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른 개 장발
황선미 지음 / 이마주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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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길을 걷다 보면 활짝 열린 대문을 지나 엉성하고 지저분하며 낡아 보이는 개집과 목줄에 매어진 개를 볼 수 있다. 이 소설의 풍경은 멀지 않은 과거일 수도 있고 지금 어딘가에서 맞닥뜨릴 수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어딘지 모르게 친근하지만 무심할 수도 있는 일상이다.

 

노인의 마당은 얼마 남지 않은 이파리들이 나뭇가지에서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쓸쓸한 겨울의 풍경과 닮아 있다.

집 마당에는 어미 개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새끼들이 뛰놀고 있다. 그리고 그런 동네의 사연들에 시시콜콜 참견이 많은 늙은 고양이도 한 마리 있다.

 

노인은 새끼들을 팔아 살림을 산다. 그래서 새끼들은 실한 씨어미만 남기고 팔린다. 노인의 어려운 살림살이에 어미 개는 늘 이별을 감당해야 한다. 마당에서 이리저리 사고 치며 뛰어다니는 강아지들 사이로 유독 어미와 형제들과는 달라 보이는 녀석이 있다. 시커멓고 털이 긴 것이 삽살개를 닮은 듯한데 어찌 되었든 털이 길어 자앙이라는 이름이 붙는다. 생김새 덕에 이름도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남들과 비슷하지 못하다는 사실은 장발을 힘들게 했다. 그래도 그 틈에서 잘 섞이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던 어느 날 노부부가 집을 비운 사이 개 도둑이 들어와 어미와 형제들을 훔쳐 달아난다. 그러나 온전히 모두 잃은 것은 아니었다. 장발 자신과 도둑의 구두 한 짝은 남기게 된다. 아무리 소리쳐도 개의 말을 알아들 을 수 없는 노인에게 구두 한 짝의 사연을 알려줄 수 없어 답답하기 그지없다. 하지만 노인은 그 구두를 처마 밑에 걸어 둔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장발이는 새끼를 낳고 엄마가 된다. 그러나 그 기쁨의 순간도 잠시 노인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 개 장수를 부른다. 하지만 장발이 개 장수를 본 순간 눈이 뒤집힐 정도로 짖지만 사연을 알 턱이 없는 노인은 끝내 새끼를 넘기려다 장발에게 물리고 만다.

 

어미와 형제를 잃고 게다가 자신의 새끼마저 잃은 장발은 식음을 전폐한다. 원망과 분노에 하루가 다르게 약해져 간다. 두 번이나 가족을 잃은 장발의 슬픔이 얼마나 클지 과연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시골에서 동물은 정을 나누기 보다 가축의 의미에 더 가깝다. 장발은 노인을 원망하고 적대시하는 것도 모자라 집 밖으로 떠돌기도 한다. 그러나 노인은 자신을 공격하기는 했어도 유독 다른 개들에게서 느낄 수 없는 무언가를 장발에게서 느끼게 된다.

 

너처럼 고집 센 녀석은 처음이다.

자식 놈 속 썩일 때 같구나! 도무지 길이 안 들어. 말을 들어 먹지 않으니 마음을 놓을 수가 있어야지. -p.119

 

다행히 장발은 두 번째 새끼를 낳고 활기를 찾는다. 새끼 한 마리가 곁에 있어 더 기운이 났다. 그러나 노인의 기력은 점차 약해지고 두 마리를 다 키울 수 없게 되자 노인은 장발을 팔려고 한다. 그러나 이번에도 개 장수와 맞닥뜨린 장발이 기를 쓰고 짖어대자 개 장수는 장발을 포기하고 새끼를 데려간다.

 

이야기는 시종일관 우울하고 슬프다. 노부부의 퍽퍽하고 쓸쓸해 보이는 노년의 모습도 처량 맞고 장발의 상실감에 내내 가슴이 무겁다. 하지만 집 주위 담벼락을 어슬렁거리며 바른 말만 골라 하는 새침데기 늙은 고양이 덕에 가끔 웃기도 하고 식탁 위로 오를 인생이었으나 다시 살게 된 시누이(닭)의 등장에 빵 터지기도 했다. 그러나 새끼의 죽음으로 오해는 풀리긴 하였지만 새끼의 죽음에 너무 가슴이 미어졌다. 게다 늙은 고양이의 죽음마저도...

 

겨울의 추위가 닥칠 때마다 시련도 함께 와서일까. 장발은 내내 생각한다. 겨울이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라고.

 

슬퍼할 새도 없이 또 다른 슬픔의 무게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장발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먹먹함이 밀려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자식을 늘 기다리는 노인의 모습과 자식을 잊지 못하는 장발의 모습은 지금 노인세대의 모습만 같아 씁쓸하다. 자식들이 제 갈 길 찾아 떠나도 부모들은 늘 자식들 생각이다. 노인이 원형 계단을 만들며 마지막 기운을 내던 모습이 짠하다. 결국 장발은 원망을 거두고 노인과 함께 원형 계단을 오르며 떠난다.

 

아이들 동화지만 슬픔의 무게도 상당하고 심리를 읽어나가는 것도 쉽지 않지만 다양한 감정을 느껴볼 수 있다는 강점이 있다. 표지도 참 예쁘게 갈아입어 맘에 든다. 요참에 아이들에게 꼭 읽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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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천히 조금씩 너만의 시간을 살아가
유지별이 지음 / 놀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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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그리고 그 그림을 보며 위안을 얻는 이들이 참 부럽다. 물론 쉬운 일이 아니란 걸 안다.

능력만 주어진다면 나도 틈틈이 도전하고 싶지만 인내심과 욕구가 선뜻 생기지 않는다.

그래서 그냥 다른 이들이 그린 그림을 보며 바쁜 일상을 늦추고 쉬어가는 시간이 편하다.

 

그렇다 보니 벌써 책꽂이에 그라폴리오 작가들의 책이 하나둘씩 늘고 있다.

소파 옆 가까운 곳에 두고 가끔 펼쳐보는데 그렇게 위안이 될 수가 없다.

저자는 미술 공부를 하지 않고도 그림의 꿈을 키웠고

가족과 친구들의 응원에 힘을 실어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림에 관심이 많은 딸아이가 자주 펼쳐보길 바라는 마음이 더 크다.

 

그녀의 그림은 성장기와 함께한다. 십 대 시절의 고민과 미래의 불안감이 그림과 문장 속에 가득하다.

고민의 기록과 문장의 표현력에 공감하고 감탄했다.

어쩜 이리도 사계절속에 일상을 자연스럽게 담아내고 있는지

한 편의 시 같은 문장들에 오늘의 피로가 씻기는 듯했다.

 

모든 것이 새롭게 느껴지던 봄.

소나기처럼 시원한 답을 찾아 헤맸던 여름.

잎을 떨구는 나무처럼 홀가분해지고만 싶었던 가을.

눈 덮인 세상처럼 머릿속이 새하얬던 겨울...

그 사계절의 발자국들을 지나 다시 맞이한 봄의 이야기.

 

 

 

 

 

각 계절의 부제목에서 계절이 보이고 학창시절의 추억이 떠올랐다.

일기를 제대로 써본적이 없지만 일기를 써보는것도 좋을것 같단 생각도 들었다.

 

날의 입학식, 중간고사, 너와의 소풍, 스승의 날.

여름날의 수학여행, 기말고사, 해바라기야.

가을날의 공부해야 되는데, 마지막 시험.

겨울날의 자기소개서, 집-학교-학원-집, 겨울방학, 졸업

다시, 봄날의 오늘은 이사하는 날, 과제의 늪, 아르바이트 끝, 대망의 MT, 과제의 늪, 종강.

 

이외에도 순간을 표현하고 있는 다양한 소주제가 가슴을 설레게 하고

보고 픈 페이지를 펼치면 애니메이션의 세상 속으로 빠져들 것만 같다.

 

숲속 나무 사이를 비집고 들어온 빛나는 햇살과 방 한쪽 벽면을 삐뚤게 채우고 있는 넉살 좋아 보이는 빛,

저녁 가로등에 빛에 눈부시게 빛나던 벚꽃,

집으로 돌아가는 길목에 조용히 지키고선 가로등과 별빛,

비가 내린 뒤 물기가 촉촉이 남아있는 곳곳에서 반짝이는 물빛,

오후 네시 나른하게 만드는 긴 햇살, 늦은 밤 창가를 찾아온 별빛의 향기,

그렇게 그녀의 그림에서 나도 모르게 빛을 찾고 있었다.

마치 해바라기가 빛을 품으려 해를 쫓듯 그렇게 나는 반짝반짝 빛나 보이는 순간들을 담고 싶었다.

 

 

 

 

 

 

가끔 길을 걷다 불어오는 바람 냄새가 옛일이 떠오르는 것처럼

장을 넘기며 이는 작은 바람에 많은 추억들이 지나갔다.

 

학창시절의 모습을 보니 친구들과의 추억이 제법 떠올랐다.

그 뜨거웠던 한여름, 소금을 집어먹으며 걷기 훈련을 하던 수련회,

시험의 아쉬움보다 방학이 더 기다려졌던 순간,

여름비가 시원하게 쏟아질 때 서리가 낀 창문마다 스마일을 그리던 내 모습,

하교 후 내린 버스 정류장에 너를 만났던 일,

공부해야 되는데 공부만 빼고 다 할 수 있을 것 같던 날,

학원 옥상에 모여 밤하늘을 올려다보던 시간들, 자취를 시작하던 첫날의 설레임 등

나에게도 꽤 많은 추억들이 있었다는 사실이 새롭게 다가왔다.

 

존재의 이유와 꿈 때문에 걱정이 늘 한가득이던 학창시절.

잘 할 수 있을까 하던 시간은 어느새 괜찮아라고 말할 수 있는 시간으로 변할 것이다.

누군가가 필요한 시간, 그 누군가가 곁에 없을 땐 따뜻한 그림 한 장에서 마음을 달래 보는 건 어떨까.

누군가의 고민의 시간도 나와 다르지 않았음에 조금이나마 위안이 될 것이다.

 

시간이 더 지나면

우리가 서로 꿈꾸는 곳에 한 발짝, 다가가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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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 - 세월을 이기고 수백 년간 사랑받는 노포의 비밀
무라야마 도시오 지음, 이자영 옮김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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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리에 머물러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는 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람들의 기호도 바뀌고 새로운 아이템들이 쏟아져 나오기 때문이다. 가게의 간판이 수시로 바뀌어가도 바쁜 사람들은 그것조차 알아채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런 세태 속에서도 세대에 세대를 이어가며 가업을 이어간다는 일은 요즘 같은 시대에 귀한 일이다.

 

이 책은 교토의 오래된 가게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창업의 기쁨도 잠시, 다시 간판을 내려야만 하는 수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경영서는 아니다. 독자들은 교토의 오래된 가게를 보며 아날로그 감성을 떠올리기도 하고 그들의 신념이 녹아내린 그곳을 언젠가는 찾아보고자 하는 여행의 설레임을 가져볼 수 있길 바라며 기획했다.

 

교토는 전통문화의 중심지답게 역사가 깊고 유적지가 많은 곳이다. 그래서 선뜻 친해지기가 쉽지 않은 도시라며 여행 시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전하고 있다. 비록 역 규모와 경제발전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지만 우리의 경주와 비교해 보는 것도 여행의 묘미임을 빼놓지 않았다.

 

도시를 여행하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점가와 거리다. 역사가 숨 쉬는 오래된 가게는 그윽한 향내를 지닌다. 그래서 한곳에서 살아남으며 세월의 풍파를 받아낸 오래된 가게들의 이야기에 관심이 생겼다. 그곳을 찾게 될 날이 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전통을 만나는 일은 설렌다. 게다가 십 년 넘게 하고 있는 일에 권태기가 슬슬 오던 차에 그들의 사연에 깃든 노력과 열정을 보며 위안을 얻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이곳에 소개된 10개의 노포(수백 년에 걸쳐 영업을 계속해 온 기업)에는 사료와 인터뷰, 관련 기록을 바탕으로 소개하고 있다.

 

교토의 대표 음식으로 자리 잡기까지 7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고등어 초밥집인 "이즈우"는 주인장의 신념이 확고하다. 손님이 늘었다고 해서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는 것, 사계절이 다른 고등어의 소금기를 한결같이 조절하는 것, 한정된 식자재로 최선의 음식을 조리함으로써 고객과의 신뢰를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점이 오래도록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인 것 같았다. 장사를 하면서 힘든 순간을 잊을 수 있는 것도 고객 보람된 순간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한 사람이 일생을 마무리하는 마지막 순간에 먹고 싶은 음식이 자신의 음식이라면 얼마나 벅찰까.

 

누구에게나 대중목욕탕에 얽힌 추억 하나쯤 간직하고 있듯 일본도 대중목욕탕 문화가 인기였다. 어린 시절 때를 밀면 요구르트를 사준다던 엄마의 꼬드김도 떠오르고 끝나고 나오면 불어오던 바람의 감촉도 잊을 수 없다. 3대째 이어오고 있는 목욕탕 니시키유는 과일상을 하다 그 시절 대중탕만 한 돈벌이가 없다고 여겨 목욕탕 사업을 시작했다. 게다가 니시키마의 좋은 물은 목욕탕 사업을 하기에 좋았다.

 

장사꾼들의 하루의 피로를 목욕이 대신할 만큼 목욕탕의 수도 많던 시절을 지나 가정 내 욕조가 생기면서 사양산업으로 돌아서긴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원망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래서 고안한 것이 목욕탕 내에서의 이벤트다. 다른 곳과는 달리 삼대째 이어져오고 있는 니시키유를 보며 좀 더 오래 그곳에 있길 바라본다.

 

술의 인기는 어딜 가나 빠질 수 없다. 술에 인생을 달래보려는 이들은 어느 시대건 많았다. 전쟁을 거쳐 문명개화의 물결이 더해지면서 좋은 술을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전통이란 '혁신을 반복하면서 양성된다'라는 신념으로 시작한 마쓰이 주조회사가 대를 이어갈 수 있었던 이유는 양조장이 화학공장 같은 양조실로 변모하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비록 전통주의 소비가 줄고 있긴 하지만 다양한 노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는 마쓰이씨의 노력에 전통주에 대한 추억이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오래 남을 것 같다.

 

불교 건축물은 그만큼 시련이 많다. 난으로 인해 불타고 불교 탄압으로 무너지고 게다 목재를 옮기는 도중에 일어난 눈사태로 안타까운 목숨도 잃는 등 그 기틀을 잡기까지 험난한 세월을 지난다. 1970년대 절정기를 지나 지금의 관광객들로 붐비기까지 그곳을 찾는 이들이 편안하게 머물다 가길 희망하는 도나미 츠메쇼의구로다의 마지막 인터뷰가 기억에 남았다.

여기에서의 즐거움이라면 매일 손님이 바뀌니까 매일매일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거겠죠. -p.167

 

일본은 근대화 이후로 커피산업도 급성장한 곳이다. 당연히 시대와 함께한 카페가 빠질 수 없다. 프랑수아 찻집은 근대 일본의 사상과 문화를 간접적으로 엿볼 수 있다. 전쟁이 패전으로 치닫자 적국의 언어 금지령이 떨어져 잠시 이름을 바뀔 수밖에 없는 상황도 있었으며 운동하는 학생들에게 공간을 내어주는 등 세월의 풍파를 함께 한다. 그냥 어머니의 입맛을 맞추다가 탄생하게 된 카페의 오리지널 스텐더드 이야기도 재밌는 일화였다. 그 시절 카페는 단순히 차를 팔던 곳이 아니었다. 그 시절 어려운 학생들을 도와주며 따뜻한 마음까지 팔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었다.

 

약 500년 전 창업한 미나토야 사탕가게의 대표 사탕에 얽힌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오래된 만큼 추억을 생각하며 다시 찾는 이들과 그 맛이 궁금해 찾는 이들이 있기에 평일 장사가 시원찮아도 문을 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를 잇는 고충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말하고 있다.

 

1910년에 창업한 도장가게를 보니 작년에 티비에서 본 인사동 도장가게가 떠올랐다. 진열장에 전시된 다양한 도장의 재료를 보니 주인이 직접 도장에 필요한 좋은 석재를 찾아다니고 가공하는 모습이 떠올랐다. 다행히 동양의 도장 문화를 소중하게 바라보는 외국인 관광객들이나 자기만의 도장을 찾는 고객들 덕에 꾸준히 매출이 늘고 있다고 했는데 이곳 일본도 학교에서 쓰는 평가 도장이나 새해 연하장에 쓰이는 도장의 인기가 높다고 한다. 

 

우리도 경주 곳곳, 그리고 오래된 도시 곳곳에 이런 오래된 가게들이 있을 것이다. 그들이 지켜나가고 있는 전통의 가치를 우리도 놓치지 말아야 하겠다. 낡음으로써 더 아름다워 보이는 그러한 공간에서 좀 더시간을 늦추고 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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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평화의 역사, 최대한 쉽게 설명해 드립니다 누구나 교양 시리즈 3
게르하르트 슈타군 지음, 장혜경 옮김 / 이화북스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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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를 읽고 인간은 왜 끊임없이 전쟁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존재일까로 고민에 빠진 적이 있었다. [인간은 무엇인가]라는 책부터 시작한 물음은 몇 권의 철학 책을 뒤적거려도 여전했으며 전쟁 서적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다. 전쟁은 그것의 크든 작든 길든 짧든 따지는 게 무의미하다. 개인의 삶을 망가뜨리고 자연을 황폐화한다. 전쟁은 승자와 패자도 없이 모든 인류가 끝나는 지름길이다.

 

그러나 그렇게 전쟁을 치르면서도 인류는 여전히 살아남았고 엄청난 문명의 전환점을 맞았다. 그러나 여전히 곳곳에서 전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제는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테러가 더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삶의 가치보다는 이념이나 이권다툼에 눈먼 자들 때문에 수많은 이들이 나라와 집을 잃고 떠돈다. 대량살상무기들은 날로 업그레이드되고 있어 인류는 버튼 하나면 언제든 끝장날 수도 있다. 그것만 보아도 과연 인류에게 평화는 올 것인가?라는 물음에 회의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렇게 한동안 전쟁 서적을 멀리했건만 독일인의 관점으로 바라본 전쟁과 평화의 역사는 어떨까 하는 생각에 다시 펼쳤다. 전쟁의 역사는 보는 시각에 따라 천차만별이기에 다양한 해석이 나오기 마련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노력한 시간보다 약탈과 파괴의 시간이 더 많았던 인류에게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일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은 단순히 전쟁의 역사를 객관적으로만 다루고 있지 않다. 인류가 전쟁과 함께 지나온 발자취에 저자의 주관이 더해져 쉽게 설명하고 있다. 전쟁을 왜 할까라는 질문에서 시작하여 역사상 가장 끔찍하고 처참했던 피의 역사를 소개한다. 전쟁이 일어나게 된 원인을 찾고 그 과정과 결과를 냉철하게 바라봄으로써 인류의 미래까지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다. 전쟁의 역사를 되짚는 동안 저자처럼 참담이란 단어보다 더 표현할 수 있는 단어가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철학자 칸트는, 전쟁은 전쟁으로 죽는 사람보다 더 많은 수의 나쁜 인간을 만들어낸다고 말했다. p.134

 

인간의 원래부터 폭력적일까. 이에 대한 것으로 인간의 습성을 자연과 동물, 남성과 여성의 특성을 비교하며 그 원인을 찾으려 한다. 투쟁과 살생은 자연적 본능이지만 약탈과 파괴는 인간만이 지닌 본성이다. 또한 공격성과 권력욕은 주로 여성보다 남성에게 더 두드러진다. 전쟁놀이를 즐기고 것도 모자라 전쟁을 미화하기도 한다. 군인에게 주어진 복종이라는 규율과 명예라는 훈장들은 전쟁의 부당함을 잊게 한다. 최근에는 게임으로 인해 폭력성이 둔화되고 연민과 죄의식 등의 가치관이 사라지는 부작용도 낳고 있다. 전쟁은 절대 놀이가 될 수 없으며 삶의 일부가 되어서도 안 되는 것이다.

 

전쟁의 역사에서 돌아보면 제일 많이 일어난 갈등의 원인은 종교였다. 종교는 전쟁을 부추기도 앞장섰다. 사랑과 평화의 이면에 도사린 신을 위한 욕망은 수많은 전쟁을 거듭하게 된다. 신은 우리편이다라는 절대적 믿음과 유일신 외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는 교리로 인해 지금도 여전히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십자군 전쟁, 30년 전쟁을 돌아보며 종교가 정치적 이유와 결탁하였을 때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초래했는지 알 수 있다. 싸우는 동안 이미 종교는 그 본질이 사라지고 만다. 30년 전쟁만 보아도 나라들이 확실히 자리 잡지 못한 상황에서 서로 패권을 쥐기 위해 옥신각신한 싸움이었다. 평화를 위한 종교가 전쟁을 부추긴 참 아이러니한 결과다.

 

계몽주의가 도래하자 전쟁의 양상도 조금 바뀐다. 전술과 전략의 중요성이 부각된다. 클라우제비츠의 [전쟁론]을 들여다보며 전쟁의 의도적 정치활동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있다. 어찌 되었든 전쟁은 목적으로 정당화될 수 없으며 그 결과에 대해 단언할 수도 없다.

그의 명언 대로 "전쟁은 다른 수단을 이용한 정치의 연속이다." p.135

 

인류의 신대륙의 발견과 상공업의 발달은 수많은 식민지 전쟁을 일으켰고 곧 그것은 인종 전쟁으로 나타났다. 전쟁은 이전보다 더 잔혹하고 비겁해진다. 큰 사건으로 중국의 티베트 정복과 스페인과 포르투칼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을 들고 있는데 발견의 이면에는 엄청난 약탈과 살육이 벌어졌다. 엄청난 노예들이 사고 팔리며 강대국들의 배를 불리는 동안 식민지는 인간학 살의 무대였고 신무기를 테스트하는 장소였다.

 

전쟁은 늘 두 개의 얼굴을 가진다. 여기서는 파괴하고 저기서는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 -p.218

 

민족주의로 시작된 세계대전은 그야말로 전면전이다. 민간 학살에 대한 죄의식은 사라지고 말살정책이 벌어진다. 무기 발달은 대량학살로 이어졌고 군인들은 그런 기계 앞에 살생에 무뎌진다. 전쟁은 그렇게 야만성을 드러내며 괴물이 되어갔다. 그릇된 믿음은 집단적 광기를 바탕으로 인류 역사상 최악의 비극을 낳았다. 히틀러라는 괴물을 만들어지기까지 수많은 이들이 지지하고 동조했다는 사실만 보아도 사상의 무서움에 몸서리쳐진다.

 

 

 

세계대전의 끔찍한 결과에도 불구하고 그 뒤 각 나라는 내전으로 몸살을 앓는다. 내전과 테러는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 끔찍하다. 이해의 충돌은 어린아이 할 것 없이 살인을 저지른다. 인류가 유한한 삶의 중요성 따위는 잊은지 오래된듯하다. 그렇다면 이 책의 마지막 장인 인류의 평화는 가능한 것일까. 저자도 내용이 부실함을 우려하며 시작하지만 전쟁의 참혹함 속에 숨겨진 진실은 오직 하나다. 평화를 지켜나가는 것! 인간의 야만성과 욕심은 변하지 않는 인간의 본성이다. 그러나 전쟁의 두려움이 더 크다. 그런 점에서 평화를 위해서 남성보다 여성이 더 지휘해야 함을 내세우는 점도 일리가 있다.

 

길었던 전쟁의 역사를 바탕으로 평화를 바라는 마음이 더 자라날 수 있다면 이 한 권의 책만으로도 얼마든지 느껴볼 수 있을 것이다. 일독하길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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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름다운 수학이라면 - 내 인생의 X값을 찾아줄 감동의 수학 강의 서가명강 시리즈 3
최영기 지음 / 21세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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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철학사가 말했듯 수학을 가장 못하는 이는 ‘수학에 관심이 없는 자’다. 나는 그토록 수학을 못하지는 않았지만 주어진 대로 답하고 누군가 짜놓은 틀안에서 살았다. 지금 내가 뒤늦게 이런 복잡하고 심각한 생각에 빠졌는지 정확한 꼭짓점은 없다. 단지 나의 입시는 오래전에 끝났지만 내 아이에게 입시라는 문이 열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책의 제목을 본 순간 한 번도 생각지 못했던 수학의 아름다움을 조금이라도 느끼고 싶었다. 그리고 힘겹게 수학 문제집과 씨름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수학이라는 학문의 진정한 의미를 전하고 싶었다. 어느 수학자가 말했어. 수학은 말이야 실은 아름다운 학문이라고.

 

이 책의 저자는 수학의 미를 어떻게든 잘 전하고자 한다. 아이들은 입시를 위해 공들인 시간만큼 수학을 혐오한다. 교육조차도 수학의 진정성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빨리 풀어 답을 찾아내는 교육은 검토하고 반성할 시간을 얻지 못한다. 수학에 지친 아이들은 더 이상 수에 대한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는 분명 문제가 있다. 수학을 통해서도 얼마든지 사색이 가능하고 삶의 이치를 깨달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현 교육을 바라보는 시선에 우려가 한가득이다.

 

수학은 당연한 것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을 하고 질문을 하면서 출발해야 한다. 쉽게 말해 삼각형의 넓이를 구하는 공식, 다각형의 외각의 합은 360도라는 당연한 명제에 궁금증을 가져 원리를 깨달아야 한다. 점 선 면 , 도형, 소수, 함수부터 수학자들이 밝혀낸 수많은 정의를 바탕으로 다양한 사고의 결과를 이끌어 내고 있다. 수학과 철학이 적절히 어우러지자 그제서야 수학이란 학문의 위대함이 보인다.

아.~~ 이 뒤늦은 깨달음이란.ㅎ

 

1부 삶에 수학이 들어오는 순간 편에서는 삶 속에서 수학을 보거나 수학의 원리에서 삶을 끌어내기도 한다.

고대 건축물 중 아치형의 건축물의 위대함을 논하면서 우리 몸의 발바닥이 이와 같은 원리임을 말하고 있다. 내 발바닥이 그런 수학적 원리를 지니고 있었다니 무거운 내 몸을 견디고 있는 발바닥에게 안마 좀 해주어야겠다.

저자가 소개하고 있는 오일러의 수처럼 오일러의 수와 인생이 원리가 참 닮아 있는 듯하다. 둥글어져야 하는 건 나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닐까 돌아보게 된다.

수라는 개념은 무한하다. 하지만 인간의 삶은 유한하기에 인간은 수를 통해 무한을 꿈꾼다. 조금만 마음을 바꾸면 한정된 시간을 더 여유롭게 가져볼 수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의 본질을 깨달으면 그것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인다. 수학을 수로만 본다면 절대 수학의 본질을 느낄 수 없다. 사고를 확장하기 위해 질문의 표현방식을 바꾸는 것이나 정의를 내릴 때 현상을 효과적으로 설명해야 한다. 다름과 틀림의 차이를 이해하는 것처럼 말이다. 연역적 사고의 필요성은 모순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추구하는 완벽함을 이해하는데 가까이 다가설 수 있다.

 

최단거리를 측정하는 문제에서 수학적 거리를 이야기하다가 관계의 거리에 대해 기술한 부분이 참으로 와닿았다. 게다가 칼릴 지브란의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는 시가 정말 좋았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에서 춤추게 하라.

- p.130

 

요즘 세상은 숫자가 지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삶의 가치마저도 수로 매겨지고 있는 현상에 저자처럼 안타까운 마음을 느낀다. 중학교에 입학한 큰 아이의 봉사활동지를 보며 왠지 씁쓸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행복이나 사랑, 배려처럼 숫자의 크기가 지배하지 않는 것들에 더 마음을 써야겠다.

 

 

 

3부 사유의 시선 편은 저자가 나름 쉽게 설명한 흔적이 있지만 조금 어려웠다. 타고난 수학자들의 수학을 읽고자 하는 노력에 감탄하고 여러 이론들이 생겨나기까지의 과정에 마냥 놀랍기만 했다. 다행히 수학적 가정과 해석,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보며 더 나은 삶의 방향을 고민해 볼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보이는 수학적 성질에 감탄을 했다. 등변사다리꼴의 건축물이 위에서 보면 평행하게 보인다. 저자가 정의 내리고 있는 이해하는 것과 믿는 것의 차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예시라고 생각한다.

 

믿는다는 일이 상황에 따라서는 단순함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겠지만, 믿어야만 행동하도 그것을 통해 발전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을 나는 캄피돌리오 광장에서 깨달았다. -p.219

 

정말 수학의 본질을 조금이라도 먼저 알았더라면, 수학하면 수를 떠올리는 오류를 낳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많았다. 이제부터라도 아이들에게만은 수학의 재미를 찾아줄 수 있는 다양한 시도를 해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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