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는 쇠퇴했습니다 7 - J Novel
다나카 로미오 지음, 김경훈 옮김, 토베 스나호 그림 / 서울문화사 / 2015년 4월
평점 :
품절






위트와 재미로 넘치는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7권을 읽어보면서 생각하지만, 역시 이 라이트노벨은 대단하다고 여긴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라이트노벨 시리즈가 1~6권을 보고 난 후 오랜 시간을 기다리며 발간된 7권을 보면서 상당히 현실적인 요소가 많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일단 주인공 나(私)는 녹나무마을에 얼마 되지 않는 학사(學舍) 출신자다. 학사라는 곳은 우리에게 흔히 학교라는 곳이다. 정식교육 절차를 밟아 졸업한 나(私)는 녹나무마을에서 어린아이에게 교육을 가르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식인 계열이었다.


교육을 실천하기 위해선 먼저 가르칠 대상 학생이 있어야 하고, 학생을 가르치기 위해 먼저 교사 스스로가 그 지식을 이해해야지 가능하다. 지식의 전달은 언어로서 가능하며, 언어는 말과 문자로 가능하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 그런 최소한의 지능이 구비되지 않으면 제대로 지식을 쌓을 수 없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으면 쌓을 수 없다. 학생이라면 당연히 배우기 위해 먼저 교사의 말을 듣고, 스스로 교실에서 타인과의 조화를 이루어야 하는 점이다. 만약 그것이 누락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아무리 머리가 좋은 B군이나 활달한 성격 A군, 그리고 조용한 C양이라도 교실에서 서로 간의 입장을 존중하지 않고, 선생마저 무시한다면 교실은 무너지게 되어있다. 그런데 이런 교실을 만드는 것은 과연 누구인가? 학생의 말썽인지 아니면 교사의 무능력인지 혹은 그 무엇인가 존재하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인류는 쇠퇴했습니다> 7권을 읽는 순간 당신은 이 책에서 말하는 학생의 문제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곧 모든 학생의 문제는 학생 본인에게 발생하는 게 아니라 가족의 문제로부터 시작이다. 학교는 사회의 축소판이고, 학생 한 개인은 그 가족의 얼굴이기도 하다. 나(私)는 학교에서 수업하면서 아이들의 장난에 계속 시달리고, 수업 도중에 파이가 날라 온다. 게다가 이들은 무시무시한 도구를 가지고 있다. A군은 리모콘, B군은 안경, C양은 인형이 이상한 아이템이다. 물론 그 아이템의 출처를 찾아보면 어디인지 금방 이해될 것이다. 기본적으로 <인류는 쇠퇴했습니다>는 신인류인 요정의 등장에서 조건을 달고 있기 때문이다.


구(舊)인류인 보통 인간은 이미 쇠퇴하고, 신(新)인류 요정은 마술(첨단과학기술은 때에 따라서 마술이라고 말한다)로서 신비한 능력을 보여준다. 그들의 지겨움에 대한 탈출과 재미에 대한 추구는 항상 나(私)에게 골치 아픈 사건만 준다. 이번에 역시 마찬가지다. 단지 그 말썽의 도구가 각자의 아이템으로 주어진 것이다. 수업에 제대로 임하지 않고, 이들을 제대로 통제하려면 오히려 부모가 와서 행패를 부리는 것을 본다면 과연 누가 먼저 고치는 게 바른 것인지 보여준다.


마지막 해결대안으로 학생 3명에게 기존의 생활방식이 아니라 다른 생활방식으로 살아갈 것을 권유하는 모습에서 교육의 진정한 모습을 보여준다. 옛날 중세유럽에서 아이들은 어린아이로 취급받지 않았고, 단지 작은 어른들이었다. 그들은 집안일들 도와주고, 때에 따라서 생계에 중요한 기여도 했다. 그러나 점차 아동들이 작은아이가 아니라 아직 한 사람의 인간으로 등장하지 못하자 소외라는 개념이 등장한다. 학교가 없는 녹나무 마을에 아이들을 항상 부모로부터 제대로 관리 받지 못한 것이 원인이다.


그래서 나(私)와 말썽꾸러기 3인방의 대결이 보여주고, 그들은 최악의 상황인 도피를 선택한다. 아이들에게 도피라는 선택은 자신의 이성과 자율적 사고에 의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그렇게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은 부모의 관심이다. 그 관심은 억지로 보이는 것도 아니고, 그저 선생에게 찾아가 큰 소리로 윽박지른 것도 아니다. 그 학생의 입장에서 어떻게 고립된 자신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가이다. 그런 교육에 대한 부분에서 인간은 과연 선한 존재인가? 혹은 악한 존재인가?


작품을 읽으면 착한 것도 나쁜 것도 아니라, 인간이 태어난 환경과 주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만약 제대로 된 사랑만 있으면 그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 생각해보면 차라리 인간은 태어날 때 선하나, 단지 상황적 모순, 비정상적인 사회로 병들어가는 것이 맞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은 누구나 비뚤어지고, 나(私) 역시 그렇게 비뚤어진 자신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 아니 차라리 인간은 비뚤어지기에 자신의 정체성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인간은 자신의 존재성을 찾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7권 전반부가 학생과 교사의 영역이라면, 후반부는 인간의 지성에 대한 부분이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은 이성과 지성이 있다는 점이다. 물론 고등 포유류인 침팬지의 경우 도구를 사용할 수 있고, 어느 정도 상황판단할 수 있는 지능이 있다. 하지만 언어를 습득하여 사고하여 다양한 사유를 할 수 없다. 눈앞에 보이는 형상에 대해 인지할 수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은 관념적인 영역을 동물은 사고할 수 없다. 죽음에서 인간은 상상할 수 있지만, 동물은 죽음을 위기의 순간 본능적으로 느낀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이성과 지성으로 통해 세상의 사물을 바라보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이런 기능을 인간이 아닌 기계가 가진다면? 아직 읽지 않았으나 얼마 전 아는 분에게 책 한권을 선물을 받았다. 제목은 <왜 로봇의 도덕인가>, Moral Machines 원문인 이 책은 외국에서 로봇에도 지성이 있고 인권이 있다는 판결로서 인간만이 지성과 이성을 지닌 존재가 아니게 되었다. 단지 인간은 생물이고, 로봇은 무생물이다. 인간은 생물화학적인 에너지로 세포로서 움직이나, 무생물은 로봇은 연료에 의해 동력으로 움직인다.


로봇이 지성이 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물론 <인류는 쇠퇴했습니다>는 철학적 의문을 제기하여 풀어가는 내용이 아니라 철학적인 내용도 하나의 코미디로 만드는 유쾌함이 있다. 나(私)는 과거 유산인 컴퓨터 분석 작업 중 컴퓨터 언어에 대해 연구하다 다시 이상한 사건에 휘말려 컴퓨터 지능에 나(私)의 인격이 이식된다. 그러면서 로봇이 폭주하고, 마을을 엉망으로 만든다. 나(私)는 인간인 것도 있지만, 로봇에 이식된 나(私)의 이성이 있었다. 그렇다면 인간 나(私)와 로봇 나(私)는 모두 나(私)가 아닌가? 


작품을 읽으면 사로 인식하지 못하는 나(私)지만, 그래도 그 나(私) 역시 나(私)로 볼 수 있을 것이다. 로봇이 인간의 뇌가 아닌 컴퓨터로 작동하나, 그건 과연 인간과 동일하지 않은 지성적 존재라고 볼 수 있는가 없는가? 라는 질문에서 모호해진다. 물론 이런 사건 배경에 요정들이 숨어있겠지만, 요정은 단지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해주는 매개체일 뿐이다. 단지 인간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생각해볼 만한 것들을 엉뚱한 사건으로 블랙코미디의 진수로서 진행되나 말이다. 이 모든 게 엉뚱하고 환상적인 일이나 하나, 그 작품 내에 숨겨진 인간의 모습은 상당힌 현실적이다. 오히려 엉뚱한 비현실로 보여주기에 우리에게 그 내용을 생각해 보게 해주는 것이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15-05-14 02: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5-05-14 08:3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
이덕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역사가 중요한 이유는 그 역사의 기록에서 전해진 사건들이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그런 역사적 맥락은 매우 중요하다. 100년 전 한일합방이나 을사늑약, 200년 전의 신유사옥과 황사영백서, 그 이전에 일어난 일들은 지금의 우리를 만들었다. 2014년 침몰한 선박 희생자들의 가족들이 비통에 빠져 있을 때, 교황님이 한국에 방문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종교는 없지만, 그 교황을 존경한다. 그분이 오실 적에 한국 가톨릭성인 중에 윤지충이란 인물을 성인으로 봉했다. 1791년 신해년 어머니 권씨 장례를 치루던 그는 어머니의 신주를 불사른 이유로 이종사촌과 함께 참수를 당했다.


따지고 보면 한국천주교회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이고, 앞으로 조선 천주교의 미래에 피 냄새가 진동하는 초석이 되었다. 정조가 죽자 노론들이 1801년 신유사옥을 일으키고, 황사영백서로 조선의 천주교의 대박해가 있었고, 이후 계속 더 심하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신해박해와 신유박해는 종교적인 문제보단 정치적인 문제가 더 심했다. 왜냐하면 두 사건은 모두 노론의 정적인 다산 정약용을 노리기 위한 극도의 전략이었고, 전자는 어떻게든 넘어갔으나 후자는 정약용의 가계를 풍비박산을 내었다.


다산 정약용을 파괴한 이유는 바로 그가 정치적으로 남인에 위치했고, 남인들은 당대 권력자들인 노론에게 귀찮은 존재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조선은 심각한 모순에 빠졌다. 그런 모순에서 정치적으로 제도를 정비하고 모순을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은 오로지 왕과 사대부들이었다. 문제는 그 사대부양반이 어떤 입장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생각해야 할 점이다. 훈구파와 사림파의 대립부터 각종 사화에서 조선은 조용한 나라가 아니라 선비들의 피가 뿌려진 역사였다.


권력을 잡은 사대부들은 호위호식하며 위로는 왕을 속이고, 아래로는 백성을 탄압했다. 공자가 이르기를 범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부패한 관료라고 했다. 즉 가렴주구의 현실이 이제 조선의 운명을 몰락의 길로 인도했다. 그렇다면 그 시작은 어디인가? 예나 지금이나 백성 즉 국민이 신음에 괴로워하고 통곡하면 그 나라만큼 비참한 나라는 없을 것이다. 공자의 유학이란 바로 그런 백성의 도탄에서 구하는 것이다. 논어에서 정치가란 농민에게 농사를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농민들이 농사를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정치란 아래 사람을 편안하게 하여 위로 하여금 올바른 정사를 돕는 것이 선비의 자세다.


백성이 변을 당하면 선비의 책임이고, 선비의 변을 당하면 대부의 책임이듯이 조선의 건국 이념은 유교이다. 유교의 공자와 맹자의 이론을 깊이 들어가면 상당히 계급절대적인 사고방식이나 때로 생각하면 그렇게 되어 더 이상 백성 아니 국민들이 도탄에 빠지지 않은 것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지금 유교문화를 생각하면 기본적으로 공자의 책을 읽어본 사람은 거의 없고, 공자의 사상조차 알아보려고 한 사람도 없다. 그런데도 비뚤어진 유교문화는 우리사회 전반에 뿌리 깊이 못 박혔다.


개인적 내 일화로 나는 종교가 없지만, 그래도 다른 종교를 가진 친구가 있다. 딱히 그 종교를 문제 삼자고 한 것은 아니나, 그 집에 놀러가 내 친구의 어머니가 나보고 자신이 다니는 종교에 믿고 한 번 가자는 말에 나는 거부했고, 30분 정도 이런저런 말이 오고갔다. 그런 뒤에 내 친구는 뒤에 이런 말을 했다. “아무리 싫더라도 우리 어머니가 하는 말인데 조금 심한 것 아닌가.”라고 말이다. 물론 어른에 대한 아랫사람의 말대꾸는 보기 좋지 않음은 분명하다. 하지만 어른이라고 무조건 들어야 한다는 논리는 유교문화에서 시작되고, 그 유교문화와 전혀 접점을 이루지 않은 종교를 나에게 권유하는 친구 어머니에서 우리사회는 유교가 가진 의미적인 부분을 버려도 유교가 가진 모순은 계속 유지했다.


물론 진짜 유교에서 공자는 제자들과 대화하면서 자신의 의견들을 서로 나누었다. 즉 유교는 선비들이 학문을 하여 서로 간의 사고를 정리하여 말하고, 그것이 옳은 것이라면 당연히 세상에 실천으로 보임으로 만백성을 편하게 만드는 것이 취지다. 그러나 공자의 유학은 정치적인 경전이지, 종교적인 색은 없었다. 남송의 주자의 성리학이 여러 가지 종교적 내용을 보강하여 퍼지고, 그것이 조선에 유입되었다. 주자의 논리는 조선사대부에게 유교가 가진 민본중심 사상에서 사대부중심으로 변해갔다. 사대부중심이 된 계기는 바로 사회적 모순으로 인해 자신들의 이권에 큰 위협이 다가오자 이에 대한 방어책으로 나온 것이다.


전쟁에 대한 피해가 결국 사대부의 무능함과 이기심이었지만, 그들은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것을 은폐하여 자신들에게 유리한 지점에 올리려했다. 그런 점에서 윤휴의 투쟁은 한국에서 왜 제대로 된 토론문화가 될 수 없는지 그리고 왜 아직까지 그게 되는지 보여준 사례다. 조선의 사화에서 여러 가지가 있었으나, 그런다고 선비나 유학자들이 내놓은 상소나 의견을 두고 사형에 이르지 않게 했다. 설사 귀양이나 관직박탈이 존재해도 목숨까지 빼앗지 않았다.


그런다고 하여 노론의 입장에선 그걸 용인하지 않았다. 국가를 위한 것인지 아니라면 국가라는 이름으로 자신을 위한 것인지가 명확하게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노론의 서인이었고, 서인은 동인과 반대되던 당파였다. 서인은 임진왜란 이전 정여립 모반사건으로 동인세력을 꺾으려 했고, 임진왜란 시기에 동인이던 서애 유성룡이 잦은 정치적 논쟁, 그리고 이순신조차 동인계통이었다. 그리고 서애 유성룡의 가까운 학자이자, 퇴계 이황과 학문적 교류를 나눈 윤복, 개혁유학자 조광조의 친구 윤복의 형 윤구, 이들의 흔적은 예송논쟁이란 희대의 사건으로 이어지는 길이 된다.


병자호란 이후 조선은 인조반정 대신들은 청에 대한 복수, 그리고 명에 대한 은복을 위해 북벌론을 제기하나, 막상 그 실천을 옮기려 하던 자는 없었다. 북벌론을 제기하던 자들은 효종과 같이 뜻을 모우려 했지만, 효종은 병으로 죽고 만다. 어이없는 점은 아주 강한 의지와 체력을 가진 효종이 그 말을 꺼낸 지 1달 만에 병으로 죽었다. 얼굴에 난 종기를 침으로 제거할 때 혈관을 잘못 찔러 죽었다는 것은 이해가지 않는다. 즉 얼굴에 지나치게 깊이 침을 넣지 않은 이상 출혈쇼크로 사망할리 없다. 효종은 왕궁에서 직접 궁마(弓馬)를 수련했다. 왕이 한 사람의 장수로서 지휘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효종이 죽자 그의 장례문제로 남인과 서인이 충돌했다. 두 세력은 인조반정에 기여한 점도 있지만, 남인은 조선의 군주인 왕을 위해 상복을 3년을 주장했지만, 서인은 효종이 장자가 아니기에 1년을 주장했다. 남인은 조선사대부의 군주는 군왕이었지만, 서인들의 군왕은 명나라 황제였다. 그런다고 하여 북벌론을 주장하면서 실천하지 않았다. 이때 굴러들어온 돌이 윤휴였다. 그리고 윤휴와 더불어 윤선도의 공격은 서인들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만들었다. 그들은 남인의 학자이면서 윤선도는 남인의 영수였다.


서인들의 논리는 왕을 사대부와 같은 직급으로 보고, 사대부의 이익을 올리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당시 사회적으로 서인들은 성리학의 절대적 이론을 두고 자신들의 권력을 확장했다. 성리학에서 주자의 논리 1자조차 건들지 못하게 했고, 만약 건들면 사문난적으로 몰아넣었다. 이때 윤선도는 귀양살이를 가게 되고, 그는 평생 남은 시간을 귀양살이로 마무리하여 노년에 고향 인근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한다. 귀양살이하던 윤선도와 달리 윤휴는 1차 예송논쟁 이후 2차 예송논쟁에도 활약했다.


현종의 어머니가 돌아가시자 이때 상복은 1년인가 9개월로 할 것인가에서 다시 말썽을 발휘했다. 효종의 죽음은 1년으로 끝났지만, 그 뒤에는 왕의 권력보단 신하의 권력을 우위에 두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남인(청남)들은 왕권을 주장하고, 북벌론을 위해 백성들의 살림을 보전하게 하고, 양반들의 특권을 정리하는 게 옳다고 보았다. 송시열의 서인은 그런 정책을 잘못하면 국가가 어지러워지며, 사대부들에게 군포를 지게 하는 것은 자신들의 이익에 반하는 것이고, 게다가 서자의 군역을 나가게 하여 벼슬을 하게 하는 것 역시 특권층의 이익을 반하는 것이었다.


이때 청남에서 가장 큰 대변자가 윤휴고, 그는 서인들과 대항하다 숙종 때 경신환국에서 죽음을 당한다. 그가 죽은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서인들의 세력이 왕실 척신으로 자리 잡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방해하는 윤휴와 청남세력을 가만히 둘 수 없었다. 남인의 세력에서 윤선도의 죄는 아들에게 연좌될 수준이었다. 남인세력 특히 청남들은 퇴계 이황을 중심으로 몰린 선비로, 왕권 중심을 내세운다. 그리고 왕권을 앞세우고 백성을 부유하게 만드는 게 목적이기에 결국 실학의 거두가 여기서 비롯된다.


윤선도의 경우 학문만 아니라 의학과 음악 각종 예술과 과학에 능했고, 그의 학문은 공재 윤두서와 윤두서의 친구 옥동 이서에게 미친다. 옥동 이서는 조선중기 최고의 실학자 성호 이익의 형이다. 이익의 형인 이잠은 숙종 때 장희빈을 편을 들다 장형으로 죽는다. 그리고 이익의 아버지 이하진은 숙종 경신환국 때 서인에 의해 귀양을 가게 된다. 그런 흐름에서 남인과 노론의 피 냄새가 나는 당쟁이 시작되었다. 서인들은 왕의 독살사건과 사도세자 죽음까지 이어지고, 영조는 평생 노론의 그늘 아래 살아야했다.


노론들에게 우암 송시열을 비롯한 당시 서인 영수들의 권력은 절대적이고, 이들의 권력을 계속 이어져 내려와 특권층으로 된다. 권력에 대한 비판은 사대부들이 해야 할 도리였다. 그러나 상소문을 올리고 받는 기관마저 그 이속으로 가득하면 아무 소용없다. 그런 흐름은 계속 이어져 정조 사후는 조선의 빛은 사라졌다. 지금도 이상한 성리학으로 윗사람이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여 아랫사람이 말하면, 감히 어디서라는 말부터 튀어나온다. 바른 말과 정당한 주장만이 답이 아니라 그 세력이 원하는 구미를 얼마나 맞추는가에서 생존까지 달라진다.


선비의 상소는 지금으로 본다면 언론의 기능이다. 백성들 중에서 극소수인 선비만 글을 읽고 쓸 줄 알았다. 지식을 가졌기에 아무리 봉기해도 전략과 책술로서 다스릴 수 있었고, 제도적인 요소로서 제압할 수 있었다. 그러나 정작 그 학문은 배워서 남을 주는 게 공맹의 유학이나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한 주자의 모순으로 어긋났다. 이런 구조에서 정약용의 유배와 형제들의 변은 이미 예고된 상태였다. 그러나 이 지점이 어디서부터인지 찾아간다면 임진왜란 병자호란이 터준 것이나, 적어도 피를 흘릴 정도는 아니다.


그 피 흘리는 철저함은 2번의 예송논쟁이었다. <윤휴와 침묵의 제국>에서 윤휴의 후손조차 그의 조상을 말하는 것조차 버겁다는 점에서 한 개인의 역사가 먼 훗날 후손에게 큰 짐을 주었다. 정약용도 윤선도의 후손이고, 그의 이종사촌 역시 윤선도의 후예이기에 큰 화를 당한 것이다. 그리고 그 뼈대가 된 성리학의 전체주의적 사상, 권력지향주의, 관료주의 형태는 21세기 한국까지 움직이고 있다. 이 책에서 윤휴가 고문을 받고 서울 동대문으로 나오자 많은 백성들이 몰려와 그의 몰골을 보고 울었다고 한다.


전쟁과 가난, 병들은 국가아래 언제나 수탈과 핍박받은 자들이 자신들을 위해 변호하다 산 송장이 된 윤휴를 보고 통곡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윤휴와 가까이 지내던 윤선도의 경우도 그렇다. 한국전쟁 때 많은 전투가 벌여지자, 예전에 양반들이었던 자들이 한국군과 북한군의 접전 중에 과거 원한을 산 일로 가옥이 불타거나 살해당한 일들이 있었다. 그러나 해남의 윤선도 종가는 오히려 보호받았다고 한다. 선비의 본분은 왕으로 하여금 백성을 안위로 도모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이상은 주자의 성리학에 빠진 사대부들에 의해 저지되었고, 그들에게 군주는 조선의 왕이 아니라 명나라황제였다. 물론 명이 완전히 청으로 넘어가면서 그들의 황제는 청나라황제였고, 일본에 의해 먹혀 들어간 순간에 아직까지 자국의 독립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에 치중했고, 그런 이기심을 포장하는 사변으로 정치적 명분을 만들었다. 21세기 왕도 양반도 노비도 없지만, 아직도 우리는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양반이란 신분은 철폐되는 게 옳아도, 양반이란 사대부가 가진 본래의 가치는 다시금 생각해볼 필요는 있다. 윤휴는 백골의 시아버지와 배냇물이 마르지 않은 아이의 군역이 오른 것을 보고 분노를 했다.


다산 정약용은 그런 군역에 견디지 못해 자신의 남근을 베어버린 갈대밭 남정과 그 남정이 아낙네의 절규를 보았다. 논어에서 공자가 제자의 질문에서 나라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백성이라 했다. 경제와 군사는 다음 문제다. 백성이 굶주리고 비참함에 통곡하는데 오히려 자신들의 이익만 보는 것에서 지금의 한국 그때와 과연 다를까? 바른 소리를 하는 사람에게 귀양과 죽음만 내리고, 이젠 사회적 죽음으로 몰고 간다. 책을 보고 서평을 쓰면서 나에게 오는 것은 정말 짜증나는 분노와 증오다.


다산 정약용 선생이 자신의 유배지에서 자신의 남근을 자르는 사건을 보고도 아무 것도 못한 채 나그네 방에서 그저 시 구절 외우는 것으로 달래야 한 점을 생각하면,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역사의 당시에는 패자 그리고 일어날 수 없을 정도로 심한 박해를 받은 자들은 먼 후대의 역사에 의해 복원되고 칭송받는다. 세상에 대한 비관적이고 부정적인 내 시선을 어쩔 수 없지만, 그런 역사적 평가가 있기에 오늘 우리들은 자신의 양심을 걸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하 - 완역본 범우고전선 32
투키디데스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헬라스의 운명은 아테네와 스파르타 진영 사이의 전투에서 큰 전환점이 일어난다. 상권에서는 전쟁의 발발이라면 하권은 전쟁의 진행에 따른 헬라스 국가들의 운명을 나열한다. 후자의 입장에서 그 역사적 순간은 하나의 인과과정으로 볼 수 있겠지만, 그 당시 사회에서는 인과과정이 아니라 운명의 장난이었다. 그리스 사람들, 즉 헬라스 국가 인간들은 인간만이 아니라 신의 존재까지 존재했다고 믿었다. “모든 신들과 인간의 아버지이신 크로노스의 아들 제우스이시어!”라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전집처럼 인간의 운명에서 헬라스인들은 신과 함께 한다고 여겼다.


급한 전투의 순간에도 또는 당장 원정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헬라스 국가사람들은 신에 대한 축제를 결코 멈추지 않았다. 신들의 축제를 벌이는 순간, 모든 활동을 중지하는 점에서 그들의 전쟁이란 신의 가호가 있는 전쟁이었다. 물론 투키디데스는 신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부정적인 시선은 보이지 않으나, 그런 부분들이 전쟁의 상황에 큰 기여를 한다. 심지어 점술사의 점괘, 신전의 신탁까지도 모두 받아들였다. 과학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고대 그리스 국가에서 인간의 운명은 인간 스스로가 아니라 신의 축복에서 의해서라고 본 것이다.


만약 그런 감정이 없고, 단순히 인간 스스로에 찾게 되면 절망적인 상황에 희망이란 단어를 찾지 못할 것이다. 물론 신의 축복은 전쟁에 패한 전사들에게 찾아오지 않았다. 그런 축복은 트로이전쟁에 원정을 나간 아가멤논 왕에게 찾아온다. 바다의 폭우를 멈추기 위해 아가멤논 왕은 자신의 딸을 희생물로 받쳐 무사히 바다를 건넌다. 대신 딸의 죽음은 아내의 배신으로 이어지고, 아내의 배신은 아가멤논 왕을 하데스의 신전으로 인도한다. 인간이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그리고 피할 수 없는 비극적 결말을 헬라스 인들은 그리스신화로서 충분히 받아들이고 있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제우스를 비롯한 그리스의 신(아테네 국가라는 이름이 아테네 여신이듯이)들을 외치고 애원해도 인간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은 행동에 파멸을 맞이하고 만다. 아테네는 해상전력이 강력한 것만 믿고, 또는 다른 동맹국가가 자신들의 권위에 복종하여 따라올 것만 생각하여 의외의 복병을 피하지 못한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읽게 되면 모든 상황을 아테네인들이 만들었으나, 그 상황에서 파멸의 순간 아테네인들이 지명한 인물로부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인 큰 회의석상에서 어느 인물들이 무대 위로 나와 연설을 한다. 이들의 연설을 들으면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막 소피스트들이 도래하던 시기와 맞물러 그들의 논설은 매우 유창하고 화려하다. 발언대 위의 연설자들은 대중들을 설득하여 자신이 원하는 바를 성취한다. 문제는 그 연설에서 인간은 항상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점이다. 다른 연설자가 각각 다른 시기에 올라오나, 실제 애국자와 위대한 정치가는 들리는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는 게 아니라 지금의 현실을 제대로 파악하여 대비하는 중요하다는 점이다.


어설픈 자신의 성공을 위해 타인의 명예욕을 자극하고, 안일한 자신들의 생활에 적의 침공을 막지 못해 아테네를 비롯한 많은 국가들이 큰 타격을 받았다. 이런 내용을 보면 나는 왠지 모르게 서애 유성룡이 저술한 <징비록>이 생각났다. <징비록>은 유성룡이 임진왜란 이전부터 끝날 때까지 정리한 내용으로 7년 전쟁의 비참한 상세히 기록했다. 전쟁이 일어난 이유와 전쟁에서 피해를 받은 이유, 그리고 전투에서 계속되는 패배는 단순히 운이 아니라 그 상황을 만들게 한 원인이 있었다.


제일 답답한 순간은 왜군이 계속 북상하고 있을 때 소문으로 조선군 주변에 왜군이 도래한 장면이다. 누군가 계속 왜군이 온다고 이야기해 군영이 소란스러워하자 군사 지휘관은 그 소문발언자를 찾아내 참수형에 처한 점이다. 건강한 장병을 전투에 투입해 승리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하나 군영의 엄숙함을 지키기 위해 참수형을 선택한 점에서 패배의 원인은 결정되었다. 만약 그 소문을 듣고 왜군의 향방을 알아보기 위해 척후병이나 수색대를 파견했더라면, 왜군의 침투에 큰 피해를 받지 않았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정보력의 신속성, 지휘관의 판단력이 전쟁의 좌우를 결정지어 버렸다. 현대전은 과거 한국전쟁처럼 총을 이용한 백병전을 벌이는 게 아니라 전자정보전이 우선이다. 공중에 전투기를 이륙시켜 적의 기지를 강타하고, 얼마나 많은 전투기를 출동시켜 적의 군사시설과 주요기관을 파괴하는 것이 관건이다. 그런 점에서 지금의 군사전은 정보력이 제일 중요하고, 빠른 정보수집과 신중한 지휘관의 명령은 전장의 상황을 바꾼다.


현대전에서도 이런 조건이 따르는데, 과거 그리스 폴리스 국가시대는 더 심각했다. 적조차 온다는 것도 알 수 없었고, 적의 숫자나 장수 심지어 전투하는 시기에 바다에 폭풍이 오는지 육지에 지진이 일어나는지 알 수 없다. 따라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아테네인들이 결정적으로 패배한 이유는 정보의 부족이었다. 상대방의 상황을 명확히 파악하지 못한 점, 자신들의 강력한 힘을 너무 쉽게 의지한 점이다. 전쟁은 무슨 조건에 의해 승패가 어떻데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지휘관의 명령은 전군을 멸망시킬 정도로 치명적이었다.


더구나 그 지휘관이 자신의 성과를 너무 추구한 나머지 적진에 너무 깊숙하게 들어가서 많은 사상자를 만들기도 했다. 투키디데스는 분명 아테네인이지만, 그의 시각에서 아테네 적 스파르타는 그런 문제를 충분히 넘어선 점이다. 침착한 전투지휘와 확실한 적의 타격은 아테네를 패망의 길로 인도했다. 게다가 군의 지휘관이 간단히 바뀌지 않고, 오히려 왕의 아들이나 왕 자신이 직접 군대를 이끌고 돌격하여 책임감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테네의 상황은 시민들은 현명한 참여자보단 금방 입맛을 바꾸는 표리부동한 모습만 보였다.


민주주의 정체제가 있기에 아테네는 강력한 국가를 만들 수 있었으나, 그들에 결여된 점은 시민사회를 유지할 수 있었던 지성이었다. 민주주의사회에서 시민들은 그 사회의 주인이나, 그 사회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지배계층으로 군림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위치에 걸맞은 지성과 인성이 뒷받침 되어야 했다. 아테네의 패배에서 알키비아데스의 배반과 이기적인 행동은 큰 원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을 만든 것은 니키아스가 알키비아데스의 행동을 저지하려기 위해 군중 앞에 연설할 때 그것을 선택한 군중들이었다.


알키비아데스 같은 유형은 과거 자신의 아버지나 할아버지와 같은 부계 친족들이 어느 업적을 쌓고, 사회적으로 높은 인사가 되었다고 해서 그 후예가 그렇게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그런데도 알키비아데스는 부계 친족의 명성으로 많은 일들을 벌이고, 결국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다. 알키비아데스의 행위를 보는 것처럼 전쟁이란 어느 한 명에 의해 일어나는 게 아니나, 어느 한 명의 선택과 행동에 의해 큰 타격을 받는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투키디데스의 긴 글은 바로 이런 점들을 보여준다. 알키비아데스와 달리 페리클레스의 모습은 진정한 정치가의 모습으로 비추어준다. 그러나 아쉽게도 우리는 위대한 아테네 정치가 페리클레스 혹은 훌륭한 스파르타 지략가 브라시다스보단 항상 알키비아데스에게 많이 홀린다. 페리클레스는 아테네인들에게 조롱을 받고, 뒤에는 아테네인들의 잘못된 선택의 책임까지 져야했다. 브라시다스는 아테네에게 열세에 빠진 스파르타의 전세를 역전시켰지만, 그의 공적에 질투하는 스파르타의 위정자들로부터 견제를 받았다.


이렇듯 전쟁에서 각종 인간의 군상이 튀어나오고 그 당시 훌륭한 인물들은 안타까운 최후를 맞이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의 전쟁사에서 오늘날 우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는가이다. 알키비아데스가 허망한 행위가 먹혔던 이유, 그리고 스파르타가 이겼던 이유를 잘 보아야 할 것이다. 아테네는 과거의 영광에 빠져, 그 영광을 위해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생각하지 않았고, 지금의 위치에 교만한 태도만 취했다. 그리고 스파르타의 영광은 바로 지도자들의 앞잡이다. 칼과 창 그리고 화살이 날라 오는 전장에서 스파르타 왕은 자기의 몸을 아끼기보단 직접 병사를 인솔하여 적진을 함락시킨다.


물론 스파르타 내의 왕을 감독하는 독시관이 있고, 그들도 나름 정치제의 기능을 담당하는 기구가 존재한다. 그러나 위험에 가장 먼저 도전하는 스파르타의 왕과 그들을 따르는 라케다이몬인 전사들에서 지금의 정치에 대해 생각해본다. 관료사회 문제는 관료주의화 되면서 관료라는 직함보단 관료라는 직함으로서 얻어지는 이익에 치중하여 책임을 뒤로 하게 된다. 스파르타는 바로 그런 관료주의 모습이 일체 없었다. 관료주의 폐단이 국가의 부를 감소하고, 국민을 피폐하게 하는 것은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강한 지도자란 자신과 주변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게 아니라 그 누구보다 위험한 장소에 가서 몸을 날릴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런 전쟁으로 인해 플라톤의 저서들은 그가 아테네인이고도 불구하고 각종 서적에 나타난 그의 스승 소크라테스는 강한 철인군주의 통치가 필요한 것을 강조한다. 물론 그것은 민주주의 제도에 어긋난 것이나, 정치가라면 누구나 그런 플라톤의 정치사상에서 말하는 바를 생각해볼 점이고, 그들을 선출해야 하는 국민들은 그런 점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왜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 같은 실수를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우리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을 이미 경험하고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 상 - 완역본
투키디데스 지음, 박광순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인류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은 전쟁이다. 전쟁으로 인해 어떤 민족과 국가가 역사로부터 사라지고, 전혀 예상하지도 못한 자들이 역사의 큰 물결을 일으킨다. 역사란 그런 물결을 기록하고 바라본다. 우리가 지금 바라보는 역사에서 우리는 그 사건에 대해 당연한 일들로 볼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과거에 일어난 일을 기록물로서 정리하여 다시 재조립하여 바라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시 살아온 인간에 대한 마음을 우리가 알아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의 시대와 당시의 시대는 분명히 큰 차이점이 존재하고, 우리가 도저히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일어난 시대다.


그러나 적어도 우리는 알 수 있는 것이란, 전쟁이 새겨진 역사란 바로 지금의 시대에도 큰 유산이 된다는 점이다. 인류의 문명은 당시에는 그 시대 삶의 양식이라면, 지금의 문화재고 기록의 결정체다. 우리가 그때부터 시작하여 지금까지 존재한 기록과 유물들로서 우리의 현재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 

그 중에서 전쟁은 우리 인간에게 큰 가치를 가지는데, 전쟁은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것들을 물거품으로 변하게 된다. 전쟁을 연구한다는 것은 지금의 시대와 다른 양태라 해도 우리가 알아야 하는 이유는 인간을 가장 연구하기 좋을 시기가 바로 전쟁이다.


전쟁이란 인간이 가진 모든 것을 파괴하고 빼앗는 것을 합당하게 만들고, 게다가 자신에게만 그 피해가 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가족과 주변사람마저 비참하게 만든다. 전쟁에 패배하는 것은 자신의 죽음이 아니라 자신의 존재성까지 사라진다. 그리고 전쟁에 닥치는 위기란 평소 알 수 없었던 그 사람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게 해준다. 이런 전쟁에 보이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그 시대의 상황을 정리한 서적이 투키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다. 펠로폰네소스는 그리스 아테네가 번창하던 시기, 전쟁의 중심지역이 되던 도시이름이다.


아테네가 헬라스 지역의 지배권을 잡고, 주변 폴리스로부터 공물을 받아 그 국가적 위엄을 세울 때, 다른 동맹국이 다른 나라에 대한 갈등이 시작하면서 전쟁의 소용돌이로 이어진다. 헬라스 폴리스들을 알아보면 절대적 강국 아테네, 그리고 아테네의 라이벌인 라케다이몬인이 살던 스파르타가 있었다. 우연히 동맹국들의 갈등이 공물을 받고 헬라스 중심국가의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작은 전투와 시가전이 결국 큰 전쟁으로 이어지고, 대규모 해상전과 육상전이 생기면서 헬라스 일원은 전쟁의 도가니로 빠진다. 전쟁이 일어나는 이유는 간단히 보자면, 강한 국가의 동맹국에 대한 침입이다. 그런데 왜 동맹국이 그렇게 나서서 전쟁을 나서는가? 사실 펠로폰네소스전쟁에 대한 근본을 보는 게 정말 중요한 것 같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저술한 투키디데스는 아테네인으로 전쟁에 참가한 장수이나, 전투 중의 희비로 인해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전쟁에서 물러난 그는 모든 정보를 사서 전쟁을 기록한다.


그의 기록을 보자면 전쟁의 원인과 결과 그리고 각각의 상황에 대해 매우 객관적으로 차가운 시선으로 적는다. 다소 아테네의 위대한 정치가에 대한 긍정적인 시각으로 기록하고 있으나, 문제는 그 인물은 안타깝게 역사의 이슬로 사라진다. 아테네인으로서 느낀 아테네란 국가의 문제점이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순간 확실히 느낀다. 그가 자신의 국가인 아테네에 대해 매우 객관적인 역사적 전후관계를 서술하면서도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는 순간 아테네의 문제를 알아갈 수 있다.

 

그가 전쟁사를 기록한 이유는 바로 이 전쟁에 대한 문제를 후세에 남겨 앞으로 이런 실수를 반복하지 말라는 의미일 것이다. 역사를 우리가 배우고 생각해야할 점은 역사에 등장하는 인간은 시간과 공간적 상황과 사건이 다르게 발생해도, 그 근본에는 같은 문제점이 숨어있다. 바로 인간이 가진 딜레마란 점이다. 왜 인간은 이런 실수를 하는가? 반드시 실수란 어느 개인이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 전체적인 사회적 분위기란 점이다. 전쟁의 시작은 반드시 어느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전쟁을 만들게 하는 원인이 숨어있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보면 그 시작은 명분이었다. 동맹국의 침입과 보복, 동맹국에 대한 의리와 맹약 등에서 말이다. 그러나 전쟁은 명분과 실리하고 다르게 언제나 다른 상황에 마주하게 된다. 전혀 파악하지 못할 기습, 생각하지도 못한 지진과 폭풍, 그러면서도 전쟁에 임하는 헬라스의 전사들까지, 그리고 폴리스에 남겨진 주민까지도 말이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에서 왜 전쟁이 일어나는가?

 

그 이유는 바로 인간이 가진 우월감과 욕망 그리고 공포다. 남들보다 다른 국가보다 자신과 자신들을 위에 있고자 하는 우월심리는 타인과 타국을 의심과 근심거리로 변한다. 이런 심리들은 전쟁에서 이길 것이라 여기는 교만심과 자신들에게 반항하는 적들의 반격을 두려워한다. 인간은 자신이 가진 것보다 더 많은 것들을 가지려고 하는 순간 더 큰 비극을 도래하는 것이다. 왜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펠로폰네소스 전쟁사>를 읽게 되면 전쟁의 구조를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왜 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인가? 일단 기본적으로 그리스에서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투쟁도 존재하지만, 그 시작은 무엇인가라는 점이다. 많은 사람들의 입장과 시점 그리고 판단력이 작용하나, 나는 문화인류학적인 견해로 보고자 했다. 당시 헬라스 사회는 농업과 상업을 동시에 진행되던 사회이며, 여기서 스파르타는 특이하게 자신의 국가 외의 모든 사람은 모두 죽이는 것으로 나온다.

 

이것을 본다면 스파르타는 국가 자체가 내부적으로 계급이 엄연히 존재했고, 왕은 위대한 전사들의 장수였다. 그리고 그들은 척박한 환경에서 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도록 키운다. 이에 반해 아테네는 부유하고 무장할 수 있는 부류는 오로지 시민들만 가능하고, 자신의 무장장비는 스스로가 구매한다. 결국 이런 구조는 그 국가만의 독특한 환경에서 기인된다고 본다. 아테네는 해상무역과 조공으로 통해 국력을 강조했고, 그에 대한 공물론 금이나 은 이외에도 나무나 자원도 있다. 전쟁수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전략과 전술, 그리고 전투력이겠지만, 전쟁하기 위해서는 전쟁물자와 인원이다.


전쟁을 위해 아테네는 해군력을 증가한 게 아니라 해상무역의 이권을 가지기 위해 해군력을 증가했다. 이에 따라 다른 비동맹국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불안요소고, 아테네의 독주는 여러 헬라스 국가들의 안위에 큰 문제가 되었다. 아테네는 수많은 인구와 물자가 있었고, 넘쳐나는 에너지는 결국 다른 국가에 대한 침략전쟁으로 이어진다. 아테네는 겉으로 동맹국의 우호를 위해 전쟁을 참전하나, 그 이면에 사회 내부적으로 그들은 과대한 사회구조를 이룬 셈이었다. 전체 인구 10% 정도만 시민이었고, 그들에게 정치적 발언권과 참전전권이 부여되었다. 나머지는 노예, 어린이, 여자, 외국인 등 피지배계층이었고, 지배계층 10%의 시민권자들만 자신들의 이권을 만들 수 있었다.


이들의 이권을 늘어가는 과정은 단순히 전쟁만이 아니라 전쟁 이전의 정치적 행위다. 이들은 어느 폴리스에 이주가거나 혹은 과거 빼앗은 폴리스에 많은 아테네인들을 이주하여 자신들의 영역을 확대해갔다. 그렇지 않으면 동맹국을 삼아 그들에게 공물을 요구했고, 이들의 행위는 주변 헬라스국가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세력을 넓히는 이유는 새로운 생산양식을 확장하기 위한 방도이며, 그 확장을 위해 군수물품의 소비가 일어난다. 전쟁에 소비된 자금을 회수하기 위해 새로운 약탈이 이루어지고, 다시 또 세력을 확장해간다. 아테네가 일으킨 <펠로폰네소스 전쟁사>의 시작은 바로 그들이 확장하고자 하는 내부적 욕망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점으로 극단적인 감정과 행동이다. 아테네인들은 민주주의국가로서 시민들의 입장과 표결로서 운명을 결정했다. 그런데 그 시민들이란 사람들은 작은 사건에 크게 동요하고, 어느 작전과 임무에 임명되는 자들을 꾸준히 활동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시시각각으로 변한다. 만약 전투나 임무에 실패하면 그 자리에서 해임하는 것도 모자라 아테네에서 추방하는 방식에서 그들의 민주주의 정치제의 한계성이 드러난 점이었다. 정치적 안건에 공익을 위한 정책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익 내지 명예욕으로 물들어 펠로폰네소스 전쟁은 시작하게 되고, 헬라스는 전쟁으로 비극의 시대, 그리고 영웅의 시대로 이어지게 된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에서 방영되면서 본 작품은 기존의 가이낙스 작품과 비교하여 큰 차이점을 보여주고 있었다. 가이낙스에서 이때까지 마법소녀 장르를 제작하지 않았다. <팬티 & 스타킹 with 가터벨트>의 경우 변신한다고 하나 그녀는 인간이 아닌 천사라는 점이고, 마법소녀 장르는 인간인 소녀가 인간이 아닌 다른 존재로 변신하는 것이다. 변신이란 속성에 맞추어 보자면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는 일반적인 마법소녀 장르에 큰 차이점이 없다. 주인공들은 미지의 외계인을 위해 우주선의 엔진 조각을 찾아가고, 그것으로 통해 서로의 정체성을 깨달아가는 성장물이다.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을 일본애니메이션 장르에서 보자면 일반적인 마법소녀 장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에 조금 다른 특이성이 반영되어 있다. 그것은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가이낙스에서 제작한 것이고, 또 하나는 감독이 사에키 쇼지라는 애니메이터다. 사에키 쇼지는 1995년 가이낙스에서 에반게리온 동화를 시작하여, 2004<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의 감독으로 활동한다.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에서 각본을 맡은 야마가 히로유키가 제작한 <마호로 매틱>에 참여하고, 2009<마호로 매틱> 특별편을 맡는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은 2005<이 사람이 나의 주인님>이고, 2012년 니시오 이신의 원작 <메다카 박스>를 제작한다.

 

그의 작품들을 보면 초기에는 가이낙스에서 남성 중심의 오타쿠(열혈, 모에, 세카이계) 속성(<<신세기 에반게리온>, <이 사람의 나의 주인님>, <마호로 매틱>, <이 추하고도 아름다운 세계>, <메다카 박스> ) 작품을 제작하다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를 제작하게 되었다. 가이낙스 창립 당시 Daicon 3 오프닝을 보면 나이 어린 소녀가 등장하여 비행을 하고 미사일을 날리는 모습이 나온다. 전투미소녀라는 특징과 더불어 롤리타 콤플렉스적인 요소도 등장한다. 전형적인 미소녀 모에 속성에 전투장면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이런 속성들이 가이낙스의 작품 토대가 되어 <톱을 노려라>, <신비한 바다의 나디아>, <신세기 에반게리온> 등으로 이어진다. 그러다 가이낙스는 2017년 기점으로 변화가 생긴다. 안노 히데아키를 비롯한 많은 초기 가이낙스 인원들이 카라 스튜디오를 설립해서 가이낙스의 많은 초기 멤버들이 퇴사했다. <신극장판 에반게리온>은 초반에 가이낙스와 어느 정도 같이 제작하다 뒤이어서는 카라 중심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가이낙스 작품들도 조금씩 변하기 시작한다. 2010<하나마루 유치원> 같이 전혀 액션이 등장하지 않는 작품이 등장했다. 유치원생 3명을 중심이 되는 일상 장르로 기존 가이낙스 작품과 큰 차이가 생겼다.

 

주인공들도 예전에 거의 남자 중심으로 여자로 변하기 시작했고, 2011<단탈리안의 서가>는 애니메이션 안에서도 현실적인 리얼리티적인 작화를 구사하기 시작했다. 이런 흐름에서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 감독인 사에키 쇼지는 <마호로 매틱> 특별편 이후 2012<메다카 박스>를 제작하고, 2011web애니메이션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2015년 정식으로 TV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한다. 가이낙스의 흐름과 더불어 사에키 쇼지 감독이 맡은 작품에서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는 상당한 변화를 부여한 작품이다.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는 최근 일본애니메이션에서 주인공 인물에서 남성에서 여성으로 전환된 것, 여성 캐릭터는 남성들의 모에요소를 만족하는 것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지게 된 점에서 현재 애니메이션에 흐름에 상당히 맞추어가고 있다. 그러나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가 기존 가이낙스 작품세계를 배신한 것이라 볼 수가 없었다. 그 대치되는 작품은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다.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의 주인공 스바루는 평범한 중학교 여학생으로 우주의 별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그녀는 매사 자신의 소심한 성격, 자신감 없는 자신에 대해 고민을 하고 산다. 우연히 플레아데스 성인을 만나게 되고, 그때부터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어릴 적 친한 친구인 아오이를 만나게 되면서 과거에 아는 아오이와 지금의 아오이는 서로 다른 것처럼 느낀다. 단절된 시간의 교류 속에 변화라는 큰 물결에 스바루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마법소녀 장르로 볼 수 있고, 그 특징 중에 마법소녀로 변신한 주인공들은 어떤 특별한 목적을 가지고 활약하는 점이다.

 

그들의 활약은 역시 별의 조각을 모우는 것이나, 그것은 표층에 존재하는 이야기로 보여주고 내면의 이야기는 스바루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스스로 움직이는 것에서 알 수 있다. 스바루의 고민은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이카리 신지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다. 단지 신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아버지 이카리 사령관은 언제나 자신에게 냉대하여 항상 외로움과 세상에 대한 두려움으로 고통을 받는다. 대신 스바루는 부모님 모두 계시고, 스바루에게 언제나 다정하게 대해준다. 집에 돌아와 아버지와 대화하는 장면이 바로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제작된 가이낙스와 <신세기 에반게리온>이 제작 20년 후 대치점이다.

 

<신세기 에반게리온>에서 이카리 사령관은 언제나 신지에게 완벽한 임무수행을 요구했고, 신지는 그것에 고통스러워해도 주변 네르프 요원들은 그저 아무런 말도 없이 신지에게 그 무리한 요구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만약 에바에 타지 않으면 신지는 필요 없는 존재가 되고, 자신은 쓸모없는 아이가 되는 것에 상처받는다. 그러나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에서 스바루의 아버지는 어떤 물건을 만드는 과정에서 분명히 불량품은 나오고, 그것이 못쓰게 될지 모른다고 한다. 하지만 적어도 필요 없다고 하지 않는다. 분명 거기에도 의미가 있다고 한다.

 

스바루는 자신에 대해 아직 어른도 아니면서 어린아이도 아닌 어중간한 존재고, 불안정한 자신의 모습에 두려워한다. 스바루의 고민은 아오이가 바뀐 것처럼 점차 변화하는 세상에 대해 공포를 느낀다. 하지만 스바루는 자신만이 아니라 아오이 역시 스바루가 변화한 것에 무서웠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기만 불안한 게 아니고 자기만 어중한 것이 아니라, 모두가 그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을 알게 된다. 불량한 엔진부품이 지금 당장 쓸모없어서 버림받는 게 당연하다 여기지만, 스바루의 아버지는 그 엔진부품이 지금은 쓸모없다고 하여 결코 아무 의미가 없는 게 아니라 한다.

 

결국 어중간하고, 불량한 부품처럼 필요 없어 보이나, 그 모든 것이 존재의 이유가 있었다. 오히려 그런 과정을 통해 인간을 더 앞으로 나갈 수 있다는 의미를 부여한다. 청소년들은 언제나 자신의 현실에 불안하고 두려워한다. 그런 요소를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에서 스바루로 통해 보여주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부모 같은 어른들의 따듯한 시선, 그리고 친구들과의 유대감이다. 자신은 언제나 혼자라고 생각한 <신세기 에반게리온>의 신지와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의 스바루, 물론 인간은 처음에 혼자나, 혼자서는 살 수 없다.

 

<방과 후의 플레이아데스>가 밤하늘의 별자리인 플레이아데스를 지칭한 것처럼, 밤하늘의 별은 서로 빛을 내며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준다. 물론 플레이아데스 전설을 찾아보면 슬픈 그리스신화 이야기가 나오겠지만, 밤하늘의 별자리란 우리 인간에게 많은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주었다. 방과 후에 학생들은 자기에게 시간이 개인적으로 주어질 것이다. 우리에게 주어진 방과 후란 거의 학원에 가거나 PC에 앞에만 매달려 있을 뿐이다. 꼭 밤하늘의 별자리를 찾아 관찰하는 필요는 없으나, 자기만의 별자리를 찾아떠나는 여정은 우리에게 필요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