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백화의 마법
무라야마 사키 지음, 김현화 옮김 / 직선과곡선 / 2019년 3월
평점 :
절판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327/pimg_7804801562159032.jpg)
세상에 나도는 수많은 불가사의한 이야기나 기적 중에는 진짜 꿈도 섞여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세상에는 마법도 궤적도 존재하고 가끔은 소원이 이루어지는 일도 있을지도 몰라. - p.27
마법이란 단어만 들어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사람들은 행운이나 기적을 바라며 소원을 빈다. 특히 최근 읽었던 일본 소설에서 주로 이런 소재들을 접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이번 이야기가 단연 최고(가공할만한 아름다운 세상, 인공적인 착한 세상)가 아닐까 한다. 게다가 그 마법을 부리는 주체가 고양이라니...
가자하야 마을에는 작고 오래된 호시노 백화점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는 이상한 소문도 있다. 백화점 안을 돌아다니는 오드아이의 흰색 아기 고양이를 본다면 소원 하나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백화점 본관 정문 현관 천장의 스테인드글라스에 있는 아기 고양이 때문에 그런 소문이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사연이 있는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 깜찍한 사연을 간직한 마을의 명소이지만 시장경제가 나빠지면서 백화점도 예전 같지 않다. 자신의 자리에서 그곳을 지켜나가던 직원들은 백화점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소문에 마음이 무겁기만 하다. 낡은 엘리베이터를 조종하는 1년 차 엘리베이터 걸부터 정년퇴직 후 재고용된 백화점의 도어맨에게도 소중한 일터였고 마을 주민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자 놀이공간이기 때문이다.
백화점은 그렇게 경영인 수에 대한 소문만 무성하다가 어느 날 새로이 만들어진 컨시어스 자리에 유코라는 직원이 오게 되면서 백화점 내 분위기가 조금씩 살아나게 된다. 좀처럼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밝은 기운을 내뿜는 그녀를 보며 사람들은 스테인드글라스 안의 고양이가 둔갑한 게 아니냐는 이야기까지 하게 된다. 나도 약간 그런 생각을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환타지물이니까.
이야기는 백화점과 관계된 인물들을 차례차례 등장시키며 엮어가고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백화점의 직원 또는 오랜 단골손님이거나 경영자의 위치에 있는 인물들이다. 엘리베이터 걸, 제화점 직원, 시계 플로어 매니저, 자료실 직원, 창립자 가족, 백화점 도어맨, 어린 시절 '똑똑이’와 ‘복덩이’란 애칭으로 불리던 노부부가 등장하며 각자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들은 정말 고양이를 만나는 기적을 경험한다.
지금 하얗게 빛나고 부드러운 작은 공이 발아래를 지나간 듯했다.
하지만 하얀 빛은 뛰어오르면서 다시 돌아와 두둥실 작은 고양이 형태가 되었다.
오드아이 눈동자를 한 흰 아기 고양이는 이사나의 발아래 앉더니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작게 울었다. - p.97
고양이의 존재를 의심했던 이들은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고양이를 본 뒤 하나씩 소원을 품게 된다. 그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소원은 어느새 이루어져 간다. 소중한 인형을 수선하기도 하고, 그토록 만나고 싶었던 엄마를 만나기도 하며, 이루지 못했던 가수의 꿈을 다시 꿔보기도 한다. 운명의 연인을 만나기도 하고, 자신의 바람대로 즐거움을 주는 사람이 되기도 한다. 그것이 고양이 때문이었는지 마음 따뜻한 이들의 도움 때문이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온기가 백화점을 가득 채우고 있는듯했다.
그들의 소원을 들여다보니 자신을 위한 것이기도 하고 타인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심지어 엘리베이터 걸처럼 꿈을 믿는 힘을 달라는 동화스러운 소원을 빌기도 한다. 그래서일까. 그들 각자의 소원은 스테인드글라스의 다양한 빛깔을 뚫고 더욱 빛나 보였다. 무엇보다도 소원을 이뤄나가면서 과거의 트라우마를 벗어던지기도 하고 콤플렉스를 극복하는 모습을 보며 소중한 깨달음을 얻게 된다. 진정 현재 자신의 모습을 돌아보며 행복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함을 던지고 있다. 나 같으면 더 세속에 찌든 소원을 빌지 않았을까 하지만 아마 그런 것이라면 들어주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소원이라는 건 자신의 노력도 있어야 하는 것이기에.
아마도 이 괴로움을 견뎌낼 강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특별한 사람들만이 꿈을 계속 꾸고 이윽고 그것을 이루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p.146
마지막 아기 고양이의 사연을 본 순간 고양이의 보은이 아닐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더 훈훈해졌다.
기적이든 고양이든 믿는 이들에게 나타나는 것이 아닐까. 그런 믿음을 바탕으로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을까. 세상은 말로 설명하지 못할 별의별 일이 일어나는 곳이니까 말이다.
비록 흰색도 아니고 오드아이도 아니지만 아기 고양이도 아니지만 사랑스러운 울냥이들에게라도 한번 소원을 빌어볼까 한다. 내가 얼마나 충실한 집사인데 나중에라도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져 있지 않을까.
나미야 잡화점보다도 더 따뜻하고 이상적인 백화점 이야기에 금세 빠져들었다. 진짜 진짜 착한 나라에서 벌어지는 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영혼의 때를 씻어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