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 - '마르크스 자본론'의 핵심을 찌르는, 제2판
임승수 지음 / 시대의창 / 201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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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세계에서 어려운 고전으로 여러 가지 서적들이 있을 것이다. 임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게오르크 헤겔의 <정신현상학>, 마르틴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 등등 근대철학만이 아니라 고대철학과 현대철학 역시 어렵다. 그런 점에서 철학을 알아가는 것은 돈과 명예 등과 같은 이익보다는 역으로 별 상관없는 것이 되어버려서 오늘날 더더욱 어렵게 되었다. 안 그래도 어렵다고 느껴지는 것이 철학인데, 그 어려운 철학마저 접근하기 어려운 시대다. 그렇지만 철학이 없다면 어떻게 되는가? 철학은 결국 인간이 세상을 볼 수 있는 하나의 등불이다.

 

어느 풍랑이 세차게 몰아치는 바다 위에 어떤 한 척의 바다가 있다. 그 바다 위에서는 한 치 앞도 예상하지 못해 이들의 운명은 언제 죽음의 사신과 춤을 춰야 할지 모른다. 그 속에서 한 줄기의 등불이 보인다. 아주 작고 약한 불이지만 그나마 그것으로 통해 앞길을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철학이다. 세상을 보는 작은 눈, 하지만 그 작은 눈이 계속 이어지면 풍랑에 위태로운 선박은 운 좋게 낯선 무인도에 잠시 정착하여 파도를 피해갈 수 있을 것이다. 철학이란 한 번의 답변으로 모든 것을 끝낼 수 있는 학문이 아닌 것처럼 말이다.

 

철학에서 우리는 인간의 존재성 내지 근원 그리고 실존적인 문제에 대면하게 된다. 나는 누구이고 너는 누구인가? 이 세상을 두르고 있는 근원과 내가 살아가는 사회란 무엇이고? 그리고 더 나아가 국가란 무엇이며 세계란 또한 무엇인가? 작은 고민이 어느새 큰 물결이 치는 넓은 곳까지 볼 수 있는 것이 철학이다. 하지만 철학의 중요한 기능이 있다. 카를 마르크스가 <포이어바흐에 대한 테제>에서 외친 “지금까지 철학자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세계를 해석했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생각하면 철학자가 세계를 변화시키는 일들은 중세유럽까지 그렇게 많지 않았다. 물론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사상이 후대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이들이 제기한 철학은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이 아니라 일련의 군주정치 내지 민주제도라도 소수 귀족에게 그 권한을 두고자 했다. 고대 그리스의 정치제도에서 민주주의라고 해도 그것은 10% 미만의 성인남성이고, 어린아이와 여자 그리고 노예와 이방인에게 제외되었다. 민주주의가 공화주의적인 정치로 본다면, 공화주의란 자유와 평등 그리고 박애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박애가 상실된 민주주의 정치란 순 위선에 둘러싼 자기 이름을 살리기란 점이다. 박애만큼 위대한 정신적 가치가 없다. 왜냐하면 박애가 존재해야하지 자신의 자유만이 아니라 타인의 자유를 살리고, 인정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박애적인 사상이 왜 중요한가? 그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살기 위한 조건 중에 하나이다.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것이 인간에게 무척 중요하다. 하지만 인간답게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오늘날 이 글을 적는 본인과 혹은 내 주변이나, 그 밖에 사람들 대부분이 과연 행복하게 살고 있는가?

 

나는 내 자신이 대해 행복하다고 여긴 적이 그다지 없다. 단지 행복보단 일련의 안정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슬아슬한 일과를 보내고, 오늘도 무사히 혹은 이번에도 무사히 자체가 행복이라 여기지 못한다. 단지 그것은 행복이 아니라 한 순간의 안도이다. 행복감은 그런 안도에서 올 수 있겠지만, 근본은 달라지지 않고 또 다른 시련과 고통이 찾아온다. 언제까지 그런 안일한 자기만족에 의한 순간적 안위에 만족할 수 있는 것인가? 다소 회의적인 발언이 아닐 수가 없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은가?

 

매일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까지 일을 하고, 때에 따라서는 잔업과 야근을 해야 하며, 상상 이상으로 업무에 시달려야 한다. 그렇게 힘든 일과를 매일처럼 보내고 나온 대가란 이른바 돈이다. 우리는 돈에 의해 살아가고, 돈에 의해 죽어간다. 자본이 매개로 되는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살아간다. 자본주의구조에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일개 소시민으로 말하자면 자본주의가 이때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는 것은 자본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경제적 시스템이 아직 대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특성은 결국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라는 경제구조에 있다.

 

지금 한국인 인구가 5천 만 명을 넘었다. 따라서 좁은 국토에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으므로 언제나 부동산 과잉열기에 인플레이션은 하늘 무서운지 모르고 오르고 있다. 이런 시기에 각자가 주거하여 살아갈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하지만 자신이 소유한 집이 없는 사람은 여전히 많고, 전세나 월세로 어렵게 버티는 사람도 많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자신의 집을 가지기 위해 거액의 돈을 금융기관에서 대출받아, 그 대출 이자만 해도 상당히 부담스러워 하는 경우도 많다. 우리는 돈이라는 것에 벗어나지 못할 정도로 심하게 속박 받고 있다.

 

결국 우리 현대인들은 자신이 가진 돈에 의해 인생과 생활 그리고 미래까지 결정 받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아가고 있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철학이란 무엇이고, 세상이란 무엇일까? 아무런 의미도 없어 보이는 신선놀이로 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망각의 존재로 보이는 철학이야 말로 존재해야지 현재 상황을 바르게 이해한다. 그래서 이 글의 제일 위에 나온 세계에서 어려운 도서 중에 하나로 속하는 서적이 있으니 바로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다.

 

<자본론>에 대해 일단 기본적인 설명을 하자면, 카를 마르크스가 독일에서 태어나고 철학박사를 수여받고, 노동자의 부당한 현실에 대해 분개하여 노동운동으로 활동하다가 당국에 의해 추방되어 영국으로 망명을 오게 되었다. 그리고 영국에서 런던도서관에 머물면서 아담 스미스의 국부론이나 리카도, 제임스 스튜어트 등의 서적을 읽으면서 경제학에 몰입했고, 그렇게 탄생한 게 <자본론>이다. 한국에서 <자본론>과 그리고 마르크스를 이야기하면 이상한 사람을 몰리겠지만,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 가면 마르크스는 엄청난 학문을 만든 장본인이다.

 

조금 의아한 점은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사회과학 도서로서 경제학을 말하지만(도서관에 가면 사회과학 분류도서로 앞자리에 3을 부여받는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다르게 보면 철학도서와 같다. 세계 3대 경제학 도서로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 카를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스의 <일반이론>이 있다. 물론 애덤 스미스의 경우 경제학자 이전에 윤리도덕학자였고, 케인스도 경제적 문제가 국가의 문제만이 아니라 국민생활에 큰 여파를 주므로 기본적으로 철학적 사고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하지만 <자본론>은 이 2가지 서적과는 큰 차이가 있다. <자본론>은 순수하게 자본주의에 대한 연구고찰 도서이고, 그 고찰로 통해 자본의 유무로 인해 고통 받는 약자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집에서 <자본론(도서출판 길, 번역자 동아대학교 경제학과 강신준 교수)>을 읽으면서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공장감독관에 의해 기록된 보고서를 읽게 되면 소름이 끼칠 정도다. 하루 24시간 중에 12시간 노동은 예사고, 주말도 없을 때도 있으며, 심지어는 18시간 넘게 노동을 시킨다. 어린아이는 이제 4~5살부터 시작하여 잠도 재우지 않으며, 좁은 공간에 더러운 공기 속에서 장시간 노동착취를 당해야 했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인가? 실로 지옥이 어디냐고 신이 나에게 묻는다면 나는 지옥이 있는 곳은 사람의 관념 속에 자리 잡은 곳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할 터이다.

 

신이란 있는 것인가? 프리드리히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나온 유명한 문구가 있다. “신은 죽었다!”, 정말 신이란 존재가 존재성을 두고 생각하자면 있을지도 모르나, 그 신이란 인간의 운명을 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멀리서 그냥 구경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 든다. 신은 심판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TV에서 쇼프로그램을 보고 즐기고 있듯이 구경하고 있는 방관자라고 생각할 뿐이다. 왜냐하면 신이 정말 존재하여 현실에서 심판을 한다면 죄 없는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거나, 아무 죄도 없는 사람들이 억압과 고통 속에서 비명을 지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의지할 수 있는 것은 내 머리 속의 이성과 지식이다. 물론 인간은 감정에 변하기 쉬우며, 무의식적인 요소로 순간 잘못된 길을 선택한다. 초자아라는 슈퍼에고, 이드라는 무의식 사이에서 자아는 늘 갈등한다. 그런 점에서 자본주의사회구조 역시 그렇다. 문제는 이드로 인해 조장된 현실이 이상하게 슈퍼에고로 위장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작가나 그렇고 나도 그렇지만, 현실의 문제에 대해 개선하지 않으면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자들은 무엇인가? 예를 들어 최근 생활고로 비극적인 죽음을 우리는 언론에 통해 많이 접하게 된다. 그들의 비참함의 종말은 소설 겸 영화 <레미제라블>에서 코제트의 어머니가 생각날 정도다.

 

문제는 빅토르 위고가 그렇게 저술한 당시가 마르크스의 <자본>이 나오는 내용 그대로라는 점이다. 그렇게 비참하게 죽어가는 이들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안타까워하나, 막상 그것이 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지는 않는다. 현실에 대한 각인에서 자신이 그렇게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들에 대해 일목의 관심도 없으면서, 사건이 터지면 마치 자신은 착한 사람인양 걱정을 한다. 도대체 이런 현상이 왜 일어나는 것인가? 아니 그렇게 되는 것을 막아내지 않은 사회와 국가기관에 대해 아무런 문제의식을 가지지 않은 것은 무엇인가?

 

참으로 답답하지 않을 수가 없다. 자본주의 사회구조에서 이런 사건이 터지는 것은 미디어로 통해 타인의 죽음을 접하나, 직접적으로 나와는 무관하기에 그것은 하나의 미디어라는 매체로 통해 이루어지는 감정소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자신은 평소 남에게 박애정신을 가지지 않은데, 왜 이럴 때에만 자기는 인간인척 하는 것일까? 인간이란 위선과 모순을 가지는 게 당연하지만, 그것마저 거부한다. 결국은 자신의 이기심에 의해 존재하려 하고, 그 이기심에 의해 타인들에게 비난당하지 않도록 순간적인 가면을 쓸 뿐이다. 감정적으로 안타깝다는 기분은 실제이나, 무의식적으로 나는 아니라는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구조에서 자본주의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 인간의 생활양식에서 자본주의의 종말을 생각하기 어렵다. 지금의 생산체계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소비체계 역시 어렵다. 대량적으로 생산되기에 우리는 밥을 먹고 옷을 입으며 집에서 잠을 잘 수 있다. 그런데 자본주의는 이런 소비적 관계에 모순이 발생했다. 생산하는 것에 비해 소비가 가능한 사람들의 입장이 난처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이런 경제구조가 있어야 모두 살아갈 수 있다고 하나, 최근에 자살한 가족들이나 혹은 어려운 환경에서 매일 힘들게 사는 사람들은 존재한다. 그들이 백만 명 중에 1명이라면 문제가 안 되나, 과연 1명이 백만 명에서 1명일까? 아니면 천이나 만 명 중에 하나인가? 빈곤층의 증가로 최근 양극화 더불어 사회적 문제도 발생한다.

 

그런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는 바로 자본주의의 폐해다. 개인의 능력과 개발을 위해 경쟁적인 요소로서 자본주의는 절대 부정적이라고 여기지 않으나, 문제는 그런 점까지도 모두 부정하는 자본주의로 된 것이다. 이전에 존 롤즈의 <정의론>을 읽다보면 최소수혜자에 대한 경제적,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지원을 해주어야 정의로운 사회가 되며, 만약 최소수혜자에게 최소한의 사회적, 경제적 지원이 없다면 그들은 정치적 자유주의를 실현할 수 없다고 한다. 정치적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그에 따른 지식이 필요하고, 지식을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하나 적정한 교육이 없다면 정치적 선택사항이 멀어지고, 그 선택지점에서도 경제적 문제로 인해 일을 해야 할 경우가 있다.

 

수정보완가능한 자본주의라면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하다. 국가가 자본을 운영하는 게 아니라 개인이 운영을 한다. 빈곤층에 대한 문제는 국가의 문제나,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자본은 이미 국경을 초월했다. 기업은 국가의 기업이 아니라 기업의 기업이다. 임금문제나 환경오염, 시장독점이나 경제공황 역시 이런 문제에서 발생한다. 많은 경영자들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말하나, 지금은 그런 경제활동이 <국부론>과 어울리지 않고, 처음부터 애덤 스미스는 경제활동에서 공정한 상거래야 한다고 했다. 타인의 생계나 생명을 짓밟는 행위에서 애덤 스미스는 납득이 가능할까?

 

그러나 우리는 이런 사회적 구조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 어떻게 그렇게 되는지 왜 그럴 수밖에 없는지, 무엇이 가로막고 있고, 그 무엇은 어떻게 이런 문제를 야기하는지 말이다. 따라서 자본은 경제학을 다룬 사회과학도서이나, 그 실존적 문제를 대해 과학적인 법칙을 설명한 철학도서일 수 있는 것이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자본론>은 매우 어려운 책이다.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의 서적은 몇 권 읽어봤고, 특히 <자본론>은 동아대학교 강신준 교수가 번역한 도서로 읽었다. 예전에 서울대학교의 김수행 교수의 <자본론>은 읽지 않았다. 이번에 읽어본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작가가 서울대 출신인지 김수행 교수의 도서로 인용했다.

 

<자본론>을 1차례이나 처음부터 끝까지 읽었기에 나는 그 책이 어려운 책이란 사실을 안다. 그런데 원숭이가 이해할 수 있다니 무슨 말인가?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상당히 <자본론>을 쉽게 설명했다. 하지만 그 분량은 1-1권과 다른 권에 있는 일부라는 점이다. 3,000(글자 수가 빽빽한)페이지가 넘는 분량을 200(글자 수가 큼직함)페이지 분량의 도서를 다 커버할 수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자본론>이 초반에 무엇을 다루고자 하는지에 생각하면 추천할 수 있는 책이다. 그런다고 원숭이도 이해한다고 해도 진짜 원숭이가 아니라 작가 본인이 원숭이로 캐릭터처럼 나온 점에서 원숭이라고 나는 여긴다.

 

원숭이라는 작가, 하지만 작가 본인은 서울대학교 출신이고, 서울대가 아닌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국민들이다. 그래서 원숭이로 나온 작가의 모습은 왠지 이율배반적인 요소로 다가왔다. 그러나 적어도 모두가 꺼리는 <자본론>을 이렇게 쉽게 책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점은 매우 놀라웠다. 특히 착취에 대한 잉여노동시간과 물건의 가치를 화폐로서 정하는 부분은 <자본론>을 읽고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마르크스가 발견한 법칙이 아직까지 21세기에도 보이고, 21세기인 지금도 세계 명문대학에서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이 포진하고 있다. 설사 마르크스주의자까지 아니더라도 마르크스의 영향은 철학, 경제학, 문학, 미학, 예술까지 영향을 주고 있으니 한국에서 보는 마르크스와 세계의 마르크스의 하늘과 땅 차이다.

 

그래서인지 한국에서 마르크스를 알아보기란 매우 어렵다. 아니 오히려 마르크스 및 마르크스주의에 대해 안 좋게 보는 사람도 한심하게도 마르크스에 대해 엄청나게 영향을 받은 사람의 서적을 추천했다. 서적명은 <문화의 수수께끼>,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문화인류학을 가르치던 마빈 해리스 교수의 저명한 서적이다. 문제는 마빈 해리스는 <문화유물론>이란 서적으로 통해 자신의 문화인류학의 연구결과에서 <문화유물론>이란 도서명은 결국 마르크스의 유물론에 대한 헌정이라고 했다. 마빈 해리스의 서적을 추천한 사람이 평소 적어대는 글과 그가 추천한 책을 보면 이율배반적이다. 그것도 제법 한국에서 인지도 있고, 유명한 사람인데도 그런 행동을 한다. 이게 한국의 지식인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수준이다.

 

전부 그러한 것은 아니나, 적어도 세상을 보는 눈에서 다양한 관점이 중요하다. 마르크스의 서적을 읽으면 내가 읽지 않은 시기에 한 생각이 나온다. 자꾸 중소기업이 망하고, 대기업만 흥행하면 대기업의 일자리는 한정적이고 중소기업에 일하는 사람들이 해고되면 결국 경제문제가 대두되지 않을까? 그것은 사실로 나타났고, 지나친 노동이나 혹은 열악한 노동조건에 의해 사람이 망가지는 것은 옆에서 봤기에 충분히 공감되었다.

 

따라서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기 위해서는 결국 관점을 새롭게 보고 다르게 볼 수밖에 없다. 그중에 마르크스의 <자본론>은 매우 도움이 되는 책이다. 19세기 저술된 서적이라 오래된 것이 아닌가 하나, 적어도 애덤 스미스보다 1세기 후에 나왔다. 아직도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에서도 배우고, 경제역사학에 처음 등장하는 인물이다. 어째든 인간의 사회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알지 못한 것이나 인지하지 못한 것을 찾아보는 것이 좋다.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은 아마 그 걸음마로서 좋을 것이다. 단지 이 책을 보고 이해하기 쉽다고 하여 <자본론>이 이해가 쉬울 것이라 여기면 안 되나 말이다. 그래도 한 번 추천한다. <자본론>을 이제 막 흥미를 가진 사람이라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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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다시 읽기 - 민족주의자에서 아나키스트로 돌베개 한국학총서 15
이호룡 지음 / 돌베개 / 201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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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채호 다시 읽기>, 이 책을 읽으면서 어느 한 영화가 생각났다. 예전에 영화배우 장동건 씨가 출연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었다. 한국이 일제강점기 시대 아나키스트들의 활동과 그리고 죽음, 우리들의 기억 속에 잊어진 자들의 이야기다. 그들을 보면 전형적인 모던보이였고, 그래서인지 항상 멋진 양복을 입고 모자를 눌러 쓰며, 술집 미녀아가씨와 농담을 나누는 그들의 모습에서 시대의 암울함을 느끼기보단 오히려 거기에 빠진 것처럼 보여준다. 그러나 알고 보면 그들은 겉과 다르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멋쟁이 미남청년들은 알고 보면 술과 노래, 패션을 좋아하는 모습은 물론 좋아하기도 하나 그 이면에는 항일운동을 하던 자였다. 일본군의 주요인물을 살해하거나 또는 공작테러를 일으키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영화는 <아나키스트>처럼 아나키스트들은 무정부주의자이기도 하나 한편으로 독립운동을 하던 자였다. 단지 작품에서 장동건 씨가 맡은 역에서 마약을 흡입하는 모습에서 자신이 처한 운명과 현실, 그리고 거기에 저항하는 젊은 지식인들의 고뇌가 숨어 있다.

 

그런데 이 아니키스트의 정신은 어디서부터 시작인가? 한국에서 유명한 사람은 누구인가? 이래저래 독립운동을 하는 사람 중에서 주요 단체나 조직을 보면 제일 유명한 것이 상해임시정부부터 시작하여 김좌진 장군이나 홍범도 장군이 운영하던 항일유격대, 그리고 종교단체로는 대종교, 정치적인 체제에서도 좌우 이데올로기 역시 같이 참가했다. 하지만 아나키스트는 모호한 면이 있다. 아나키스트는 자유주의이나, 모든 억압과 소속을 거부한다. 그런 점에서 권력이 지식을 생산하고, 지식이란 체계가 누군가에게 권력을 독재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권력에 대한 관계에서 지식은 누구만의 소유가 아니라 전체가 나누거나 공동체적으로 가져야 할 것이란 점이다. 문제의식에 대해서는 미셀 푸코의 담론이 생각났으며, 거기에 대한 대안은 마르크스주의적인 요소가 생각났으나, 그런다고 아나키스트는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체계이다. 마르크스주의에서는 노동자나 농민이 단합하여 하나의 정치적인 권력을 가지는 것이라면 아나키스트는 그것마저도 해체해야 한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이가 그 유명한 단재 신채호 선생이란 점이다.

 

생소하고 너무나도 낯선 한국의 아나키스트, 한국에서 아나키스트라는 존재를 그다지 접해보지 못했으며, 그들의 극단적인 자유주의는 현재 신자유주의라는 자유주의와 전혀 다른 자유주의다. 무정부주의는 작은 정부도 아닌 정부가 없는 것을 추구한다. 단재 신채호라는 이름은 독립운동가 이름 중에서 나오는 이름으로 민족주의 사상가이면서 역사학자다. 그런 그가 한국의 아나키스트 운동가 중에서 상당한 역할을 맡았다는 자체가 신기했다.

 

단재 신채호라는 인물은 조금 알아보던 계기는 한국의 독립운동가 많은 인물 중에서 대종교에서 활동한 점이다. 신채호와 활동하던 인물 중에서 대종교 3대 교주인 윤세복이란 이름이 나온다. 당시 대종교의 주요 인물들 중에서 독립운동이나 한국의 민족주의를 위해 헌신하지 않은 분이 없다. 단재 신채호 선생 역시 대종교에서도 활동을 했고, 그동안 한국역사를 가려진 곳에 있었는데, 다시 복원하려고 했다. 특히 조선시대도 그러하나 우리나라가 사대주의사상에 가려져 자기민족의 역사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음을 크게 염려했다.

 

그래서 김부식이 집필한 삼국사기를 비판하고, 한국의 역사를 제대로 잡기 위해 순암 안정복 선생의 동사강목을 비롯하여 다양한 역사서적을 연구했다. 특히나 광개토대왕비를 직접 보러 가거나 각종 역사문헌을 참고하여 한국역사를 복원하려 했다. 당시 단재 신채호 선생은 민족주의를 사회진화론으로 보려고 했는데, 처음에는 강력한 국력을 중시했고, 국가와 민족에 대한 다소 전체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국가주의로서 접근했다. 구국적인 가치를 국가주의로서 당시 고구려시대의 영웅들을 칭송했다.

 

을지문덕이나 양만춘 장군과 같이 중국의 거대한 병력을 지혜와 용기로 물리친 장군을 소재로 글을 적었다. 초반에 신채호 선생은 나라를 구하는 것은 용기와 지혜 있는 몇몇의 영웅으로 생각했다. 사회진화론적인 가치와 더불어 일제로부터 구할 수 있는 것은 영웅이란 점이다. 하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게 되었다. 러시아혁명과 삼일운동을 보면서 국가가 있는 것은 국민들에 의한 국가주의가 아니라 국민 그 자체 아니 민중이라는 그들이었다.

 

그런 역사적 가치관이 처음에는 국가주의적 민족주의로 시작했으나, 어느새 역사에 대한 인식이 바뀌게 되고, 역사의 중심은 특정인물이 아니라 그 시대를 살아가던 인간이어야 하는 점이다. 그래서 단재 신채호 선생의 아나키스트적인 정신은 남녀노소라는 신체적 조건을 떠나 인간이 사는 사회에서도 모든 것이 민중이어야 한 것처럼 생각했다. 그가 바란 세상은 오직 모든 것에서 해방이기에 처음 그의 목표는 대한민국 독립만이 아니라 독립 후에도 모든 것을 해방하기를 원했다.

 

그런 해방적 미래를 위해 동양의 아나키스트를 모은 점은 매우 흥미롭다. 그가 적대한 국가는 일본이나, 일본 내에도 아나키스트들이 있었고, 그가 아나키스트가 되려는 것은 고토쿠 슈스이의 <장광설>을 통해 새로운 사상을 접했고, 일본 내에서도 일본천황을 암살하려던 아나키스트들이 있었다. 적대하는 국가에서도 어느 정도 동조한 인물이 있었다. 동양의 아나키스트들은 자금을 모아 무기를 제조하는 공장과 보급책을 획득하기 위해 위조지폐를 만들기도 하고, 수많은 인파들 속에 일본관료나 군장성이 오면 암살작전을 실행한다.

 

단재 신채호의 독립운동방식으로 테러적 직접행동론을 민족해방운동의 방략으로 체계화하려고 했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아나키즘 정신으로 수용했으며, 1936년 민족전선론을 폐기할 때까지 단재 신채호의 사상을 수용했다. 그래서 갑자기 생각난 영화가 바로 <아나키스트>라는 작품이다. 그들은 은거하거나 위장하여 군장성을 살해하는 테러행위를 벌인다. 그들의 테러는 자신을 위한 테러가 아니라 자유와 평등 그리고 인간억압에서 해방하기 위한 테러였다. 그러나 시대와 혹은 이상한 교과서나 어느 특정사람들은 그들은 단지 테러리스트로 보려 했다.

 

그렇지만 왜 그들은 테러를 했어야 하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조명과 민족의식이 있다면 당연히 납득될 사항이다. 자국을 지키려면 자국민이라는 의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것을 기반하는 것은 자국민이란 역사적 민족적 의지가 분명해야 한다. 역사를 잊어버린 민족은 미래가 없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은 분명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서 더 나아가 사회진화론에서 사회개조론으로 진보하여 보편적인 인류의 자유를 위해 그는 온 몸을 바치고 결국 뇌일혈로 서거한다.

 

단재 신채호 선생이 교도소에서 서거한 후에 고국으로 돌아올 때 자국의 땅에 묻히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의 무덤을 만들려는 사람에 대해 감금과 구속, 고문이 이어졌을 정도니 말이다. 다행히 그의 육신의 불길에 나온 하얀 가루는 땅에 심어져 그의 안식처는 찾았다. 그러나 그가 진정 원한 세계는 찾을 수가 없었다. 단재 신채호 선생의 사상에 무조건으로 동의할 수 없고, 그 방식이나 행동조차도 옳다고 볼 수 없다. 단지 그가 바란 모든 것에 대한 억압이 끝이 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상적인 세계는 결코 현실에서 이룰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을 향하여 계속 향할 뿐이다. 그가 지금 살아있다면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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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윤선도 평전 - 정쟁의 격랑 속에서 강호미학을 꽃피운 조선의 풍류객 한겨레역사인물평전
고미숙 지음 / 한겨레출판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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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유흥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제1권에서 가장 먼저 등장하는 것은 남도기행이다. 그리고 그 기행의 시작점은 강진군이고, 다음으로 해남군이다. 강진과 해남, 왜 그는 그곳을 선택했을까? 그 책에는 이런 문구가 은근히 기억난다. 한국에서 먹물을 좀 먹었다는 인간들이 가장 존경하는 인물이 누구냐고 물어보면, 대답은 다산 정약용 선생이다. 아마 우리 한국역사에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치를 물어보자면, 2012년 세계 유네스코 인물에서 우리나라 첫 인물로 선정되었으며, 학문적 연구 가치로 따지자면 한국 역사와 철학에서 빠질 수 없는 인물이고, 동아시아권의 국가에서 다산의 학문을 연구한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이란 인물이 얼마나 후대에 이르기까지 깊은 존경을 받고 있는 인물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가장 존경하는 인물은 정약용 선생이다. 유흥준 교수나 혹은 먹물을 좀 먹었다는 사람들처럼 존경하는 게 아니라 다른 루트로 통해서 나는 그분을 존경하게 되었다. 약간 중간에 길을 벗어나는 것처럼 들리지만, 내 아버지는 나에게 말씀하기를 지금은 힘이나 돈이나 되는 세상이라고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한다. 하지만 과거에 있었던 그 흔적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으나, 결론적으로 그것이 지금도 이어지고 앞으로 간다는 것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보수와 진보라는 말을 떠나 그것은 하나의 전통을 말하는 것이다. 보통 한국 사람들이 자기집안이 족보를 보는 시점이 언제냐고 생각하는지 생각하면, 아마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제법 일가친척들 사이에서 행사에 참여하여 어느 정도 발언권을 가질 정도면 되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나는 집안 족보를 고등학교부터 봤고, 어느 정도 이야기를 들었다. 솔직히 나도 처음 보고 정말 놀란 사실이고, 아직도 그것이 딱히 누구에게 자랑해서는 안 되겠지만, 우리 문중의 족보에는 다산 정약용이란 이름이 2번 들어가 있다.

 

한 문중에 같은 사람이 2번이나 올라가 있다니 조금 이상하지 않은가? 과거 어느 권력자는 자신의 딸을 시집을 보내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또 다른 여자가족 1명을 시집보낸 일이 있다. 그런다고 그런 부당한 일도 아니고, 전부 가족 간의 친분이 있었던 사람끼리 혼인을 정했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게 학연과 학유라는 아드님이 계셨고, 그 외에도 따님이 있었다. 정약용 선생의 아드님의 후손은 아직도 경기도에 살고 계시고, 따님은 정약용 선생이 귀양살이하시던 강진에서 자신의 친구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냈다. 2사람은 결혼하여 조선후기 고전문학자인 방산 윤정기 선생을 태어나게 했다.

 

바로 그 다산 정약용 선생의 따님이 결혼하신 곳은 해남윤가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갓집 역시 해남윤가다. 그리고 나 역시 해남윤가다. 물론 핏줄이 직접적으로 이어진 것은 아니지만, 해남윤가 내에서 8대 공파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따님이 시집가신 곳이 나하고 같은 공파였다. 그래서 집안 족보 중에 파보를 보면 정약용이란 이름이 내 이름과 같은 책에 올라가 있다. 집안내력에서 내 직계의 할아버지가 그 당시 다산초당에서 정약용 선생에게 학문을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돌아가신 친할아버지가 다산초당의 주인이던 윤단의 후손분과 친구였다고 한다.

 

이런 관계를 두고 조금 의아하게 여길 수 있겠지만, 지금 다산초당의 주인이고, 찻집 다신계 주인인 분은 윤단의 후손으로 지금도 다산초당 인근에 자란 야생차를 따서 녹차로 만들어 다산 정약용 선생의 머나먼 후손에게 보내주고 있다고 한다. 다신계라는 것은 정약용 선생이 해배될 때 그분의 제자 중에 18분이 계를 만들어 스승인 다산 선생에게 차를 보내고, 서로 간의 우애를 다지자는 모임이었다. 한국 다도문화에서 다신계절목이란 기록은 매우 중요하고, 다도문화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의 가치는 매우 높다. 실제로 다산 선생의 시조 중에 탁월한 시들이 많으나, 차시들이 상당히 많다.

 

그런 점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 살이 하던 강진 귤동마을, 그곳 산장 주인 역시 해남윤가다. 그런데 그 윤가는 다산 선생의 외갓집의 공파에 속했다. 그리고 그 공파 안에도 나와 다산 선생의 관계처럼 작은 파가 형성되어 있다. 그래도 다산 선생을 위해 다산초당을 제공하고, 음식과 술, 그리고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런 자리를 마련하게 해준 이유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외증조부가 조선화가 삼재 중인 하나인 공재 윤두서였고, 윤두서 선생은 고선 윤선도의 후손이었다. 즉 다산 정약용 선생의 인생에서 해남윤가의 영향은 엄청났고, 그곳은 아직까지 유효했다.

 

그리고 다산 정약용 선생의 당쟁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던 이유 역시 고산 윤선도의 영향이 컸다. 그는 조선 병자호란 전후의 남인 영수였고, 예송논쟁으로 우암 송시열과 다툼하다가 귀양살이한 사람이다. 다산 선생이 존경하던 성호 이익의 경우, 그의 큰형은 장형으로 죽고, 아버지는 귀양살이하다 죽는다. 당파싸움에서 남인과 노론의 관계에서 고산 윤선도가 벌인 싸움은 매우 컸다. 성호 이익 선생의 형인 옥동 이서가 공재 윤두서와 친구였고, 해남 녹우당의 현판의 휘호는 옥동 이서의 작품이다. 해남의 녹우당은 아직도 고산 윤선도의 후손이 살고 있다.

 

<윤선도 평전>을 보고 적는데, 다산 정약용 선생과 붕당정치의 비극, 그리고 해남윤가의 이야기가 나와 조금 지나친 감이 없지 않은가 하나, 모두 <윤선도 평전>에 담긴 내용이다. 단지 나는 이 책을 보기 전에 이미 아버지와 집안 어른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윤선도 평전>을 서평하기 위해 풀어놓았을 뿐이다. 이미 고산 윤선도라는 이름은 고등학교부터 아버지에게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유너머의 저명한 인문학자인 고미숙 선생이 과연 윤선도라는 인물을 어떻게 평전을 했을까 라는 의문에서 책을 구매하여 읽어보았다.

 

거기에는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나왔다. 아는 것은 고산(孤山)이란 호가 외로운 산이란 것처럼, 그는 평생 외로움의 유배 살이를 보냈으며, 70대의 노년에도 귀양살이를 가야만 했다. 지금의 70대와 조선시대의 70대는 조금 다르다. 지금 70대 어르신들도 건강하고 정정한 분들이 많으나, 당시의 70대는 언제 죽어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었기 때문이다. 그가 귀양으로 인한 유배 살이를 한 이유는 너무 입이 강직하기 때문이다. 임진왜란 후에 광해군이 정권을 잡았을 때, 당시 실세인 이이첨에 대한 강력한 비판을 하여 미움을 샀고, 효종의 스승이어서 효정이 집권할 때, 많은 질투의 대상이 되었으며, 효종 승하이후 상복을 1년인가 3년인가에서 불리할 것을 알고도 싸웠다.

 

어떻게 말하면 자신에게 불리한 것을 알고 있으며, 자신의 아버지에게 화가 미칠 것을 알면서도 상소를 계속 올린 자가 고산 윤선도다. 그의 상소문을 보면 직설적이라 당시 권력의 실세가 보면 매우 눈에 거슬리는 존재였다. 귀양을 인생의 반을 가야했던 그의 처지는 알면서도 싸운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성격이 아주 강직한 성품으로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다른 면이 있었다. 또는 엉뚱한 면도 있었다. 조선시대는 사대부가 집권계층이던 시대다. 그런데 그는 사대부라도 조금 특이한 면이, 종에게 심부름을 보낼 때 가정이 있는 노복에 대해서는 심부름을 시키지 말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삶의 즐거움을 즐기게 해야 한다는 점이다.

 

제일 가슴이 찡한 장면은 조선시대는 신분체계가 모순되고, 남존여비에다가 천한 신분의 여성은 양반에게 강제로 첩이 되어야 했다. 게다가 그 첩에서 나온 자식은 비천한 신분이 되어야 했고,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족으로부터 사랑은커녕 학대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고산이 유배 가던 때에 첩에게 나온 8살 아이 미가 어린나이에 죽자, 매우 통곡했다고 한다. 그때 지은 기록과 시의 일부분을 보면

 

“미는 천출로 태어난 나의 자식이다. 나면서부터 총명하여 내 사랑을 온통 다 기울였다. 기묘년(53세) 중춘에 영덕의 유배지에서 귀양이 풀려 집에 돌아오던 중, 20일 아침 경주의 요강원에 이르렀을 때, 미가 천연두를 앓다가 이달 초하루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분통하고 창자가 끊어지는 듯하여 그 애통한 심정을 이루 다할 수가 없었다. 말 위에서 시어를 엮어 나의 슬픔을 토로했다.”

 

“(중략) 네가 없으니 감싸 쓰다듬어줄 수가 없고, 네가 병들었으나 약을 써보지도 못해, 이 때문에 내 슬픔 더욱 크고, 애통함은 비할 데가 없구나, 밥을 먹어도 눈물이 수저에 오르고, 말을 타면 눈물이 고삐를 적시네, (중략), 비록 나의 악업 때문이라지만, 하늘은 무슨 일로 가혹한 형벌을 내리시나.”

 

조선시대 사대부들은 체면이란 이름으로 자신의 감정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았다. 특히 부인과 자녀들에 대한 가족과의 우애를 드러내지 못하는 것이 아버지와 남편의 딜레마였다. 그런데 아직 어린아이인데도 그것도 첩의 자식인데도, 슬퍼하고 애통해하는 그의 모습에는 너무 인간적이었다. 지금도 이 정도의 부성애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있을까? 그런 성격인지 보길도에 기거할 때, 자신의 아들이 찾아오면, 배가 도착하기 전에 나루터에 먼저 도착하여 손을 흔들고 큰 소리로 아들을 반겼다고 한다.

 

조선시대 붕당정치의 희생자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로 뽑을 수 있는 인물이 고산 윤선도다. 그런 강직한 성격을 가진 자가 가족에 대한 애정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래서 그의 시조는 이율배반적인 요소를 가졌다. 그의 자연에 대한 사랑과 그것을 넘어 자신이 보고 있는 어민과 백성에 대한 모습을 어부사시가로 표현할 때 한국의 국문학에서는 큰 업적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의 자연미라는 것은 일반 조선선비들이 누리던 자연 그 자체를 두고 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자연의 조형미를 만들어서 자연미가 아닌 자연미를 만들었다. 작은 호수를 만들고, 조경을 꾸미는 모습에서 그만의 독특한 미학을 남긴 것이다.

 

시에서도 자연에 대한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있으나, 그가 접한 자연은 있는 그대로의 자연은 아니라, 그가 만들어진 자연이다. 자연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인위적인 자연성은 그의 정치적 미학이 반영되어 있다. 바른 쓴말과 직설적인 상소로 정치적으로 탄압받아 머물 곳이 없어 머물던 보길도에서 그는 자신이 만들고 싶은 정치적 미학이 있었다. 그것을 이루지 못하여 대체할 수 있는 요건이 보길도의 자연미다. 자신이 추구하고 싶은 정치적 목적은 왕도정치였다. 조선시대 정치적 당쟁에서 왕권을 중심이냐? 혹은 신권을 중심이냐? 라는 문제가 있었다.

 

조선시대의 왕은 권력자라고 보기 어려울 정도로 신하로부터 견제가 심했다. 임금의 정치적 색이 합당하지 않으면 반정이 일어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독살설도 나온다. 대표적인 인물이 정조이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에서 정조의 왕도정치와 남인의 목표가 나오지만, 문제는 그 이인화는 기호남인을 생각했어도, 다산 정약용 선생은 기호남인이 아니었다. 오히려 지금의 조선후기에서 노론의 후예가 조선 말기를 혼란하게 했는데, 그 연결고리가 어울리지 않은 것 같아서 말이다. 어째든 조선시대의 임금은 권세를 잡은 신하들과 잘 지내지 못하면 언제라도 내칠 위험이 도살아 있었다. 그리고 정권의 균형이 무너지면 어느 한 쪽은 참수와 유배, 형벌이란 무서운 보복이 살아있었다. 삼족을 멸한다는 말은 괜히 나온 말은 아니다.

 

예송논쟁은 바로 기년상과 3년상에서 효종의 죽음이 왕권을 얼마나 인정하느냐 안 하느냐의 대립이었다. 지금 입장에서 붕당파벌이라고 하나, 당시로서는 국가의 대사가 걸린 문제였고, 거기에 목숨 걸던 사람들이 많았다. 한 마디로 세상이 사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상이 세상을 만드는 것이었다. 그런 당쟁에서 고산 윤선도가 택한 것은 왕권의 강화인데, 이이첨의 사례나 혹은 실세들이 지나치게 권력을 잡아 부정부패를 일삼고, 그로 인해 백성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지금의 한국은 군주정이 아니라 민주정이라고 하나, 과연 민주정에서 국민의 대표가 국민 아무나가 될 수 있는 곳이 아니게 되어버렸다. 그런다고 군주의 위치인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줄 수도 없다.

 

지나친 권력이 모이면 결국 독재정치로 가는 지름길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느 하나가 지나친 권력을 잡아 자신의 이권만 누리면 정치적으로 혼탁하게 되어 결국 국가와 국민은 피해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문제는 당시나 지금이나 국가와 국민의 이름을 아주 미화하여 자신에게 유리한 입맛으로 만드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 혼자 돈키호테처럼 덤비는 것은 누가 봐도 알만한 결과이나, 그래도 멈추지 않았기에 역사에 이름을 생긴다. 단지 이이첨과 같은 간신배로 남지 않고, 조선시대 정치가나 또는 시조의 대가로서 말이다.

 

그런다고 고산 윤선도가 정치적 풍파를 많이 맞아도, 정치생활 자체는 길지 않다. 유배로 계속 살았고, 그 후로 몇 년씩 은거했기에 실제 정치적인 활동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조선시대의 정치에서 학문을 연마하던 사대부였기 때문에 그들은 정치인이면서도 문인이었다. 학문에 능통하지 않으면 과거에 급제조차 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과거시험 문제가 이미 유출되어 그 자료를 고산 윤선도에게 달라는 어느 실세의 일화를 보면 참 웃기고도 안타깝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 자료를 끝까지 주지 않기 위해 갖은 답변을 하던 고산 역시 재미있다. 이런 역사적 아이러니가 되풀이되니 고산 윤선도의 이름은 개인적으로 내 입장만 아니라 세상에서도 잊어지기 어려운 인물이다. 물론 국어 교과서 국문학에서도 빠질 수는 없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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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매지컬 마법소녀 하춘식 2 - Seed Novel
온점 지음, 모밍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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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언매지컬 마법소녀 하춘식> 2권을 보면서 문득 최근에 김월희 작가가 저술한 <2병 데이즈> 4권의 후기편이 생각난다. 김월희 작가는 <2병 데이즈> 1권 발매당시 여주인공 흑련과 린의 대화에서 괴벨스의 부분으로 인해 엄청나게 큰 곤욕을 치룬 적이 있었다. 정작 본인은 그것이 정말 옳은 게 아니라 단지 작품 전개상 중2병이란 속성에 대한 강화를 맞추기 위한 하나의 모티프에 불과한데 말이다. 그러나 그의 고충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것을 인지해야 했다. <세계제일의 여동생님> 종료 이후 계속 진행 중인 <2병 데이즈>로 통해 자신이 내놓은 작품이 대중에게 알려지고 보이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도와 관계없이 책임이 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작가가 쓰는 글이란 조심스러운 부분이 필요한 것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자신의 작품에 대한 타인의 의견이 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물론 그것은 개인적 감상과 혹은 비평적인 관점으로 통해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이번에 <언매지컬 마법소녀 하춘식> 2권에 대해 읽은 소감, 즉 라이트노벨을 직접 구매하고 읽으면서 서평까지 쓰는 입장에서 본다면 이번 편은 유감스럽다고 말하고 싶었다.

 

물론 비평이나 감상적인 요건은 개인의 입장에서 나온다. 그 개인의 입장이 되는 사고와 판단은 물론 모든 것이 그 개인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과 지식적 조건 등에 의해 좌우된다. 하지만 적어도 개인적 논평에서 나오는 부분에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1권에 비해 재미, 감동, 의미 등과 같은 요소들이 전혀 와 닿지 않은 느낌이었다. 라이트노벨이 경소설이라고 하여 재미 내지 즐거움을 준다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라이트노벨 역시 일반 소설과 같은 서사구조를 지닌 문자서사이므로 소설과 비교하면 안 된다는 점은 없다.

 

개인적 비평적 관점에서 보자면, <언매지컬 마법소녀 하춘식> 2권은 내 기준으로는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라이트노벨에 대한 리뷰를 쓰면서 라이트노벨이란 장르와 소재에 대한 기본적인 성향과 요건을 생각하면서 서평을 쓰지만, 그런다고 그것은 그 조건일 뿐이지 다른 소설과 비교하는 연장선상에서 배제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언매지컬 마법소녀 하춘식> 2권은 무엇이 문제인가?

 

이번 편은 작품의 주인공인 에프 킬러의 주인공보다는 에프 킬러의 지역 점장에서 문제였다. 이야기 2편 전체의 주제는 에프 킬러 점장의 과거와 그녀를 찾으러 온 붉은 이리의 과장이 오면서다. 2사람은 자매이었고, 언니 쪽인 점장은 납치되어 10년 전에 에프 킬러 총장에게 구출 후에 계속 이 조직에 몸을 담고 있었다. 그때 쌍둥이 자매인 붉은 이리의 간부 시현은 이래저래 팔린 채 돌아다니다가 조직의 일원이 되어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악의 조직이 된 것이다.

 

생각해보면 2권은 너무 클리셰적인 요소가 강했다. 뭔가 안 봐도 알 것 같은 느낌, 게다가 점장의 아버지가 조직의 두목인 것까지는 좋으나, 자매의 어머니가 어떤 정식부인이 아니라 숨겨놓은 애인이란 설정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어느 한 소녀?”라는 기준을 어디에 두고 볼 것인가? 소녀라는 기준을 명사적 의미로 살펴보면 아직 완전히 성숙하지 아니한 어린 여자 아이. 그렇다면 성숙이란 기준으로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해당되겠지만, 어린 여자 아이라면 어느 기준으로 맞추는 것이 올바른가?

 

차라리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이제 갓 아가씨의 향기가 풀풀 나는 그녀였다. 그녀의 얼굴에는 이제 어린 소녀의 티가 벗어나 있었는지 얼굴의 볼 살의 흔적이 보였고, 아직 마음이 어린지 눈가에 두려움과 호기심으로 가득했다.” 라는 표현이 조금 나아보일지도 모른다. 그 이유는 2권은 점장을 찾으러 온 시현이 쌍둥이자매의 상봉이란 명제가 중요했기 때문이다. 언니를 찾기 위해 수소문하고, 그녀를 자신의 보호아래 두기 위해 에프 킬러를 자본력으로 와해하는 것에서 차라리 자본에 대한 부족을 우회적으로 돌리는 게 좋았겠지만, 속성이 빈곤 코미디이기 계속 그것을 고수했다.

 

물론 그런 점을 고수한 점을 나쁘다고 할 수 없다. 그것이 작가의 본래 설정한 의도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설정은 너무 어울리지 않았다는 점은 분명 글을 쓰면서 생각해야할 조건이다. 어차피 서사에서 어느 문제가 나오고, 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과업의 부여는 이미 정해진 틀이다. 그 틀에서 어떻게 이야기를 조합하고, 어떻게 이끌어가는 것이 작가 내지 스토리텔링의 숙제다. 조직의 살림을 궁핍하게 만들어 데려오는 것과 마지막에 점장을 두고 펼친 결투가 너무 클리셰인 점에서 신선한 맛은 없었다.

 

라이트노벨이 환상적 요건과 비일상적인 요소를 반영했으면, 그 자체로서 진행한다면 모르나, 적어도 현실적 요건인 등장한다면 그것에 대한 요건을 충족해야 하나, 그 조건이 어울리지 않으면 당연히 이야기 흐름이 먹먹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리고 주연은 주인공과 하춘식이나, 하춘식의 등장은 그다지 나오지 않고, 마지막 부분 결투에서 사신처럼 보이는 모습, 그리고 주인공이 길거리에서 방황할 때 자신의 집에서 재워준 것 말고는 큰 활약은 없다. 물론 그것도 이야기 속에서 작은 이야기에 해당되므로 나쁘다는 점은 아니다.

 

하지만 마법소녀 하춘식이 사는 집은 혼자서 자기에는 큰 집이란 점이 조금 어긋난 것이다. 하춘식이 밤이 되자 잠을 자야 하는데, 자기 방이 아니라 거실이나 남는 방에 주인공을 재우면 그만이다. 굳이 자신의 방에서 침대에서 잔다고 해도, 밑에 주인공을 재워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작가의 설정 자체가 너무 흐름 속에서 어긋난 것이 문제였다. 재미요소는 여전히 같은 방식이 계속 나오는 점에서 이 라이트노벨 이외에도 다른 라이트노벨도 비슷한 내용이 매권마다 다른 상황에서 튀어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같은 권에서 계속 되풀이 되는 설정이라면 지겨운 것은 분명하다.

 

일단 <언매지컬 마법소녀 하춘식>의 모든 발단은 10년 전에 일어난 사건이고, 그것을 아는 딥블루, 그리고 총장이란 인물이 나오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2권을 전부를 먹어버린 시현의 등장과 주인공의 대립과 화해는 너무 질질 끄는 느낌이었다. 새로 등장한 인물이 1명인데, 그 등장으로 1권을 통째로 차지한다는 것은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 것인가? 예전에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에서 엔들리스 에이트가 방송에서 그 반복에 해당되는 편만큼 애니메이션으로 나왔다. 애초부터 설정부터 그렇다면 반복적인 요소와 그것에 대한 가십감은 작품 내의 주인공만 아니라 보는 관객들도 충분하다.

 

라이트노벨 원작에도 그런 반복이 있어서 지겨움을 느끼게 만든 것과 그렇지 않은데도 지겨움을 느끼게 만드는 것은 엄연하게 다르다. <언매지컬 마법소녀 하춘식>은 초반에 빈곤을 소재로 한 코미디지만, 어느 순간 하렘구조가 성립되어 가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주인공 자체가 생김새나 행동이 여자라고 하나 적어도 주변적 인식에서(모르는 사람 제외) 남자라는 것은 분명하게 인식하고 진행된다. 3권은 조금 더 나은 이야기로 다가오면 좋은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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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개의 찬란한 태양
할레드 호세이니 지음, 왕은철 옮김 / 현대문학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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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에서 그 제목이 나온 것은 페이지 258~259 사이였다. 그것은 이 소설인 마리암과 더불어 전형적인 아랍미인이던 라일라에 대한 이야기에서였다. 그녀는 매우 지적이고, 의식 있는 아버지와 매우 격정적인 어머니를 둔 어린 시절에서 자신의 아버지 바비에 대한 일화가 나온다. “하루 종일, 카불에 관한 한 편의 시가 머리에 떠돌더구나. 사이브에타브리지라는 시인이 17세기에 썼던 시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고 /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으리.’ 전에는 전체를 다 외웠었는데 지금은 두 줄밖에 생각이 나질 않는구나.”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란 제목적 의미를 생각하면, 지금은 비록 어렵고 힘들고 괴로웠지만 언젠가는 좋은 날이 많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하는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 숫자적 의미로서 천을 어떻게 보면 좋을까? 보통 우리는 매우 많은 것을 의미할 때, 천군만군이란 말도 사용하고, 백과사전이란 말과 백가지를 의미하는 사전도 있다. 결국 백(百)이란 숫자는 매우 많고 많은 것을 의미하고(서양에서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디드로 위주로 저술한 백과사전도 그런 의미), 천과 만도 결국 엄청나게 많은 숫자를 의미한다.

 

우리가 생각하기에 천과 만은 높은 숫자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옛날에는 지금과 달리 인간의 수명이 길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인구수가 많지 않았기에 숫자적인 관념은 지금과 다를 것이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태양은 지구에서 하나 뿐인 존재이고, 천 개의 태양은 1,000일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시에서 나오는 지붕 위의 희미하는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다는 것은 희망조차 보이지 않은 어두운 현실 앞에 언제까지나 그것만이 되풀이 되는 게 아니라 분명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소설에서 첫 부분은 주인과 하녀에서 태어난 마리암이란 소녀로 시작하여, 마리암이 반강제적으로 결혼하면서 정착된 장소 인근에 살던 라일라를 만나고, 이 둘은 서로 이웃이었으나, 잔인하고 끔찍한 내전으로 인해 모든 것을 잃게 되면서 라일라는 마리암과 함께 살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잠시 생각난 사람이 있었는데, 에릭 홉스봄이란 영국 사상가 겸 역사학자로 그 저술한 서적 중에서 <극단의 시대>라는 도서가 있고, 또 뒤에 <폭력의 시대>라는 서적이 나왔다. 극단의 시대는 20세기, 소비에트 연방의 공산주의로 위장한 관료주의와 비밀경찰국가, 자유주의라는 이름 앞에 시장지상주의의 대립이었다.

 

특히 이 둘의 대립된 이데올로기는 각종 민폐를 일으킨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쿠바와 남이의 피바람, 그리고 이 소설의 배경인 아프카니스탄도 피할 수 없다. 그곳은 소련에 의해 침공되었고, 소련의 저지를 위해 민족중심적 이슬람 세력과 더불어 자유주의 진영에서 무기와 세력을 지원받았다. 그래서 처음에 이슬람에 의해 지배되던 아프카니스탄에서 여성이 사회생활하고, 얼굴을 내밀고 다니며, 자신의 의지로서 활동할 수 있는 여건이 여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나마 소련의 침공으로 인해 여성들에게 교육과 직업 그리고 사회적 참여권이 어느 정도 올라갈 수 있었을 것만 같았다.

 

대신 이슬람 세력과 소련군의 전쟁은 많은 것을 앗아가고, 그런 과정에서 1990년 소비에트연방이 해체되면서 소련군은 모조리 그 땅에서 흩어진다. 하지만 이게 끝이 아니었다. 사람들의 손에는 무기가 쥐어져 있고, 자신들이 전쟁에서 했던 것만큼 현실에서 이상적 가치 대신 실리적인 욕망으로 가득했다. 여자들의 얼굴을 가리고, 여자들이 어디를 갈 때 혼자서 가지 못하며, 병원에서 임산부가 출산하는데도, 얼굴을 가려야 한다는 반시대적인 상황을 만들었다. 시계는 21세기로 가고 있는데, 이슬람 탈레반의 행동들은 구시대로 가고 있다.

 

개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어렵다. 하지만 사회가 바뀌면 그 개인에게 미치는 영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남편 라시드의 폭행과 학대행위를 참을 수 없어 도망치려 했지만, 붙잡혀서 심한 구타를 당하고, 결국에는 라시드를 살해하는 경지에 이른다. 마리암의 서명하는 모습이 생각난다. 처음에는 억지로 끌려 결혼하여 혼인증명서에 사인하는 모습을, 다음은 감옥에서 재판받고 사형선고에 사인하는 것을, 그녀의 인생은 태어날 때부터 하라미라는 천박한 여자라고 손가락질을 당하고, 어머니 나나가 자살 후에는 라시드의 폭행뿐만 아니라 아이를 낳을 수 없어 자신의 인생에서 즐거움이 없었다.

 

그런 마리암이 유일한 희망인 라일라의 딸 아지자였다. 아지자만이 마리암을 따라주고, 다정하게 대해주기에 마리암은 라일라가 처음에는 미웠지만, 라일라와 아지자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들을 살리기 위해 라시드를 죽였고, 그녀는 AK47 소총이 자신의 머리에 겨냥되는 것을 인지한 채 죽음을 받아들인다. 그녀는 살면서 제대로 좋은 인생을 살지 못했다. 그저 나나하고 살던 때가 제일 행복한 편이다. 그런 고된 생활에서 죽음은 최악의 고통이며, 모든 것을 가지고 간다. 나는 신이란 있을 것이라 여기지만, 신을 믿지 않는다. 유신론적인 가치는 인정하나, 신이란 결국 오만한 인간에 의해 멋대로 이름이 팔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마리암에게 알라신은 무엇을 주었는가? 차라리 나나와 살 때 친절한 늙은 파이줄라의 가르친만이 진실한 알라신이 존재했다. 알라신은 모두에게 자비롭고 위대하다고, 그러나 현실의 알라신은 파괴와 암살, 잔혹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가면이었다. 사실 그런 점은 이슬람만 아니라 십자군 원정과 레바논 전쟁, 나치의 행위들처럼 거대한 종교가 거대한 파시즘의 자궁이 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이슬람권의 그런 비참한 이야기는 이미 사트르피 마르챤의 <페르세폴리스>를 통해 어느 정도 보았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고문당하여 죽고, 여자들은 억압당하고, 어린 아이들은 이슬람과격 테러조직에 가서 자살요원이 되어야 하고 말이다.

 

그래서 아프카니스탄의 비극적 이야기를 다룬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을 보면서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다. 나름 이렇게 되지 않을까 라는 생각도 해보고, 그런 것이 소설 속에 이루어진 점이 씁쓸했다. 그래도 제목이 <천 개의 찬란한 태양>만큼 마지막은 불행 중에서 찾는 행복은 있었다. 천 개만큼 태양이 떠오르지 않으나, 그것을 만들려는 라일라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911 미국 테러사건이 생각났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과 같은 소설을 읽을 때 조금 아픔이 아프고, 불편한 이유는 항상 누군가의 잘못으로 인해 발생되는 보복과 가해행위는 본래의 당사자가 아니라 엉뚱한 사람들에게 간다는 것이다.

 

911 테러사건에서 죽은 사람들과 피해 받은 사람은 모두 민간인이고, 대부분 남들에게 피해주지 않고 자기의 생활에 충실하게 보내려던 시민이었을 것이다. 물론 정치적 자유주의로서 합리를 넘어 합당한 가치를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으나, 적어도 그 본인에게 충실했을 것이라 여긴다. 그런 자들이 테러를 당했고, 항공기 안의 승객들도 한 줌의 재로 변해야 했다. 누가 이들을 이렇게 만들었는가? 인간의 극단성은 결국 폭력으로 변질되고, 인간의 폭력은 그 자체가 악이 아니라 하나의 정의라는 것이다. 정의의 실현은 결국 폭력에 의해 수반되는 것이다. 폭력을 멈추기 위한 폭력이 진정한 폭력을 위한 명제이나, 우리는 폭력으로서 이익이나 이권 그리고 명제로서 사용한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아쉬운 점은 바로 그런 요소를 보여주지 않았다.

 

단지 잔인하게 고문당하는 사람들, 로켓에 의해 몸이 갈기갈기 찢어진 사람들, 총을 맞는 사람들, 남편에게 가혹하게 맞는 여자들, 배고픔과 추위에 죽어가는 사람들 모두가 슬픈 비극이다. 하지만 비극의 씨앗은 결국 어디인가? 물론 작가의 입장서 난감한 입장이 될 수도 있다. 그는 과격테러리스트를 좋아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폭력적 지배행위를 저주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어디서부터인가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단지 이런 일이 있다는 것만으로 동조하는 것보다 왜 있을까라는 의문을 가져야 한다. 그래야 역사는 두 번 반복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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