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장 주권은 양도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2장 주권을 분할할 수 없다는 것에 대하여

   ◦ 주권은 보편적 의지(일반의지)로 절대 나눌 수도 없고분할할 수 없다주권은 개인에게 소유된 권리이며보편적 의지는 국가 법률을 이루는 토대이다국가는 이루는 3가지이다입법행정사법으로 보편적 의지는 입법에 해당되며입법은 주권자의 동의로 이루어지며사적인 이익에 반영 되서는 안 된다하지만 행정적인 요소 정부의 법령은 사소한 개별적 이익이 첨언되는 부분이 있다.

   ◦ 한국의 법체계는 법률시행령시행규칙으로 나누며법률은 국회에서 시행령은 대통령의 승인시행규칙은 국무위원인 장관의 승인 아래 반포된다법률은 보편적 의지를 가지고 있지만시행령과 시행규칙은 그 정부의 구성원의 의지를 반영하기 때문이다법률이 정부에 의해 교체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오로지 국민들은 법률에만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만일 정부가 법률 위에 있다면 정부의 통치권자는 민주주의국가의 행정기관 수장이 아니라 전제군주의 참주가 될 것이다보편적 의지로 탄생된 법률은 어느 특정세력의 이익을 위해 존재하는 규칙이 아니라 만민에게 균등한 권리를 주기 위한 것이다.











▲ 3장 보편적 의지가 오류를 범할 수 있는지에 관하여

   ◦ 전체의 의지와 보편적 의지에 대한 부분은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중요한 부분이다보편적 의지는 개별적인 구성원들의 이기심을 모두 제외하여 남은 하나의 결정체이다즉 당장 자신의 이익과 무관한 이익으로 보편적 의지로 구성된 의사결정이다그러나 전체의 의지는 개별의 의지들이 모여 하나의 파당을 이룬 것이다이런 부분은 한국사회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보편적 의지가 아닌 파당을 만드는 전체의 의지는 자신들의 이익에서 찾을 수 있다.

   ◦ 국내 현실에서 신생아출산 감소는 인구감소로 이어지고앞으로 수 십 년 후 한국은 국방정치경제적 활동이 매우 어려울 정도로 문제가 발생한다그 이유는 젊은 계층들이 출산을 꺼리고 있으며결혼 자체도 주저하고 있다이에 대해 국가적으로 보편적 의지를 찾는다면 젊은 세대를 늘려 한국사회가 유지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은 보편적 의지이다.

   ◦ 하지만 이것을 막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경제학에서 자본이 생기는 것은 임금이윤지대이다임금은 물가에 비해 인상수준은 부족하고지대는 계속 오른다지대의 상승은 곧 부동산의 상승이고집값이 오르는 것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원하고 있다젊은 부부가 결혼하면 우선 집이 필요한데부동산 가격으로 집을 구매하지 못하고결혼을 보류한다또한 인플레이션에서 동산은 상업행위로 증대하지만그 자체로 조건적인 물가상승을 야기하지 않는다.











   ◦ 과거 식량 같이 특정물품에 가격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생산력과 기술력의 발전은 생산가격이 저하(유지)시킨다그러나 상품에는 자본투하에서 유동자본과 고정자본이 있으며고정자본은 공장의 기계도 있지만토지세도 있다결국 원료의 가격이 오르지 않고임금이 오르지 않는데도 현재 물가가 계속 상승한다면 고정자본 내 지대가 원인이다경제학에서 지대의 상승은 임금저하물가상승으로 이어진다부동산 상승은 지대의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고화폐(동산 및 부동산공급량을 증대시켜 물가를 올린다.

   ◦ 사람들은 부동산 투자로 차액을 노리지만집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이건 큰 부담이고집이 필요한 사람들이 집을 구하는 순간에 그들은 부동산 매매로 통한 차액을 노린다이런 개인적 의지가 전체의 의지로 대변되어 정치적 행위로 이어진다보편적 의지로 본다면 한국은 인구감소로 멀지 않은 미래 국방력 감소경제생산성 저하로 우려된다그러나 전체의 의지는 그런 점을 무시하고 당장의 이익을 원한다보편적 의지가 무너지는 것은 그 나라와 사회의 존속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 4장 주권의 한계에 대하여

   ◦ 주권에 대한 보편적 의지에서 개별적 이익에 대한 보상은 없으나그가 국가에 대한 의무와 주권행사는 그에게 책임을 요구하나그 개인은 자신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국가로부터 받고 있다가령 공화국(共和國)이란 정치학적으로 그 나라에 사는 사람이 어떤 위험에 의해 재산과 생명을 위협을 받지 않아야 하는 점이다공화국의 위협이 닥치면 개인은 공화국을 위해 목숨을 걸어야 하나그 개인은 언제나 공화국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점이다.

   ◦ 주권은 개인과 개인의 관계가 아니라 개인마다 국가와의 계약관계이다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에서 공적인 영역에 대하여 다루지그 영역에 사적 이익을 논해서는 안 된다국가와 개인 간의 관계에서 사적인 이익이 반영될 경우 그 사회는 심각한 균열이 발생된다만일 어느 개인에 대한 이익을 보장하는 법률이 존재하는 경우 그 사회는 민주주의가 아닌 다시 봉건귀족사회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 5장 생살권에 관하여”, 6장 법에 관하여

   ◦ 사람은 생물체이기에 자신의 생명을 언제나 보존하기를 원하고생명의 위험이나 그런 상황에 처해질 것에 대하여 자신 스스로 혹은 사회적인 보호 아래 생존권을 추구할 수 있다그리고 사람의 생명은 각 개인마다 부여된 것이고어떤 사람이 다른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는 행위는 곧 사회적으로 맺어진 계약을 스스로 깨는 것과 같다그는 자연적으로 인간이나사회적으로 그 법칙을 깬 죄인이다사회적 합의에서 모두 공평에게 주어진 것에 대해 파괴하는 자는 그 자신도 파괴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 법률은 자신에게 권한을 주기 때문에 다른 자에 대해 똑같은 권한을 준다만약 타인의 권한을 파괴하는 순간그는 그 파괴한 권한만큼 자신에게 되돌려 받는 것이다그가 만일 법칙을 깨고 사회에 남는 순간그 사회는 계약위반에 대하여 용인하는 것이고다른 어떤 사람이 또 다른 타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순간그 사회는 혼돈의 사회가 될 것이다그러므로 계약을 위반한 자는 사회의 적이 되는 것이고그에게 남은 것은 법적인 처형과 추방만 남을 뿐이다그에 대한 사면은 재판관도 행정관리도 아닌 주권자이나그 행위는 매우 드물다.

   ◦ 한국처럼 삼권분립인 사회에서 죄인에 대한 처벌은 사법부가죄인에 대한 사면은 행정부가 수행한다문제는 행정부의 권한에서 사면되는 죄인들의 부류가 전혀 정당하지 못한 점이다루소가 말하는 사면의 범주는 살인에 대한 부분이다한국에서 살인죄는 중형에 처해 장기간 투옥되나그것은 단지 개인 대 개인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행위에 불과하다사회적으로 약자를 내몰아 죽게 만드는 살인에 대해서는 아무런 대응을 구사하지 않는다.












   ◦ 자유주의 철학과 관련하여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을 참고하면죄인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지만그 죄인이 죄를 저지르지 않게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죄를 저지르는 인간은 개인이므로 어떻게든 처벌을 하면 되나그 자체만으로 사회 내에서 그 죄인이 저질렀던 똑같은 죄들이 멈추지 않는다그 이유는 바로 그 사회가 문제가 있다는 점이다.

   ◦ 법이 제대로 작동되는 나라는 공화국이고공화국은 개인의 연령이나 성별을 불문하고 모두가 법이란 이름아래 그 누구도 타인보다 위에 있거나 아래에 있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주권행위는 모두가 공정하게 대우를 받을 수 있는 권리이다그러나 행정행위는 개인 간의 관계나 혹은 어느 개인의 명령인 점에서 주권행위와 다르다.

   ◦ 보편적 의지는 언제나 올바르지만그것을 지도하는 판단이 언제나 현명한 것은 아니다그러므로 보편적 의지가 대상을 있는 그대로때로는 마땅히 지녀야 할 모습으로 보도록 하여 그것이 찾고 있는 올바른 길을 제시해야 하고개별적 의지들의 유혹으로부터 그것을 지켜주어야 한다개인은 공익이 무엇인지 알지만 배척하고공중은 공익을 원하지만 잘 분별하지 못한다보편적 의지를 제대로 사회적으로 반영하기 위해서는 그것에 대하여 제대로 설파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고 그것이 바로 입법자가 되는 것이다.

▲ 7장 입법자에 대하여

◦ 입법자는 행정가나 주권자도 아니며오로지 자신의 이익과 무관한 것에 대하여 법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다입법자의 자격은 자신을 위한 법이 아니라 자신과 무관해야 할 것이며자신이 다른 행정적인 업무와 겸임해서도 안 된다입법자가 될 수 있는 자는 다른 사람과 다르게 비범한 영혼을 소유자고높은 정신력을 토대로 인간사회에 필요한 법칙들을 만들어 낸다루소가 말한 것처럼 입법자는 기계를 발명해내는 기계 기사고군주 내지 행정가들은 그 기계기사가 만들어낸 기계를 조립하여 작동시키는 자이다.

   ◦ 기계가 제작되는 과정에서 순수하게 만들어진 것이나그것을 조립하여 어떻게 굴리는지에 대해서는 행정가들이 처리할 부분이다그렇기에 입법자는 행정가들이 오용할 수 있는 행정착오를 방지하기 위해 법률을 만들 수밖에 없다입법자들이 만일 덕이 없고 부족하다면 인민들이 그들을 따를 줄 리가 없고만일 그럴 자들이 위치한다면 그들의 능력한계를 보고 인민 스스로가 그들을 입법자의 자리에서 끌어내릴 것이다.

   ◦ 그러나 세상은 모두 <사회계약론>처럼 되지 않는다아리스토텔레스의 말처럼 그 나라의 정치수준은 그 나라의 국민의 수준이란 말도 있다입법자가 수준이 낮은 인간이라면 그 나라의 국민 역시 수준이 낮다는 것은 반증하여 준다민주주의 정치제도는 가장 현명한 인간도 참여할 수 있지만가장 형편없는 인간도 참여할 수 있다루소는 이런 점을 알았지만입법자들만이 세상을 바꿀 수 있기에 그 미래성에 걸었다.











   ◦ 하지만 니체는 루소를 경멸했다니체는 대중사회에 대한 무지함과 경박함에 대해 끊임없이 비판했다니체가 민주주의를 부정한 이유는 대중이 모인 자리는 온갖 거짓말과 위선이 넘치며도덕이란 이름은 광기에 의해 파멸될 수 있음을 설파한다토크빌은 민주주의는 가장 전체주의가 되기 좋은 정치제도라고 말한 이유도 그렇다결국 입법자를 만드는 것과 그 입법자들이 만드는 법이 인민에게 효용적인지를 아닌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인민 그 자체에 대해 판단해야 한다는 점이다.

▲ 8장 인민에 관하여”, 9장 및 제10장 인민에 관하여 계속

   ◦ 루소가 보는 인민이란 바른 판단을 내리기보단 어릴 적에 유순하나 나이가 들면 완고해지고자신들이 가진 완고함을 버리기가 어려운 존재다게다가 인민을 통치하고 있는 군주조차 인민과 동일한 수준의 인식구조를 가지고 있다인민이 제대로 정치적 판단을 내리기 위해서 때를 기다려야 하며억지로 그들을 주입해도 의미가 없다.

   ◦ 인간이 사는 국가에서 정치구조가 복잡할수록 인민에게 주어지는 부담은 늘어가고단순하면 단순할수록 부담이 적어진다관료제도가 복잡한 국가의 통치자는 정무에 시달려 자신의 눈으로 직접 인민의 생활을 지켜볼 수 없다그러나 하급공무원들은 중앙에서 벗어난 지방에 위치함에 따라 직접적으로 국가를 다스리는 것은 그들 자신이 되고그들은 위로는 중앙정부를 속이고 아래로는 인민생활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 사이즈가 맞지 않은 옷은 찢어지거나 빠지게 되는 마련이고국가의 경우 소멸하거나 무너지게 된다인민에게 살기 좋은 정부란 통치구조가 복잡하지 않고직접적으로 행정부와 인민간의 관계가 유지되어야 한다루소가 보는 진정한 의미의 강대국은 나라가 넓은 나라가 아니라 인민에 대한 통치가 잘 이루어지는 나라로 본다국가 영토는 넓어도 봉건제도의 모순으로 몰락한 사례를 보자면 중국의 역사가 그렇고프랑스도 그렇다.

   ◦ 통치제도에 따라 그 곳에 살아가는 인민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고그들에게 자유라는 의지가 있기 전까지 그 속박을 벗어날 수 없다그런 점에서 통치제에 대해 알기 위해서 2가지 조건을 관찰해야 한다. 1가지는 영토다른 1가지는 인구의 수다인구가 적은 나라에 영토가 넓을 경우 국가를 지키기 어렵고영토는 좁은데 인구가 많으면 식량의 부족으로 국가존속이 어렵다따라서 국가는 적당한 영토와 적당한 인구 비례가 맞아야 강대국이 된다.

   ◦ 이런 비례에 따라 국가는 전쟁을 통해 정복하기도 하고정복당하기도 한다인민의 수에 따라 그 나라는 영속이 가능한지 아닌지가 갈리게 되는 것이다따라서 입법자는 인민과 영토의 규모그리고 주변 국가의 형태를 보면서 법을 만들어야 한다법을 만들 때는 언제나 현재의 기준이 아니라 앞으로 전망예측을 통해 결정해야 한다인구 규모는 단순히 전체 영토 면적 대비만이 아니다인구가 주거하는 곳이 산지평야강가해안가에 따라 다르며각 토지별 특성에 따라 인민들은 모여 살거나 흩어져 살기 때문이다.

   ◦ 인민의 특성인민의 생활인민의 모습에서 입법자는 고민하게 될 것이다어떤 국가를 만들기 위해 어떤 인민이 존재하는 곳이 적당할까루소는 이해관계로부터 자유롭고법이란 참된 굴레를 받지 않은 자뿌리 깊은 관습과 미신에 지배받지 않은 자갑작스런 침입에도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고인접국가 전쟁에 개입하지 않으며오로지 자신들의 힘으로 전쟁에 저항할 수 있는 자들이다이들은 서로 다 알 수 있고서로 도움을 주거나 받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인간이다.

   ◦ 루소는 그런 자들은 코르시카 섬(프랑스 동남쪽 섬나라)의 주민이라 한다루소가 제시한 직접 민주주의 실현 가능성이 가능한 나라는 그런 규모의 나라인 것이다현대사회로 보자면 나라규모가 작지만 모든 국민들이 서로를 알아보고 각자 빈곤함과 나태함이 없이 성실하게 삶을 살아가는 인간이다하지만 대부분 국가는 거대하게 변했고이런 정치제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우리는 지방자치단체로 통해 직접적인 민주주의 의사를 표현할 수밖에 없다그러나 그조차도 어려운 게 현실이다.











   ◦ 루소는 자신의 저작 중에 <코르시카 헌법 구상>이란 책을 저술한다인구수와 관련하여 루소는 항상 남자는 30세 이전에 결혼하여 아이를 2명을 낳는 것을 권장한다그가 시민의 자격으로 국가를 운영하는데 필요한 사회적 구성인원이 계속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다사회가 영속되지 않으면 개인이 속한 사회가 붕괴되고그에게 남은 것은 늙은 몸이다이런 관점은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의 원리>에서도 나온다사회의 영속되지 않은 개인은 사회적 혜택을 받기 어려운 것이다.

   ◦ <사회계약론>에 추후에 등장하는 내용이나루소가 가장 좋지 않게 보는 국가 중에 하나가 인구가 증가하지 않고 계속 축소되는 사회이다그것은 그 나라의 미래의 존속을 흔들리게 하는 것이고인민의 생활이 매우 위협받는 점이다한국은 보편적 의지로 인구감소로 인해 군부대 운영 같은 국방외교 문제만 아니라 경제 역시 문제다생산된 물품을 팔려면 소비자가 존재해야 한다만일 인구가 감소하면 당장 유아 및 아동에 대한 의류음식병원(산부인과등이 축소되고이들이 계속 성장할 쯤 교육기관이나 교육관련 산업이 축소된다마지막 이들이 성장이 완료되면 다양한 산업이 축소되어 한국경제는 위기를 맞이하는 것이다.

   ◦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정치경제학으로 중요한 이유는 인민의 존속은 그 사회가 유지되는가 아니면 소멸하는가에 대한 갈림길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이 위기에서 구출해줄 수 있는 정치적인 제도로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이고그것은 입법자들이 어떤 법을 만들어낼 수 있는가에 따라 달라진다하지만 입법자는 인민의 손에 그리고 국민의 손에 의해 만들어지는 자리이다인민의 생활을 결정하는 것은 정치제지만그 정치제를 만들어가는 것은 인민 스스로인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사회는 결국 쇠퇴하게 되는 것이다물론 이런 부분은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흔히 볼 수 있다아테네 도시국가가 오만에 찬 거드름으로 스파르타에게 망했고스파르타는 겸손함과 성실성을 잃고 빈부격차로 인해 결국 패망했다.










▲ 11장 다양한 입법 체계에 관하여

   ◦ 입법의 조건은 2가지를 고려하여 제시한다그것은 자유와 평등인데자유가 없으면 인간은 스스로 행동할 수 없으며평등은 자유라는 것은 공평하게 부여받는 것이다즉 평등이 없다면 자유는 없는 것이고루소는 <인간불평등기원론>처럼 사회적도덕적 불평이 인간을 억압하고 그 문제점을 소유에 대한 부분을 지적한다사유재산에서 인간이 자신을 팔만큼 가난해서는 안 되고(인간이 노예처럼 되기에), 누군가를 살만큼 부유해서는 안 된다(노예보다 위에 있어서 그 자신이 더 심한 노예가 된다).











   ◦ 루소는 입법에 대한 부분에서 그 사회의 조건산업체계를 고려하고산업체계와 사회는 인민이 거주하는 기상지리환경적 조건에 따라 조율할 것을 권장한다입법체계는 결국 그 사회에 가장 알맞은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이다만일 그 사회를 고려하지 않은 법률이 세워지면 인민들은 혼란에 빠지고빈부의 격차로 인한 불평등은 심각하게 될 것이다만일 평지에 쌀과 곡식을 재배하는 국가에서 세금을 곡식이 아닌 소금이 된다면 소금을 구하지 못하는 인민들은 모두 다 감옥의 죄수가 될 것이다.

▲ 12장 법의 종류

   ◦ 법은 언제나 인민에게 좋은 결과를 주어야 한다따라서 첫 번째 기본법(헌법)은 항상 인민의 공익을 위해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공공에 대한 이익에서 보편적 의지에 따르기에 그 상황에 맞추어 법을 정비해야 하기 때문이다그리고 두 번 째 법은 통치제와 구성원 간의 법이다주권에 의한 기본법은 존재하더라도 인민이 생활하는데 있어서 필요한 제도적인 요소에서 또 다른 법적인 제도가 필요하다민법(民法)은 사적인 영역에서 활용되는 법률이다주권에 대한 법은 기본법으로 정해놓고 있으며그 안에서 자유로운 인민들이 생활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적영역이므로 이에 대한 법률이 필요하다.

   ◦ 세 번째는 사람과 법 사이에서 대한 법률로 이른바 형법이나 사법처리를 말한다형법은 죄를 저지른 자에 대한 형벌을 규정하고 이에 대한 처리를 명시한다네 번째는 법률로 정해진 게 아니라 인간의 생활이나 혹은 오랜 역사와 문화 속에서 누적된 습관법이다한국사회에서 습관에 의한 법은 때로는 기본법이나 민법을 초월하는 경우가 있다그것은 신화적(어느 특정사회에 살고 있는 인간의 공통된 무의식요건이 강한 것이라 볼 수 있다.

   ◦ 한국에서 이런 습관에 의한 법은 명절이 있으며어떤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모두 집에서 쉬거나 고향에 간다최근 전통문화가 해체되면서 차례나 제사 절차가 사라지고 있지만아직도 한국은 명절문화는 소중한 습관이다하지만 반드시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가령 남자는 만 20세 이상 되면 군복무를 하게 되어 있지만때에 따라서는 하지 못할 경우가 있다군복무를 하지 않은 자에 대한 사회적인 차별은 법적으로 금지되어 있으나현실적으로 차별을 두고 있는 게 보편적인 현상이다.

▲ 2부에 대한 정리 및 고찰

   ◦ <사회계약론> 2부는 주권에 대한 고찰전체의 의지와 보편의 의지에 대한 설명이 있었다보편의 의지는 이른바 우리에겐 헌법을 시작하여 법률을 말한다법률은 그 규칙이 지배되는 곳에 살아가는 사람 모두가 지켜야 하는 약속이다만일 법률을 어기는 자가 나오면 루소는 그에 대해서 사회계약을 어긴 자는 그에 합당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명시한다즉 보편적 의지로 만들어진 법 앞에 모두가 지키는 순간 모두에 대한 평등을 기반으로 하는 자유가 보장되기 때문이다그것은 자신의 생존권이 보장받는 것이고자신의 생존권을 보장받는 권리에 대해 인민은 자신의 공화국을 지킬 의무가 있다.

   ◦ 루소가 추구하는 민주주의 사회는 자유와 평등을 중시한다그리고 그 정체는 한국이나 대부분 자유주의국가에서 채택 중인 대의(간접)민주주의가 아닌 직접민주주의이다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적당한 규모의 영토와 인구가 형성되어야 하고그들은 서로를 잘 알 만큼 신뢰가 필요하며서로에게 도움을 주지 않을 정도로 가난해서 안 된다루소는 사유재산으로 인한 사회적도덕적 불평등이 바로 인간 사회를 타락시키는 것으로 보았다.

   ◦ 지나치게 가난하면 인간은 비굴해지며자신의 생존권을 유지하지 못하게 되고이런 부류가 증가하면 인구수가 증가하지 않아 공화국의 사회적 기능유지가 불가능하게 되므로 결국 국가는 붕괴할 수 있다공화국이 제대로 잘 운영되려면 우선 공화국의 지배이념인 법률을 확립되어야 하고법률을 만들어야 할 부류는 주권자도 행정가도 아닌 입법자가 가능하다고대 그리스 사회에서 입법자는 외국인이 맡은 경우가 있는데외국인은 자신이 그 나라의 이해당사자가 아니기에 공정한 시선객관적인 시선이 필요하다.

   ◦ <사회계약론>이 정치사회학으로 높은 도서인 이유는 정치체에 대한 고찰에서 사회학이란 개인을 사회 속의 하나의 존재로 간주하여 객관적인 자세로 주변 상황을 볼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입법자가 만일 외국인이 아닌 국내인일 경우 그는 자신의 이해관계를 넘어 모든 것을 초월할 수 있는지 비범한 자이어야 하는데만일 그가 개인적 이익에 함몰되어 있다면 공익을 위한 법률을 제대로 정비할 수 없다일반 개인은 자신의 개별적 이익을 추구하고그 개별적 이익을 모두 원하는 부류는 전체의 의지로서 파당을 형성한다.

   ◦ 전체의 이익을 배제한 순수 공익을 목적으로 한다면 공익에 대한 검토가 현재의 상황이 아니라 앞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 기능이 부여되어야 한다따라서 입법자는 자신이 그동안 과거에 해오던 행적에 따라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밖에 없다하지만 입법자를 선출하는 자는 결국 인민이다인민이 자신에게 주어진 지적 수준과 판단력이 없다면 입법자 역시 그에 따라 선출된다인민은 억지로 주입한다고 해서 해결되는 게 아니라 그들 스스로 판단할 수 있을 만큼 기다려야 한다.

   ◦ 입법자가 법을 만들 때에는 그냥 만드는 것이 아니라 주변 환경과 외교상황을 보고 판단하여 입법해야 한다또한 입법을 하는 점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자유와 평등이다인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자유의지와 그 자유의지를 가질 수 있는 평등은 매우 중요한 것이다인간이 자유의 의미를 찾을 수 없다면 그것은 단지 노예에 불과하다입법자의 역할은 자신과 살아가는 인민들에게 속박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다하지만 법은 입법자가 만든 기본법만이 아니라 행정 내지 사적이해 관계에서 나오는 민법죄를 지은 자에 대한 처분을 결정하는 형법법은 아니나 법 이상으로 그 나라 민족이나 지역사람 생활에 영향을 주는 습관법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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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6-09-02 10: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공과목이 공금한데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2 10:48   좋아요 0 | URL
환경공학과 입니다. 공대생이죠..ㅎㅎ

마립간 2016-09-02 12:30   좋아요 0 | URL
공학의 아버지는 과학이고, 과학의 아버지는 철학이죠.

syo 2016-09-02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냥 입이 떡 벌어지네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2 15:31   좋아요 0 | URL
저는 졸음이 와서 입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사회계약론 현실적 담론

   ◦ 21세기는 이른바 민주주의 사회이다. 민주주의는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고, 모든 국가의 주권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이나 세계 민주주의국가 헌법에서 국민주권 사상은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인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나왔다.

   <사회계약론>은 민주주의의 교과서이기도 하지만, 혁명가들의 복음서라고 불린다. 민주주의의 토대가 된 <사회계약론>이 혁명가의 복음서가 된 동기는 우선 유럽에선 1789714일 프랑스 파리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시킨 프랑스대혁명부터 시작하여 미국의 독립전쟁, 19세기 남미 시몬 볼리비아의 독립혁명, 20세기 러시아 볼셰비키혁명까지 이어진다.






   





   ◦ 민주주의국가 체계에서 자유주의국가와 사회주의국가에 대한 부분에서 루소의 사상은 <사회계약론>에서 좌우파적인 분리가 시작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는 자유와 평등을 가장 중시했고, 자유와 평등에서 루소는 평등을 중시했는데, 그 이유는 자유를 가질 수 있는 평등권이 인간에게 보장받아야 한다고 한 것이다.

   자유권과 평등권에서 현실적 정치사회경제 영역에서 다소 어긋난 반응이 나오는데, 그 이유는 루소가 살던 시절은 자본주의체계가 도입하려던 시기고,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영국 역사학자 에릭 홉스봄의 <혁명의 시대>에서 프랑스대혁명은 자본주의 정치체계가 도입되고, 영국의 산업혁명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도입이라고 말한다.









   

   ◦ 평등은 인간의 생명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생존권이고, 자유는 인간의 권리나 재산을 소유할 수 있는 사유권이다. 하지만 루소의 사상을 보면 생존을 위한 자유이다. 자본주의 사회구조와 <사회계약론>에서의 간극은 바로 소유권에 대한 관점에서 루소에게 좌파와 우파의 영역이 겹치는 것이다.

 

프랑스대혁명과 사회계약론

   세계 3대 혁명으로 1688년 영국의 명예혁명, 1789년 프랑스대혁명, 1917년 러시아혁명이다. 프랑스대혁명과 러시아대혁명은 영국의 명예혁명과 달리 민중이 국가의 주인이 되기 위한 혁명이다. 혁명이란 기존의 지배계급의 이데올로기라 칭하는 헤게모니를 뒤집어 피지배계급 대상이 지배계급으로 되는 정치사회적 현상이다.

   루소가 프랑스대혁명의 아버지가 될 수 있던 계기는 그가 살던 시절, 계몽주의자와 백과사전파인 볼테르, 디드로, 달랑베르와 함께 지식인 사회에 있었다. 다른 자들은 프랑스국왕과 귀족의 어리석은 행정을 비웃고 공격했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는 민중은 없었다. 프랑스의 대부분 국민들은 가난한 농민이나 노동자였던 것이다. 루소는 계몽주의 엘리트와 다르게 오히려 자연과 벗하는 농민을 존중했고, 도시에 가난한 노동자의 비참한 생활을 안타까워했다.











   <인간불평등기원론>처럼 인간의 불평등은 자연적·신체적 불평등보단 오히려 사회적·도덕적 불평등에 목격했고, 오히려 후천적인 불평등이 모든 것의 원인이라 보았다. 루소는 살아생전 <에밀><사회계약론>으로 국권과 교권에 대한 비판으로 현상수배자로 몰렸으며, 그가 50~60대부터는 엄청난 탄압과 멸시 속에 살았다.










 

   <루소, 장 자크를 심판하다>를 읽으면 그가 지나가던 길에 거리에서 달려오던 큰 개와 부딪혀서 기절했는데, 이 소문을 들은 파리 경찰청의 간부가 군악대를 거느리고, 루소 집에 와서 연주를 했다고 한다. 루소에게 일어난 사소한 이야기들은 루이16세가 있는 왕궁까지 찾아와 조롱거리가 되어주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루소의 <에밀>은 금지도서가 되었지만, <에밀>에서 모든 사람들은 목수가 되어야 하거나 농업기술자가 되어 자신만의 기술을 가져야 한다는 말에 루이16세의 취미생활은 자물쇠제작이었다. 또한 당시 프랑스 상류여성들은 자녀를 출산하면 자신의 모유가 아니라 유모의 모유를 수유했는데, <에밀>에서 친모가 수유해야 아이의 심신이 탁월해진다는 말에 많은 여성들이 자신의 모유를 직접 수유했다.

   루소가 실제적으로 프랑스에서 유명인사가 된 것은 오페라 <마을의 점쟁이> 등과 같은 오페라를 제작했고, 낭만주의 소설 <신 엘로이즈>는 당시 여성들의 모든 마음을 빼앗았다. 프랑스대혁명 이전 유럽은 책 가격이 아주 비쌌다. 보통 책 1권이면 가족4명인 가정에서 2주 동안 생계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루소의 명성은 높아지고,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현실에 비관하는 젊은 지식인 사이에서 읽혀지고, 추후 프랑스대혁명에서 혁명가 지도자 중 로베스피에르, 당통, 마라 등은 <사회계약론>을 토대로 혁명과 혁명정부를 수립한다. 로베스피에르와 공포정치를 주도했던 생 쥐스트는 국민공회에서 프랑스헌법을 <사회계약론>을 토대로 만들었고, 혁명 이전부터 이들은 찻집이나 호프, 혹은 시장거리에서 루소의 사상을 전파했다.

   토크빌의 <앙시앵레짐과 프랑스혁명>에서 프랑스대혁명의 시작은 미국독립운동에서 많은 부분을 차지한다. 프랑스는 자신의 적대국인 영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독립전쟁을 지원하고, 전쟁에 따른 예산낭비는 국고를 바닥나게 했다. 부족한 세수를 해결해야 하나, 귀족과 성직자들은 세금납부를 거부했고 계속 농민과 노동자에게 그 짐을 부과했다. 게다가 봉건영주의 지방자치통치가 중앙집권화로 이어지고, 지방의 농민들은 점점 빈곤과 부조리에서 불만이 쌓여갔다. 전쟁이나 세금, 그리고 이 상황에서 왕족과 귀족의 생활의 현상유지는 프랑스 전역의 국민들을 불만을 야기했고, 그 불만의 에너지가 일정수준에 이르자 프랑스대혁명으로 이어졌.











   프랑스대혁명에서 루소의 사상을 보고 사람들이 혁명을 일으킨 것이 아니라 혁명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민중의 분노가 우선 누적되어야 한다. 하지만 분노를 하더라도 그들이 겪은 문제가 어디서부터 오는지, 그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야 했고, 그렇다면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이나 방법론에서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고려해야 했다. 프랑스 국민의 분노는 도화선 없는 화약덩어리라면, 루소의 사상은 그 화약덩어리에 도화선을 붙여준 셈이었다.


1부 시간에 나온 질의 및 의문사항 정리

수동적인 인간에 대하여

   루소가 말하는 수동적인 인간은 자신의 판단력에 의해 모든 것을 관찰하고 결정하는 게 아니라 주변의 인기나 유행이나 타성의 존재에 따라 움직이는 인간을 말한다. 이런 부분은 단순히 정치사회적인 요소가 아니라 학문과 예술도 마찬가지이다. <학문과 예술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진보가 인간사회에 긍정적 영향을 주었는가에서 루소는 부정적인 관점으로 답했다. 학문은 권력자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도구가 되었고, 예술은 자신의 권력과 재력을 자랑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루소는 타인의 가치에 치중하는 인간을 비판했다. 이런 요소는 지그문트 바우만의 <유행의 시대>에도 담론할 수 있다. 루소의 사상은 18세기이나 21세기 현대철학자에고 통용되는 이유는 바로 인간의 수동성을 제대로 비판한 사상가였기 때문이다. 유행에 매몰된 인간은 스스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대중매체에 파묻혀 구경꾼에 불과하게 된다. 자크 랑시에르의 <해방된 관객>처럼 예술과 미디어는 인간에게 수동적인 인간으로 살아가길 바란다.

   인간의 생활에서 능동적인 삶이 아니라 주어진 것에 의지하게 만드는 것이다. 기 드보르의 <스펙타클의 사회>에서 현대사회를 스펙타클이란 단어로 통해 정의했다. 스펙타클이란 이미지가 매개되어진 사회이다. 이미지란 눈에 보이거나 혹은 우리 관념 속에 자리잡은 것이다. 아침에 거리를 걷는 사람이나 차로에 움직이는 차조차도 스펙타클의 사회이다. 스펙타클은 이미지가 매개되는 미디어에 비판되는데, 미디어에 의해 사람들은 의존하고 열광한다.











   자신의 생각이 아닌 주어진 정보에 의해 자신의 의지가 상실되고 대신 미디어에 따라 움직인다. 수동적인 인간이 스펙타클이란 미디어에 드러난 이미지에 열광하면 할수록 더 심각한 스펙타클러가 된다. <루소사상의 이해>에서 루소는 달랑베르에게 연극에 관한 편지를 보내면서 프랑스에 유행중인 연극에 대해 비판했다. 연극을 보는 관객들은 수동적인 인간이 되고 도덕적으로 타락한다는 점이다. 연극에서 일어난 이야기 속에 치중하여 자신들의 입장을 망각한다는 점이다.











   루소가 원하는 예술은 모두가 같이 참여하는 예술행위이다. 가령 한국에서 농촌에서 행해지던 농악놀이나 부산 어촌에서 행해지는 용왕제일 것이다. 모두 같이 의식을 즐기며 너나 할 것 없이 스스로 행위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루소의 예술사상은 20세기 아방가르드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하고 연결된다. 그의 반미학적 관점은 아방가르드 운동에서 프랑스 상황주의 운동과 맥락이 있고, 소외된 민중을 주체대상으로 또한 식민지 개발반대와 미개인들의 문화를 존중하는 점에서 포스트모더니즘 사상까지 연결되어 있었다.

인민이란 무엇인가?

   인민(人民)이란 국가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자연인이다. 즉 국민(國民)은 국가를 이루고 있는 사람이나, 인민은 국민과 다르다. 프랑스대혁명 시대, 왕정시대의 국민(國民)은 국가주권을 가진 민주주의사회의 인간이 아니다. 그렇다면 왕정시대와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인간을 무엇이라 칭해야 하는가? 프랑스대혁명 이후 파리의 사람들은 모든 남녀노소를 이렇게 칭했다. 시민(citoyen)이라 불렀다. 영어 citizen이란 시민(市民)이란 뜻으로 어느 특정지역에 살고 있는 거주민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민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거주자와 구성하는 자에서 후자 쪽이 능동적인 인간이다.

   인민(人民)이란 단어를 영어로는 people이란 뜻이다. 왕정시대에 국가주권이 없는 국민은 신민(臣民)에 불과했다. 그들은 주권 없는 국민이나, 혁명을 일으킨 사람이고 결국 국가를 만들었다. 인민은 국가수립 전부터 그 곳에서 살고 있던 인간을 말한다. 하지만 인민은 국가를 만들기도 하나, 또한 사회를 만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사회의 범주를 어디에까지 넓혀야 하나?











   20세기 미국 자유주의 철학자 중에 존 롤즈가 있다. 빌 클린턴이 하버드대학교 시절의 은사이고, 그가 대통령 시절 백악관에 초빙되어 식사대접을 받던 미국 철학자 중에 위대한 사상가이다. 그의 저서로 <정의론>, <정치적 자유주의>가 있지만, 그가 죽기 전에 창간한 도서로 <만민법>이란 책이 있다. 영어로 The raw of peoples이다. 여기서 만민(萬民)이란 peoples이고, 만민은 인민들이란 뜻이다.

   롤즈는 현실에 존재하지 않으나 실현가능한 유토피아적 자유주의 철학을 추구했고, 그의 사상은 칸트의 사상에서 나왔으며, 칸트는 루소의 <에밀>을 읽은 후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력비판>3대 비판을 내었다. 칸트는 영구평화론이란 저자를 집필했으며, 루 소 역시 <생피에르 영구평화안 발췌>, <생피에르 영구평화안 비판>처럼 자유주의철학은 이상적인 세계건설에서 이성적 인간을 추구했다.











   롤즈는 칸트주의자로서 <만민법>을 집필했고, 그가 추구한 사상은 합리적 인간이 아니라 합당한 인간을 추구했다. 합리적인 것은 상대방에게 서로 피해주지 않고 살아가는 방법이라면 합당한 인간은 타인에게 선을 제공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 수 있는 사상인 점이다. 그러나 인민이란 단어가 오용되는 경우가 있는 북한 같은 독재국가나 중국 같은 겉으로 공산주의라 말하면서 속으로 자본주의와 유교이념을 동시에 추구하는 국가를 볼 수 있다.

   인민에 대한 관점으로 20세기 여성사상가 한나 아렌트의 사상으로 볼 수 있다. 한나 아렌트는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의 저자로, 나치 아우슈비츠수용소장인 아이히만에 대한 연구서적을 작성한 것으로 유명하다. 한나 아렌트는 정치적 관점에서 인간을 3부류로 구분한다. people(시민 내지 인민), mobs(선동가), mass(대중 내지 군중)이다. people은 정치적으로 올바른 판단을 내리는 사람이고, mobsmass를 선동하는 자이다. mass는 자신의 의지가 아닌 people 내지 mobs의 말을 듣고 거기에 따라 행동하는 부류다. 따라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말하는 인민(people)이란 모든 정치사회적 행위에서 스스로 판단하고 옳은 것을 추구하는 참된 인간상을 말하는 것이다.

사유재산에 대하여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에 대해 사유재산이 문제라고 한다.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 강자와 약자, 최후에 주인과 노예로 이어져 영구 불멸한 인간불평등이 시작되는 것으로 <인간불평등기원론>에서 말하고 있다. 루소가 토지점용에 대해 허락하는 점은 아무도 그 땅에서 살지 않고 필요한 땅에서만 농사를 지어가는 것이다.

   정치경제학(political Economics)에서 경제적인 관점은 돈을 많이 버는 게 아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생활용품을 전달해주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은 중상주의 내지 중금주의 시대 유럽이 아니라 무역의 교류와 분업을 통해 필요한 재원을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는 것이 목표인 것이다. 루소의 그런 관점은 <정치경제론>에 드러나는 바이고, 루소 역시 인간의 생계를 위해 농촌을 황폐화 시키지 말 것을 권용했다.










   루소는 식량이 가장 싼 이유는 인간에게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일 식량이 너무 비싸면 인간은 삶을 영위하지 못한다. 하지만 밀은 가장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게 아니라 가장 필요 없는 사람이 먼저 차지하는 경우가 많다. 밀로 가발을 만들고, 주스를 만들기 위해 물을 소모하여 물과 식량이 부족해진다. 식량을 생산하는 농촌이 가장 식량이 부족하여 농민은 논밭을 버리고 도시로 몰려든다. 도시의 성장은 농촌을 착취하는 것부터 시작되었으며, 농촌의 황폐화는 식량문제와 더불어 현대에서 말하는 환경오염의 문제도 일어난다.










   19세기 영국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의 <정치경제학의 원리>에서 농지에 대한 부분이 나온다. 가령 1토지에 노예1인의 생산량과 자유농의 생산량의 차이는 3배라고 한다. 자신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의 미래를 위해 일구는 토지에서 높은 수준의 식량이 많이 나온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식량의 질과 양은 저하된다. 루소가 말한 것처럼 너무 많은 땅을 가진 자는 자신이 아니라 주변 인간을 농노로써 농사를 짓게 한다. 노예인 자들의 능동적으로 농사를 하는 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농사를 하는 것이다.










   루소의 <정치경제론>에서 재미있는 말이 나온다. “나는 부유하고 당신은 가난하니,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하다. 따라서 우리 서로 합의하자. 내가 당신에게 명령하는 수고에 대해 당신이 갖고 있는 사소한 것을 내게 준다는 조건으로 나를 섬기는 영예를 허락하노라.”, 이 단어는 마르크스의 <자본>에 그대로 인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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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이소오 2016-09-01 18: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후덜덜한 페이퍼네요.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자들이 정권을 잡아서인지, 그런 흐름이 전세계적인 추세여서인지 올해 책을 읽으며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저자가 루소네요.

2016년은 루소의 해인듯. 전작해야겠습니다 ^^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9:19   좋아요 0 | URL
루소사상은 맑스와 롤즈를 시작해도 닿인 곳이죠.
무서운 양반입니다..참

붉은돼지 2016-09-01 1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끄러운 고백을 하자면 소생은 루소는 하나도 읽은게 없군요 ㅜㅜ
제가 요즘 고백을 좀 많이 하고 있어요 ....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9:19   좋아요 0 | URL
루소의 <고백>이 생각나는데, 9월은 고백의 달이군요..

곰곰생각하는발 2016-09-01 19: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루소하면 만애비, 롤스 하면 만애비 !

만화애니비평 2016-09-01 20:04   좋아요 0 | URL
맑스도 포함해줘용~~

기억의집 2016-09-01 22: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언젠가 루소 페이퍼 올리신 적 있을실 때 루소의 책을 샀는데 아직도 안 읽고 있네요. 루소가 대단하긴 합니다. 불평등한 신분제 시대에 자유와 평등을 말하다니.

만화애니비평 2016-09-01 23:14   좋아요 0 | URL
그런 개념조차 없던 민중을 앞으로 올린 점에서 참 대단한 사상가죠

기억의집 2016-09-01 23:23   좋아요 0 | URL
참 이런 거 보면 사회 변혁의 시작점이라는 관점에서 볼때 이런 사상가(철학자)가 위대한 단순히 지식을 전파하는 게 아니고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나는 넥슨사 게임인 클로져스 사건부터 꾸준히 메갈리아와 워마드를 비판하고 또 비판했다. 그동안 비판하면서 이런저런 대립적인 의견을 받아왔다. 그리고 그 의견에 대한 비판에 대한 비판으로 계속 대립해왔다. 심지어 같이 막걸리 사발을 나누던 분까지 인터넷으로 논쟁을 펼쳤다. 나하고 친한 교수님에게도 이런 문제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다. 그런 나의 투쟁에서 나의 생각이 옳다는 게 증명되었다.

 

그리고 진보성향이나 한국의 진보인사나 지식인들의 한계를 보았다. 그건 자신에 대한 비판과 성찰이 없었다는 점이다. 현재 보수(그건 보수도 아니지만)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보이면서 정작 자신에 대한 비판은 없었다는 점이다. 전에도 이미 마인드C 작가나 아동성추행 관련 글을 남긴 보육교사가 법정에 나가야 할 때 그들의 소송비나 관련 비용을 메갈리아4에서 지원한다고 했다.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가 관계성이 없다고 사람들이 말하고, 게다가 극단적인 워마드와 관련이 없다고 하나, 왜 그들은 처음부터 티를 판매한 돈으로 법정소송비를 지원할까? 아니라고 해도 뭔가 수상한 요소가 많았다. 나는 이제부터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를 동일하게 메갈리아라고 말하겠다. 이번에 사건이 크게 된 것은 Jtbc에 어느 중학생의 인터뷰다. 서울코믹행사가 아닌 동인행사장에서 미성년자를 상대로 음란물을 돈을 주고 판 행위다.

 

아동청소년에게 돈을 주고 유해매체를 판 것은 법적으로 심의를 받은 것이 아니라는 점, 그것도 수익을 위해 판매한 점, 게다가 미성년자에 대한 검증절차 없었다는 점이다. 그 수위는 남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성기를 보여주고, 그것도 모자라 항문섹스를 그림으로 표현했다. 그것을 그린 자들은 웹툰작가와 관계성이 많았는데, 웹툰작가들이 웹툰시장이 자기들이 만들었고 독자를 우롱했으며, 이에 대한 불만을 표시하자, 한번 덤벼보라는 식으로 글을 남겼다.

 

그리고 그 결과물이 신고가 들어가고, 경찰도 현장에서 판매자를 불구속으로 입건했다. 그뒤 반응이 한남충(한국남자)과 한남충의 유충(어린 남자아이)에 번식탈락이라 하던 자들이 어느 순간 청소년의 인권을 말하고 있다. 이들이 어디를 봐서 페미니즘을 위한 조직인가? 페미니즘이라 하면서 소라넷 폐지운동을 하던 자들이 어느 순간 자신들이 만든 포르노잡지에 대해 인권침해라고 말하고 있다.

 


게다가 소라넷을 닫은 것을 잘 한 것이라 볼 수 있겠다. 문제는 자신들조차 워마드에서 활동하는 자가 한남패치와 강남패치를 운영했다. 술집(고급)에서 일하는 여자나 혹은 남자들의 신원을 캐서 온라인에 올리는데, 치사하게 해외서버로 돌려 접속했다. 처음에 이런 사이트를 두고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불만을 느꼈는데, 어느 순간 그들의 덜미가 잡히고, 둘 다 여성이 운영하는 불법사이트고, 한 사람은 워마드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자였다.

 

소라넷 폐지를 하되 남의 신상을 무단으로 공개하는 사이트 운영되는 것은 용납되는 것인가? 상식적으로도 법적으로 명백히 문제가 있다. 그러나 이들은 페미니즘운동이란 이름아래 한국의 경찰과 검찰이 여성에 대한 탄압을 한다고 한다. 무슨 영국 1910~20년대 서프러제트 운동하고 하자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다. 펭크허스트 여사를 비롯한 페미니스트 운동가들은 경찰에 잡혀도 떳떳하게 감옥으로 들어가고 자신의 죄가 곧 사회의 발전을 위한 초석이라 말하며, 스스로 고통을 감내했다.

 

그런데 메갈리아 워마드들은 자신이 경찰에 걸려도 마치 아닌 것처럼 발뺌하고, 경찰서로 가자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말아 달라고 했다. 밝히는 순간, 회사에서 어떤 처분을 받을지, 집에서 무슨 대접을 받을지는 이미 정해진 결과다. 잘못을 했다면 반성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해야 하나, 이들에게 그런 게 있을까? 없었다. 당연하게 생각한 것처럼 남자무죄 여자유죄라는 논리로 말한다.

 

메갈리아4에선 워마드의 한남패치 강남패치 여성운영진에 대한 소송지원금을 약속했다는 게 드러났다. 메갈리아와 메갈리아4가 다른 것은 순전히 거짓말이다. 게다가 강남패치와 한남패치 운영자들은 반성을 하지 않고, 오히려 억울하다는 식으로 말하며, 메갈리아와 워마드 회원들은 강남역에서 이상한 포스터와 리본을 달고 있었다. 이미 예전부터 이들이 페미니즘이란 탈을 쓰고 있던 패거리즘이란 사실을 알았는데, 확연히 이제는 다시 말할 수 있다.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사회적 병폐이다. 도대체 얼마나 범죄를 저지르고, 극단적 광기현상을 보여줘야지 사람들은 인식할까?


 

이들의 이중성은 참으로 돋보인다. 자신들이 죄를 지으면 이에 대한 문제의식이 아니라 한국의 경찰은 남성에게 관대하고 여자에게 강력하다는 말을 하고, 거기에 여자는 봐주야 하는 게 아니냐는 말을 한다. 여자가 남자에 비해 봐줄 부분은 근골계의 육체적 부분이지 그 이상의 사회적, 정치적 영역은 아니다. 남자가 생물학적으로 근골계가 강하여 여자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짓거리는 양아치나 할 짓이지, 만일 그것과 무관한 것이면 동일하게 처분을 받아야 한다.

 

이런 메갈리와 워마드를 두고 페미니즘운동이라 계속 적어대는 한겨례, 경향신문, 오마이뉴스, 그리고 은근히 숟가락을 올린 시사인, 자신이 여성학자의 거대지목이라 여기며 계속 메갈리아 운동을 지지한 정희진 교수, 이 사람들의 머리에서 이 사건에 대해 뭐라 말해야 할까? 이 사건이 계속 뉴스와 미디어에서 다루어지는데, 왜 그들은 침묵을 지킬까? 불편한 것을 말하려면 자신도 불편한 것을 감내하는 게 답이 아닌가?

 

나는 메갈리와 페미니즘은 전혀 다르다고 말했고, 앞으로 말할 것이고, 페미니스트가 될 생각은 없지만, 사상적 자유와 인간의 가치관에 대한 다변성에서 페미니즘이란 사상을 존중되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에 도움이 된 것은 도서사이트에 페미니즘 관련 책자가 많이 팔린 것이지, 앞으로도 메갈리아가 페미니즘의 메인이 되는 순간, 사람들은 경악을 할 것이다. 나는 몇 번이라도 말한다. 기존의 한국사회가 남성(그것도 돈 많고 권력 있는)이 지배했다고 말이다. 중요한 건 메갈리아와 워마드에서 가장 무시하는 존재가 20대 빈곤청년이다.

 

전에 알라딘 블로그 활동하면서 친한 분에게 덧글로 받은 것 중에 걱정된 게 있었다(오해는 하지 말아주시길), 덧글로 결혼하지 못한 게 경제적인 문제인 점을 누가 말하면 어떨까? 부분이 있었다(한국의 대부분 남성은 부유하지 못하니 어쩔 수 없다. 물론 내가 그런 게 부족하니 그건 어쩔 수 없다고 답했다). 그런데 그 논리는 한국남자는 돈이 없으면 여자에게 결혼대상이 되지 못하게 되는 것이 되는 전후관계성이 성립된다(내가 너무 외모나 신체적으로 문제가 있거나 성격이나 인격에 결함이 있다면 당연히 고려해야 하나).

 

페미니즘이론에서 경제적으로 빈곤한 남성을 깔보거나 무시하는 사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오히려 자본주의사상에서 미디어에 의한 정치사회적 권력과 언론의 이익이 페미니즘이론에서 문제를 제기한다. <섹스와 돈>이란 책을 보면 나온다. 거기서 여성 그것도 어린 여성은 돈 많은 남자들에게 만족감을 줄 수 있는 여자가 되는 게 좋다고 말하던 미국의 미디어를 비판한다. 만약에 돈 때문에 나를 비롯한 수많은 한국남성들이 여성에게 외면당하는 것이라면 오히려 페미니즘이론으로 그 부분을 지적할 사항이다.

 

다시 말한다. 메갈리아는 페미니즘이 아니고, 진정한 페미니스트들은 여성만이 아니라 남성이란 존재로 통해 젠더를 넘어 어린이, 노인, 장애인 등 사회의 수많은 약자를 위해 노력하신 분이다. 메갈리아란 이름으로 페미니즘을 더럽히지 말자. 그들은 페미니즘이 아니라 패거리즘이다. 한남패치와 강남패치 죄악에 정신적으로 충격 받은 사람 중 정신병원에 입원하거나 자살충동으로 시달리는 사람도 많다. 그 대상에 일반인까지 포함 되어있으니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에 대해 무엇을 말할지 모르겠고, 그리고 그들조차 옹호하는 사람들이 대거 등장하면 나는 무엇을 말해야할지 난감하겠지만(논리로 통하지 않는다),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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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립간 2016-09-01 09: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성경 구절이 생각나네요.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누가복음 23:34 중에서)

만화애니비평 2016-09-01 09:20   좋아요 1 | URL
저는 개인적으로 제 블로그에 와서 감정으로 덧글을 남긴 알라딘 블로거 ˝ㄷㄹㅂ˝님의 의견을 듣고 싶습니다. 자신도 ˝ㅁㄱㄹㅇ˝라고 했으니깐요. 그분이 그럴 반인륜적 존재들과 같다고 생각하지 않으나.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안할지..아니면 하나하나 조목조목 토론으로 진행한다면 그다지 문제없겠지만요

2016-09-01 09: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9-01 09:51   좋아요 2 | URL
그래서 저는 말하고 싶은 겁니다. 전에 제 블로그에 와서 감정적으로 덧글을 남긴 분들, 그게 페미니즘이냐고 묻고 싶습니다.
전에는 잘 와서 글남기더만 지금은 그것에 대한 해명이 없는 게 그다지 좋지 좋네요.
메갈리아와 페미니즘을 계속 저는 분리하고 있는데, 이 사태까지 이르렀어도 어떤 생각을 하실지 궁금합니다. 메갈리아는 남성혐오가 아니라 인간혐오인 반인륜 패거리일 뿐이죠.

별족 2016-09-01 1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혀 다른 이야기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는데, 부부싸움을 확전시키지 않으려면 주제를 한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너는 어디 편인데?라고 묻고 있는 게 아니라면, 님의 비판도 옳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조직이나 사람이던지 잘못도 할 수 있고, 이상한 말도 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단호하게 단죄한다는 것이, 정말 누구에게 좋은 일일까요? 취지가 아무리 좋다고 해도, 그런 태도는 단죄자나 단죄받게 되는 조직이나 사람을 황폐화시킵니다. 그건, 지금 상황에서 님에게도 마찬가지구요. 저는, 메갈리아가 즐겁고 좋았던 적도 있었어서, 완전히 몹쓸 단체야,에 동의하지는 못하겠습니다. 사람들이 모이면, 아무리 좋은 뜻으로 모였대도, 항상 좋은 모습일 수는 없다는 걸, 민주노동당이 사라질 때 너무 절절하게 느껴서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3:10   좋아요 2 | URL
저도 별족님의 이야기가 뭔지 알겠습니다. 우선 언론에서 그동안 공정한 시선으로 이번 사건을 다루지 않았고, 오히려 그런 요구를 한 자를 두고 일베로 몰았습니다. 왜 비판? 왜 누구편? 이런 말도 안되는 소리를 두고 말씀드리자면 공격성 논리는 이미 진보매체와 언론, 지식인들이 했습니다. 이제와 서 너무 편가르지 말라하면 그동안 편가르기 당한 자들은 무엇이 됩니까?

이미 편가르기 가한자는 침묵, 그렇게 당한 자들이 이제 말이 옳은 편가르지 말자는 논지에서 누가 먼저 시작하여 그 부분을 매듭지어야 하는지 생각하는 것이 답이 아닌가요? 사람 때린 사람은 따로 있어 신고한 사람이 이제 거기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여 ˝야 좋은 게 좋은 거야˝라는 식에서 무슨 관용을 펼치는 게 옳은가 싶습니다.

누구나 실수하고 잘못했지만, 그것을 계속 요구하고 성찰하라 해도 말을 듣지 않고 결국 범죄에 이르러서 그것조차 반성하지 않은 자들을 어떻게 저희들은 생각해야 할까요? 저에게 단죄자라는 칭호보단 무엇이 어디부터 잘못되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말하는 게 정답이 아닌가요? 민노당이든 통진당이든 아니면 새누리이든 뭐든지 자기비판없이 흘러가서 붕괴되면 그건 누구의 책임입니까?

누구의 편을 말하기 전에 그 누구의 편이라고 먼저 말했던 자들이, 자신에게 비판을 하던 사람에게 주홍글씨 낙인을 찍은 자들이 먼저 회자정리하는 게 답이 아닐런지요?

별족 2016-09-01 13:21   좋아요 0 | URL
http://www.mediatoday.co.kr/?mod=news&act=articleView&idxno=131249 제가 논쟁을 따라가면서, 가장 공감하면서 읽은 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3:29   좋아요 1 | URL
님 저하고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으세요? 저도 미디어투데이를 보고 있지만, 저 기사는 1달 전의 기사이고요. 지금 아래 기사를 보세요? 제가 뭐 때문에 글을 씁니까? 물타기하지마세요? 그리고 게임애니메이션 성우에 대한 산업구조에 대해 아십니까? 이미 증거가 다 나오는 판국에 기사내용을 9월 시점에 대해 다시 재조립하는 게 옳은 게 아닐까요?

지금 정의당 내부가 개판되었는데, 진짜 무엇을 저한테 말하고 싶은데요? 제가 메갈리아 논쟁에서 남여에 대한 프레임으로 봤다면 오산입니다. 저는 저들은 여자라서가 아니라 여성 이룸으로 반인륜적 행위를 했기 때문입니다.

http://m.news.naver.com/read.nhn?oid=056&aid=0010357241&sid1=102&backUrl=/home.nhn&light=off

별족 2016-09-01 13:41   좋아요 0 | URL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스스로를 `메갈리안`이라고 하신 분들을 모두 `그런 사람들`일 거라고 하지 마시라는 거예요. 패거리를 나누는 건 이 논쟁의 목적도 아니지 않나요? 그런 반 인륜적인 행위를 하지 말라,는 것이 목적이라면, 주제를 좁혀서 이야기해야지, 티셔츠의 문구를 노말한데 뭐가 문제지,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이래도, 이래도? 라며 어느 편인지 밝히라고 말하는 건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던 거예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3:54   좋아요 1 | URL
제 글이나 덧글을 보면 메갈리아라고 하신 그 알라디너에 대해 아니라고 저는 판단했고요. 그리고 그동안 옹호하는 자들이 메가리아가 아니라 그 메갈리아에 대한 판단에 대하여 다시 자기비판하자는 논조로 계속 적어왔습니다.

티가 말하는 것은 노멀한데, 티로 판매되어 사용되는 것은 노멀하지 않습니다. 님 제게 말하려면 논리적으로 하세요. 티의 글은 (왕자는 필요없다)는 기표라고 합시다. 하지만 그 기의에서 (이 판매금은 메갈리아 활동에 씁니다. 그것도 범죄자의 변론에)

이미 님의 논리는 틀렸습니다. 저 티를 알든 모르든, 모르는 사람이 저 티가 평범한데, 알고보니 저런 식으로 사용되었어라고 알게 되면 그 당사자는 무엇이 됩니까? 제가 티를 산 사람들을 욕했습니까? 아니면 티를 판매한 사람들을 욕했습니까?

별족 2016-09-01 14:12   좋아요 0 | URL
사실, 우리가 쓰는 많은 소비재,의 소비로부터 벌어들이는 돈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식으로 쓰입니다. 제가 한 어떤 소비는 팔레스타인에 폭탄으로 떨어졌을 겁니다, 아마도. 그 모든 소비와 그 모든 스펙트럼을 무시하고, 이런 놈들이니, 아예 손을 끊어, 내지는 이런 놈들이었어, 몰랐지, 이제부터라도 아니라고 해, 라고는 못 하죠. 그 모든 걸 통제할 수 없는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순정함을 요구하면서, 순정한 편에 순정하게만 서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입니다.
메갈리아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일베,가 아니듯,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그 모든 걸 지지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4:23   좋아요 1 | URL
무슨 말인줄은 압니다. 메갈리아를 지지하는 사람이라 하여 그 모든 것을 지지하지 않고, 일베를 지지하는 사람이라도 모든 것을 지지하지 않겠죠. 그렇다면 그런 극단적 무리 내에 있었다면 비판의 자조는 없었는지? 아니면 브레이크를 시도하지 않았는지 조금 이상하면 한 번이라도 비판을 해야 하는 게 아닌지에 대해 어떻게 보십니까?

님이 제게 하는 말이나 제가 님에게 하는 말이나 모두 원초적이고 정론적인 의견입니다. 저는 분명하게 말할 겁니다. 메갈리아는 틀려먹었다고 말이죠. 왜냐하면 지금 메갈리아에 사건이 터져도 자성하지 않고 계속 자신들이 옳다고 정신승리중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숙하여 성찰하여 국민 앞에서 반성하지 않은 이상 무슨 의미가 있죠?

잘 들으세요. 메갈리아의 일련의 행동에 대한 비판이 시작되고, 진보라는 매체는 그 일련의 행동에 대하여 비판을 가하는 사람을 일베 내지 여성혐오자로 밀어붙였습니다. 여기에 대한 반론과 재검토를 요청해도 묵살되고 오히려 조롱이나 높은 벽을 느꼈습니다. 손을 끊은 쪽은 먼저 누구이죠? 그 자들이 먼저 우리에게 손을 다시 줘야 하는 게 아닌가요? 반성도 없이 사과도 없이 비판도 없이 흘러가는 상황에서 님이 말하는 요지 자체가 납득이란 단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요?

순정에서 제 글을 봐도 남자인 저도 청소년 시절 야한게임이나 하고 야한 사진 보면 눈 돌아갑니다. 그리고 여성들도 멋진 남자 보고 스타일 좋은 남자보면 좋아하는 것에 대해 나쁘다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고정된 성관념이 폐쇄적인 사회를 만들죠. 그런다고 없는 사실을 억지로 만들어 마치 성폭행범 내지 범죄자로 내몬 사람들에게 무슨 순정의 가치를 내밀어야 하나요?

만일 님 친구분이 속옷을 갈아입는 도중 도촬당하거나 아니면 길가다 사진이 찍혀 술집여자다라는 식으로 몰려 주변인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심지어 그런 곳이 고발되자 거기 회원들이 자유에 대한 억압과 공권력 난무라 해봅시다. 순정함이란 단어를 내밀기 전에 역지사지의 정신이 우선이 아닐까 싶네요.

별족 2016-09-01 14:44   좋아요 0 | URL
저는, 여기 알라딘,에서 님이 이렇게 흥분하실 만한 사람은 없지 않을까,하고 말하고 싶었습니다. 여기서는 충분히 다른 이야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거든요.

만화애니비평 2016-09-01 14:56   좋아요 1 | URL
글쎄요. 흥분했을 것이라 봅니다. 제가 참고로 서브컬처 세계에 발을 들인 자고, 그 서브컬처 세계가 완전히 박살나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심정에서 제 기분이 어떻게 해야할까요?

님은 저에게 논리적으로 덧글을 달아야 하는데, 저보고 감정적으로 나온다고 하시네요. 오히려 감정적으로 돌아보자는 님은 어떻게 보십니까? 글이 흥분적이다 아니다를 떠나서 님이 저에게 해야할 말은 이 문제자체 근본을 따지야지 저라는 존재에 말돌리기 하는 것은 논조가 맞지 않군요.

자신의 말이 저에게 닿지 않아 저라는 존재로 인신공격까지는 아니나 그런 뉘앙스로 접근하는게 참 재밌네요. 차라리 이 글을 본다면, 지금 저 문제해결방안으로 메갈리아와 워마드의 민폐를 멈추고, 그들이 미러링한 일베에 대한 적절한 비판과 대처, 그 후 이런 사회적 문제가 근본으로 나온 것이 자본주의사회와 적자생존 경쟁주의이니 이에 대한 대안을 말해야 하며, 이후 어떤 정치를 위해 앞으로 우리가 선택해야 하나가 옳은 게 아닌가요?

제가 알라딘에서 흥분하여 이런 글을 적든 말든은 님이 관여할 바가 아닙니다. 님이 관여할 바는 제가 이런 글을 적어서 틀린 내용과 잘못된 인식이 있으면 그것에 대하여 비판하면 됩니다. 하지만 그 동시에 저에 대한 비판은 저를 비판하는 분들도 비판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알아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다른 이야기는 무엇입니까? 제가 메갈리아와 워마드 비판만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님은 단지 제가 적은 글(현실에서 일어난 사실을 거론하여 비판한 게)이 불편한 겁니까?

별족 2016-09-01 15:54   좋아요 0 | URL
어쩌면 저도 사로잡힌 문제라서요. 제가 어느 쪽에서든 욕을 먹고 있는 입장이기도 하고요.
 

메갈리아와 워마드 사태를 계속 지켜보면서 여기 있는 사람들이 이 정도로 심각할 줄 생각조치 못했다. 알라딘 블로그에서 메갈리아와 워마드에 대한 비판을 날렸을 때 어느 분이(분명 메갈리아는 아닌 것 같으나 자신도 메갈리아 하라고 하는) 소라넷 이야기를 했을 때, 나는 그런 사이트가 있다는 것을 알아도 그곳에서 무엇이 일어나는지 모른다. 단지 아는 것은 성인용 야한 사이트 정도?

 

이성적인 것보다 왠지 모르게 감정적인 질문 덧글에서 나는 상세하게 답변을 해주지 못했다. 왜냐하면 조금 엇갈리는 부분이 소라넷 폐지운동을 하던 사람 중에 메갈리아 활동자가 있었고, 그 활동자는 대구어린이집 어린이 성희롱사건으로 뉴스기사까지 난 사람이라 그렇다. 만일 단순히 여성운동으로 소라넷 폐지라면 이해가도, 어린이 성기를 두고 이상한 글을 적어 사이트넷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 받은 그 여성은 결국 신상이 털려 각종 비난과 비방을 당해야 했다.

 

결국 경찰에 진정을 넣었으나 오히려 그 사람이 저지른 죄 때문에 메갈리아 여성의 진정은 허용되지 않았다(그리고 메갈리아 티가 이 사람의 법정소송에 대한 후원금으로 들어간다). 이런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좋다. 마인드C작가에 대한 루머나 거짓말, 심지어 성폭행도 안 당했는데 했다고 하는 무고에서 이런 것을 두고 페미니즘 운동이라 하는 사람들에게 이게 정당하냐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기존 남성주의사회의 폭력성은 다 아는 바이나, 그것으로 인해 폭력적으로 한다고 해도 전혀 무관한 방향으로 범죄를 저지르고, 그것을 페미니즘 이름을 덮은 행위에서 이게 이성으로 판단해야 할 것인지 감정으로 계속 대립해야 할 것인지 의문이다. 그래도 이 정도에 대한 반론은 좋다. 그러나 성재기씨의 죽음을 두고 재기하라에서 예전에 여성들에게 불편한 감정을 주어 그래서 열 받아서 했다 그것도 좋다. 그러나 전태일의 죽음에서 남자들보고 태일하란이야기에서 이미 상황은 오버다.

 

안중근 의사와 윤봉길 의사의 능욕, 그것도 광복절 전후이다. 위안부에 억지로 끌려간 할머니들의 원통이 하늘을 찌르는데, 독립군들이 무엇을 위해 목숨을 걸었는가? 여성위안부 관련하여 여성학자가 이에 대한 강의를 하는데, 메갈리아 옹호하는 자였다. 문제는 독립군이 해오던 무장투쟁을 부정하는 것 자체가 위안부 여성들의 고통을 무시하는 것과 같다. 영화 <귀향>에서 주인공(손숙 선생의 어린 시절 역할)이 독립군에 의해 구출되는데, 진짜 그런 일이 있었다.

 

독립군들이 일제에 의해 사살당하고 고문당하고 처참하게 타지에서 고생하다 돌아가셨다. 이들의 무장투쟁을 두고 조롱하고, 광복절에도 일장기를 가지고 그들의 정신을 모욕하는 사람들이 위안부 여성에 대한 생각이 있는 자들인가? 일부가 그런다고 해서 그 일부가 있는 사이트에서 그것을 용인하고, 그 용인을 하는 사이트가 페미니즘운동이라 한다면 이성적으로 무엇이라 여겨야 할까?

 

서브컬처 사태와 관련하여 청소년에게 음란물을 판매했다. 문제는 그 동인지에는 남자학생이 성기노출에 동성애하는 요소가 나왔다. 결국 음란물과 상업지에 대한 사전검토도 없이 미성년자에게 판매하여 법에 저촉되었다. 여성인권을 외친 메갈리아 진영이 이제는 청소년에게 인권이란 이름을 외쳤다. 그들이 외치는 한남충이 어른만이 아니라 한남충의 유충까지 잡아야 한다고 하는데, 야한 동인지 판매에서 청소년 인권의 보편성으로 넘어간다.

 

솔직히 말해 나도 옛날 동급생이나 야한 게임이나 만화를 봤다. 그런다고 해서 자랑스럽게 본 것도 아니고, 나는 이런 것 안 보니 깨끗한 놈이란 가식 따위 덜진 않는다. 야한 것을 볼 수 있겠지, 그렇게 하고 싶으면 알아서 하던가 아니면, 서브컬처에서 당당히 팔겠다고 오히려 신고 해보란 식은 무엇인지? 메갈리아 사태가 번진 것은 서브컬처 계통이었다. 그들이 지금 서브컬처에서 활동하면서 일반 대중이나 심지어 여성학자도 잘 모르는 세계이다.

 

소라넷 폐지는 옳고 그래야 한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답이다. 그런데 반대로 워마드와 메갈리아하고 연계된 동인지판매대의 음란물은 괜찮은 것인가? 3D 여성과 2D 남성의 차이라고 말한다면 그럴 수도 있겠다. 자신들이 오타쿠와 비오타쿠로 나눌 수 있다면 말이다. 그런데 최근에 나도 모르는 사이트로 놀라게 만든 사건이 있었다. 한남패치와 강남패치, 둘 다 여성이 운영한 점이고 이들에 대한 검거가 이루어지자 메갈리아와 워마드에서 난리가 났다. 이들은 그 뉴스가 있는 곳에 가서 덧글 달기와 소송에 대한 지원금을 지원하려 한다.

 

소라넷 폐지와 한남패치, 강남패치 사건을 두고 무엇을 봐야 하나? 한남패치와 강남패치는 유흥업소에 일하는 여성과 남성의 사진을 유포하는 사이트다. 범죄원인도 성형수술 부작용에 따른 우울증과 어느 여성이 재벌의 외손녀란 이유로 막대한 상속을 받아서이다. 그런데 여기에 무슨 페미니즘 담론? 게다가 이들은 남의 신상은 공개해도 자신은 하지 말았으면 한다. 회사에 알리지 말아 달라 한다.

 

(기사사이트 : http://www.ytn.co.kr/_ln/0103_201608301203003932, http://media.daum.net/society/affair/newsview?newsid=20160830120014972&RIGHT_COMM=R1)

 

처음 그 사이트들에 대해 메갈리아와 워마드는 상당히 혐오적으로 대하다가 어느 순간 진실을 알자 지원사격을 하자고 한다. 검거의 상황에서 경찰이 여험하고 있다고 하는 정신승리는 무엇으로 판단해야 하는가? 자꾸 메갈리아와 워마드가 페미니즘이라 말하나, 그게 오히려 한국의 페미니즘의 몰락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미러링의 대상이 조롱과 비방이라도 범죄까지 미러링한다면 그 여죄로 법적 처벌도 감내해야 할 사항이다.

 

어떤 덧글은 경찰에 여성이 체포되면 여자가 사회적 약자라서 봐주는 게 아니라 하는데, 사회적으로 법 앞에서 오히려 평등해야 하고, 범죄를 저지르고 나서 뭐가 잘못된 줄도 모른다. 워마드와 메갈리아의 업적은 있다. 한국의 페미니즘 논쟁과 관련하여 책들이 많이 팔렸다. 하지만 기존에 나온 서적보다 이미 페미니즘 고전 도서(매릴린 옐롬의 서적이나 존 스튜어트 밀의 <여성의 종속>, 펭크허스트 <싸우는 여자가 이긴다>)를 읽어보면 그들이 말하는 것과 접점이 느껴지지 않는다. 나는 다시 말하고 싶다. 자정정화가 없는 것, 즉 자신의 행위나 자신의 지지하는 것에 대한 비판이 없다면 결국 붕괴된다.

 

이 문제에 대해 사회적으로 객관적인 사건을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판단하면 좋겠다. 여성들이 처한 불리한 조건을 두고 개선하는데 반대하는 것도 아니고, 문제 있는 남성사회의 비판이 틀렸다고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우발적 범죄나 계획된 악의로 인해 발생된 범죄에 대해 계속 외면한다면 진보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자신들의 기만으로 말이다. 분명히 말하지만 틀린 것은 틀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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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글씨 일신 베스트북스 16
나다니엘 호손 지음 / 일신서적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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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홍 글씨>란 책 제목은 항상 많이 들었다. 내용을 잘은 모르나, 제목 자체가 <주홍 글씨>이기에 그것은 분명히 낙인이란 이름을 말하는 것이란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 이번에 읽은 <주홍 글씨>, 역시 낙인이 찍힌 여성의 이야기이다. 나는 책을 읽으면서 왠지 무서운 기억이 떠올랐다. 영국에서 왜 미국으로 많은 이주민들을 보내야 했는가? 청교도적인 가치관이 어째 검소함과 더불어 미국의 탐욕적인 식민지개발과 이어졌는가?

 

예전에 마녀사냥을 연구하던 실비아 페데리치의 <캘리번과 마녀>가 있다, 그 책에서 영국의 인클로저 현상을 다루고 있다. 영국에서 16세기부터 공유지를 귀족과 왕족들이 사유화했다. 공유지 사유화는 공유지를 이용하던 농민 입장에서 치명적인 타격이고, 심지어 공유지 주변에 있던 농민의 농지까지 귀족들은 빼앗아간다. 농지가 없는 농노는 부랑자가 되든지 도시의 노동자가 되든지 혹은 도적이 되어야 했다. 경제적 흐름에 따라 영국에서 잉여적인 인구가 늘어가고 있었고, 이들을 처리하기 좋은 방법은 바로 다른 곳으로 보내는 것이다.

 

식민지 시대의 이민정책은 여러 가지 원인이 있다. <주홍 글씨>에서는 직접적으로 이런 현상을 말하지 않으나. 나사니엘 호손의 일가의 역사가 나올 때 대략 그 의미를 확신할 수 있었다. 호손의 직계조상은 17세 말에 마녀사냥을 집행하던 관료였던 것이다. <주홍 글씨>의 배경이던 뉴잉글랜드는 그 지명의 이름처럼 새로운 잉글랜드를 말한다. 결국 영국사회에서 격리된 자들이 영국에 대한 향수로 젖어 생긴 식민지 사회인 것이다.

 

식민지사회의 열악한 요소는 잘 보여주듯이 주인공 비운의 여인 헤스터가 살던 마을에 의사와 목사가 매우 귀했다. 원래 헤스터의 남편이던 칠링워드, 헤스터의 딸 펄의 아버지며 그녀가 진정 사랑하던 목사 딤즈데일은 뉴잉글랜드에서 귀한 인재였다. 칠링워드는 실력이 좋은 의사였고, 딤즈데일은 영국 본토 명문대학에서 공부를 한 목사였다. 기독교 사회에서 목사의 권위란 이루어 말할 수 없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을 추모하는 점에서 왕권은 교회와 밀접한 관계성을 유지하고 있다.

 

여왕의 시대로부터 격리되어 있지만, 뉴잉글랜드 사회는 아직도 영국의 향수병으로 젖은 매우 수구적인 시대였던 것이다. 이런 사회에는 종교가 하나의 사회적 법률로 통용되고, 법률이 교회의 권력에 의해 움직이므로, 종교적 가치관이 문화적으로 큰 힘을 발휘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여주인공 헤스터는 어두운 감옥에서 나왔으며, 그녀의 가슴에 새겨진 A자 주홍색 자수가 따가운 햇빛과 군중의 눈빛에 의해 반사되었다.

 

그녀의 죄는 남편이 있어도 다른 남자와 간음하여 아이를 낳은 죄였다. 문제는 남편은 정확히 누군지 알 수 없었으며, 사람들은 헤스터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군지 이야기하라고 말한다. 이미 나는 이 작품 초반에 아버지가 누군지 알아볼 수 있었다. 성난 군중과 무서운 보초병의 눈빛이 그녀를 질타할 때, 오로지 마음 약한 목사가 그녀의 입장보단 그녀의 존재성을 인정해주었다. 그게 바로 딤즈데일이었다. 왜 헤스터가 젊은 목사에게 도취했는지에 대해서 작품 안에서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알 수 있는 것은 호손의 작품성은 기존 사회의 답답한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간상을 찾는 것을 원했다. 본래 헤스터는 명문집안 출신 여성이란 점도 알 수 있었고, 그녀가 당시 사회로썬 용납되기 어려운 죄를 지었다고 하나, 그녀의 인품은 고고하고 아름다웠다. 오직 딸 펄을 위해 헌신하는 어머니였지만, 때로는 불우한 이웃을 위해 자선을 마다하지 않았던 용기 높은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녀의 가슴에 A자는 평생 그녀에게 지워진 짐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 짐조차 승화시켰다.

 

A가 어떤 의미인지 잘은 모르겠다. 나쁜 의미 내지 정상적이지 못한 것이라면 Abnormal 정도일까? 하지만 그녀의 AAble, Angel까지 변해간다. 도덕을 위반한 그녀가 오히려 인간의 정신이 되어야할 가능성과 천사라는 칭호까지 받는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은 오로지 사회적 관습에 의해 매여져 있었다. 낭만주의 소설이라 하니 장 자크 루소의 사상을 다소 영향 받을지도 모른다. 소설 중간에 나온 쇠사슬이란 단어는 <사회계약론>에서 항상 나오는 말이고, 쇠사슬이란 의미는 물리적인 의미로써 사슬이 아니라 인간사회에서 인간 스스로 억압하고 있는 굴레라는 점이다.

 

헤스터는 처음에 남편을 밝히지 않았고, 그동안 죄수의 낙인 A를 가슴에 새기며 다녔다. 그녀는 치욕적인 일을 저질러도, 그 죄에 대한 처벌과 자숙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하지만 가슴 위에 A를 새기지 못한 남자는 어떤 심정일까? 자신의 사회적 위치와 도덕적 입장에서 딤즈데일은 오히려 큰 쇠사슬이 되었다. 그리고 질투에 젖은 칠링워드는 아내의 부정과 딤즈데일에 대한 복수심으로 살아간다.

 

그가 처음 뉴잉글랜드에 왔을 때 인상 좋은 노학자이나, 7년이 지나자 그의 얼굴은 험악하고 악의로 가득했다. 헤스터는 이런 2사람 사이에서 죄를 지은 인간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죄를 받아들였고, 그 모습을 바라본 딤즈데일은 스스로 자신을 해방하기로 한다. 그 결실은 딸인 펄의 존재다. 진주와 같은 펄은 사랑과 죄악의 결정체였다. 부정에 의해 태어난 존재, 하지만 사람들은 펄의 행동과 모습에서 천사의 재림처럼 느껴졌다.

 

펄의 존재가 모순되고 역설적으로 보이는 점에서 우리는 죄와 사랑이 같은 뿌리에서 나왔음을 알 수 있고, 거기서 태어난 사랑과 증오가 순식간에 변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딤즈데일을 병들게 하여 마지막에 그의 부정을 밝혀 비참한 죽음을 유도하려 했지만, 딤즈데일이 죽은 후 그 역시 딤즈데일에게 간다. 칠링워드가 이런 모습을 보여준 이유는 그에겐 학식과 재산이 있어도 생명의 연결고리가 없었다. 불구자인 그는 자신의 아내가 다른 남자의 아이를 가졌다는 사실에 삶의 의미가 바뀐 것이다.

 

딤즈데일의 죽음에서 칠링워드는 그동안 자신을 속박하던 쇠사슬에 해방된다. 그것을 인정하는지 미국과 영국에 남아있는 재산 모두를 헤스터의 딸 펄에게 유산으로 남긴다. 죄의 결정체에게 그의 마지막은 사랑의 결정체로 승화된다. 현실에서 만일 이런 일이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만일 21세기 자유주의국가라면 이미 불구자인 칠링워드 옆의 헤스터는 새로운 사랑을 찾아 떠나가며, 딤즈데일은 헤스터를 다시 아내로 받아들여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사회는 교회의 권력이 우선되는 시기고, 딤즈데일 목사는 나이가 어려도 마을에서 나이가 최고령 신자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고, 뉴잉글랜드의 최고 통치자인 총독에게도 존중받는 자이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최고의 지위에 있은 자가 딤즈데일이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위치에서 숭고한지, 아니면 자신을 내던져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여 모든 것을 고백하는 인간이 더 숭고한지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적어도 딤즈데일의 마지막은 인간에게 주어진 죄가 많은 이들에게 드러나지 않은 것보다 평생 자신만 안고 가는 게 더 고통스러운 것이다.

 

소설은 낭만주의이지만, 나름 서구의 철학이 반영되어 있다. 한국과 같은 동양은 인간의 사고방식이 인간의 관계성에 시작된다. 하지만 서구는 인간의 사고방식은 신과 인간의 관계이다. 신 앞에서 인간은 과연 자유롭고 진실한 존재인가라는 의문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목사는 모든 죄와 거룩한 자리를 초월하여 한 사람의 인간으로 삶을 마감한다. 그리고 뉴잉글랜드를 떠난 후 다시 돌아온 헤스터는 A가 달린 드레스를 입은 후 평생 타인의 위해 살아간다. 마지막장면에서 헤스터는 천명을 다하여 딤즈데일이 묻힌 곳의 옆으로 집을 옮긴다.

 

무덤은 어둠에 가려져 잘 보이지 않으나 희미한 한 점의 빛은 A란 글이 보였다. 살아서는 같이 할 수 없었으나 죽어서는 영원히 A를 나눈 두 사람에서 낭만주의 문학성의 백미를 보여준다. 현실에서 인정되지 않기에 새로운 세상에서 이상을 펼칠 수 있다는 신념을 말이다. 헤스터는 단지 그런 이상을 자신만의 환상이 아니라 늘 봉사하는 삶으로 보여준다. 왜냐하면` 무덤에 들어가는 사람은 비문을 만들 수 없고, 무덤사이에 A란 글자를 만들 수 없다. 딤즈데일과 헤스터의 관계는 그들이 살아생전에 용납할 수 없었지만, 그걸 용납받을 수 있었던 것은 헤스터의 용기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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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yo 2016-08-28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간통, 간음을 뜻하는 adultery의 A라고 하던데요? 성인과 간음이 어원적으로 연관 있는게 재밌지요.

만화애니비평 2016-08-28 23:25   좋아요 0 | URL
그건 몰랐네요. 영어에 약히다보니 감사합니다.

syo 2016-08-28 23:26   좋아요 0 | URL
아닙니다. 좋은 글 읽을수 있어서 제가 감사합니다. ㅎㅎㅎ

곰곰생각하는발 2016-08-29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켈러번과 마녀, 요거 읽을까 말까 생각 중인데 어떻습니까. 재미있쓔?

만화애니비평 2016-08-29 10:30   좋아요 0 | URL
마녀사냥 연구도서로 최고의 서적이죵. 재미보단 깨우침으로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