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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조금씩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
유지별이 지음 / 놀 / 2019년 3월
평점 :
일상을 그리고 그 그림을 보며 위안을 얻는 이들이 참 부럽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안다.
능력만 주어진다면 나도 틈틈이 도전하고 싶지만 인내심과 욕구가 선뜻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다른 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바쁜 일상을 늦추고 쉬어가는 시간이
편하다.
그렇다 보니 벌써 책꽂이에 그라폴리오 작가들의 책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소파 옆 가까운 곳에 두고 가끔 펼쳐보는데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다.
저자는 미술 공부를 하지 않고도 그림의 꿈을 키웠고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에 힘을 실어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에 관심이 많은 딸아이가 자주 펼쳐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녀의 그림은 성장기와 함께한다. 십 대 시절의 고민과 미래의 불안감이 그림과 문장 속에
가득하다.
고민의 기록과 문장의 표현력에 공감하고 감탄했다.
어쩜 이리도 사계절속에 일상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는지
한 편의 시 같은 문장들에 오늘의 피로가 씻기는 듯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던
봄.
소나기처럼 시원한 답을 찾아 헤맸던
여름.
잎을 떨구는
나무처럼 홀가분해지고만 싶었던 가을.
눈 덮인 세상처럼 머릿속이 새하얬던
겨울...
그 사계절의
발자국들을 지나 다시 맞이한 봄의 이야기.
각 계절의 부제목에서 계절이 보이고 학창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일기를 제대로 써본적이 없지만 일기를 써보는것도 좋을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봄날의 입학식, 중간고사, 너와의 소풍, 스승의 날.
여름날의 수학여행, 기말고사, 해바라기야.
가을날의 공부해야 되는데, 마지막 시험.
겨울날의 자기소개서, 집-학교-학원-집, 겨울방학, 졸업
다시,
봄날의 오늘은 이사하는 날, 과제의 늪, 아르바이트 끝, 대망의
MT, 과제의 늪, 종강.
이외에도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 다양한 소주제가 가슴을 설레게 하고
보고 픈 페이지를 펼치면 애니메이션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숲속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나는 햇살과 방 한쪽 벽면을 삐뚤게 채우고 있는 넉살 좋아
보이는 빛,
저녁 가로등에 빛에 눈부시게 빛나던 벚꽃,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조용히 지키고선 가로등과 별빛,
비가 내린 뒤 물기가 촉촉이 남아있는 곳곳에서 반짝이는 물빛,
오후 네시 나른하게 만드는 긴 햇살, 늦은 밤 창가를 찾아온 별빛의 향기,
그렇게 그녀의 그림에서 나도 모르게 빛을 찾고 있었다.
마치 해바라기가 빛을 품으려 해를 쫓듯 그렇게 나는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순간들을 담고
싶었다.
가끔 길을 걷다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옛일이 떠오르는 것처럼
책장을 넘기며 이는 작은 바람에 많은 추억들이 지나갔다.
학창시절의 모습을 보니 친구들과의 추억이 제법 떠올랐다.
그 뜨거웠던 한여름, 소금을 집어먹으며 걷기 훈련을 하던 수련회,
시험의 아쉬움보다 방학이 더 기다려졌던 순간,
여름비가 시원하게 쏟아질 때 서리가 낀 창문마다 스마일을 그리던 내 모습,
하교 후 내린 버스 정류장에 너를 만났던 일,
공부해야 되는데 공부만 빼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 날,
학원 옥상에 모여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시간들, 자취를 시작하던 첫날의 설레임
등
나에게도 꽤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존재의 이유와 꿈 때문에 걱정이 늘 한가득이던 학창시절.
잘 할 수 있을까 하던 시간은 어느새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변할 것이다.
누군가가 필요한 시간, 그 누군가가 곁에 없을 땐 따뜻한 그림 한 장에서 마음을 달래 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의 고민의 시간도 나와 다르지 않았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가 서로 꿈꾸는 곳에 한 발짝, 다가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