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푸트니크의 연인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임홍빈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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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루키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상하게 에세이는 나와 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인데, 소설에 대한 끌림은 강한 편이다. 처음 본 <상실의 시대>가 강렬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고, <상실의 시대>를 읽은 시기가 20대 초반이었기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왜 좋냐고 물으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쉽게 책을 내려놓지 못하겠다. 단순히 재밌다라고만 표현하기에는 부족한데, 그 느낌과 생각과 감정을 표현하기도 쉽지 않다. 내 표현력의 한계를 절감한다.


  이 책은 제목 정도만 알고 있었다. 어떤 책을 재밌게 읽으면, 특히 소설 같은 경우에는, 작가의 전작들을 찾아 읽는 편은 아니다. 다만 신간들이 나오면 읽어보려고 하는 편이다. 이 책이 <상실의 시대> 전에 나왔는지, 후에 나왔는지는 모르겠다(찾아보니 후에 나왔다). 내가 <상실의 시대>를 읽은 것도 출간되고 한참이나 시간이 흐른 상태였기 때문이다. <상실의 시대>를 재밌게 읽었고, 4권이 나올 것만 같았던 <1Q84>를 재밌게 읽었고, 최근의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도 재밌게 읽었다. 중간 중간 달리기나 재즈, 클래식, 위스키에 관한 에세이들을 읽었고, 단편소설 <4월의 어느 맑은 아침에 100퍼센트의 여자를 만나는 것에 대하여> 등을 읽었다. 


  이 책은 양장 개정판으로 다시 출간이 되면서 구입을 하게 되었다(역시 새로 나와야 내 눈에 띄나 보다). 책 뒷표지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연애소설 3부작의 완결편'(여기서도 출판 순서를 알 수 있기 하다)이라는 문구가 있다. 정말로 작가가 그렇게 의도한 것인지, 출간 뒤에 사람들의 평을 카피로 옮겨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실의 시대>가 연애소설이었구나', 하는 의문과 함께 '3부작을 다 봐야 하나', 하며 뭔가 묘한 반감같은 것이 생겨버렸다.


  우선 내용은 앞서 말한대로 책을 놓지 못하는 재미가 있다. 불완전하며 뭔가를 상실한듯한 주인공들의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고 생각하면, 책의 카피가 묘한 감정을 일으킬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왜 제목에 '스푸트니크'를 사용했는지, 왜 시작을 '크로니크 세계전사'의 '스푸트니크' 정의와 2호 안의 생물 '라이카'를 언급했는지 알 것 같았다. '안다'고 하기보다는 '공감'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 같다. 외로움. 주위에 수많은 타인들이 있으며, 그들과 어떻게든 연결이 되어 있지만, 스푸트니크 2호 안의 '라이카'처럼, 어딘가 고립된 곳에 혼자만 있는 듯한 외로움. 그 외로움을 간직한 3명의 이야기다.


  책 읽기가 중반을 지나 막바지에 다다르면서 한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처음엔 뭔가 현실적인데, 점점 더 비현실적으로 가는 이야기 방식. <1Q84>가 그렇고,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이 그랬고, <기사단장 죽이기>도 그랬다. 그러면서 아, 또 아무런 뚜렷한 결론 같은 이야기는 아니겠구나, 하는 생각. 그래서 좀 실망을 했달까. 아쉽다고 해야 할까. 재밌게 이야기를 끌고 가다가 뭔가 흐지부지 되고마는 느낌이다. 회사에서 뭔가 명확한 것들을 생각해야만 하는 요즘이라서 더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쉬움은 있었지만, 그래도 하루키 소설은 하루키 소설이다. 다음에도 아마 뭔가 새로 나온다면 여전히 나는 구매버튼을 누르고, 책을 쉬이 놓지 못하며 읽고 있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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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기다릴게 바람그림책 159
도요후쿠 마키코 지음, 한미숙 옮김 / 천개의바람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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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어릴 때도 책을 많이 읽었던가. 그렇진 않았던 것 같다. 부모님은 책을 많이 읽어 주셨던가. 기억이 별로 없었던 걸 봐서는 부모님이 책을 많이 읽어주셨던 것 같지도 않다. 부모님을 원망하거나 탓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내가 싫어 했을 것이다. 내 기억에 책이 재미있어서 읽기 시작한 것은 20살이 지나서였다. 그 계기는 물론 부모님이 아니었고 말이다. 아이들이 책 읽는 것을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진 것은, 내가 책에 대한 재미를 너무 늦게 알았기 때문이다. 조금이라도 일찍, 책은 재밌는 것이라는 걸 알게 하고 싶다.

  책을 읽으면 감상을 남기는 것은 일종의 습관 같은 것이다. 읽고 나서 생각도 정리해 볼 겸 내용을 다시 한번 상기할 겸 해서 말이다. 그러다 yes24의 리뷰어클럽을 알게 되었고, 리뷰를 쓸 때 마다 서평단을 모집하는 도서들을 한번씩 보게 되었다. 책을 좋아하는 정말 많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서평단에 당첨되기는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책은 아이들과 함께 읽으면 좋을 것 같아 신청했다.

  아이들에게 책 읽는 것을 강요할 수는 없지만, 읽으면 좋을 것 같은 책들이 많이 있다. 다행히 아이들이 책 읽는 것에 크게 거부감이 없어서 책을 잘 읽는 편이다. 이 책과 비슷한 느낌의 책들도 몇 권 읽어 줬던 기억이 있다. 일본 작가들 특유의 감성이랄까, 그림체도 일본 작가 특유의 둥글둥글 하면서 파스텔톤의 따뜻한 느낌의 그림이고 말이다. 첫째는 이미 이런 책을 읽을 나이는 넘어섰고, 둘째는 이 책을 받았을 때부터 좋아했다.

  점심을 준비하고 있을 때라 점심 식사 이후에 같이 읽어 볼 생각이었는데, 아이가 혼자 책을 읽기 시작한다. 다 읽고선 식사 준비를 하는 내게 와서 책 내용을 알려 준다. "아빠, 이 책 재밌다. 양 인형이 공원에 남겨졌는데, 까마귀도 오고, 고양이도 오고, 나중엔 주인이 다행히 찾아 갔어." 띄엄띄엄 전체 줄거리를 요약해서 알려주는 딸 아이에게도 마음에 드는 내용이었던것 같다.

  점심 식사 이후에는 혼자서 한 번 전체적으로 읽어 봤다. 딸 아이의 멋진 리뷰만큼이나 아이들에게 좋은 내용의 책이었다. 어린 시절 내게는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많이 없었다. 지금은 나름 내 것이라고 할 만한 것들이 여럿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그것도 잠시다. 애착이 쉽게 사라진다. 잃어버리는 것은 아니겠지만, 잊어버린 것일 테다. 잊혀진 나의 소유물에 대해 생각을 해 본다. 아이에게 잃어버리는 것과 잊어버리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고 싶지만,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책에는 '독서지도안'이 제공된다. 사이트에서 다운 받아 사용할 수 있는데, 독후 활동으로 참 잘 되어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이 책을 읽은 후에 이용하면 아빠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 보다 훨씬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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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병자호란 - 하 - 격변하는 동아시아, 길 잃은 조선 만화 병자호란
정재홍 지음, 한명기 원작 / 창비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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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上)권에 이어지는 하(下)권이다. 본격적으로 '병자호란'에 대한 이야기가 그려진다. 광해군을 몰아내고 인조반정으로 왕권을 차지한 인조는 이괄의 난과 같은 내부의 문제부터 정묘호란과 병자호란의 외세 침략까지 많은 시련을 겪은 왕이었다. 역사적 사실에 둔 팩션도 많은 부분 작용했겠지만, 왕이라는 위치에서 보여준 인조의 삶이 조금은 답답해 보이기까지 했다. 나는 누군가와 협업을 하면서 거의 늘 을의 위치에 있다. 그렇기에 늘 나의 어려움이 1차원적이다. 갑의 위치에서도 어려움은 있을 것라고 생각하지만, 그래도 내가 우선인 것이다. 그럼에도 인조의 모습에서 올바른 위정자의 모습을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회사에서도 정치는 존재한다. 드라마(최근에 <협상의 기술>이라는 드라마도 그렇다)에서도 많이 등장하는 사내 정치까지는 아니겠지만, 부쩍 요즘은 우리 회사에서도 정치적인 부분들이 많이 느껴진다.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나다. 싫은 것들은 바로 표정으로 들어난다. 생각과 감정에 솔직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첫 직장은 나와 맞는 부분이 거의 없었다. 술을 좋아함에도, 술 마시는 그 회사의 분위기도 싫었다. 그렇게 정치적인 부분들이 덜한 지금 회사에 꽤 오래도록 다니는 중이다. 여기는 좀 덜하다 생각했는데, 최근에는 여기 저기서 사내 정치가 느껴진다. 상사들이 그런 정치적인 부분들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싶었는데...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어디든 자기의 영달이 최고인 사람들은 존재하고, 자기에게 잘하는 사람들은 능력과 상관없이 내치기 어려운가 보다. 어딜 가든 다 비슷하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이기심과 이타심, 개인주의에 대해 생각을 했다. 회사에서 이타심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가끔 마주치는 이기적인 모습들에 조금은 오지랖을 떨어보기도 한다. 이기심의 발현은 누군가에게 피해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문유석 작가님의 <개인주의자 선언>을 재밌게 읽었었다. 내용 중에 이기주의자와 개인주의자에 대해 언급하는 부분들이 생각났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회사생활을 둘어보게 되고, 개인주의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이타심의 발현까지는 나도 하기 어렵겠지만, 개인주의자가 되기 위해서는 노력해 볼만 할 것 같았다.


  병자호란 이후 청으로 끌려갔던 소현세자 부분을 보면서 드는 생각도 있었다. 소현세자가 인조의 뒤를 이었다면, 조선은 조금 더 빨리 변화했을까. 영화 <2009 로스트 메로리즈>(안중근의 시대보다 더 앞선 시대로 돌아간다고 생각해 보았다)처럼, 소현세자 시대로 돌아가 소현이 왕이 되었더라면 우리나라는 어떤 길을 걷게 되었을까. 역시 가설이고, 이미 지나간 일일뿐이다. 그런데도 요즘의 상황들을 보면 어지럽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생활만 조금 편리해 졌을 뿐, 사람들의 의식과 생각은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소현세자에 대한 가정도 필요없어 보인다. 나는, 우리는 어떻게 달라져야 변화하는 것일까. 어려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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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라디오 - 우리는 내내 외로울 것이나 아무튼 시리즈 71
이애월 지음 / 제철소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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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디오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그렇다고 어떤 시간에 꼭 맞춰 반드시 들어야 하는 프로그램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MBC FM4U 주파수인 91.9의 방송을 즐겨 들었다. 김기덕님이 오전 11시부터 12시까지 진행하면서 팝송을 틀어주었던 방송을 기억하고, 이어지는 '정오의 희망곡'과 '두시의 데이트'도 방송 시간 내내 모두 다는 아니고 간헐적으로 들었다. 오전 11시 방송은 프로그램이 자주 바뀌었지만, '정오의 희망곡'이나 '두시의 데이트'는 DJ의 변화만 있었을 뿐 프로그램은 현재까지도 오래 지속되고 있다. 오후 4시 프로그램들과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인 6시 '배철수의 음악캠프', 같은 MBC지만 95.9 채널에서 방송(지금은 91.9로 옮겨온 것 같다)되던 '별이 빛나는 밤에'도 애청 프로그램이었다. 


  이상하게도 오디오가 비어 있는 상황이 어색했다. 학창시절에도 회사에서도 거의 모두 이어폰 혹은 헤드폰을 끼고 있었다. 그냥 흘러나오는 음악이 좋았다. 가요도 팝도 좋았다. 심지어 KBS 클래식 FM이나 같은 채널에서 오후 5시쯤 방송되던 국악 프로그램도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이유를 알게 되었는데, 저자의 표현대로, 나의 외로움 때문이었던 것 같다. 사연을 꼭 귀담아 듣지 않아도, 듣게 되는 이야기들에 꼭 공감하지 않아도, 그저 귀에 무언가 들림으로 인해 나의 외로움이 조금 진정이 되고 위안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은 라디오 작가가 들려주는 라디오에 대한 이야기이다. 라디오 방송국에 대한 이야기 뿐만 아니라, 작가의 글쓰기, 주변 이야기, 방송국에서 라디오 작가로서의 현실 등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린시절 라디오와의 만남을 소개하는 부분에서는 저자의 나이가 나와 비슷하지 않을까, 싶은 에피소드가 등장해서 반가웠다. 카세트 테이프 위쪽의 두 구멍을 막아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길 기다려 녹음하던 그 시절. 노래가 시작하는데도 DJ의 멘트가 이어지면 원망했고, 노래가 끝나기 전에 광고가 나오면 그 녹음은 실패했던 그 기억. 반갑고 아련했다.


  TV를 잘 보지 않았기에, <무한도전>이라는 프로그램을 꽤 나중에야 보게 되었다. 인기가 한창일 때, <무한도전>의 도전 과제는 라디오 DJ였다. 그 방송이 라디오를 조금은 다르게 생각하게 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 책도 그렇고 말이다. 뭔가 아련하다는 그 느낌. 운전을 할 때가 아니면 라디오를 들을 시간이 많이 없는 요즘인데, 이 책을 보면서 라디오에 대한 나의 생각과 <무한도전>에서의 그 느낌이 살아났다.


  퇴근하고 집에 가는 30~40분 동안은 거의 매일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듣는다. 얼마 전 배철수 DJ의 사정으로 조우진 배우가 스페셜 DJ를 했었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배우인데, CD 플레이어에 대한 이야기를 했었다. MP3가 보편화되던 그 시절에도 CD플레이와 CD를 가지고 다니면서 들었다는 이야기. 나도 그랬다. 편리한 MP3도 좋았지만, CD플레이어에서 MP3로 넘어가는 일을 나는 쉽게 할 수 없었다. 라디오가 그렇다. 언제든 쉽게 원하는 음악을 들을 수 있는 현재임에도, 자의가 아닌 선곡들과 이야기로 채워지는 라디오를 떠나기가는 쉽지 않다. 그러면서 만나게 되는 다양하고 넓은 음악도 좋고 말이다. 아! 오전에 출근하면서 10~20분 정도 듣는 '오늘 아침' 프로그램. 얼마전(벌써 몇 달이 지났구나) 정지영 아나운서에서 가수 윤상님으로 DJ가 바뀌었는데, 정지영 아나운서 막방분은 다시듣기로 전체를 다 들었다. 나까지 눈물날 뻔 했다. 라디오 그런 것 같다. 이 친근함. 아무튼, 어쨌든, 내게도 '라디오'다. 

트라우마가 있다는 건 마음에 해결되지 못한 슬픔이 있다는 뜻이다. 받지 못한 사과가 있다는 뜻이다. - P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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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소리에 대하여
해리 G. 프랭크퍼트 지음, 이윤 옮김 / 필로소픽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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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라도 그럴 것이다. 이 책의 제목을 보면 호기심이든 그 무엇이든 책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사실 원제인 'On Bullshit'만 보면, 그렇게 관심이 가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Bullshit'이라는 단어는, 모국어가 영어가 아니어도, 욕설이라는 것을 안다. 우리말처럼 다채롭게 욕을 구사할 수 있는 언어는 드물다고 생각한다(외국어를 잘 모르기에). 그런 언어 환경에서 'Bullshit'이라는 단어가 그렇게 눈에 들어올 것 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소리'라니. 이렇게 고급스런 느낌의 표지에(더군다나 양장본이다) 저런 욕설이 떡 하니 박혀 있다니. '개소리'라는 어감과 표지. 그리고 저자의 첫 문장,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처럼, 요즘처럼 '개소리'가 만연하다고 느껴지는 세상에서, 이 책을 선택하지 않을 이유를 찾을 수 없었다.


  책은 우선 재밌다. 'bullshit'이라는 단어에 대한 사전적 고찰과 함께, 비슷하게 사용되는 다른 어휘들, 예를 들면 거짓말이나 협잡 등의 단어들과의 차이를 설명한다. 'bullshit'이라는 단어의 사회적 위치를 철학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철학이라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여느 철학책들처럼 마냥 어렵지만은 않다. 특히나 개소리가 다른 단어들과 달리 현재 사회에서 (사회적으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 읽는다면, 철학을 떠나 사회 현상에 대한 에세이처럼 재밌게 읽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원서를 찾아 볼 엄두를 내지는 못하겠지만, 이 책은 번역이 참 좋은 것 같다. '헛소리', '흰소리', 우리 어머니 표현처럼 '쉰소리' 등 많은 소리들이 있음에도 '개소리'라는 단어의 선택은, 비속어이긴 하지만, 다른 어떤 말보다 이 책의 'bullshit'에 착 달라 붙는 표현같다. 이 책을 전반적으로 쉽고 재밌게 읽은 이유의 90%는 번역 때문이다. 책에서 옮긴이의 말은 잘 읽지 않는 편인데, 이 책은 옮긴이의 말까지 다 읽었다. 옮긴이의 말도 참 좋았다. 책에 대한 내용으로 써 내려 가긴 했지만, 요즘의 사회 현상들에 대한 옮긴이의 생각을 책의 내용으로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따로 책을 내셔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갖게 했다. 


  앞에서 언급한 저자의 첫 문장처럼,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그 만연함에 내가 일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누군가와 대화를 하면 오디오가 비는 상황을 잘 못 견디는 타입인지라, 개소리가 많았을 수도 있겠다, 라는 생각을 해본다. 우리 어머니의 표현대로 '쉰소리 그만해라'를 자주 들었던 걸 보면, 거의 확실하게 나는 그동안 개소리들을 해 온 것 같다. 내 주변에 미안함을 전한다.

우리 문화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 가운데 하나는 개소리가 너무도 만연하다는 사실이다. 모든 이가 이것을 알고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는 개소리를 하고 다니니까. - P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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