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사람의 길을 열다 (반양장) 주니어 클래식 3
사계절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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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를 말하면 대부분 문관을 지망하던 사대부로 보겠지만, <논어사람을 말하다>에서 선비는 무관을 말하던 것이다.장기놀이하면서 왕을 지키는 작은 말 2개가 있는데그것이 바로 사()자이다즉 선비는 왕을 지키는 호위무사로부터 시작했다낮은 무장관료가 점차 문관으로 지향하면서 관료정치의 바탕이 된 게 선비였다삼국지를 읽어봐도 선비의 개념은 특별히 느끼지 못하나용맹한 무장은 단순히 용맹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우나 조운 같이 뛰어난 지혜를 가진 자들도 있었다.


선비의 기원인 무장들은 싸움의 기술만이 아니라 문장력과 정치력을 같이 동반해야 한 점이다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로 넘어오면서 정치의 핵심은 양반 사대부로 이전되고양반은 무반과 문반을 지칭하는 말이다조선시대 대부분 공신들은 칼을 잡은 무관이었으나 점차 관직이나 행정기관에서 정치업무를 맡은 사람들이 많았다조선 시조 태종 이성계도 무장으로 시작했지만그 끝은 군주의 자리고군주는 나라는 다스리는 정치가이다정치를 한다는 것은 인간의 도리를 실천하기 위해서고인간의 도리를 위해서는 학문을 수행하는 것이 유학의 본질이다조선의 유학은 본래 유학자로 하여금 바른 정치를 선보여 백성의 생활을 도모하는 것이 근본이다.


하지만 유학이 유교라는 정치적인 학문보단 성리학의 영향으로 종교적인 요소로 강조되면서 공자의 유학은 변질되었다.공자의 가르침엔 제자들로 하여금 직접 농사를 짓거나 농사를 짓는 기술을 전파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모이도록 하는 것이었다올바른 정치란 인간이 서로 모여 사회를 구성하여 그들이 인간답게 살아가는 것이 유학의 본질이다군주가 살던 시대에 공자가 살았기에 군주정에 대한 기초로서 유학을 만들었겠지만군주의 정치는 바로 철인(哲人)정치즉 군주나 군주의 아래에 있는 사람들이 철학으로 정치를 행하는 것이다.


서양사회에서도 마키아벨리 이전에 정치라는 것은 철학과 연계되어 있지만, <군주론이후 정치와 철학은 분리된다그러나 21세기에서도 정치는 철학에서 결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정치하는 자가 철학이 없다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에서 의()가 없다는 것이고의가 없는 정치는 명분이 없기에 무의미한 행위로 그친다그리고 그 명분이란 자신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한 것이다내가 유학에 대해 어느 정도 편견을 버리고조금 다른 시선을 볼 수 있던 점은 다산 정약용 선생에 대한 책을 접하면서부터다.


다산 정약용 선생은 정치의 근본은 백성이고백성을 다스릴 계책을 얻고 싶거든 길거리의 농민에게 물어보라 했다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고그 사람은 우리가 다스리기 위해선 그 사람의 말을 들어보라는 것이다결국 소통과 대화가 먼저 이루어지는 게 정치의 핵심이다다산 선생이 곡산군수로 부임하면서 길 앞에 어느 남정이 기다리고 있었다기다리는 남정은 이계심이라 하여 마을관아에 반란을 든 용의자였다이계심이 다산 선생에게 나와 마을주민을 괴롭히는 조목을 설명하자 다산 선생은 이계심의 말을 받아주며오히려 이계심과 같은 사람이 많아야지 나라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말한다.


백성이 힘든 것을 지금으로 말하자면 힘이 약한 사람들의 입장을 말해주는 사람이 가장 정치가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다.유학의 근본이란 바로 다산 선생이 보여준 것처럼 사람을 찾아가는 학문이다. 21세기에 기원전에 기록된 논어를 읽는 게 시대적 간극이 큰 것처럼 보이나그 바탕에는 오히려 더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옳다유학에서 공자가 가장 중요하게 보는 것은 인()이다어질다는 의미를 가진 인이란 의를 실천하는 단어다어질다는 것은 무엇인가우리 인간은 자연적으로 매우 선한 존재이기도 하지만때로는 매우 악한 존재다.


자연적 인간은 자연과 동화되어 유유자적 살아가겠지만야만의 인간은 폭력과 무지로서 사람들을 대한다공자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것처럼 제자 그러니깐 유학자가 가장 먼저 할 것은 사람을 모이게 한다그리고 그들을 편안하게 배부르게 해야 하고 나중에는 글을 배우게 해야 한다고 했다즉 인간의 최종완성은 문화적인 인간동물적으로 욕망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욕망 이상의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다인간이 가져야 할 도리로서 인을 중시하는 것은 바로 인간은 자신만 보고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공자의 가르침에서 관계의 미학을 중시한다우리는 관계의 미학에서 내 가족만 챙기거나 또는 이익과 손실을 따져 친구를 사귄다물론 가족도 중요하고친구의 손익 관계도 중요하다하지만 내 가족이 소중하면 남의 가족도 소중하고친구의 관계에서 이익을 추가하는 것은 물질적 이익이 아니라 정신적심리적 즐거움이다나를 알아봐주는 사람 하나 제대로 없다면 그것만큼 외롭고 쓸쓸한 일은 없다그래서 공자도 자신의 제자 안영이 죽을 때 그렇게 슬퍼했던 것이다.


생각해보면 공자의 가르침이나 논어에 대한 이야기에서 공자와 유학이 낯선 존재가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도 보편적인 가치를 주고 있다단지 그 차이는 조금 더 예를 가지거나 타인을 배려하는 것이다자신의 밥은 초라하나 제사의 밥은 풍족히 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지금이야 먹을 것이 풍부하나과거에 먹는 것이 부족한 시기에 배고픈 사람들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없었다제사에 차려진 음식들은 귀신들이 먹는 게 아니라 결국 인간의 입으로 들어간다그 많은 음식을 제사를 차린 제주가 다 먹을 수 없다자신의 집에 찾아온 친척과 친구 그리고 이웃에게 나누어주는 것이다.


제사문화의 특징은 단순히 허례허식만이 아니라 주변이웃에게 나눔과 베푸는 정을 주기 위해서이다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는 존재다그래서 관계의 정치는 바로 그런 것이다하지만 이익을 기반으로 한 정치는 공자는 용서하지 않았다한국식 민주주의나 유교식 자본주의란 말은 공자가 강요한 적이 없다공자는 아버지는 아버지답게아들은 아들답게 해야 한다고 한다그러나 정치가란 무릇 백성에게 아버지와 같은 자이나아버지가 아들을 혹독하게 대하는 게 아버지의 도리는 아니다공자의 유학을 보고 한국식 민주주의를 마치 정치적 정의로 보는 사람들을 보면 웃음조차 나오지 않는다.


옛날 말에 임금은 하늘이 내리지만그 하늘은 백성이라 했다국가의 모든 시작점은 백성인 점에서 공자의 가르침 중에 이 말이 인상 깊다군주가 안보백성의 믿음경제 이 3가지에서 만약 먼저 버릴 게 무엇이냐에서 공자는 맨 먼저 안보를 택하고 다음으로 경제를 선택했다우리나라는 아직까지 안보와 경제를 주구 창창 외치는데정작 안보와 경제는 구멍만 나는 현실이다안보국가를 지키기 위해 군복무를 하는 것은 국민이고경제활동을 하는 것도 국민이나그 근본을 제대로 잡지 않고관료주의에 물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과거의 유학사상이라 하여 새로운 사상이나 정치이념이 들어와도 민심의 기우는 변하지 않는다제일 중요한 것은 정치이념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철학적 자세이기 때문이다공자는 호랑이보다 더 무서운 게 광폭한 정치라고 했다가렴주구라는 말은 매우 잔혹했다조선후기 군역에 사내아이가 배냇물도 마르지 않았고 시아버지는 이미 죽어 백골이 되었는데도 군역에 올라가 세금을 내어야 했다다산 선생이 지은 애절양(哀絶陽)이란 시조는 부패한 관리가 판을 치는 나라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글이다.


최근 국내도 경제적 어려움으로 남자들이 결혼할 수 없고결혼해도 아이를 가질 수가 없어서 21세기형 애절양을 보여주고 있다자식을 놓은 자신의 남근을 원망하며 칼을 들어 그 남근을 도려낸 남정네자신의 남편의 남근을 억울함을 호소하는 아낙네관아의 벽은 성문보다 높고 관아 문을 지키는 포졸은 염라대왕보다 더 무섭다공자가 보여주고 싶은 유학은 바로 이런 일을 없애기 위해서고아무리 부당한 현실이라도 잘못된 세상을 끊임없이 탐구했다.


공자의 유학이나 루소의 <사회계약론>이나 모두 기본적으로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만든 것이다하지만 세상은 그들의 이상보단 이익으로 돌아가고그럴수록 그들의 사상은 더욱 숭고한 가치를 보여준다논어가 비록 고전이라고 하나 그곳에 비수 같은 말이 여기저기 숨어 있다과거는 멀지 않은 미래와 같다는 말은 아마 이런 연유에서 나오는 것과 같았다인간의 과거를 보고 역사를 배우는 이유는 잘못된 관행을 다시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다.


공자가 말한 것처럼 과거의 정치적 제도를 되돌려서 안 되는 이유는 과거의 잘못을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다그것은 인간이 살아가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반사교면을 삼기 위함이다그러나 그 인간의 도리를 아는 것과 실천할 수 있는 용기란 정말 어려운 일이다자신의 삶에 작은 실천이 큰 대의를 만드는 것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도리란 바로 작은 것부터 실천하여 커다란 관계를 이루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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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쌩 2015-04-14 22: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치철학이 없이 통치만 하려드니 ,
정치가 효율성만 추구되고 권력의 시녀가 되는것 같습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4-14 22:28   좋아요 0 | URL
세월호 2주기가 모레이고, 다음달이 518항쟁 35주년이나 아직 발포명령자조차 잡아들이지 못하니, 정말 정치적 효율이 아니라 권력의 효율화만 되고 있습니다.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
진중권 지음 / 창비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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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란 무엇인가?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것에 대해 그것은 예술적이야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막상 보통 사람들과 예술에 대해 논하는 순간, 그들이 말하는 예술에 대하여 논하는 순간 당황하게 된다. 그들이 말하는 예술이란 단지 세간의 흐름이나 조류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물론 세간의 평가 역시 중요하나, 문제는 그 평가를 본인들이 정확히 인지하는지 혹은 인지하지 못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문제를 두고 흔히 이렇게 말을 한다. “미술관에 가는 이유가 벽에 걸린 그림을 보기 위해서인지? 아니라면 그림이 걸린 벽을 보러 가기 위해서인지?”

 

예술 중에서 역사가 오래되고, 다양성이 넓은 미술은 더욱 그런 모순에 빠지게 된다. 가령 미술에 대한 평에서 지난 19~20세기는 혁명과 전쟁으로 세계가 요동치던 시기다. 많은 사람들이 비참하게 죽어 갔으며, 이들을 위해 많은 혁명가들이 출현하기도 했다. 21세기에 오면서 더 이상 세계를 바꾸려하는 혁명가는 보이지 않게 되었다. 20세기 말 소비에트연방의 붕괴와 더불어 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진영으로 혁명가란 단어는 무색하게 만들었다. 물론 소비에트연방이 19172월과 10월 혁명에 의해 탄생했지만, 레닌 사후 스탈린이 집권하면서 혁명은 실패한 것으로 돌아갔다.

 

오히려 혁명을 주장하던 볼셰비키 내지 마르크스주의자들은 스탈린에 의해 숙청당한다. 정치적 상황과 역사적 흐름에 예술에 무슨 영향을 주는가에서 바로 이런 역사적 순간들이 예술을 탄생하게 만든다. 예술은 그 시대의 모습이고 자화상이기 때문이다. 현실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인간들이 추구하는 이상, 또는 그 현실에서 절망하는 비극에서 예술은 탄생하게 된다. 20세기 최고 화가인 파블로 피카소의 경우 그는 평생 마르크스주의자로서 프랑스 공산당으로 활동한다. 그렇다면 자본주의와 파시스트를 저항한 파블로를 두고 우리는 그를 배척하는가?

 

오히려 그런 사람들의 미술품은 대부호들의 수집품으로 팔려나가기도 한다. 예술이 어느새 시대정신과 저항의식이 반영된 세계가 아니라 상품으로 전략한 신세다. 이런 세계에 도래하면서 예술이란 무엇이고 그 예술을 하는 사람은 무엇인가?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은 우리 시대 대표적 예술가를 만나고 정리한 내용이다. 진중권 교수가 창비라디오에서 문화다방에 늘 새로운 게스트를 2회에 걸쳐 대화를 나누고 녹음을 한다. 평소 진보논객이나 정치적인 활동보단 문화평론가 및 미학자로서 이 책이 나온 것이다.

 

물론 문화평론이나 미학에서도 정치적인 요소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어떤 사회적 활동이 정치적이다. 심지어 내 자신이 정치에 관심 없다거나 혹은 정치와 무관하다는 선전 역시 정치적인 발언이다. 문화를 파헤치기 위해 사회과학에 대한 전반적인 고찰이 필요하고, 미학을 한다는 것은 철학에 관여된다. 미학과 관련하여 공부한다면 미학 그 자체를 배우는 게 아니라 철학 관련 도서를 찾아보는 일들이 더 많아진다. 미학은 철학이란 칼로서 예술을 파헤쳐 보기 때문이다. 이상과 현실에서 항상 갈등하는 인간은 자기가 원하는 세계를 보거나 또는 그런 공간을 꿈꾸는 경우 예술을 창조하게 된다.

 

예술의 시작은 이 책에서 이외수 작가가 플라톤의 <향연>에서 따온 말처럼 인간은 어떤 경우에도 아름답지 않은 것을 사랑할 수 없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예술을 우리 인간이 계속 추구하는 이유는 인간은 빵(식욕)과 고기(성욕)만으로 살아가기 없기 때문이다. 뭔가 자신 안에 숨어 있는 잠재적 의식, 또는 지루함과 한가함의 사이에서 새로운 것을 찾으려는 시도, 이런 것들이 예술을 만들어내는 원동력이다. 물론 예술이라 하여 아름다운 것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도리어 기존의 아름다운 것만을 추구하려는 것에 대해 철저히 파괴하려는 반() 미학적인 아방가르드가 있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은 동일할 수 없고, 모든 인간은 목적이 정해진 어느 기준에 도달할 수 없다. 그래서 그런 기준을 파괴하고 새로운 관점이 필요한 것이다. 모더니즘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이 도래했고, 포스트모더니즘은 약자와 비주류의 이야기도 대두하기도 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의 도래는 윤리성의 부재라는 한계점이 있었고,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새로운 예술적 조류는 모더니즘 사조에 계몽주의적 정신은 인간의 보편적 가치를 포스터모더니즘의 세계에서 끌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나 싶다.

 

예술이란 바로 그렇게 새로운 흐름을 찾아가거나 또는 그 흐름을 만들어낸다. 단지 유행이란 이름처럼 공장사출기에서 찍어내는 것이 아니다 소통과 공감, 더 나아가 사유와 성찰로 이어져야 한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예술이란 것을 대중적이야 하는가? 아니면 그 이상이어야 하는가이다. 대중적인 예술이 없다면 보통 일반인들에게 새로운 흐름을 전해줄 수 없고, 예술이 너무 대중의 취향에 부합되면 그것은 예술이 아니라 문화적 상품에 불과하다. 게다가 예술가들은 국가에서 무상으로 지원받는 존재가 아니라 이제는 스스로 생계를 마련해야 하는 노동자들이다.

 

생계의 기로에서 그들은 독특한 자신들의 방법으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 대중의 기호로 넘어가면 예술가들은 더 이상 예술을 만들 수 없기에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없다. 그러나 만약 대중의 세계에 나아가지 않으면 자신의 늪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게 된다. 이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현대에서 예술가들의 모습이다.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에서는 한국 대표 예술가 7인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 아는 얼굴도 있지만, 모르는 얼굴이 더 많을 것이다.

 

우선 사진으로 구본창, 건축으로 승효상, 배우로 문성근, 미술가로 임옥상, 소설가 이외수, 음악평론으로 강헌, 시각디자이너로 안상수, 미디어 아티스트로 박찬경이 있다. 내가 이중에서 정확하게 아는 사람은 건축가 승효상, 배우 문성근, 소설가 이외수, 음악평론 강헌이었다. 박찬경은 예전에 내가 보고 싶던 영화 <만신>의 감독이었다. 아마 일반인이라면 배우 문성근이나 소설가 이외수는 잘 알겠지만 그 외에의 인물은 모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이 글을 보는 당신이 자신의 한글프로그램을 실행하여 글꼴을 찾아보면 안상수라는 이름이 정확하게 나온다.

 

그런 점에서 <진중권이 만난 예술가의 비밀>을 읽는다면 내가 그들을 모른다고 하여도 그들이 남겨놓은 흔적들은 어디서 조금이나마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도 그냥 있다는 것을 인지하기보단 그것을 만든 사람이 누군지? 그들이 무슨 의미로 만들었는지를 알아보는 것도 더 좋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맛이 베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 맛을 우리가 찾아야 하는 이유는 우리 인간은 밥만 먹고, 잠만 자고, 일만 하고, 성행위만 하고 살아갈 수 없다. 생리적 동물성과 사회적 동물성으로 우리 인생을 윤택하게 만들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결국은 문화에 대하여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문화를 즐기고 싶은데 막상 그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문화는 즐기기보단 오히려 낯선 세계처럼 다가올 것이다. 다양성이 존재하고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라면 우리는 늘 새로운 즐거움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즐거움을 주는 사람들이 예술가라면 우리 역시 예술가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 보는 것도 좋다. 예술은 우리에게 아주 멀게만 느껴지는 것만큼 가까이 존재할 수 있는 문화양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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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시민의 30년 베스트셀러 영업기밀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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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읽으면서 유시민이란 사람을 내가 어떻게 알았는지 생각해보았다. 내가 처음 그를 알게 된 것은 참여정부시절 장관을 한 것에서 알았다. 그것도 제법 참여정부가 들어선지 몇 년 지난 상태였다. 그리고 그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었다. 정치적으로 아무 지식이 없던 나에게 그의 죽음은 큰 변화를 일으켰다. 지식을 얻기 위한 독서와 지혜를 찾아가는 독서의 시작은 그 변화와 더불어 내 자신도 글에 대한 도전하면서부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자서전 중에 <여보 나 좀 도와줘>가 있고, 그 후 그의 죽음 이후 또 다른 자서전 <운명이다>가 발간되었다.


<여보 나 좀 도와줘>는 노무현 본인이 직접 작성한 책이고, <운명이다>는 노무현 죽음 이후 그의 자필기록과 주변사람들의 증언을 토대로 만들어진 자서전이다. <운명이다>의 저자는 노무현이겠지만, 엮은이는 유시민이란 작가였다. 글을 읽으면서 노무현이란 인물을 찾아가지만, 한편으로 유시민의 마음 역시 알아갈 수 있었다. 어렵지 않은 문체와 매우 정적인 감정을 실은 <운명이다>는 나중에 가서 어느 청년의 죽음에 큰 파장을 주었다. 글이란 것이 정보와 지식만이 아니라 인간에게 큰 감동 또는 슬픔을 줄 수 있다는 그때 나는 절실하게 느꼈다.


그래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을 잡고 읽는 순간, 나에게 글이란 것은 무엇인가? 라고 다시 반문해본다면 과연 뭐라고 대답해야 할까? 유시민의 경우 인생에서 투쟁과 생존을 위한 몸부림에서 시작했다면, 나는 내가 느끼는 갈증과 불안 그리고 마음 속 깊이 잠들어 있는 불만이 기반이라 할 것이다. 내가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만의 세계이나, 그것을 밖으로 드러내기 위해서는 내 감정만으로 해결되지 않았고, 그 원인이 무엇인지 왜 그런지를 알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나만의 세계에 탐구해야 했다.


탐구에서 무턱대고 고민하고 상상해도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그 과정에서 내가 찾을 수 있는 것은 더 답답함이다. 물론 지금도 책을 읽고 글을 써도 뭔가 풀리지 않은 현실에서 답답한 마음이 오겠지만, 적어도 그 감정을 어느 정도 정리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발전인 것 같다. 나에게 책을 읽고 글을 쓴다는 것은 내가 바라보는 세상을 나만의 방식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세상을 보는 것에서 나만의 입장과 생각으론 타인과 대화가 성립될 수 없다. 때로는 남들과 동등한 지식이 필요하고, 논쟁을 하기 위해서는 그 이상의 지식과 판단력이 필요했다.


그렇다면 나에게 글쓰기란 결국 세상에 대한 나의 투쟁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 투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어떤 대상을 바라볼 때 그 대상만 집중하는 게 아니다. 그 대상에 대하여 전후적인 관계를 따져 이것이 어떤 경위로 이렇게 되었는지, 그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를 생각하는 점이다. 내가 보는 대상이 책, 영화. 만화 또는 세상의 어떤 일이어도 그것들은 자발적으로 생기지 않는다. 관계적인 요소에 의해 만들어지고 다시 만들어갈 뿐이다.


글이란 그 관계적 요소를 들여다보고 하나의 구조로서 재조립할 수 있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글을 잘 적어도 그 의미와 내용이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는다면 그것은 좋은 글이 되지 못한다. 내가 주장하고 의미하는 바를 상대방에게 명확하게 전달되지 않으면 그것은 의미 없는 소모에 불과할지 모른다. 모든 글은 그렇지 않겠지만, 적어도 대다수 사람들에게 전달하고픈 글이라면 그럴 것이다. 왜 유시민은 <운명이다>를 저술할 때 사람들이 읽히기 좋은 글을 적었을까? 상대방에게 노무현이란 인물이 살아온 삶과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글을 적을 때 그 주제에 대한 전후관계를 잘 전달하기 위해선 글을 잘 적어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나 조금 아쉬운 점은 글을 쓰는 주제란 반드시 대중들만이 아니라 어느 특정 대상을 지정하는 내용이 많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란 사람은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하거나 또는 뉴스나 미디어를 조금이라도 접촉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다. 이에 반해 우리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접근하기 힘든 분야가 많다. 예술, 문학, 철학, 과학 등등 수많은 학문과 문화적인 대상들은 우리가 있는 것조차도 모른다. 그런 글쓰기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제일 중요한 것은 정보의 전달하게 해주는 글 쓰는 방법과 상대방에게 그 내용을 제대로 전달할 수 있는 전후관계가 가장 중요할 것이다. 이런 글쓰기를 도달하기 위해서는 많은 독서와 스스로 글을 적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은 돈이 많고 적음에 자신의 삶마저 흔들리는 운명에 놓여있지만, 적어도 글 쓰는 세계에 모두가 자유로이 경험할 수 있는 기회는 있다. 도서관은 모두에게 열려있고, 14일 안에 어떤 책을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대신 우리는 자유로운 사고와 토론이 이루어지는 사회가 아니라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를 바라고 있다.


누군가 윗사람에게 이의와 의문을 제기하면 그 사람은 나쁜 쪽으로 찍히는 경우가 많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는 합리적인 선택을 하기 위해서다. 입지가 더 높은 사람에게 모든 발언만 넘겨준다면 그 사회는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기란 어렵다. 그래서일까? 한국 사람들이 글 쓰는 것이란 상대방과 교류보단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한 방법이 높은 것 같다. 물론 그런 방식은 나도 과거에 많이 이용한 적이 있었다. 어떤 글을 쓰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이 요구된다. 적어도 그 글이 논문이나 비평 수준이 아닌 이상 너무 어렵게 들어갈 이유는 없다.


물론 토론과 글 쓰는 대상이 제법 난해하고 어려운 주제라면 그 난이도에 맞추어 적을 필요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전문영역이란 일반 대중에게 특별한 만남이 없을 것이다. 설사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 사회의 다양성과 문화적 가치를 올리기 위해선 글을 나만이 아닌 타인의 시선을 고려하는 것은 바르다. 어려운 단어보단 쉬운 단어로, 이국적이고 어색한 수식어보단 잘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바람직하다. 대신 사투리 같은 경우 우리의 정통언어이니 글에서 제외될 수 없을 것이다. 지나친 민족의식보단 어느 글 소재가 그 사투리 사용이 적당하면 쓰는 것이 좋은 것 같다. 책을 읽으면서 약간 조심스러운 것은 표준어는 모두에게 통용되나 사투리나 고유어는 그러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두 이해해야 한다는 이유로 사투리와 고유어가 사라지는 현실이 다소 아쉽다. 글의 주제가 그런 영역에서 많이 나오면 다행이나, 그럴 기회는 많지 않다.


지금 리뷰를 적으면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서 제시된 예시처럼 적기가 쉽지 않다. 글을 쉽게 적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운 방법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단어 선택은 쉽게, 문장의 길이를 길지 않게 하는 것이다. 글이란 그 사람의 성향과 기질을 알 수 있다고 한다. 처음부터 당장 고쳐지는 것은 어렵겠지만, 글 역시 사람이 스스로 수련하면 그 성과는 분명히 본인에게 나타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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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reka01 2015-04-07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 꼼꼼히 읽어 볼께요.^^

만화애니비평 2015-04-07 22:59   좋아요 0 | URL
아이고 감사해요

뒷북소녀 2015-04-08 2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쵸? 저도 그랬어요. 이 모든 걸 염두에 두고 리뷰를 쓰자니, 더 안 써지더라구요.^^

만화애니비평 2015-04-09 08:25   좋아요 0 | URL
뭔가 말하고 싶고, 뭔가 생가할 것은 많은데 쉽게 적을 수 없었던 리뷰였습니다.

yureka01 2015-04-08 23: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흐이 책은 뭔가 유시민의 까기가 은근히 녹아 들었습니다.
아마 맺힌 게 많았을 겁니다.
결국 글 쓰기 위해서는 책 많이 읽어라 더군요. 문제는 책을 읽으라 이말의 반대는 왜 책을 않읽어서 이지경이냐..라는 뜻이 언듯 스치더군요...
순전히 추측이긴 했습니다만 그런 뜻도 일부나마 담겻지 않을까 싶었습니다.이건 작가에게 물어 봐야 겟지만 아마 귓속말로 유시민이 고개 꺼덕 할 것만 같은...
언제 만나게 된다면 꼭 여 쭤 보고 싶어요.ㅎㅎㅎ

만화애니비평 2015-04-09 08:26   좋아요 0 | URL
제가 제일 기억나는 것은 역시 Context 전후맥락이란 점이죠.
글쓰기에 쉽게 적고 표현방법을 잘 고려한 이유는 바로 전후맥락인데
전후맥락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결국 의미를 제대로 파악하고 이해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점이죠.
이해되지 않으면 그냥 그대로 대충 의미를 가지고 쓸 수밖에 없으니깐요.

뒷북소녀 2015-05-11 1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만화애니비평 2015-05-11 18:04   좋아요 0 | URL
감사합니당

스닐 2015-05-25 1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이해되기 쉽게, 읽기쉽게 참고하겠습니다. 감사!!

만화애니비평 2015-05-25 13:07   좋아요 0 | URL
덧글 감사합니다
 
무진기행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9
김승옥 지음 / 민음사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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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진기행>을 읽고 있노라면 마치 일본 근대문학작가인 나츠메 소세키, 아쿠타카와 류노스케, 다자이 오사무가 생각난다. 왜냐하면 기존 사회관이 붕괴하여 새로운 체계가 도래해도 인간들은 거기에 적응하기보단 오히려 낯선 이방인처럼 표류하기 때문이다. 김승옥의 <무진기행> 역시 불안한 사회인들의 심리가 반영되어 있어서 자기 자신의 정체성에 흔들리는 인간들을 볼 수 있다. 아마도 나쓰메 소세키처럼 메이지 시대로 넘어간다고 해도 아직까지 도쿠가와 막부의 잔재가 남아있었고, 아쿠타카와 류노스케처럼 변화한 세상이 와도 그 불안함을 견딜 수가 없었고, 다자이 오사무처럼 그 불안한 심리를 가지고 끊임없이 표류하는 인간상을 그린다.


 

<무진기행>은 김승옥 작품 중에 <무진기행> 외에도 단편 내지 중편소설이 같이 실려 있으며, 대표적인 작품이 <무진기행>으로 되어 있을 뿐이다. 작품을 읽어보면 불안한 인간, 성적인 망상과 환상, 비겁한 인간과 전쟁의 비극까지 담고 있다. 아마 작품은 작가 본인이 느끼는 시대상과 주변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적나라하게 묘사하고 있다. 읽은 내내 여성들이 보기가 지나친 내용이 있었다. 아마 1960년대의 한국은 이제 막 공업이 활성화되고, 자본주의 경제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게 되었다.


 

그 안에서 인간들은 격리된 인간들, 기존 세계와의 단절이 중요한 세계관을 이룬다. 한국전쟁으로 함경도에서 내려온 피난민, 남쪽에 살지만 전쟁으로 대피하던 사람들 이 모든 사람들이 이제 자기가 찾아갈 장소를 찾아가려 하나, 막상 거기에는 아무 것도 없이 공허한 밤하늘만 보일 뿐이다. 전쟁으로 인해 인간이 가져야할 절대적 도덕관과 윤리의식은 이미 붕괴되기 시작했고, 단지 그 세류에 휘말려 외로운 인간의 고독과 어둠을 그려내고 있다. 타이틀인 <무진기행>처럼 무진으로 내려간 주인공은 서울이란 속물의 공간에서 벗어나려 했고, 거기서 만난 음악선생과 낭만적인 애정도피를 꿈을 꾸기도 하나, 결국 아내의 전보에 의해 서울로 돌아가야 했다.


 

게다가 그는 한국전쟁에서 주변 남자들은 전쟁에 참가하여 사망하는 것을 듣지만, 혼자 집안 다락에서 겨우 목숨을 부지한다. 비참하게 살아남은 것에 대한 후회, 재혼한 아내와 그 아내의 아버지가 가진 권력은 주인공으로 하여금 속물과 이상의 가운데 흔들린다. 속물적인 예전 친구를 보며 그런 모습에 염증을 느끼지만, 결국 그도 속물적 사회에 길들여져 버린 약자였다. 하지만 우리가 본다면 그를 욕할지도 모르나, 사실 그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던 사람이다. 기존 사회가 붕괴되면서 인간의 가치는 자본이란 틀로 가게 되었다.


 

인간 사이에 진실한 감정과 가치는 없었고, 옆에 술친구는 되어줄 망정 그들의 지속적인 친구는 될 수 없었다. 늘 손에는 담배 하나와 소주 한잔만이 아지랑이처럼 그들의 눈에서 흔들거린다. 도무지 만족할 수 없는 현실, 사랑조차 믿을 수가 없었다. 여자들의 성적 자유는 과거에 비해 숨을 쉴 수 있었으나, 오히려 그것은 자본주의에 의한 도구로 더 쉽게 전략해 버렸다. 거기에 진실한 사랑이란 없고, 단지 서로 즐기기 위해 아니라면 돈을 위해 출세를 위해로 변한다. 차라리 <야행>에서 낯선 남자 손에 의해 억지로 여관에 끌려간 여주인공이 자신의 욕구와 본능에 충실한 것 같다.


 

비틀러진 여성들의 성적 욕구, 그리고 남자들의 허무한 성욕, 어찌 보면 젊은 남녀들에게 삶에 대한 의지와 목적이 탈락한 것처럼 보였다. 왜 여자가 비뚤어진 성욕을 가졌는가? 그녀의 애인은 그녀와 2년 가까이 사귀지만, 정식으로 부부가 아니라 그 연애 관계조차 사내에서 숨긴다. 회사에서 연애하면 여자가 회사를 그만두어야 한다는 그 시절에 여자의 욕구불만이 터진다. 단지 그 불만은 성적인 요소가 아니라 일탈로 통한 기존 사회가치에 대한 반항이다. 솔직하지 못하게 만드는 사회, 그녀가 길가를 걷다보면 낯선 남자가 커피 한 잔 하자 하나, 그녀의 반응이 없으면 모두 떠나 버린다. 차라리 욕망에 충실한 그 남자, 그 남자는 그녀의 손을 잡고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여관에 가는 것처럼 자신의 마음을 드러낼 수 없는 사회에 모두가 숨이 막혀간다.


 

모두가 서울이 희망과 기회의 도시라고 하나, 그 공간은 낯설 자들이 모여 서로 낯설게 만드는 공간이고, 일정하지 못한 공간이라도 일상한 곳에서 일정한 틀을 강요한다. 그래서 남자들이 자신의 남근을 끊임없이 여자에게 들이대는 이유는 자신이 가진 불안한 심리, 억압된 현 사회를 지탱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것은 고독과 허무라는 깊은 슬픔일 것이다. 낯선 공간에서 그나마 사람냄새를 맡는 것은 포장마차에서 술을 홀로 마시다가 옆에 남자에게 형씨라고 부르거나 또는 Beer Bar에 가서 5명의 미자를 찾아 근처 여관에서 살을 섞는다. 대부분의 남자는 혼자 살거나 모든 이들과 단절되어 있다.


 

전쟁 이후 가족의 단절, 혹은 자본주의 가속화로 시골을 떠나 도시로 온 남자들은 일에는 적응하나, 일 이외에는 적응하지 못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자신보다 강한 것은 <역사>처럼 높은 담을 뛰어넘어 무거운 돌을 가볍게 던지는 장사가 아니라 <염소는 힘이 세다>에서 나오는 주변 아저씨들일 것이다. 그 속에서 젊은 남자들은 진짜 아버지가 아니라 이 사회라는 아버지에 의해 억압을 당하고 그들만의 세계에 젊은 남자들은 따라야 하는 것이다. <염소는 힘이 세다>에서 주인공 꼬마는 자기 누나에게 무참히 자기 가게에 찾아오는 아저씨에게 강간당한 것을 보고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고, 더 나아가 누나는 그 남자의 제의(버스운행 보조직)에 수락하고 자장면까지 먹은 것을 보고, 이 사회의 권력은 성인남성보단 자본의 힘이란 점이다.


 

혹은 어느 절대적인 힘을 가진 대다수의 무리들이 시키는 것이 정당한 것으로 보고 자란다. <건(乾)>에서 주인공은 동네에 예쁜 여고생누나와 사이좋게 지내지만, 그 누나를 본 꼬마의 형과 친구들은 동생을 이용하여 그 여고생을 집단강간하려 한다. 어둡고 무지한 사람들이 결국 욕심 많고 이기적인 대다수 사람에 의해 무참하게 밟히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 젊은 자들은 자기보다 어른에 의해 억압당하고, 억압으로 망가진 가슴을 그렇게 여자들에게 이어간다. 물론 여자들도 자기 나름대로 삶의 규칙을 가지고 있다.


 

연예인이 몸을 팔아 자신의 몸값을 올리거나, 반 순진한 남자는 그런 여자와의 결혼 후 고급술집에서 아내를 만나, 이혼을 하면서 누가 더 나쁜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이렇게 서울은 욕망과 폭력 그리고 슬픔과 고독으로 1960년대를 흘러가고 있었던 것이다. 전쟁 후의 한국은 불안한 심리와 군사정권의 검열로 인해 삶은 단절 속에서 이루어졌다. 모두가 스스로 길들여가야 하나 그 이면에 쌓인 무의식적인 탈출욕구는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여준다. 죽을 줄 뻔히 알면서 죽게 내버려둘 수밖에 없었고, 여관방에 가짜 이름과 직장을 올리는 우리 근대의 모습은 사람이 사는 것이 아니라 그저 사람의 이름과 형태만 빌린 괴물과 괴물의 먹이인 것 같았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그때로만 끝난 것들이 아니다. 지금도 우리사회는 늘 어지러운 일들로 가득하고, 곤란한 사회관이 정립되어 있다. 오직 타락하고 몰락하는 것만은 자유롭게 되어있지만 인간이 본연의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는 공간은 없다.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 채 어두운 공간에 일탈을 꿈꾸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보는 나도 내 마음 어디에 숨겨진 깊은 어둠과 고독, 절망, 허무가 있다는 것을 안다. 우리는 우리의 원래 출발하고 싶은 마음에 <무진기행>처럼 무진으로 갈지도 모르나, 거긴 아무 것도 없고, 설사 찾으려 해도 다시 현실의 무기력함에 되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 인생 그 자체가 하나의 <무진기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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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와 자유
켄 로치 / 키노필름 / 200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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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1984>가 대표적인 작품이라고 하나, 그 외에도 <카탈로니아 찬가>라는 작품도 있다. <동물농장>은 우화적 특성을 살린 문학으로 1917년 러시아의 2월 10월 혁명의 성공과 실패를 다룬 작품이다. 조지 오웰이 나폴레옹이란 돼지를 두고 스탈린에 대한 비판적 관점을 드러나듯이, <1984> 역시 오세아니아 대륙에서 감시제국의 빅 브라더 역시 스탈린의 철권정치를 비판한다. 빅 브라더가 만든 최고의 적이 과거 같이 빅 브라더와 활동했고, 그 적이 만든 그 책은 오세아니아에서 가장 위험한 서적이었다.


물론 그 책이 레프 트로츠키의 <배반당한 혁명>이란 것을 생각한다면, 조지 오웰의 소설은 스탈린에 대한 비판과 반 스탈린적인 작품세계관이 반영되어 있다. 그나마 <동물농장>과 <1984>는 우화적 이야기 가상적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지만, <카탈로니아 찬가>는 그야 말라 오리지널 이야기다. 그것은 소설이 아니라 소설의 형태를 가진 조지 오웰의 자기 기록이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이 상당히 영화제작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의 작품은 문학적으로 큰 성과를 거두었으나, 영화 시나리오로 사용되므로 대중문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 점에서 <카탈로니아 찬가>는 다른 작품과 달리 매우 리얼리즘을 강요한 작품에서 그 원작을 토대로 만든 켄 로치의 <Land and Freedom>은 작가의 눈을 그대로 살린 영화라고 볼 수 있다. 사실 <동물농장>은 1954년 영국 애니메이션 감독 존 핼라스와 조이 베첼러에 의해 극장용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되었고, 조지 오웰의 <1984> 역시 SF적인 디스토피아적인 영화로 제작되었다. 하지만 <카탈로니아 찬가>로 만든 <Land and Freedom>은 1936년 스페인 민주공화국의 탄생에서 발생된 내전의 아픔을 역사라는 거대한 서사로서 보여주기보단 그 서사 안에서 단순히 자신만의 의지를 가진 젊은이들의 모습을 보여줬다.


역사라는 거대서사가 개인에게 큰 영향을 준다고 해도 그 거대한 역사가 만들어가는 것은 바로 인간이란 점이다. <Land and Freedom>에서 자신의 국가와 민족을 지키기 위해 총을 든 자도 있었지만, 자신의 국가도 민족이 아닌데도 총을 든 자들도 있었다. 과거의 적국이었고, 자신들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들도 비행기와 배를 타고 스페인으로 모인다. 그 이유는 스페인내전에서 민주공화국을 되찾기 위해서다. 스페인 내전에서 프랑코는 파시스트 국가의 지원 아래 쿠데타를 일으키고, 오히려 국민을 적으로 삼는다.


조지 오웰이 그 내전에 참가한 것처럼 영화 속 주인공 데이빗은 영국인으로 자신의 삶에 새로운 바람을 찾기 위해, 그리고 파시스트에 의해 유린당하는 스페인 국민들을 돕기 스스로 POUM(통일노동자당)에 가입한다. POUM은 기본적으로 마르크스주의자에 아나키스트와 같은 반파시스트 진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자신들의 무기가 부족하고 적의 힘이 강해도 굴복하지 않고, 계속 전투를 벌인다. 그 덕분에 많은 스페인 영토를 다시 차지할 수 있었고, 파시스트에 대해 지속적으로 저항했다. 영화명이 <Land and Freedom>인 것처럼 땅과 자유(권리)라는 타이틀처럼 POUM에 소속된 사람들은 모두 자유와 권리를 위해 싸운다.


자유와 권리를 위해서는 인간이 살아가는 땅이 필요했고, 그 땅을 지키기 위해선 투쟁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스탈린은 1936~1938년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대대적인 숙청을 가했고, 1917년 볼셰비키혁명을 성공적으로 이끈 트로츠키의 국제주의에 반대하는 일국사회주의를 실현하기 위해 스페인내전의 POUM을 제거하기로 한다. 실제 지원을 중단하고 POUM의 중심인물을 숙청하기도 했다. 게다가 POUM을 파시스트와 내통한 적으로 내몬다. 스탈린주의에 의해 스페인내전은 실패로 돌아가고, 프랑코는 자신에게 저항하는 반파시스트 연대와 국민들을 제압하기 위해 항공폭격을 가한다.


20세기 최고의 천재 미술가, 피카소의 <게로니카> 탄생은 무자비한 인명을 살해하던 독재자들에 대한 분노인 것이다. 실패로 끝난 스페인 민주공화국과 반파시스트 전쟁에 모두 실패한 것이라 볼 수 있을까?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 역사에서 그 당시에는 패배자였으나 후세의 역사에서는 승자가 되었다고 말이다. 부당한 권력한 폭력을 휘두른 압제자는 자신의 권력이 살아있을 때만 살아있던 자이지, 후대에 이르러 정당한 평가에 의해 그 죄악이 드러나게 된다. 데이빗과 POUM 대원들은 자신들이 수복한 마을을 비록 4주만 차지하고 다시 파시스트에게 내어주게 되었지만, 자신들이 행한 의지는 결코 실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빗은 전쟁 중 사랑에 빠진 베이트가 죽을 때, 그녀의 묘지를 만든 마을의 흙 한 줌을 가지고 온다. 전쟁에서 POUM은 패배해도 자기 자신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는 신념이다. 영화를 본다면 다소 조지 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와 다른 면을 발견하게 된다. 조지 오웰은 언제나 담배가 없는 것과 추위에 괴로운 기억이 가장 인상적이라도, 그 전쟁에서 같이 파시스트에 대항하던 동지들이 스탈린에 의해 서로 총구를 겨누는 것에 대한 슬픔은 <Land and Freedom>에서 크게 느낄 수는 없다.


아마 영화제작 시기가 1995년인 점에서 소비에트연방 해체 후, 스탈린의 잔재가 사라짐에 따라 스탈린에 의해 희생된 자들의 명예가 다시 찾아갈 수 있었던 것이다. 스탈린이 살아있던 시절, 스탈린의 영향력이 미친 공산권 국가에서 POUM은 배신자로 낙인찍힌 것을 생각하면, 조지 오웰이 느낀 그 당시 상황이 영화에서는 매우 심각한 주제로 볼 수 없을 것이다. 소설은 POUM의 해체와 과거 동지간의 갈등이 주요 초점이라면 <Land and Freedom>은 당시 POUM의 투쟁이 결코 헛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다.


영화를 감상하면 영화화면이 보통 전쟁영화의 spectacle적인 요소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전쟁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물론 전자나 후자나 spectacle이 아니라고 볼 수 없는 게 아니지만, 적어도 영화라는 것이 전자처럼 오락과 낭만으로 가득한 세계가 아니라 후자처럼 일상적인 요소가 매우 강한 점을 보여준다. 조지 오웰의 소설에서 담배와 땔감이 부족하다는 투덜거림이 바로 그 증거고, 영화에서도 물자부족과 자신의 몸을 계속 갉아대는 이도 그렇다. 카메라영상은 멀리 있는 모습보단 가까이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에 치중되어 있다.

 

전쟁에서 꾸미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 켄 로치 감독이 만든 작품에서 카메라는 보통 헐리웃 영화처럼 깔끔한 영상보단 투박한 영상으로 인물을 그려낸다. 또한 영화 시퀀스에서 전쟁하는 장면보다 전쟁 외적인 영상이 제법 많은 비중을 부여한다. 파시스트가 정복한 마을을 수복할 때 농지를 모두 공유하여 공동농작을 하는 것에 대해 토론할 때 그 토론시간이 매우 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인간 스스로 권리를 찾아가는 여정도 중요하나, 그 여정이 도달 이후에 어떻게 하는 것 역시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다음과 같은 패배의 기록, ① 데이빗과 POUM이 스탈린의 군대에 의해 강제무장해제 되었을 때, ② 데이빗과 POUM이 목숨 걸고 지킨 마을이 다시 파시스트에게 빼앗긴 것, ③ 데이빗이 수명이 다해 사망했을 때 마치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이나, 데이빗의 손녀는 데이빗의 무덤에 시를 낭송하고, 데이빗이 목숨 걸고 싸운 곳에서 가지고 온 흙 한 줌을 다시 데이빗 무덤에 뿌려준다. 데이빗이 지키려한 그 가치는 결코 패배한 것이 아니라 영원히 그와 함께 한다는 것처럼 말이다. 바로 그 흙 한 줌이 자신들이 지킨 땅, 그리고 그 땅에서 자유를 만끽할 인간에 대한 권리가 영원히 이어지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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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곰생각하는발 2015-04-0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영화 좋죠. 마지막 장면에서 먹먹했던 기억이 아직도 나는군요. 캔 로치 작품치고는 꽤 규모가 큰 작품이었습니다. 영화를 볼 때는 이 작품은 카탈로니아`를 바탕으로 영화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몰랐네요. 소설도 읽고 영화도 봤는데... ㅋㅋㅋㅋ 만애비 님 땜에 아, 그렇구나 합니다.

만화애니비평 2015-04-06 13:07   좋아요 0 | URL
곰곰발님이 좋아하는 켄 로치 작품을 하나하나 홀랑홀랑 보고 글을 적어야죠. 우울한 4월 그저 책 읽고 글 쓰는 게 저만의 자위적인 위로가 되겠죠.

곰곰생각하는발 2015-04-06 15:16   좋아요 0 | URL
4월의 우울이라..... 맬랑꼴리하네요. 서울 오시면 막걸리 한 잔 합시다.

만화애니비평 2015-04-06 15:18   좋아요 0 | URL
2월달 설연휴에 서울에 갔었죠. 그때는 형집과 큰아버지집에 간다고 정신없이 지나갔는데, 아마 시간되면 SICAF 서울 애니메이션축제 되면 가지 않을까 하나, 서울에 요새 가는 게 참 괴로워지는군요. 멀다 멀어 몸과 마음도
곰발님과 저기 탑골공원의 막걸리에 돼지고기를 올려 크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