둔감력 수업 - 신경 쓰지 않고 나답게 사는 법
우에니시 아키라 지음, 정세영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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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날수록 한가지 확실해지는 것이 있다. 인간은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 말이다. 태생이 예민한 사람에게 아무리 느긋함을 강조해도 조급함을 쉽게 버릴 수 없고 반면 매사가 천하태평인 사람은 주변인을 매우 힘들게 한다. 실제로 살면서 지나치게 예민하다 싶은 이들을 자주 보아왔다.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과하게 걱정하거나, 이미 일어난 일에 과하게 화를 내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자신의 그런 반응에 대해 자신에게만 관대하다. 자신으로 인해 주변인이 힘들다는 생각까지는 미쳐 하지 못하는 것이다.

 

중요한 건 자신을 잘 아는 것이다. 자신을 잘 아는 이들이야말로 자신을 다독이고 타인도 이해한다. 근본은 쉽게 변하지 않겠지만 더 나은 나를 위해 늘 고민해보아야 하겠다.

 

 

 

나는 소심한 사람일까, 어리석은 사람일까, 대담한 사람일까.

 

예전에 나는 지나치게 소심했다. 그래서 위험하다고 생각되는 일은 잘 피해왔다. 그래서인지 삶은 지나치게 평범했고 발전도 없었다. 뒤돌아보니 그것조차도 어리석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대담한 사람이 될 수 없음도 잘 알지만 가끔은 에라 모르겠다 하고 밀어 부칠 때가 있다. 그래서 깨달은 점이라면 고민을 너무 고민하지 않으니 생각 외로 일이 잘 풀릴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그런 경험이 잦아지다 보니 부정적인 생각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나는 고민이 있으면 잠을 못 자는 편이었다. 그런 나에 비해 남편은 고민이 있어도 잘만 잘 자는 천하태평형이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다. 그게 스트레스 덜 받는 길이라는걸.

 

이 책은 그런 것들을 이야기한다. 조금만 더 예민함을 내려놓는 방법을 다양한 관점에서 충고하고 있다. 물론 연령이나 각자의 위치에서 느끼는 예민함의 강도는 천차만별이고 현재 나를 누르고 있는 삶의 압박과 스트레스의 지수에 따라서 이러한 조언들을 대하는 시선도 다를 것이다. 그렇지만 각 장에서 한 가지만이라도 실천하려 해본다면 점차 달라질 수 있지 않을까.

 

1장에서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더라도 '어떻게든 되겠지.'하고 마음먹습니다.

2장에서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억측하지 않습니다.

3장에서 마음의 버팀목이 되어 주는 사람을 소중하게 여깁니다.

4장에서 일, 회사, 그리고 직장 상사와 적당한 거리를 둡니다.

5장에서 급할수록 서두르거나 당황하지 않고 천천히 나아갑니다

6장에서 이해득실에 둔감해지면 여유롭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7장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하는 능력을 익히세요

8장에서 반성이 도를 지나치면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9장에서 스스로 자신의 한계를 정하지 않습니다.

 

 

 

 

늘 쫓기듯 사는 인생 속에서 우리는 짧은 시간에 무언가를 이루어야 하고 잘 해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두려움과 불안감을 온몸으로 견뎌내다 보니 신경은 늘 저리고 아프다. 그러나 제아무리 삶이 우리를 느긋하게 놓아두지 않는다고 해도 그 틈바구니에서 여유를 찾아야 한다. 더 많이, 더 높이, 더 빨리가 아니라 조금 덜어내고 좀 더 늦추는 삶이야말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책에서 언급하듯 감정을 글로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화를 곱씹고 있어봤자 도움 될 일 하나 없다. 지금의 상태를 하나하나 써 내려가다 보면 무엇이 문제인지 보인다. 아이들이 싸우고 나면 반성문을 쓰게 하는 편인데 나뿐 아니라 상대의 기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돼서 좋은듯하다.

 

읽어보길 잘 한 것 같다. 나뿐 아니라 내 아이들과 늘 걱정 보따리를 안고 사는 엄마에게도 현명한 조언을 해 줄 수 있을 것 같다. 눈물 콧물 쏙 빠지게 혼났음에도 씻으러 들어가서 흥얼거리는 둘째 녀석을 보니 둔감력 수업에서만큼은 우등생이다.

오늘도 쓸데없는 감정 소모로 조금날을 세웠었는데 내일은 더 둔감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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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 트립 제주 - 지금, 가장 핫한 제주 여행 코스 31
송세진 지음 / 북탐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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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는 여러 번 왕래를 했었지만 늘 가던 장소만 지났고 주어진 시간에 많이 둘러보겠다는 욕심 때문에 제대로 즐기지 못한 아쉬움이 늘 남아 있는 곳이다. 게다가 혼자서 여행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제주라면 혼자서도 얼마든지 다녀 볼 수 있을 것 같다. 그래서 제주는 여럿이 다니는 것보다 혼자 조용히 거닐고 싶은 곳이기도 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금 짜임새 있는 계획이 필요하다. 물론 발길 닿는 곳 따라 거니는 여행도 의미 있겠지만 나처럼 초보 여행자라면 사전 준비가 필요한 법이다. 여행책은 뭐니 뭐니 해도 최근에 쓰인 책이 신뢰가 갈 것이고 퀄리티 좋은 사진 자료와 테마 구성이 알찬 책이 좋을 것이다.

 

저자는 직업상 해외여행을 다닐 기회가 많았고 제주에 대한 각별한 애착으로 4년 전 제주에서 생활하게 되었다고 한다. 누구나 한 번쯤 꿈꾸는 삶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저자의 삶이 마냥 부러웠다. 제주살이로 인해 진정으로 자연을 바라보게 되고 다른 이의 삶을 존중하는 여유도 생겨난 듯 보여서 느린 삶이 주는 행복을 제주에서 느껴보고 싶다. 물론 제주에서 나고 자란 사촌은 제주가 답답하다며 육지로 올라오긴 했지만 결국은 다시 돌아가지 않을까.

 

 

 

근본적으로 여행을 좋아하는 이들은 그 장소를, 그 느낌을 공유하고 싶어 한다. 같은 장소라도 어느 시간대에, 어느 계절에 만나느냐에 따라 천만번 다른 장소가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는 여행은 그 나름의 이유와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내가 이 책을 선택한 건 그녀의 직업이 카피라이터였다는 데 있다. 카피라이터는 사물과 풍경을 대하는 시각이 일반인들에 비해 다채롭고 풍부하다. 그래서 그녀가 바라보고 있는 제주 곳곳의 풍경이 궁금했고 굳이 SNS를 뒤지지 않아도 충분히 제주에 대한 알찬 정보와 소개가 있지 않을까 하는 믿음이 강했다. 다만 여행 에세이라고 생각한 점은 빗나간 듯.

 

책은 두께만큼 많은 장소를 담고 있다. 31가지 핫한 코스에 벌써 마음이 심쿵한다. 제주 바다, 테마여행, 아트 산책뿐 아니라 사진 찍기 좋은 장소와 체험 및 역사기행 등 알차게 담아내고 있다.

 

인트로에서는 31개 테마를 기준으로 간략 추천 여행 코스도 소개하고 있어 짧은 여행을 계획한 이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정보다. 특히 여자들끼리, 아이와 함께, 나 홀로, 부모님과 함께하기 좋은 코스도 소개하고 있어 나처럼 일정 짜는데 자신 없는 이들은 꿀 정보이다.

제주에서만 만나볼 수 있는 아트숍과 이색 서점도 볼거리다. 제주에 이렇게 가고 싶은 서점이 많다니 혼자 여행 시 꼭 들러보고 싶은 장소로 콕 찍어두었다.

 

각 테마코스에서는 간단한 여행경비까지 알려준다. 코스별 이동경로를 지도를 통해 확인해 볼 수 있고 이동 예상시간까지 확인할 수 있다. 장소에 대한 저자의 간략한 설명과 더불어 유래 및 여행 포인트를 알뜰히 챙겨 보면서 여행을 하면 여행지의 느낌을 살릴 수 있겠다.

뭐니 뭐니 해도 남는 건 사진이라고 이왕이면 더 멋지고 특별하면 좋을 것이다. 그래서 인증샷을 제대로 남길 수 있는 팁도 전하고 있으며 많진 않지만 맛집 소개도 곁들이고 있다. 읽다 보면 썬크림은 필수라든지, 어떤 시간대에 거닐면 좋은지, 어느 곳에서 찍으면 멋진 사진을 건질 수 있는지 꼼꼼한 팁도 전한다. 각 장소별 주소와 연락처 등 기본 정보도 빼놓지 않았으니 참고하면 되겠다.

 

평소 사진에 관심이 많다 보니 뭐니 뭐니 해도 인생샷을 건질 수 있는 장소에 눈이 간다. 뭐 제주 곳곳 어디를 찍어도 다 멋있겠지만 출사 여행만큼은 꼭 도전해보고 싶다. 365일 시들지 않는 꽃길과 녹산로를 지나 바다와 휴양림까지 걷고 또 걷으며 나만의 풍경을 담고 싶다. 저자의 사진 실력은 책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제주의 멋을 한층 잘 살려내고 있다. 그렇게 다 훑다 보니 제주관광책자라고 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알차 보인다. 슬슬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리얼 트립 제주에서 기분 따라 느낌 따라 테마별로 여행을 계획해 보면 어떨까.

 

나라면 일박 이일 나 홀로 여행 일정의 찍사여행이나 미술관 투어를 먼저 계획할 것이다. 그리고 휴양림을, 또 그다음엔 말타기... 정말 계속 떠나고 싶어지게 만드는 책임엔 틀림없는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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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배달부 : 루 아이앤북 문학나눔 22
강경호 지음, 백연 그림 / 아이앤북(I&BOOK)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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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들은 왜 이리 이기적일까.

인간들은 왜 이리 고마움을 모를까.

인간들은 왜 이리 쉽게 잊고 살까.

인간들은 왜 이리 어리석을까.

인간들은 왜 이리 알 수 없는 존재일까.

 

책을 읽는 내내 인간이기 때문에 들었던 미안함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인간은 왜 다른 생명체들과 조화롭게 살아가지 못하고 이기적이 되어가는 것일까.

 

비둘기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다. 흔하다 보니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는다. 것도 모자라 이제는 유해 동물로 지정되어 천대받는 존재가 되었다. 나도 가끔 그런 비둘기들을 보며 조선시대 양반들의 애원조로 귀한 대접을 받던 비둘기가 어찌 이런 신세가 되었을까라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인간들에게 나쁜 병균을 옮기는 존재가 된 것도 결국은 인간들이 만든 결과인데 왜 비둘기가 그런 취급은 받아야만 하는 것일까.

 

 

 

 

지금은 손편지조차 쓰지 않는 시대지만 오래전 비둘기가 통신 수단이었던 시절에는 비둘기와 인간은 각별한 사이였다. 그리고 편지 업무를 담당하던 하얀 우체국은 오천 년이란 시간 동안 제 역할을 충실히 하며 그 자리를 지켜왔다.

통신이 발달하고 더 이상 편지가 필요 없게 되자 업무가 종료된 우체국에는 두 마리의 비둘기만 덩그러니 자리를 지킬뿐이다. 그러나 할아버지 몽고몽의 생각과는 달리 손자 루는 우체국을 지켜야 할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선우는 비둘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엄마와는 달리 비둘기를 친근하게 여긴다. 그러던 어느 날 집안으로 들어온 비둘기가 남기고 간 푸른 깃털을 보며 신기한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가다 푸른 깃털을 지닌 비둘기를 따라가게 되고 그곳에서 무언가를 발견하게 된다. 마법의 주문이라도 있는 게 아닐까 하던 기대와는 달리 오래된 낡은 편지를 보며 실망하지만 그 편지로 인해 루와 만나게 된다. 그리고 루를 따라 하얀 우체국으로 오게 되고 마지막 편지들을 배달하는 일에 동참하게 된다.

 

인간들을 미워하던 루는 편지 배달의 이유를 찾지 못하지만 선우의 설득에 편지를 배달하기로 결심한다. 이 배달된 편지들을 배달하기 위해서는 과거로의 시간 여행을 떠나야 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한정된 시간을 초과하여 머무르게 되면 영원히 돌아오지 못할 수 없다는 사실은 긴장감을 더한다.

 

 

 

 

 

편지를 배달하기 위해 날아간 과거는 전쟁터이기도 하고, 엄청 추운 지역이기도 하다. 주인에게 전달되지 못할뻔한 편지들이 주인을 찾아가는 동안 루와 선우는 많은 것을 알게 되고 깨닫게 된다. 과거 속 편지 배달부들은 사연의 주인공들과 친구이거나 신세를 진 사이들이다. 사소한 줄 알았던 사연들이 그들에게는 전쟁을 끝낼 만큼, 한 사람의 생명을 이어가게 할 만큼 아주 중요한 것임을 깨달았을 때 루는 할아버지를 이해하게 된다.

 

사람들에게 상처받은 배달부 오드의 사연을 들으며 인간에 대한 불신감을 느끼기도 하지만 그래도 중요한 건 한두 번의 나쁜 순간보다 좋았던 순간을 추억하는 것이 더 의미 있는 일임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인간들이 비둘기에게 고마워했던 그 순간을 직접 겪으며 편지 배달부로서의 자부심도 생겨난다.

 

하지만 단 한 명이라도 우리를 좋아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위의 하얀 우체국을 끝까지 지키는 게 더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p.129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사라져가는 것들에 조금이라도 아쉬움을 느끼고 소중히 여겨야 한다. 손편지가 귀한 시대에 손편지를 받으면 기쁜 마음이 배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비둘기들이 정작 지키고자 한건 인간들과의 의리였음을 느끼게 되니 마음 배달부라는 말이 더 따스하게 다가온다. 그 따스한 마음을 담아 도시 곳곳에서 떠도는 비둘기의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싫고 좋고는 취향의 문제이지만 너무 혐오스럽게 취급하지는 말았으면 좋겠다. 오드가 인간들로 인해 받은 몸과 마음의 상처에 마음이 너무 아팠다.

인간과 다른 생명체는 상호보완적인 존재이며 서로를 아끼고 돌보아야 한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 이야기였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함께 보면 좋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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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시나리오 1 - 의문의 피살자
김진명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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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 전에 소설이 다시 재출간되었어도 그리 낯설지 않은 까닭은 무엇일까. 정치는 지도자의 이름만 달라질 뿐 크게 달라 보이지 않고 게다가 강대국들의 파워는 여전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시나리오가 그리 허구 같지 않은 이유도 미국은 충분히 자국의 이익을 위해 움직이는 나라임을 이제는 알기 때문이다. 비단 미국뿐이겠는가만 은 역사를 돌아보았을 때 그 어떤 나라보다 미국의 이중적이고 위선적인 태도를 보아왔었고 한반도에 꽂아논 빨대가 비단 전쟁을 염려함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김진명의 [고구려]는 보지 못했지만 한반도에 사드문제로 시끄러울 때 사드의 궁금증과 심각성을 풀어준 것이 그의 책 [사드]였다. 책과 별로 친하지 않던 남편이 먼저 읽고 나서 꼭 읽어보라고 권해준 책이기도 하고 그의 통찰력에 신뢰감이 생겼다고나 할까.

 

이야기는 한 소설가의 죽음으로 시작하고 있다. 죽은 소설가는 저자처럼 팩트를 다룬 소설을 쓴다. 그런데 그가 소설을 쓰다 베이징에서 피살을 당한 것이다. 친분이 있던 중국 검사로부터 사건을 듣게 된 한국의 장검사는 단순 피살 사건이 아님을 직감한다. 그리고 그가 쓰다만 원고에서 제3의 시나리오라는 단어를 발견하자 그가 단순히 취재를 위해 오가던 중 사고를 당한 것이 아님을 확신하게 된다.

 

사건을 취재하던 중 소설가의 죽음 뒤에 엄청난 사실이 숨겨져 있음을 알게 된다. 북한을 중심으로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있음이 드러난 것이다. 이야기는 뒷받침해주는 여러 인물들 덕에 군더더기 없이 시원하게 흘러 금방 읽힌다. 한국으로 탈북한 천재 과학자, 북한에서 사상을 의심받아 목숨을 무릅쓰고 탈출을 감행한 중사, 전직 CSI 요원, 그리고 평범한 대학생 등 아귀가 맞아떨어지는 전개에 오히려 속이 후련하다. 물론 그 끝이 만족스럽지는 않더라도 조국을 생각하는 정의감 넘치는 검사와 미국의 도청 기술을 능가할 장치를 개발한 탈북 과학자뿐 아니라 평범한 두 대학생의 애국심이 더해져 오히려 감동이 밀려올 정도다.

 

정작 세상을 살리려는 자들은 늘 평범하고 힘없는 자들임을 보며 세상에 정의란 과연 존재하는 것인가에 의문이 든다. 가상의 시나리오지만 정말 걱정해야 하고 직시해야 할 것은 따로 있다. 외부적으로는 전 세계인을 감시하고 통제하려는 도청 기술과 신무기들이고 내부적으로는 한국인들의 지나친 사대주의와 우리 편 아니면 죄다 빨갱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닐까 한다.

 

사건을 수사하면서 점점 이 사회가 보이지 않는 자의 힘에 이끌려 돌아가고 있다는 무서운 생각이 들더군.- p.67

 

한반도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에 자리를 내어주는 것도 모자라 늘 옆구리가 터지는 신세였다. 한반도의 문제에 보이지 않는 힘이 미국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에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는 이유도 여태껏 돌아가고 있는 정세가 그렇기 때문이다. 한반도 전쟁설부터 얼마 전 결렬된 북미회담만 보아도 그렇지 않은가. 한반도에서 삼팔선의 저주는 언제쯤 끝이 날까.

 

나방을 이용한 도청 작전이 가능한 것인가라는 생각이 내내 따라붙긴 했지만 미국의 검은 속내를 알고 나니 분통이 터진다. 한반도의 인권 따윈 무시한 채 역사를 다시 반복하려는 계획이 올바른 미국 지식인들 덕에 와해될 수 있을까?라는 생각부터 그들도 과연 똑같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내내 머릿속이 복잡했다. 이러다 보니 정말 불신만 커져가고 세상이 무섭게 느껴졌다.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한국과 미국이라는 두 개의 국적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한다면 많은 젊은이들이 미국을 선택할 것이라는 가정은 참으로 씁쓸하지 않을 수 없다. 베네수엘라의 비극과 떠도는 난민들을 본다면 한반도 땅에서 더 굳건해져야 할 민족의식은 대체 어디로 가고 있단 말인가.

 

지금도 그들은 제4, 제5의 시나리오를 짜며 어딘가에서 속삭이고 있을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세계정세에 눈을 뜨기 위해서는 많이 보아야 한다. 그리고 다각도로 살펴야 한다. 이는 특정 지식인들에게만 주어진 숙제가 아니다. 사건의 진상을 찾아내는 발 빠르고 정확한 네티즌들처럼 국민들도 관심을 가지고 진실을 가려내는 안목을 길러야 한다.

지금 그 시대의 남북한 정상은 없지만 지금 읽어도 손색이 없을 작품이다. 진실과 허구를 넘나드는 이야기에서 전달하고자 하는 팩트를 건져내볼 수 있을 것이다. 그나저나 그냥 한 권으로 출간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굳이.

 

* 책은 카페 리뷰어스클럽에서 책을 제공받아 작성한 솔직한 후기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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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화의 마법
무라야마 사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직선과곡선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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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나도는 수많은 불가사의한 이야기나 기적 중에는 진짜 꿈도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세상에는 마법도 궤적도 존재하고 가끔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도 있을지도 몰라. - p.27

 

법이란 단어만 들어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운이나 기적을 바라며 소원을 빈다. 특히 최근 읽었던 일본 소설에서 주로 이런 소재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번 이야기가 단연 최고(가공할만한 아름다운 세상, 인공적인 착한 세상)가 아닐까 한다. 게다가 그 마법을 부리는 주체가 고양이라니...

 

가자하야 마을에는 작고 오래된 호시노 백화점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상한 소문도 있다.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는 오드아이의 흰색 아기 고양이를 본다면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백화점 본관 정문 현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있는 아기 고양이 때문에 그런 소문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사연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깜찍한 사연을 간직한 마을의 명소이지만 시장경제가 나빠지면서 백화점도 예전 같지 않다. 자신의 자리에서 그곳을 지켜나가던 직원들은 백화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낡은 엘리베이터를 조종하는 1년 차 엘리베이터 걸부터 정년퇴직 후 재고용된 백화점의 도어맨에게도 소중한 일터였고 마을 주민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자 놀이공간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그렇게 경영인 수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가 어느 날 새로이 만들어진 컨시어스 자리에 유코라는 직원이 오게 되면서 백화점 내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게 된다.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밝은 기운을 내뿜는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스테인드글라스 안의 고양이가 둔갑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나도 약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환타지물이니까.

 

이야기는 백화점과 관계된 인물들을 차례차례 등장시키며 엮어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백화점의 직원 또는 오랜 단골손님이거나 경영자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다. 엘리베이터 걸, 제화점 직원, 시계 플로어 매니저, 자료실 직원, 창립자 가족, 백화점 도어맨, 어린 시절 '똑똑이’와 ‘복덩이’란 애칭으로 불리던 노부부가 등장하며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고양이를 만나는 기적을 경험한다.

 

지금 하얗게 빛나고 부드러운 작은 공이 발아래를 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하얀 빛은 뛰어오르면서 다시 돌아와 두둥실 작은 고양이 형태가 되었다.

오드아이 눈동자를 한 흰 아기 고양이는 이사나의 발아래 앉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작게 울었다. - p.97

 

고양이의 존재를 의심했던 이들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고양이를 본 뒤 하나씩 소원을 품게 된다. 그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소원은 어느새 이루어져 간다. 소중한 인형을 수선하기도 하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엄마를 만나기도 하며, 이루지 못했던 가수의 꿈을 다시 꿔보기도 한다. 운명의 연인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바람대로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고양이 때문이었는지 마음 따뜻한 이들의 도움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온기가 백화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듯했다.

 

그들의 소원을 들여다보니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걸처럼 꿈을 믿는 힘을 달라는 동화스러운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 각자의 소원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양한 빛깔을 뚫고 더욱 빛나 보였다. 무엇보다도 소원을 이뤄나가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기도 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진정 현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던지고 있다. 나 같으면 더 세속에 찌든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마 그런 것이라면 들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원이라는 건 자신의 노력도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아마도 이 괴로움을 견뎌낼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꿈을 계속 꾸고 이윽고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p.146

 

마지막 아기 고양이의 사연을 본 순간 고양이의 보은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훈훈해졌다.

기적이든 고양이든 믿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별의별 일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말이다.

 

비록 흰색도 아니고 오드아이도 아니지만 아기 고양이도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울냥이들에게라도 한번 소원을 빌어볼까 한다. 내가 얼마나 충실한 집사인데 나중에라도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나미야 잡화점보다도 더 따뜻하고 이상적인 백화점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었다. 진짜 진짜 착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영혼의 때를 씻어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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