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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 : 대한민국의 첫 번째 봄
박찬승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9년 4월
평점 :
올해가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해다. 물론 난 뉴스 타이틀 기사를 보고 접했다. 역사 책을 읽으면서도 늘 수박 겉 핥기식이었고 늘 큰 틀만 이해하고 넘어갔을 뿐이었다.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지 100년이나 되었는데도 제대로 된 역사를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에 조금 창피한 마음이 들었다.
이 책은 3.1운동, 33인 민족대표, 독립선언서, 독립운동, 임시정부, 유관순, 안창호, 민주공화국, 2.8독립 선언.... 등 내가 알고 있는 이 조각조각들을 사건의 흐름에 따라 정리해볼 수 있는 뜻깊은 책이다. 저자의 말처럼 옛날이야기가 아닌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거울이 되기에 우리는 더더욱 지난날 그들의 노고를 알아야 한다.
그들의 이야기가 그저 '옛날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한편에 가지고서요. -p.12
1919년은 나라를 빼앗긴 지 10년이 되던 해였다. 그동안 얼마나 우리 민족이 억압과 핍박을 받으면서 살았는지는 더 언급하지 않아도 잘 알 것이다. 그런데 그 나라를 빼앗긴 과정을 다시 읽다 보니 또 속에서 천 불이 날 지경이다.
데라우치의 계략에 속아 자국민이 팔아넘긴 꼴이라니 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가.
이완용, 정말 이 박쥐같은 놈. 좀 더 강해 보이는 세력에 들러붙어 기생하며 추잡하게 살다니. 그렇지만 우리 민족을 노예 부리듯 한 무단통치와 게다가 1919년 1월 21일 고종의 승하는 민심의 변화를 끌어내게 된다. 2월 28일 고종의 국장 준비 속에서 밖으로는 3.1 독립선언서 낭독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냥 민족대표단 33인이 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운동이 일어난 정도로만 알뿐이다. 그러나 책에서는 더 많은 이야기가 나온다. 독립선언서 작성하고 각지로 전달하는 과정이 얼마나 힘들게 이루어졌는지 말이다. 정말 지금처럼 편한 세상에서 자신의 안위를 더 챙기고 있는 시점에서 그들의 희생정신을 생각하면 나라면 그렇게 할 수 있을까 싶다.
하지만 그 시절 희망은 독립뿐이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희망의 불씨가 되었겠지만 지금이 아니면 후손들이 편히 지낼 수 없으리라는 사실을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목숨을 버리고서라도 대한 독립을 위해 한 인생을 바친 것이다.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이 뿌린 희망의 씨앗이 점점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동안 일본은 무차별로 베어내고 상처를 입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민족의 독립의지는 나라밖에서도 꺼질 줄 몰랐다. 청년당, 종교단체, 유학생들뿐 아니라 농민들까지 가세한 독립 염원은 그 어떤 나라에서도 볼 수 없었던 비폭력 만세운동을 만들어냈다. 일본은 절대 뿌리째 뽑아내지는 못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천도교 내 독립운동이 좀 더 눈에 들어왔다. 제3대교주 손병희에 대해 궁금한 점을 찾아보니 어린이날을 만든 방정환선생이 사위였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렇게 그들이 움직이는 내내 민족대표 33인(천도교 15인, 기독교 16인, 불교 2인)이 구성되게 된 배경과 독립선언서가 인쇄되고 배포되는 과정, 또 선언서를 왜 태화관에서 낭독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사연도 구체적으로 알게 되었다. 물론 그 후 33인 중 변절자가 나왔다는 점을 들어 그들의 노력을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끝까지 지조를 지킨 30인을 더 떠올려야 하지 않을까 한다.
붉은 깃발과 태극기를 들고 만세운동은 지속적으로 전국적으로 일어났다. 그 과정에서 무차별로 희생된 사람들뿐 아니라 잘 알려진 제암리 학살사건이나 맹산 사건을 다시 접하니 분노가 치민다.
임시정부 수립 일을 13일에서 11일로 바로잡게 된 경위나 임시정부를 통합하는 과정 등을 상세히 알 수 있어 좋았지만 무엇보다 민주공화국에 대한 의미를 다시 되새겨볼 수 있어 뜻깊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이미 유학생들과 지식인들 사이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는 점은 얼마나 그들이 민주 공화제를 염원했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100년이 지나오는 동안 그들이 우려한 귀족 공화제가 빈부격차라는 심한 불평등을 초래한 한 것 같아 씁쓸하기 그지없다.
이 책은 1919년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저자도 언급했지만 여러 사람의 진술이 엇갈리는 경우도 있고 사실관계가 정확지 않은 부분도 있다지만 중요한 건 많은 이들의 노고와 희생정신이다. 그때의 정신을 되새기는 일은 현재를 살고 있는 이들에게 필요하다. 나라를 빼앗긴 원인을 찾자면 조선시대 붕당정치까지도 거슬러 올라가야 할 것이고 지금의 정치 꼴을 보자면 일제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과거를 또 탓해야 할지도 모른다. 잘못된 역사에 대해 질타만 할 것이 아니라 그런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지금은 그들의 애국심과 숭고 정신을 되살려야 할 때가 아닐까. 나라 탓, 남 탓만을 할 것이 아니라 좀 더 현명한 국민 의식을 되찾아야 할 때다. 그래야 내일의 봄날을 기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