이론이 인정받는 과정을 보여주면서 우리의 좁은 식견을 비판하고 있다. 더불어 미국의 잘못된 산림산업과 무분별한 목재산업에 경종을 울린다. 무엇보다 인간이 자연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지식을 바로잡으며 생태계의 흐름을 이해시킨다. 죽은 나무도, 늙은 나무도 각자 존재의 이유가 있으며 생명체에서 불필요한 요소 따위는 없음을 강조한다. 인간과 나무와의 관계에서 인간은 절대 상위계층이 아니다. 상호보완하는 관계임을 깨달아 지구 생태계를 보존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더 이상 멋지고 환상적인 오버스토리를 보지 못할 뿐 아니라 인류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될지도 모른다.

 

 

 

그들의 삶을 따라가면 밤나무, 뽕나무, 단풍나무, 참나무, 린덴 나무, 무화과나무, 반얀나무, 전나무, 삼나무, 사시나무...... 등의 이름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식물원에서 놓친듯한 나무들을 찾아보느라 잠시 지체하기도 했다.

 

반얀나무는 태양을 공유하려고 싸우는 백여 개의 서로 분리된 몸통들 때문에 숲 전체처럼 풍성하다. - p.139

 

반얀나무의 묘사를 보며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보면 괴기스럽고 어떻게 보면 신비스러운 그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인도에서 꽤 신성시되고 있는 나무로 많은 이들이 소원을 빌기도 한다는데 맹골 보리수 나무 또는 아바타 나무라고도 한단다. 국내에서 볼 수 없지만 식물원에서라도 볼 수 있어서 반가울 따름이다. 또한 자연을 묘사한 멋진 문장들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

 

나무가 햇살을 조각조각 부순다. 신의 손가락. 그녀와 동생들은 그 비스듬히 들어오는 햇살을 그렇게 부르곤 했다.

...

언덕은 건강함의 바늘꽂이처럼 보인다. - p.338

 

인류는 지구가 주는 혜택을 누리고 살고 있지만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지 않다. 어떤 이는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전혀 관심을 두지 않으며 또 다른 이들은 환경에 대해 무지함을 드러낸다. 나무의 성장 기간뿐 아니라 나무들이 숲을 이루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필요한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환경운동가들을 급진적이라고 몰아붙이며 비난하기도 한다. 어쩌면 이러한 싸움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나지 않기에 우리는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다.

 

지구는 이미 많은 생명체를 잃었고 죽어가고 있다. 환경학자들 중 몇몇은 이미 지구가 회생 불가능의 단계에 이르렀다고 고백한 기사를 본적도 있다. 그렇기에 하루빨리 나무의 세계에 발을 들여 나무를 이해하고 숲은 지켜나가야 한다.

 

네 마음이 조금만 푸르렀어도 우리가 너를 의미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 텐데.- p.14

 

 

겨울은 나무의 영혼을 보는 계절이라고 한다. 겨울나무를 보며 이 말을 전하니 남편은 영혼이 아닌 알몸을 보는 계절이 맞는다며 우긴다. 겨우내 내린 눈이 땅속 양분이 되고 겨울을 이겨낸 나무는 그만큼 더 단단하고 강해진다고 한다. 그 단단함을 뚫고 새잎들이 반짝이며 돋아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R로 시작하는 여섯 글자. 위로가 되는 싹의 귀환. 새잎 (releaf) - p.527

 

문득 어피치가의 모습을 보니 이런 생각이 든다. 아이들의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게 한다면 어떨까. 나무의 소중함을 느끼는 이들의 수가 9명에서 90명으로 90명에서 900명으로 점점 더 늘어나지 않을까.

마지막으로 패티가 나무에게 드러난 고마움을 나도 대신 속삭여본다.

 

우리가 미안해. 우린 네가 다시 자라는 게 얼마나 힘든지 몰랐어. -p.1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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