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로틱 세계사 - 교양으로 읽는 1만 년 성의 역사
난젠 & 피카드 지음, 남기철 옮김 / 오브제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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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장기 때를 돌아보니 나도 성(性)에 대해 참으로 무지한 채 성장했다. 그것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는 것 자체가 불순한 일처럼 여겨졌었고 섹스라는 행위에 대해서도 잘 몰랐었다. 오죽하면 대학교 때 포르노라는 단어를 처음 들었는데 그런 나를 신기한 눈으로 바라보던 선배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처럼 폐쇄적인 성문화를 가진 세대를 지나왔으니 여전히 섹스에 대해 잘 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오래전 인류의 성문화에 어떤 희한한 스토리들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지금과는 얼마나 달랐을까.

 

수메르인들은 분명 관음증 증세가 심했다.- p.4

지금은 몰카라는 심각한 범죄로 인해 관음증 하면 부정적 느낌이 더 많지만 오래전 여성의 신체는 행운을 부르기도 했으며 여성에게 섹스를 더 권하던 시대도 있었다. 그만큼 성문화는 지금보다 훨씬 자연스러웠고 오픈되어 있었다. 그들이 부끄러움이 없어서도 아니고 수치심을 느끼지 않아서도 아니었다. 단지 섹스가 일상이었을 뿐이었다. 세기를 거쳐 오는 동안 섹스는 종교와 도덕적 규범에 제약을 받긴 했지만 섹스에 대한 욕망과 호기심은 끊임없이 이어져오고 있다. 근친상간이나 동성애도 크게 문제 되지 않던 시절도 있었다. 그것은 단지 종족보존을 위해서나 군대를 강화하기 위해서 와 같은 이유 때문이기도 했고 로마처럼 온갖 섹스의 형태를 허용한 나라도 있었다.

 

 

 

 

이 책은 지난 수 세기 동안의 성문화를 다루고 있다. 독자의 연령대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낯 뜨거울 수도 있으며 나 같은 독자에게는 역사 속 이야기이자 서프라이즈에 나올법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도 있다. 저자도 서두에 언급하고 있듯이 분명 빠져 있는 이야기들이 더 많아 보인다. 100개의 챕터를 통해 그 시대의 성문화를 온전히 다 이해할 수 없다. 또한 중세 시대 정조대가 실은 모조품이었다는 사실처럼 사료를 곧이곧대로 해석하면 안 된다는 점도 시사하고 있다.

성은 그 자체의 에로티시즘 문화라기보다는 주로 억압되고 착취되어온 역사가 더 많을 것이다.

 

인류와 함께 시작된 섹스가 어떠한 의미를 지니며 변화해 왔는지 신석기 시대부터 중세를 거쳐 전쟁과 냉전시대를 지나 미국 대통령 스캔들까지 다양한 자료를 바탕으로 서술하고 있다. 여성의 신체를 바라보는 관점, 동성애, 그룹섹스, 최초의 최음제, 최초의 포르노 서적, 오르가즘, 발기부전, 섹스 용품, 음담패설 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많았다.

 

 

 

오래전의 성문화는 지금보다는 훨씬 자연스럽고 개방적이었으나 모든 이들에게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동성애에 있어 개방적이었던 켈트족이 다른 종족들에게 야만스럽다는 소리를 들은 이유는 신분을 막론하고 무분별하게 이루어졌기 때문이었으며 중국도 동성애가 흔했으나 유럽인들과 교류를 하면서 차츰 혐오증이 퍼져나갔다고 한다. 그만큼 인간의 생각은 수시로 다른 이들의 영향을 받으며 변해갔음을 보여준다.

 

로마는 풍요로웠던 만큼 성문화도 자유로웠다. 예전에 본 다큐에서 로마 곳곳에 남근 형상의 구조물이 많음을 언급한 적이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한 해석이 희미하던 차 책에서 재차 확인할 수 있었다. 남성의 성적 능력을 중시하고 긍정적 의미로 해석했던 반면 그만큼 남성들은 발기불능에 대한 두려움이 컷을 것이다. 각종 발기부전에 대한 민간요법도 많지 않았을까. 반대로 여성이 오르가즘을 위해 클리토리스 수술을 하다 잘못되어 영원히 느끼지 못하게 된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인도의 카스트제도하면 엄격하고 불합리한 제도로 여겨지는데 반해 성에 대해선 관대한 태도를 보였다고 한 점은 의외였다. 섹스 교본 안에 무려 729개의 다양한 기술이 소개하고 있다는 점이 놀라울 따름이다. 과연 누구를 위한 교본이었을까. 1712년에 쓰인 오나니아라는 책은 최초의 마스터베이션 책으로 책이 쓰인 동기는 건강에 해롭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쓰였다고는 하나 결국 잘못된 사실을 오래도록 방치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은 오래전부터 존재했다. 비록 억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의 사연도 있지만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의 동성애 처형에도 불구하고 프리드리히 2세는 끝까지 동성애를 즐긴 인물이기도 하다. 섹스가 인생의 전부인 이들도 있다. 무려 132명과 인생을 즐긴 카사노바의 화려한 경력에 입이 벌어졌는데 걔 중에 수녀도 있었다는 사실이 더 놀라웠다. 그러나 그런 카사노바도 페미니스트였다고 말하고 있는데 과연 여성을 존중했을까.

남성이 아닌 여성의 남성편력도 소개되고 있는데 예카테리나 2세의 바람기에 박수를 보내고 싶었다. 60세가 넘은 나이에 22살 남자라니....

 

인류도 종족 번식의 기본욕구 외에 피임법에 대한 고심도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천연고무 발명에 헌신한 찰스 굿이어 덕분에 콘돔이 대량화가 이루어졌다는 점, 여러 섹스 용품의 등장뿐 아니라 마담 보바리의 탄생 비화에 대한 이야기도 소개하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 섹스는 권력을 뒤흔들 만큼 도덕성을 중요시하게 된다. 클린턴 성 추문뿐 아니라 권력을 이용해 성을 쥐락펴락하는 추한 인간들은 그 대가를 제대로 받아야 하지 않을까.

 

섹스는 어느 시대건 재생산을 목적으로 남녀가 성기를 결합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일상생활, 자신의 이미지, 그리고 도덕성과는 상관없이 섹스를 하고 싶었을 것이다. -p.6

 

[그레이의 그림자]가 출간되기 전인 26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섹스에 대한 환상과 욕망은 끝이 없나 보다. 섹스는 분명 종족보존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건전한 섹스는 건강한 신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말에도 충분히 동의한다. 옳고 그름의 잣대는 성문화도 인간존중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이다. 상대를 존중하는 섹스야말로 진정한 에로티즘이 아닐까. 그레이의 그림자를 아직 보지 못했는데 한번 찾아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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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나 3월 1일 - 열두 살 일구의 독립운동 리틀씨앤톡 모두의 동화 8
장경선 지음, 신민재 그림 / 리틀씨앤톡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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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야기는 1919년 3.1 만세운동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사실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대적 배경을 잘 모르는 친구들에게 그 당시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 또 어떤 사건들이 일어났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일본은 청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후 본격적으로 조선을 간섭하고 것도 모자라 강제 조약을 맺어 주권을 빼앗는다. 그리고 고종을 독살하기에 이른다.

 

 

 

 

이 모든 일들이 열두 살 일구가 살던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것들이었다. 일구는 일본 놈들의 핍박과 괴롭힘이 어떤 것인지 직접 보고 당하기도 한다. 그날도 어처구니없게 야마모토 녀석의 분출이 감이 되어 무릎을 다치게 된다. 분한 마음을 꾹꾹 눌러야 하는 일구의 안타까운 마음에 같이 분노가 끊는다. 그러나 때마침 길을 지나던 미국인 앨버트의 도움을 받고 병원을 가게 되고 그곳에서 일구는 태왕 전하의 죽음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된다. 앨버트는 미국인이지만 조선인들의 고통을 알았고 그러한 사실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다. 그래서 일구의 아버지처럼 독립을 위해 애쓰는 사람들을 돕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마을에는 말뚝이탈을 쓰고 나쁜 짓을 일삼는 일본 순사를 혼내주던 영웅이 있었다. 일구는 어느 새벽 말뚝이탈을 만나게 되고 아버지에 대한 사연을 듣게 된다. 일구는 늘 아버지를 원망했다. 의병활동을 하다 일본군의 총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애국심보다 가족을 두고 그렇게 떠나버린 서운함이 더 컸기 때문이다.

 

일구, 넌 아버지에게 이 세상 전부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이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버릴 수 있었단다. -p.53

 

'왜놈 하면 죽인다고 나라가 바뀌겠어? 그러니 가족들과 멀리 가서 살아야지.' 아니야, '조선의 독립을 위한 일이라면 이 한 목숨 바쳐도 아깝지 않아.'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도 이리 고민했을 게다. - p.54

 

그렇게 일구는 아버지가 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하게 된다. 일본 경찰이 말뚝이탈을 색출하기 위해 터무니없는 구실을 대고 마구잡이로 조선인을 잡아들이고 죽이는 광경을 보자 애국심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 어느새 일구도 독립운동가들에게 힘을 보태게 된다. 독립선언서가 낭독되고 만세운동이 벌어졌던 그때 일구가 어떤 식으로 애국심을 발휘했는지 보면서 우리 민족이 저항 과정에서 많은 희생이 따랐음을 다시 확인하자 분노와 슬픔이 또다시 밀려왔다.

 

일본 놈들이 독립운동가를 색출해내기 위해 학교까지 찾아가 아이들에게 글을 쓰게 하게 되는데 일구가 말뚝이탈의 정체를 모두 써버리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했다. 그래도 열두 살이면 아직 어린아이인데 솔직하게 다 쓰는 건 아닐까 했지만 일구의 작문을 보고 그 영특한 잔머리에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구나 싶었다. 일구는 어렸기에 앨버트처럼 돈을 많이 버는 것만이 잘 사는 길이라 여겼지만 우선은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일이 더 중요한 일임을 깨닫는다. 역사를 잃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사실을 어렴풋이 알았기에.

 

 

 

거짓은 참을 이길 만큼 힘이 아주 세다. 조선 백성의 눈과 귀를 멀게 만들어버릴 정도로 힘이 세다. -p.73

 

일본이 거짓으로 조선인을 조종하고 지배하려고 갖은 만행을 일삼았으나 조선인들은 하나둘 모여 진실을 알리는데 목숨을 내건다. 게다가 앨버트처럼 인류의 평화를 중요시하고 약한 자들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았던 타국인들도 있었기에 독립의 문을 더 빨리 열릴 수 있었다.

 

마지막 장엔 3.1 독립선언서 원문을 알기 쉽게 써놓았다. 나도 처음 제대로 접해 보았다. 한자 한자 독립의 염원을 담은 글귀를 보며 가슴이 뭉클해졌다. 책을 읽으며 일제강점기 시대에 우리 민족이 얼마나 핍박을 받으며 비참하게 버텨왔는지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민족대표가 왜 탑골공원에서 선언서를 낭독하지 못하였는지에 대한 이유를 보며 일구가 민족대표를 향해 가졌던 마음에 대해 아이들과 이야기해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 될 것 같았다.

 

3.1운동 100주년이 지나서일까. 후손들에게만은 독립된 나라를 물려주고자 한 그들의 노력에 가슴이 먹먹해진다. 민족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기꺼이 바친 민족 열사들의 헌신이 아니었다면 지금의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역사를 제대로 알아야 이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가져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마치 달과 같은 인생을 선택했던 독립운동가들의 희생에 마음이 숙연해졌다.

저 달도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닌 것처럼 말이다.-p.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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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뿍이의 종이구관 2 - 나만의 소중한 커플 종이인형, 종이구체관절인형 예뿍이의 종이구관 2
예뿍 지음 / 우철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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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좋고 예쁜 인형들이 있어도 종이 인형은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

 오리는 재미도 있고 저렴한 비용으로 다양한 옷을 입혀보며 친구들과 역할놀이를 실컷 해 볼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시중에 판매하고 있는 종이 인형도 접해 보았고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를 출력도 해 보았다.

 게다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아이는 직접 그려서 오린 후 손 코팅을 해서 만들기도 했었다.

 주로 유튜브 동영상을 참고하여 모델을 그리고 여러 가지 옷과 소품들을 만들었었는데

이 책을 보고서는 좋아할 것 같았다.

 

딸아이에게 책을 보이자마자 예뿍이 언니를 안다며 반가워했다.

 내게 유튜브 동영상을 보여주며 그림이 예뻐서 따라 그리기도 했다고 한다.

 하던 일을 제쳐두고 빨리 만들어보겠다며 앉았다.

 

 

 

 

예뿍이 종이 구관은 커플 종이 구체 관절 외에

 옷, 가발, 신발, 보관 지갑, 배경 등 다수의 그림이 수록되어 있어

 다양한 놀이를 즐길 수 있다.

만드는 방법과 입히는 방법 외에 보관 지갑 만드는 법이 소개되어 있는데 손 코팅하는 법도 있었다.

 딸아이가 동영상을 보며 제대로 활용한 것 같았다.

 

캐릭터의 이름과 간단한 소개가 있는 점이 독특했다.

 이미 커플이 누구누구인지 다 알고 있는 걸 보니 열심히 보았었나 보다.~~^^

 

종이가 제법 두꺼워서 종이 인형이지만 오래가지고 놀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손 코팅이 더 안전하긴 하다.

 종이가 두꺼우므로 책에서 뜯어낼 때는 부모님이 도와주어야 실수하지 않겠다.

 책 한 장씩 뜯어낼 수 있게 표시가 되어 있었으면 편리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나 중간 부분을 오려낼 때 망칠 수도 있으니 신중하게 오려내야겠다.

 

 

 

 

두어 시간을 꼼짝 않고 앉아 있더니 제법 오리고 붙여놓았다.

 여러 가지 옷을 입혀보며 너무 예쁘다고 혼자 싱글벙글이다.

 배경 판위에 올려놓으며 포토 콘셉트를 잡아주기도 하고 또 혼자서 짤막 애니메이션 컷도 찍어 보았다.

 덕분에 어릴 적 종이 인형 놀이가 떠올라 향수에 젖어보기도 하고

아이와 역할놀이를 하며 실컷 웃을 수 있어 즐거웠다.

 

다양한 콘셉트와 예쁜 디자인이 만족스럽고 보관 지갑을 만들어 사이즈에 맞게 챙겨 둘 수 있어 편리했다.

 2권과 1권이 호환이 된다고 하니 1권도 같이 활용해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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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시공주니어 문고 2단계 88
박혜선 지음, 이윤희 그림 / 시공주니어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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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착한 아이로 살지 않겠다고 결심한 아이가 있다. 늘 칭찬을 받아 더블 칭찬이라는 별명을 지닌 친구가 왜 그런 엉뚱한 결심을 하게 된 것일까. 청개구리가 되려고 작정한 사연은 과연 무엇일까.

 

 

모범생, 안 하고 싶습니다!

 

 

 

 

어른들에게 걱정 한번 끼치지 않고 뭐든 척척 알아서 잘 하던 종현이는 요즘 마음이 무겁다. 워킹맘으로 분주하게 살던 엄마가 실직을 한 뒤 우울증이 온 것이다. 어린 종현에게 우울증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가늠하긴 어렵지만 집안 분위기를 통해 어느 정도 짐작만 할 뿐이다.

엄마는 내내 무기력하게 누워만 있고 할머니는 그런 엄마 때문에 화를 낸다. 눈치만 보며 어쩔 줄 모르고 있을 때 할머니의 중얼거림에 정신이 번쩍한다.

'할 일 없으니 별 병이 다 걸리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종현이는 엄마의 병을 고치기 위해 엄마를 바쁘게 만들어야겠다고 결심한다. 그래서 자신이 바뀌어야 됨을 확신한다. 알아서 척척하던 종현이가 아닌 사고뭉치 종현이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한 것이다. 그러기 위해 선택한 롤모델이 같은 반 친구인 안하람이다.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

 

 

"하기 싫습니다"도 아니고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를 입에 달고 사는 안하람은 학급 내 사고뭉치다. 어째 반항하는 말투도 나름 예의가 있고 귀엽다. 하람이가 늘 치는 사고라면 준비물을 빼 먹고 다녀 엄마가 매일 학교에 오시다시피한다는 것, 복도에서 뛰어다니는 것도 모자라 신발 던지기 놀이를 해서 선생님 뒤통수를 맞춰버린 것 정도이지만 죽은 지렁이의 장례를 치른다며 교실을 비명소리로 채우거나 선생님께 봄을 드리겠다며 나뭇가지에 젖은 휴지를 던지다 교장선생님을 맞춘 일은 나름 사랑스럽고 귀엽다.

 

이렇듯 다양한 사건 사고의 중심인물이지만 못 되게 굴어 친구를 괴롭히는 일은 없다 보니 친구들도 하람이의 사건사고를 즐기는 눈치다. 그래서 늘 모범생인 종현이는 그런 하람이를 보며 자신도 사고를 치면 선생님이 엄마를 모셔오라고 하지 않을까 하여 하람이와 똑같이 행동하기로 결심한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게 쉽지만은 않다. 왜냐하면 하람이는 생각보다 행동이 더 빠른 아이였고 종현이는 생각이 더 많은 편이기 때문이다. 과연 종현이는 완벽하게 하람이로 탈바꿈할 수 있을까.

 

 

 

딸아이는 책을 본 뒤 종현이가 참 잘 생긴 것 같다고 한다. 똑똑하고 생각 깊은 종현이가 멋있어 보였다나.~~^^


그러나 늘 착한 아이로 지내야 한다는 생각에 억눌려 있다 보면 스트레스로 돌아오게 된다. 종현이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해 타이밍을 놓치고 후회하기도 한다. 또한 도덕적으로 올바르지 않은 행동은 절대 하지 않는다. 그래서 어쩌다 보니 종현이는 하람이의 착한 장난의 배신자가 되기도 한다.

 

선생님을 위해 목련 꽃을 피운 사랑스러운 제자들. 책상 위에 있는 아이들이 나라를 구하고 돌아온 장군이라면, 앉아 있는 난 나라를 팔아먹은 배신자 같았다. -p.51에서 딸아이와 한참을 웃었다.

그래서 오히려 종현이가 하람이가 되어감에 따라 자신의 목소리를 찾아가게 되어 다행스러웠다. 또한 하람이와 지내면서 친구의 단점을 감싸주기도 하고 배려해주는 모습에 마음이 따뜻해졌다.


우울증이라는 무거운 소재를 아이들의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해결 대안을 찾는 과정이 정말 순수해 보인다. 더불어 가족 모두가 극복해나가는 과정을 보며 가족 간의 사랑도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다. 자신의 성격을 갑자기 바꿀 수는 없다. 종현이가 엄마의 우울증을 해결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보며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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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죽어도 등교
송헌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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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아이들에게 학교란 어떤 곳일까.

시대가 많이 변했어도 학교하면 여전히 괴담이 먼저 떠오르고 아침마다 가기 싫은 마음과 내내 싸워야 하는, 곧 죽어도 등교해야만 하는 곳이 아닐까. 그래도 우리의 성장과정의 배경이 되는 공간이니만큼 에피소드는 넘쳐나고 각자의 기억 속에 다양한 형태로 추억이 채워지게 된다.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은 학교라는 하나의 소재로 다양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 [밀실 연애편지 사건]이나 [고딩 연애수사 전선]처럼 깜찍 발랄한 연애 이야기도 있고 [우리]나 [연기]처럼 무섭고 기괴한 이야기도 있으며 [신나는 나라 이야기]나 [신의 사탕]처럼 기이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야기도 있다. [비공개 안건]이나 [11월의 마지막 경기]는 우리 사회가 여전히 떠안고 있는 폭력과 차별에 관해 꼬집고 있어 분노와 슬픔의 무게에 허탈함이 밀려왔다.

 

 

 

왕따, 고백, 괴담, 그리고 다문화 가정과 운동부 폭력까지

학교에 관한 다양한 소재와 이야기를

발칙한 상상력으로 풀어낸 작품들을 모은 단편소설집

- 책소개 중에서 -




이성에 눈을 뜨고 고백을 주고받는 시기가 되면 자신의 문제보다 친구의 연애사에 더 적극적으로 뛰어들게 된다. 그땐 무슨 오지랖이 그리도 많았는지 서로서로 친구들의 연애사까지 챙기느라 분주했던 기억이 떠올라서 웃음이 나기도 했다. 두 이야기 [밀실 연애편지 사건]과 [고딩 연애 수사 전선]은 그 나이 때만의 설렘이 전해진다. 고백 편지의 주인을 찾고, 썸남 상대를 찾기 위해서 추리소설을 능가(?) 하는 추리력을 동원해야 하지만 어느새 풋풋한 십 대들의 연애 감정에 고백하고 고백받는 청춘이 부러워졌다.

 

 

 

 

지금은 한 반의 학생 수가 적어 선생님들이 학생들의 이름을 외우는데 어려움이 덜 하겠지만 우리 때만 해도 콩나물시루 같았던 교실이었으니 아이들은 이름보다 번호로 더 많이 불렸었다. 명찰을 달고 있음에도 이름 대신 번호가 편했던 선생님들 덕(?)에 학교가 더 감옥처럼 느껴졌던 건 아니었을까 하는 탓도 해본다. 여기 [우리]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은 이름 없이 번호로만 등장한다. 그래서 더 기묘하고 무섭다. 수업종이 울렸음에도 선생님이 오지 않는 교실은 여전히 어수선하기만 한데 아이들은 그냥 그런 분위기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다 반장이 나가고 부반장이 나가고 또 다른 아이가 나가지만 이상하게 한번 나간 아이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점점 싸한 분위기를 감지한 아이들은 학교의 적막함에 하나둘 사라져 간다. 마지막 공포로 뒤가 오싹해지는 순간 우리 속에 너와 나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모호하지만 인간이 가장 절실한 순간에 우리가 우리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에 계속 사로잡혔다.


학교하면 괴담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 정말로 학교에서 아이들이 하나둘 귀신 목격담을 말한다면 기분이 어떨까. [비공개 안건]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일어나던 수상한 괴담을 수사하면서 괴담에 얽힌 과거를 밝혀내게 되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진실이 드러나면서 못 땐 짓만 일삼다 죽은 귀신이 뭐가 억울해서 나타나는지 당최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결말이었는데 사회에서 약자들이 겪어야만 하는 고통에 가슴이 답답했다. 교사라는 권위를 과시하며 여린 학생을 짓누르던 놈들이 교육의 장에서 유령처럼 나타나 학교 분위기를 망치는 일은 사라져야 한다. 굿판이라도 벌여 지옥으로 떨어지길 빌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다.


다시 분위기는 제목처럼 신나는 이야기로 전환된다. [신나는 나라 이야기]는 우울한 사람들의 몸에 기생하는 생명체가 여러 사람의 몸을 거쳐 왕따 여학생의 몸에 들어오게 되고, 그 학생의 지난날을 구제하기로 마음먹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비슷한 류의 소재를 본 것 같은 느낌이지만 여하튼 여덟 편의 이야기 중 가장 많이 웃었다. 다른 이의 몸에 기생하면서 익혔던 재주를 써먹으며 여학생의 복수를 꾀하는 생명체가 기특할 정도였다. 그렇게 웃는 와중에도 우리는 한가지 분명한 점을 직시해야 한다. 왕따는 가해자들이 만들어내는 것이지 피해자는 잘못이 없다는 사실 말이다.

 

 

 

 

[미스 페레그린과 이상한 아이들의 집]이 떠올랐던 [신의 사탕]은 인간의 미성숙한 자아가 제대로 자리 잡기까지의 과정을 보여주는 듯하지만 결국 거짓된 자아를 자신의 모습으로 포장하며 살고 있는 우리의 이중성을 꼬집고 있는 듯하다. 게다가 학교는 아이들의 창의성과 다양성을 길러내는 공간이 되어야 함에도 그러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어 소름이 돋았다.

원래 상상력이 좀 떨어지는 편인데 영화에서 비슷한 장면을 보아서 그런지 뒤통수의 얼굴 형상이 그럴싸하게 상상이 되어 더 흉측했고 고통의 신음소리는 더 끔찍하게 들렸다.


저 애들의 뒤통수에는 얼마나 많은 다른 아이들이 잠들어 있을까.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어둠에 감싸인 채 뒤통수에 묻혀 있을까. -p.307


단편 중 가장 무겁고 슬픈 이야기였던 [11월의 마지막 경기]는 다문화 가정과 운동부 폭력이라는 소재를 다룬다. 최근 서서히 드러나고 있는 운동부의 폭력은 실체가 드러나고 있으나 다문화가정이 이 땅 위에 제대로 정착되려면 얼마큼 세대가 바뀌어야 하는 것일까. 이런 일들이 학교라는 공간에서 자행되고 있다는 사실도 화가 나지만 그런 억울한 이의 한을 주술의 힘으로 밖에는 풀어 줄 수 없었다는 사실에 더 화가 났다. 속이 시원해야 하는데 계속 답답한 데는 여전히 이런 편견과 부당함들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오래간만에 참신하고 신선함이 묻어나는 이야기에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수 있어 좋았다. 학교 안에서 벌어지는 여덟 편의 이야기에 향수에 젖어 보기도 했으며 현재 내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아마도 큰 아이가 이 단편집을 읽는다면 괴담에 학교를 더 무서워할는지도 모르겠지만 학교라는 이미지에 너무 부정적인 느낌을 가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곧 죽어도 등교해야만 하는 시대는 아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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