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스페인은 순례길이다 - 지친 영혼의 위로, 대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김희곤 지음 / 오브제 / 2019년 4월
평점 :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28/pimg_7804801562183013.jpg)
제아무리 시대가 편리해져가고 살기 좋아져도 마음은 그렇지 못할 때가 많다. 일상의 꼬리를 붙잡고 하루를 또 넘기다 보면 문득 인생의 허무함마저 밀려온다. 그러다 보면 문득 떠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그것이 가까운 산행이든, 좀 더 먼 여행이든 어디론가 떠나본 이들은 삶을 치유하는 데 있어 그리 거창한 방법이 필요치 않음을 깨닫게 된다. 걸으며 만나는 눈앞의 모든 것들과 길 위에서 만나는 소중한 인연들은 인생의 소중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조건이 된다.
이 책은 순례길에서 만나게 되는 대성당과 수도원 등의 건축투어를 담고 있다. 여행기라기보다는 건물의 역사와 외관 그리고 곳곳의 풍경을 담고 있기에 여행 에세이에서 조금 비껴있다. 그러나 중세 역사에 관심이 있고 건축에 흥미가 있는 이들에겐 정말 매력적인 책이다. 종교적인 이유부터 진정한 자아를 찾기 위한 한 걸음은 자연과 대성당을 바라보면서 치유가 될 것만 같다. 역사를 좋아하고 걷기를 좋아하는 나는 당장이라도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니 말이다.
세계 최대 박물관 산티아고 순례길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28/pimg_7804801562183014.jpg)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방문과 파울로 코엘료의 [순례자]와 [연금술사]의 출간은 사람들을 하나둘 산티아고 순례길로 모여들게 했다고 한다. 중세에는 순례길 위에서 숨진 이들도 부지기수였다고 하는데 그들은 왜 그토록 그 길을 찾았을까.
지금의 '프랑스 길'이라고 불리는 그 길 위에는 대성당이 즐비하다. 사람들이 걷는 그곳에 자리한 대성당은 순례자들의 쉼터가 된다. 중세 시대의 아름다운 건축물에서 뿜어져 나오는 과거의 기운은 바쁘게 사는 현대인들의 지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영혼을 씻어준다. 그래서 그 길 위는 홀로 걸어도 외롭지 않다. 함께 요리하고 저녁을 먹는 그라뇽 알베르게의 다양한 사람들을 보면서 관계의 아름다움을 느꼈다.
인간은 여러 이유로 건축을 했지만, 그 인간을 보듬고 성장시킨 것은 건축이라는 생각이 든다. - p.7
인간은 인간의 욕망을 제어할 방법을 늘 찾아왔다. 신을 향한 것이든 인간을 위한 것이든 대성당이 지닌 의미는 더욱 크게 다가온다. 종교가 없는 이들이라도 대성당을 바라보면 마음의 평온함을 느끼듯 웅장함 앞에서 경건함을 배운다. 저자는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건축과 친해지는 법으로 열두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여섯 번째 "공간이 뿜어내는 생명의 맥박 소리에 귀 기울이라"라는 말이 참으로 와닿았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28/pimg_7804801562183018.jpg)
스페인 건축의 대문이라고 여겨지는 노트르담 대성당에 얼마 전에 큰 화재가 있었다. 불타는 성당의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이 눈물을 흘리고 가슴 아파했다. 수많은 이들의 역사가 되고 앞으로 더 많은 이들의 추억이 되어 줄 성당 앞에 모인 인파들의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세계 각국의 도움으로 성당이 본래의 모습을 찾았으면 좋겠다.
한순간의 실수로 역사적 상징물이 소멸되는 현장 앞에서 많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서로가 연대의식을 가지며 추모하고 자발적 모금까지 이루어지는 모습에 안타까운 마음을 조금 덜 수 있었다. 아마 그 이후 순례길 위에 선 이들은 또 다른 감정으로 첫 발을 내디딜 것이다.
저자도 언급했듯 가장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축은 사람 냄새가 느껴지는 건물이 아닐까 한다. 건축물은 치열한 역사의 현장 속에서 파괴되고 복원되고 또다시 부서지는 험난한 순간들을 지나왔다. 역사적으로 상징적 의미가 큰 건축물들은 전통을 기반으로 또 다른 역사를 창조하게 한다. 개선문이나 에펠탑이 아름다움을 넘어 그 도시를 상징하는 중요한 건축물로 자리 잡고 있는 것처럼.
스페인이 독창적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이유는 피레네 산맥덕이라고 한다. 산맥을 넘어 맞이하는 성당에서 그들은 마음의 안식을 얻었을 것이다. 순례길의 삼대 대성당이라고 불리는 레온 대성당, 부르고스 대성장, 산티아고 대성당 외에도 많은 건축물들이 각기 다양한 상징적 의미를 지닌다. 세바퀴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산타 마리아 데 에우나데 성당의 팔각형의 벽면도 인상적이고 돌무더기만 남은 산 펠리세스 수도원에서는 소멸의 미를 보았다. 산토 도밍고 데 실로스 수도원의 중정은 영화에서 본 듯한 장소 같아 친숙함이 느껴졌다. 웅장한 자태와 주변 경관이 멋스럽게 어우러지는 곳도 있지만 낡고 부서진 채 모진 세월을 견디는 건물도 있다. 모두 순례자들에게는 나름의 의미가 되어 영혼을 달래줄 것이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28/pimg_7804801562183016.jpg)
도시의 매력은 오래된 건물들이 자아낸 기억의 합창이다. -p.166
오래된 시간이 켜켜이 녹아있는 장소는 그 도시를 살아가는 이들뿐 아나라 순례자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스페인하면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듯이 옛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은 삶의 여유를 찾아주는듯하다.
프랑스 길을 따라 줄지어 선 대성당과 수도원, 성당들은 대부분 성모 마리아의 이름을 포함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품속 같은 그 길 위에서 인생을 사랑하고 인간애를 느끼게 되나 보다.
책 속 문장이 단순히 역사와 건축의 외관만 묘사하고 있었다면 지루했을 테지만 시선을 따라 흐르는 묘사도 볼거리다. 가슴으로 그려보는 풍경이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아서 저자가 앉아서 바라본 그 자리로 옮겨앉고 싶었다. 햇살의 움직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는 관찰력이 참으로 돋보인다.
운무가 파란 능선 위에 솜사탕처럼 걸려 있었다. 마음도 안개구름을 타고 흘렀다. 돌집 아래 나무로 얼기설기 역 근 천막 속 형형색색의 장식품들이 고개를 내밀고, 거친 벽에 매달린 표주박들이 아침 햇살을 기웃거렸다. 여기저기 농기구가 아무렇게 놓여 있는 길가에 검은 돌조각들이 담장을 따라 부르다 산장에 벽을 따라 올라타고는 곧바로 지붕을 눌러썼다. 라 파의 아침이 세상의 모서리에서 기지개를 켜고 일어나고 있었다. -p.250
웅장함과 소박함, 과거와 현재, 낯섬과 익숙함이 공존하는 그곳이 순례길로 사랑받는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그곳에서 느끼는 새로움들이 배움으로 빛을 발하고 낯선 공기속에서 친숙함을 찾으며 서로를 위로하게 되나 보다. [스페인 하숙]이라는 프로를 본 적은 없지만 찾아보고 싶어진다. 세계 각지에서 온 이들이 알베르게에 모여 먹는 따뜻한 밥 한 끼와 그들이 나누는 삶의 이야기가 궁금해지기 때문이다. 아마도 따뜻한 인간애에 힐링이 될 것 같다.
![](https://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9/0428/pimg_7804801562183017.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