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의 기술 (리커버) - 침대에 누워 걱정만 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를 위한 7가지 무기
개리 비숍 지음, 이지연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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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 글래스고에서 태어나고 자란 저자는 1997년 미국으로 이주했습니다. 그는 자기계발 코치로서는 독특하게도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와 한스 게오르크 가다머, 에드문트 후설의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했습니다. 누구보다 평범한 사람이었던 저자는 이제 세계 곳곳을 다니며 아일랜드에서는 가톨릭 신부를, 태국에서는 불교 승려를 코칭하는 독보적인 영향력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가 쓴 첫 책, <시작의 기술>을 보겠습니다.



환경은 사람을 만드는 게 아니라, 그가 어떤 사람인지 드러낼 뿐이라는 그리스 철학자의 말처럼 진짜 내가 누구인지는 나의 환경을 보고 아는 게 아니라 그 환경에 내가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내가 운명을 좌우하든지, 운명이 나를 좌우하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내가 멈춰 서거나 꾸물댄다고 해서 인생이 기다려주지는 않습니다. 내가 뭘 하든 인생은 계속됩니다. 그래서 저자가 가장 먼저 가르치는 단언의 문장은 바로 '나는 의지가 있어'입니다. 의지가 크면 어려움도 크지 않습니다. 우리는 늘 무언가를 증명하는 일에서 이기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시간이 없다는 것, 혹은 내가 꾸물대는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내가 이기고 있는 영역이 무엇이든, 한 가지는 깨닫게 됩니다. 그 영역에서 이기는 데 내가 정말로 능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렇게 대단한 나의 삶에서 바꾸고 싶은 것을 떠올리고, 그 목표를 잘게 나누고, 그것을 시작에 옮깁시다. 그러면 성공은 당연한 결과입니다. 왜냐면 '나는 이기게 되어 있기' 때문이죠.


삶은 늘 완벽할 수 없기에 '나는 할 수 있어'를 단언해야 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것만 고집한다면 새로운 것들이 나타났을 때 흔들리게 됩니다. 그럴 때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해'의 문장이 필요합니다. 나는 내 생각이 아닙니다. 생각 또는 감정에 따라 휘둘리지 마십시오.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나를 규정해'를 명심해야 합니다. 나의 한계는 나를 포함한 누구도 모릅니다. 내가 뭘 할 수 있고, 내가 뭘 할 수 없을지를요. 그러니 '나는 부단한 사람이야'로 앞으로 전진하는 사람이 됩시다. 내 인생이 어렵고 복잡했던 이유는 욕심과 기대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로 현재를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내 앞에 이미 변화가 놓어져 있을 겁니다. 이제 나의 진짜 인생을 시작하기만 하면 됩니다. 7가지 시작의 기술을 발판 삼아서요.




책 한 권 읽고 인생이 180도 바꿨다거나, 인생 대박이 났다는 말을 믿을 사람이 있나요. <시작의 기술>은 우리들에게 말합니다. 발판 하나만 밀어준다고요. 한 단계 높은 정도의 진정한 잠재력에 닿을 수 있는, 우리들이 밟고 올라서기에 딱 맞는 높이의 단단한 발판 하나만을 제공한답니다. 솔직한 이 한마디 말 덕분에 이 책에 대한 신뢰가 높아집니다.


기억합시다. 나를 둘러싼 인생의 여건이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버거워도, 결론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은 그 환경을 이해하고 대처하는 나의 태도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해답은 바로 내 '안에' 있습니다. 자주 하는 생각은 삶을 바꿉니다. 이 책에서 알려준 7가지 자기 단언의 문장으로 내 머릿속의 생각을 바꾸고, 그 생각은 말이 되고, 그 말은 나의 행동이 되며, 그 행동은 습관이 됩니다. 그 습관이 나의 가치가 되고, 그 가치가 결국 내 운명이 됩니다. <시작의 기술>을 읽고 생각했습니다. 오늘부터 행동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변화할 내가 기대됩니다.


당신더러 답을 찾으라는 얘기가 아니다.

당신이 곧 답이다. (p. 25)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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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툰 - 5분뚝딱철학 순한맛
김필영 지음, 김주성 그림 / 스마트북스 / 2022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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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하고 회사에서 20여 년을 근무하고 있는 저자는 회사를 다니면서 뒤늦게 철학을 공부하여 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강의했습니다. 저자는 2019년부터 "5분 뚝딱 철학" 유튜브를 촬영, 편집, 섬네일 작업까지 모두 직접 하고 있습니다. 힘들긴 하지만, 덕분에 철학 공부에 목표도 생기고, 구독자가 20만 명이 되는 등 호응이 좋아 재미있게 하고 있습니다. 5분 뚝딱 철학의 순한 맛, <철학툰>을 보겠습니다.



철학의 원조는 '탈레스'입니다. 탈레스는 천문학자이자 수학자이고 과학자였습니다. 인류 최초로 일식을 예측했고, 피라미드 그림자로 피라미드의 높이를 계산했습니다. 또한 달력에서 한 달을 30일로, 일 년을 365일로 나눈 사람이었습니다. 신화의 시대에서 탈레스는 대담하게도, 변화무쌍한 자연도 근본적으로는 가장 단순하고 변하지 않는 무언가로 구성되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탈레스는 이성(로고스)으로 논리적 답을 찾으려 했고, 자연현상의 원인을 자연법칙 속에서 찾고자 했습니다. 탈레스의 제자인 아낙시만드로스는 평평한 지구가 물 위에 떠 있다고 생각한 스승의 생각에 반해 우리가 사는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지구가 우주의 허공에 떠 있다는 것을 압니다. 하지만 2500여 년 전에 지구가 허공에 떠 있다고 생각하다니 당시로서는 대담한 가설입니다.


서양철학은 칸트에 이르러 집대성되며 한 단계 도약했습니다. 거의 10년에 걸려 "순수이성비판"을 썼고, 그 안에서 '우리 인간은 무엇을 알 수 있는가?'라는 인식의 문제를 다룹니다. 칸트에 따르면 우리 인간은 사물의 진짜 모습을 알 수 없습니다. 인간은 인간의 방식으로 사과를 인식하고, 개는 개의 방식으로, 박쥐는 박쥐의 방식으로 사과를 인식할 뿐이므로, 이 사과의 진짜 모습, 즉 실체는 알 수 없다고 합니다. 칸트는 대상의 진짜 모습을 물자체라고 하고, 인간의 방식으로 자각한 것을 현상이라고 합니다. 이로써 인식의 방향이 바뀌었습니다. 예전엔 우리가 인식하는 대상을 중시했지만, 칸트는 '인간이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는가'에 주목했습니다. 인식의 중심이 대상에서 인식하는 주체인 인간으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입니다.


미국의 분석철학자 게티어는 1963년 2쪽 반짜리 짧은 논문 '정당화된 참인 믿음은 지식인가'로 전 세계 철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플라톤은 지식이란 정당화된 참인 믿음이라고 정의했습니다. 플라톤에 따르면 지식은 '참, 믿음, 정당화' 등 3가지(JTB) 조건을 만족해야 합니다. 그런데 게티어는 1963년 이 조건을 만족해도 지식이라고 할 수 없는 사례가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플라톤 이후 2500여 년 동안 이어져온 지식에 대한 정의에 반기를 든 것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JTB 조건을 바꾸거나, 또는 조건을 덧붙여 플라톤의 지식에 대한 정의를 지키려 했지만 이런 시도는 번번이 실패했습니다. 게티어 문제는 아직까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게티어 문제는 현대 인식론에서 풍부한 논의를 이끌어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습니다.


20세기 초 생긴 '논리실증주의'는 관찰과 경험을 통해 검증 가능한 과학적 명제만을 받아들였습니다. 검증이 가능하면 과학 이론이 될 수 있고, 검증이 불가능한 형이상학·윤리학·미학·종교와 같은 것은 비과학이라는 것입니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귀납법을 과학의 표준적 방법론으로 삼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그래서 영국의 철학자 칼 포퍼는 검증 가능성이 아니라 반증 가능성을 강조했습니다. 반증이 가능하면 과학 이론이 될 수 있고, 반증이 불가능한 것은 비과학이라고 하는데 이를 '반증주의'라고 합니다. 우리는 과학적 방법론을 객관적으로 생각하지만 미국의 과학철학자 핸슨은 과학적 방법론도 과학자들이 주관적으로 만들어낸 것일 뿐이라고 합니다. 관찰과 실험 과정에 과학자가 입증하고 싶어 하는 이론이 개입되며, 그 결과도 왜곡될 수 있습니다. 과장하면 인간은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며, 과학자들도 예외가 아닙니다. 핸슨은 관찰의 객관성, 결국 과학의 객관성에 의문을 제기한 것입니다. 미국의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에 의하면, 과학은 점진적으로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패러다임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혁명적으로 바뀐다고 합니다. 핸슨이나 쿤은 비슷한데 이들을 반과학주의적 과학철학자로 볼 수 있습니다.




철학을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사람들은 철학을 공부해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있고, 현명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저자는 여기에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고 합니다. 철학은 재미있기 때문이랍니다. 세상에 철학 말고도 다른 재미있는 것들도 많이 있지만 철학이 주는 재미에는 공허함이 없답니다. 뿌듯함과 성취감이 있을 뿐입니다. 이렇게 좋은 철학은 어려워서 대부분 공부하고 싶어도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 우리들을 위해 '철학은 학오 싶은데 서툰 이들을 위한 책', <철학툰>이 있습니다. 이 책은 철학 유튜브 1위인 "5분 뚝딱 철학"의 순한 맛으로 재미있는 카툰과 군데군데 있는 병맛 코드를 읽으면서 어려운 철학을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합니다. 고대의 탈레스부터 현대 데리다에 이르기까지 서양철학사에 등장하는 중요한 철학자들의 이론을 빠짐없이 다루고 있기에 내용 또한 충실합니다. 이제 철학이 더 이상 어렵지 않을 겁니다. <철학툰>이 있으니까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고 쓴 후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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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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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름2.0'과 '프리미어', 'GQ'에서 기자로 일한 저자는 에세이 "버티는 삶에 관하여", "나의 친애하는 적", 소설 "개포동 김갑수씨의 사정", 60~80년대 한국 공포영화를 다룬 "망령의 기억"을 썼습니다. 그럼, <살고 싶다는 농담>을 보겠습니다.



악성림프종 진단을 받고 병동 무균실에 입원하고 다시 일반 병동으로 옮겨 다른 사람들과 함께 병실을 쓰게 된 저자는 남을 불편하게 만드는 환자와 자신에게 털모자를 준 간호사 한 분에 대해 썼습니다. 그땐 병원에서 주는 건가 하고 별 감흥 없이 고맙다고 말하고 넙죽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죽고 싶은 마음에서 다시 살고 싶은 마음으로 바뀐 그 밤을 경험한 후에 털모자를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왜 제때에 제대로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된답니다. 세상을 살면서 감사함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해 후회한 적은 참 많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결론에 사로잡혀 있으면 정말 중요한 것들이 사소해집니다. 결론에 매달려 있으면 속과 결이 복잡한 현실을 억지로 단순하게 조작해서 자기 결론에 끼워 맞추게 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삶을 망칩니다.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결심들을 잘 지켜내어 성과가 쌓이면 삶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결론이 아니라 결심입니다. 인간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알아서 작동한다고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고장 날 때, 얼마나 무기력해지고 비참한 기분이 들까요. 이런 기분은 직접 당하지 않고선 논할 바가 없지만 자살 기도를 했으나 밤새 정신없이 힘들어하다 보니 살아 있었다는 작가, 이제 살기로 결정했고 그래서 전처럼 절망적이지 않답니다.


억울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살다 보면 크고 작은 배신과 실패를 직면하게 될 일이 생깁니다. 이에 대처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비슷한 일이 한두 번 반복되다 보면 평상시에도 방어적인 자세를 취하게 됩니다. 피폐한 마음을 가진 자들의 안식처는 자조와 비관입니다. 자신은 피해자라는 생각 안에 안도하며 머물게 됩니다. 그런 자신을 구하기 위한 자력구제의 수단으로 무엇을 선택하든 자신은 늘 옳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평가로부터 헤어나지 못하고 자신과 주변을 파괴합니다. 인간은 그렇게 타락합니다. 하지만 누군가는 자신을 향한 평가로부터 스스로를 분리시키고 그걸 해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묵묵히 합니다.


평가에 잠식되어서는 안 됩니다. 평가와 스스로를 분리시켜야 합니다. 마음에 평정심을 회복하고 객관성을 유지합니다. 언젠가 반드시 우리의 노력을 알아보고 고맙다고 말할 사람이 나타날 것입니다. 끊임없이 가다듬고 정진하고 버틴다면 반드시 그날이 옵니다. 피해의식과 결별하고 타인과 더불어 살아가기로 결심합시다. 무엇보다 등 떠밀려 아무런 선택권이 없었다는 듯이 살아가는 게 아닌 자기 의지에 따라 살기로 결정하고 당장 지금 이 순간부터 자신의 시간을 살아내라는 것, 오직 이것만이 우리 삶에 균형과 평온을 가져올 것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우린 항암투병을 한다는 말을 주위나 미디어에서 접한 적이 있을 겁니다. 그래서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임을 조금쯤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아픈 것은 아니기에 그 아픔과 힘듦을 100% 이해할 순 없습니다. 차라리 죽고 싶다는 말이 절실히 와닿을 만큼, 딱 그렇게 아프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그전까지 있는지도 몰랐던 내 몸의 부분들이 고장 나서 작동하질 않는다면 얼마나 무기력하고 비참해질까요. 차라리 정신이라도 흐릿하다면 그렇게까지 힘들지 않을 겁니다. <살고 싶다는 농담>은 그런 것들을 다 겪고 다시 살고 있는 허지웅 씨의 이야기입니다. 우린 손쉽게 잊고 삽니다. 그때의 아픔과 힘듦을. 그때 얻은 경험과 교훈을 잊고 삽니다. 머리론 알지만 행동이 따라주지 않습니다. 입으로는 말할 수 있어도 자신에게 적용하기 점점 어려워집니다. 바닥에서 깨달았던 것들을 까먹는 것입니다. 그렇게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실수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되뇌고 적고 상기시키며 후회하며 살아가는 것 또한 인간이라서 그럴 겁니다. 그러니 우리 살아봅시다.



내 힘으로 온전히 서서 달리고 있었던

그 최초의 감각을 떠올려봅시다.

도움을 받는다는 것과 마침내 혼자 중심을 잡는다는 것.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가지를

우리는 그렇게 오래전에 배웠습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반복합니다. (p. 5)


아마 행복이라는 건

삶을 통해 스스로에게 증명해나가는 어떤 것일 테다. (p.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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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
정세진 지음 / 고즈넉이엔티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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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에서 미술을 전공하고 큐레이터로 활동한 저자는 제4회 전국문화콘텐츠 스토리텔링 공모전 시나리오 부문 우수상 수상 후 시나리오 작가 활동을 겸했습니다. 그럼, 저자가 쓴 첫 소설집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를 보겠습니다.



납치범인 나는 부잣집에 들어가서 부모로 보이는 사람에게 이 집 딸을 데리고 있다고 말합니다. 부부는 미심쩍은 듯 바라보다가 지푸라기라고 잡고 싶은 표정으로 어디에 있는지를 묻습니다. 난 가만히 있었고 부부는 외국인 가사도우미를 내보내고 집 안으로 초대했습니다. 나는 1억만 주면 무사히 가정으로 보내겠다고 했습니다. 이만한 집에서 1억 정도는 큰돈이 아닙니다. 주차된 안주인의 차만 해도 1억이 넘으니 그 정도는 부담이라고 생각지도 않습니다. 나도 염치가 있는 인간으로 지나치게 터무니없는 것을 요구하는 행위에 가책을 느낍니다. 하지만 1억 정도라면 나의 노동과 위험도를 적용했을 때 합리적이고 적정한 금액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1억 현금을 여기에서 받으면 아이가 있는 곳을 알려줄 테니, 나중에 아이를 찾은 후 자신을 신고하지 않을 숨겨둔 비밀을 들려달라고 요구합니다.


나는 태어날 때부터 운이 좋았습니다. 임신 7개월 즈음에 엄마는 외딴섬에 여행을 떠났는데, 갑작스러운 조산 기운에 섬을 나오려고 했으나 날씨 때문에 갇혀버리는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양수까지 터지고 어쩔 수 없이 출산을 시도하려는데 운 좋게 그 섬에 여행 온 산부인과 의사와 산부인과 간호사인 민박집 딸도 고향에 휴가차 내려와 있어 아이는 무사히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엄마는 출혈이 멈추지 않아 다음 날 죽었습니다. 살아오면서 나는 수도 없이 많은 행운을 손에 쥐었고 그와 비례해 불행한 일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놀라운 사실 하나를 깨달았는데, 내게 행운이 오면 곧바로 다음 날 불행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백화점에 우연히 갔다 백만 번째 입장 고객이 되어 제주도 여행권을 경품으로 받은 다음 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아 병원에 입원해야 했고, 20대 청약통장 하나로 아파트에 당첨이 되고 다음 날 퍽치기를 만나 두개골이 함몰되는 부상으로 사경을 헤맸습니다. 커갈수록 행운의 빈도수는 점차 늘어났고, 이제는 지나치리만큼 끝없이 밀려듭니다. 그러 때마다 불행을 맞이해야만 했고 나는 고통받았습니다. 이제는 온종일 쏟아지는 행운을 거부하는 게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사람을 거부하고 혼자 지내는 나에게 회사 계약직 여사원이 자꾸만 눈에 들어옵니다.


난 호르몬이 분비되지 않아 피부와 뼈의 성장이 멈추고 그래서 외관상 늙지 않는 선천적 희귀질병,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습니다. 나의 병은 몸이 작은 왜소증과 다르고 정신의 성장이 멈춰버린 피터팬 증후군과도 다릅니다. 나와 같은 사람들의 평균 예상 수명은 30세라고 하는데, 그보다 더 오래 산 경우도 존재하고, 급작스러운 노화가 진행되면서 평균보다 더 일찍 죽는 경우도 있습니다. 난 6살 정도로 보이지만 18살입니다. 이런 결함을 예상한 부모는 3살 때 놀이공원에 버렸고 이후 보육원에서 자랐습니다. 그리고 만 18살이 되는 내년 2월이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보육원에서도 퇴소하고 사회로 나가야 합니다. 나처럼 보육원 퇴소를 앞둔 친구들은 자립능력은 물론 대처하는 능력도 미숙합니다. 그런데다 조언해 줄 어른이 없다는 막막함과, 보호해 줄, 내 편이 되어줄 가족이 없다는 사실에 두려움을 갖습니다. 난 어려 보이는 외모로 조금 불법적인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고 있습니다. 버려진 아이들이 잠시 머무는 영아 일시보호소의 입양을 담당하는 사회복지사 봉팔이에게 입양되고 싶다며 내 속마음을 털어놓습니다. 가족이 어떤 것인지 한 번이라도 가져보고 싶다며, 그렇게 6살 남자아이로 잠깐 살다가 눈치채기 전에 파양될 거라고요.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에는 7편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목이며 첫 번째 이야기 '나는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니다'는 아이를 납치한 납치범이 1억 원을 요구하며 남에게 절대 알려지길 원치 않는 숨겨진 비밀을 들려달라고 말합니다. 매해 2019년이 되면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는 무한 반복을 지속하고 있는 투자계의 전설을 인터뷰하는 신문 기자의 이야기 '인터뷰', 행운 다음 날 불운이 꼭 오는 남자에게 찾아오는 행운 이야기 '어쩌면 운이 좋아 우연처럼', 자고 일어나니 평행 세계를 경험하게 된 한때 잘나가던 소설가 이야기 '도적',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난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산 자들의 땅', 피아노 학원에서 집에 오는 길에 납치당해 어딘지도 모르는 섬에서 일하는 15살 해영의 이야기 '나를 버릴지라도', 하이랜더 증후군을 앓고 있는 주인공이 입양 자격이 안 되는 가정에 6살 남자아이로 입양되는 이야기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가지만 나의 시간은 멈췄다'가 실려 있습니다.


저자는 비현실 같은 SF 세계관부터 미디어에서 볼 수 있는 현실까지, 상식 같은 이야기를 뒤집어 마술 같은 이야기로 바꿉니다. 그 안에서 느끼는 감정은 일곱 가지 이야기보다 더욱 다채롭습니다. 존재하고 있지만 결코 조명 받지 못했던, 우리 사회에 배제된 것들을 이야기로 하기 때문에 이야기의 여운이 더욱 오래 남습니다. 그래서 저자의 다음 소설이 기다려지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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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 - 세상 끝 서점을 찾는 일곱 유형의 사람들
숀 비텔 지음, 이지민 옮김 / 책세상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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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코틀랜드에서 가장 큰 헌책방 '더 북숍'의 주인인 저자는 낚시와 사이클링을 즐기며 고양이와 함께 서점에서 살고 있습니다. 위그타운 북페스티벌의 운영위원으로, 매년 북페스티벌이 열리는 동안 200명이 넘는 초청 작가에게 술과 음식을 제공합니다. "서점 일기", "서점 주인의 고백" 등을 썼으며, 20년 동안 손님들에게 시달린 경험을 바탕으로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을 출간했습니다. 그럼 내용을 보겠습니다.



어느 곳에서나 자신의 지식이나 정보를 자랑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습니다. 속칭 '전문가' 부류의 사람들은 대체로 자신의 지식을 들어줄 사람들을 보유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대부분 학자나 권위 있는 업계 평론가의 말들을 자신의 말로 둔갑시켜 떠벌립니다. 진정한 전문가는 어려운 내용도 쉬운 말로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는 데 반해, 이 사람들은 어려운 단어를 늘어놓아 상대방을 어리둥절하게 만들고 그 모습을 즐깁니다. 비슷하지만 저마다 다른 전공자, 성가신 사람, 유용한 사람, 고서 수집가, 가내정비사를 분류합니다. 저자는 이 중에서 서점에서 내보내고 싶은 손님은 전공자와 성가신 사람이랍니다. 유용한 사람과 가내정비사는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점점 더 보기 힘든 사람들이며, 고서 수집가는 저자에게 감사를 표해야 할 사람들이랍니다.


'어린 자녀가 있는 가족' 부류의 사람은 말 그대로 어린 자녀와 함께 서점을 방문합니다. 미혼의 사람들은 어린아이들의 행동들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자녀가 있는 사람들은 백 프로 공감을 할 것입니다. 저자는 이제는 이해한답니다. 아주 어린아이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고, 그들의 부모는 힘든 육아에서 아주 조금이라도 문화의 향기를 맡고 싶어 한다는 것을요. 지친 부모, 버려진 아이, 열성 부모, 책덕후 꿈나무를 소개하는데, 책을 좋아해서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는 사람은 바로 책덕후 꿈나무일 겁니다. 아이는 서점에 들어오길 바라지만 부모가 절대 들어가지 않을 거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행동하고, 심지어 부모가 아이들을 서점 밖으로 끌고 나가기도 합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자는 적나라한 현실에 따귀를 맞는 기분이라고 합니다.


'직원'이라는 분류에 중고책방 주인이 있습니다. 그들은 트위드를 입고 파이프 담배를 피우며, 진짜 책을 좋아하고, 손님을 철저히 경멸한답니다. 중고 책방 주인은 오래 일해서 처음 이 일을 어떻게 하게 되었는지 기억하질 못하지만, 대부분 이 일이 첫 번째 직장일 겁니다. 얼마 정도 일하며 일이 익숙해졌을 때 친절하고 연로한 고용주가 서점을 인수하겠냐고 제안하고, 그 기회를 덥석 물어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을 확률이 높을 거라고요. 읽으면서 정말 그런 중고 책방 주인이 많을 거라 생각이 듭니다.


이외에도 서점을 방문한 서른 개가 넘는 부류의 '손놈'들을 <귀한 서점에 누추하신 분이>에서 확인하세요.




저자는 20년 동안 중고서점을 운영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그렇게 손님으로 온 사람들을 9개의 분류했고, 분류마다 손님의 특징적인 면을 부각시켜 소개합니다. 실제의 사람들은 훨씬 더 복잡하고 미묘하게 다르지만 이렇게 뭉뚱그린 점을 설명하기 전에 미리 양해를 구합니다. 편의를 위해, 그리고 무례한 '손놈'들을 위해 린네의 생물분류법을 빌려 묶었는데, 책을 다 쓰고 보니 썩 좋은 방법은 아니었던 것도 같다고 토로합니다. 이젠 서점보다 온라인 서점을 더 이용하고 친숙하진 터라 동네 서점은 찾아보기 더욱 힘듭니다. 절판된 책을 찾기 위해 거의 20년 만에 다시 찾은 중고서점 거리는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많았던 중고서점들이 문을 닫았고, 가게 몇 군데만 문을 열었습니다. 서비스를 시작한 지 오래되지 않은 대형 중고서점이 다니는 곳 가까이에 있다는 편리함에 저도 그곳을 이용합니다. 이렇게 인터넷 서점과 대형 중고서점이 생활 곳곳을 차지하고 동네 서점의 설자리는 점점 좁아지고 있는 현실에, 스코틀랜드의 헌책방의 주인의 이야기는 흥미롭습니다. 나는 서점이나 가게에서 어떤 '손놈'으로 있었는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에서 지원받은 도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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