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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자유주의
존 롤스 지음, 장동진 옮김 / 동명사 / 1999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자유적인 것이란 무엇인가? 인간은 언제나 투쟁과 투쟁의 공간에서 반복된 갈등으로 살아왔다. 아니 살아가는 것보다 죽어가는 것에 가깝다고 볼 수 있겠다. 살아가는 것은 곧 죽어가는 것이기에 그렇다. 인간의 가장 최고의 적은 무엇일까? 고대 선사시대부터 보면 추위, 질병, 맹수, 재해 등이나 결국 인간 그 자신이 인간 최고의 적이 되었다. 프랑스대혁명 당시 지식인으로 유명한 롤랑부인은 단두대 아래 이슬로 사라지기 전에 자유라는 이름이 얼마나 많은 것들을 파괴하는지에 대한 탄식과 함께 사라졌다.
자유라는 것은 인간에게 필수불가결적인 존재이면서도 한편으로 과연 이 자유라는 것은 어떻게 보는 것이 좋은 것인지 항상 난해했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흔히 민주주의 국가에 살고 있다고 한다.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항상 모든 사람에게 자유와 평등이 존재한다고 한다. 하지만 대한민국 헌법상으로 우리나라는 자유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자유민주주의국가라는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려고 하는 적은 없는 것 같다. 헌법이란 인간 그 누구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제도다. 그 평등한 제도가 바탕이 되어야 자유라는 것이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평등이란 상대적인 관념에서 서로 간에 대한 개념조차 되어있지 않은 한국의 비극적 현실에서 존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읽는다는 것은 자유주의 철학에 대해 깊은 이해와 앞으로 우리가 나갈 길을 열어주는 것과 같다. 사실 롤즈의 <정의론>, <공정으로서의 정의>, <만민법>에서 <정치적 자유주의>는 롤즈의 정치철학에서 <정의론>과 <공정으로서의 정의>에 대한 보충적인 서적이며, <만민법>은 롤즈가 최후에 내놓은 저서로 앞으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침서가 되어 준다.
20세기 최고 위대한 정치철학자 중에 하나이며, 자유주의철학에서 우리나라만 아니라 선진국의 민주주의에도 큰 영향을 끼친 롤즈의 정치철학은 이른바 시민으로서 갖추어야 할 정치적 가치와 판단력을 제시한다. 롤즈의 철학이 자유주의철학이라고 하나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의 자유주의와는 다르다. 롤즈의 철학은 칸트의 구성주의적 자유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존 스튜어트 밀과 토크빌의 자유주의 철학을 계승하기 때문이다. 이런 점을 고려할 때 민주주의 국가이든 혹은 어느 사회이든 3가지 분류의 사람으로 구분할 수 있는데, 하나는 선동가, 하나는 시민, 나머지는 군중이다.
롤즈의 <만민법>에서는 현실적 가능한 유토피아적 자유주의 철학을 제시하는데, 그 요건이 바로 이성적인 합의 아래에서 이루어지는 구성주의적 자유주의다. 그것은 합리적인 것을 넘어 합당하기를 권장한다. 즉, 우리가 일반적으로 합리주의(合理主義)라는 것은 합리(合理)라는 것을 통해 사람들의 의견을 모우나 그것은 이치에 대한 정당한 요건보다는 합리(合利)적인 상황으로 이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시민이라는 것은 공적인 이성이 요구되는데 반해, 실제 우리가 보이는 사회적 현상은 공적인 이성으로 대하기보다는 사적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이성이 추구된다.
그것은 공공선에 대하여 무관심하나, 어느 정책이나 정치적 입장이 어느 불특정 대다수 개인에게 이익을 주는 경우라면 합리(合利)가 합리(合理)로 변질되는 경우다. 이들의 특성은 어느 사회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더불어 타인에 대한 공동선을 추구하기보단 자신의 이익을 위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한다. 이런 무지의 장막에 놓인 자들은 대다수의 군중으로 이루어질 경우가 많으므로, 이들이 가지는 정치적 권위가 막대하게 작용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게다가 자유주의적인 요건에서 자유라는 것은 인간에게 최소한의 생존요건이 갖추어야 하기에 사회적 약자인 최소 수혜자로 하여금 그들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기회와 그들도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균등한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공정으로서의 정의에서 롤즈는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 그런 기회의 평등이란 점이다. 인간에게 부여된 불평등한 상황은 인정하나, 그것이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거기에 자유라는 것은 양심에 대한 자유와 더불어 그 양심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기 위한 결사의 자유를 중요시 했다. 그런 점에서 언론의 자유와 양심은 매우 중요하다고 제시한다. 사실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를 읽다보면 분명 칸트의 구성주의적 자유주의, 즉 실천이성에 의한 자유주의가 중시되는 것은 분명하나, 개인적으로 읽으면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적인 요소가 방대하다.
일단 여기서 헌법에 대한 기본적인 의견과 더불어 헌법에 의해 헌법학자들이 자유주의에 대해 이끌기보단 그 헌법에 의해 시민들이 주축이 되어야 하는 점이다. 프랑스대혁명과 더불어 루소의 <사회계약론>은 프랑스 인권선언문의 작성에 큰 바탕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 2가지는 세계의 헌법의 주축이 된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와 모든 권력은 인민으로부터 나온다라는 문장을 보면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바로 민주주의 서막을 알리는 거소가 같을 것이다.
솔직히 생각해보면 지금의 민주주의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사회적 현상과 당시 프랑스대혁명 시기의 사회적 현상은 무척이나 다르지만, 그 근본적인 이념적 함의는 매우 흡사하다. 그 안에서 시대적 흐름에 따라 추가되고 보완될 뿐이다. 프랑스대혁명에서 삼부회의 요인이며, 국민공회에서 위원을 맡던 로베스피에르도 자유에 대한 파리 시민에 대한 연설에서도 롤즈의 <정치적 자유주의>에 대한 내용과 흡사한 면이 많다. 자신의 자유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위해 우리는 노력해야 하는 점에서 말이다.
그것은 자유라는 것은 자신만 가지고 있어서 실현되는 게 아니라 타인과의 공유로 통해 비로소 자유로움을 추구할 수 있다는 점이다. 철학과 정치사상에서 항상 그것은 역사적인 흐름과 사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롤즈가 추구하는 구성주의적 자유주의란 바로 현실적인 상황에 맞추어 시민들 간의 합당한 합의가 필요한 것이다. 자신의 자유를 넓히기 위해 타인의 자유를 추구하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인 공적재산이 늘어가는 것이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적인 요소를 반영했는데, 사실 자유론을 읽어도 밀의 철학에선 그 사회의 악적인 요소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 악을 행하는 사람에 대한 처벌도 중요하나 그런 악적인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하는 제도적 요건도 역시 중요하다고 했다.
공적으로 사회적 자유를 위해서는 바로 시민들의 합당한 공동선이 필요한 것이다. 문제는 그 시민들이 이룩해야할 사회적 정의에서 포괄적인 자유는 회피해야 하면 다원주의적인 요소를 추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사상의 자유가 필요하며, 그것이 곧 양심과 언론의 자유로 이어진다. 자유주의에서는 이성이 없으면 자유가 존재하지 못하는 것은 바로 저런 이유다. 프랑스대혁명에서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위대한 지침서가 되었다고 해서 그 <사회계약론>을 읽은 사람은 일부 지식인에 한정되어 있었다. 누구에게나 호칭을 시민이라고 해도 실제 시민의식이 없는 시민은 군중에 불과한 것이 한계성이다.
이런 문제는 비단 프랑스대혁명만 아니라 미국에서도 흑인노예 문제도 그렇다. 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헌법적 명제에서 인간이 인간을 착취하는 것이 하나의 정당한 도덕이 되었다는 사실에서 미국 역사에서도 자유주의 철학이 빗나가게 된 것이다. 이런 노예해방운동과 관련하여 약간 <정의론>과 비교해보면 종교에 대한 부분이 관대해진 것 같다. 가령 종교가 하나의 정치사회적인 입장을 견고하게 나오는 것은 부당하나,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노예해방운동에서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경우 그는 분명 기독교에서 종교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으나, 그가 진실로 하던 일은 인류평화를 위한 흑인노예해방운동이었다.
<정치적 자유주의>에서는 대학이나 교회와 같은 기관들이 정치적인 특권을 누리려하는 것은 반대하나 이들이 정치적인 활동에서 올바른 가치를 제시하는 것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는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사회적으로 국민들에게 존경받는 종교 인사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이념을 강조하기보단 보편적인 인간애를 몸소 실천하는 사례를 종종 보게 된다. 이들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정의로운 시민들에 대해 큰 가르침이 된다. 사실 구성주의적 자유주의에서는 칸트의 <순수이성비판>보다는 <실천이성비판>적인 요소를 더 많이 반영해야 할 것이다.
모든 사회는 같지 않고 저마다의 특유한 문화와 정치적 현상이 내재하기 때문이다. 사실 정치라는 것은 그 정치적인 현상이 일어나는 한 사회에서 어느 한 개인이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지든 혹은 가지지 않더라도 정치는 그 개인에 대하여 항상 영향을 미친다. 정치라는 것은 결국 인간에게 피할 수도 없으며 피해 갈 수도 없는 존재이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누구나 자유로우나 정치적 사회가 존재하기에 속박에서 피해갈 수 없다는 루소의 사상처럼, 인간이 속박 안에서 최대한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는 결국 이성으로 통한 정치적 자유주의를 실현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쉬운 일이 아니다. 무지의 장막처럼 인간은 공적인 이성으로 통해 정의를 실천하기보단 개인적 이익을 위해 실천하려 하며, 특히 이익을 추구하는 대다수의 개인이 존재할 경우 공정으로서의 정의가 실천하기가 어렵다. 그 이유는 어느 특정 세력이 자신에게 유리한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조건이 될 경우, 누군가는 그만큼의 손실을 입어야 하는 점이다. 자유주의 철학은 자신의 권리를 추구하는 것만큼 타인의 권리를 추구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주의적인 사회가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철학 없는 자유주의만큼 자유를 위협하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