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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프트 - 고통을 옮기는 자, 개정판
조예은 지음 / 북다 / 2025년 3월
평점 :
네이버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저자는 2016년 단편소설 "오버랩 나이프, 나이프"로 제2회 황금가지 타임리프 공모전 우수상을, 같은 해 장편 소설 "시프트"로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대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소설집 "칵테일, 러브, 좀비", "트로피컬 나이트", 장편소설 "뉴서울파크 젤리장수 대학살", "스노볼 드라이브", "테디베어는 죽지 않다", "입속 지느러미", "적산가옥의 유령", 연작 소설집 "꿰맨 눈의 마을", 단편소설 "만조를 기다리며" 등을 썼습니다. 그럼, 저자의 첫 장편소설 <시프트>를 보겠습니다.

인적 없는 해변의 폐건물에서 한 구의 변사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신고자는 어른들 몰래 데이트를 하려던 고교생 커플이었습니다. 변사체는 피 웅덩이 한가운데 반쯤 잠겨 있었는데, 얼굴 한쪽은 괴사되었고 전신에 크고 작은 타박상이 가득했습니다. 옆에는 날이 고르지 않은 식칼 한 자루가 놓여 있었습니다. 사망 추정 시각은 4월 3일 오후 9시경, 사인은 자상에 의한 과다 출혈이지만 조사해 보니 이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사망자는 55세 한승목으로 10년 전 천령교라는 사이비의 교주였는데 홍콩, 마카오 등을 전전하다가 얼마 전에 한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가족 사항은 세 살 아래 한승태라는 남동생이 있는데 소재 파악이 안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하실에서 죽은 이가 자필로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노트가 발견되었는데, 2003년에서 2005년까지 3년 동안 사라진 10세 안팎 아이들의 신원이 적혀 있습니다. 기록된 아동은 총 열 명이고, 전부 실종 신고된 아동들입니다. 벽에 붙어 있던 사진 속 아이는 지난달 실종 신고된 9세 유준서란 아동인데 아직 돌아오지 않았답니다. 현장에서 발견된 흉기는 다른 사람의 혈액이며, 피해자 얼굴에 뒤덮고 있던 건 악성 흑색종인데 한 달 전 받은 건강 검진 기록에는 질병 사항이 없었습니다. 사망 이틀 전에 만난 동네 주민들이 본 얼굴도 반질반질했다고 합니다. 후배 준혁의 보고를 들은 형사 이창은 며칠 전 다방에서 노인에게 들은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교주 아들을 죽인 신자가 잡힌 지 얼마 안 돼 갑자기 희귀병으로 죽었습니다.
완치된 사례가 거의 없는 희귀한 유전병을 앓고 있던 이창의 누나를 고치기 위해 그의 아버지는 천령교의 열렬한 신자가 되었습니다. 재산을 모두 바쳤고 결국 교주의 축복으로 누나는 말끔하게 나았습니다. 병이 완치된 후 결혼한 누나와 매형, 그의 아버지가 다 죽었는데, 누나의 딸 채린이 누나의 희귀병을 그대로 물려받았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았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아이를 보며 이창은 누나에게 일어났던 기적을 떠올렸고 그때부터 천령교 교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허무하게 죽은 채로 발견된 것입니다.
실종된 준서가 멀쩡하게 돌아왔다는 소식에 이창은 나곡서로 향했고, 경찰서 근처의 CCTV 촬영본에서 야구 모자에 마스크를 쓰고 있는 청년이 아이의 손을 잡고 경찰서 근처까지 오는 장면을 봅니다. 이창은 만약 교주에게 아들이 있다면, 또 그가 살아있다면 CCTV 화면에서 본 청년의 나이쯤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한승목을 죽인 범인은 누구이며, 교주의 아들은 살아 있는 건지, 기적은 진짜 존재하는 건지, 자세한 이야기는 <시프트>에서 확인하세요.
왜 사람들은 안 되는 것을 되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거는 걸까요?
어떻게 스스로를 버리고 타인을 희생시키면서까지 무언가를 바랄 수 있죠?
p. 229
이 모든 것은 불가능한 것을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가족이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렸다면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구하고 싶을 것입니다. 그렇게 절박한 사람의 마음을 현혹시키는 악인이 있습니다. 악인은 절박함을 이용해 돈을 벌고, 권력도 얻으려 합니다. 남에게 고통을 옮기는 능력을 지닌 어린 찬은 인질이 된 동생 란 때문에 악인의 꼭두각시 노릇을 합니다. 악인도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찬을 오랫동안 이용하려고 찬의 고통을 옮겨 담을 그릇인 아이들을 데려옵니다. 주기적으로 고통을, 병을, 상처를 옮겨야 하는 찬은 죄책감에 매일 괴로워하고, 결국 내면의 중요한 부분을 포기하며 생기를 잃은 채 살아갑니다. 동생 란도 자신의 존재 자체가 원망스럽습니다. 자신만 아니면 찬이 능력을 쓸 필요가 없을 것이고, 괴로워하지 않을 테니까요. 차라리 능력이 없었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 텐데, 형제는 스스로를 원망합니다. 사람의 탈을 쓰고 있지만 사람이라면 하면 안 되는 짓을 하는 악인들이 세상에는 많습니다. 이런 세상에 내던져진 아이들을 지켜줄 어른은 어디 있나요.
제4회 교보문고 스토리대상 대상 수상작인 <시프트>는 생생한 캐릭터들의 모습과 속도감 있는 내용 전개 덕분에 책을 읽고 나면 한 편의 영화를 본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래서인지 2017년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 및 드라마 등 영상제작자들에게 가능성 있는 작품을 소개하는 북투필름(BOOK TO FILM)에 선정되었고, 네이버 웹툰의 원작 소설입니다. 역시 사람들 보는 눈은 똑같은가 봅니다. 첫 장편소설이 이렇게 완성도가 높으니 작가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수밖에 없고, 그 기대에 부합한 작품들을 작가는 계속 쓰고 있습니다. '조예은 월드'가 어디까지 펼쳐질지 더욱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