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래곤X프린세스X블레이드 1 - Seed Novel
오버정우기 지음, 보라 그림 / 디앤씨미디어(주)(D&C미디어) / 2014년 11월
평점 :
절판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

 

 

이 작품을 보기 전에 먼저 제목과 프롤로그의 시놉시스를 보는 순간 나는 어떤 그림이 생각났다.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영웅 페르세우스가 바다의 괴물로부터 안드로메다를 구출할 때를 말이다. 그 이유는 그 괴물은 바로 바다의 용이고, 페르세우스가 영웅이라고 하나 이번에 읽어본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전개되었다. 페르세우스는 안드로메다를 구출하기 위해 긴 창으로 용을 꿰뚫고, 이에 용은 쓰러진다. 하지만 신화에서 등장하는 안드로메다의 표정은 기쁨보다 조금 허무한 심정으로 페르세우스를 바라보고 있다.

 

또 다른 그림으로 페르세우스 신화에 등장하는 모티브와 유사한 그림인 안젤리카를 구하는 로저역시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페르세우스와 유사한 상황이 보인다. 기본적인 판단력에서 요구되는 것은 이 작품에서 영웅은 남성, 구출되는 대상은 여성, 타도되는 대상은 용이다. 그러나 잘 알아야 할 것은 영웅의 복장이다. 로저의 복장은 중세 기사의 갑주이고, 페르세우스는 고대 그리스 장수의 복장이다. 페르세우스 복장이 결국 그리스 문화, 그 문화는 철기문화이고, 그리스 문화에서 산업체계는 노예제를 이용한 농경사회다.

 

폴리스국가를 이루던 그리스는 10%의 남성만이 정치적 의결권이 가지고 있었다. 그런 점을 미루어 보면 용의 퇴치는 남성중심 정치사회를 완전한 구성이 되었음을 알 수 있는 것이고, 용의 존재는 여성으로서 이미 몰락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제일 중요한 신은 제우스다. 그는 아버지 크로노스를 쫓고 헤라와 결혼하여 모든 신들과 인간들의 아버지가 되었다. 그런 제우스에 대한 연구에서 그의 딸인 아프로디테, 즉 사랑의 여신인 비너스로 들어가면, 비너스의 어머니는 메티스로 바다의 여신이다. 그 여신은 본래 뱀 내지 용의 형태를 가지고 있다. 뱀과 용은 여성을 의미하는 것이고, 페르세우스의 긴 창은 단순히 안드로메다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이트의 정신분석으로 들어가면 여성의 첫 순결을 뺏는 남근이 되는 셈이다.

 

그런 신화적 요건에서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가 과연 어느 방식으로 갈지 궁금해서 책을 구매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본래 생각하던 안드로메다와 페르세우스 신화하고 조금 거리가 있었다. 드래곤이란 부족이 여성으로 이루어진 부족이라면 좋았을 것인데, 아쉽게도 주인공 히로인 밀레니아는 용왕의 딸인 황녀이었고, 그의 용약의 계약자는 리온이란 드래곤 슬레이어 일족이었다. 용과 인간의 전투에서 안드로메다의 페르세우스의 결투는 남성과 여성의 주도권을 다투는 과정에 남성의 승리였다면, 만약 이런 신화적 요소가 여성이라면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생각해보고, 또한 환상문학과 많이 연결된 라이트노벨에서 흥미와 재미로 이끌어 가면 어떤 결과로 나올지 생각해보았다.

 

작가는 라이트노벨을 작성하면서 북구신화에서 많은 모티브를 삼았고, 주인공이 드래곤 슬레이어였다면 신화적인 요소를 빌어 현대적인 감각으로 살린 것이라 볼 수 있다. 신화란 우리 현대인에게 낯선 것일지 모르나, 신화는 집단적인 무의식의 표출이라 볼 수 있다. 어딘가 다르나 각국의 신화는 조금씩 유사한 요소가 많은 것이다. 게다가 신화란 우리 현대인에게 환상이겠지만, 신화는 옛날 사람들에게 그 자체로서 역사인 셈이다. 그리스에서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를 위해 축가를 불렀다.

 

그의 영원한 죽음과 삶이 반복되는 점에서 말이다. 북구신화와 그리스신화에서 차이점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신들의 의상과 무기, 타도대상에서 유사한 점이 많았다. 신화가 역사인 옛날, 신화가 환상인 지금에서 현대인에게 신화와 역사는 과거와 현재를 이어지는 가교역할을 하는 것이다. 라이트노벨을 토대로 만화 내지 애니메이션 역시 그렇다. 이야기의 시작에서 최초의 서사는 신화고, 현재 최근에 만들어진 서사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다. 따라서 이야기의 시작과 끝에서 근본적으로 인간이 드러내는 욕망에 대한 심리적 근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를 보면서 위의 맥락에 충족되지 않은 것은 분명 필자 개인적으로 아쉽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야기의 끝을 보면서 나름 만족했다. 드래곤이란 소재, 검사의 소재, 그리고 불완전한 소년의 등장에서 많은 cliche를 공유한다. 그러나 이 작품은 나름 이야기의 흐름이 매끄럽고, 복선 설정 역시 억지로 불어넣지 않았다. 작가가 만든 세계관에서 나름 충실하게 반영되었고, 용인전쟁에서 패배한 인간에게 현재 우리 지구의 중심은 인간이나,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에선 용이 중심이다.

 

세계의 중심이 용이라면 그 세계에 존재하는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에 빠지는 것인가? 게다가 최근 일본에서 방영한 라이트노벨 원작의 애니메이션 <성각의 용기사>와 비교해보면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의 흐름이 훨씬 부드럽고, <성각의 용기사>에서 용기사와 용에 대한 모험이나 그 속내는 하렘장르란 한계성에 갇히나,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는 연애적 요소를 크게 부각하기 보단 하나의 보조적인 역할로 설정했다. 그런 점은 작가가 작품에서 서사를 얼마나 잘 전개하는가에서 독자로 하여금 재미와 흥미를 줄 수 있다.

 

이 작품에 대한 생각에서 불평등에 대해 생각했는데, 인간은 불평등은 크게 2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하나는 나이, 민족, 성별에 의한 선천적 불평등이고 다른 하나는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별에 의한 후천적 불평등이다. <드래곤 프린세스 블레이드>에서 용과 인간의 불평등은 바로 선천적 불평등, 즉 선천적인 불평등이다. 황녀 밀레니아는 다른 용과 다르게 인간에게 매우 관대한 자세를 보인다. 불평등의 차이에서 오히려 상대방과 자신의 존재가 다른 것을 알기에 그런 판단이 가능하다.

 

작품 내에서 다른 용과 계약으로 하나의 우월성을 얻는 자들은 오히려 후천적인 요소에 강하다. 그것은 서로 간의 계약, 사회적 계약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용인전쟁에서 승리한 용의 지배권에 인간과 용의 평등관계를 강요하는 것이나 혹은 그 이전의 불평등을 강요하는 것이나 모두 지배권자의 논리일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논리가 논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윤리라는 가치가 선행되어야 가능하다. 밀레이나의 그의 의지, 그녀가 가진 각오, 드래곤에 대하여 혐오감을 가진 리온은 과연 그녀에 대해 어떤 식으로 받아들이는지 보면 나름 잘 풀어나갔다고 본다.

 

그리고 인간과 용이 서로 다르지만, 밀레니아는 항상 나는 나이고, 내가 아닌 다른 드래곤은 나하고 같은 대상으로 여기지 말라고 말한다. 상당히 작품에서 실존주의적인 요소가 강하게 풍긴다. “나는 나 너는 너라는 명확한 인식에 대한 발언은 어느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상대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있는 그 자체로서 봐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드래곤 황녀인 밀레니아가 아니라 리온의 친구인 밀레니아로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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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almA 2015-01-21 16: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집단 무의식이라 할 때 아담-뱀-이브 / 전사 혹은 왕자-용-여자 이 구도는 어떤 연결점이 있을지요?

만화애니비평 2015-01-21 16:41   좋아요 0 | URL
제 개임적으로 뱀에 대한 여성적 상징성을 부정적으로 몰아넣는 것이 예상됩니다. 예전에 마빈 해리스의 서적을 보면 남성의 무의식에 의해 조성된 (문명적 폭력) 것이기보단 문화에 의해 조성된 남성의 것이라고 보더군요.
에덴동산의 뱀은 욕망을 말하고 금기를 어기는 존재로 나오듯이 문명화 된 국가사회에선 여자의 행동을 배제하려는 남성의 심리가 아닌가 합니다.

AgalmA 2015-01-21 16:51   좋아요 0 | URL
음. 남성적 문명의 방어기제 같은 것이기도 하겠군요. 답변이 엄청 빨리 와서 깜짝 놀랐습니다. 감사드립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1-21 16:55   좋아요 0 | URL
사무실에 컴 앞에 있으면, 메일로 바로 알림이 오거든요(아니 알라딘 북플로도).
예전에 제우스, 아프로디테, 메티스에 대한 페미니즘 분석을 귀동냥하면서 신화적인 요소와 인류학(히즈 스토리)에 대한 서적을 보면서 정리한 것이죠.
 
서재에 살다 - 조선 지식인 24인의 서재 이야기
박철상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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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해보면 너무 부족하다 못해 어설프다고 말할 수 있다. 가령 다른 국가의 축제 내지 기념일을 찾아보면 그들의 국가 내지 민족에 대한 기념적인 행사로 남을 수 있도록 최대한 자신들의 정체성을 발휘한다. 프랑스의 경우 1789714일 처음으로 프랑스 민중들이 봉기하여 바스티유 감옥을 함락한 것을 최고로 여기며, 미국의 경우 독립기념일을 최고로 여긴다. 자신들의 국가가 지금의 모습을 생기게 해준 것에 대한 가치다. 그런 반면에 일본은 경우 에도시대부터 내려온 문화, 혹은 근대 전후로 생긴 문화를 이어져 내려온다. 그들의 축제는 전통문화의 연속적인 향연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의 얼굴을 내보일 수 있는 정체성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한국의 근대 이전 사회, 즉 일제에 의해 국권을 빼앗긴 시절과 그 이전에 있던 조선이란 이름으로 왕조가 있을 때를 생각해야 한다. 물론 잔혹한 일제나 시대에 뒤떨어진 조선이란 시기는 지나갔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역사에서 그 시대의 흐름이 없었다면 현재 모습이 없다. 한국에서 최고의 도시는 서울이다. 서울이 도읍이 된 시기가 바로 태조 이성계가 고려를 멸망시키고, 개성이 도읍이던 고려에서 한성이 수도이던 서울로 이전한다.

 

서울이란 곳이 한성 즉 한양이란 말처럼 한양이 우리의 수도가 된지가 거의 620년이 넘었다. 조선에서 그리고 지금의 대한민국이란 국가로서 살아온 시기를 본다면 한국의 역사에서 조선은 최후의 왕조국가이면서, 우리가 남긴 문화적 유산을 가진 국가다. 아쉽게도 그나마 조선 이전에 남은 문화적 유산은 고려나 통일신라(보단 후기신라가 맞겠지만) 정도다. 종교가 정치적인 제도로 살아가던 시기에 한국의 종교는 단군시대부터 삼국시대 초기까지 샤머니즘에 의해 유지되다, 삼국시대부터 고려 말기까지 불교, 조선시대부터 본격적으로 유학, 그 안에서 성리학으로 대체된다.

 

성리학이 조선의 학문과 정치사상이 되면서 사회는 오히려 개혁을 추구하기보단 퇴보하기 시작했다. 사농공상이란 사대부 중심의 사회가 되면서 사대부는 학문의 근본을 세우기보단 그저 성리학 안에서 허례허식만 추구했다. 공자의 유학은 전쟁이 많은 시기, 군자의 정치로서 백성을 평안하게 하고, 어려운 국가 내정을 회복하고자 했다. 왕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쌀이라 할 수 있다. 배고픔에 굶주려 옷을 헐벗는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정치적으로 군자의 적선이라 할 수 있다.

 

본래 사대부들은 유럽 중세시대에 봉건영주와 같은 위치다. 마을에 향약이나 서당을 열고, 그 마을에 일어난 일을 주관하거나 관리하기도 한다. 물론 관청도 있으나, 마을의 풍속은 그 고을에 사대부들의 인품과 학문적 기상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물론 조선후기로 갈수록 양반들 사이에서 부익부 빈익빈, 특히 당파전쟁과 세도정치로 인해 많은 사대부들이 목숨조차 부지하기 어려운 상황에 내몰렸다. 이번에 읽어본 <서재에 살다>는 바로 그런 시대에 살아간 지식인에 대한 기록이다.

 

지식인들이 나온다면 그들이 추구하는 학문적 가치와 삶의 향기를 찾아보는 것은 중요하다. 그런 것도 우연인지 <서재에 살다>는 내가 최근에 읽어본 서적에서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한국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하기 좋은 서적이다. 약간 아쉬운 점이라면 내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가족을 제외하자)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이다. 18세기 말과 19세기 초 한국에서 조선이란 국가의 마지막 르네상스, 그 시기 중심에 있던 인물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일대기를 찾아보고 그분이 귀향살이를 하던 강진군 도암면에 가본 적이 있었다.

 

다산 정약용이 기거하던 도암면 귤정처사의 산장인 다산초당은 한국 전통문화로서 혹은 더 나아가 한국인문학에서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 이른바 다산학단이 생긴 곳이며, 한국의 인문학에서 모든 종점은 다산이었다. <서재에 살다>에서 다산의 지인이 하던 말처럼 열수의 죽음 수 만권의 서고가 무너진 것만이 아니라 조선의 학문과 미래까지 멸망이었다. 그런 그가 머문 곳 인근에 그분의 따님이 시집가서 살던 곳이 있었다. 한국 후기 유학자 중에 이름을 날린 방산 윤정기의 외할아버지가 바로 다산 정약용 선생이었다.

 

방산 윤정기의 가택 이름은 명발당(明發堂)이라 한다. 방산 윤정기는 후사가 없지만, 지금은 방산 윤정기의 먼 일가의 후손이 기거하고 있다. 작년 가을 시골에 가면서 그곳에 가보았다. 나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태어나고 살아가던 집에서 걸어가면 10분조차 되지 않았다. 약간의 현대적인 기술이 있지만, 아직도 기와로 이루어진 지붕을 보며, 우리의 정체성에 대해 생각한 점이 있었다. 유학이 중심이던 조선은 확실히 구시대적인 세기다. 하지만 19세기 초반에 움이 트던 실학이란 과연 무시하지 못할 사상과 가치관이었다.

 

다산 정약용 선생을 비롯하여 추사 김정희, 초의선사 이 3사람은 한국의 다도(茶道)문화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고, 한국의 차의 성인으로 지금 이 시기의 사람들에게 추앙 받고 있다. 나 역시 대학교 동아리가 다도동아리였기에 다도문화를 배우면서 이 3사람의 이야기를 보았고, 현재 남양주 마재, 여유당에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유배살이할 때 그가 머문 산장의 주인이면서 제자이던 사람의 후손에게 헌다를 받고 있다. 스승이 귀향하고 서거하면서도 아직도 찾아오는 제자의 후손을 보면서 뭔가 200년이란 시간을 넘어 계속 이어지는 이런 모습이야 말로 우리의 정체성이라 여겼다.

 

그동안 한국의 모습은 일제강점기와 동족상잔의 한국전쟁, 게다가 근대경제화로 인한 빠른 변화와 방황에서 우리가 원래 천천히 바꾸고 가꾸어야 할 것들을 모조리 버리게 되었다. 그리고 저 비극적인 40(을사늑약 포함)3년간의 전쟁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는 거의 파괴되다시피 했다. 그러면서 우리의 문화에는 외국의 문화를 천천히 받아들인 게 아니라 급작스레 억지로 밀어 넣고, 그것이 우리하고 전혀 다르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에 정착되기 시작했다. 변화라는 것은 마치 공기가 진공의 공간에 흘려 들어가는 것처럼 피할 수 없는 운명이다.

 

그렇지만 그 변화의 바람이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양식이 하나의 산들바람이라면 모를까 태풍처럼 몰아치면 남는 게 없다. 우리의 정체성 그게 뭔가 생각하면 답이 나오지 않는다. 왜 나츠메 소세키가 근대와 전근대 시대의 문화적 간극에서 고뇌하면서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보이는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인생이라 삶의 미학이 오로지 사사로운 이익에 묻히기 때문이다. <서재에 살다>를 읽는 순간, 우리의 정체성에 대한 되찾음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의 이야기가 우리에게 나오는 게 아니라 끊임없이 잘못된 인식에서 계속 유지된다는 점이다. 군사문화에 길들어진 사회, 사회라는 공간에서 특히 남자들은 군대문화에 익숙해져 이른바 까라면 까라는 게 통용된다.

 

이런 시기에 여자들은 오로지 자가만의 이익, 혹은 자식을 위한다고 하나 막상 자신의 자존심만 채우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그런 천박한 현실적 가치관이 한국의 정체성으로 되어 버렸다. 남을 위해 살아가지 못할망정 남을 파멸로 몰아가는 것조차 망설이지 않은 세상이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생과 삶의 미학이 다시 중요한 이유는 바로 이렇다. 사람들은 자신에 먹고 사는 것이 약간 만족하지 못하더라도 자신의 문화적 욕구를 채우려 한다. 하지만 그 욕구의 해소는 그저 대중문화라는 대량생산과 대량소비로 남과 나의 자아적 경계구분이 없다.

 

19세기의 지식인들의 서재는 바로 남이 아닌 나만의 공간이 있고, 그 속에는 삶의 미학과 지식인의 가치가 있다. <서재에 살다>는 바로 그런 우리 조상들 중에서 19세기 북학파 중심으로 구성된 지식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은 흔히 조선의 사대부만이 있는 게 아니다. 서얼 출신도 있었고, 가난에 허덕이는 자들도 많았다. 심지어 세력가에 의해 노염을 사서 먼 곳에 가서 귀양살이를 수 년 동안 고생하는 분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이 가장 중요한 재산이 바로 서재였다. 책과 붓, 벼루 그림 그리고 그림이 걸려있는 공간을 말이다.

 

지금 우리의 공간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예전에 개마고원 출판사로부터 선물로 책을 받으면서 <나만의 공간>이란 것을 본 적이 있었다. 나만의 공간, 어느 자는 책이고 누구는 옷이고 누구는 음악이며 누구는 다른 무엇인가가 채워져 있다. 자신만의 독특한 취향과 취미 그리고 더 나아가 삶의 모습은 그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풍요롭게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란 점이다. 우리에겐 바로 그 원동력이 존재하고 있는가라고 되물어본다면 과연 있을까?

 

자신만의 공간이 있기에 상대방과 교감이란 것이 있는 것을 아는가? 부끄러운 것인지 아닌 것인지 나는 TV를 보지 않은지 거의 10년이 되어간다. 취미로 만화, 라이트노벨, 애니메이션과 같은 하위문화를 즐긴다고 하나, 나의 서고에는 각종 철학, 사회학, 인문학 도서들이 꽂혀 있다. 나의 서고엔 결국 철학과 사회학이란 학문적 영역처럼 세상에 대해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 살아가는 문명이란 무엇인지 생각하기 좋은 공간이다. 지식인들의 서재이름을 보면 화려하기보단 오히려 겸손하거나 또는 어려운 자신을 묘사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여유당(與猶堂)이라 한 것처럼 만약 나의 서고를 두고 어떻게 말하여야 하는가? 오타쿠란 별명이 한국에서 오덕 내지 덕후라고 하나, 본래 의미가 상대방의 댁을 부른 말이기에 은댁재(隱宅齋)가 좋을 것 같다. 오덕쿠의 서재 오덕의 서재, 그늘에 가려진 하위문화 공간이 즐길 수 있는 곳은 역시 집이다. 그 집에서 서고라면 은댁재가 내게 맞는 서재인 것 같다. 만화책과 철학책이 공존하는 공간이기에 세상의 유행 따위 잊은지가 옛날이다. 덕분에 보통 사람들과 대화를 제대로 이어가기 어렵다. 이미 TV와 단절했던 점과 사람들이 전혀 관심을 두지 않은 영역을 파고 들어가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와 대화하는 사람들이 보통 사람과 다른 것을 추구한다면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한국의 문화, 세계의 문학과 문명, 그리고 예술의 세계까지 말이다. TV를 안 본 후에 내가 더 예술에 대해 더 관심을 두게 된 동기가 예술이란 모두 같은 것으로 보는 것으로 결코 다가갈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남과 다르게 살라고 하듯이 남도 다른 남과 다르게 살아야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나만의 공간, 나만의 세계는 그 시작의 중심이면서 시작이다. 어찌 보면 다양성이 없는 우리의 모습에서 <서재에 살다>의 지식들은 자신의 가치에 의해 다양한 모습들을 보여준다.

 

우리와 관계없을지도 모른다고 하나, 그들의 재산들은 우리의 우수한 문화재며, 국보와 보물로 남아있다. 게다가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라는 그림은 바로 <서재의 살다>에 나온 것처럼 그들만의 삶에서 나타낸 삶의 미학이었다. 그러나 나는 서재를 생각하면 바로 책을 읽는 사람의 모습만 떠오르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조선시대 선비들은 서재가 곧 자신의 집이고 방이었다. 서재에서 글을 읽는 선비는 자신만의 세계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고고한 의지를 담고 있었다. 학문의 성취는 무릇 자신의 출세만이 아니라 더 넓은 뜻이 있었기 때문이다.

 

관아에 나아간 자, 백성보다 더 괴로운 일을 생각하기 전에 먼저 괴로워하고, 백성들이 만족하고 나서 만족하라는 말은 인상적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서 유배 살이 할 때 갈밭마을의 아낙네 사연이 내 마음에서 항상 떠나지 않는다. 시아버지와 배냇물도 마르지 않은 아이에 대한 군포세 대신 소를 끌고 간 관청, 그것에 좌절한 남편은 칼로 자신이 남근을 자른다. 그 피가 흐르는 남근을 잡고 관청에 가는 아낙네지만, 아무리 곡성을 높여도 관청의 벽은 너무 높아 쳐다 볼 수 있다. 19세기의 일들이 200년이 지나 지금도 비슷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아무 것도 할 수 없고, 그저 멀리서 안타까워 비통해하던 다산 정약용 선생은 나그네 글방에서 시조를 읊으며 있을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조선시대의 지식인들이 다 저렇게 백성을 위해 고뇌하는 것만이 아니지만, 적어도 서재에 책을 잡던 그들은 허례허식에 빠진 자들이 아니라 현실적 문제에 큰 관심을 두었다는 점이다. 학문이란 현실과 동떨어진 세계가 아니라 현실의 근본을 찾아가기 위한 여정이란 점이다. 그런 치열한 공간에서 힘들게 살아가던 지식인들의 서재란 결국 그들의 모습이라 할 수 있고, 이것이야 말로 우리에게 크나큰 재산이란 점이다. 우리의 정체성 과연 우리에게 어디서부터 찾아가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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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inly 2015-01-18 23: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시기에 여자들은 오로지 자가만의 이익,혹은 자식을 위한다고하나 막상 자신의 자존심만 채우는 이런 모습이 우리의 현실이다. 우리의 그런 천박한 현실적 가치관이 한국의 정체성으로 되어버렸다? 참 뜬금없고 편협한 한국 정체성에 대한 정의네요.

만화애니비평 2015-01-18 23:27   좋아요 0 | URL
님의 그런 시선이 참 답답하네요.
현실의 교육을 보시면 알 겁니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과중한 교육, 부익부 빈익빈으로 양극화, 이런 문제로서 바라본 천박한 한국사회라는 것이고, 그러한 흐름이 결국 자본주의에 대한 가속화라는 점이고, 그런 것이 생긴 것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이후 정립되지 않아 이렇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무슨 의도로 덧글을 남기는지 몰라도, 조금 본인의 생각을 현실적 상황에 전후맥락을 판단하여 적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여성만 비난했습니까?
 
라쇼몽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1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지음, 김영식 옮김 / 문예출판사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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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쿠타카와 류노스케라는 이름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실격>을 보면서이다. 그의 문학은 류노스케라는 사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점이다. 또 하나로 알게 된 동기는 애니메이션 기획물 중에 <푸른문학>에서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작품 하나인 <지옥변>을 본 것이었다. 지옥변이란 작품을 약 25분 정도의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꾸몄지만, 그 작품이 단순히 애니메이션이라 하여 우리가 그래 만만하게 볼 것은 아니다. 미치광이 화가, 그리고 그 화가가 살던 폭군들, 이 작품을 보면서 인간이 가진 미적 감각이란 반드시 기존의 미적 가치에 부여한 게 아니라 그 이상의 것들을 찾아가거나 또는 추구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다소 소설과 애니메이션의 전개나 성향은 다른 것 같았으나, 나와 친한 분에 의하면 <지옥변>이란 작품은 지상예술주의적인 요소가 상당히 강하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작품을 한 번 보게 되면, 그의 작품은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인 요소를 들여보는 것보다 그 예술적인 성향으로서 작품을 이끌어가는 것이 보인다. 현실을 외면하는 비정치적인 표현의 글들, 하지만 과연 그가 그렇게 쓰는 것은 무엇인가?

문학적으로 현실에 대한 외면 내지 회피는 그 시대에 대한 거울적인 요소로서 대할 필요가 있다. 당시 일본은 근대문학을 꽃 피우던 시기고, <라쇼몽>이란 서적을 읽은 후 류노스케의 정보를 보는 순간, 그가 일본 대문호인 나츠메 소세키의 문하로서 있었다는 점이다. 나츠메 소세키의 글을 보는 것과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의 글을 보는 것, 더 나아가 다자이 오사무가 좋아한 류노스케의 글을 생각하면 조금 다른 괴리감이 나온다.

나츠메 소세키는 이른바 도쿠카와 쇼군 정치에서 메이지 시대로 이향되면서 그 시대에 보여진 희망찬 미래에 대해 그냥 보지 않았다. 오히려 메이지 시대가 이전의 시대보다 못하거나 비슷하다는 것을 말해 준다. 메이지 시대가 일본의 문화적인 요소에서 상당히 개방적으로 변하여 진보적인 역사로 받아들일 수 있으나, 메이지유신의 도래는 다시 천황이란 이름에 대하여 신적인 힘을 부여하고, 군국주의적 이상을 만들어가던 시기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읽어본다면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이지만, 막상 주인공인 간게쓰 선생은 전혀 상관이 없다는 표정으로 달관한다. 그런 모습은 이전에 읽어본 니체의 <반사회적 고찰>에서 니체가 바라보던 독일의 모습이 흡사한 느낌이 있었다. 독일은 1871년 독불전쟁에서 프랑스에게 승리한다. 그때 도취된 독일의 모습에 많은 독일 국민들은 그 흥겨움에 빠졌다. 그러나 니체는 바로 그런 독일 사람들에 비판을 날렸다.

조금 다르게 나츠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선 간게쓰 선생은 엉뚱하고 미련하나, 그 모습은 영락없이 실존주의적인 모습이었다. 국가가 승리해도 나에게 오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오히려 신문에서 전쟁에서 승리한 그들을 위로하기 위한 격려금 모금이라든지 혹은 전쟁에 참가한 장군이 군주의 죽음을 듣고 자살했다는 게 과연 자신과 무엇인가 말인가? 라는 의문을 남기는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일본은 근대사상에 입각한 게 아니라 단지 군국주의적인 요소로서 이향한 것이다.

근대국가에서 국가의 주체는 국민이고, 그 국민은 이성과 자율적인 선택에 의해 국가라는 조직을 운영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 있다. 우리가 아는 근대화란 이름에서 근대사상과 철학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근대화란 이름이 진행된 것이라 볼 수 있다. 차라리 근대사상에 입각한 국가적 체계는 무참히 살해된 1871년 파리의 시민, 꼬뮌들이라 볼 수 있다. 시민 내지 국민이 주인이 된다는 점은 그들의 표현과 의사전달에 대한 자율성을 부여한다. 일본의 대문호들이 나오던 시기에 그런 일본이란 국가를 보면 그들이 추구하던 문학적 모습을 보면 일본이란 국가가 추구하던 방향이란 전혀 다르다.

문학이란 것, 혹은 예술이란 것이 현실에 대한 강한 비판과 성찰을 요구해야 하던 것이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나츠메 소세키의 비판적인 성찰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회적인 구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회적인 변화에 어느 개인에게 주어진 상황에서 개인의 이야기로만 진행된다. 하지만 계속 읽는다면 그 사회에 놓인 개인의 입장에서 그 시대에 살아가던 사람들의 모습과 사회의 모습에 대해 나츠메 소세키는 분명 일본이란 사회가 더 좋아지지 않았다는 점을 우리는 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나츠메 소세키의 문하에 들어간 류노스케는 어떠한가? 류노스케의 작품을 읽다보면 처음과 끝에 대한 설정이 전혀 다르다. 이른바 보통 사람들이 즐겨쓰는 말인 기승전결, 문학에서 내러티브라는 것에서 그의 작품은 서사전개가 전혀 일반적이지 않다. 시작과 끝의 방향이 전혀 다르거나 또는 이야기의 진행이 긴장감을 이끌어 가는 것처럼 보이나, 결말은 너무 싱겁고, 때로는 전혀 엉뚱한 설정으로 들어간다. 혹이라면 역자의 후기처럼 <덤불 속>이란 작품처럼 가려진 공간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로 인해 이야기의 본질이 흐려지는 경우도 있다.

류노스케의 대표작품인 <라쇼몽>, 처음에 내가 <라쇼몽>이란 작품을 들어본 계기는 계명대학교 영화학과 서정남 교수의 <영화서사학>이란 도서를 접하면서부터다. 이른바 몽타주 기법에 대한 연구로서 혹은 다양한 영화이론을 독학하면서 <라쇼몽>을 알게 되었다. 그런 <라쇼몽>이 일본 거장감독인 구로자와 아키라에 의해 만들었지만, 막상 류노스케의 <라쇼몽>과 구로자와 아키라의 <라쇼몽>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설정한 것을 알았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은 사실 류노스케의 <덤불 속>을 토대로 이야기를 구성한 것이었다. 아직까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라쇼몽>을 감상하지 않았으나, 적어도 류노스케의 <덤불 속>과 그 <덤불 속>이 실린 <라쇼몽>을 읽으면서 류노스케의 소설세계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라쇼몽>이란 어느 절망적인 시기에 주인에 의해 쫓겨난 하인이 어느 노파의 모습을 보고, 자신이 산적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상대방이 다른 상대방의 것을 취한다면, 나 역시 그 상대방을 취하는 것이 문제없다는 것에서 인간의 본질적 요소를 보여준다.

그런 빼앗고 빼앗아가는 구도는 생명이란 이름이 새겨진 나생문(羅生門, 라쇼몽의 한자어)에서 인간의 윤리와 현실적 상황의 대립을 보여준다. 여기서 인간은 윤리보단 현실을 선택하나 아이러니하게도 최소한 산적이 된 하인은 노파의 목숨을 훔쳐가지 않는다. 후기 역자의 말처럼 주변에 시체들의 몸에는 옷이 입혀져 있었고, 그 중에 여자도 제법 있었기에 노파는 그 여자시체들의 옷을 입고, 그 여자의 머리를 뽑아 가발을 만들어도 되기 때문이다. 물론 하인의 도적질은 문제되나, 노파의 행동 역시 윤리적으로 용납하기 어렵다. 그러면서도 노파는 자기가 어느 여자의 머리를 뽑으면서 그 여자의 행동을 비난하는 모습이 나온다.

마치 끝도 없는 비난과 그 비난에 대한 응징의 도적행위가 정당화되는 것이 나온다. 아마 일본의 당시 모습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자본주의 경제구조에서 인간들은 타인의 것을 빼앗아야 자신에게 부가 증가되고, 그런다고 하여 그 남을 것을 빼앗는 게 법적으로 문제가 없다지만 분면 다른 방식으로든 그 문제점이 있다. <라쇼몽>이 류노스케의 첫 작품이고, 나츠메 소세키 문하시절에 내놓은 것이라면 충분히 나츠메 소세키의 영향력을 받았을 것이라 생각했다.

현실에 대해 다른 모습으로 바꾸니 말이다. 하지만 이런 <라쇼몽>과 다르게 다른 작품들은 초현실적인 요소로 보여주거나 혹은 인간이 현실에서 엉뚱한 착각을 하는 모습들을 다룬다. <덤불 속>은 어느 남자의 죽음에서 목격자와 가해자 그리고 다른 피해자의 진술이 모두 다른 것처럼 진실은 항상 다른 곳에서 숨어 있었다. 죽은 남자의 혼령이 무당에 의해 나올 때 우리는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이 전혀 다른 전개로 흘러가는 것을 알 수 있다. 같은 세계에 있어도 전혀 다른 이야기와 증언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현실에 대해 일관적인 비판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계속 돌고 도는 것이다.

모든 작품이 그러한 것은 아니지만, 그의 작품에는 항상 결론이 흐지부지 하거나 또는 싱겁게 끝나거나 도대체 작중 인물이 무엇을 말하고 전달하고자 하는지 제대로 전개하지 않은 것들이 많다. 이것은 곧 현실에 대하여 용린을 건들지 않겠다는 점과 같을 것이다. 현실의 이야기보단 환상과 괴이한 상황의 연출은 현실로부터 도피다. 하지만 그 도피는 암울한 시기에 살아간 지식인들의 숨이 막힌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우울한 상황이 류노스케의 글이 되었던 것이다. 현실을 벗어나 전혀 다른 결말과 결론, <덤불 속>과 <라쇼몽>에 있었던 자들은 <덤불 속>과 <라쇼몽>의 등장인물들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 속에는 현실에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다. 단지 그들은 그 속에 나온 주인공들처럼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여전히 <라쇼몽>의 형태는 21세기에도 진행 중이고, <덤불 속>에는 아직 우리들이 살아있다. 현실을 외면한 그의 현실에 대한 느낌이 그의 작품에서 숨 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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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란 무엇인가 까치글방 133
E.H. 카 지음, 김택현 옮김 / 까치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서적은 예전부터 익히 들어본 책이다. 그런 책이 어느 순간 우리에게 낯설지 않게 다가온 것은 2013년에 개봉영화 <변호인>에서 나오면서 부터다. 저자 E.H. 카, 정식이름은 에드워드 헬리트 카라는 사람이었다. 본래 영국에서 정식으로 외교관으로 활동하다 역사연구가로 명성을 날린 사람이다. 그의 학교출신인 케임브리지 대학교 트리니티 칼리지를 졸업했다. 정식으로 대학의 어디에 졸업했는지 모르나, 케임브리지 대학교는 영국의 대표적인 학술기관으로 개인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철학자 에릭 홉스봄이 재직한 곳이다. 아무래도 대부분 한국 사람들은 세계의 대학교라고 하면 보통 미국의 하버드를 비롯한 동부권 대학교를 생각하겠지만, 진실한 학문을 추구한 곳이라면 바로 영국이다.

 

영국의 대학교에서 이미 E.H 카와 같이 역사학으로 유명한 사람으로 얼마 전에 타계한 에릭 홉스봄이란 사람이 있다. 그는 영국의 대표적인 역사학자면서도 마르크스주의자이다. 마라크스주의로서 역사를 본다는 것은 기존 전 근대적인 영역에서 새로운 근대사상으로 깊숙하게 들어온 것과 같다. 카의 경우 그는 마르크스주의는 아니지만,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고찰과 그리고 마르크스의 변증법을 탄생시킨 헤겔의 변증법으로 통하여 역사란 과연 무엇인가를 보고 있는 것이다. 역사란 단순히 발굴 장소에서 발견된 화석덩어리가 아니라 그의 유명한 명언처럼 “역사란 역사가와 그의 사실들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것이다.”라고 밝힌다.

 

사실 역사라는 것은 우리가 정확하게 판단내리기가 어려울 경우가 많다. 가령 루이15세가 통치하던 시기에 프랑스궁전에서 일하던 다미엥이란 하급관리는 그의 군주인 루이15세를 암살을 기도하다가 실패로 끝났다. 그의 처분은 가혹한 고문과 고문으로 이어진 사형이었고, 엄청난 고통의 통증과 죽음조차 용납하지 않았던 다미엥은 결국 모든 육체가 재로 변하는 것으로 그의 몸은 사라졌다. 대신 정식적인 기억에 의해 미셀 푸코의 <감시와 처벌> 맨 앞장에 선두하게 되었고, 카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는 구조주의 사상가의 대표도서에 거론되었다.

 

그렇다면 다미엥이란 사람이 시도한 암살은 분명 그 당시에는 엄청난 파급을 일으킨 반란행위고, 일반적으로 당시 인간이라면 다미엥은 무조건 용납하기 어려운 인물이었을 것이다. 게다가 루이15세가 지배하던 시기는 중앙집권화가 계속 이루어진 상태서 재정상태가 계속 악화되었으며, 그것은 결국 백성들에게 책임이 전가된다. 리오 담로시의 <인간불평등발견자, 루소>라는 책을 보면, 다미엥의 암살미수에서 처벌받기까지 심문 도중 다미엥의 공범자로서 장 자크 루소가 1762년 에밀을 내기 전에 이미 프랑스 파리에서 유명인물이 되었고, 그가 다소 은둔적인 인간을 추구하는 것과 인류의 역작이란 불릴 <인간불평등기원론>은 1755년에 나왔다. 1757년에 다미엥이 죽은 시점에서 이미 파리에서 루소가 상당한 화제로 된 인물로 본다면 다미엥의 죽음은 기존 구체제에 대한 반항이다.

 

루이16세가 단두대에서 죽기 전에 자신의 왕국을 멸망하게 만든 것은 루소와 볼테르 때문이라 했다. 그런 만큼 역사의 관점으로 보자면 루소와 볼테르는 봉건적인 왕국에 대해서는 크나큰 적이고, 이제 민주주의 국가로 향하는 국가에서 본다면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다. 따라서 역사적인 가치에서 현대 사회, 혹은 카가 살아가던 20세기는 이제 왕국이 해체되어 의회민주주의를 추구하던 시기다. 지난 19세기는 아직까지 왕이 통치하는 나라가 있었고, 물론 왕이 직접적으로 통치하지 않으나 입헌군주제가 존재했다. 현재 영국에서 국왕과 여왕이 존재하고, 왕립기관이 엄연히 존재한다. 그런다고 하여 영국은 왕이 주인으로 등극하는 게 아니라 국민이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 국가체계라는 점이다.

 

오늘날 그런 국가적 형태와 정치적 체계에 따라 역사를 보는 것은 당연한 관점이다. 한국의 역사를 두고 보자. 그렇게까지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대한민국 헌법을 보면 역사학적으로 드러내는 것은 없겠지만, 역사적인 가치를 두고 있다. 그것은 민주주의로서 과거 봉건왕국이던 사대부 중심이 아니라 1919년 3․1운동을 계승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적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게다가 4․19혁명을 정신을 계승하는 것 역시 민주주의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사건이다. 이렇듯 역사라는 것은 단순히 어느 일정한 공간과 시간에서 특정인물이 일으킨 사건에 치중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것이 과연 지금 현재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다가오는 것인지가 중요한 것이다.

 

<역사란 무엇인가>라고 생각해본다면 지금 사회에서 과거에서 비롯된 연결고리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올바른지 생각해야 할 점이다. 저자인 카는 그런 시기적인 부분과 관련하여 봉건사회와 프랑스대혁명 시기 이후 유럽에 널리 퍼진 혁명의 시대, 또한 나폴레옹의 제정프랑스, 비스마르크 수상, 파리 꼬뮌, 러시아혁명을 두루 성찰하며 역사에 대해 판단한다. 역사의 원동력에서 과거는 대부분 정치인들, 즉 영국이나 유럽의 경우 귀족과 왕족에 의해 좌우되었다. 그들의 정치적 이권과 충돌이 모든 것의 시작이고, 모든 것의 종료다. 귀족들끼리의 권력다툼은 단순히 귀족만의 전쟁이 아니라 그 지역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싸움이다.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가치관이 어느 특정 권력자에 의해 결부 짓는 것과 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특정 권력자에 의해 움직이는 것이 아니라 대다수의 민주주의 체계 아래 사회구성원으로 움직이어야 한다. 따라서 유럽에선 과거에 비추어진 역사적 사실에서 명예혁명을 찾아가는 이유는 지금의 현실을 존재하게 만든 가치와 조건을 찾기 위한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것은 역사가 결국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한 길이기 때문이다. 정체성이라는 것은 인간, 국가, 사회 등의 그 존재성에 대한 근본이 되는 것이다. 역사란 바로 그런 정체성을 부여하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가령 프랑스에서 많은 기념일이 존재하겠지만, 7월 14일만큼 가장 거대하고 웅장한 날이 없을 것이다. 그날이 바로 프랑스대혁명이 시작되어 바스티유 감옥을 공략하려한 날이다. 최초로 지배계층이 아닌 피지배계층이 부당한 권력에 향하여 칼을 든 날이다. 그 누구의 명령이 아닌 바로 그 자신들의 명령에서 말이다. 결국 근대사상은 국가란 절대불가침한 존재가 아니라 국가라는 바로 개인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거대한 조직이 된 것이다. 그렇지만 그에 따르는 역사적 진보는 바로 인간들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진보적인 역사가 되려면 인간의 눈을 가리고 있는 무지의 장막을 제치고, 그 현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이성의 판단력이 요구된다.

 

따라서 카는 헤겔의 말을 빌려온다. “이성적인 것이 현실적이고, 현실적인 것이 이성적이다.” 개인적으로 이 말이 나는 헤겔로부터 올 것이라 생각하지 못했다. 이런 생각이 어느 날 문득 든 나는 그런 관념적인 사고방식으로 생각할 때, 헤겔이 그런 말을 한 것을 알았다. 결국 이성적인 것에 의한 현실적 사고방식, 그런 현실적 상황을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인간의 지성,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 그것은 부여되는 것이 아니다. 안타깝지만, 대다수 인간은 무지할 수밖에 없다. 인간의 무지는 정말 무지하기 때문에 무지한 것보단 그 무지에 대한 자신의 현실을 바라보려 하지 않음에서 비롯된다.

 

무지의 장막 너머에 존재하는 현실적 모순에 대하여 이성적인 사고방식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는 점은 결국 현실적이지 못한 인간이 되는 것이고, 현실에 대한 무비판성은 결국 자신의 무지를 하나의 당위성으로 연결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단지 생각하면 그런 무지의 대다수의 군중들이 하나의 운동에너지가 되어 모든 것을 움직일 힘이 된다는 것이다. 사건과 사고는 단순히 총성을 울리기 위한 격발에 불과한 것이다. 하지만 그 격발은 모든 것을 불태울 수 있는 파괴와 혼돈의 시작점이 된다. 우리가 왜 역사를 제대로 보고 생각해야 하는가? 우리의 세상은 우리의 의지와 전혀 관계없이 흘러갈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과 타자의 공간의 불일치되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자신의 공간마저 타인에 의해 모든 것으로 결정된다는 것은 인간의 존재가 결국 실존적인 요소가 전혀 반영되지 않은 채 하나의 도구로 전환되어 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철학에서 루소의 일반의지는 인간이 가진 이성적인 판단에 의해 자신의 이익이 아닌 공공의 이익을 위해 판단하고 결정하는 의지다. 하지만 그 의지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타인의 의지, 게다가 그 의지는 개별적 이익을 바라보는 전체의지로 되었다면 그 사회의 현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그에 따른 전체의지가 하나의 이데올로기적인 합리성은 부여받기 위해서는 또 다른 역사적인 흐름을 잡아나갈 것이다. 결국 역사란 자신과 혹은 그 자신에 반대되는 이데올로기의 대립에서 발전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변증법이란 찬, 반, 정이란 관계는 헤겔의 가르침에서 자신들이 품은 모순, 혹은 지금 모순을 품은 자들이 느낀 현실적 모순에 대한 반발의식이 서로 부딪히면 부정의 부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하지만 카의 <역사란 무엇인가>를 읽은 후 주변 사람과 이야기하면서 카는 여전히 근대사상, 즉 모더니즘을 신봉하는 사람이란 점이다. 최근에 포스트모더니즘을 이어 이제는 전 모더니즘으로 회귀하는 한국을 보면서 지식인들이 활보하던 시기가 사라지고 이제 대다수의 군중들이 역사의 무대로 나왔다고 해도, 이제 그 대다수의 군중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끝없이 표류하는 이방인이 되어버렸다.

 

한국사회에서 <역사란 무엇인가>를 돌이켜본다면 근대사상과 철학적인 요소가 없이 그저 근대산업만 지나간 현재, 국민들에게 이성적 판단력을 제대로 정착된 되기에 너무 짧았다. 따라서 강신준 교수(카를 마르크스 <자본> 번역자)는 근대사상에서 마르크스주의의 도래로 통한 모더니즘이 정착되지 못한 한국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는 그저 아무것도 정리되지 않은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모더니즘조차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는 오히려 혼란을 유지시켜줄 뿐이다. 그런데 이제 포스트모던 시대에서 전 근대적인 현상, 이미지의 도래에서 결국 현실의 지배는 이성이 아닌 미디어라는 정치경제적인 권력에서 시작된다.

 

미디어라는 것은 역사라는 사실을 재구성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우선 어느 시기에 어느 사건이 일어났었다는 상황에서 그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한 전반적인 전후관계가 상실되어버리는 것이다. 사실이 되는 단지 OOOO년 O월 O일 OO시 OO분 XX시 XX동에 누가 무엇을 했다는 이제는 의미가 혼선을 빚게 된다. 있지도 않은 사실, 혹은 가정조차 되지 않을 조건이 하나의 fact로 되는 것이다. fact라는 것은 만들어진 사실이다. 원래 있었던 사실이 아니라 뒤에 조작된 사실이란 것이다. 역사라는 것은 그때 벌어진 일은 분명 조작할 수 없을지 모르나, 그것이 가진 의미, 사실성과 우연성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결국 역사가가 가진 책무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과정은 역사가가 가진 관점에서 비롯되고, 그것은 결국 역사가라는 인물에게 부여된 양심과 지성 그리고 선택에 의한 노선이다. 따라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역사가는 자신이 생각하는 역사적 가치에 대한 만남에서 자기에게만 좋을 선택지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고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카는 역사적으로 진보적인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책을 만들고,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역사의 진보라는 것은 역사의 흐름에 의해 조성되는 게 아니라 이성적인 가치의 지속적 추구로서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성이 마비된 세계란 진보는커녕 퇴보와 시대착오적인 흐름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대한민국 사회의 현실을 본다면 충분히 알 수 있지 않겠는가? 역사란 과거와 현실의 단절이 아니다.

 

오히려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과거는 상상하고, 미래는 기억한다.”라는 말을 기억한다. 대다수의 어리석은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들은 자신의 권력에 대한 미래영구적인 기념을 위해 항상 상상하고, 그에 따른 부당한 권력을 남용한다. 그리고 그들은 소멸할 때 미래의 판단은 그들의 어리석음을 기억한다. 현실은 결국 과거에 의해 존재되고, 그 존재된 현실은 미래를 앞으로 향하여 달려간다. 오늘 내가 하는 행동에 훗날 어떤 식으로 받아들일지는 모르나, 그 행동 하나가 지금은 역사적 패배자가 되어도 훗날에 역사적인 승리자가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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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신해철 - 신해철 유고집
신해철 지음 / 문학동네 / 201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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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2월 31일, 2014년 마지막 날에 내 사무실에 신해철 유고지 <마왕 신해철>이 도착했다. 퇴근시간이 다 되기 전 아주 아슬아슬하게 말이다. 신해철의 유고지가 도착하는 아침 나는 사무실로 출근하면서 버스 안에서 왠지 가슴이 아리는 노래를 들었다. 전설적인 락뮤지션, 브리티쉬 하드락에서 절대영역인 Led Zeppelin의 노래였다. 그들의 4집인 stairway to heaven이란 곡이 내 귀에 꽂힌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신해철이란 이름이 이 세상에 더 이상 실체적으로 존재하지 못한 날, 6시 배철수 음악캠프에서 이 노래가 흘러나왔다. 배철수 씨는 신해철의 죽음에 아무런 말도 이어가지 못한 채, stairway to heaven이란 곡 하나로 모든 심정을 답변하였다.

 

천국으로 가는 계단, 그곳에 가는 방법은 황금이 있어야 하는가요? 하지만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영혼과 자연에 대한 그 자체라는 것이다. 천국에 가는 것은 결코 돈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곳에 갈 수 있는 영혼과 자연적인 요소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신해철의 죽음은 천국으로 가는가? 지옥으로 가는가? 아직 죽지 않아 뭐라 말할 수 없다. 아니 나는 영혼의 존재를 믿을 수 있어도 종교는 없다. 단 이것만 말하고 싶다. 그가 가는 곳은 그가 어린 시절 육교 위에 만난 작은 친구 병아리 한 마리가 날고 있는 곳으로 가는 곳만은 분명하다.

 

아니라면 그가 2달 동안 집안에서 은둔하며 술로 보내게 만들었던, Mr. Trouble의 곁에서 서로 웃으며 막걸리 한 잔을 소박하게 나누어 마실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내 마음이 솔직히 아팠다. 신해철과 마지막으로 같이 방송작업을 했던 진중권 교수가 신해철의 죽음을 듣고, 안타까움과 그리움의 글을 남겼다. 진중권 교수가 죽은 자를 위해 저술한 도서로 몇 권이 있겠지만, 그 중에서 기억나는 것은 <레퀴엠>,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이었다. 첫 번째 책에는 진중권 교수가 군대시절에 의무병으로 근무하면서 실제 겪은 이야기를 토대로 진행된다. 죽은 병사의 사체, 그들을 보며 통곡하는 어머니, 그의 입에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욕이 나온다.

 

<이런 바보 또 없습니다 아! 노무현>에서 2009년 5월 23일에 서거한 노무현이란 한 전직 대통령에 대한 글은 참으로 침착한 글이었다. 물론 권력이란 피를 뿌리는 잔혹한 결말에서 역사적인 인용은 아직도 “역사는 2번 반복된다. 1번은 비극으로 1번은 소극으로”라는 것처럼 노무현의 죽음은 아직도 야만적인 한국의 정치적 현실을 통감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이와 다르게 <마왕 신해철>에서 보인 진중권 교수의 글은 상당히 인간적이었다. 2007년 신해철이 갑자기 진중권 교수에게 전화 와서 해철이라 인사하고, 서로 만나 의기투합하여 새벽까지 술을 마신 것에서 두 사람은 과연 언제 친구가 되어도 어색하지 않을 사이였다.

 

그런 신해철의 죽음에서 진중권 교수의 글이 인간적 요소가 돋보이는 이유는 아마 인간 신해철이란 남자가 가진 진정한 맛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보다 더 아련한 맛이 그의 글에서 나왔다. 하지만 왠지 신해철의 죽음은 너무 아련했다. 신해철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이후 3년 동안 거의 폐인 비슷하게 지내다 3년이 지난 후 그의 추모앨범에서 <Goodbye, Mr. Trouble>이란 곡을 만들었다. 강헌 음악평론가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제 신해철이 <Goodbye, another Mr. Trouble>로 되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서 2달 동안 술만 마시고, 그의 추모하는 공연에서 삭발을 하던 신해철은 카리스마를 모조리 증발한 것처럼 비참해 보였다.

 

진중권 교수의 <레퀴엠>에서 2003년 이라크 파병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인 글을 싣는다. 신해철 역시 파병에 대해 비판했다. 하지만 2002년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지지하고, 2009년 그의 죽음에 안타까움만 비추었다. 이제는 노무현 대통령과 신해철을 그리는 사람들에게 그 몫이 오히려 더 무겁게 다가왔다. 신해철 그는 내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들어왔던 뮤지션이고, 독설가다. 그의 방송인 고스트 스테이션, 마왕이란 별명, 넥스트 앨범과 싱글앨범 등은 어린 시절 나와 형의 추억이 담겨있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도시인’이란 곡과 같이 회색으로 가득한 도시의 고독에서 내 인생을 바라본다.

 

그리고 ‘나에게 쓰는 편지’처럼 내 자신이 원한 길과 미래 그리고 지금을 바라본다. 그의 노래는 언제나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고, 지금의 현실을 비판한다. 노래라는 것이 정말 시와 같은 아름다움으로 혹은 거친 폭풍처럼 다가온다. 모든 신해철의 노래와 음악을 들은 것은 아니지만, 그의 음악은 언제나 새로운 것을 추구하고 새로운 가치관을 말하며, 언제나 같은 것만을 강요하는 대중음악의 틀을 돌파한다. 그런 점에서 음악이란 것만큼 그 사람에 대해 잘 나오게 하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인간의 감정은 시각적 효과보단 청각적 효과에 의해 더 자극된다.

 

내 귀를 자극하는 사운드에서 지금 들어도 좋은 그의 감각이 여기서 멈추어 버린 것은 나에게 큰 허탈감이다. 누구와 다른 생각과 삶 그리고 선택을 하던 신해철의 유고란 바로 독특한 한 인간에 대해 알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본다. 세상을 보는 것에서 진정 제대로 보는 인간들이란 그 사회 안에서 충실하게 살아가는 인간이 아니라 그 인간의 틀에서 벗어난 특이영역의 존재라고 한다. 세상의 법칙을 발견하는 자들은 대다수의 인간들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외부로 방황하는 자들이라 할 수 있다. 신해철의 음악은 방황적인 요소가 많다. 특히 넥스트 시절의 음악은 비판으로 가득한 대한민국 보고서라고 말할 수 있다.

 

부조리한 현실 모순으로 가득한 오늘, 그는 그런 것들을 노래로 표현했다. 사랑의 시작과 이별의 아픔이란 노래도 좋을 것이나, 그것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예술이란 현실을 왜곡하는 것으로서 현실의 어긋남을 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 그로테스크한 모양으로 존재하지 않은 현실이라도 그것이 그로테스크한 것이란 사실은 알아야 한다. 신해철이 가진 신념은 그의 인생에서 보인다. 항상 뭔가 파장을 일으키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아가고, 그런 골 때리는 방식은 다르게 생각하면 그가 생각하는 바가 상당히 논리적이란 사실을 알 수 있다. 한국사회는 어느 문제가 발생하면 그 문제의 원인에 대해 “왜?” 내지 “이게 그래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말을 싫어한다.

 

모두 꿀이 아닌 쓰디쓴 가루약을 억지로 삼킨 어린아이의 표정처럼 인상이 흩어져 있다. 게다가 핏대가 올라와도 다시 넣어야 한다. 가루약이 아무리 써도 다 삼키고 조용히 입을 다물어야 하기 때문이다. 신해철이 지적한 그런 내용들은 현실을 돌아보면 정말 맞는 말이다. 예전에 <한가함과 지루함의 윤리학>에서 인간은 언제부터 지루해했을까? 라는 주제에서 인간의 생존에 대해 말한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빵”이지만, 그만큼 필요한 것이 “장미”라는 것이다. 인간은 “빵”만으로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장미”라는 즐거움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장미는 먹고사는 것이 해결되어야 하겠지만, 그것만으로 인간은 살 수 없다.

 

언제나 같은 일만 반복되고 살아가는 것은 상당히 지루하고, 그 자체만으로 고문이란 점이다. 삶의 여유나 의미 없이 아무런 목적도 모른 채 살아가는 것은 행복하지 못하다. 단지 자신의 주머니 사정을 고려하지 않은 채 즐기는 것은 무리일 듯하다. 노는 것도 어느 정도 체력이 있어야 하니 말이다. 인간이 사는 이유는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다. 행복의 조건에서 러셀은 흥분이라 한다. 흥분의 조건은 여러 가지 조건과 동기부여가 존재하겠지만, 결론적으로 인간은 정체된 삶으로 살아갈 수 없다. 즐기는 것은 돈이 있고 없고가 아니라 단지 자기가 행복을 찾고 싶은가 아닌 것인가? 라는 점이다.

 

인간마다 주어진 행복의 조건은 다르다. 그러나 행복을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사회는 이른바 꼰대와 자잘한 관습에 얽매여있다.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에서 "인간은 자유롭게 태어났다. 하지만 여기저기 쇠사슬에 묶여 있다. 자기가 남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는 자도 사실은 그 사람들보다 더한 사슬에 묶인 노예이다."라고 한다. 우리는 바로 그런 사슬에 의해 우리를 옭아매고 있으며, 그런 사회를 바라는 꼰대들은 더 심각한 사슬로 묶여 있다. 되지도 않을 논리와 관습에 부조리는 하나의 정당성으로 지탱되며, 그것을 논하는 것은 강력한 터부로 되어 결국은 인습의 칼날이 되돌아 오는 경우도 종종 있다.

 

따라서 신해철의 발언은 기존 사회의 터부에 대하여 강력한 반발을 보여준다. 위에서 천국으로 가는 계단은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나, 돈으로 살 수 있다고 말한 중세유럽 교회의 면죄부가 현대 한국의 기복신앙과 변태적으로 결합한 종교에서 재탄생되고 있다. 인간의 가치란 그저 돈과 권력에 휘말리고, 그 아래 있는 자들은 밟힌다. 그래서 그의 노래 중에 <money>가 있지 않은가? 또한 성적인 부분에 대해 크게 공감하는 바이다. 남자인 나라도 부끄럽고 혹은 여자라도 생각할 점이 있다.

 

남자들은 되는데, 여자들은 안 되는 이유에서 기존 조선시대 인조, 선조 머저리 왕들 옆에서 권력만 탐내는 사대부들의 썩은 유교정신이 아직도 이어진다. 뭐 한국은 조선의 후대이고, 나 역시 조선 사대부집안의 후손으로 본다면 기가 막힐 지경이다. 그런 나쁜 것만 계속 유지한 채 조선 이전에 자유분방한 인간상들을 모조리 폐기한 것에서 전통을 지키는 것이 과연 지키는 것인가? 그저 꼰대를 위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어느 높은 자리에 있던 분은 여자의 몸을 만지면서 한다는 말이 딸처럼 보여서 라고 말하는 게 아닐까?

 

어째든 치졸한 한국남자만큼 또한 속 좁은 여자들에 대해 지적도 좋았다. 한국에서 여성들이 수난당하고 계속 힘든 것은 맞으나, 남자도 당하고, 그 남자들도 힘없고 가진 게 없는 남자라는 점이다. 여성들이 더 불쌍한 점은 인정한, 그런다고 힘없는 남자들이 힘들지 않았다는 식은 말하지 마란 것이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강진에 유배 올 때, 갈밭마을 아낙네의 슬픈 비명과 눈물을 보았다. 아직 배냇물도 마르지 않은 갓난아이, 이제 해골조차 남지 않을 것 같은 시아버지의 군포세를 내지 못한 이유로 자기들의 유일한 재산인 소가 관청으로 끌려갔다. 그것도 모자라 남편은 아이를 만든 자신의 죄를 탓하며 칼로 그의 남근을 베어낸다. 소나 돼지 불알 까는 것도 불쌍타 하는데 하물며 우리 백성은 어떠랴?

 

나그네 글방에서 책을 읽는 것에서 마음을 달랠 수밖에 없던 다산 선생님의 마음만 생각하면 고개가 절로 숙여진다. 불쌍한 사람들은 자기들만 아니라 불쌍한 입장에 놓인 사람이란 점이다. 종교시설에 가서 돈을 바치고 기도할 바엔 차라리 불쌍한 사람들이 모인 고아원이나 노인정에 가서 위로해주고, 혹은 기부금을 위탁하여 그들의 생활을 좀 더 개선해주는 게 인간의 덕목이 아닐까? 그런 점에서 강헌 선생님이 한국의 마지막 르네상스 뮤지션이란 말이 나온 것은 그렇다. 인문소양, 우리에겐 인문학적 지식, 그 지식을 올바르게 사용할 수 있는 지성과 감성, 더 중요한 양심이 없는 게 비극이다.

 

신해철의 독설, 물론 100% 공감할 수는 없겠지만, 그가 날린 비판은 우리 사회의 비틀림을 더 비틀어주는 것을 알 수 있다. 상처가 골며, 상처를 찢어내어 고름을 짜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찢기 전에 만지는 것조차 불가하니 참 답답한 것이다. 뭔가 좋아할 수 있는 것을 주지 않은 나라, 억지로 등을 떠밀려 살아야 하는 나라, 그런 나라에서 다시 자기들이 그런 행위를 하도록 만드는 나라, 연쇄적인 꼰대의 성향은 사디즘과 마조히즘의 절묘한 배합이라 말할 수 있다. 웃음소리가 자연스레 나오는 게 인간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복함의 성적표다. 그런데 우리는 웃음소리보단 근엄한 가면을 쓰기를 바란다.

 

우리의 마음을 솔직할 수 있는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질문은 “음악 없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이었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음악 없이는 무슨 재미로 사냐?”라고 생각했다. 유행 따위 이미 접은 시기가 내 나이의 반 이상 넘었고, 사람 목소리보단 기타나 드럼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일까? 2014년 가요제에서 신해철 추모하는 자리에서 넥스트 밴드들의 연주를 듣다가 갑자기 다른 가수의 노래를 들으니 허무했다. 기타리스트 김세황의 기타 리프와 중간마다 사용하는 피킹 하모닉스를 들을 때마다 보컬을 맡은 가수들이 전혀 따라오지 못한 것을 보았다.

 

라이브 반주는 MR 테이프처럼 돌아가는 게 아니라 같이 호흡하는 것에서 시작되기 때문이다. 음악의 묘미란 바로 다양한 악기가 같이 어울려 한데 모여 강력한 에너지로 발산한다. 그것을 통찰하지 못하면 음악이 아니라 그저 노래만 하는 것이다. 신해철은 음악 없이는 살 수 있냐고 물었지, 노래가 없이는 못 사냐는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한 마디로 꼰대처럼 가면 쓰고 근엄한 척하는 게 아니라 자신의 솔직한 마음을 보여주라는 것이다.

 

또 인상 남는 것은 신해철의 기준에 모두 맞은 것은 아니다. 그가 거론하는 것에는 그의 의도로 생각하면, 여기에 대해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당시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유도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생각을 100% 옳다고 여길 필요 없고, 물론 그런다고 하여 그를 일방적으로 매도하는 게 아니라 서로 생각을 모아 무엇이 문제고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하는 점이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그가 느낀 한국의 꼴불견 남자에 아직 도달하지 못한 것이다. 연애의 기록이 없는 것은 아니나, 단지 이에 도달할 정도로 아직까지 내 자신이 찌질군이란 점에서 말이다. 단지 아쉬운 것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일본만화이라면 가능할 터이나 현실은 아니라는 점이다. 물론 내가 찌질군에 아직 가까운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사회의 꼰대성에서 나는 찌질군으로 통용될 수밖에 없음에서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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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02 14:4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1-02 23:21   좋아요 0 | URL
아! 감사합니다. 야무님의 행복한 나날이 계속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